α

2019 봄호
작성자
날주
작성일
2020-10-27 11:34
조회
22

중학교 2학년, 전 국민이 필수적으로 받는 형질검사에서 나는 열성 알파 판정을 받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오메가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 했고,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알파인 걸 영광으로 알라고 했다.


인구의 10%정도밖에 안 되는 특이 형질인 게 행운이라고.


 


그러나 나는,


알파와 오메가, 베타에 대해서 배웠던 때부터 평범한 베타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내 형질은 나에게 절망일 뿐이었다.


 


내 세상인 네가 베타였기 때문에,


너는 평범한게 좋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베타만이 평범했기 때문에,


 


나는 베타이길 바랬고, 평범하길 바랬다.


그냥 너를 좋아하지 말 걸


그냥 좋은 친구 할 걸


 


*


 


 


 


너는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날정도로 오래된 친구였다.


너의 일상은 나의 일상이었고,


우리는 서로가 곁에 있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너는 늘 빛나는 아이였고,


그런 너의 빛을 본 내가 너를 짝사랑하게 된 건 당연했다.


 


문득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냥 평범한 삶을 원했던 것뿐인데.


정말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빛나는 너의 평범한 하루가 되어 너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이 사랑을 가벼운 성장통 정도로 놓아버리고 싶었는데.


 


나는 왜 하필 알파여서,


베타가 아니어서,


너와 같은 성별이어서,


평범하지 못해서.


그런 주제에 하필 너를 좋아해서,


 


당당히 너의 곁에 설 수 없는 걸까


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걸까.


다가갈 수 없어서 더 아픈 너는


왜 이렇게 한없이 다정할까


 


 


그래도 네가 베타라, 나의 향을 몰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로서라도 너의 곁에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진실을 알게 되면 너의 다정함이 차가워질까 무서웠다.


 


평범함을 좋아하는 너에게,


욕망에 충실해야 하고,


남들이 맡지 못하는 향에 흥분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혐오스러울지.


나를 경멸하는 네가 얼마나 아플지.


무서웠다.


 


베타인 너는 절대로 나의 향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내향을 누군가가 너에게 알려줄까봐,


항상 다른 향들속에 나를 숨겼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 향수를 만드셨기에 나는 향수를 쓰는 진짜 이유를 감출 수 있었다.


 


너를 좋아한지 5년,


너를 포기하겠다 마음먹은지 3년.


매일 아침 오늘은 그만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다짐은 채 한 시간을 가지 못하고 흩어지고 만다.


너의 웃음 앞에서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빈아-”


 


내 이름은 유독 너의 입에서 아름다운 것 같다,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감은 눈 위로 따뜻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다.


 


“빈아,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난다.”


 


“ 아 향수 바꿨거든.”


 


베타인 네가, 내 향을 맡지 못할 거란 걸 알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는다.


 


“알잖아 나 향수 좋아하는 거. 이번에 엄마가 새로운 향을 조합하셨다고 한 번 써보랬는데, 향기가 좋다니까 다행이다.”


 


오늘도 너에게 나는 거짓뿐이다.


 


*


 


그날은 유난히도 이상한 날이었다.


 


아침 7시 30분이면 나를 깨우던 달달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등교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허둥지둥 교복만 겨우 입고 나오니 넥타이는 깜빡했고,


교통카드에는 잔액이 부족해서 집까지 뛰어갔다 왔다.


 


그리고 가장 이상했던 건, 네 자리에 햇살만 가득했을 뿐 너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차은우가, 웬일로 학교에 안나왔지?


 


요즘 독감이 유행한다던데,


학교에도 안 나올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 거지


걔네 부모님 여행가셔서 간호해줄 사람도 없을 텐데.


 


네 걱정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른 채, 어영부영 학교가 끝나버렸고,


곧바로 너에게로 가려던 찰나 예고도 없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뭐지 진짜 오늘 무슨 날인가


 


불안감을 꼭꼭 잠재우며 너의 집에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향에 주춤한 것도 잠시.


이 향의 주인이 네가 아닐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확인 받으려 너의 방문을 열었다.


 


바보같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문을 열자마자 내가 마주한 건,


그토록 아니길 바랬던,


러트에 힘겨워하는 너였다.


 



나는


 


문을 열기 전에,


현관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향을 눈치챘을 때


그대로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방안을 가득 채운 이 향은,


열에 취해 끙끙 앓는 너는,


 


문, 빈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너의 향에 압도되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페로몬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 증상은,


네가 경험해서는 안 되는, 건데.


대체


왜.


언제부터.


너는.


 


알파였나


 


한없이 청량한, 너와 많이 닮아 다정한 향이 밀려와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


 


왜 몰랐지


 


언제부터 너는 알파였을까.


 


그러고 보면 은우는 제 입으로 베타라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아무 향이 나지 않는 은우가 베타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확신하고,


나도 베타인 척 하고 다녔던 것인데.


은우는 알고있을까


알면서도 속아준건가


대체 뭐 때문에


왜?


 


그날의 네가 자꾸 떠올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확실한 건, 나는 이제 친구로서도 너의 곁에 남을 수 없을 거란 것.


알파와 알파는 사회에서 죄악시되는 관계이기에.


열성 알파는 존재 자체가 잘못이기에


 


베타인 척 했던 나를 알게 된 너는 이제 날 어떤 눈으로 볼까


나는 너를 이제 어떻게 봐야 할까


꽤 오래 잘 지냈다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변함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왜 나와 같은 알파여서


왜 남자여서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너는 차은우여서,


따뜻하고 다정한 봄 같아서,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해


 


사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끝 무렵부터 줄곧 내 근처를 맴돌던 향이 너무 너와 닮아있어서


만약 네가 향이 있다면 이런 향일 것 같았다.


그게 진짜 네 향일 줄은 몰랐지만.


 


달디 단 꿈에 취해 잠시 현실을 잊고있었다.


너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부터,


이미 친구사이는 끝이 난 거였는데.


 


차라리 내가 오메가였더라면.


베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메가였더라면 그랬더라면.


페로몬을 핑계로 너에게 기댈 수 있었을텐데.


 


차라리 네가 계속 베타였더라면.


나도 계속 베타인척 하며 너의 내일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당장 내일, 너를 마주해야 한다.


 


*


 


아침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너를 피하려고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던 시간에 등교하니, 내 자리에 네가 앉아있다.


 


“빈아 오늘은 일찍 왔네?”


 


이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도 너는 햇살처럼 환하게 반겨준다.


마치 어제일이 꿈이었던 마냥.


 


“오늘은 왜 전화 안받았어?”


 


서운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핸드폰을 안 들고 와서, 오늘 일찍 일어났거든,”


 


어색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니 미심쩍은 눈치다.


 


“어.....나 이제 안깨워줘도 될 것 같은데...나 이제 잘 일어나. 어제 일찍 잤거든.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고....”


 


횡설수설 아무말대잔치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충실하게 너를 피해다녀야 하니까.


그냥 그때 그런 친구가 있었지 정도로만 남아야 하니까.


 


“에이 빈아 그건 좀 아니다”


 


“이제 혼자 일어나고 그래야지 언제까지 네가 전화해 줄 수는 없잖아..매번 깨워주는 것도 귀찮을 것 같고.....”


 


“안 귀찮은데? 우리 빈이는 평생 내가 깨워줘야지 ”


 


너는 지금 네가 하고있는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그렇게 다정한 말을,


그런 눈으로,


그런 표정으로,


그런 목소리로 하면 어떡해.


착각할 뻔했잖아


진짜 평생 깨워줄 것도 아니면서.


나쁜 차은우.


 


슬슬 너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깨동무를 하자 너의 향이 나에게 스민다.


내게 달아서는 안될 네 향이 쓸데없이 유혹적이어서,


너는 왜 향마저도 다정하고, 따뜻하고, 잘생겨서.


나를 또 힘들게 해.


 


너는 나를 붕 떠오르게 했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들어.


 


혹시나 내 향을 맡을까 슬그머니 빠져나오니 섭섭한 기색이다.


맥이 빠져 그냥 자리에 엎드려 있으니 네가 다가온다.


 


“빈아 어디 아파?”


 


엎드려 있는 내게 눈높이를 맞추고는,


잔뜩 걱정스러운 눈을 한다.


 


진짜 망했다.


또 주책맞게 설레버린다.


아 안 되는데.


빨리 멀어져야 하는데.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서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너와 닮은 아이를 갖고.


그냥 그렇게 너의 평범한 행복을 축하해 주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일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은우야.


네가 자꾸 그러면 내가 너를 포기할 수가 없잖아


 


*


 


 


계속 너를 피해다녔다.


아침마다 걸려오는 너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핸드폰을 아예 꺼놓고,


혹시라도 마주칠까봐 아슬아슬한 시간에 등교하고,


네가 우리 반으로 올까봐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숨어있었다.


 


이렇게 계속 피해 다닐 수는 없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상 언젠가는 마주칠 게 뻔했다.


차라리 그냥 고백해버리고 우리 관계를 아주 끝내버릴까.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그럴만한 용기도 뭣도 없었다.


 


“빈아 요즘 너 나 피하지”


 


결국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너에게 붙잡혀버렸다.


 


“아니 그건 아니고-”


 


급하게 변명을 늘어놓던 찰나,


 


“좋아해”


 


담담하게 울리는 네 목소리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너는 분명 나를 사랑하면 안 되는데,


너는 나와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한참동안 말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겨우 마음을 다잡는다.


 


“....나 알파야.”


 


“알아”


 


역시 알고 있었구나.


언제부터 알았는지, 알면서도 왜 이러는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렇게 계속 너를 보면 정말 다 놓아버릴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버릴 것 같아서.


 


“나 너랑 연애 못해.”


 


“빈아 나는 네가 알파든 오메가든 상관없어.”


 


“....왜?”


 


사실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너를 거부할 수 없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대도, 용서받지 못한대도.


결국 너를 받아줄 거란걸.


 


다만 안심하고 싶어서,


너의 말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냥 네가 좋으니까 ..그냥 너는 문빈이고 나는 문빈을 좋아하고. ”


 


“...있잖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평범하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그냥 그렇게, 후회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


 


아 어떡해. 울면 안 되는데.


단호하게 끊어내야 하는데.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어야 하는데.


싫어.


아직 너의 내일이 보고 싶어.


아니, 사실은 너의 내일이 되고 싶어.


 


“빈아 내 행복은 너에게 있어.“


 


너의 말 한 마디에,


너의 미소 한 자락에,


결국 나는 거대한 해일에 휩쓸린 모래성마냥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리고 만다.


 


내가 이래도 될까.


혹여나 내가 너의 불행이 되는 건 않을까.


우리 둘 다 알파인데, 같은 성별인데,


이런 저런 불안들은 심해로 가라앉혀놓고,


그냥 그렇게,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고.


 


그렇게 평생 너와 날 닮은 아이를 만들지 못한대도,


앞으로 절대 평범함의 범주에 들지 못한대도,


그저 지금은,


우리 둘로 충분하기에.


 


어려운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힘든 일도 그때의 우리가 잘 해결해낼 거라 믿으면서.


오늘은, 지금은,


그저 나에게 와준 봄을,


나의 너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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