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019 봄호
작성자
리콜라
작성일
2020-10-27 11:40
조회
26

00.


종이 울렸다. 저녁 예배의 시작이었다. 흰 기도복을 입은 차은우가 입장했다. 교수촌의 예수는 오늘도 아름다웠다. 예배당에 모인 신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도합시다. 예수의 첫 번째 종, 차기훈이 외쳤다. 신도들이 고개를 숙였다. 문빈은 숙이지 않았다. 해가 저문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홀로 솟은 머리 하나는 어두운 예배당 안에서도 눈에 띄었다. 빛으로 새벽을 어둠에서 벗겨내는 아버지,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저물었나이다…, 기도문을 외던 은우가 문빈과 눈이 마주쳤다. 은우는 문빈을 발견하고 웃었다. 문빈도 따라 웃었다. 아무도 볼 수 없기에 가능했다. 은우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새로이 터득하는 믿음의 성숙은 눈먼 죄인들의 앞을 밝혀…. 밤새 향을 피워 연기가 가득한 예배당 속에서 보이는 것은 은우뿐이었다. 촛불이 일렁였다. 은우의 얼굴에 빛이 아른거렸다. 문빈은 어젯밤 예수의 종들이 한 대화를 곱씹었다. 구세주께서 불충하십니다. 당신의 종들의 말 또한 소용이 없습니다. 몇 년째 죄인 한 놈만 끼고도시니. 이럴 바엔 그냥…. 다시 한번 부활을…. 말이 좋아 부활이지 결국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함께 엿듣던 은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올 게 왔다는 얼굴이었다. 진짜 예수를 팔아먹은 제자도 한 명밖에 없었다는데 어째 이놈의 사이비 새끼들은 빠지는 놈이 단 한 놈도 없었다. 오늘, 밤에, 탈출, 도망, 함께, 씹새끼들, 어떻게? 생각은 짧게 끊겼다. 향 태우는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눈앞을 흐리게 할 만큼 빽빽하게 피운 향은 은우에게 죽어달라는 종놈 새끼들의 바람 같아서 열이 올랐다. 은우는 자기를 죽일 궁리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구원을 기도했다. 눈이 매워 눈물이 났다. 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생각과 목소리가 겹쳤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여 아버지의 이름으로”


주제도 모르는 이 씹새끼들을


“기도드리옵나이다.”


전부 죽여주세요.


“아멘.”

“아멘.”







01.


교수촌에는 예수가 산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보신탕집을 지나서 영양탕집을 지나고 족구장과 계곡이 딸린 오리 보양탕 집을 지나면 향(香)내로 뒤덮인 동산이 나왔다. 종말의 날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동산이었다. 그 동산에는 예수와 예수의 종이 죄인들과 함께 살았다. 구원을 바라는 죄인들은 동산으로 향했다. 짐승은 동산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잡아먹혔다. 그러므로 동산에 들어온 이들은 죄인일지언정 짐승은 아니었다. 짐승만도 못한 죄인들은 예수에게 구원을 빌었다.



은우는 새하얀 기도복을 입고, 자비롭게 웃으며, 찾아온 죄인들의 원죄를 씻어냈다. 그 과정에서 말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죄인들은 은우의 발치에 엎드려 울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의 죄는 역겨웠고 고해의 모습은 우스웠다. 누구를 죽였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만 눈이 돌아서… 제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도 죽이고 죽여서 잘라도 보고 잘라서 묻어도 보고 여하튼 간에. 당장 사형을 당해도 모자를 사람들이 꼴에 지옥은 가기 싫다고 징징댔다.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은우는 비위가 좋았다. 슬프게도 죄를 사할 책임자이기도 했다. 은우는 기나긴 고해를 듣고 딱 한 마디만 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당신을 용서하셨습니다. 파렴치와 자기연민으로 점철된 고해에 비하면 간단한 말이었다. 이는 타고나길 좀, 남다르게 생겨서 가능하기도 했다. 단순하게 잘생긴 수준이 아니었다. 향을 잔뜩 피워올린 제단과 연기로 가득 찬 예배당 단 두 개의 촛불 앞에 선 차은우. 교수촌의 예수. 흰 기도복을 입고 기도하는 그는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 중 가장 신에 가까웠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주여. 교리에 따르면 신이 세상에 쏟는 분노 아래 구원받을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은우는 그런 식으로 구원받아 마땅한 이들을 솎아낼 자격을 증명했다. 증명된 구원을 남발하는 은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들 지옥에나 떨어지시길.






02.


진원교는 안양교도소 728번 수감실에서 창시됐다.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입소한 차기훈은 자신이 예수의 첫 번째 종임을 밝히며 교주를 겸임했다. 기훈은 수감생활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방장 박종철을 두 번째 종으로 명하고 동기 넷에게 전도를 시작했다. 사기 전과 6범을 가능케 한 그의 언변은 교도소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가 모범수로 가석방이 확정될 무렵, 교도소 내 진원교의 신도는 40명에 달했다. 먼저 출소한 이들까지 합하면 60명에 가까웠다. 출소한 기훈은 꿈누리 보육원을 찾아갔다. 내연녀 김수경씨가 맡긴 친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은우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기훈을 경계했다. 말이 좋아 친부지 4살 이후로는 본 기억도 없는 남자였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처음 나눈 인사치고는 되바라진 인사였다. 기훈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은우의 턱을 움켜쥐고 생김새를 살폈다. 이마의 높이, 눈썹의 길이, 치아 상태, 기타 등등. 작은 흠 하나하나 샅샅이 살피며 상품 가치를 판단했다. 이 정도면 쓸만하겠네. 진원 3년, 8월 27일. 낙찰. 열한 살의 차은우는 그렇게 예수가 됐다. 예수를 데려온 기훈은 곧이어 작은 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그곳에 동산을 세웠다. 기훈은 흩어져 살던 신도들을 동산으로 모았다. 기훈과 종철 그리고 몇몇 교인들의 자택을 돌아가며 가정예배를 드리던 진원교는 어엿한 교회를 가진 종교가 되었다.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교회를 세운 진원교는 전도를 시작했다. 동산이 위치한 교수촌이 첫 시작이었다. 교주 차기훈의 집회에 참관한 교수촌 주민들은 곧 열성적 신도가 되었다. 문빈은 그런 교수촌 거주민 출신 신도의 아들이었다.



문석범은 교수촌 출신 죄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고해를 올린 신도였다. 죄가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홀아비가 되어 아들을 혼자 키운다는 그는 고해 성사를 하면서도 죄를 따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자신은 죄인이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 자리에는 문빈도 함께였다. 열다섯 살,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문빈은 아무 말 없이 석범을 따라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참을 엎드려있던 그는 주위가 조용하자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문빈과 눈이 마주친 은우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스스로 죄를 고하지 않는다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용서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평소와는 다른 대답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석범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은우는 기도복의 소매로 그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대신 제게 봉사할 이를 선물하시면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실 겁니다. 그리고 문빈을 바라봤다. 목이 늘어난 반팔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마른 몸과 그 몸에 새겨진 멍을 바라봤다. 문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열다섯의 문빈은 그렇게 예수의 종이 됐다. 얼결에 예수의 종이 된 문빈은 동산 내 종들이 머무는 건물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그의 앞으로 종은 일곱이나 더 있었으나 그의 예수는 그를 자신의 방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주었다. 문빈은 은우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맡게 되는 냄새를 싫어했다. 그의 방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나는 탄 냄새가 났다. 그게 향(香) 내라는 걸 알게 된 건 며칠 뒤의 일이었다.






03.


진원교의 성경은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쓰였다. 짐승이 어쩌고. 나팔이 어쩌고. 종말의 날 천사들이 어쩌고. 그럴듯한 말로 채워졌지만 결국 협박이었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협박. 은우는 협박의 협박에 협박으로 채워진 성경을 꼴도 보기 싫다며 집어 던졌다. 남들이 없는 자리에서의 은우는 그랬다. 진원교의 예수께서는 사실 성질이 더러우세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문빈이 유일했다. 당연했다. 둘은 서로만 아는 비밀이 많았다. 나이가 같았고 같이 살았다. 가까워지지 않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실은 은우는 교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래도 괜찮아? 문빈의 물음에 은우가 답했다. 어차피 사이빈데 뭘.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나 자신이 구원자인데 굳이 알 필요가 있느냐. 이미 죽은 이들이 써낸 것들이 무어가 중요한가 나는 다가올 날에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은우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연인이 이를 보고 쓰러질 때까지 웃으니 그 모습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을 집필한 기훈은 정정하게 살아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사는데 이렇게라도 웃으면 좋지.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생각이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적어도 둘은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이면 은우와 문빈은 서로 붙어먹었다. 이래도 되나. 은우의 침대 위에서 은우와 입을 맞추면서도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벌리는 은우에게 물었다. 근데 예수님이 동성애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다며. 은우는 문빈의 말에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아 빈아. 내가 예수야. 그리고 문빈의 허벅지에 입을 맞췄다.







04.


진원 9년 11월 8일. 죄인 문석범이 죽었다. 신도들 사이에서 발생한 다툼에서 이어진 사고였다. 평소 석범과 잦은 말다툼을 하던 신도 하나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삽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으니 석범의 죽음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석범의 시체를 본 문빈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뒤통수가 함몰된 시체는 빈말로도 보기 좋진 않았다. 해방감보다는 공허함이 앞섰다. 석범의 머리를 내리친 신도는 은우에게 고해 성사를 올리고 씻김을 받았다. 죄인은 다시 신도가 되었다. 신도들은 죽은 석범을 차에 싣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며칠 뒤 그는 유골함에 담겨 돌아왔다. 석범의 유골을 건네받은 문빈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평소와 같이 하루를 보냈다. 밥 먹고 씻고 저녁기도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을 맸다.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은우였다. 마무리 기도를 드리던 은우는 불현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빈의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문빈은 천장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은우는 황급히 의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에 묶인 줄을 풀었다. 문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목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은우는 그런 문빈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두어대 뺨을 내리치다 목을 졸랐다.



차라리 죽어 빈아. 천국으로 가. 네 아버지의 곁에서 영원히 사는 저주를 내릴 거야. 나를 두고 죽으려고 하면 나는 너를 평생을 살게 할 거야. 빈아. 제발. 은우는 화를 내다 종국에는 애원했다. 그러니 죽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손안에서 느껴지는 고동은 거칠었다. 그러나 쥐고 있는 목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아득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새어나가는 기분이었다. 흩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어지러웠다. 빈아 제발. 제발, 빈아, 제발. 은우는 휘청이면서도 손을 풀지 않았다. 이 지옥에서 문빈마저 없다면 은우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언제 누가 죽어 나갈지 모르는 곳이었다. 자신이라고 다를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까득까득.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문빈은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예배당 바닥을 긁어댔다. 그러면서도 목에 붙은 손은 떼지 않았다. 그는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은우를 바라봤다. 저항 없는 눈은 은우의 정신을 뒤집어 놓기 충분했다. 산 채로 심장을 토할 수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적시였다. 은우야. 문빈이 은우를 불렀다. 구세주여, 예언자님, 우리의 그리스도…. 그런 거 말고 은우야. 은우는 불시에 불린 제 이름에 놀라 힘이 빠졌다. 문빈은 그제야 목에 감긴 손을 뗐다. 괜찮아 은우야. 문빈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괜찮아. 은우야. 뭐가? 대체 뭐가? 뭐가 괜찮아? 아무것도 괜찮지 않아. 전부 다 엉망이야. 동산은 지옥이고 내 종들은 나를 죽일 거고 너는 내 곁을 떠나 죽으려는데 빈아 이 모든 걸 괜찮다고 할 수 있어? 문빈은 다급하게 도리질 쳤다. 내가 잘못했어, 은우야. 도망갈래? 도망가자 우리. 열일곱의 문빈이 약속했다. 도망쳐서 살자. 나는 신 같은 거 안 믿는 거 알지 은우야. 그래서 천국이니 뭐니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죽어서 지옥 가면 뭐 어때. 은우야 우리 같이 도망치자. 언제? 언제가 됐건 간에. 그래. 좋아. 빈아 나는, 나는 너만 있으면 살 수 있어.




“다시는 죽으려고 하지 마.”


문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두고 도망치지 마.”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는 거야.”







05.


진원 11년 4월 7일. 새벽. 깊게 눌러쓴 모자, 흰 티셔츠, 검은색 진, 스니커즈. 기도복을 벗어던진 예수의 복장은 평범했다. 문빈은 은우를 보고 키득거렸다. 종들이 사는 건물은 조용했다. 모든 방의 문은 잠겨있었다. 은우와 문빈은 기름을 뿌리고 불씨를 던졌다. 기도복을 벗은 인류의 구원자는 문빈의 손을 붙잡고 동산을 걸어 나갔다. 종들이 사는 건물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불이야! 누군가가 소리쳤다. 걸신들린 불은 죄인들을 집어삼켰다.


교수촌에 사는 두 번째 예수. 하늘에서 아버지의 계시를 받고 내려온 예언자. 우리의 죄를 사하고 영생으로 인도할 안내자. 그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가로등조차 드문 교수촌의 산길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가 선택한 구원 받아 마땅한 이는 한 명뿐이었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둘은 어느새 달렸다. 땅을 박차는 발이 가벼웠다. 단단하게 얽힌 손에서는 땀이 차올랐다. 몸에 배어있던 향내는 더이상 나지 않았다. 드디어 탈출이었다. 문빈은 달리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화마(火魔)에 무너진 동산은 지옥 저편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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