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

2019 봄호
작성자
작성일
2020-10-27 11:59
조회
25



(※가정폭력 및 우울한 묘사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가게의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디디며 숨을 크게 쉬었다. 늘 맡던 익숙한 냄새. 추억과 상념에 빠지려던 것을 내몰고 가게에 온전히 들어와 외투를 낡은 나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는 작은 계산대 앞에 서서 무엇을 하지 곰곰이 생각하고는 ‘오랜만에 오는 가게니 일단 환기를 좀 할까-’하는 생각에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창문을 모두 반쯤 열어 두었다. 오래된 볏짚 쓸개로 여기저기 쌓인 먼지도 대충 쓸고 어지러이 오래된 문헌집이 나동그라져 있는 계산대 책상도 정리하고 나서는 어느 정도 정리된 작은 가게 중앙에 서서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오를 때까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 가시지 않은 먼지 향

지난여름을 추억하게 하는 시원한 가을 바람 향

오래된 목재 선반의 나무 냄새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가장 많은, 행복한 추억이 담긴 이 가게의 주역,

다른 사람들의 손과 추억을 가득 탄 ‘헌 책 냄새’가 내 코를 뚫고 목구멍까지 타고 내려와 심장까지 퍼져 오래된 설레는 동시에 가슴 시리게 만드는 추억에 심장 박동을 더 커지게 만들었다.


그래, 이 냄새. 추억 가득한 이 냄새.

이쯤이면 이렇게 계속 말하는 추억이 무엇인지 다들 참 궁금해 할만도 할 것이다. 설렌다느니 시리다느니 행복하다느니, 전혀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감정들이 담긴 이 추억은 내 기억 속 10년 전을 돌아가야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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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16살이던 나는 보잘 것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은 어린 나 따위는 상관 쓰지 않았고, 달동네에 작은 집에 겨우 살며 겨우 학교를 다니며 혼자 놀던 그런아이였다. 공부는 무슨, 그저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고, 나무나 하늘, 산속에 흐르는 연못가의 물을 보며 시간을 보냈으며 혼자 밥도 차려 먹었다. 겨우 15살이었지만 철저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혼자였다.


무더위가 내 여린 속까지 뚫고 들어와 불을 내던, 유독 열기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로 옆에 누구 없이 혼자 동네 골목을 방황하던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동네를 흘러흘러 똑같은 길을 떠돌다 너무 덥다 싶었던 나는 두 번째 아지트에서 열기를 식히며 책이라도 읽고자 열에 가득 찬 몸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른들도 오르기에 벅찬 그런 길도 나지 않은 산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이 더운 여름, 내 몸과 마음을 차게 식혀주는 내 두 번째 아지트,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연못이었다. 크기는 조그마한 가정집 하나보다 작은 크기였지만, 물은 안의 모든 것이 보이고 잡힐 듯 맑았고 얕았으며, 옅은 산바람에 나뭇잎 몇 개만 떠다니며 고요했다.


여름에는 내 첫 번째 아지트가 너무도 덥기에 이 곳에서 혼자 물에 발이라도 담그어 물장구를 치며 열기를 식히거나 나무 그늘에 기대어 책을 읽고 가고는 했는데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는 지금까지 나밖에 모를 텐데, 누구지? 조금 더 가까이 가니 흐릿하던 형체가 선명해지더니 작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맑은 물에 손을 넣고 물을 찰방이고 있었다. 그래, 얘가 내 아름답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완성해준 아이, 이동민이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아지트는 지금까지 나 말고는 아무도 안 오는 (사실 그건 확실하지 않다. 내가 없을 때 어느 누가 왔을지 누가 알아?) 곳이었기 때문에 일단 누가 있다는 것 자체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놀란 내용은, 얼굴과 하얀 피부정도? 사실 얼굴은 보고 살짝 많이 놀랐다. 아니 어떻게 나정도 되어 보이는 나인데 저렇게 생겼을까? 특히 눈이 날 이끌어 당겼다. 나무로 우거진 그 곳에서 작게 여름 햇살이 반짝이며 눈을 비추어 그 큰 눈이 빛났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생각하던 얼굴을 보고 나서부터는 얼굴에 대한 생각 밖에 안 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있던 중에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아, 어쩌지? 가서 누구냐고 물어봐야하나? 여기는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봐야 하나? 쓸데없는 물음만 길게 죽 늘어놓던 중에 그 아이는 다시 눈을 내게서 떼고 손을 휘젓던 그 연못에만 집중했다. 어, 뭐지? 왜 모르는 척하는 걸까?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어쩌지어쩌지만 반복하며 아이를 바라보던 나는 어쨌든 여기는 내가 더 오래 알고 있었던 내 아지트니까 (사실은 내가 더 오래 알았을지 쟤가 더 오래 알았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을 걸어보는 게 낫겠지?


“저기....”


아, 돌아봤다. 이제 뭐라고 하지? 누구냐고 물어볼까, 어떻게 여기를 찾았냐고 물어볼까. 아까부터 계속하던 고민을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늘어놓고 끙끙대던 중에,


“시원해.”


“어...?”


“물이 시원하다고. 날은 이렇게 더운데 왜 물은 이리도 찰까.”


뭐라는 거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은 그 애 때문에 잠시 혼미하던 정신을 다시 붙잡고는 말했다.


“근데 너는 누구야...? 여긴 어떻게 알았어...?”


아, 드디어 물었다. 과연 뭐라고 답할까. 니가 알 바 없다고 할까, 아님 또 알 수 없는 말만 죽 늘어놓을까.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할 수도 있어. 갑자기 일어나서 가버리는 거 아냐? 갑자기 가버리면.... 내 아지트는 아지트가 아닌 게 되는 건가? 여름은 이제 어떻게 나지?


“이동민,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여기에 대해 아는 게 얼마 없어. 구경 좀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엥, 순수하게 말해주잖아.....? 지금까지 쓸데없이 말하고서의 부정적 반응이니 아지트 발각이니 하며 했던 생각들은 모두 사막에 쌓인 모래마냥 쓸려 날아가 버렸다. 말을 듣고 나니 허무해졌다, 뭐라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무서운 정적이 우리를 감싸고 시간은 계속, 계속, 계속 흘렀다. 솔직히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나에게는 이시간이 고역이었다.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니까, ‘뭘 해야 하지? 같이 놀아야 할까? 무슨 말을 더 걸어볼까?’ 또 혼자서 말도 안 되는 상념에 빠져서는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그래서 니 이름은 뭐야?”


“응? 난....”


처음이다. 아니, 일학년 새 학기 때만 해도 내 이름을 묻는 사람이 있었지, 참. 그래도 오랜만에 누군가가 내이름을 물어 본다는 게 이렇게 어색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는데. 이상하네.


“넌 너 이름 말하는 데 뭘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해? 설마 니 이름도 몰라?”


아 맞다. 대답해줘야지.


“문 빈이야, 외자. 성이 문이고 이름은 빈.”


“빈, 빈, 문 빈.....”


내 이름을 입으로 곱씹던 그 입이 신기했다. 중얼 대던 그 자그마한 동민이의 입이 신기했고, 깜빡이던 눈빛이 꿈같았다. 맞아, 정말 꿈같았다. 누군가가 내 이름의 문자를 입에 담는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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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 번째 아지트에서 동민이와의 통성명 후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뭐, 15살짜리 꼬맹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겠는가 하겠지만 나름 그딴에 느끼기에는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자세한 동민이의 이사 이유, 자기 집안 사정은 어떠한지, 아 맞다. 동민이가 이 기나긴 여름방학이 끝나면 우리 학교로 전학 온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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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리에 앉아라. 방학은 잘들 보냈니? 다들 얼굴 보니까 방학 끝난 거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어쩔 수 없지.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동민아, 인사하렴.“


드디어 개학이다. 뭐, 개학이라고 무엇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동민이가 드디어 학교에 처음으로 왔다. 과연 동민이가 날 기억할까? 나는 그때 마지막 만남 이후로 자기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알고는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동민이를 바라보던 그때,


“안녕, 난 서울에서 온 이 동민이야. 아버지 일 때문에 여기로 오게 되었어.”


“끝이니? 음.... 그럼 동민이는.... 그래, 빈이 옆자리가 비니까 저기 가서 앉도록 해라. 오늘 하루 책이 없을 테니 빈아, 동민이랑 책 같이 보렴.”


“네”


세상에, 혼자여서 외롭기만 했던 이 자리가 너무 고마워 지려고 한다. 이 심장 속 두근거림이 무엇 때문이라 정의 내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내 옆에 내가 아는 애가 앉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그저 좋았다.


“동민아, 나 기억해?”


윽,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인가.. 그냥 책 같이 보자고 말할걸....


“바보”


으어? 바보같은 질문에 후회하던 중에 더욱더 바보같은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엥? 바보라니?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가? 아님 나같은 거는 기억할 가치도 없었다는 걸까? 첫만남부터 이상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던 동민이의 “바보”라는 한마디에 나는 또 글자의 늪에 빠져 수업이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교과서를 바라보지 못하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나 따라 보고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개학식을 하고서는 단축 수업을 일찍 끝난 오늘 하루, 결국 동민이와는 아침에 바보소리를 듣고는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못하였다. 물론 주위에 애들이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고 하는데다가, 얼굴도 학교에 있던 아이들과 유별났던 동민이의 주위에 바글바글해서 딱히 닿을 수 있는 수가 없어서 떨어져 있었던 건데.. 옆자리니까 그래도 나에게 잘 지냈냐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그때 만나서 했던 그 심오(하다고 생각하는)한 대화들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역시나 동민이는 나를 그때 눈곱만큼도 자세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인가 보다.


“그래, 주책이지. 이런 거 한 두번도 아니고.”


한숨 섞인 이 말을 끝으로 다 지나간 끝 여름에 이제 동민이와의 첫 만남의 장소인 두 번째 아지트는 내년으로 기약하고 내 첫 번째 아지트로 가려던 참이었다.


“빈아, 문 빈!”


응? 이 시간 이 때 날 부를 사람이 있던가? 선생님이라기엔 목소리가 너무 어린데... 뭘 떨어트린 건가? 혹시나 몰라 황급하게 몸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뒤를 돌아보니,


“빈아!”


다시는 말 붙여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동민이가 저 멀리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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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놀란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아무 표정 없이 동민이를 바라보던 도중에 동민이의 한 마디에 움찔했다. 자기가 말 안 해줘서 서운해 하던 거 어떻게 알았지? 얼굴에 다 표가 났나? 끝날 때까지 최대한 표시 안 내고 아지트 가서 다 풀어 버리려고 했는데...


“오늘 하루 동안 네가 물어 본거에 대답 못하고 바보라 해서 미안해. 애들도 너무 많고, 시끄러운 데다가 하루 종일 애들이 하는 말에 정신이 없어서 너한테 말하고 싶어도 못했어. 방학 끝날 때까지 너랑 다시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데, 날 기억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이나 하길래, 욱해서. 미안.”


속사포로 사과하는 동민이에 당황했다. 아니 굳이 이런 일에 이렇게 사과를 길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난 이런 거에 익숙한데.. 그래도 누군가가 내게 ‘무시’에 대한 사과를 해준다는 게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고통을 또 겪어야하나 괴롭던 마음을 다시 녹여주는 동민이의 사과의 문장이 너무나 달콤하고 따뜻했다.


“나, 그럼 앞을 너랑 계속 말하고, 같이 다닐 수 있어?”


정말 바보 같고 유치하며 뜬금없는 물음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둘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


아무 말이 없는 건 역시 어렵다는 뜻이겠지. 그 고통이 겪기는 싫지만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늘 겪어 왔던 거니까. 그래도 오랜만에 겪는 고통에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순간,


“좋아, 당연하지”


찔끔 나오던 눈물이 밝은 햇빛에 반짝하며 빛났다. 이제 고통을 끝이라고 눈물에게 보내주는 햇빛의 작별인사 정도일까. 나오던 눈물을 닦는 순간 부는 따스한 바람도, 그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도, 그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도 모두가 나의 고통에게 이제 안녕을 고하는 거 같았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동민이는 처음으로 내게 싱긋,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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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개할게, 내 첫 번째 아지트야. 어서와”


누군가의 소유인 것은 확실하지만 현재 주인은 없는 이 책방은 나의 지친 몸은 물론 마음과, 정신까지 치유해주는 아지트이자 집인 곳이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는 날이면 아버지를 피해 이 곳에서 자기도 했고, 마음이 너무 우울한 날이면 이 곳으로 와서 내 마음을 오래된 책으로 달래기도 했는데, 내 치유의 공간을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동민이에게 소개해줄 수 있어서 참 행복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모든 걸 알고도 이해하고 날 받아 들여 준 동민이는 이제 이 책방을 넘어서 내 새로운 치유의 공간이었으니까, 행복했다.


“여기 너무 먼지가 많은 거 아냐?”


동민이가 콜록대며 책장의 먼지를 쓸어 냈다. 머쓱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오랫동안 안 와서 먼지가 쌓였나 보네.. ”하고 대답했다. 일단 먼지를 빼내기 위해 구석구석의 창문을 끙끙대며 열고서 오직 나 만을 위한 책상이었던 계산대 책상에 가득 쌓인 먼지와 여러 문헌들을 말끔하게 정리해냈다. 순식간에 책방을 말끔하게 정리해내고 동민이의 손을 이끌고 작은 책방 중앙에 서서 숨을 크게 쉬었다. 동민이는 내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웃어 보이며 “여기를 청소하고 나면 하는 의례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쉬며 책방의 오래된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코를 타고 들어오는 오래된 나무 책장의 냄새도, 따스한 헌 책들의 냄새들도, 어색하게 따라하며 내 손을 잡고 웃는 동민이도 모두 내 희망이었고, 꿈이었고, 빛이었다. 그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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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골라봐.”


여러 가지 고전 문학들을 동민이 얼굴에 들이밀며 이건 이런 얘기니 저건 저런 얘기니 하며 신나서 설명하니 동민이는 난처한 얼굴로 “이런 걸 다 어떻게 읽어..?”하고는 물어왔다. 아 맞다, 보통 애들은 책 읽는 거 안 좋아하지..? 특히나 고전 문학을 들이밀면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럼 어쩌지.. 쉬운 책, 쉬운 책...... 시집! 그래, 시집이 읽기도 쉽고 간단하게 받아들이기도 좋으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금방 다른 거 가져올게!”


계산대 책상에 앉아서 쏜살같이 움직이는 나를 보고는 멍해진 동민이를 뒤로 한 채, 후다닥 책방 가장 안 쪽의 높은 곳에 위치한 시집 구간을 찾아가서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만 쏙쏙 골라서 위태위태하게 돌아왔다. “동민아, 책 좀!” 외마디로 외치고서는 절반의 책을 동민이에게 넘기고는 숨을 푹 몰아쉬었다. 또 책과 친구, 둘의 조합에 신나서 이리저리 책을 옮기며 말하는 데, 동민이의 반응이 없자 너무 설쳤나 싶어서 슬쩍 고개를 돌리니 동민이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그냥 동민이한테 고르라고 할 걸! 너무 나댔나봐!


“그.. 저.. 미안해,.. 네가 골라... 내가 너무 시끄러웠다, 그치?”


머쓱하게 웃고는 “난 그럼 내 책 찾으러....”라 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비키는데 그 순간


“아냐, 빈아. 나 니가 설명해주는 거 듣기 좋아. 그니까 또 그런 소리하지 말고 계속해줘. 기왕이면 처음인데 읽어주면 어때?”


그 한마디에 심장이 두근, 했다. 동민이는 참, 이상한 소리도 잘하면서 이상한 소리로 가슴도 설레게 한다니까. 그래도 이 마음을 주체할 수는 없었다. 어서 동민이 옆으로 가라는 마음의 이끌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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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그날, 작은 책상과 그에 맞은 작은 쇼파에 살을 부대고 밤이 되어 달이 환하고 별이 반짝일 때까지 앉아 책을 읽어주고, 들어주고, 또 마주보고, 끊임없이 웃었다. 작은 시집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다고 그리 웃고, 그리 행복해 했을까. 그래, 맞아 시집이 재밌던 것이 아니고, 함께 살을 부대고 있다는 것이 그리도 행복한 사실이었지. 그랬던 것이었지.



이 날 이후로 우리 둘은 학교가 끝나는 때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이 곳으로 달려왔다. 비가 오던, 눈이 오건. 비가 오는 날이면 막걸리에 파전이라며 몰래 술도 마셔 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창문이고 문이고 꼭꼭 걸어 잠그고 함께 커다란 담요 하나 덮고서는 책을 읽었다. 이 책방은 이제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나가는 둘만의 공간이 되어있었고, 동민이는 나에게 그저 ‘친구’라는 수식어보다 더 나아간, ‘가족’보다 더 나아간, 그러한 설레는 존재가 되었다. 동민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에겐 우정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내 우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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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행복이라는 것은 나에게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지 못하는 것일까.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여느 겨울과 같게 눈이 소복이 내렸고, 바람도 썰렁하게 불었으며, 책방의 앞 집의 개도 여전히 짖고 있었다. 동민이와 책방에서 하루 종일을 책을 읽고,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하며, 놀대로 놀고서 밤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을 걸 알지만 작게나마 “다녀왔습니다.”라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와장창.


잠깐, 와장창? 아무도 없을 집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 한동안 고이 접어 두었던 불안을 슬슬 끌어 올려 급히 문을 세게 열도록 만들었다. 강도라도 든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호기롭게 문을 열어도 괜찮은 걸까? 동물이라도 들어온 것인가? 차라리 도둑고양이였으면. 문을 여는 그 단시간 동안 오만가지의 생각을 하고서는 헐레벌떡 문을 여니, 문 앞에는 잔뜩 깨진 소주병들. 무너진 세간.

또 가슴 철렁이게 하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너, 이 새끼, 열여섯 밖에 안 된 새끼가 어딜 이렇게 싸돌아 댕기다 오는 거야!”


위험했다.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 머릿속 사이렌이 지금은 위험하다고, 너 진짜 빨리 도망가야 한다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서 달려, 문 열고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달려. 머릿속으로는 어서 도망가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발은 본드라도 붙여놓은 양,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아버지를 바라봤고, 잔뜩 취해서 벌게진 얼굴로 다가오는 아버지가 팔을 올린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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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었다. 아침도 아니고, 대낮.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상처가 나고 피가 고인 몸을 일으켜 시계를 바라보니 2시를 꼬박 넘긴 시간이었고 사람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방에서 뭘 알기는 하는 지 티비는 혼자서 이틀이 지난 것을 알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학교고 뭐고, 그냥 지금은 어서 이틀 동안 못 본 동민이의 얼굴, 이틀 동안 못 들을 동민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아니 그냥 동민이가 보고 싶었다. 간절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몸에 상처가 벌어져 피를 쏟아 내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든. 아무 생각 없이 책방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벅차다 못해 폐가 터져버릴 때까지 달렸다.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맨발에 슬리퍼 바람으로 나온 거 같은데-. 돌에 치이고 걸려도 지금은 아픈게 문제가 아니었다. 도망쳐 벗어나는 게 우선으로 급했고,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으며, 동민이의 따뜻함이 고팠다. 동민아, 이동민. 동민아. 죽도록 달리고서야 굳게 닫힌 공간, 책방에 드디어 도착했다.


“아 아직 학교 끝날 시간 아닌데”


진짜 무식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 순간 생각할 수 있는 건 여기로 와서 동민이를 만나는 거 밖에 없었어. 그 곳에 있다간 정말 온 몸이 다 찢어져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걸. 그래, 난 그 때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누구도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무식한 게 아니야.


하지만 너무 일찍 와버렸다는 사실 자체에는 반박할 수도, 나 혼자서 변명할 수도 없었다. 방법이 없지... 기다리자, 기다리는 거 말고는 지금 내가 할 게 뭐가 있겠어. 책방에 정신 없이 도착해서 지금의 내 상태를 바라봤다. 이리저리 찢긴 교복, 교복 사이로 드러난 갖은 상처들과 그 새로 가득 베어 나온 피들, 플러스로 다 헤진 슬리퍼. 이 상태로 있는 건 무리겠지. 일단 상처를 닦고, 치료를 하자. 옷도 좀 갈아입고. 책방에 찾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지는 이 안정감과 평정심에 이 곳 밖에 내 미래는 없구나, 이곳이 내 진짜 미래고, 희망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같은 희망과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동민이.


동민아, 이동민. 넌 나의 희망이고 미래고, 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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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치료와 옷을 갈아입고 나니 어느새 4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이쯤이면 동민이가 올 시간이 됐는데... 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책이라도 읽으면서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오래된 책 냄새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난 다시 책장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어와 바닥에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책에 정신이 팔려 5시, 6시가 훌쩍 넘기도록 시간이 지나간 것도 몰랐다. 책 한 권을 읽는 게 끝났을 즈음,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고는 깨달았다.


‘동민이는 왜 오지 않지?’


내가 없으니까 오지 않는 걸까? 역시나 혼자 여기 오는 건 아직 6개월이 다 되어 간다고 해도 어색한 거겠지. 이해해. 난 여길 몇 년을 혼자 지냈지만 동민이는 함께 6개월 밖에 지내지 않았는데, 어색할 만하지.


이상하게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계속 생각할수록 점점 더 머릿속은 불안으로, 불안으로 나쁜 생각만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내가 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불안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이곳에 도착하며 눈 녹듯 사라진 듯 했던 불안은 다시 마음 한 켠에서 서서히 자라고 있었고 불안은 점점 내게 고통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동민이가 이제 나에게 실증을 느껴 버렸으면 어쩌지. 그동안 웃으며 함께 지내오며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잘못된 것 같았고, 그게 다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그럴 순 없어. 난 너 없인 이제 버틸 수 없어. 너와 함께 보낸 6개월은 이제 내 인생에 전부가 되어 버렸는데. 그래선 안 돼. 그러면 안 돼.


불안과 상상은 합쳐져서 나쁘고 또 우울한 것들을 만들어 냈고, 난 버틸 수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아무리 뒹굴어도 눈의 눈물은 계속 흘렀고, 눈물이 흐를수록 우울한 것들은 머리를 지배해서 날 괴롭혔다. 가렵다, 찢어지고 벌어진 상처들이 미친 듯이 가렵다. 밴드 위로 손톱을 내어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무너진 감정은 다시 세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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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고통으로 보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을 때, 나는 생각은 어서 학교에 가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하나 남은 셔츠와 다 헤진 점퍼를 서둘러 챙겨 입고 또 학교로 달렸다. 아직 어둑어둑하니 등교할 시간은 아닌 것 같았지만, 혼자 그곳에서 버티고 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좋기만 하던 책 냄새가 상처의 어딘가를 가렵게 했고, 또 보고 싶게 했다.


책방에서도 머나먼 학교에 도착했을 쯤, 드문드문 학교 주변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저 중에 동민이가 있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도 동민이는 없었다. 시간이 이르다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둘러대며 어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을 뵈고 사정을 말씀 드리고는 보건실에 들려서 상처를 치료했다. 동민이를 만나는데 아픈 모습으로 만날 순 없으니까. 선생님의 표정은 꽤나 심각해 보였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난 동민이를 만나야 했다. 보건실을 나와 헐레벌떡 교실로 달려가 문을 열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다행히 나에 겉모습에 대한 관심이 없어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지. 그런데 반 아이들도 거의 다 온 것처럼 보이고 곧 수업도 시작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동민이가 안 보였다. 뭐지? 왜 동민이는 없는 거지?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괜히 분위기만 이상하게 흐릴 것 같았다.


“동민이는 어떻게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가냐-”


귀를 의심했다. 동민이가, 어딜 가..?


“걔도 몰랐겠지. 아버지 일이 그렇게 저 먼- 지방으로 발령날 거라고 걔라고 알 길이 있었겠어?”


말도 안 된다. 동민이가 날 진심으로 두고 갔을 리가 없어. 정말일까. 아니야, 나한테 한마디 말도 안하고 떠날 동민이가 아닌데. 왜, 왜.


“다들 조용히 해라, 왜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러워- 동민이가 부모님 일로 전학을 간 건 너희들 사이에서 모를 리가 없을 거고. 동민이가 정말 고마웠고, 잘 지냈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너희 좀 있음 고등학생 되는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쁜 생각으로 꼬리를 물던 그 머리가, 뇌 속이 텅 비어버렸다. 뭐라고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생각할 새도 없었다.

차라리 웃어주었던 그 여름날, 혼자였다면 이렇게 아프고 비참하지는 않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순 없을까. 싫어, 싫다고. 가지마. 떠나지마.


내 우주였고 빛이었던 너는 그렇게 갔다. 내게 씻을 수 없는 흉터와 지울 수 없는 행복한 과거를 함께 만들어주고는, 너는 그렇게 갔다. 내 곁을 떠났다.





-





떠났다는 걸 자각하고, 알게 되며 받아들이고는

첫째 날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았다.

둘째 날은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질 않아서 그저 멍해졌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셋째 날은 점점 더 이 사실에 받아드려 지기 시작했다.

동민이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졌고, 눈앞에 선명해졌다.


내게 동민이의 흔적이 남은 것이라고는 그 책방 밖에 없었다. 그 자그마한 공간과 그 곳에 빽빽하게 차 들어있는 오래된 책들, 우리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 그리고 이 냄새.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맡지 않은 적이 없는 냄새. 이제는 내 몸에 다 베어버린 이, 책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담긴 그 곳 밖에, 내겐 남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고는 그 책방이 더 이상 아지트로만 유지될 수는 없었다. 나에게 남은 건 그 곳 밖에 없는데, 사실 그 곳마저 내 공간이 아닌데 이제는 내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 남은 그 곳이 내 모든 행복과 미래를 걸 공간이고, 내 마지막이 되어줄,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날 구해줄, 그런 공간이니까.


또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다 자라서 어른이 된다면. 그 때 니가 날 찾아 와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여기서, 여기서 일 년이고 십 년이라도 기다린다면, 언젠가 니가 날 찾아와 주지 않을까?









.

.

.







그렇게 다짐하고 나서는 정말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했으며, 알바도 했다. 어린 나이기에 받아주는 알바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얻어낸 알바로 돈을 벌었다. 그 책방이 내 것이 되려면 그 자격을 갖춰야 하니까, 틈틈이 돈을 벌고, 그 중에 또 틈틈이 공부를 했다. 코피가 터지고 쓰러지고 힘들더라도 참았다. 내 꿈이자 미래의 너의 재회를 위해서. 그렇게 달려온 5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나서 4년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는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5년이나 지났으면 6개월 정도의 일은 잊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지난 단 한 순간도 그와의 재회를 위해 하는 이 일들이 후회되거나 잊을 수 있는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생각할수록 악바리로 일했다. 그렇게 또 5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야 돼서 난 이 곳을 온전히 나로써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나의 것. 이렇게 숨을 들이 쉬는 순간,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 순간. 네가 생각났고, 다시 돌아와 주길 했다. 동민아, 언제 다시, 언제 다시 날 만나러 이 곳으로 와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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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 곳도 늘 잠시 들려서 책만 후딱 들고 나갔기에 책들이 이리 저리 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책들을 언제 다시 분류하고 정리할지 한숨만 푹푹 쉬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책들을 집어 들었다. 여러 권 골라 제자리에 도로 꽂아 두다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지 못하고 여느 때처럼 책을 읽었을 때 동민이가 마지막으로 읽던 책을 골라 들게 되었다. 언제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을 들고 그 때처럼 웃어주겠니, 또 그때처럼 편안하게 내 곁에서 머물러줄거니, 동민아.


책을 펴서 이미 읽어 본 내용이지만 천천히 다시 읽어 보던 중, 종이 한 장이 스륵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색도 다 바랜 오래된 종이에는 편지로 보이는 글이 보였다.


“빈이에게


안녕 빈아, 나 동민이야. 너무 너무 고마웠던 우리 빈이, 빈아 정말 고마웠어. 이렇게 작별 인사를 편지로 하다니 사실 내가 이렇게 소심하고 쪼잔해. 나 사실은 아버지 일로 또 이사 가게 되었어. 나 너 만나면서 이렇게 많이 웃고, 편안했던 거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떠나게 돼서 너무 아쉽고 슬프다. 너로 인해 이렇게 행복해지고 웃을 수 있었는데, 고작 6개월 밖에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게 너무 속상해. 사실 처음으로 날 이 곳으로 데려와 주었을 때부터 정말,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 정말로, 정말로 ―――해. 진심으로 널,





200x.x.x_동민이가”


뭐야? 왜 여기서 끝나? 그리고 넌 언제 이 이야기를 해주려고, 이 편지를 보라고 하려고 했었던 거야. 편지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흐려져서 끊겨버린 글씨는 아무리 다시 봐서 흐린 모습 그대로였다. 읽다보니 깨달았다. 아 내가 그렇게 아버지를 만난 그날, 그날의 날짜구나. 그날 모른 채 해주었던 그 열심히 적던 편지가 이거였구나. 눈물이 어느새 눈가를 흘러 코, 입, 목을 지나 흐르고 있었다. 편지에 눈물이 톡,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자세는 무너져 내렸다. 동민아, 넌 언제 이 편지를 전해주려 했던 거야. 도대체 언제가 돼서야 이걸 전해주려 했던 거냐고. 바닥에 주저앉아 그렇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편지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동민아, 이동민. 보고 싶어. 니가 너무 보고 싶어. 널 위해 이렇게 달려온 나에게 돌아와서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날 꼭 안아줘. 설명도 필요 없어. 날 좀 안아줘.


‘딸랑’


아니, 이 시간에, 그리고 이런 후미진 책방에 나 말고, 또 누가 온단 말인가. 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동민이 밖에 없는......


“여전하네, 이 먼지 냄새는.”


“오랜만이야, 빈아. 보고 싶었어.”


고개를 들어 올려 들어온 사람에게 눈물로 가득 찬 초점을 맞췄을 때, 거기엔 동민이가 나에게 처음 웃어줬던 것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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