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갈래

2019 여름호
작성자
다로
작성일
2020-11-11 11:07
조회
4





“은우 씨, 많이 떨리시나요?”

 

“..조금요. 오늘 나와 줬을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사실 기대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자, 이제 직접 한 번 불러주시겠어요?”

 

“..네.”

 

자꾸만 바싹 마르는 입을 물로 축이고 또 축여도 살짝 열이 오른 얼굴 탓인지 금세 다시 갈증이 났다. 아무래도 너를 봐야만 해갈이 될 오래된 것인 듯 했다.

 

“..빈아.”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매일 따라다니는 조명이 오늘따라 덥게 느껴졌다. 이제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

 

 

 

“빈아!”

 

 

 

 

 

같이 갈래

 

w. 다로

 

 

 

 

 

 

“은우야, 새로 들어온 거 확인해 봐. 요즘 너 얼굴 보기 힘들다고 팬들 기다리는데 웬만하면 다 오케이 하자.”

 

“혀엉-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요즘 통 힘이 안 나. 괜히 억지로 나갔다가 태도 논란 나고 그런 것보다야 날 좀 더 보고 싶어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의욕 없이 들춰보니 다음 달까지 잡힌 스케줄 표다. 라디오, 시상식, 화보, 그리고.. 단독 예능?

 

“하여간 말은 잘 해. 그리고, 차은우인데. 미소 한 번 안 지었다고 논란 쉽게 안 난다- 정색하면 냉미남. 웃으면 온미남. 몰라?”

 

“아이, 다 옛날 얘기지. 나도 이제 십 년 차야.”

 

십 년 차. 또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디서 오는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유 없이 오는 권태로움은 시작을 알 수 없어 끝조차 바랄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거 뭐야? <티비는 사랑을 싣고>? 나 애기 때 하던 거 아니야?”

 

“어어, 나도 보고 놀랐다 야. 너 태어나기 전부터 했었지 아마. 요즘 시즌2 시작했는데 영 인지도가 없나 봐. 그래도 재밌을 것 같지 않냐? 나도 애청자였는데.”

 

어릴 때 부모님께서 울고 웃으며 보던 그 프로그램이다. 은우 넌 찾고 싶은 사람 없어?

 

찾고 싶은 사람..

 

요즘 들어오는 대본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람들도 잘 안 만나는 것 같은데- 댓글들 많이 신경 쓰여? 다 지나가는 시기야. 네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권태기일수록 똑같은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경험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니-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한참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했다. 널 고작, 찾고 싶은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빈아.

 

 

 

 

 

 

-

 

 

 

 

 

 

“빈아!”

 

평소엔 목소리도 낮은 녀석이 한껏 높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렇게 안 불러도 너인 거 알아. 내가 그렇게 좋냐?”

 

“치, 웃고 있으면서 괜히 그런다, 또. 오늘은 밥 먹었어?”

 

졸려서 멍했던 기분이 맑아진다. 좋아진다.

 

“아니.. 나는 네가 아니야.. 지금 일어난 지 십 분도 안 됐어. 매점 들렀다 가자.”

 

아침마다 집 앞에서 만나 함께 등교하는 우리는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껌딱지 세트였다. 중학교 때부터 지겨울 만치 붙어 다니게 된 계기는 이제 기억도 잘 나질 않을 정도로 서로가 당연한 사이가 됐다.

 

“넌 걸으면서도 단어를 외우냐.”

 

“곧 시험이잖아. 바짝 하고 방학 때 좀 쉬려고. 넌?”

 

“나야 뭐, 늘 똑같지.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농땡이도 치고.. 은우야, 대학교는 이 엉아가 같이 못 가줘.. 우리 은우 다 컸으니까 나 없이도 잘 할 수 있지?”

 

“어이구, 걱정해 줘서 고맙네요.”

 

아무 사심이 없이 그저 서로가 지겹고도 우스운 흔한 또래 친구인 것처럼. 더욱 오버해서 형님 행세를 하고 쿨한 척, 네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척을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당연함이었지만.

 

 

 

 

 

 

 

 

 

“중고등학생 때 그렇게 매일 같이 붙어 다녔는데 연락은 왜 끊긴 거예요?”

 

“그게.. 졸업할 무렵에 전 지금 기획사에 캐스팅 돼서 서울로 올라갔고 빈이는 갑자기 유학을 갔어요. 아무리 급하게 갔다 해도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그리고 연락도 뚝 끊어버렸어요.”

 

“그럼 문빈 씨가 일부러 피했을 수도 있는 거네요?”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왠지 모를 확신이 들어요. 제가 찾으면, 잡혀줄 거라는 생각?”

 

 

 

 

 

 

 

 

 

“빈아, 이제 끝났어?”

 

온통 먹빛인 하늘에서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굵은 장대비가 곧 터져 내릴 듯 무거운 구름이 내려앉았지만 습한 공기 사이로 내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번쩍- 멀리서 번개가 친 듯 해 창문을 내다보려다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뭐야. 내가 먼저 가라고 문자 남겼는데 못 봤어?”

 

“봤어. 근데 날씨가 저렇잖아. 너 이런 날씨 무서워하는데.”

 

“무서워 하긴..! 그거 다 어릴 때거든. 좀.. 아무튼. 이제 괜찮아.”

 

“그래. 내가 그냥 기다린 거야. 빈 교실에서 책도 잘 읽히고 좋던데? 아 그리고, 네 책상 조금 삐걱거리길래 바꿔놨어. 우리 반에 하나 남아서.”

 

“..어어, 고맙다. 그래도 무슨 한 시간을.. 나 진짜 괜찮은데.”

 

“..상담은 잘 했어?”

 

“그냥 그렇지. 담임이 말하는 걸 좋아해서 들어주느라 오래 걸렸지 별 거 없었어.”

 

“잘했네. 이제 가자. 곧 쏟아지겠다.”

 

맞아, 정말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비도, 나도.

 

“응.”

 

그 눈빛 때문에.

 

 

 

“내일은 나 상담하는 날인데, 내일까지 쭉 비 온대.”

 

“그래?”

 

“내일도 같이 갈래?”

 

진짜 친구가 하고 싶었음

 

“..그래.”

 

이렇게 신경 쓰면 안 됐어, 은우야.

 

 

 

 

 

 

 

 

 

“저기.. 박 작가. 은우 씨 얘기 아무래도 촉이 오지 않았어?”

 

“그쵸??! 아, 큼... 흠. 그쵸..? 역시 홍 작가님은 알아채실 줄 알았어요. 딱 들어도 어? 느낌 뽝! 필이 촥!”

 

“우리 아무래도 조기종영 당하지 않을 기회인 것 같다. 요즘 시청률 3%대도 무너져서 완전 눈엣가시 됐잖아.. 이거, 대본에 혼 갈아 넣자.”

 

“좋아요. 저도 오랜만에 창작의 욕구가 막 샘솟더라고요. 아까 그 뭐야, 어? 사랑니 얘기랑 버스 얘기, 진로 상담날 얘기.. 하..”

 

“초코우유 잊지 마.”

 

“당연하죠. 아, 달콩이도.”

 

“너무 노리면 안 돼. 거부감 금방 든다. 최대한 사부작 사부작.. 약간.. 은우 씨 속눈썹처럼. 무슨 느낌인지 알지?”

 

“알고말고요.”

 

 

 

 

 

 

-

 

 

 

 

 

 

지난 시간 동안 빈을 떠올린 날들은 다 헤아릴 수도 없었다. 혹여 무엇이 그 애를 서운하게 했는지, 혹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하다가, 돌이켜 보다가, 야속했다가, 무뎌졌다가, 꿈속에서 스치면 다시 문득 아려오던 그 모든 것인 너. 네가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도 한참이나 후에.

 

내가 너를 좋아했구나, 빈아.

 

 

 

 

 

‘야 은우야. 대박 터졌다. 형이 방금 보낸 거 들어가 봐.’

 

“뭔데? ..나 왜 실검 1위야? 이번 주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그거. 티비는 사랑을 싣고 때문에.’

 

“방송한 지 2주가 넘었는데 무슨... 댓글이.. 팔천 개?!”

 

‘여기저기 사이트 합치면 오만 개는 훌쩍 넘을 거다. 너무 설렌다고, 그 후로 어떻게 됐냐고 아주 난리들이야~ 너 데뷔작 <고백>도 팬들이 단관한댄다. 차은우 학창시절 실화가 첫사랑 조작남 도경석 그 자체라고! 이게 얼마만의 실검이냐.’

 

“잠깐만. 그러니까, 이게 재밌어서가 아니라.. 설레서 화제가 됐다고?”

 

‘너도 봤잖냐.. 분위기가 좀.. 내가 봐도 그렇던데? 뭐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어. 이미 방송가에서 브로맨스 요소 끼워 파는 거 흔하고. 아이돌들은 멤버랑 일부러 커플 놀이도 한댄다 야. 이정도 수위로 이만큼 좋은 반응 나온 거 완전 로또야, 로또.’

 

“무슨...”

 

‘아침에 너 어렸을 때 찍은 청량음료, 리마인드 씨에프 제의도 들어왔어. 이거 우연 아니다? 다 나비효과가 돼서 돌아온 거지.’

 

 

나비효과. 그 애의 작은 날갯짓이 돌고 돌아 큰 파장으로 돌아온다. 가까워지려는 움직임도, 멀어지려는 안간힘도 모두 나로 인한 것이었기에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까.

 

 

 

 

촬영 끝나자마자 가봐야 한다며 반가웠다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너를 붙잡고 연락처라도 묻지 않았다면 그냥 이대로 또 멀어질 생각이었을까? 그럼 내가 널 찾아내고 만나도록 기꺼이 허락한 이유는 뭐였을까.

 

마음을 깨닫고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에 우리 사이의 시간은 또 훌쩍 지나있었다. 넌 너무 걱정이 많아, 열여덟 어느 순간에 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뒤적인다. 촬영 날 어색하게 교환했던 번호를 금세 찾고는 한참을 서성이는 손가락이 실수라도 덜컥 해주길 차라리 바랐지만 드라마 같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내가 나의 의지로 해야 하는 일.

 

 

내쉴수록 무거워지는 한숨이 한밤중 벨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

 

 

 

 

 

 

“곧 새 작품 들어간다며. 그거 오디션 할 때부터 떠들썩하던데 결국 네가 캐스팅 됐네. 대단하다.”

 

“다 네 덕이야. 그날 둘이 얘긴 꼭 하고 싶었는데.”

 

“아이, 내 덕은..”

 

“빈이 넌 정말 그대로다. 교복만 입으면 그동안 떨어져 있던 게 긴 꿈이었다고 해도 난 믿을 것 같아.”

 

“넌 더 멋있어졌다. 경석아.”

 

“어?”

 

“왜?”

 

“그 대사 알아? 봤어?”

 

“봤지, 너 나오는 건데. 그것도 데뷔작인데.”

 

 

 

 

 

열아홉과 스물의 경계, 가장 위태롭고 여리던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감당하기 겁이 나 택했던 도망은 거창하고 비련스러웠던 속마음과 달리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날마다 비싸고 쥐콩만 한 한국 반찬을 사다 먹었고, 금방 배울 줄 알았던 언어는 쉬이 붙질 않았으며, 잊겠다 다짐한 그 녀석의 영화를 보며 잠들었다.

 

나는 어서 어른이 되려 서두르다 넘어져 아이처럼 소리 내 서럽게 울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건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는데.

 

 

길고도 짧았던 유학 후 돌아온 나를 반기는 건 길거리마다, 화면마다 온통 보이는 그 얼굴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 눈빛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구나. 나는 네가 기뻐서 울었고, 슬퍼서 웃었다.

 

 

 

 

 

“사실 작가님 연락 받고 고민 많이 했어. 우리가 서로를 떠올렸을 때 한 쪽은 사랑, 한 쪽은 우정이니까. 물론 언제나 도망간 쪽이 사랑이고.”

 

“..나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했어. 그리고 빈이 넌 방송하는 사람도 아닌데,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연락.. 기다렸어? 서운했어?”

 

“아니, 그런 줄 알았어.”

 

“...”

 

“날 생각하느라 내 생각 안 한 거잖아.”

 

 

그때의 내가 너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네가 가고 나서야 알았어. 내가 너를 좋아했다는 걸.”

 

“...”

 

“그리고 너도 날 좋아했다는 걸.”

 

“...”

 

“아무리 기다려도 아깝지 않았던 건, 신경이 쓰였다는 건, 네 눈물이 내 눈물을 부른다는 건, 매일 보는데 궁금하다는 건, 자꾸 자꾸 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는 건, 모두 그 증거였는데. 몰랐어, 네가 처음이라 난.”

 

너의 한 마디마다 그때의 네가 이상기억처럼 시리도록 선명하게 떠올랐다. 빈아, 이제 끝났어? 네 책상 바꿔놨어. 빈아, 방학 땐 뭐 해? 너 이런 날씨 무서워하잖아. 한 10년, 20년 뒤에? 내일도 같이 갈래? 이제 일어나야 돼, 빈아. 아침은 먹었어? 곧 날 거야, 너도. 잘했어 우리 빈이. 빈아. 빈아.

 

빈아!

 

 

 

 

“은우야.”

 

“너무 듣고 싶었어. 그렇게 나를 부르는 거.”

 

“찾아줘서 고마워.”

 

“잡혀줘서 고마워.”

 

 

언제나 같은 곳에 있어줘.

 

 

“늦어서 미안해. 은우야.”

 

“우리, 이제 같이 가자. 어디든.”

 

 

 

이제 언제나 나의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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