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우와 이동민의 우울

2019 여름호
작성자
우주대통합
작성일
2020-11-11 11:14
조회
3

[차은우와 이동민의 우울]

{별}

 

 

 

 

 

 

 

 

 

 

“나 유학 가려고, 독일로.”

 

“아 진짜? 연극 쪽으로?”

 

“당연하지! 우리 약속했잖아, 꼭 좋은 배우와 좋은 연출이 되기로.”

 

 

 

 

 

.

.

.

잠에서 깼다. 꿈.. 그래, 빈이가 유학을 간 건 5년이 지났다. 카톡, 해볼까? 오늘 니가 꿈에 나왔어. 유학 간다고 나한테 밝게 얘기하던 그때 꿈을 꿨어. 잘 지내? 공부하는 건 좀 어때. 너는 뭐든 즐겁게 하니까 잘하고 있을 거라 믿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까만 화면만 바라봤다. 역시 못하겠어. 빈아, 나는 잘 안 돼.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답답해. 병원에 갔더니 욕심이 많고 급해서 그렇대. 욕심이 많으면 안 되나, 빨리 성공하고 싶은 게 나쁜가, 약으로 뭐가 해결이 되나..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아픈 게 없어지고, 나아가는 게 눈에 보이잖아. 근데 마음이 아프면 아픈 것도 눈에 보이지가 않아서, 나 스스로도 내가 아픈 걸 모르더라. 사람은 왜 이렇게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은 동물일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다.

 

삐빅- 삐빅-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사당역. 4시30분.]

 

오디션이 오늘이었나? 그제야 핸드폰을 눌러 날짜를 보고, 왔었던 문자를 확인한다. 가지 말까. 줄거리도 분위기도 꽤 마음에 드는 연극이었지만, 연출의 의도가 좀.. 안 맞을 것 같다. 연출이랑 안 맞으면 너무 힘든데. 잠시 눈을 감았다. 12시간을 넘게 잤지만 또 졸음이 몰려온다. 이대로 자 버릴까. 뭐라고 둘러대지? 까먹었습니다. 큰일 날 소리. 저랑 연출 분이 안 맞을 거 같아요. 건방지다. 우울증이 심해서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습니다. 본 적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먼저 오디션을 본 곳에서 연락이 와서 오늘 오디션 불참입니다, 죄송합니다. 무난하다.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문자를 보낸 후 전원을 꺼버렸다. 형식적인 답장은 확인할 필요 없다.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안개로 가득 찬 것처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무슨 생각을 한다. 제발 멈춰.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다.

 

 

 

 

 

눈을 떴다. 투명한 창문 너머로 달이 보였다. 별은 없다. 하늘에 별이 안 보이게 돼서 사람들이 간직한 별들도 안 보이는 건가.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가,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려고 핸드폰을 켰다.

 

띠링-

 

문자음이 울린다. 아까 오디션 측에 보낸 문자의 답장이겠지. 거슬리게 떠있는 알림을 지우려고 문자를 확인했다.

 

[다른 작품을 하게 되신 건가요? 연출님께서 배우님과 꼭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하세요. 저희랑 만나서 일정 조율을 해보는 건 어떠세요?]

 

아.. 예상 밖의 전개.. 이 오디션은 지원한 게 아니라 프로필을 봤다면서 먼저 연락이 온 거였다.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연출이 같이 하고 싶어 한다며 붙잡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해보고 싶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선뜻 답장을 하지 못하고 시선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괜히 또 눈물이 난다. 연기나 공연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불꽃, 내 열정은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대단하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그렇다는데 어떡하겠어. 근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원하는 작품마저 피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답답하다.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지만 밤바람이 시원하다. 방충망도 열어 버리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봤다. 달이 보이고, 별도 보였다. 이상하다, 이 동네에서 별을 본 적이 없는데. 아님 새로운 인공위성? 별이었으면 좋겠다. 꼭 별이었으면 좋겠다. 바람을 가득 담아 네이버에 인공위성과 별의 차이점을 검색했다. 움직임이 보이면 인공위성? 좋아, 제발 별이어라. 아예 창틀에 올라 앉아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걸 뚫어져라 관찰했다. 갑자기 집착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건 별이어야 한다. 눈도 몇 번 안 깜박이고 5분 정도 관찰한 결과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별이다, 진짜 별.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난다. 일단 만나기라도 해보자.

 

[알겠습니다 언제 뵐까요?]

 

답장을 보냈다. 전송을 누르기 직전까지 망설임이 날 감싸지만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렸다. 후우... 잘한 거야.

 

띠링-

 

답장이 왔다. 이 시간에?

 

[12시 넘었으니까 오늘 오후 6시 어떠세요?]

[네 가능합니다]

[오실 장소 보내드릴게요.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답장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약도를 보내주고 더 이상 문자는 오지 않았다. 이 새벽에 칼답이라니, 소름인데.. 그래도 어떻게 보면 내 문자를 기다렸다는 거니까 기쁘기도 하다. 마음이 편하다.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도 마음이 편해지니 또 잠이 왔다. 언제 눈을 감았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망했다. 창문을 그대로 열고 잔 탓에 여기저기 모기에 물려 안 간지러운 곳이 없다. 모기들 포식했겠네. 마른세수를 하며 일어났다. 준비하고 나가야지.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아담한 카페였다. 조용히 얘기 나누기 좋겠다. 음료를 시키고도 30분이나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한 쪽에 꽂혀있는 책에 눈길이 갔다. 그 중 책등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책을 꺼냈다. 특이하네. 적당히 가운데를 펼쳐 봤다. 글귀가 적힌, 흔히 말하는 좋은 말이 적힌 책. 그 자리에 서서 내용을 대충 읽어갔다. 음... 나랑은 안 맞는다. 꽤 여러 장을 넘기면서 이것도 읽어보고 저것도 읽어보고 했지만 마음에 드는 말은 없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겨우 10분 지났네. 카페는 앤틱하고 깔끔했다. 인스타 감성. 뭐 좋아. 인스타 감성 좋지. 카페 안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문에 달린 종이 딸랑인다.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저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이제 15분.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불안함이 올라오는 것 같다.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고, 눈도 좀 시린가. 아주 천천히 심호흡했다.

 

“차은우씨.”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급하게 돌아봤다. 어..?

 

“빈아!”

 

조용한 카페 안이 울렸다. 너무 놀라서 크기 조절이고 뭐고 약간 삑사리까지 났다.

 

“이동민 여전히 잘생겼다. 예명은 누가 지은 거야?”

 

빈이가 한국에 돌아왔어? 근데 나한테 왜 연락을 안 했지? 말이 안 나왔다. 벙쪄서 대답도 없이 애매한 자세로 서 있으니, 빈이가 머쓱하게 목을 긁으며 자리에 앉는다.

 

“동민아, 일단 좀 앉아.”

 

“어....”

 

빈이 얼굴에서 눈을 못 떼고 털썩 주저앉았다. 뭐라 말을 해야 되지?

 

“많이 놀랐지..? 변명을 하자면, 연락하려고 했는데 이번 작품 준비 때문에 너무 바빠서.. 미안해, 어쩌다 보니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돼 버렸네.”

 

빈이가 연출인가? 내가 지금 빈이 앞에서 연기를 할 상태인가? 할 수 없어. 못 하겠어. 어떡하지.

 

“그렇게 놀랐어? 무슨 말 좀 해봐.”

 

“너.... 니가, 연출이야?”

 

“응, 그래서 너 캐스팅하겠다 했어.”

 

“아..”

 

“동민아, 너 놀라서 그런 거 아니지. 작품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일정이 걱정돼서 그래?”

 

“아니..”

 

“배역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럼, 나랑 작품 하는 게 싫어?”

 

허공을 헤매던 시선을 잡아 빈이를 봤다. 너랑 작품 하는 게 싫으냐고?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는 싫어. 당연히 싫지. 아니, 잘 보이고 싶은 상대 앞에서 지금 이 정신 상태로 연기를 하라면 누가 좋아?

 

“너.. 진짜 나랑 작품 하는 게 싫은 거구나?”

 

빈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내가 빈이를 저런 얼굴을 하게 만들다니. 미쳤구나, 정신 차려. 5년 만에 본 빈이한테 밝게 웃으면서 안부를 묻고 껴안아도 모자랄 판에. 정신 차리자.

 

“동민아, 우리 그럼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상처 받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빈이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뿌리치고 가버렸을 텐데, 너무 고맙게도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주었다.

 

“우리, 술 한 잔 할래?”

 

빈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우리는 말 없이 카페를 나와 적당한 곳을 찾아 주변을 걸었다. 근데 여기 진짜.. 술집이라 할 만한 데가 없다. 어떻게 술집이 없어? 말이 돼? 상황을 망치려고 누군가 작정을 했다. 가령 저 하늘 위에 있다는 신이라든가.

 

“동민아.”

 

뒤에서 걸어오던 빈이가 날 불러 세웠다.

 

“어?”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자.”

 

빈이가 고갯짓으로 자기 옆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아, 그래.”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빈이를 따라갔다. 예쁜 인테리어의 파스타 집. 아직도 남자 단둘이 오면 이상하게 보는 그런 곳. 지금의 상황과도 어울리지 않는 그런 곳.

 

“구석진 자리였으면 좋겠어요.”

 

빈이가 웨이터에게 부탁하고 안쪽 자리로 안내 받았다.

 

“와인 괜찮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빈이는 주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손을 든 건 빈이지만 버릇대로 주문은 내가 한다.

 

“..그리고 와인도 한 잔씩,”

 

“아니 병으로 주세요. 두 병. 각자 한 병씩. 하우스 와인이면 돼요.”

 

와인을 각자 한 병씩이라니.. 나도 웨이터도 당황했지만, 빈이의 단호한 말투에 눈을 마주치고 멋쩍게 웃었다.

 

“네, 한 병씩 주세요..”

 

웨이터가 가고 빈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붙잡은 건 난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 보내면 안 될 거 같아서 잡은 건데, 이제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밝게 웃으면서 안부를 물어? 아니 또라이 같으니 그만두자. 와인을 원래 병째로 마셔? 무슨 헛소리야. 하아...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 우리는 계속 말이 없었다. 와인이 나오고 음식이 나오고, 빈이 혼자 와인 한 병을 음료수처럼 다 마실 때까지 한 마디도 못 했다. 결국 다시 입을 연 건 빈이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랑 왜 작품 하기 싫은 건데? 내가 최근 1년 동안 연락 없어서 화났어? 근데 그건 너도 똑같잖아. 이제 내가 싫어? 아님 다른 새끼 생겼냐?”

 

“아니, 아니야. 진정해 빈아, 나는 너 말고 없어.”

 

“진정하게 생겼어?”

 

그러게 말이다. 진정하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말이다. 빈아, 니가 싫은 게 아니야. 나 자신이 너무 못난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빈이한테 숨길 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기가 어렵다. 무너진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가 너무 어렵다.

 

 

 

 

 

 

 

 

 

 

아침 햇살이 눈에 제대로 내리쬈다. 아.. 머리야.. 눈이 부셔서 깼지만 그런 거 모르겠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여긴 우리 집인데.. 어제 어떻게 됐더라? 설마 필름이 끊겼나?

 

“이동민 일어나.”

 

어제 기억을 열심히 되짚어 보고 있는데 빈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너무 놀라 머리가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방문에 빈이가 기대 서 있다.

 

“걱정 마, 너 어제 실수 안 했어.”

 

잔뜩 심각한 표정을 한 나를 빈이가 안심시켰다.

 

“실수는 안 했고, 말은 무진장 많았어. 울기도 엄청 울었고.”

 

“아.... 그렇구나.”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했을까. 실수는 안 했다는 거 보니, 오해를 풀었나?

 

“동민아.”

 

“어?”

 

“힘들면 좀 쉬어가도 돼. 뭐가 널 그렇게 몰아세웠을까 생각해봤는데, 나 때문인가 싶어서.. 미안해. 나도 유학 오래 해놓고 별 거 없어. 어쩌다가 그냥 괜찮은 기회를 얻어서 정말 작게 공연 하나 하게 된 거고. 진짜 일도 안 풀리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서 울기도 하고, 뭐 결국 포기는 안 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건 너랑 한 약속 덕분이거든.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좋은’이라는 기준이 다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한테 서로 좋은 배우와 연출이 되면 안 될까? 물론 이것도 내 욕심일 수도 있지만..”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빈이를 안았다. 아 어제 새벽에 별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가 있었다. 넓은 하늘에 아주 작게 빛나는 별이 예뻐서, 태양이 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게 대단해서, 빈이 같아서, 나이고 싶어서. 너는 언제나 나의 별이었다. 지금도. 근데 나도 너의 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혼자 바보처럼 내가 빛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빛나게 해줘서 고마워.”

 

“아, 그래.. 내 말 동의해준 거지?”

 

“그럼. 서로한테 좋은 배우, 좋은 연출이 되자. 그리고 너 때문은 전혀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마.”

 

“알았어. 근데 더우니까 이제 떨어지면 안 돼?”

 

삑-

 

책상에 놓인 리모컨으로 손을 뻗어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켰으니까 좀 더 이러고 있자.”

 

빈이가 살풋 웃는 소리가 들리면서 허리를 안아왔다. 사람은 참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고 솔직하지 못한 동물이다. 나한테 니가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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