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2019 여름호
작성자
풍선
작성일
2020-11-11 11:19
조회
4





“베쌤!”

“너네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왜요~ 완전 잘 어울려요!”




‘베이비 쌤’의 준말, ‘베쌤’ 별명의 당사자인 빈은 심드렁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있는 대로 부글부글 끓었다. 차은우 이 새끼 때문에 이젠 학생들까지 그렇게 부르잖아.‘베쌤, 베쌤’ 하며 자신을 쫓아다니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귀를 후비적거리며 손을 휘휘 젓는 빈은, 여전히 속으로 은우의 욕을 늘어놓았다.


A 베타 고등학교의 체육을 담당하고 있는 빈은, 공교롭게도 오메가였다. 남들보다 늦은 2차 발현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그저 베타겠거니 했지만, 고2의 끝 무렵 한 번의 큰 열병 후 결론이 내려졌다. ‘오메가네요.’ 의사였던 사촌 형의 담담한 말투에, 집 안은 경사 분위기였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오메가라니! 그 후로는 금지옥엽, 우리 집의 자랑, 오메가 문빈! 현수막까지 걸 뻔했던 빈의 아버지를 빈은 무릎까지 꿇어 빌었다. 대대로 알파만 낳아왔던 두 부부는 남들보다 오메가에 대한 환상이 많았던 듯싶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의 애칭이 ‘아가’가 되어버린 빈은, 고3 소꿉친구였던 은우에게 들키면서 이 지경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너, 씨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뭐가.”

“뭐어가아? 죽고 싶냐? 맞을래?”




시뻘게진 얼굴로 식식대는 빈은 은우에게 좋은 구경거리였다. 둘 다 야자 감독이 없는 날이면 항상 빈이 바로 옆에 있는 은우의 집까지 찾아와 한참을 그렇게 신경질만 내고 가버리곤 했다. 은우는 빈이 조심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페로몬 향을 흘리면서, 알파만 있는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다니. 아줌마 아저씨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오늘도 어김없이 컵라면이니 캔맥주니 이것저것을 가지고 은우의 집으로 쳐들어온 빈은 아무렇지 않게 은우의 침실에 밥상을 펴고 그 위에 그것들을 늘어놓았다. 뭐해, 안 앉아? 아니면 물이나 끓이고 와~ 아까는 그렇게 짜증만 내더니, 금방 기분이 풀려 헤헤 웃는 낯이 참, 다른 의미로 보기가 싫었다.




“커피 포트 주방에 있어.”

“그래서?”

“가서 네가 끓이라고.”

“왜? 네가 맨날 해줬잖아.”

“…….”




할 말이 없어 쩝 입맛을 다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부터가 너무 오냐오냐 했구나…….


은우와 빈의 학교는 베타 고등학교지만, 오메가 교사를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히트 사이클 주기에 맞추어 휴직을 할 수도 있었고, 항상 상비약이 구비되어 있어서 빈은 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이 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또 다른 문제가 많았다. 교사들 중의 과반수 이상이 알파라는 것. 그 중에 하나는 자신의 친구라는 것이, 빈은 꽤 마음에 걸렸다. 아마 은우는 자신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빈은 사실 항상 페로몬을 감추기 위한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유독 은우에게만 그것이 소용없는 것 같았지만.

빈은 이상하게 은우의 집에 갈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원래 알파 향이 이렇게 진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건 은우도 마찬가지지만. 빈이 들렸다 간 장소를 은우는 귀신 같이 알기도 했다. ‘여기서 자몽 향 나지 않나요? 아, 베쌤 있었나?’ 다른 알파들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은우는 알았고, 빈이 알았다. 둘 다 무언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은우의 러트 시기에 맞추어 터져버렸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복도서부터 은우의 페로몬 향이 진동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은근한 나뭇잎 향만 났을 것인데 흙 냄새, 통나무 냄새, 솔방울 냄새 같은 것들이 온통 뒤섞여 빈의 콧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거 뭐야, 왜 이래? 누구지? 그렇게 고민하던 새에 어딘가 익숙한 향 하나가 느껴지며 그것이 은우의 페로몬인 것을 알았다. 태어나서 은우를 알던 시점부터 17년동안 단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했던 은우의 향이었다.




“차쌤 아프신 것 같던데.”

“네? 차쌤이요?”




흡연실을 갔다 오던 빈은, 교무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던 선생님들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쩐지, 교무실에선 전과 다르게 은우의 페로몬이 짙게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요?”

“아까 조퇴하셨어요. 아, 맞다. 두 분 서로 옆 집이랬죠? 이따 문쌤이 한 번 가 봐. 상태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그래요……? 진짜 한 번 가 봐야겠네.”




걱정이 태산인 빈의 얼굴에 옆에 있던 여자가 깔깔대며 웃었다. 두 분 되게 돈독하신 거 아세요? 그 말에 빈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알고는 있었고, 느끼고 있었지만 괜히 긍정하기 싫어서 둘 중 누구도 꺼내지 않은 말을, 제 3자가 들쑤셔 불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은우가 제 옆에 없었지만 괜히 어색해지고 불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싫어서 둘 중 누구도, 아무도, 건들지 않았던 거겠지. 빈은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했다. 은우와 빈의 관계성은 친구라는 선에서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누가 한 번 톡 치면 넘어갈 선이었지만 아무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 무서웠다. 언제든 본능에 움직일 수 있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성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빈이 베타였을 때는 더 심했다. 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현실이 너무 무겁고. 입안이 까끌해졌다.

오늘은 은우의 집에 가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이미 은우에게 괜찮냐는 문자를 보낸 후였지만 말이다.




“얘 진짜 많이 아픈가.”




연락을 한 번도 씹은 적 없었는데. 결국 야자 감독까지 바꾸고, 빈은 은우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고,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다.


발딱 벗고 누워 있는 곳은, 은우의 침대였다. 뭐야, 어제 뭐한 거지? 희미한 기억의 틈새에서 빈은 이것저것…… 들이 떠올랐다.

은우에게 매달리며 미친듯이 소리나 지르던 자신의 모습에, 빈은 어지러워 차라리 그냥 기절하길 바랐다. 어디서 들은 적은 있다. 제대로 된 알파의 페로몬에 취하면 그렇게 된다는.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이상했다. 은우는 평소에도 페로몬 갈무리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요 며칠 좀 힘들어 하긴 했어도……. 아직까지 이 상황을 세상 모르고 잠에 푹 빠져 있는 은우 덕에, 빈은 허리가 빠질 것 같았다. 분명 그가 일어나면 큰일날 상황이 분명할 텐데 빈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 것인지…… 여튼 빈은 얌전히 그의 옆에 누워 그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얼른 일어나. 우리 할 얘기 많잖아, 은우야.




“뭐야, 너.”

“뭐가.”




빈이 눈을 뜬 이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쯤 은우는 눈을 떴다. 런데 일어나자마자 너 뭐냐니…… 이거 개새끼 아냐? 빈의 머릿속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미치겠다, 눈물 날 것 같아.




“니 나랑 잤잖아.”

“뭐?!”

“존나 개새끼 아냐! 개새끼야!”




현직 체육 교사 능욕 개쩌네, 차은우. 은우는 빈에게 처맞는 동안 베개에 정말 돌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알았다. 이불에 가려진 하반신은 뭐,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빈이 베개를 움켜지고 그걸 내려칠 때마다 움직이는 팔근육에 꼴려서 발딱 섰다는 것을 은우는 빈에게 절대로 들킬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똘똘이는 무사치 못할 게 백 프로니까……!




“야, 야! 진정 좀 해!”

“내가! 씨발! 진정하게! 생겼냐!!!!!”




한 순간에 진지했던 다큐멘터리에서 시트콤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둘 다, 괜찮았다. 어차피 섹스까지 한 마당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은우와 문빈은 서로의 첫사랑이고, 또 지금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미쳐 날뛰는 빈을 휙 끌어다 안았다. 일단 진정해, 할 말 있으니까.




“……뭔데.”

“너 일단 집에 가.”

“뭐야?!”




이 새끼가…… 아직 정신을 덜 차렸네.




“더 처맞고 싶다고?”

“일단 가!”

“왜, 개새끼야!”

“내가 갈게.”

“어딜.”

“내가 간다고, 너한테. 그러니까 가 있어 봐.”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

“아니, 아. 우리 둘 다 몰골 말도 아니고…… 진짜 진지하게 할 말도 있고…….”




은우의 새빨간 얼굴과 귓바퀴, 또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빈은 그제서야 진정했다. 새끼, 고백할라고? 내가 받아줄 것 같냐? 당연하지! 하! 크게 웃은 빈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하나씩 집으러 갈 때마다 은우의 시선의 끝이 자신을 향했다. 나 관종인가, 쟤가 저러고 쳐다보는 게 왜 이렇게 좋지? 여태 그랬으면서 인정하자 마자 폭풍처럼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속옷 없이 바지만 쑥 입은 빈은 그걸 가지고 은우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속옷을 걸었다.




“이건 이따 찾으러 올 거니까, 놔두고 갈게?”




미친 문빈 여우 같은 새끼…….




“여보세요?”

‘집 앞이야, 나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생각했다.

집 앞 카페에 도착한 둘은 아무 말도 못했다. 막상 보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처음의 그 황당함, 당황스러움, 미안함, 고마움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질 않아서 그런 것인 지, 그것도 아니면 할 말은 다 정리가 되었는데 얼굴을 보니 할 말들이 목구멍을 넘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린 건지…… 혹은 모두 다 해당되는 건지. 입을 먼저 뗀 것은 빈이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

“너 어제 러트였지?”

“갑자기 왜?”

“아니, 너 원래 그런 거 관리 잘 하는데…… 들어 봐.”




요즘 너 힘들어하긴 했는데, 나도 진짜 힘들었거든? 너랑 나랑 유독 서로 향 같은 거 잘 느꼈잖아. 이상하게 옆에 없으면 좀 아프고 힘들기도 하고. 그거…… 그러니까, 이거 혹시.




“짝이라고?”

“그냥 짝, 말고…….”

“운명의?”

“으응.”

“아, 그렇게 대답하지 마. 꼴리니까.”

“미친 새끼야, 제발 1분만이라도 진지하자.”

“아, 알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그거라고? 근데 그거 원래 보자 마자 안다매.”

“나두 몰라, 내가 발현이 늦어서 이런 것도 늦는 거일수도 있잖아…….”

“확실히, 좀 이상하긴 했어. 어제 나 약도 다 챙겨 먹었는데 아침에 네 향 맡자 마자 그랬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뭘?”

“미친 진짜. 사귈 거야, 말 거야. 니 나 따먹고 버리냐?”

“아니, 말하는 게 뭐냐, 그게!”

“맞잖아!”

“아냐. 아니라고.”

“자꾸 떠보게 할래? 너 내 눈 보고 똑바로 말해!”




은우의 두 볼을 붙잡은 빈의 손바닥은 땀이 흥건했다. 그게 귀여워 은우는 푸슬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렇게 귀여운데, 말할 수 밖에 없잖아.




“사랑한다고.”




*




은우와 빈이 사귄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고, 또 며칠 전부터 ‘베쌤’이란 별명은 곧 쑥 들어가 버렸다. 아무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베쌤, 끝나고 시간 있어요?”

“차쌤, 제발 그 호칭 좀 어떻게 할 수 없나요?”

“그럼 베이비라고 부르게 해주던가.”

“아니, 씨발.”




썩어가는 얼굴로 은우를 지나쳐 버리는 빈을 보고 은우는 생각했다. 진짜 놀리는 맛 난다니까.




“점심 뭐 먹을 거냐?”

“몰라, 아무 거나.”

“그래, 그럼 아무거나. 짱개 시켜 먹을래?”

“우웁.”




빈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는 은우에 얼굴이 심각해졌다. 야, 뭐야. 너 아파? 왜 그래?




“아니, 짜장면…… 생각하자 마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진짜? 아픈 거 아니지?”

“아냐, 진짜로.”

“진, 우웁.”




이번엔 반대로 빈이 헛구역질을 했다. 급식실 근처를 지나가던 빈은 코끝으로 타고 오는 음식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니, 잠깐만.




“아니, 설마.”

“은우야.”

“미쳤다.”



진짜 베이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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