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해

2019 여름호
작성자
사런
작성일
2020-11-11 11:44
조회
5


 

 

평소처럼 다정하게 불러오는 목소리에 평소처럼 적당히 대답하였더니, 은우는 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를 해왔다. 나는 그제야 은우와 눈을 마주쳤다. 첫 키스 후 이러는 건 무슨 변덕인지.

 

 

“갑자기 왜?”

“…”

“…”

“…”

“왜냐니까?”

 

 

헤어지자고 했으면 이유도 재깍 튀어나와야지. 답지 않게 뜸을 들이던 은우의 입에서 나온 이별의 사유. 그것은 나로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너 나 안 좋아하잖아.”

“…”

“그동안 고마웠어. 나한테 맞춰줘서.”

 

 

내 머리를 헝클이고 떠나는 은우에게 나 머리 만지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않느냐고 짜증을 낼 수도, 가지 말라고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저 은우가 마지막에 짓고 있던 표정만 반복해서 떠올렸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입꼬리만 간신히 올리며 웃으려 애쓰던 불쌍한 표정.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반 년간 이어진 차은우와 나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

 

 

 

'불알친구'의 어원이 불알 두 쪽처럼 가까운 친구인지, 서로의 불알을 본 친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차은우는 나에게 둘 다 해당하므로 불알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ㅡ후자의 상황은 목욕탕에서 이루어졌다.ㅡ 그런 은우가 어느 날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오는데 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고백, 거절, 절교.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와 이 루트를 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은우와 연인이 되어준 게 실수였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법은 알아도,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숨기는 법은 몰랐으니까.

 

은우는 단 한 번도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한 적이 없었고, 그럼에도 나를 알뜰살뜰 챙기며 가벼운 스킨십도 해왔다. 나를 가지고 은우 혼자 연애를 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관계에 은우도 지쳤던 모양이고, 그래서 헤어졌다.

 

네가 하고 싶어 했던 사랑도, 내가 지키고 싶어 했던 우정도 다 깨져버렸네. 씁쓸했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늦잠이 일상인 나를 전화로 깨워주던 은우가 이제 없을 뿐이다. 버스에서 졸던 나에게 학교에 도착했다고 알려주던 은우가 이제 없을 뿐이다. 몇 분이라도 더 자느라 아침을 거르는 내가 허기질까 봐 빵과 주스를 사주던 은우가, 명찰이나 넥타이를 깜빡하고 챙기지 않은 나에게 자기 것을 빌려주고 대신 벌점을 받던 은우가, 매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 길에서 함께 떠들며 걷던 은우가 이제 없을 뿐이라고.

 

 

 

-

 

 

 

달라질 게 없기는 개뿔이다. 은우와 헤어진 바로 다음 날, 나는 보기 좋게 지각을 했다. 등교 시간이 8시 30분까지인데 눈을 뜨니 8시 30분인 것을 보고 어찌나 등골이 오싹하던지. 이전엔 은우가 일어나야 할 시각에 내가 받을 때까지 전화로 깨워 줘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차은우 그 자식이 나를 자기 없으면 사람 구실도 못 하게 만들려고 작정했었네. 용돈이 떨어진 탓에 점심시간까지 빵 쪼가리 하나 먹지 못하고 주린 배를 잡고 버티며 한 번 더 은우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고작 늦잠과 공복 때문에 이별을 아쉬워하다니. 은우한테 미안한 줄 알아라, 문빈.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냈는데, 혼자 걷는 하굣길은 꽤 지루했다. 은우와 함께 걸을 땐 뭐가 그렇게 즐거웠을까. 대부분 내가 학교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시시콜콜 떠들어대면 은우는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던 것 같다. 은우야, 나 오늘 지각했다? 네가 안 깨워줘서 그렇잖아. 근데 앞으론 혼자 잘 일어나도록 노력해보려고. 잘 생각했지? 그리고 오전 내내 엄청 배고팠는데 급식에 두부 나왔더라. 완전 짜증 나. 두부는 좋은 음식이지만 나와는 맞지 않아. 넌 그거 먹었냐? 아, 그리고 2동 옆에 사는 고양이 엄청 살쪘더라. 애들이 매점에서 산 거 많이 먹이나 봐. 사람이 먹는 거 주면 안 좋은데, 그치?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상이 없으니 속으로 수다를 삼켰다. 어느새 도착한 아파트 앞에서 나는 또 은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여기서 키스했는데. 그 생각이 들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아마 화르르 붉게 타올랐을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탓이었다. 이럴 거면 키스는 왜 했냐. 나 그거 처음이었단 말이야. 못된 차은우.

 

억울하다. 왜 너의 감정과 너의 결정으로 인해 나는 속수무책으로 너를 잃어야 하는 건지. 처음부터 네 마음을 거절했더라면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건지.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지를 골라볼 수 없는 현실이, 네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아쉽다. 네가 보고 싶다.

 

 

 

-

 

 

 

이틀 연속으로 지각을 하니, 이러다 졸업할 때까지 지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다. 헐레벌떡 뛰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며 책상에 엎드리는 나에게 짝꿍이 깐족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문빈, 오늘도 늦었냐? 차은우 그 새끼가 이제 안 깨워주나 보다?”

“은우한테 새끼라고 하지 마, 새끼야….”

 

 

지각은 내가 했는데 왜 지가 차은우를 욕해. 나도 몇 번 안 씹었는데. 이 와중에 은우를 향한 별것 아닌 비속어조차 듣기 싫은 것을 보니 난 은우를 미워하긴 틀려먹은 것 같다.

 

 

 

-

 

 

 

이별 사흘째인 지금. 친구들이 생각해도, 내가 생각해도 내 행동이 이상하다. 은우네 반 앞을 지나칠 때마다 굳이 한 번 기웃거려 은우의 얼굴을 확인하고, 급식실에선 은우는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고 있나를 확인하고, 복도에서 은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은우의 뒤통수를 눈으로 좇았다. 그때마다 심장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해소되지 않았다. 오늘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뭐 하냐’ 와 ‘어디 보냐’였던 것 같다. 심지어는 ‘좋아하는 애라도 찾냐’는 말도 들었다. 좋아하는 애? 그래, 내가 마치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짝사랑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도 잠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 떠올렸더니 폭포 아래에 서서 물을 맞는 것처럼 감정이 쏟아졌다. 사실 은우의 스킨십은 시간이 지날수록 싫지 않았고, 은우 같은 애가 나름대로 애인이라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 마음이 젖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흥건해졌고 그걸 이제야 알았다. ‘지나고 나서야 사랑임을 알았다.’는 말을 비웃은 적이 있다.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나 생각했는데, 내가 그 짝이었다.

 

 

 

-

 

 

 

그럼에도 달라는 것은 없었다. 내가 은우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상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은우에게 고백을 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은우는 만약 그걸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은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진 거니까 기뻐할까. 그동안 힘들게 해놓고 갑자기 왜 이러냐며 경멸할지도 몰라. 가슴이 답답하다.

 

은우를 향한 마음을 당사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전달을 해야 하는지 삭혀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며칠의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오래간만에 정상적으로 등교하는 것에 성공한 날이었다. 은우에게 애틋한 마음을 느끼며 동시에 은우가 없는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스스로를 우스워했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 고민이라곤 차은우뿐이었다.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는 내 옆자리에 같은 반 친구가 앉아 킥킥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야, 빈아. 차은우 있잖아. 옆 반 차은우.”

“…어어, 은우. 왜?”

“너 걔랑 사귀냐?”

“뭐?!”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물어보는 것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후자인 것 같았다. 질문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었으나 무언가 알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빨리 어떤 말이든 지껄여야 했다.

 

 

“무슨 개소리야 그게.”

 

 

이미 늦은 듯하였으나 어쨌든 침착한 척은 해야 했고 부정도 해야 했다. 고작 이 한 마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꾸였다.

 

 

“준홍이가 봤다던데? 너네 뽀뽀하는 거.”

“…어?”

“요즘은 잘 안 붙어 다니니까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네가 당사자니까 한 번 물어본 거야. 반응 보니까 맞나 보네~ 애들 사이에 소문 다 났어.”

 

 

그제야 친구의 목소리에 담긴 조롱의 뉘앙스를 캐치할 수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싹 빠져나가는 듯했다. 나 지금 표정 어떻지? 자세는 어떻게 하고 있지? 몸이 너무 떨리는 것 같은데 남이 볼 때도 그런가? 침착한 척을 위한 모든 것들이 그저 실패하고 있었다.

 

 

“나한텐 언질 좀 해주지 그랬냐. 이 형은 다 이해했을 텐데~”

 

 

친구는 내 어깨를 툭 치더니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이해고 자시고를 해줬을 만한 사람의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소문이 났다고…. 불안감이 해일처럼 나를 덮쳐왔다.

 

 

“어디 갔다 왔냐? 찾았잖아.”

“어, 매점.”

 

 

나와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나를 은근히 배척하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복도에선 모르는 아이들까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근 거렸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4교시 때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니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혼자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평소 같았다면 누군가 깨워주었을 텐데. 급식실에 들어서고, 몇백 명의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내 소문을 알고 있는 걸까. 식사 중 딱 한 명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뿐이었는데 전교생이 나를 쳐다보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오늘은 꽤 좋아하는 메뉴였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전부 버리고 조퇴를 했다. 귀가 후, 점심을 조금밖에 먹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전부 토해내고 휴대폰을 끄고 이불 속에서 계속 떨기만 했다.

 

소문이 어떻게, 어디까지 난 걸까? 준홍이는 우리가 그러는 걸 어디서 본 거지? 우리 집 앞? 학교 화장실? 소문은 왜 냈을까? 차은우도 소문난 거 알고 있겠지? 걔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늘 그랬듯이 의연하게 행동할까? 나는 그러지 못하겠는데.

 

그 순간, 나에게 내가 은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걱정될 뿐이었다. 나는 흔하디흔한 10대 남학생이고, 학교생활은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이렇게 겁에 질려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

 

 

 

부모님께 ‘저 학교에 게이라고 소문났어요.’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꾀병을 부리고 3일을 결석했다. 오랜만의 등굣길이 멀고 무섭게 느껴졌다. 3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걱정만 태산같이 하느라 수척해진 몰골로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야, 문빈! 아팠다며! 이제 괜찮냐?”

“어, 어…? 어어….”

“메시지는 왜 확인 안 했어!”

“휴대폰을 꺼놔서….”

“야, 얘기 들었다. 소문 그거. 차은우가 억지로 그랬던 거라며?”

“무슨 말이야 그게?”

“차은우가 지 입으로 그랬어. 지가 문빈 약점 잡아서 억지로 사귀었던 거라고. 야, 너 힘들었겠다. 오해였다고 그때 말을 하지 그랬냐!”

 

 

뭐라는 거야….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강제적이진 않았어. 약점 같은 거 없어. 은우는 그런 애가 아니야. 오해는 무슨 오해. 아닌데. 다 아닌데.

 

친구 놈이 지껄이는 헛소리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다시 나를 좋아해 주는 듯한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게이라고 생각할 때와 지금의 태도가 다른 그들에게 이질감이 들고 전부 가식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럼에도 집단에 속해있는 이 분위기가 너무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은우가 나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좋아한다는 마음도 전하지 못한 채 은우가 희생하는 걸 방관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은우는 직접적인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 후로 혼자 다녔고, 자주 가십거리가 되었다. 나는 고작 몇 시간 겪었던 것만으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은우에 대한 죄책감이 커져갔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별안간 은우를 마주쳤다.ㅡ은우와 나는 바로 옆 반이다 보니 같은 화장실을 썼다.ㅡ 헤어진 후 처음으로 단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이었다. 은우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조차 너무 오랜만이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차은우.”

“응, 빈아.”

“너 왜 그랬어? 왜 애들한테 거짓말했어? 왜 너 혼자…”

“거짓말 아니잖아.”

“뭐?”

“…너는 억지로 나랑 사귀어준 게 맞잖아.”

“…”

“빈아, 걱정할 것 없어. 괜찮아.”

 

 

아니라고 부정하기 전에 뜸을 들이는 사이, 그렇게 나를 달랜 은우는 손을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당장 은우를 붙잡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은우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염치가 없어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며칠 뒤, 나는 은우의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썩 좋은 소식은 아니었고, 심지어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야, 차은우 자퇴한다더라?”

“…뭐라고?!”

“오늘 학교 와서 자퇴서 제출하고 바로 갔다던데? 근데 자퇴하려면 부모님 면담해야 하지 않나? 아닌가? 잘 모르겠다. 걔 등수 높았던 것 같은데 아깝네~”

 

 

나의 청력을 의심해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자퇴? 혹시 소문 때문에? 수업이 시작하기 전, 은우네 반 뒷문에서 기웃거려 본 결과 은우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은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꽤 오랫동안 은우와 연락 한 통 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엔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야 너 자퇴해?]

[왜??]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며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은우의 자퇴 소식밖에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판사가 될 거라고 했잖아. 물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서도 판사가 될 수는 있지만, 네가 밟던 엘리트 코스를 계속 밟는 쪽이 수월하잖아…. 하교하자마자 빠져있던 정신을 챙기며 은우에게 몇 통의 메시지를 더 보냈다.

 

 

[자퇴 하지 마]

[너한테 못한 말이 있는데]

[나 너 좋아해]

[그래서 너랑 학교 다니고 싶어]

 

 

충동적인 메신저 고백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괜히 보냈다는 후회가 들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귀가를 완료한 순간에도, 여전히 은우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화가 났다. 진짜 못된 차은우. 이제 나랑은 끝이라 이거지? 그래서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자퇴서 낸 거지? 나랑 영영 안 보려고 메시지 답장도 안 하고? 아니, 읽어놓고 왜 답을 안 해? 내가 만만해?! 휴대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은우의 연락을 기다리는 행위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휴대폰을 아무 데나 팽개치고 씩씩거리며 속으로 은우의 욕을 했다. 진짜, 진짜 나빴어. 나는 네가 나 좋아한다고 했을 때 무시 안 했는데.

 

은우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저녁밥을 먹고 TV도 보다가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수십 번 뒤척이다 벽걸이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침대 매트리스와 침대 헤드 사이에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휴대폰을 꺼내고, 잠들 때까지 휴대폰으로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조금 기다리자 바탕화면이 보였고, 휴대폰을 꺼놓느라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부터 확인했다. 그중엔 누워있던 내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것도 있었다.

 

 

[집이야?]

[지금 S공원으로 나올래?]

 

 

은우였다. 내가 휴대폰을 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왔던 메시지였다.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다가 우당탕 침대에서 벗어나 현관에서 슬리퍼에 발을 쑤셔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은우가 메시지를 보낸 후로 5시간 넘게 흘러버렸다. 내가 읽지도 않았는데 설마 나왔을까. 나왔다면 아직도 있을까. 아니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달렸다. 체육대회 때 계주를 뛰던 순간처럼 힘껏 달렸다. 슬리퍼를 신고 달리는 탓에 한 번 크게 넘어지기도 했다. 개의치 않고 일어나서 다시 달렸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하고 헉헉 숨을 고르며 두리번거리자, 벤치에 앉아있는 은우가 보였다.

 

 

“야. 너 왜,”

“빈아! 다쳤어?”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하고 물어보려던 내 말을 은우가 끊고 다쳤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내 무릎과 손바닥에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다는 걸 알았다. 은우가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니 갑자기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왜 아직도 있어.”

“괜찮아? 안 아파? 옷은 왜 이렇게 입고 나왔어. 춥겠다.”

“왜 집에 안 갔냐고! 너 바보야? 내가 안 왔잖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나를 여태 기다린 미련 곰탱이에게 괜스레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사실은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도착했을 때 은우가 보여서 안도했고 기쁘기도 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느라 눈물이 찔끔 새 나왔다.

 

 

“보고 싶어서.”

 

 

은우의 대답에 찔끔 씩 나오려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버렸다. 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는 은우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얘도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더니, 곧 외투를 벗고 쌀쌀한 날씨에 반팔 반바지 차림인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나는 최대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은우에게 물었다.

 

 

“너… 너 자퇴 왜 하는데.”

“…나만 비난받고 싶어도 네 이름이 자꾸 언급되더라.”

“…”

“내가 너를 자꾸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어이없는 이유라 울다 말고 벙찔 수밖에 없었다. 진심인 거야, 핑계를 대는 거야. 내가 뭐라고. 왜 나를 지키겠다고 네가 다 포기하겠다는 거야. 심지어 나와 상의도 없이.

 

 

“그러지 마. 난 괜찮으니까. 너 혼자 다 짊어지지 말라고.”

“…”

“아직 자퇴서 처리 안 됐을 거야. 가서 생각 바뀌었다고 해.”

“…알겠어.”

“그리고 내가 내일 애들한테 다 말할 거야. 너랑 나랑 서로 좋아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같이 받을 거라고.”

“빈아.”

“말리면 화낼 거야.”

 

 

은우가 그러지 말라며 나를 말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에 얼른 협박조의 말을 덧붙였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깨달았던 것보다 훨씬 너를 좋아했던 모양이고, 너를 놓칠 생각이 없다.

 

스스로의 감정에 무지하다가, 망설이다가, 두렵고 불안해하다가, 초조해하다가

그 끝은 결국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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