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Brew Love!

2019 여름호
작성자
제니
작성일
2020-11-11 12:04
조회
4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평소답지 않게 초조했다. 은은한 빛의 조명은 무드 있다기보다 지금의 은우에게는 오히려 답답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존재인거 같았다. 올까, 차라리 기대하지 말까.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벌써 11시 30분. 슬픈 마음이 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했으니 빈이 어떤 식으로 대답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저들의 하루는 평소와 다름없을 것이고, 혹여 빈이 거절한다고 한들, 은우는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올 시간이 많을 것을 알았다. 벌써 3년이었다. 언제든 말할 수 있었던 마음을 조금씩 모으고 더 모아서, 잔뜩 흘러넘칠 정도까지 채워왔던 것이. 그만큼도 버텨냈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든 기다릴 수 있었다. 천천히 눈을 감은채로 숨을 내뱉었다. 시간을 다시 확인하려 휴대폰을 든 순간이었다.

 

 

 

 

 

 

Heart Brew Love!

W. Jenny

 

 

 

 

 

 

 

C.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문을 여니 고개를 숙인 빈이 있었다. 손목을 끌어당겨 당장이라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은우가 활짝 웃어보였다. 왔어? 들뜬 목소리로 말하니 아이, 하는 작은 탄성이 흘렀다. 뭐 먹고 싶은데 나는 주문 잘 못하잖아. 그러니까, 너도 먹을 거면 같이 먹을까 하고. 어색하게 둘러대는 말이 꼭 빈 같아서 또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11시 50분. 해외에서 저와 빈이 다른 방을 쓰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오히려 더 마음이 초조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나 먼저 찾아 온 것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뜨거워지는지. 비슷한 마음이려나 싶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기대감을 다시 억눌렀다.

 

“배 많이 고파?”

“사실은, 아니.”

“안 고파?”

“응, 그리고 차은우.”

“응?”

“아니, 이동민. 동민아.”

 

오랜만에 들려오는 본래의 이름이 낯설기보다 간지러웠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서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빈에 은우마저 긴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에 잔뜩 무엇인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직, 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진지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만이 은우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생일 축하해.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한데….”

 

수줍게 웃고 있던 얼굴이 다시 가라앉았다. 마주치고 있던 눈을 먼저 피했던 것은 오히려 은우였다.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잠도 안자고 찾아온 빈에게 너무나 설렜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 더 섣불리 생각하면 안됐는데. 금방이라도 달콤한 말이 나올 것 같던 얇은 입술이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시간, 줄 수 있을까.”

“알았어, 조급해하지 않을게. 너도 너무 부담 갖진 않았으면 좋겠어.”

 

두 팔을 뻗으니 자연스럽게 빈이 안겨왔다. 이렇게만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없을 텐데. 안겨온 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빈에게서도 저와 같은 샴푸향이 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쿵, 쿵, 혼자 있을 때는 들리지도 않던 저의 심장 소리 같은 것이 자꾸 큰 소리를 냈다. 혹여나 이것이 빈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이 쓰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저의 욕심일까.

 

 

 

 

 

H.

사실 온전한 대답을 바라고서 했던 말이었다면 이정도로 여유롭게 빈을 기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은우는 빈이 가진 불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오히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조이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신하고 있던 것은 서로 정해진 마음의 종착역이 없더라도 계속 같은 열차에 타고 있을 빈과 저였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고, 빈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의 사이가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없을지라도 항상 우리의 시선의 끝은 서로를 향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해외 스케줄 도중 빈이 생각나 사두었던 선물을 쉽게 건네지 못했던 것은, 이제는 아무래도 확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친구라는 감정보다는 훨씬 특별한 관계라고는 해도, 은우가 어떤 선물을 건네도 빈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갑자기 서로가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자신과 빈을 더 이상 속이지 않을 명분 같은 것이 필요했다. 위태로운 관계를 정리하고 안정된 관계로 빈을 대하고 싶었다. 까만색의 귀걸이 케이스를 서랍에 넣어두고 어떻게 전해야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떠오른 핑계거리는 그럴싸했다. 곧 빈이 생일이잖아.

 

 

***

 

 

당일의 아침은 서늘했다. 손이 시리다는 것을 핑계로 두툼한 롱패딩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언제쯤 주는 게 좋을까. 대기실에 도착해서는 바로 사전녹화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사전녹화가 끝나고 나서는 팬미팅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져가는 케이스를 꺼낼 타이밍을 한참 재고도 꺼내지 않은 것은 차분해진 분위기에서 선물과 함께 전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팬미팅에서 장난스런 뽀뽀 같은 것을 했더니 속이 더 탔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다른 멤버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쉬고 있을 때, 은우가 드디어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빈아.”

“왱.”

 

입에 한가득 떡을 물고서 고개를 드는 얼굴이 꼭 다람쥐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어떨 때는 날카롭게 보이기도 한다고 누가 그랬던 거 같은데, 저에게 빈은 언제나 말랑했다. 저의 마음이 말랑해져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여전히 오물거리는 볼을 검지로 한번 쿡, 자연스럽게 눈이 휘어졌다.

 

“오다 주웠다.”

 

언젠가 촬영대사로 한번쯤 했던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앞에 둘러싸여 전할 수 있는 최대의 말이었다. 케이스를 본 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곧바로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왔다. 팬들 앞에서도 한번 껴안기는 했지만, 그 순간과는 또 다른 것이 느껴졌다. 온전히 몸을 맡겨 안겨오는 빈을 꽉, 끌어안았다. 맞닿은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분주한 곳에서도 꼭 둘밖에 없는 거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다가 먼저 몸을 떼어낸 은우가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는 풀어보라는 말을 전하자, 빈이 그제야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다.

 

[좋아해.]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쪽지에 있는 정갈하게 쓴 글씨였다. 곧바로 고개를 들어 은우를 확인한 빈이 어……. 하고는 단말마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당황스러움을 표했다. 은우는 그저 그런 빈에게 다시 활짝 웃어 보일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귀걸이 내가 해줘도 돼? 들뜬 목소리를 들은 빈이 그, 그래. 하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이런, 잔뜩 생각이 가득 차게 만드는 쪽지를 써놓고는. 빈의 표정을 은우가 눈치 채지 못 했을리가 없었다. 근데 또 그런 반응의 빈이 귀엽기도 하고, 장난처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빈도 저와의 관계를 생각해본 적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기쁜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무대용 귀걸이를 하고 있던 빈의 귓불을 한번 살짝 문지른 은우가 귀걸이를 빼내었다. 품에 껴안은 것만 같은 자세로 가까이서 굳은 표정을 하고는 혹여 빈이 아프지는 않을까 케이스에서 귀걸이를 꺼내 자리를 잡아 집어넣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역시 잘 어울린다.”

“고맙다.”

“오다 주웠다니깐.”

 

아직 온전히 귀걸이를 다 끼워주지 못했다는 것을 핑계로 빈을 한 번 더 확실히 끌어안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저 서로에게 다정하고 아주 친한 친구, 그 정도로 보일까. 너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그런 생각들을 무심코 했다. 좋아한다는 말이 지금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 좋아한다는 말로 표현될만한 말이, 내가 너에게 건넨 쪽지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빈도, 은우도 말없이 마주보고 웃었다.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해서 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씻고 귀에 하고 있던 귀걸이를 바꿔 끼우는 일이었다. 갈아입을 옷과 함께 은우가 준 귀걸이 케이스를 들고 온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 평소처럼 씻고 나온 그대로 은우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엔 오늘은 좀 아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는 케이스를 꺼내 귀걸이를 끼우니, 괜히 심장부근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크롬하츠인가. 언제 샀지. 비싸진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아직도 케이스 안에 자리하고 있는 좋아해, 라는 말이 다시 보였다. 좋아한다, 라. 저도 은우를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다고 말할 수 는 없겠지만 은우는 자신의 일상과 삶에 자연스럽게 물들었고 그것이 익숙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빈 자신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은우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은우에 대해 괜스레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은우도 저도 그러기엔 하고 있는 일도, 특히나 은우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좋아한다는 마음을 깨닫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시를 끄적이고, 노래를 듣고, 방에 누워 한참을 생각해보아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다 씻었어?”

“어? 어.”

 

저가 준 귀걸이를 하고 있는 빈의 귀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은우는 들고 있던 수건을 내려놓고는 다시 빈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아까는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 투정부리는 듯한 목소리. 끌어안은 은우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 너 아까 그 쪽지 말이야.”

“지금 바로 대답하라는 거 아니야.”

“근데 빈아.”

 

은우가 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눈을 마주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놀란 빈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마자 뜨거운 입술이 빈의 이마에 살포시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는 곧장 빈의 오른쪽 뺨에 다시 닿았다. 아까 많은 팬들이 보고 있던 곳에서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촉감이었다. 이러다 심장 터져 죽겠다. 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눈을 맞춰오는 은우 때문에 빈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았다.

 

“아직 다 안 보여줬어. 한참이나 더 남았어. 근데, 내가 지금 너한테 보여줄 수 있는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는 아직 이것뿐이야. 그래서 답답해.”

“충분히 알았어…. 그러니까 그만 놔줘.”

“진짜 알았어? 난 아직 멀었는데.”

“대답 지금 바로 해야 돼?”

 

걱정이 가득한 머릿속이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다 드러났다. 은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다시 빈을 끌어안았다. 언제 대답해도 돼. 좋아해, 빈아. 다정한 목소리가 자꾸만 심장을 간질였다. 은우도 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누구에게나 다정한 은우가 저도 별 다를 바 없는 친구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은우에게 저는 특별한 게 맞았다. 저도, 은우도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더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은 비슷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좋아해서, 멀어지는 것도 무섭고,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달콤함에 취했다가도 그렇게 되지 못할까봐. 우리는 아직 할 것도 많이 남았고, 우리의 미래는 앞으로도 한참이나 남았고.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했던 것이 오늘까지 왔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은우가 좋아서, 더 많이 필요했다.

 

 

 

M.

은우에게 주려고 생각했던 선물은 결국 전하지 못했다. 빈은 막상 건네려고 마음을 먹자마자 본 은우의 얼굴에, 결국 겁쟁이처럼 다시 한 발 물러서고 말았다. 어떤 말이 어울릴까. 조금이라도 가능한 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는데. 막상 은우의 얼굴을 보니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면 나아질까 했던 것이 어느새 한 달을 넘어섰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가 은우의 마음을 받아주고 나면 우리의 관계는 더 완벽해질 수 있는 게 맞는 건지. 은우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저를 믿지 못해서였다. 저는 쓸데없이 걱정이 많을 때도 있고, 그걸 잘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앓을때도 많으니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은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감당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관계 자체에서 생기는 문제들보다도 그런 것들이 자꾸 머릿속에 가득 찼다. 지금처럼 친구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면서도 마주 보면서 웃고, 끌어안고, 한참 대화하다 함께 새벽을 지세우고 그런 날들은 계속 될 수 있을 텐데.

 

흐르는 시간은 빈이 잡을 수 있을 만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은우만 보면 드는 생각들은 자꾸 빈이 은우를 평소처럼 대할 수 없게 했다. 당연하게 이어오던 우리의 친구라는 관계가 위태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 것 그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자꾸 도망치다보면, 은우도 언젠가 지치고 말겠지. 그렇다고 우리가 한순간의 장난처럼 지나칠 감정이었던가. 거기까지 생각하고든 결심 아닌 결심을 했다. 빈은 은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B.

은우와 빈이 처음으로 키스를 했던 날은 더운 여름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캄캄할 방안이, 문을 열기 전부터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직 안자나. 문을 열자마자 자신의 침대에 누운 채로 퍼뜩 고개를 드는 눈에는 잠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왔어? 물어오는 목소리도 갈라지는 것이, 저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완전히 잠에 들었겠구나 싶은 모양새였다. 은우가 흘러내리는 빈의 머리 뒤로 넘겨주자, 빈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안 잤어?”

“너 기다렸지.”

 

그 다음은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빈의 말을 들은 은우는 꼭 세상이 멈춘 것처럼 굳어버렸다. 혹시 넌 내가 가끔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 멍하니 자는 너의 얼굴을 보곤 했던 걸 알까. 욕심이라고, 안된다고 억누르고 억누르던 감정이 마구 튀어나올 것처럼 넘실댔다. 은우의 모습을 보고 있던 빈은 그저 말없이 은우를 품에 안아주었다. 저가 지금 은우가 겪고 있는 힘듦의 깊이를 온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위로라는 것을 해주고 싶어서.

 

“힘들었어?”

“응…….”

“많이 힘들었어?”

“맥주 한잔 할까.”

 

그 다음은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은우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온 빈은 좁은 2층 침대에 마주 앉아서 캔 맥주를 마셨다. 조잘대며 자신이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촬영을 했는지, 얼마나 대기했는지 말하는 은우의 말을 들으며 빈은 그랬어? 하며 맞장구 쳐줄 뿐이었다. 한 두 캔 마시던 맥주는 방바닥에 몇 개씩 쌓이기 시작했고, 아무리 주량이 세다고 하는 둘이어도 알딸딸해지는 기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분이 좋았다. 분위기도, 마주 앉은 채 이야기를 들어주는 서로가. 그냥, 모든 게. 안 그래도 잔뜩 쌓아두고 있던 좋다는 감정이, 기분이 풀리니 조금씩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욕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이루어질 것처럼 마주친 눈빛에는 애정이 잔뜩 담겨서.

 

“그만, 잘까.”

 

먼저 캔을 내려놓은 것은 은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빈이 입을 맞춰왔다. 이게 맞는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상대가,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누르고 있던 감정이, 이리저리 잔뜩 튀어 오르고 있었다. 입술을 맞댄 채로 빈이 들고 있던 캔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은 은우가 완전히 빈을 끌어당겨 안았다. 이대로 정말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숨이 오가는 상태로 벌어진 입술에 혀가 들어찼다. 손끝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처음 느껴보는 좋다는 감정의 모든 것들이 휘몰아쳤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은우도 빈도 잘 알지 못했지만, 마냥 좋았다. 감정들이 완벽하게 맞닿았고, 우리는 완벽해지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뒤로 눕혀지는 빈은 여전히 은우의 목에 두 팔을 감은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런 걸까. 은우는 사실 묻고 싶기도 했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냐고. 이런 식으로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괜찮은 거냐고. 하지만 묻지 못했다. 그저, 잔뜩 끌어 오르는 감정들 뒤섞인 채로 그날의 밤은 유난히 길어졌다.

 

 

***

 

 

생각보다 그 이후의 나날들은 평범했다. 어떤 변화를 딱히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은우도 빈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서로를 대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그들만의 애정의 표현이었을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같은 방에서 조용히 이야기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서툴렀던 키스 같은 것도 기분이 좋으면 하고. 좋다는 것 말고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밀어내지 않고, 눈을 마주치고 웃고. 그것이 무언의 약속과도 같은 것이었다. 친구? 사실 친구라는 것을 뛰어 넘은지는 오래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이라도 끈적한 키스를 나누는 것은 평범한 관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묻는 말에는 늘상 유일한 친구, 룸메이트, 같은 팀 멤버와 같은 말들로 서로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물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은우와 빈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키스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했다. 깊은 사이라고 함부로 정의내리는 일을 누구도 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면, 내가 너무 성급하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질 않고, 마주하게 되면 서로를 꽉 끌어안는 것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사람들의 시선도 두려웠고, 지금처럼 사람들과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만나는 것보다 드러내고 만나는 것이 덜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평소처럼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는 빈에게 다가온 은우가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던 날이었다.

 

“넌 나랑 이런 거 왜해?”

“이런 거?”

“키스나, 그런 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졌어?”

“그냥……. 아니야,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빈아.”

 

대답 없이 먼저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버리고는 이불을 덮었다. 조금,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서 자꾸 이유를 찾으려고 들어봤자 답은 하나였다. 뱅뱅 돌고 제자리를 뛰어도 돌아보면 은우가 있는데.

 

“우리 그냥, 우리가 좋은 대로 하자.”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이, 어째서인지 상처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예상했던 말이 아니었다. 기대했던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속이 상했다. 결국은 저도 사랑이라는 걸 확인 받고 싶었던 게 분명한데.

 

 

 

L.

어떤 말부터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간결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엔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핑계를 대보자면, 결심하는 동안에 해야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한국에 은우와 둘만 남는 시간이 생겼다. 더 늦어지면 아예 전하지도 못할 것만 같아 고민하던 끝에 빈은 결국 스케줄이 없는 날을 골라 은우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말을 꺼냈다. 어떻게 보면 데이트 아닌 데이트였다. 새벽 내 축구를 보고, 끝나고 나서는 조금 잠을 잤다가,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마주 앉아서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하는 와중에도 빈의 머릿속에는 선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아직까지 전하지 못했는데 어쩌지. 이대로 결국 못 전하는 건 아닐까. 자꾸만 새어나오는 한숨이 은우가 보기에도 신경이 쓰였는지 카페에 앉은 지 얼마 안돼서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저녁에 개인 스케줄을 나가야한다는 매니저형의 연락이 오자, 빈의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답지 않게 은우의 방에 노크한 빈이 빼꼼 문을 열고는 은우를 확인했다.

 

“왜? 혼자 자기 싫구나.”

“동민아.”

 

빈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얘기를 할 때면 꼭 은우를 본명으로 불렀다. 장난스럽게 웃던 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빈이 오늘 어떤 대답을 내놓겠구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발걸음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곧이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케이스를 주섬주섬 꺼낸 빈이 떨리는 손으로 은우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놀람과 함께 몰려오는 기쁨이 자꾸만 앞섰다. 아직 빈의 대답은 듣지도 못했는데.

 

“늦어서 미안해.”

“이게 뭔데?”

“니 생일 선물.”

“생일 선물? 나 괜찮은데.”

“그리고, 동민아.”

“응?”

“대답도 늦어서 미안해.”

 

고개를 푹 숙인채로 하는 말에 은우가 손을 뻗어 케이스를 내민 두 손을 감쌌다. 괜찮아, 다 괜찮아 빈아. 다정한 대답에 꼭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사실 다 괜찮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빈이 거절이라도 한다면, 전혀 안 괜찮을 테니까. 은우는 뜸을 들이는 빈이 대답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벌어진 입술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닫히고, 또 열렸다가, 다시 닫히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못난 대답이어도 은우가 좋아해줄까.

 

“생각 열심히 해봤는데, 나도 니가 좋은 거 같아. 널 믿으면 어떻게 되더라도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더라.”

“……다행이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그래도 괜찮으면…….”

“이리 와.”

 

빈의 손목을 끌어당긴 은우가 손바닥을 펴 자신의 가슴팍에 대었다.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이 느껴지는데 결국 울컥, 눈물이 차올라 넘실대 앞을 가렸다. 그동안 그렇게나 꼭 숨겨두고 있던 마음인데 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쿵, 쿵, 쿵. 지난번에 은우의 품에 안겨서 들었던 소리와 같은 고동이었다.

 

“아직 따뜻하잖아, 그치?”

“…….”

“난 언제든 니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마음을 채워놓을 생각이었어. 근데 생각보다 빨리 와서 기뻐.”

“오글거리거든.”

“울면서.”

“너는 왜 우는데.”

“니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나잖아.”

 

어느새 새빨개진 눈을 하고 마주보고 있으니, 그동안 함께 지나온 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빈아, 사실 난 널 아주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 너는 나에게 항상 누구보다 특별했는데. 아침마다 너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고, 같이 학교에 가는 것도 좋았어. 통화할 때 들리는 조금 다른 톤의 목소리도 좋았고, 영상 통화 너머로 보이는 흐트러진 모습도 사랑스러웠는데. 차근차근 전해야지 싶었던 사랑이 가득담긴 말들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말하지 못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벅차서였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야 다시 웃음이 터졌다. 근데 이거 뭐야? 훌쩍이며 묻는 은우에게 아직도 저가 쥐고 있던 케이스의 뚜껑을 열어 건네니, 또 장난스럽게 웃어온다. 목걸이야? 응. 언제 샀어? 몰라도 돼. 왜애. 됐으니까 이리 와봐, 채워줄게.

 

“왜 네잎클로버로 골랐어?”

 

널 만난 게, 널 좋아하게 된 것들이 나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라서 너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의 네잎클로버가 되어준 너란 존재가 너무 고마워서 그렇다고. 이것은 앞으로도 말하지 못하겠지.

 

“니가 맞춰봐.”

“애인한테 너무 비밀이 많은 거 아니야?”

“애인이래. 아이, 넌 그런 거 민망하지도 않냐.”

“민망하고 그런 거 너한테 고백할 때부터 아무렇지 않아졌어.”

“자꾸 징그러운 말 하지 마.”

“뽀뽀해도 돼?”

“아이 지짜!”

 

빈아, 근데. 또 왜. 오늘 사귄지 1일 된 김에 니가 모르는 것 같은 사실 하나만 말해줘도 돼? 뭔데? 우리 첫 키스 했을 때 기억나? 맥주 마셨던, 그때? 응. 그날 사실, 우리 키스만 한 거 아니었어. 뭐? 그때 니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엄청 그랬는데. 미쳤나봐, 조용히 해! 기억 안날 줄 알았다. 술 잘 마시는 척 해놓고. 아이, 조용히 하라니까!

 

 

 

 

너를 위해 준비한 이 사랑을

오랜 시간을 혼자서 내려온 진짜 내 마음을

받아줘.

 

Heart Brew Love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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