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소리

2019 가을호
작성자
김개강
작성일
2020-11-12 16:26
조회
3

 “시에서는 말하지 않고 말하기가 중요해. 그게 여백 남기기지. 맥클리쉬의 시법을 보면…,”

 막 스무 살이 된 애들은 고등학생처럼 말을 멈추지 않는다. 평소보다 시끄러운 강의실을 둘러보다 단정한 뒤통수에 눈이 머물렀다. 일학년임이 분명한데 동기들과 잡담을 나누는 대신 강의에 집중하는 동그란 머리를 보고 있자니 조그맣게 웃음이 났다.

  “어디 보자, 차은우?”

 교수님의 부름에 차은우를 찾는 고개들이 휙휙 돌아갔다. 다들 차은우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잘생기거나 똑똑하거나 부자거나 셋 중 하나다.

  “네가 읽어 보자.”

 단정한 뒤통수가 헛기침을 했다. 네 이름이 차은우구나.

  “모든 슬픔의 역사를 말하려면, 텅 빈 문간과 한 잎의 단풍나무 잎새면 되고, 사랑을 말하려면 납작해진 풀밭과 바다 위의 두 불빛이면 된다.”

 아쉬운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걸 보니 잘생긴 쪽인가 보다. 목소리도 좋네.

  “거기까지. 왜 하필 슬픔이 아니라 슬픔의 역사일까?”

 곰곰이 고민하는 것 같아 보이던 차은우가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와하학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교수님도 웃으시는 걸 보니 역시 얼굴이 잘생긴 게 맞다.

  “읽다 보면 자꾸 질문이 생기지? 왜 하필 슬픔의 역사인지, 왜 텅 빈 문간과 한 잎의 단풍나무 잎새인지. 이 글은 온통 여백이야. 시를 쓸 땐, 사랑이 뭔지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지.”

 사랑은 언제나 사람의 관심을 끈다. 교수님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강의실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그때, 차은우가 손을 들었다.

  “답은 어떻게 찾나요?”

  “자기의 문을 생각해 보면 돼. 빈아, 네가 대답해 봐. 네 문은 어떻게 생겼니?”

 교수님이 빈아, 하며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왔다. 그래 그래, 일학년이 들어찬 강의실에서 만만한 건 재수강하는 삼학년이지.

  “나무문에 이끼가 낀 것 같고, 거미줄은… 멀리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내 대답에 차은우가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이 웃으며 계단도 아니고 창문도 아니고 하필 문인 이유를 설명할 때, 차은우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손이 스친 것도 아니고, 무릎 끝이 닿은 것도 아니고 하필 눈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은우와 자주 엮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야 문빈, 이리 와.”

 시끄러운 술집에서도 나를 찾는 선배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들렸다. 기껏 군대 다녀와서 하는 게 후배 군기 잡기라니, 참 재미없는 인생이구나.

  “선배,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저번 주에도 봤잖아.”

 알고 있다. 아는 척하기 싫었을 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옆에 앉자 반가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지원이었다.

  “야! 문빈!”

 슬쩍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선배를 가리키자 지원이가 정색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마 테이블을 다 돌고도 내 옆자리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김지원은 내 옆에 앉은 선배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신입생 환영회 때, 나를 붙잡고 토하며 선배를 욕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상천외한 욕들을 생각하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선배,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으세요?”

 어라 누구지, 하고 쳐다본 앞에는 훤칠한 신입생이 앉아 있었다. 신입생이라고 추측한 이유는 간단했다. 차은우니까. 참 잘생겼네. 아무것도 아니라는 웃음을 짓자 술 달라며 빈 잔을 살짝 흔들었다. 술도 잘 마시나? 불공평하네. 술을 반 정도 따르자 차은우가 잔을 들어 따르는 술을 끊었다. 어쭈.

  “선배, 저희 아까 수업 같이 들었죠?”

  “어?”

  “나무문에 이끼가 끼었다면서요.”

  “아, 어.”

 왠지 말이 짧게 튀어 나갔다.

  “말 편하게 할게요. 괜찮죠?”

  “응, 괜찮은데….”

  “선배 얼굴에 그렇게 적혀 있는 것 같아서요.”

  “내 얼굴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은우가 나한테 말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라고요.”

 난 은우라고 부른 적 없는데. 좀 느끼한 타입인가. 보통 시커먼 선배한테는 이런 말 잘 안 하지 않나? 나한테 작업이라도 거는 건가. 질문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마당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아니, 말을 무슨 작업 거는 것처럼 하길래 웃겨서.”

  “그래요?”

  “그래, 그렇다 왜. 네가 꼭 나한테 수작 부리는 것 같네?”

 차은우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싱거운 놈이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너 담배는 피워?”

 말을 돌렸는데 차은우는 멋쩍은 기색도 없어 보였다.

  “술 마실 때만요.”

  “나갈까?”

  그럴까요, 하고 짓는 웃음이 역시나, 나한테 수작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술은 한 잔도 안 했는데 왜 이러지.

*

 담배에 불을 붙이자 차은우가 멀뚱히 나를 보고만 있었다. 뭐야, 불 붙여달라는 건가. 주머니에 넣은 라이터를 다시 꺼내 휠을 돌리려는데 불이, 이게 갑자기 왜 이러지. 차은우는 그런 나를 보더니 형, 저 담배 하나만요. 하고 씨익 웃었다. 붙임성도 좋은 놈. 말 놔도 된다고 한 적 없는데. 어차피 그러려고 했지만. 담배를 건네자 차은우가 받아들고서 말했다. 선배, 저 불도요. 얄미운 놈.

  “나 지금 불 다 됐는데.”

  “그럼,”

 차은우는 짧은 말을 끝으로 성큼 내게 다가왔고, 엇 하는 순간에 담배 끝이 맞닿았다. 꼭 입술이라도 닿은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착각이 아니라, 차은우가 키스하는 것처럼 고개를 꺾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번 닿았다 떨어지는 담배에 참았던 숨을 뱉으려 할 때쯤 차은우가 다시 다가왔다. 불이 안 붙었나,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다시 떨어졌을 때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얼굴을 멀찍이 떨어트렸다. 차은우는 그걸 보고서 그냥 웃기만 했다. 고마워요 형이라는 말과 함께. 고마우면 좀 떨어져 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한참을 말없이 담배만 태웠다. 신입생 환영회를 빌미로 한 자리에서 가지는 담배 타임이라기에는 너무 딱딱한 시간이었다. 침묵이 무거워져 참을 수 없게 될 때쯤, 나는 들어가기 위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때, 차은우가 말을 걸어왔다.

  “형.”

  “어.”

 건조한 말투로 대답하자 차은우도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말했다.

  “저 사실 담배 안 피워요.”

  “엥?”

 어이가 없어졌다. 담배도 안 피우는 게 따라나와서 한 가치 물기는 왜 물어 그럼. 왜 담배 끝은 부벼. 왜, 왜 자꾸 앞에서 실실 웃는데? 차은우는 이상하게 전부 쉬웠다. 말 거는 것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나를, 아 이건 아니다.

  “그럼 왜 따라 나왔어.”

  “그냥요.”

  “용케 기침도 안 했네.”

  “그냥 빨았다가 바로 뱉었어요.”

 잘하지 않았냐는 듯한 웃음이 또 얄미웠다.

  “너 나한테 뭐, 관심 있냐?”

  “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말이지. 너무 담담한 대답에 얼이 빠졌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쉽게 뱉으면 다 느껴지는 법이다. 차은우는 왜 이렇게 쉽게 쉽게 말하는 거지. 일단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짜증이 미간을 좁혔다.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면 그렇겠지만 사실, 짜증이 나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우리 사이 어떻게 만들어 보자는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말하는 거예요. 내가 형한테 관심이 있다. 그걸 알아 줬으면 한다. 대충 그런 거?"

 저기, 보통은 그런 거 말 안 하거든. 알고 있어?

  "나한테 우리 사이, 그래, 발전시킬 마음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사이를 말하는데 입 안이 텁텁했다. 괜히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형, 종교 있어요?"

  "아니, 나 없는데."

  "그럼 됐네."

  "사실 믿어."

 거짓말. 안 믿는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누군가를 믿게 되면 마음은 한없이 나약해지기 마련이니까. 가끔 머릿속으로 하나님 아버지 따위의 감탄사를 뱉는 이유는, 어릴 때 뭣도 모르고 따라간 교회에서 배운, 그러니까 일종의 습관이다.

  "형도 그럼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말 믿어요?"

  "그래, 믿는다 왜. 그럼 안 돼?"

  "웃기잖아요. 성경에서 금지하는 것들은 다 하고 있으면서 그것만 콕 집어서 죄악이니 뭐니 하는 거. 나는 안 믿거든요. 일종의 쇼 같은 거 아닌가."

  "너 교회에 악감정 있냐?"

  "근데 형도 생각해 봐요. 그 사람들 두려워서 그거라도 믿는 거야. 그거 아니면 기댈 곳도 없어서 거기에 매달리는 거라고. 애초에 종교라는 게 그래요.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안 믿어요."

  "그럼 너는 뭐 믿는데?"

  "...나는,"

  "어, 너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왜냐고 묻기에는 바람이 지나치게 쌀쌀했다.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내게 이런 걸 다 내보여도 되나. 실수로 내보인 치부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들어갈래?”

 차은우가 웃었다.

*

 벽에 동아리 신청지를 붙이고 뿌듯하게 보고 있자니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 지원이 아니면 예진 누나니까. 이번 기수는 많이 들어올 것 같냐부터 시작해 미인계를 써 보라며 볼을 꼬집고 머리까지 마구 헝클어 놓고서야 나를 놓아 줄 것이다.

  “형!”

어, 아니네. 날 보고 반갑게 형이라고 부를 사람은... 차은우밖에 없지.

  “웬 일이야.”

  “과방에는 삼 학년보다 일 학년이 흔한 풍경이에요. 웬 일은, 형이 아니라 내가 할 말. 웬 일이에요?”

  “너네도 곧이야. 눈 감았다 뜨면 신입생 들어올걸.”

  “웬 일이냐니까요.”

 말을 슬쩍 피하자 차은우가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사실 슬쩍 피한 게 아니라 대놓고 피하긴 했지만.

  “동아리 홍보지랑 신청지 두러 왔지.”

  “아, 그래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신청지 둘 곳을 찾고 있는데 차은우의 시선이 느껴졌다. 말을 해, 말을.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피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입을 다문 걸 알았는지 차은우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숨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너무 크게 숨쉬고 있나? 눈을 너무 자주 깜빡이나? 하나가 신경 쓰이자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못된 차은우, 말을 하란 말이다.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요?”

 이런 말 말고.

  “뭘?”

 차은우는 항상 정곡을 찌른다. 애써 모르는 척 되묻자 차은우의 머리에 꼭 강아지 귀가 달린 것 같이, 그러니까, 웬 대형견이 울상을 짓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건 다, 그래 쟤가 잘생겨서...

  “왜 안 묻냐고요, 나한테. 지나가는 애들한테는 다 물어보고 홍보지 돌리고 했잖아요. 왜 나한테만 안 물어요. 나한테만.”

아니, 자기가 개야? 꼬리가 달렸으면 축 쳐져 있을 것 같은 표정과 말투였다.

  “형 나 피해요?”

  “내가 널 왜 피해.”

 맞다. 피하는 거.

  “지금도 내 눈 안 보고 있잖아요.”

  “내가 언제?”

 차은우를 정면으로 바라보자 차은우가 씨익 웃었다. 진짜 잘생겼네. 1초.

 2초.

 3초.

  “됐지?”

  “되긴 뭐가 돼요. 더 보자.”

  “아이, 너 진짜 그만해.”

 차은우가 눈을 맞춰 왔다. 손에 든 신청지를 들어 얼굴을 가리자 내 손에 자기 손을 겹쳐 잡고 쑥 내렸다. 만지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뱉지 않은 이유는 뱉을 만큼 불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친 채로 한참을 서 있었고 차은우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이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검지로 내 손을 살살 간질이기 시작했을 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차은우가 김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책상에 엎어졌다.

  “형 당장 잡아먹자고 이러는 거 아니라니까요.”

 금방까지 잡아먹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마음 왔다 갔다 하는 정도도 아니고 그냥 형이 자꾸 생각나서 그래요. 나 잘생겼잖아요. 손해 볼 것도 없잖아.”

  “나 종교 있다니까.”

 또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나 가지고 놀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렴.

  “일단 한 번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깔끔하게 버려요. 그러면 되겠네.”

  “되긴 뭐가 돼. 그리고 뭘 한 번 해?”

  “뭐든요. 형이 나랑 하고 싶은 거.”

 차은우랑 하고 싶은 거? 왠지 모르게 차은우가 내게 키스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 왜 이러지. 나 차은우 입술에 관심 있었나 봐. 귀 끝이 새빨개진 것 같았다.

  “형 나랑 대단한 거라도 하고 싶은가 봐요. 귀가 빨개요.”

 차은우가 또, 또 웃었다.

  “저 동아리 들어갈래요.”

*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너 이상 좋아해?”

  “네….”

  “근데 그건 이상이잖아. 너 이상만큼 유명해? 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거야? 아니면 요절이라도?”

 비판은 비난이 되기 쉽다. 합평회에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시가 좋아서 입부 했다는 신입생은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그래도 오늘은 우는 사람이 아직 없다.

  “재미없고, 진부해. 무슨 말을 넣어야 할지 모르니까 이런 시가 나오는 거 아니야.”

 지금 막 생겼네. 수빈 누나, 이러면 올해도 첫 합평회 후로 부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갈 거야,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한숨을 살짝 쉬자 수빈 누나가 이제 신입생들도 말해 봐, 하고 발언권을 넘겼다. 이 친구들이 뭘 말할 줄 알았으면 퍽이나 신입생이겠다.

  “제가 말해도 되나요.”

  “우리 동아리 슈퍼루키 빨리 말해 봐.”

 슈퍼루키는 무슨 대형 폭탄이다. 차은우는 결국 우리 동아리를 골랐다.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 거냐 끈질기게 물었지만 차은우는 한 번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연극 동아리에서 차은우를 강력하게 탐냈지만 차은우는 기어이 우리 동아리를 선택했다. 재미도 없는 시 동아리. 차은우가 과방에서 신청지를 작성하자 신입생들은 우르르 그와 같은 동아리로 몰려들었다. 수빈 누나는 차은우를 예쁨덩어리라고 부른다. 우리 앞에서만.

  “낯설게 하기가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맞나요?”

 차은우는 질문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대답하라는 거지, 지금. 죽어도 안 한다.

  “응, 맞아.”

 수빈 누나가 대답하자 차은우의 눈이 천천히 종이를 향해 내려갔다.

  “여기 보면 목덜미가 나오잖아요. 충분히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낯설게 하는 데 너무 치중해서 다른 걸 간과한 것 같아요. 연결이 안 되네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건 누나가 말씀하셨으니까 다른 걸 말해 보자면, 너무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 같아요.”

 웃으면서 펜을 탁 내려놓는 차은우의 얼굴이 너무 밝았다. 선배들이 던지는 비난과 동기에게 듣는 비난은 크기부터가 다른 법이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신입생의 얼굴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수빈 누나는 놀란 눈을 했다. 김이 날 것처럼 빨간 신입생은 아마 다음 시간부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기 시작할 거다. 이럴 땐 적당히 끊어 줘야지.

  “누나, 오늘은 여기서 그만할까요.”

  “그래, 그러자. 밥 먹으러 갈 사람?”

 밥은 무슨 밥, 술이나 마시겠지. 저 신입생은 절대 안 따라올 거다. 차은우는,

  “저요.”

 따라올 거고.

*

  “야, 걔는 다음부터 절대 안 나와. 내가 장담한다.”

 수빈 누나가 커다란 잔에 담긴 맥주를 한 번에 마시고 오징어를 씹으며 말했다. 나도 동의해요. 이 와중에도 차은우는 내 옆을 굳이굳이 차지하고 앉아 수빈 누나의 말에 열심히 대답해 주고 있다.

  “왜 안 나와요?”

  “왜긴. 누가 나오고 싶겠어. 딱 보니까 원래 쓰던 애도 아니고 그냥 깔짝거려 본 애드만.”

  “누나가 못된 말만 안 했어도 우리 동아리가 지금 서른 명은 됐겠다.”

  “이게 어디서 누나한테. 야, 너 이거 다 마셔.”

  “아이, 싫어요.”

 얼굴로 들이밀어진 잔을 밀자 누나가 장난이랍시고 한 잔 추가요 따위의 말을 뱉었다.

  “마시고 취하면 누나가 책임질 거예요?”

  “아아니, 책임은 어디 보자, 우리 은우가 지면 되겠다.”

  “쟤가 왜 책임을 져요.”

  “제가 흑기사 할게요.”

 아, 차은우. 누나가 내밀었다 잠시 치워둔 잔을 차은우가 가져가 마시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마시지? 차은우는 자꾸 선을 넘는다. 기분이 나쁘냐고 하면 그건 아닌데 왠지 입이 썼다.

  “흑기사 하면 소원 들어줘야지.”

  “소원은 무슨. 난 마시라고 한 적 없는데?”

 차은우는 빈 잔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이 테이블에는 사람이 여섯 명. 수빈 누나, 나, 모르는 후배 두 명, 민우, 그리고 차은우. 눈이 이렇게나 많다. 제일 나를 안 향했으면 하는 게 차은우 눈인데 그 눈만 나를 보는 중이다. 그래, 너는 한 번도 내 소망을 따라와 준 적이 없지.

  “형. 나갈까요.”

  “아니?”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성별이 중요하냐고 물으면 아니, 아니다. 단지 이 세상 모든 문제들은 내 문제가 되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차은우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건 둘째 치고서라도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넌 어떻게 그러냐.”

  “뭐가요?”

  “너 말이야.”

  “네.”

  “남자 좋아해?”

 시끄러운 테이블이었지만 들으려면 충분히 들릴 목소리였다. 차은우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웃었다. 여기서 나올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기분 나빠하거나 나에 대한 관심을 접거나. 뭘 고를래. 입술을 잘근잘근 씹자 차은우가 소리 없이 입만 벌려 대답했다. 네, 라고.

*

 차은우의 이름만은 부르기 싫었다. 고유명사니까. 김춘수가 그러잖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 번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나올 것을 알았다.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약하고 차은우는 나를 좋아하니까. 차은우는 하필 이름도 차은우다.

  “빈아. 너 차은우랑 뭐 있냐?”

 지원이가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있을 게 있나. 친하지도 않은데.”

  “요새 맨날 둘이 다니잖아. 아니면 말고.”

 잠깐 침묵이 찾아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고 마찬가지로 지원이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걔가 따라다니는 거지.”

 안 해도 됐을 말이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또 긴 침묵. 지원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르고 고르는 표정.

  “모를까 봐 말하는 건데 차은우 차교수님 아들이다.”

 새로운 사실이다.

  “그래?”

  “차씨가 흔하냐. 그냥 그렇다고.”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러시겠지”

 우리라고 부른 순간부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의미를 담았는데 지원이는 모른 척 커피를 마셨다. 학교 운동장이 이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네. 차교수님 아들이라 이거지. 나는 차은우에게 보여준 게 없는데 어쩐지 차은우의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안 되겠지.

  “지원아, 너는… 뭐 아는 거 있냐? 나에 대해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같은 거라도.”

 모르겠지. 말해서 좋을 게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다.

  “너 초코 케이크 좋아하잖아.”

  “뭐?”

  “초코 케이크 좋아하고, 시끄러운 거 싫어하고, 수빈 누나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잖아.”

  “아닌데. 너 안 좋아하는데?”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었다. 목적 없는 애정에는 언제나 마음이 젖는다. 연애고 사랑이고 친구고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거짓말이다. 나는 사랑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쉬운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너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깜빡이는 너를, 주말 오후의 나른함을 좋아하는 너를, 하루종일 지쳐서 집에 들어서며 한숨을 쉬는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그 순간에 너를 관통하는 느낌들을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이 모든 감정들의 집합을 찾아 사랑이라 이름 붙이기에 성공해도 끝까지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이별이다. 끝나고 나면 남보다 못 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확신. 대학 친구는 언젠가 멀어지고 말 것이라는 이유 모를 확신과 같은 종류다. 누구나 느끼는 확신들. 아무도 나에게 이별을 말한 적이 없는데 혼자서 느끼는 불안감, 패배감 같은 것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문빈.

  “안 된다, 빈아.”

  “뭐가 안 돼.”

  “안 된다면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최지원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차교수가 우리 학교 주임목사니까. 문득 차은우가 자기는 아무것도 안 믿는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였나. 성큼성큼 걸어가던 지원이가 나를 돌아봤다. 불안한 눈이다. 그래, 사랑이 별건가.

*

 차은우가 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긴 코트를 팔에 걸고 뛰어오는 모습이 좀, 웃겼다.

  “헉, 헉…, 하… 아, 형 뭐예요. 왜 웃어요.”

 별안간 웃음이 마구 터져나왔다. 내가 불러 놓고, 뛰어온 사람을 세워둔 채로 웃고 있는 이 광경도 웃기고 길가의 나무도 웃기고 차은우의 삐져나온 셔츠도 웃겼다.

  “아하하, 아…, 아, 아 너무 웃겨… 아, 진짜.”

  “형 저한테 처음으로 먼저 연락한 거 알죠.”

  “아, 응 알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자 차은우가 환한 얼굴로 옆에 앉았다. 돌계단이라 추울 텐데.

  “우리 술 마시러 갈래?”

 차은우가 한숨을 쉬었다. 하얀 입김이 퍼졌다. 날이 아직 춥구나.

  “왜요?”

  “왜냐니.”

  “왜 나랑 술 마시자고 해요? 이 밤에.”

  “그럼 밤에 술을 마시지, 낮에 마셔?”

 자꾸 실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형, 나한테 뭔 얘기하려고 이러죠?”

  “응.”

  “뭔 얘긴데요?”

  “너 한 번만 때려 보자?”

 차은우는 또 웃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나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왜, 농담 같은가 봐?”

  “치고 싶으면 쳐요. 그럼 형도 아프겠지만.”

  “내가 왜 아파.”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아프면 자기도 아프다잖아요. 그런 말 몰라요?”

 그런 말이 있는 건 알지.

  “형. 우리 술 마시러 가지 마요.”

 그래, 그러자. 네 마음대로 하렴.

  “그냥 여기서 얘기해요. 술 마시면 술김에 이야기하는 것 같잖아. 나는 그런 거 별론데.”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별 볼 일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차은우 인생은 순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열어 놓고 보면, 어쩌면, 복잡한 이야기가 거기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은 존재론적으로 확실하지만 인식론적으로는 모호하다. 차은우는 이상하게 인식론적으로 봤을 때 확실하다.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차은우가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하라면 어려울지 몰라도 차은우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으면 전자보다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을 자신이 있으니까. 구태여 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내가 이렇게 차은우를 생각하고 있고, 그거면 충분하다.

  “차은우.”

 이름을 부르고,

  “네, 형.”

 응답을 하고,

  “은우야. 주말에 도서관 갈래?”

 차은우가 웃고.

  “아, 형은 진짜.”

 눈이 휘어지게 웃은 차은우가 내 얼굴을 붙들었다. 볼을 모아서 잔뜩 흔든 후에야 내 얼굴을 놓더니 말했다.

  “가자. 도서관.”

  “어쭈, 반말이야.”

  “빈아, 도서관 가자.”

 차은우의 반말이 기꺼웠고 동시에 더운 숨이 훅 끼쳤다. 차은우의 얼굴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입술이 아닌 이마가 맞닿았다. 때로는 한 번의 이마 맞대기가 백 번의 뽀뽀를 대신하는 법이다.

  “그래, 가자.”

 차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금기라면, 차은우의 이름을 발음할 때 내 몸을 관통하는 이 느낌이 금지된 느낌이라면 나는 지옥에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주말의 도서관을 위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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