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

2019 가을호
작성자
리콜라
작성일
2020-11-12 16:32
조회
4


 

 

 

1.

 

은우는 달리는 차 창밖을 내다봤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산맥은 끝이 없었다. 산은 일렁이며 나아가고자 하는 은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는 답답함에 시선을 내렸다.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잠이 들었는지도 몰랐는데 보이는 어둑한 풍경에 놀라 가슴이 선뜩했다. 창틀에는 무당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분명 창문은 전부 닫아놨는데. 무당벌레는 작은 날개를 펴고 날갯짓을 하며 유리창 위로 앉았다. 은우는 그 움직임이 거슬려 작은 벌레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꾹.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 박혀있었던 작은 벌레는 한 줌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으깨졌다. 우아하게 뻗은 손가락을 비비듯 뭉개니 흘러나온 진액에 손끝이 끈적였다. 차가 멈추자 은우의 어머니가 뒤척였다. 은우는 서둘러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 그리고 한때는 무당벌레였을 잔해를 버리며 생각했다. 아 좆같네.

 

은우의 아버지는 효심이 남달랐다. 세간에서 그는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는 둘도 없는 효자였다. 성공한 기업가인 그는 노모를 위해 산속에 별장을 지었다. 거대한 부지 위에 세워진 별장은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 있었다. 본채 뒤 편에 세워진 별채는 그사이에 산책로와 정원을 끼고 있어 동떨어진 곳이었다.

시공 직전, 그는 어머니께서 온천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저 산꼭대기에 흐르던 온천수의 물길을 부지로 끌고 왔다. 이를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시장과 함께 보름간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그의 눈물겨운 효심에 감동한 시장은 파이프를 연결하는 공사를 허가한다는 공문을 내렸다. 결국 별장 본채 지하에는 거대한 온천탕이 만들어졌다. 그의 어머니 박순자는 아들이 만든 별장에 크게 기뻐하며 남은 생을 이곳에서 보내겠노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유골을 이곳에 뿌려달라는 유언과 함께 임종을 맞이했다. 그게 바로 차은우가 이 빌어먹을 산골짜기로 오게 된 이유였다.

 

밤공기는 서늘했다. 비가 내린 산은 안개가 짙었다. 기세가 꺾인 더위는 산 밑으로 속절없이 밀려났다. 별장 관리인과 그의 손자가 본채 앞에서 차씨 일가를 맞이했다. 관리인의 손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생글거리며 인사한 관리인의 손자는 트렁크로 향했다. 혜진은 찌푸린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관리인은 그제야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내 곧게 편 허리와 굳게 다문 입매가 그의 고집을 짐작할 수 했다. 은우는 저와 비슷한 체격이던 그의 손자를 떠올렸다. 박순자는 은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허리가 굽어 있었다. 순자의 굽은 허리는 아들의 효심을 절절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뒤늦게 차에서 내린 은우의 아버지가 손을 뻗었다. 아이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관리인은 그 손을 힘주어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예상외의 악력에 멈칫한 은우의 아버지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여전히 정정하셔서 다행입니다. 관리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손자가 기사와 함께 짐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짐은 이게 다인가요? 손자의 말에 은우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혜진의 어깨를 감쌌다. 당신 많이 피곤하지? 혜진은 그 손을 뿌리치고 걸었다. 은우의 아버지는 허공에 뜬 손을 쥐다 피더니, 혜진을 따라 들어갔다. 뭐야, 이건 어떡하라고. 관리인의 손자가 중얼거렸다. 관리인은 손자의 손에 들린 캐리어를 급히 뺏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손자는 순식간에 비어버린 손에 멋쩍게 웃었다. 너 거기 가서 그거 좀 가져와라. 두루뭉술한 말에도 손자는 망설임 없이 발을 뗐다.

 

 

 

“쟤 이름이 뭐예요?”

 

 

 

은우가 물었다.

 

 

 

“아실 것 없습니다.”

 

 

 

관리인은 은우를 뒤로하고 걸었다. 남겨진 은우는 홀린 듯 손자의 뒤를 밟았다. 그는 정원을 지나 본관 뒤편으로 들어갔다. 허리께까지 오는 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낮게 위치한 불빛은 앞서 걷는 손자의 다리를 비췄다. 은우는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발을 쫓았다. 아무리 걸음을 재게 놀려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손자는 산책로가 끊기고 등이 사라진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탁한 어둠 속에서 은우는 사박거리는 발소리를 따라 걸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 채 따라나선 길은 녹슨 철문에 다다르고서야 멈췄다.

 

 

 

“왜 따라와?”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아는 거면 알려 줄 테니까. 관리인의 손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창고 문을 딴 그는 전등을 켜고 안을 헤집었다. 주인이라도 되는 양 손길은 거침없었다. 빨간 고무가 발린 목장갑을 꺼낸 그가 몸을 돌렸다. 그런 모습이 아니꼽던 은우가 그의 앞을 막았다. 눈이 마주쳤다. 스칠 듯 밀착된 가슴에 은우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 그림자 진 얼굴이 자신을 비스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넋 놓고 바라보던 은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본채 구경해본 적 있어? 아니. 왜? 허락을 못 받아서. 의외다. 은우의 말에 그가 웃었다. 개구지게 올라간 입꼬리에 시선을 뺏겼다. 뭐가 의왼데? 그냥 들어와도 아무도 모를 텐데. 허락 같은 거 없어도. 그는 웃음을 거두고 은우를 보기만 했다. 대화가 끊기자 알 수 없는 것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날벌레가 전구에 부딪혀 타들어 가는 소리, 귀뚜라민지 뭔지 모를 것들의 날개 비비는 소리, 사람이 지르는 비명 같은 고라니 울음소리. 산의 밤은 소란스러웠다. 굳은 눈매는 싸늘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각 외로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은우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미묘하게 날이 선 태도로 그가 대답했다. 은우야 나 말 잘 들어.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리고 은우를 밀치며 길을 되돌아갔다. 은우는 급히 그를 쫓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내 이름 말한 적 있어? 너희 할머니가 얘기해주셨어. 난 네 이름 몰라. 알아서 뭐 하게. 불공평하잖아. 그는 걸음을 멈췄다. 문빈. 성이 문, 이름이 빈. 그는 한 번의 발걸음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의 무감함이 은우를 안달 나게 했다. 어느새 둘은 본채 앞 정원에 다다랐다. 불 켜진 별장이 문빈의 등 뒤에서 빛났다.

 

 

 

“얼른 들어가.”

 

 

 

 

 

2.

 

하늘은 무서우리만큼 청명했다. 차씨 일가는 정박해둔 모터보트에 올랐다. 마지막 유언을 지킬 차례였다. 막힘없이 떨어지는 볕은 눈부셨다. 은우는 눈을 찌푸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를 보내는 길은 너무 멀었다. 모든 사람이 배에 타자 무영이 배에 시동을 걸었다. 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배는 소란스레 강물을 헤치고 나아갔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은우의 아버지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우는 이는 그뿐이었다. 유골함이 비어갈수록 그의 흐느낌은 더 커졌다. 은우는 며칠째인지도 모를 그 울음소리가 지긋지긋했다. 지루해진 은우는 눈부시게 부서지는 포말에 눈을 돌렸다. 모터 소리가 요란했다. 얼굴로 튀는 물방울이 거슬렸다.

흐느낌이 잦아들 무렵 은우는 강에서 눈을 돌렸다. 무영의 옆에 앉은 문빈은 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우는 다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 봤을까? 은우는 지루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행여 그가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할까, 덜컥 겁이 났다. 배는 방향을 돌려 선착장으로 향했다. 뭍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은우의 아버지는 작게 훌쩍였고 혜진은 그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문빈은 여전히 은우를 바라봤다. 은우는 그 시선을 피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은우는 배에서 내려 고개를 돌렸다. 문빈은 관리인을 도와 배를 묶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은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끈질겼던 시선이 떠나자 아쉬웠다. 매듭을 지은 문빈은 몸을 돌렸다. 불시에 마주친 눈에 은우의 몸이 굳었다. 그가 다가올수록 운동화 밑창으로 느껴지던 시멘트 바닥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문빈이 제 앞에 서자 은우는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너 구경해 본 적 없댔지.”

 

 

 

오늘 올래? 문빈은 입을 다무는 것도 잊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헛웃음에 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파도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문빈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그래 좋아.

 

 

 

“나 들어가도 돼?”

 

 

 

문빈이 현관 앞에 선 채로 물었다. 은우는 기가 막혀 되물었다. 너 진짜 그런 거 신경 쓰고 살아? 그 말에 빈이 웃었다. 그러나 발은 뿌리박힌 듯 그대로였다. 나 들어가도 돼? 반복되는 말에 은우는 입을 다물었다. 불현듯 은우는 지금이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생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현관 손잡이를 쥔 손은 굳어 뻣뻣해졌다. 세차게 뛰는 심장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지도 몰랐다.

 

 

 

“안 된다면?”

 

 

 

은우의 말에 문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곤란하지. 뭐가? 문빈은 잠시 머뭇거리다 현관 안으로 손을 뻗었다. 현관 너머로 들어온 팔꿈치에서부터 피가 흘렀다. 손톱 끝에 방울지며 떨어진 피는 대리석 발판 아래 고였다. 은우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볼을 씹었다. 삼킨 비명은 뱃속을 할퀴었다. 문빈은 피를 흘리며 가만히 은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활짝 열린 문으로 밤바람이 들어왔다.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가 살랑였다. 영원 같던 찰나가 지나고 끝내 은우는 대답했다. 들어와. 문빈은 웃으며 현관에 발을 들였다. 고마워, 은우야. 팔뚝을 따라 흐르던 피는 현관 문턱을 넘자 멈췄다. 그 순간 은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지나왔음을.

은우는 흥분감에 고취됐다.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거칠 게 없었다. 은우는 창백한 문빈을 이끌고 어두운 별장 안을 휩쓸었다. 여긴 거실, 여긴 주방, 그리고 이 밑으로 내려가면 욕실……. 탈의실을 지나 문을 열자 수증기가 자욱했다. 이거 만든다고 난리였대. 은우의 목소리는 천장에 부딪혀 메아리가 됐다. 손에 잡힌 문빈의 손목은 힘없이 덜렁거렸다. 한참을 끌려다니던 문빈은 우뚝 서서 말했다. 은우야, 나 배고파. 정신없이 움직이던 은우의 몸이 멈췄다. 이런 거 말고… 네 방으로 가자. 은우의 얼굴이 빨개졌다.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그는 달아오른 귀를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문빈을 이끌었다. 쿵쿵. 발소리가 별장을 울렸다.

 

 

 

 

 

3.

 

둘은 입을 맞추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에도 정신없이 서로의 옷을 벗겼다. 문빈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은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말문을 열었다. 기회를 줄게 은우야. 거절해도 괜찮아. 다 늙은 사람들도 막판에는 결국 못 하겠다고 많이들 그러더라. 너는 아직 어리고, 젊고, 또 살날도 많으니까 쉽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은우야. 그러니까,

 

 

 

“그럼 나 잡아먹히는 거야?”

 

 

 

묵묵히 문빈을 바라보던 차은우가 물었다. 단추가 죄 뜯긴 셔츠를 여미지도 않았다. 밀쳐진 자세 그대로였다. 한없이 가벼운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은우의 얼굴은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문빈은 그 눈에 숨이 턱 막혔다. 너 나한테 잡아먹히는 거야. 목도 빨리고 피도 빨리고 아무튼 내가 다 빨아먹어서 너 죽을지도 몰라. 그 말에 은우는 환하게 웃었다. 얘는 이게 좋은가 봐. 문빈은 기가 찼다. 첫 만남부터 싸가지가 없더라니. 순자의 뼛가루를 저 강에 뿌릴 때도 울지 않고 남몰래 부루퉁한 게 만만찮은 후레자식이구나 싶었다. 순자가 저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괘씸한 놈. 내가 잡아먹는다는데도 울지도 않고, 소리 지르지도 않고, 나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문빈의 생각이 길어졌다. 뭐야, 다 빨아먹는다며. 보름달보다 환히 웃던 은우가 쏘아붙였다. 순식간에 눈앞이 뒤집혔다. 문빈의 등이 침대에 닿았다. 문빈은 순자가 하나뿐인 손자를 어찌나 귀히 여겼는지 기억했다. 입안에 굴리면 다디단 알사탕처럼 귀엽다더니 그렇지도 않잖아. 은우는 천천히 문빈의 몸을 쓸었다. 안 죽이면 안 돼? 마땅히 물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던 문빈이 물었다. 은우의 쇄골 위로 입술이 가볍게 스쳤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은우는 문빈의 뒤통수를 끌어안았다. 마음대로 해. 그제야 통증이 찾아왔다.

문빈은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뭉근하게 얽히던 혀와 허리를 감던 다리, 이불을 움켜쥐던 손의 움직임도 전부 꿈만 같았다. 으레 보통 사람이라면 무의식중에 할법한 뒤척임도, 작게나마 움직일 들썩임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은우는 조심스레 문빈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댔다. 미약한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보단 시체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은우는 빈의 서늘한 몸을 이리저리 더듬다 곁에 누웠다. 침대는 두 사람이 눕기엔 비좁았다. 은우는 몸을 뒤틀다 문빈에게 다리 하나, 팔 하나를 올렸다. 가만한 가슴에서는 작은 박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목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통증은 그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했다. 은우는 보다 힘을 주어 그를 끌어안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고요한 방안에서 들리는 숨소리는 오직 하나였다. 은우는 더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4.

 

그늘 안은 시원했지만, 햇빛은 여전히 따가웠다. 은우의 아버지는 바삐 움직였다. 슬픔을 잊으려는 듯 주변을 들들 볶았다. 혜진은 그 꼴이 보기 싫다며 정원으로 몸을 피했다. 은우는 문빈을 찾아다녔다. 인부들은 그의 지휘에 따라 잡초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 흙을 걸렀다. 무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리인이 말했다. 아는 정원에 사모님이랑 있을 겁니다. 목소리에는 가시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된 일정에 지쳤을 법도 한데 그는 붉어진 얼굴로도 기세가 있었다. 그의 말에 은우는 눈을 치켜떴다. 후레자식치고는 온순한 반응이었다. 어차피 가실 분들이 쓰잘데기 없이……. 관리인은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했다. 허나 그뿐이었다. 그의 거죽은 이미 닳고 닳아 얇아진 채 늘어져 있었다. 무영을 위아래로 훑은 은우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싱그럽게 웃은 은우는 문빈을 찾아 나섰다. 그는 은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곡괭이를 들었다. 돌을 골라낸 흙을 파고드는 소리가 요란했다.

 

잔디밭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돌고 있었다. 혜진과 문빈은 햇빛 아래서 함께 걸었다. 은우는 그런 둘을 발견하고 몸을 세웠다. 혜진은 잔디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거닐며 문빈의 얘기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인의 이름은 무영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무영은 사냥꾼이었다. 고라니도 잡으셨고 겨울엔 멧돼지도 잡으셨어요. 어머나. 걔들도 날 추워지면 먹을 게 없다고 내려와서 밭도 다 파헤치고 그래서 부르는 곳이 많았거든요. 그럼 먹어도 봤니? 그 말에 문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고기는 못 먹어봤어요. 할아버지가 그런 건 회충 생긴다고 먹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소리가 들릴 거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유독 문빈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목소리가 선명해질수록 목덜미의 통증 또한 함께 선명해졌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땅 위를 걷는 문빈은 허상처럼 일렁였다. …떠날 것 같아요. 계시와도 같은 음성에 은우는 정신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그 둘 사이로 성큼 발을 옮겼다. 혜진은 다가오는 은우를 반기다 눈을 크게 떴다. 은우야 너 땀이, 혜진은 손을 뻗어 은우의 이마를 훔쳤다. 은우는 시선을 내려 문빈의 발을 바라봤다. 문빈은 그런 은우의 시선을 피해 발을 뒤로 뺐다. 순간 은우의 눈이 번뜩 빛났다. 엄마 나 어지러워요. 은우는 부러 휘청였다. 창백해진 얼굴에 흐르는 땀이 신뢰를 더 했다. 빈아 은우 좀 방에 데려다줄래? 얘가 왜 이러지 정말…. 문빈은 혜진의 말에도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망설였다. 은우는 자연스레 몸을 문빈에게 기댔다. 이내 문빈은 자신의 허리에 감기는 팔을 쳐내지 못하고 그를 부축했다.


본채 안에 들어서자 문빈은 은우에게 끌려갔다. 어쩔 줄 몰라 손을 허둥거리는 모습이 볼품없었다. 은우는 문빈을 끌고 가면서도 속이 끓었다. 그늘진 복도를 가로질러 빈방으로 들어갔다. 은우는 문빈을 벽에 밀치고 멱살을 잡았다. 은우야 문 닫아! 문빈은 열린 문을 힐긋거리며 속삭였다. 아무리 손에 힘을 주고 눌러도 서늘한 피부는 단단했다. 얼른, 얼른. 너 이러다 들키면 안 되잖아. 목을 졸리고 있는 주제에 걱정하는 꼴이 우스웠다. 물어. 은우는 문빈의 입에 자신의 손목을 물리며 말했다. 먹으라고. 날카로운 송곳니에 여린 피부를 들이밀었다. 문빈은 눈을 감았다. 혀 아래 눌린 손목이 떨렸다. 턱에 힘을 주어 깨물었다. 목구멍을 타고 치기 어린 분노가 넘어왔다. 은우는 충혈된 눈으로 문빈을 바라봤다. 나는 이제 네 거잖아. 문빈은 은우의 손목을 문 채 눈만 깜빡였다. 빈아, 나는 이제 네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세가 사그라든 은우가 문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 버리지 마. 문빈은 말없이 은우의 등을 토닥였다.

 

 

 

 

 

5.

 

물어뜯긴 몸이 욱신거렸다. 은우는 욕탕에 몸을 담그며 울먹이던 문빈을 떠올렸다. 하루 반나절 동안 둘은 침대도 없는 방에서 붙어먹었다. 종래에는 배부르다며 거부하는 문빈의 입에 억지로 물렸다.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면서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물러나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손을 잡았다. 응석을 부리면 순순히 받아줬다. 은우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문빈이 중얼거리는 말 속에 자신은 이미 몇 번이고 얘기했던 것만 같은 익숙함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머리가 어지러워 일어나려던 찰나, 몸이 탕에 처박혔다. 바닥에 부딪힌 코가 얼얼했다.

은우는 목을 조르는 팔을 긁었다. 은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손은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면 너머 얼굴은 끊임없이 흔들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은우의 손톱에 긁힌 살점이 맺혔다. 은우는 쉬이 찢기는 피부에 괴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무영이구나. 젊을 적 이름을 날렸다는 포수는 여전히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뜨거운 온천수가 코로 넘어왔다. 공기 대신 물이 속에 들어찼다. 악착같이 붙들던 은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발버둥 치던 다리도 물에 잠겼다. 뒤늦게 달려온 문빈이 욕탕의 문을 열었다. 문빈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왜? 무영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소리를 냈다. 무영은 아주 오래전, 자신이 은우만한 나이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나도 죽일 거예요?”

 

 

 

무영의 말에 문빈의 눈꺼풀이 떨렸다. 무영은 은우의 목을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문빈이 대답했다.

 

 

 

“미안.”

 

 

 

둔탁한 소리가 욕탕에 울렸다. 무영아, 정말, 정말 미안해. 문빈은 은우를 택했다. 이마의 반이 으깨진 무영은 문빈의 사과를 듣지 못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무영은 한쪽 눈을 감지 못한 채 온천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솟아오르는 온천수에 무영의 피가 퍼졌다. 문빈은 입과 코를 틀어막고 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증기에 앞이 흐렸다. 깨진 욕탕 난간을 타고 물이 흘러내렸다. 문빈은 휘적거리며 무영을 지나쳐 은우의 앞으로 기어갔다. 물속에 잠긴 은우를 건지자 그의 팔이 늘어졌다. 은우야 제발 죽지 마. 탕에서 나온 문빈은 가슴께를 힘껏 눌렀다. 입안 가득 숨을 머금고 은우에게 불어넣었다. 굳은 지 오래인 폐는 숨을 담을 수 없어 그 한 줌의 숨이 한계였다. 제발, 제발, 제발……. 부족한 숨에도 은우는 깨어났다. 은우는 울컥 입으로 물을 토했다. 빈아 날 데려가. 헐떡이며 움직이는 입술은 젖어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서 빛이 났다. 문빈은 애써 웃어 보이며 은우에게 입을 맞췄다. 기나긴 입맞춤이 끝나고 문빈은 은우를 젖은 타일 위에 눕혔다. 문빈은 욕탕 타일을 긁어내리며 기도했다. 숨소리가 멎었다. 정적 속에서 은우가 눈을 떴다.

 




※ 이 글은 영화 "Let me in" (2010) 모티프를 기저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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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죽빈살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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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다
오각형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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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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