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救援)

2019 가을호
작성자
백향과
작성일
2020-11-12 16:43
조회
3

들어가기 전,

글쓴이의 종교관과 본 글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34:4)

 

나는 왜 울까.

마른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니 눈물이 묻어났다. 심장께에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몇 밤을 더 지세워야 이 고통이 끝날까. 돌아누워 물이 새 누렇게 변한 천장을 응시했다. 거멓게 피어오른 곰팡이와 누런 누수 자국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크게 흔들렸다. 원래 물이 저렇게 많이 샜던가? 가장자리가 한 여름의 아지랑이처럼 어지러이 움직였다. 이내, 천장을 누비던 점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바퀴벌레임을 알아챘다. 누군가 내게 바퀴벌레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위에서 아래로 추락해 덮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열일곱의 나는 머리를 싸매며 경악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녀석을 눌러 죽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먹을 테면 먹어봐. 어쩌면 그 편이 내가 덜 아프게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빗물이 창을 때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눈을 붙인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절하듯 잠들었는데 운이 안 좋게도 불청객이 찾아왔다. 비가 오면 배수구로 빗물이 역류해 집이 잠길 수도 있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전화, 전화를 하자.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쥐는데 손끝이 찌릿거리며 아파왔다. 또, 액정을 내려 누르는 피부 표면으로부터 통증이 올라왔다. 통화 연결음이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갈랐다.

"아... 여보세요?"

- 빈아, 무슨 대예배 시간에 전화를 하니.

"아, 아... 죄송해요. 일요일인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 그래서? 왜 전화했어. 얼른 말해,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비가 많이 와서요... 저번에 비 오면 또 물 샐 거라고 하셨잖아요."

얘가 또 이러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주머니의 대답은 저를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 날이 이렇게 맑은데 무슨 소리야? 너 자다 깼니? 나중에 내가 내려갈 테니까 예배 끝날 때까지 기다려.

툭 하고 전화가 끊겼다. 분명히, 분명... 빗소리가 들렸는데. 그래서 잠에서 깼는데. 휘청거리며 방 밖을 뛰쳐나와 부엌을 바라보니 노란 햇빛이 창살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 바닥도 바짝 말라 있었다. 평소처럼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만 여럿 보일 뿐이었다.

두 손으로 머리통을 싸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왜 이럴까. 나의 하루는 왜 바뀌질 않을까. 나는 왜 점점 더 아픈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볕도 잘 들지 않고 눅진한 공기가 가득 차 있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이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온 저는 오늘도 감히 탐욕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바퀴벌레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종교를 믿지 않게 되고 나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어서 종교를 믿을 수 없게 된 걸지도 모른다. 죄인이 되어 돌팔매질을 당하듯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두 뺨과 턱 언저리가 아려온다. 남자를 사랑했다. 이제 와 떠올려보면 그건 사랑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저 자신을 수없이 돌이켜보려 해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고 그 사람과 언제나 함께 하고 싶었고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그 사람의 모든 것에 욕정이 들끓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사랑이고, 이것이 남색이라 여긴다면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도무지 반박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너 같은 쓰레기가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거라고! 그 순간, 두꺼운 손바닥이 귀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쓰고 있던 안경이 한순간에 바닥에 처박히고, 하늘이 한 바퀴 돌더니 귀가 멍멍하게 울렸다. 아무래도 고막이 터진 모양이었다. 아버지로부터 계속되는 뺨 세례에도 저는 그저 맞고만 있었다. 애초에 세례라는 것이 죄악을 씻어내는 행위가 아닌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맞아서 해결될 일이면 맞고 있겠다고, 폭행까지도 감내하겠다고 말이다. 십여 년을 하나님을 위해 살아왔다. 제 이름을 욀 줄도 모르는 시절에 찬송가는 흥얼거렸고, 원(圓)도 못 그리던 시절에도 십자가는 그릴 줄 알았다.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해 달라며 매년 매월 매주 매시간 양손을 꽉 껴 쥐고 울었다. 하지만, 그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저를 강하게 붙들고 있던 신앙심이라는 기둥은 중심부터 뼈대가 뒤틀려 엉켜 내려앉게 되었다.

로마서에 따르면, 남자와 남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 그들의 그릇됨에 상응하는 대갚음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육신과 정신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되어 지옥의 문턱에 올라섰을 때, 나지막이 외치고 싶은 변명까지 그럴듯하게 생각해 두었다. 저는 그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 남자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타락한 마음은 그의 발끝 언저리에도 닿지 못했습니다. 음욕을 품은 적은 있지만, 동침하는 등의 가증스러운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옥 불못으로의 던지움을 받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어머, 이게 다 뭐야. 화장실 문은 또 왜 이래?”

오셨어요. 빈은 예배를 마치고 온 주인집 여성의 인기척에 상체를 일으켰다. 으윽. 순간 눈앞이 까매지며 다시금 현기증이 났다. 저혈압 증상이었다. 그녀는 현관에 서서 집 안 상태를 들여다봤다.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듯 보였다. 주여… 그녀의 작고 낮은 한탄 소리에 빈은 민망한 듯 괜히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신발을 최대한 입구 쪽으로 벗어둔 후, 현관에 명품 백을 내려놓곤 주방으로 향했다. 텅 빈 싱크대와 마시다 만 생수병만 널려있는 냉장고를 본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빈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빈아, 너 괜찮니? 밥도 잘 안 챙겨 먹는 거 같은데. 전에 네 누나가 보내준 반찬들은 어쩌고?”

빈은 괜찮다는 말이 목울대에 걸려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아… 그거 버렸어요. 곰팡이가 생겨서. 통째로 버렸어요.”

빈의 옆에 쪼그려 앉아 주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옷을 개던 여성은 눈에 보이는 옷 두 개를 빈에게 내밀었다.

“안되겠다. 씻고 옷 갈아입고 나와. 이모 방금 교회에서 급식 해놓고 왔거든? 가서 뭐라도 챙겨줄 테니까 좀 먹자. 너 이러다 죽겠어!”

빈은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집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직감했다. 빈이 살고 있는 반지하는 원래 집이 아니라 창고였다. 중개인에게 수중에 있는 돈이 이거밖에 안된다며 사정사정하니 제일 마지막으로 보여준 집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천지에 잿빛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미터는 되어 보이는 목재 십자가가 공기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또, 좌우로 쌓인 종이 박스 안에는 몇천 장은 되어 보이는 교회 전도지가 들어 있었다. 집 주인분이 이 건물 뒤에 있는 교회 권사님이셔. 중개인이 창틀에 붙은 노란 테이프를 뜯으며 말했다. Jesus loves you. 빈은 전도지 위의 얇은 펜으로 날려 적은 듯한 글귀를 손으로 한 번 매만져 보았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절 언제까지 시험하실 생각이신가요. 울며 겨자 먹기로 부동산 계약을 끝낸 후, 입주날 빈은 집 주인을 처음 만났다. 또, 처음 방을 보러 왔을 때와는 달리 바닥재는 새것인 듯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고 방 안에는 흰색 매트리스가 들어서 있었다. 걸레로 바닥을 문질러 닦던 그녀의 첫 마디는 어서 와. 둘째 마디는 종교 있니? 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짓말. 셋째 마디는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 봐. 시선이 바닥에 놓인 가죽 성경 책에 닿았다. 빈은 그녀와의 첫 만남이 꽤 우악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끌려온 손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교회 앞이었다. 빈은 하늘로 솟아 있는 파이프 탑을 보니 숨이 턱에 닿는 것 같았다. 닫힌 유리문 안으로 불 꺼진 예배당이 보였다. 그러고 서 있어? 그녀가 물었다.

어지러워서요.

“..저 기독교 아니잖아요.”

“빈아,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어린이들을 막지 말라고 하셨어. 뭐, 밥 먹으러 온 거긴 한데.. 예수님은 반기실거야. 네가 정 불편하면 뒷문으로 들어가자. 그쪽이 식당이라서.”

그녀는 빈의 손목을 붙잡고 설교하듯 말했다. 그녀가 침을 튀기며 말을 할 때마다 언제부터 씹고 있었던 건지 모를 탁한 색의 껌이 보였다.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빈이 먼저 손을 뿌리치듯 내려놓았다. 알겠어요. 빈은 그녀를 따라 교회 건물을 한 바퀴 둘러 나온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말끔한 식당 안엔 밥 짓는 고소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무언가 씹어 삼키고 싶은 의욕이 들었다. 아주 정적인 교회였다. 밝은 나무 바닥과 나무 십자가 벽걸이가 달린 흰 벽, 모서리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찬송가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역설적이게도 빈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었다.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왜 이러지, 빈이 제 심장 언저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던 그녀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식판을 빈의 앞에 내려놨다. 뭐 하니? 먹어. 빈은 고개를 가볍게 꾸벅인 뒤 수저를 들었다.

“박 권사님, 왜 다시 오셨어요?”

국을 뜨던 빈이 뒤통수에서 들리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남자가 서있었다. 그것도, 아주 제 취향인.

“어머! 은우야, 아직 안 갔니? 어쩐지 문이 열려있더라.”

“오늘 청소는 청년부가 하기로 해서요. 스터디도 있고요.”

이 분은 새로 오셨나 봐요? 못 보던 얼굴인데. 대학생? 은우는 고무장갑을 벗으며 자연스럽게 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희고 얄쌍한 얼굴에 갈빛 앞머리가 땀에 조금 젖어 있고 적당히 얇고 붉은 입술이… 빈은 은우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오른손에 쥔 숟가락으로 국그릇 바닥을 이리저리 긁고 있었다. 빈은 실수를 했다. 또, 실수한 본인을 자책하고 있었다. 사람은 첫눈에 반하면 처음에 상대방의 눈을 한 번 피했다가 다시 눈을 마주친다. 딱 그 모양새였다. 남자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는데,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빈에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우라고 해요. 차은우.” 먼저 손을 건네 왔다.

빈이 손바닥의 땀을 바지춤에 슥슥 닦아낸 후 은우의 손을 붙잡았다. 맞잡은 손이 허공에서 정체없이 흔들렸다. 빈과 맞잡은 은우의 손은 차가우면서도 보드랍고 또 물렀다. 언제 손을 놓아야 하지, 이제 놓아도 되나.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빈은 눈동자만 도르륵 굴렸다.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맞으니, 빛이 들지 않는 심해 같은 까만 눈동자로부터 여러 감정들이 마블링처럼 얽혔고 그 파동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아, 내 손 차갑지. 갑자기 손을 떨어서 놀랐네… 미안.”

손 씨름을 하듯 붙잡고 있던 손을 먼저 놓은 건 은우 쪽이었다. 순간 빈의 손이 허공에 떴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핑글핑글 돌아가는 머리 때문인지 빈의 입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셋의 대화는 재미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빈은 저 스스로의 사회성을 고찰하고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뱉으려던 일련의 단어들이 죄다 엉켜버려 수도 없이 말을 더듬는 건 물론, 물어오는 것마다 긍정적일래야 긍정적일 수가 없는 대답들이 즐비했다. 둘은 잔디밭 위에서 뛰며 공을 주고 받는 축구 선수 같았고, 가운데에 앉은 박 권사는 자동으로 심판이 되었다. 옐로우 카드, 문빈을 향한 포교 발언은 금지야. 팔짱을 끼고 앉은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둘의 말 경기에 끼어들곤 했다.

대학생이야?

아니. 일주일 나가고 자퇴했어.

그럼 지금은 뭐 해?

그냥 집에 있어.

집에서 뭐 하는데?

누워서 고양이 동영상 보기.

너 진짜 특이하다.

그런가. 빈이 시선을 돌리며 손톱을 세워 목을 긁으면, 은우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무슨 대화가 이런가 싶다가도 빈은 은우의 반달같이 고이 접힌 눈을 보면 윗 가슴 속이 간지러웠다. 빈은 손을 몸속에 집어넣어 그 부위를 박박 긁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멍울진 마음이 계속해 속을 두드렸다. 마음에서 종이 치는 것 같았다.

“우리 아침마다 만날까?”

차은우는 구원을 약속했다.

 

죄인은 제 발로 심판대에 올랐다. 오후 네 시에 밥을 먹고, 오후 다섯 시에 잠에 들면 하얀 달이 뜬 두 시 즈음에 의식이 깨어 몽롱한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며 끝없는 환각에 시달렸다. 오전 다섯 시 정각이 되면 교회는 온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울 기세로 종을 울렸다. 매일 같이 행해지는 새벽 기도의 시작이었다. 빈은 종소리가 귓가에 닿으면 기계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제 손바닥으로 양쪽 뺨을 두 번씩 치고 안경을 끼면, 양쪽 볼이 한껏 상기된 얼굴이 화장실 거울로 보였다.

얼룩덜룩 손자국이 남은 유리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다시 큰 나무 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가면 이미 설교가 시작된 예배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빈은 매번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 들어가 뒷자리 한구석을 차지했다. 두 손을 모으고, 책 받침대에 이마를 대고 잠시 눈을 감으면 오 분 안에 설교는 끝난다. 이어 묵상 기도의 시간이 찾아오고, 낮은 음질의 바이올린 연주 음악이 장내를 가득 채운다. 빈은 눈을 가만히 감고 은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어제의 은우는 눈처럼 새하얀 스웨터를 입고 왔었다. 자신의 양 팔을 쓰다듬으며 입으로 으추 으추 하는 소리를 내던 은우가 아른아른 눈앞에 보이는 듯싶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을 뜨면.

제 앞에 저와 같은 자세로 묵상 기도를 드리는 진짜 차은우가 있었다.

 

미카엘.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대천사의 이름을 따다가 네게 붙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의 무의식 중에는 항상 네가 있었는데, 꿈을 꾸는 동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래 고민하곤 했다.

자비, 정의, 성별(聖別). 자긍과 수호… 미카엘은 자신의 검으로 모반을 일으킨 사탄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또, 지혜의 나무로부터 선악과를 따 먹고 저 드넓은 에덴동산을 달리던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내쫓아 버리기도 했다. 네가 미카엘이라면 나는 누구일까. 깊숙이 페인 옆구리 사이로 콸콸 쏟아지는 체액을 막아보겠다고 양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사탄일까, 선악을 알게 해주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 한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 짐승의 가죽을 입은 채로 쫓겨난 아담일까.

둘 중 하나가 되겠지만, 나는 차은우가 오래도록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길 바랐다.

 

문빈은 너무 부지런한 차은우의 삶을 따라 하는 게 벅찼다.

새벽 기도가 끝나면 그 둘은 자연스레 식당으로 발을 옮겨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차가워진 손은 호호 불어가며 급식 봉사에 나갔다. 공중을 응시하는 수많은 노인들의 텅 빈 눈동자를 보면 기다란 국자를 쥔 빈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그를 귀신같이 알아챈 은우는 웃으며 가볍게 빈의 어깨를 토닥였다. 봉사가 끝나면 은우는 토익 수업이 있다며 교회를 떠났고, 빈은 교회 안의 두 평짜리 공부방 바닥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한 쪽 머리가 아파오면 눈을 꼭 감고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먼지 쌓인 방 안에서도 빈은 은우를 그리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은우야, 은우 오빠, 은우 형. 어느 곳에서나 많은 교인들이 은우를 알아보고, 은우의 안부를 묻고, 은우의 옆자리를 탐내려 들었다. 그 속에서도 은우는 빈을 감싸고 돌았다. 얘는 빈이구요, 저랑 동갑이에요. 아, 저는 빈이랑 같이 앉기로 해서요. 요즘도 성경 공부하죠. 같이 할 친구도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그 손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빈이었다. 빈은 그런 은우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은우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조용히 경계했다. 젊으면 젊을수록, 다만 성별에 관계없이. 가끔은 은우의 옆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얍삽한 감정이 죄책감이 되어 마음을 눌러오면 그 상황 자체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래서 빈은 은우의 꾐에도 불구하고 청년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아버려 자신이 상처받을 것에 대비한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었다.

은우가 두꺼운 토익 서적을 품에 안고 공부방에 들어오면, 빈이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상태로 은우를 보며 웃어 보였다. 흐흐, 너 옆머리 또 다 눌렸어. 아이.. 어쩔 수 없는 거야 이건. 머리 좀 잘라야 하나, 빈은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칼을 손으로 슥슥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빈의 시선은 자연스레 성경 책과 노트 한 권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는 은우를 향했다. 빈의 치켜뜬 유리알 같은 눈동자 위로 목재 십자가를 등지고 선 은우가 비쳤다. 순간 흰 커튼이 펄럭이며 얼얼한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성경 공부라는 명목하에 은우와 빈은 캐러멜이 든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유선 노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먼저 의례로 은우가 얇은 연필로 첫 줄에 짧은 성경 구절을 적으면, 빈이 그 밑에 자신이 어제 잠들기 전 본 동영상에 나온 각종 고양이를 그렸다. 그러면 다시 은우는 빈이 그려놓은 고양이 옆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태양, 하고 작게 속삭였다. 하나님이 너한테 그림 실력은 안 주셨나보다. 빈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내일부터 그림 잘 그리게 해달라고 빌 거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빈은 은우가 외던 구절을 뺏어 말하며 김샜다는 듯 탁자에 고개를 떨궜다. 손목을 꺾어 연필로 은우가 그린 태양에 명암을 넣었다.

“네가 진짜로 바라는 게 그거야? 기도 시간이 아깝다.”

“글쎄. 진짜로 원하는 거?”

은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빈은 연필 끝을 입에 물고 그런 은우를 올려다봤다. 빈은 이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에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은우를 뒤로한 사물들이 하나 둘 흐려지며 원근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얼빠진 모양새를 한 빈을 일깨운 건 툭 하고 튀어나온 은우의 한 마디였다.

“결혼.”

나 사실 청년부 그만두고 싶거든. 은우는 심중에 묻어 놓았던 말을 꺼내듯 작아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빈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말았다. 마음속의 퓨즈가 팍 하고 녹아서 끊어진 듯, 무겁고 먹먹한 무언가가 빈의 가슴께를 꽉 눌러왔다. 빈은 ‘교회에 모든 걸 헌신하는 네가 왜?’보다 ‘네가 결혼을? 누구랑?’이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묻고 싶지만 묻지 않았다. 은우의 대답으로부터 올 충격을 피하고픈 감정이 궁금증을 뛰어넘었다.

“너는? 기도 시간에 뭘 그렇게 빌어.”

뭘 비냐니. 내가 새벽 기도를 다니며 떠올리는 건 네 얼굴밖에 없는데. 아니다. 네 얼굴, 네 표정, 네 행동, 네 팔과 다리… 네 몸. 육체. 빈은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묘한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부터 흘러나와 방 안을 휘감았다. 은우의 동공은 빈의 고동색 동공을 향해 있었고, 무심한 표정으로 그 큰 두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빈의 입술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신을 믿어?”

“…”

“구원이 필요해?”

 

해가 지며 핏빛 노을이 타오르는 천공이 창문 밖으로 보였다. 탁자를 문 쪽으로 밀어놓으면 간신히 요 하나를 깔 자리가 생기는데,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그곳에 나란히 누워 잠에 들었다.

우리는 꿈속에서도 손깍지를 낀 채로 축축이 빗물을 머금은 파란 잔디 위를 끝없이 달렸다. 햇살이 너무 따가운 나머지 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가, 머리 위로 탐스럽게 열려있는 새빨간 열매를 하나 따서 둘로 쪼개어 깨물었다. 두툼한 과육을 씹으면 입안 가득 달콤한 향이 돌았다. 이어 우리는 후드득 떨어지는 과즙에 어찌할 줄 모르며 입고 있던 흰옷으로 입가를 닦았다가 새빨갛게 물든 서로의 옷을 보고는 하하하 하고 웃었다.

 

장장하게 울려오는 종소리와 수많은 신도들의 발자국 소리가 엉켜 온 건물을 울렸다. 수요예배의 시작이었다. 오른손으로 그새 퉁퉁 부어오른 눈을 문지르던 빈은 눈을 감은 은우가 제 왼쪽 팔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훅, 하고 숨을 참았다.

“나 안 잤어.”

“…아, 뭐야.”

“키스할래?”



은우가 빈의 오른손을 잡아 올리며 입을 맞춰왔다. 눈을 감고 메마른 입술을 우물대면 빈이 은우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빈의 귓가에는 종을 가볍게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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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죽빈살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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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다
오각형 | 2020.11.12 | 추천 0 | 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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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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