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끼전

2019 가을호
작성자
슈가빈
작성일
2020-11-12 16:48
조회
3



 엄마, 달님이 저를 따라와요.

 

 

 

 

 

 

 

 

 

 

 

 

 

 

 

 

 

 

 

인생에 더는 즐거울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희열이나 보람을 찾는 것이 점점 더 버거워졌다. 그 무엇에도 이전처럼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다.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다가도, 오래지 않아 다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이 풍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다른 그 무엇도 내 삶에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숨이 무거웠다. 마치 흠결이 발견되기 직전의 하자품과도 같았다. 겉으로는 언뜻 남과 다를 바 없어 보일지언정, 발각된다면 그 가치를 잃고 버려질 것이다. 매일이 초조하고 힘겨운 탓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자꾸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스스로의 발끝만 쳐다보며 걷게 되었는지.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지옥 같은 침묵 속으로 들어선다. 생활감 없이 정갈할 뿐인 거실을 지나 바로 침실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저 어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눈에 보인 풍경에 나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을 뿐이다. 자신의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등을 보이며 제 집인 양 누워 있었다. 침실을 빠져나와 거실을 둘러보았다. 살풍경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집. 자신의 집이 맞았다. 그렇다면 침대 위의 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무단침입? 어떻게 들어왔지? 도어락이 고장 났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의 의문들이 스쳐지나갔다. 누군가 문을 고의로 망가뜨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창문 하나가 열려있었지만 안전장치가 있고, 무엇보다 이곳은 14층이었다. 그리고 침대 위의 남자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전에, 알몸이었다. 신종 변태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곳에 어떻게 들어올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혼란스러움에 머리만 싸매다가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막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알몸으로 웅크린 채 있던 남자가 스르르 일어나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머리띠?

 

 

변태인 줄은 알았지만 고약한 취미까지 있는 놈이었음이 틀림없다. 남의 집 침대에 알몸으로 드러눕는다는 발상부터가 이미 고약한 짓이었지만. 남자는 토끼 귀 모양 머리띠를 뒤집어쓴 채 두 눈을 꿈뻑 거렸다. 잠이 미처 깨지 않은 듯이 눈가를 손등으로 몇 번 훑더니, 게슴츠레 떠있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은우야!!!!!!!”

 

 

그 상태에서 달려드는 바람에 손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소파 밑으로 쑤욱, 들어갔다. 공격을 해오리라고 생각했던 괴한은, 오히려 내 품에 폭 안기며 어린아이처럼 가슴팍에 머리를 부비적댔다.

 

“왜 이제 왔어? 나는 은우가 얼른 보고 싶었는데. 기다리다가 잠들었잖아.”

 

 

변태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지금껏 이 얼굴 덕에 좋은 일 나쁜 일 다 겪어봤지만 알몸으로 달려드는 남자 스토커는 처음이었던지라 당황스러웠다. 얼굴은 한 번 보면 잊기 힘들게 생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대체 이 남자가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흔한 SNS도 전혀 하지 않는 성격인데, 나를 어떻게.

 

남자와는 눈높이가 거의 비슷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마냥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요즘 머리띠는 이렇게 실감나게 나오나? 얼빠진 생각마저 들었다. 결이 보드라워 보이는 털 결은 물론이고 안쪽에는 핏줄마저 비춰보였다. 움직임도 부드러웠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변태가 뒤집어쓴 머리띠를 세게 움켜쥐었다. 아악!! 변태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엄청나게 황당하고 억울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왜 그래? 하는데 범죄는 꼭 내가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 아파, 은우야.”

 

눈꼬리에 눈물방울마저 매단 채 애원하듯 말한다. 어이가 없어 다른 쪽 귀까지 콱, 움켜쥐니 그 다음 순간 머리띠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분명 두 손에 쥐고 있었는데.

 

 

“너무해. 아프단 말이야, 살살 다뤄줘.”

“…뭐야? 당신.”

 

 

경찰에 신고하려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보다 이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 남자는 누구고, 어떻게 이 집에 들어왔으며, 진짜 토끼 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머리띠는 어떻게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인지. 눈을 깜빡이자 남자의 머리 위로 다시 그 진짜 같은 머리띠가 얹어져있었다.

 

 

 

“나는 옥토끼야. 천신(天神)께서 나를 여기 보내주셨어.”

“옥토끼?”

“달에 사는 토끼 말이야. 기억 안 나?”

 

 

남자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까만 콩알 같은 눈동자를 내리깔자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도 같이 수그러들었다. 마치 그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머리띠가 아니다. 머리핀 같은 것도 아니다. 이건, 진짜 ‘귀’였다.

 

 

“옛날엔 매일 나를 봐주더니, 요즘 내 쪽은 쳐다봐주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너무 외로웠어. 내가 찧는 약초에 눈물 맛이 섞여서 효과가 떨어진다고 혼났어. 그래서 네 얘길 했더니 날 여기에 보내주신 거야.”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은우야, 나 널 만나려고 달의 바다에 뛰어들었어. 얼마나 캄캄하고 무서웠는지 모를 거야.”

 

 

그렇지 않으면 기어코 미쳐버린 걸까.

 

 

 

 

 

 

 

 

 

 

“사랑해, 은우야.”

 

 

 

 

 

 

 

 

 

 

 

 

 

 

 

 

 

엄마, 달님이 저를 따라와요.

 

 

 

 

 

 

 

 

 

 

 

 

 

 

 

어릴 때에는 제법 순진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탄 채 밤하늘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자동차가 움직이면 마치 달이 내 뒤를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저 커다란 위성이 오직 나를 위해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나를 특별한 누군가로 만들어주는 순간이었다. 그거 아니? 달에는 토끼가 살아. 아마 그 토끼가 우리 은우를 사랑하나봐. 어머니의 말은 달콤했다. 위험하니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안 된다며 아버지가 뒷좌석의 창을 닫아버렸지만, 그럼에도 달은 제 발자국 소리를 숨기고 조심스레 나를 따라왔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한참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단순한 착시현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은 몇 년이 지나고야 알았다. 그럼에도 달을 보며 걷는 것은 나의 습관이 되었다. 이를 테면, 하루 열두 시간의 물리학원 수업이 끝날 때 쯤. 혼자 외로운 발걸음을 거닐다보면, 점처럼 작아 보이는 38만 킬로미터 밖의 구체가 나의 고독을 나누어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달은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달에는 토끼 같은 것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으므로. 열 살 이후로는 그런 엉뚱한 생각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뭐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보고도 믿기지 않는 모습을 한 이 남자는. 순간 내가 취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한 차례 소동이 있은 후에는 집안의 술이란 술은 전부 하수구에 흘려보냈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두 번 다시는 입에 대지 않겠다고 혼자만의 맹세를 했었는데. 스스로의 의지력을 의심할 때 쯤 남자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은우야, 너는 항상 날 봐줬는데. 왜 이제는 날 봐주지 않아?”

“수, 술은 분명 다 치웠는데. 술은 더는…….”

“나 외로웠어. 외롭고 슬펐어. 네가 나처럼 외롭고 슬퍼해서, 그게 너무 슬펐어.”

 

 

나는 달에 사는 토끼야. 네 방 창을 타고 항상 너를 지켜봤어. 달빛은 어디에든 닿으니까.

 

 

 

 

 

 

 

 

 

 

 

 

 

 

 

 

 

 

 

 

 

 

 

 

 

어느 날부터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른 퇴근을 종용하는 나를 보며 팀원들이 물었다. 팀장님, 연애하세요?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가타부타 첨언하지 않았음에도 직원들은 다 알았다는 듯 샐쭉 웃으며 요즘 좋아 보인다는 농담을 건넸다. 나는 주차장까지 거의 뛰듯이 걸었다. 차에서 내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빈이 웃고 있다. 내가 남자에게 지어준 이름과 마찬가지로 화사한 빛을 내며.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는 상식쯤은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은우야!”

 

 

 

부드럽고 푹신한 귀를 쫑긋 세운 채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는다. 약간 높은 체온에 몸이 달았다. 입술을 부딪치자 실실대며 목에 팔을 감는다.

 

 

 

“빈아, 오늘은 뭐 했어?”

 

 

 

생각했어,

은우를.

 

 

 

 

 

 

그대로 빈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데려가 눕히자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는다. 은우야, 사랑해. 주문처럼 읊조리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동그란 꼬리를 휘어잡자 짓궂다며 핀잔을 주고는 다시 입을 맞춰온다. 우리는 저녁 내내 입을 맞대고 사랑을 말했다. 우리는 서른두 해를 만나지 못한 채 지냈다. 나눠야 할 말이 많고도 많았다. 때로 그 말은 ‘사랑해’라는 세 글자로 함축되기도 하고, 미처 담아내지 못해 흘러넘치기도 했다.

 

 

빈은 자신의 물건을 잘 치우지 않았다. 깔끔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던 집은 점점 생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로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서로의 옷가지나, 빈이 먹고 제대로 치우지 않은 반찬통. 혹은 거의 시키지 않던 배달음식 같은 것들이었다. 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나타난 지 한 달이 조금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빈과 나란히 누우니, 작은 창으로 밤을 가르고 달빛이 스며들었다. 이곳이 이렇게나 달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는 것을 입주한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전에는 그저 바깥 풍경의 하나로, 간혹 스치듯 눈길을 줄 뿐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느다란 달을 바라보며 품에 안긴 빈의 어깨를 끌어다 입을 맞추었다. 빈아, 나 행복해. 빈이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은우야, 난 이제 돌아가야 돼.

 

 

 

“돌아가다니?”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 때까지는 돌아가야 해. …나, 사라지고 있어, 은우야.”

 

 

 

눈의 착각이었는지, 일순 빈이 흐릿하게 보였다. 빛이 그를 투과하는 것만 같았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다시 빈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너 방금,”

“지금 나는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곧 돌아올 거야.”

 

 

 

빈이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가를 조심스레 쓸며 다가와 입을 맞추고 다시 떨어졌다. 짠맛이 났다.

 

 

 

 

“내가 너무 급하게 왔어. 사실은 조금 더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초조해서 천신님이 말리는데도 달의 바다를 건너서 왔어. 거긴 빛이 닿지 않는 깊고 위험한 곳이야. 그곳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앗겨서, 그래서 나는 지금 아주 약해, 은우야.”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이럴 거면 차라리 내 앞에 나타나지나 말지, 왜…”

 

 

 

 

 

 

 

 

이렇게 나를 떠날 거라면 왜 나에게 왔어.

 

 

 

 

 

빈이 내게 온 지 고작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고작 29일. 결코 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전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그 무엇보다도 빈을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사랑을 말할 이도, 사랑을 들려주는 이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나의 삶이 다시 절망으로 가득 찰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빈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차마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는 듯 몇 번이고 입술이 망설임으로 달싹였다.

 

 

 

 

 

“네가 죽으려고 했잖아.”

 

 

 

삶이 버거워서, 더는 그 무엇도 너를 행복하게도 가슴 아프게도 해줄 수가 없어서. 그 건조한 일상에 숨이 막혀서. 그게 두렵고 슬퍼서.

 

 

“지난번에도 술 엄청 마시고 뛰어내리려고 했었잖아. 내가, 내가 그때 얼마나…”

 

 

 

 

죽으려고 했었다. 더는 삶의 어디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없었고, 무엇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다. 미소는 예의였고 웃음은 거짓이었다. 가슴의 불씨가 하나씩 사라져갈 때마다 나의 죽음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종래에는 그저 숨만을 들이쉬거나 내쉬거나 하며, 애써 아직은 살아있다고 자위할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말라죽을 듯한 몰골을 하고서.

 

 

빈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달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 술에 취해 위태로운 균형을 잡고 있던 나를. 어느 새벽의 충동. 혹은 충동의 이름을 빌린,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계획.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미수로 끝난 그 사건 이후 냉장고에 쌓아뒀던 술을 모두 버렸다. 창문에는 안전장치를 굳게 걸어 놨다. 그 이후로는 잠잠했다. 하지만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빈이 온 날은, 내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날이었다. 침대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마치 잠든 것처럼. 온종일 그 세 가지를 되뇌던 날이었다.

 

 

 

 

 

 

 

훌륭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존경받는 이가 되고 싶고, 존중받는 이가 되고 싶었다.

 

 

그럴수록 어린 날의 감성은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할 것이 되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 되었으며 떨쳐내야 할 것이 되었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이고 치밀한 삶을 산다는 것은 그랬다. 누군가에 대한 연민이 사라져갈수록 나의 품은 좁아졌다. 이내 나 자신조차도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내가 꿈꾸던 것을 쟁취했을까? 존경받고, 존중받고. 누군가는 분명 ‘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선뜻 그렇다고 답해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던 그 사람이, 지금의 내가 맞는지. 정말 맞다고 할 수 있는지. 그 의문 후에는 모든 것이 괴로워졌다. 한때는 자랑스러웠던 모든 것들은 그저 ‘버텨야 하는 것’이 되었다.

 

누구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면에는 아직도 작은 아이가 있는데, 그 누구도 그것을 들여다보아주지 않았다. 아이는 웅크렸다. 처음에는 울었다. 나중에는 발악했다. 그 후에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웃지도, 울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은우야, 달은 추워.”

“나 무서워.”

 

 

“하지만 나, 네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

 

 

 

 

 

네가 나를 봐줄 때에야 비로소 외롭지 않았어.

은우야, 달빛은 항상 너를 보고 있어. 그러니 너도 이제는 외롭지 않을 거야.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람을, 과연 누가 믿어줄까. 달에 산다는 토끼를, 그 토끼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달의 온도를. 그 애정을.

 

 

 

 

 

 

 

 

 

 

 

 

 

“빈아, 네가 나를 사랑해줘서 기뻤어.”

 

 

빈이 다시금 점차 흐릿하게 보였다. 그럴수록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너를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어둠, 나를 위해 달의 바다를 유영해온 너에게.

 

 

 

 

 

빈을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체온이 높고 따뜻했는데, 지금은 되레 차가웠다. 더욱 더 강하게 안았다. 살과 살이 부대끼며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니 창밖으로 여윈 달이 그 빛을 거두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의 가운데, 조금씩 무언가가 들려왔다.

 

 

 

 

 

 

 

아, 나는 달빛의 소리를 알고 있다.

 

 

 

 

 

 

 

 

 

 

은우야

 

 

은우야

 

 

 

 

다시 올게, 머지않은 미래에.

 

너를 사랑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랑고백을.

전체 0

전체 11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
계간은콩 2019 가을호 후기
계간은콩 | 2020.11.12 | 추천 0 | 조회 7
계간은콩 2020.11.12 0 7
2
세이렌의 유혹
| 2020.11.12 | 추천 0 | 조회 4
2020.11.12 0 4
3
Dear my blue
| 2020.11.12 | 추천 0 | 조회 8
2020.11.12 0 8
4
비밀글 결핍(惡意)
떡트리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떡트리 2020.11.12 0 1
5
귓속말
콩떡이 | 2020.11.12 | 추천 0 | 조회 4
콩떡이 2020.11.12 0 4
6
연(聯)
익먕 | 2020.11.12 | 추천 0 | 조회 6
익먕 2020.11.12 0 6
7
비밀글 친구사이 상
은죽빈살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은죽빈살 2020.11.12 0 1
8
비밀글 친구사이 하
은죽빈살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은죽빈살 2020.11.12 0 1
9
사랑에 빠지다
오각형 | 2020.11.12 | 추천 0 | 조회 4
오각형 2020.11.12 0 4
10
비밀글 발자국
| 2020.11.12 | 추천 0 | 조회 1
2020.11.12 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