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2020 봄호
202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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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
주제
말이야 (상속자들)




"..."

은우는 지금 본인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에 그저 기가 막혔다.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중이라던 친한 동생과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가겠다던 여자친구가 같은 침대에 반나체로 누워 자고 있는 꼴이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맨손으로 본인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은우가 침대 프레임을 발로 찼다.

"아, 뭐... 꺅!"

단잠을 방해받은 탓인지 짜증을 내며 눈을 뜬 은우의 여자친구는 바로 앞에 서 있는 은우를 보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챙겨 입기에 급급했지만 그 옆에 누워있던 빈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 은우와 눈을 맞췄다.

"나와, 이야기 좀 하자."

주어 없는 말을 던지고 나가는 은우에 따라가려는 여자를 빈이 붙잡았다.

"내가 따라갈게요. 여기 있어요, 누나."

다정한 목소리로 여자를 진정시킨 빈이가 은우의 뒤를 쫓았다. 먼저 건물에서 나온 은우는 건물 옆 골목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형"

"...허,"

자신을 부르는 빈의 목소리에 은우는 헛웃음을 내뱉으면서도 입에 물려있던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지져 담뱃불을 껐다. 헛웃음을 뱉은 이유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빈의 표정 탓이었고 담배를 버린 이유는 따라나온 사람이 빈이었기 때문이었다. 빈이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문빈."

빈의 이름을 부르는 은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불렀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입에서 나오는 두 글자가 조금은 어색했다.

"왜 그랬어"

은우의 앞에 선 빈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사실 은우는 본인의 여자친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본다면 그 둘의 관계에서 약자는 여자 쪽이었다. 숱한 고백을 받는 탓에 한창 귀찮아하던 은우에게 방패막이 되어주겠다며 다가온 여자에 은우는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데이트한다는 조건이 달린 제안을, 혹은 고백을.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여자가 누구와 몸을 섞든 은우가 신경을 쓸 일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화를 낼 만한 입장도 못 되었다. 그럼에도 불쾌한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도 알 턱이 없었다.

은우의 질문을 받은 빈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역시나 동요 없는 눈빛이었다.

"좋아해서 그랬어."

고요한 눈과는 다르게 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왔다.

"뭐?"

"내가 형을, 좋아해서."

억눌린 목소리와 떨리는 말 끝에 은우는 더 이상 이을 말을 찾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고 생각 했다.

-

둘이 처음 만난 건 은우가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쯤이었다. 옆집에 살던 고등학생 누나네 가족이 누나 대학 때문에 이사를 가고 온 새 가족이 은우의 엄마 친구네 가족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주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했다. 귀엽고 순했던 빈이는 동생 갖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은우에게 좋은 동생이 되어 주었다.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데도 빈이는 은우를 항상 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은우가 17살이 되던 해에 잠깐 빈이는 은우를 호칭 없이 불렀다. 한 6개월 정도를 야, 너라고 부르던 빈이는 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다시 하루아침에 형으로 호칭을 바꿨다. 그때 은우는 그냥 쟤가 사춘기가 늦게 왔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은우가 첫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였다. 은우의 첫 여자친구는 같은 반 여자애였다. 착하면서도 해야 할 말은 다 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인기가 꽤 많은 친구였다. 은우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단 사실을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빈이었다. 은우는 빈이를 진짜 친동생처럼 아껴서 여자친구가 생기면 빈이한테 제일 먼저 소개해 주곤 했다. 은우의 첫 여자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빈이 뜬금없이 물었다. 형 갑자기 여자친구를 왜 사귀었냐고. 이제까지 받던 고백들은 다 찼으면서. 그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은우는 그렇게 답했다. 그냥 같은 반 친구기도 하고, 나이가 같아서 그런지 말이 잘 통해서. 그날부터였다. 빈이 은우한테 형이 아닌 야, 너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게.

그러다 반년쯤 후에 은우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여자친구는 은우가 자기보다 그 동생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솔직히 은우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10년 넘게 같이 지낸 동생이 당연히 만난 지 1년도 안 된 여자친구보다 먼저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친구랑 헤어진 날도 은우는 빈이네 집에 놀러 갔다. 가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빈이가 또 물었다. 너는 연하가 좋냐고 연상이 좋냐고.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잠깐 생각을 한 은우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연하가 좋아. 그날부터 빈은 다시 은우를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같지도 않은 변명하지 말고,"

한숨을 한 번 내쉰 은우가 앞에 서 있는 빈이와 눈을 맞췄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한 빈을 내버려 두고 은우는 여자친구가 있는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그 여자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아직도 은우한테는 잠깐 만난 여자보다는 빈이 더 중요했다. 빈이와의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두고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있던 여자에게 은우는 이별을 고했다. 

정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은우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본인을 부르는 빈의 호칭이 갑자기 바뀌었던 그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빈이 자기를 좋아해서 그랬던 건가 싶었다. 심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다. 물론 빈이 먼저 은우의 여자친구와 잔 것이었지만 그건 처음부터 그다지 안중에도 없었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은우는 생각했다. 내일 이야기를 해 봐야지, 하고. 고작 이런 일로 연을 끊기에 빈이는 은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다음 날, 은우는 일어나자마자 아직 자고 있을 빈이한테 학교까지 태워주겠다며 문자를 보냈다. 둘 다 수요일에는 1교시 수업이 있어서 수요일만은 항상 은우의 차를 타고 등교하곤 했었다. 

[빈아, 집 밑에서 기다릴게 내려와] 07:03

학교 가면서 이야기해 봐야지. 괜히 한 말일 거야, 생각하며 폰을 침대에 던져둔 은우가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칠 때까지 빈에게서의 답장은 없었다. 나가기 직전, 폰을 챙기며 답장을 확인하려 했던 은우는 뭔가 느낌이 싸해졌다. 읽고 씹으면 씹었지, 빈이는 읽지도 않고 씹을 위인은 아니었다.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원래 걱정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했었나, 은우의 불안한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강의가 시작하기 10분 전까지 은우는 빈이네 집 밑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빈이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덕분에 본인의 이름이 불리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은우를 지각할 뻔하게 한 장본인은 맨 앞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교수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의 내내 빈이의 뒷모습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은우는 교수님의 입에서 강의를 마치겠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빈이에게로 뛰어갔지만 빈이가 더 빨랐다. 은우가 빈이를 불렀을 때 빈이는 이미 많은 학생들 사이에 섞여 은우의 시야에서 벗어난지 오래였다. 

그렇게 거의 매일 빈이는 숨고 은우는 찾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둘이라 주변 사람들은 다들 둘이 싸웠구나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형, 빈이가 왜 자꾸 날 피할까?"

빈이가 본인을 피한지 딱 일주일 되는 날 은우는 같은 과 선배인 명준을 앞에 앉혀두고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원래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빈이 때문인지 목뒤로 넘어가는 술이 유독 썼다.

"나야 모르지. 그런데 이상하긴 하다."

"뭐가?"

"빈이가 너 좋아했었잖아."

"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명준에 그 말을 들은 은우의 눈이 커졌다. 형으로써 좋아한다, 뭐 그런 뜻의 말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혼자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꽤 마신 은우는 그런 걸 분별해 낼 정신이 없었다.

"몰랐어?"

"알고 있었어?"

동시에 두 말이 겹쳐져 나왔다. 몰랐냐고 묻는 명준과 알고 있었냐는 은우.

"빈이가 티 엄청 내고 다녔잖아. 나 사실 너네 처음 봤을 때는 둘이 사귀는 줄 알았어."

은우는 머리가 무엇에 세게 맞은 것 마냥 띵했다. 진짜로, 진짜 빈이가 나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그냥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마음 저 한구석에서는 이유 모를 간질간질한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체 왜?

"너 모르고 있었구나. 나는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줄 알았는데"

명준이 한마디를 할 때마다 은우는 과부하가 걸렸다.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거면, 내 여자친구랑은 왜 잔 건데? 그리고 난 애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기분이 나쁜 거고? 은우는 골이 울리기 시작했다. 참, 다 어렵구나 싶었다.

-

생각을 많이 한 탓인지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다음날 자신의 침대에서 눈을 뜬 은우는 자기가 발로 걸어서 집에 들어왔는지 기어서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했다. 물론 욕이 반절인 명준의 문자를 받고 곱게 들어오지는 않았구나 했다. 머리가 여지껏 띵해서 찬물을 마신 은우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식탁을 짚고 섰다. 그래도 찬물 한 잔 들이키고 나니까 훨씬 괜찮아졌다. 머리가 차가워지니까 판단이 섰다. 빈이는 나한테 거짓말한 게 없었고 어차피 여자친구랑은 애정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고, 은우는 빈이가 중요했다. 그래서 차라리 빈이가 자기를 피하지 않을 때까지 쫓아다니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빈이도 내가 필요할 테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은우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빈이는 계속해서 은우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무시만 하면 다행이렸다, 같은 과 동기로 보이는 사람을 항상 옆에 끼고 다녀서 은우가 말을 걸 기회조차 없었다. 은우의 동기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뒤에서 차은우가 차였네, 아니 문빈이 고백했다가 차여서 거리를 두는 거네 하며 싸워대곤 했다. 물론 은우는 빈이 옆에 붙어있는 낯선 남정네한테 신경을 쏟느라 그런 이야기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야, 눈에 힘 풀어. 민혁이 뒤통수 뚫리겠다."

빈의 옆에 딱 붙어 앉아있는 뒤통수를 도끼눈을 뜨고 보고 있던 은우의 어깨를 툭 치며 명준이 은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 민혁이? 형 아는 애야?"

"응. 빈이가 소개해 줬어. 박민혁이라고, 둘이 같은 동아리래."

"아.. 그렇구나.."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은우가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려서 명준을 봤다.

"근데 왜 형한테만 소개해 줘?"

"뭐?"

"왜 형한테만 소개해 주냐고. 나는?"

"글쎄, 내가 아냐"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명준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은우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렸다. 빈이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랑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걸 더 이상 볼 자신이 없었다.

"형, 명준이 형"

"또 왜"

"빈이는.. 이제 나 안 좋아할까?"

"나야 모르지."

안 그래도 쳐져 있던 은우의 어깨가 명준의 대답을 듣자 이제는 책상에서 흘러내릴 것처럼 더욱 쳐졌다. 그런 은우를 가만히 보던 명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너는?"

"응?"

"너는 빈이 좋아해?"

-

명준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은우는 항상 머리가 아팠다. 언제나 본인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일까. 생각에 잠겨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은우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침대에 앉자마자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본인을 피하는 빈이, 그리고 피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신.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빈이뿐만 아니라 자신도 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거면 지금까지 들었던 이상한 느낌들, 정의하지 못했던 감정의 이유들을 모두 결론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여지껏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보다 빈이가 항상 우선이었던 이유. 빈이가 하는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휘둘리는 감정. 왜 몰랐을까. 이유도 모른 채 저 멀리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좋아한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당장 빈이를 보면 뱉어버릴 것만 같았다. 빈이가 보고 싶어졌다. 

빈이가 보고 싶어지고 나서야 은우는 다시 차분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고백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빈이가 그렇게 피해 다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손톱을 뜯던 은우가 다시 방금 벗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폰을 꺼내 타자를 쳤다.

[할 말이 있어, 빈아.] 02:31

[이 말만 들어주면 이제 귀찮게 안 할게.] 02:31

[시간 괜찮을 때 연락해] 02:32

이번에도 안읽씹을 당하면 진짜 어디서든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화창만 빤히 보고 있던 은우의 눈이 커졌다.

[5분 안에 우리 집으로 오면 들어줄게] 02:36

원래 같았으면 걸어서 십분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 4분 만에 빈이네 집 문 앞에 선 은우였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 우승이 걸린 반 계주 대회에 대표로 나가서 목숨 걸고 뛰었을 때 이후로 제일 빠르게 달린 것 같았다. 천천히 숨을 고른 은우가 초인종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에, 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빨리 왔네."

거의 한 달 만에 제대로 보는 빈이였다.

"응, 오랜만이야. 빈아" 

"들어와"

얼굴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살짝 웃은 은우가 빈이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자주 오갔던 곳이었는데 한 달을 안 다녔다고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할 말이 뭔데?"

은우를 소파에 앉힌 빈이가 물었다.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에 은우는 괜히 눈알을 굴렸다.

"그게,"

막상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니까 누군가 막고 있는 것처럼 입이 열리질 않았다. 분명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뭐라고 해야 좋을지 정도는 생각하고 올걸. 차은우 인생 중에 이렇게 즉흥적으로 한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적이 계속 흐르자 빈이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할 말 있다며."

심장 박동이 계속 빨라졌다. 아까부터 귀는 계속 화끈거렸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계속 이렇게 있다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빈아,"

"말 해."

"좋아해."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아까까지 잔뜩 구기고 있던 빈이의 미간이 펴지고 은우의 귀만큼 빈이의 목도 빨개졌다. 

"..장난치지 마"

"장난 아니야, 진짜 좋아해 빈아"

서로 어색해서 피하던 두 눈이 마주쳤다. 

"거짓말"

"한 달 동안 계속, 네 생각이 나고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랬어. 이게 좋아하는 게 아니면 뭐야"

은우의 말을 끝으로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아까보단 조금 더 긴 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그럼 뭐, 우리 사귈까?"

아까 같은 무표정이 아닌, 항상 은우에게 보여주던 웃음을 띤 빈이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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