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호랑이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제니
주제
어디선가 언젠가 (푸른 바다의 전설)



오제의 옆집에는 이상한 형이 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오제는 그 이후부터 그 형을 호랑이 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게 다른 사람들은 그 형을 참 무서워했는데 오제의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오제는 어린시절부터 호랑이 형과 함께 놀면서 자랐다. 언제 그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형은 진짜로 이름이 호랑이야? 그 말을 들은 호랑이 형은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기억해낼때까지 기다려줄게.




이빨 빠진 호랑이

w.Jenny




사방신이라고 하는 신에 대해 처음 배웠을 때가 5살때였나? 그랬다. 오제는 그때 그 신들이 무엇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지 배우면서 엄청 지루해했는데 그럴때 아버지가 가끔 오제에게 사방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 중 백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꼭 눈물이 났는데, 그 이유는 아직 알지 못했다. 백호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백호가 사랑하게 된 인간은 전쟁터에서 칼을 맞아 죽었고, 그렇게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채 땅에 스몄다. 백호는 자신이 해야할 인간들의 무덤을 수호하는 일을 핑계로 사랑하던 인간이 스며든 땅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몇 백년 그곳에만 있으니 가을이 짧아지고 사계절이 흐트러졌다. 그것을 본 하늘 신은 백호에게 그토록 원하던 인간 세계로 잠시 쫓아나는 벌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 설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지만, 오제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펑펑 울었다. 백호는 그럼 이제 다시 하늘로 못 가요? 오제가 묻자 아버지는 백호가 사랑하던 인간을 다시 만나면 하늘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호랑이 형과 유년시절을 보낸 오제는 성년이 되는 날부터 호랑이 형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오제는 그제야 알았다. 저가 어린시절부터 그렇게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사방신의 이야기가, 그 백호가 바로 이빨 빠진 호랑이 형이었다는 것을. 대대로 백호를 섬겨왔던 오제의 집안이었기에 오제도 자연스럽게 그 일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신을 섬긴다고 해서 딱히 생활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호랑이 형은 오제를 살뜰히 챙겼다. 아침에 형이 깨워주는 대로 일어나 차려진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고 오면 호랑이 형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하루를 이야기했다.


"오늘은 기억 났대요?"

"뭐가?"

"하늘에 안가고 이러고 계속 내 밥차려주고 있을거냐구. 그 찾은 사람은 왜 아직도 기억을 못한대."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아."

"그러다 하늘신님이 등짝 후려치면 어쩌려구."


입안에 한가득 밥을 퍼 넣으니 자연스럽게 밥그릇에 반찬이 놓였다. 호랑이 형은 오제가 밥먹는 모습이 제일 좋다고 했다. 밥 먹을때 웃는 얼굴이 진짜로 행복해보여서. 형이 저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제는 일부러라도 밥을 더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 형은 안먹느냐고 물으면 그제야 한술 뜨는 모습을 보다 손을 뻗어 수저로 형의 입에 밥을 들이 밀었다.


"먹어요. 빨리, 아."

"신한테 이렇게 구는 애는 너밖에 없을거야."

"어차피 지금은 제대로 된 신도 아니면서!"


불퉁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이밀며 말하니 형의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웃다 입을 벌려 밥을 받아먹으니 오제의 입술이 삐쭉 나온다. 밥 다먹고 산책갈까? 형이 그러자 오제가 삐진 표정을 하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




주말에는 여느 집과 다름없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밥부터 주문했다. 오늘도 다를게 없었다. 전날 하고 싶지 않은 과제를 새벽까지 억지로 하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던 오제는, 대낮에 눈을 떴음에도 정신이 혼미했다. 저를 보며 한참이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호랑이 형이 몸을 오제가 정신이 들때까지 기다리다 뭐 먹을래? 하고 물으니 오제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거나. 칭얼대듯 말하는데도 호랑이 형은 더 자도 괜찮다는 듯 오제를 꽉 끌어안았다.


"많이 늦게 잤어?"

"아직 10시간은 더 자고 싶어."

"너무 많이 자는 거도 안좋은데."


끌어 안은 팔에 더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힌다는 듯 오제가 형의 어깨를 약하게 내리치자 그제야 형이 오제를 품에서 놓아주고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오랜만에 짜장면 먹을까? 짜장면이라는 소리에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인 오제가 몸을 일으켰다. 


"난 곱빼기."

"누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주잖아요."


오제가 애교섞인 말투로 말하자 형이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짜장면 시켜줘요, 얼른. 결국 호랑이 형이 못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는 곰 같았던거 같은데 어찌 저렇게 여우같이 됐을까. 문득 떠오르는 웃는 얼굴이 오제의 얼굴에 비쳤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백호의 정인.



오재가 부쩍 잠이 많아진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분명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는 직감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형을 보다 손을 들어 천천히, 형의 얼굴을 관찰했다. 신이라서 그런걸까. 어렸을때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호랑이 형은 오제가 태어나서 본 존재 중에서 가장 잘생긴 존재였다. 사실은 그런 형의 모습에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있기도 했다. 에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 지내온 형에게 (지금은 신이란 걸 알지만) 어떻게 그런 감정을 느껴! 괜히 부종해보아도 형이 웃는 얼굴을 하면 그렇게 좋았다. 가끔은 형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인간과 가정을 꾸리고 살아갔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졌다. 오제가 저도 모르게 또 입술이 삐죽이는 것을 본 형이 손을 뻗어 오제의 입술을 잡았다. 


"놔쥬세요."

"왜 또 심통 났어."

"그런거 아니거든요."

"아닌데 입술이 이렇게 나와?"

"그 사람은 아직도 소식이 없대요?"

"응, 아직 없어."

"형은 근데. 그 사람이 형을 기억하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신이면서 왜 다 몰라. 다 맘대로도 못하구."


내 맘대로 해봐? 어?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형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니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오제가 어린시절에 놀아줬던 호랑이 형처럼 호랑이 흉내를 낸다고 어흥, 이런 소리도 내면서 오제에게 달려드니 오제가 큰 웃음을 터트리며 호랑이 형을 밀어냈다. 정말 어린 시절로 돌아간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오랜만에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웃다, 승부욕이 생겨 호랑이 형을 밀어붙였더니 양팔을 벌려 결국 오제를 꽉 안아버렸다. 안긴 오제가 힘없이 발버둥치자 형이 이번엔 오제의 얼굴에 마구 입술 도장을 찍었다. 


"아, 간지러워!"

"간지러우라고 하는 거야."

"알았어, 항복, 항복."


오제가 몸에 힘을 푸니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여전히 끌어안은 그대로였다. 오늘은 좋은 꿈을 꿀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높은 하늘, 스치는 바람. 상쾌한 기분이었다. 바람이 한번 불고 오제의 온몸을 감쌌다. 선선한 날씨가 오제의 몸을 감싸고, 바람이 오제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따뜻했다. 넓은 들판, 그 싱그러운 잔디의 느낌도 좋아서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세상을 다 끌어 안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꼭 잠이 들 것 같았다. 서서히 감기는 눈을 두어번 껌뻑이다 완전히 감은 뒤에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허락도 없이 내 땅을 함부로 밟는 구나.'


머리를 띵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눈을 뜨고는 정면을 보니 저를 내려보는 것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늘 말로만 들어왔던 새하얀 털을 한 호랑이의 모습이 보였다. 백호? 오제가 그렇게 말하니 호랑이의 모습이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사람으로 바뀌었다. 두루마기와 잣을 쓰고 있는 남자의 등이 드러났다.


'누구신가요.'

'이 근처를 모두 다스리고 있는 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오제가 상체를 일으키자 남자가 오제의 쪽으로 돌아섰다. 호랑이, 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맑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심장부근이 쓰라렸다. 


'이제는 좀 기억이 나?'


내 이름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세상이 흩어지고 암흑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오제가 천천히 눈을 떴다.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호랑이 형은 저를 감싸 안고 제가 깰때까지 저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희미하게 조각이 맞춰지듯 조금씩 오제의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그려졌다. 조금 머리가 띵할정도로 아픈 느낌이 들어 이를 악물었더니 형이 식은땀으로 젖은 오제의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 잊어서는 안됐을 그 이름. 잊으면 안될, 그.


"이림."


터지듯이 오제의 입에서 이름이 뱉어졌다. 그것을 들은 형은 오제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 기억해줘서."

"나인거에요? 날, 사랑했던 거에요?"

"지금도 사랑해."


오제가 작은 두 손으로 림의 얼굴을 감쌌다.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고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속에서 여러 질문들이 오고 갔다. 이제 조금 기억이 나요. 전부 기억이 나면 어디로 가요? 정말 하늘로 가요? 신은 인간이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없잖아요. 하늘 신께서 다시 노하셔서 림을 아프게 하면 어쩌죠. 쏟아지는 오제의 생각들에 림은 그저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답했다. 


이빨빠진 호랑이로 살아가더라도 널 안았으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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