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 나의 아가페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주제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 (Eternal sunshine)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s - eternal sunshine / 잣

 

 

*글 속 도시는 허구로 작성되었습니다.


나에게 사랑은 소설의 첫문장과도 같았다. 특히나 첫사랑은 더더욱. 모든 것을 예견하는 작가의 첫문장과도 같던 내 첫사랑은, 끝내 복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돌이켜봐야 알 수 있는 복선, 나는 마지막장을 넘기고서야 알았다. 첫문장은, 나에게 첫사랑과도 같았다. 첫사랑은 첫문장과도 같았고.

 

겨울의 시작 앞에 가만히 망설이고만 있다. 문 열고, 발 내딛으면 곧장 겨울이라. 코 끝 찡하게 시린 바람 닿고, 두 손 끝 하얗게 부르트는 걸 본다. 겨울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가을 끝에 서 망설인다. 서서히 차게 변해가는 날씨와 계절의 향기 품은 도시, 그 속 위치한 작은 존재. 겨울은 그 존재의 망설임을 기다리지 않았다. 몸 위 덮은 이불은 어느새 도톰해졌고, 창 밖 사람들의 외투 또한 도톰. 이변없이 찾아온 겨울은 모두를 감싸안는다. 사실, 발 내딛을 필요 하나 없이 겨울은 직접 찾아온다. 받지 못한 사랑 요구하듯 자연스레, 문 열고 들어와 인사한다. 

 

난 너의 첫사랑이고, 너는 나의,

 



회고록; 나의 아가페




하나 고백할 것이 있어요.

 

어느 겨울의 에떼르넬은 색채가 들어서지 않은 듯, 온통 희게 빛났다. 피로에 눌린 두 눈 겨우 뜨고 찾아간 기차역. 전날 캐리어에 무작정 담아버린 짐. 한달이라는 거창한 여행계획이 무색하게 짐은 한없이 조촐했다. 붉은 벽돌 쌓아 잘 만들어둔 기차역, 그곳에서 나는 에떼르넬로 향했다.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기차역에 흰 눈 흩날리며 내리는 걸 본다. 바람결 따라 흩날리다 이내 얼굴을 톡, 건드리는 눈송이. 체온과 만나 금세 물방울 된 눈. 한달 휴가의 시작은 아름다웠다.

 

에떼르넬은 추운 날씨 가졌기에, 발 내딛는 걸음마다 흰 눈이 밟히는 곳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캐리어 끌고 이동하는 순간부터, 한달 묵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휴가는 어디로 갈 계획이야? 출발 직전 통화로 묻던 목소리에게 목적지 이름 전달했다. 잠시 놀란 듯 이어지던 정적. 그 뒤로 형은 조심해서 다녀오라 이야기했다. 애초에 휴가 가진 이들이 목적지로 정하는 곳은 아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바다는 없으며 그렇다고 산이 있지도 않은, 그런 작은 마을. 에떼르넬은 그런 곳이었다. 휴양지라기엔 존재가 너무나도 작은, 그런 마을.

 

그럼에도 그곳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았다. 희게 쌓인 눈밭 걷다보면 눈 쌓인 숲도 나오고, 그 사이 있는 오두막도, 곳곳에 숨은 집들도, 모두 알았다. 장작 넣어 따뜻하게 데우는 집들과 나뭇가지 털면 쏟아지는 흰 눈.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좋아했다. 영원한 듯 변하지 않는 에떼르넬의 아름다움을.

 

종착역 직전인지라, 사람이 많지 않던 기차였다. 캐리어 한 손에 들고 내려 두 손 장갑 속에 숨긴다. 머리 위 따뜻한 모자 꺼내 쓰고, 꼼꼼하게 묶어낸 목도리에 쌓이는 눈송이 옅게 불며 걸었다. 캐리어에 많은 것을 담아오지는 않았다. 균일하지 않은 바닥과 마찰하며 탈탈거리는 캐리어. 그 속은 옷과 카메라, 필사 위한 노트, 그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흔적 남긴 눈 털어내고, 침대에 몸을 뉘인다. 피곤한 눈 끔뻑이며 작은 공간 둘러보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꺼내 천장 한 번 찍어냈다. 캐리어에 소중히 담아온 필름 중 한장.

 

차은우, 에떼르넬 도착.

 

도착한 날, 하루종일 방에 콕 박혀 꿈만 꾸었다. 일정량 지나친 잠에 눈이 떠지면, 다시 감으면서까지, 잠을 잤다. 피곤함 떨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발악과도 같았다. 온종일 잠을 청하며 일상과 멀어지려는 그런 몸짓, 행동, 발악.

 

누구에게나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정신과 상담을 받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주름이 진 얼굴, 온화하게 웃을 때마다 잘게 접히는 눈가의 주름들. 얇은 입술로, 다정한 목소리로, 온화한 얼굴로, 반대편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는. 그런 얼굴. 한참을 낯가리며 제 이야기 꺼내지 못하다, 이제는 익숙한 얼굴에 대고 이야기했다. 하나 고백할 것이 있어요. 그 말에 의사는 온정 품은 미소로 눈 한 번 깜빡인다. 되묻지 않아도, 이어질 말들 기다리는 몸짓. 한달간 오지 못해요. 이어지는 말에 고개 끄덕이는 상대.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는걸까요?

네.

따뜻한 곳으로 가시나요?

아뇨, 추운 곳으로. 에떼르넬로 가요.

차은우씨가 따뜻해져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말 끝으로 웃어보이던 얼굴이 생각나 은우는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슬쩍, 당겨보았다. 항상 미소짓는 여유가 부러웠다. 언제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저와 달리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 상담을 받은 이후로 여행의 횟수가 늘어난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그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지고 싶어서.

 

타인의 여유를 어떤 이유에서 부러워하는가. 직업이 직업인지라, 독촉 전화는 일상이었다.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게. 작가님, 신작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계약은 어떻게 될까요. 한 번 시작한 작업, 방에 콕 박혀 기척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들은 배려 하나 갖추지 않았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럼에도 어지러운 머리, 구역질이라도 날 것 같은 역겨운 속 이끌고 의자 끌어다 앉았다. 어찌되었건 글은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배려없는 인간들에게 전해줄 원고도, 글을 기다릴 독자도, 글을 업으로 삼은 제 삶도 모두 글을 멈출 수 없게끔 만들었다.

 

스트레스와 극 중 인물에게 몰입하여 몰려온 우울, 그것들이 정신과로 이끌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마음의 안정을 얻고 돌아오기도 했고. 작업이 시작되면 털 끝 하나 보이지 않던 차은우 작가의 움직임. 상담 그 이후로 글도 잘 풀리는 듯 했다.

 

일주일, 여행의 시작으로부터 7일. 문자 하나를 받았다. 

 

작가님 신작 발행일 오늘입니다. 신간 기념 사인회를 요쳥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확인 후 회신 부탁드립니다.

 

간결하고도 필요한 내용만 들은 활자들 읽어내리며 미간을 쓸어냈다.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도 내리고, 한참을 고민한다. 글을 업으로 삼은 이후, 사인회라는 것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럼에도 계약사 측의 요구는 한없이 지속된다. 원고 마감 독촉전화와도 같은 스트레스였다. 지속적인 거부와 지속적인 요청. 건조한 손으로 얼굴 몇번 쓸어내리고, 갑갑한 가슴에 한숨도 길게 뱉어낸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 사인회는 할 수 없겠습니다, 하고 회신한다.

 

눈 쌓인 벤치에 앉아 문자 회신 후, 멍하니 눈동자에 하늘을 담아낸다. 입을 열면 흩어지는 입김, 두 볼 스치고 지나는 한기, 코 끝에 닿는 겨울의 정취. 구름 하나 뜨지 않은 하늘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천천히 감은 두 눈, 어느새 그 위로 흩어지는 옅은 눈송이. 그 속에서 은우는 눈밭 가운데 앉은 제 모습을 상상했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공간 속, 짙은 밤색 의자에 앉아 하늘 바라보며 앉은 제 모습. 생각보다 외로울지 모른다.

 

여행 도중 은우는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목적지 도착역을 방문하는 것. 그러니 에떼르넬의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을 해야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곳에서 느낀 설렘과 안도를 품에 안고 싶어서. 붉어진 귀와 코, 추운 날씨 입김 불어가며 기차역에 도착했다. 눈 쌓인 기차역. 벽돌 잘 쌓아 세우고도 안내판은 여전히 녹슬고 교체되지 않은 기차역. 그곳 벤치에 은우는 다시 한참 눈 감고 앉아있었다.

 

“여기서 자면 안돼요.”

 

조곤조곤,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에 감았던 눈 천천히 들어올린다.

 

“추워서 감기걸려요.”

“자는거 아닌데요.”

“…아, 그게, 너무 미동도 없으시길래.”

 

눈 앞에 서있던 남자는 뒷목 긁적이며 민망함 드러냈다.

 

“여행 오셨나봐요.”

“네?”

 

은우는 가만히 앉아 턱짓했다. 남자의 손에 이끌려 온 캐리어. 턱짓 따라 시선 따라가자 보이는 짐에 남자는 고개 한 번 끄덕. 여행은 아니고…, 휴식? 말 끝으로 남자는 웃어보였다. 예쁘게 눈 접어가며 미소짓는 얼굴. 처음 보는 사람 앞 어색한 웃음인 것도 같았다.

 


***

 


post one,

 

나의 아가페에 관한 회고는 에떼르넬의 기차역에서 시작됩니다. 지친 일상 비집고 찾아낸 한달의 휴가. 나는 카메라와 옷, 약간의 필기구와 함께 에떼르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아주 춥고, 아주 작고, 존재조차 미미한 작은 마을입니다. 주변인들은 내 휴가의 목적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말하지 않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니까요. 그곳은 타지역과의 거리가 꽤 있으며, 왕래가 많지 않습니다. 외로운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그곳에서 나의 외로움을 마주했습니다. 외로움에 눈물이 나거나, 어느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더군요.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외로움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

 

외로움은 겪지 않으면 느끼기 어렵습니다. 내 작품 속 인물들은 우울할 뿐, 외로운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외로움을 겪지 않았음이라. 그러나, 이제는 어쩌면 외로움 품은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생각됩니다. 나는 한달 간 에떼르넬 속 휴가에서 외로움을 만났습니다. 외로움의 형태 가진 인물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외로움 형태를 알게 할 인물을 만났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것이 나의 휴가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했습니다. 외로움 알게 한 인물을 만나, 추운 에떼르넬에서 온기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나의 회고는 에떼르넬의 어느 기차역에서 시작되고, 그 인물과의 회고 또한 에떼르넬의 어느 기차역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라는 단어 속 함께를 배웠고, 반대의 개인을 배웠습니다. 개인을 배움과 동시에, 결말을 겪었습니다. 어느 소설에나 존재하는 결말을요. 우리라는 단어 속에서 나는 그 인물과 아주 긴 분량의 소설을 여행했습니다. 이 회고록을 남기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소설의 줄거리를 떠올립니다. 소설 속의 나는 행복했고,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는 외로움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는 지금. 아주 깊은 외로움 속을 헤엄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 순간 하나하나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이겠죠.

 

나는 더 이상 정신과 상담을 받지 않습니다.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외로움을 그곳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면, 평생 해결될 수 없는 외로움입니다. 이리 깊은 외로움은, 사람 하나의 부재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억들이 들어찰 공간이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게 버려진 외로움입니다. 기억이 채워지던 공간을 비워둘 수 없다는 사실, 나는 그것을 아주, 아주, 아주 뒤늦게 알아버렸습니다.

나는 며칠 전, 캐리어에 고이 담아두었던 폴라로이드 사진 몇장이 없어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없어진 사진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버렸고요. 지울 수 없던 기억들이, 차츰 종적을 감추고 있는겁니다.

 

지워진 기억에 대고, 나는 종종 울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

 


“은우씨, 이것 좀 봐요.”

 

빈은 장갑 낀 손 위 작은 눈사람 들고 달렸다. 빠른 속도 이기지 못한 비니가 머리에서 톡, 떨어진다. 개의치않고 달린 빈은 금세 은우의 앞에 멈춰섰다.

 

“눈사람. 귀엽죠?”

 

잔뜩 깔린 눈보다도 밝게 웃어보이는 얼굴. 은우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네, 귀여워요.”

 

은우가 앉은 벤치 옆 눈사람 내려놓으려던 빈을 말린다. 두 손 모아 들고 있던 빈은 고개 한 번 갸웃거린다. 왜요? 대답 없이 들려오는 셔텨음. 폴라로이드 카메라 밑으로 종이 하나 쪼르르, 밀고 나온다.

 

에떼르넬은 작은 마을이다. 사람 마주치기에 딱 좋을만큼, 작은 마을. 가만히 앉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익숙한 얼굴을 본다. 그러다 빈을 마주한 것이었다. 눈밭에 누워 팔 휘젓고 있던 빈을. 익숙한 얼굴. 괜한 친근감에 다가가 옆에 따라 누웠다. 푹신하게 몸 감싸오는 눈. 급히 고개돌린 빈은 익숙한 얼굴 알아채 웃고 말았다. 홀로 한달 보내려던 계획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 마냥 싫지만은 않은 존재의 침입. 은우는 가만히 문 열고 그 존재를 맞이했다. 작은 마을에서 마주친, 작은 존재인 두 사람.

 

매일 점심 시간대가 되면 어김없이 그 벤치 앞 눈밭에서 마주했다. 약속 하나 한 적 없었으나, 잊지 않고 그곳에서 마주한다. 잠시 눈밭을 구르다, 촉촉하게 물기 머금은 옷 그대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마주앉아 따뜻한 빵과 스프, 차. 늦은 점심 먹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항시 예민하던 눈가에서 웃음이 떠날 생각을 않았다. 저녁 함께 먹고, 늦은 밤 함께 눈밭을 구르고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빈은 종종 은우의 숙소에 발을 들였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은우의 무릎 위 앉아보고, 머리 대고 누워도 보고 가끔은 은우에게 제 무릎을 내어준다. 조심스럽게 구운 핫케이크는 뒷면이 다 탔고, 그것을 먹으려 가위로 어설프게 잘라내기도 했다. 반절 넘게 잘려나간 핫케이크를 보며 은우는 세상 떠나가라 웃고, 빈은 그 웃음 말리지 못해 기어이 따라 웃었다. 다음부터는 은우씨가 구워요, 그 말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의 숙소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숙소에 발 들여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눈밭에서 만든 눈사람을 가져가 냉동실에 얼리기도 했다. 작은 나뭇가지 주워다 팔도 만들어주고, 돌 주워다 눈도 달아주었다. 냉동실에 쌓여가는 눈사람, 그것들이 물론 멀쩡히 잘 살아있지는 않았다. 한 번은 빈이 머무는 숙소의 냉동실 열던 은우의 발 앞에 눈사람이 왕창 떨어지기도 했다. 발치에 부서진 눈사람. 두 사람은 금세 물로 변하는 눈사람으로 한참을 장난치고 놀았다. 척척하게 젖은 서로의 행색에 또 한참을 웃었다.

 

숙소에서 폴라로이드 필름 갈던 중에 은우가 알아챈 것이 있었다. 에떼르넬에 도착해 처음 찍은 사진 제외하고는, 모두 피사체가 빈이었다는 것이다. 눈사람 들고 웃는 빈, 눈 밭에 굴러 엉망이 된 모습의 빈,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은우는 그것들 몽땅 챙겨 숙소를 나선다.

 

“이렇게 많이 찍었어요?”

 

은우가 챙겨온 사진들 둘러보던 빈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튀었다.

 

“오늘 확인했어요.”

“예쁘네요.”

“다행이에요.”

“찍어줄까요?”

 

빈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카메라 줘요.”

“숙소에 있어요.”

“일부러 안가져왔죠?”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요?”

“같이 가요. 오늘 거기서 잘래요.”

 

순식간에 일어나, 익숙한 길 따라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아슬하게 스치는 손끝 저릿하다 느끼며, 짧은 거리를 길게도 걸었다. 가로등 하나 없고 눈 밟히는 소리 가득 들어찬 거리 걸으며, 두 사람은 어스름한 달빛을 맞는다. 어두운 거리 아래서 열 오르는 얼굴 보이지 않음에 안심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은우의 숙소에 도착해, 빈은 카메라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 바라보던 은우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고. 여기저기 들추며 카메라 찾아다니던 빈은 금세 자리에 멈춰서 은우 돌아본다. 붉게 상기된 얼굴 형광등에 비춰진다. 힘 빠진 듯 소파에 주저앉을 때 즈음, 어디선가 들려오는 셔텨음. 홱 돌아가는 빈의 고개.

 

“숨겨뒀었어요?”

 

높게 오르는 목소리에 은우는 다시 웃음을 보였다.

 

“그냥, 제 옆에 있던걸요.”

“그게 숨겨둔거죠. 내가 웃겼어요?”

“귀여웠어요.”

“아이, 진짜. 내가 장난치지 말랬죠.”

“아뇨, 그런 적 없었는데요.”

“그런 적 있었거든요. 줘요, 얼른.”

 

천천히 다가오는 빈의 손과, 팔, 그리고 얼굴. 은우는 카메라 든 손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로 당겼다. 웃는 얼굴로, 여전히 웃으며 다가오는 빈에게 장난치듯 뒤로 물러난다. 걸터앉았던 몸은 어느새 침대 위에 오르고, 빈의 두 무릎 또한 포근한 이불 위 닿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매우 천천히. 뒤로 물러나던 은우는 어느순간 멈췄다. 그 순간 빈의 손에 카메라는 잡히고, 카메라 놓은 은우의 손은 빈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 잡힌 채 빈은 눈동자 굴려 은우의 얼굴을 바라본다. 온 정신이 카메라에 집중되어 신경쓰지 못한 거리. 코 앞에 위치한 두 눈동자. 눈 깜빡이다 뒤로 물러나려 다리에 힘을 주면, 순식간에 당겨지는 팔. 손에서 놓친 카메라는 이불 위로 구른다. 형광등 빛을 받던 은우의 얼굴에 어느새 빈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빛에 반짝이던 눈동자에는 빈의 얼굴이 곧게 담기고, 빈은 잠시 벙찐 채 두 눈만 깜빡인다.

 

은우의 위로 엎어진 빈은, 급히 옆으로 움직여 침대에 몸 뉘였다. 붉게 상기된 두 볼 손부채질로 식히며, 긴 숨을 뱉어낸다.

 

“장난같았어요?”

 

급히 돌아오는 고개.

 

“네?”

“나는 장난친 적 없었어요.”

“뭘요?”

“빈씨가 장난치지 말랬다면서요. 저는 장난친 적 없었다고요.”

 

미묘했다.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에 이질감이 느껴졌고, 뱉는 음절마다 무언가 걸리는 듯 까슬했다.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 빈은 고개만 돌려 은우의 옆얼굴을 주시했다. 여전히 천장 바라보는 은우의 두 눈. 눈 깜빡이는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은 지독한 정적. 시간 움직이는 초침소리 들어차고, 바깥의 옅은 소음 스미고, 숨소리 겹쳐 흐르는 공간. 빈은 시선 천천히 옮겨 천장 응시한다. 두 사람 사이 놓인 카메라. 눈 몇번 깜빡이던 빈은 급히 일어나 화장실로 내달렸다. 잠깐 보였던 빈 얼굴의 붉은 열감. 은우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 들으며 은우는 천천히 이불을 정리한다. 카메라를 침대 옆 협탁에 내려두고, 구겨진 이불을 손으로 밀어 펼친다. 그리고 포근한 이불 속, 몸을 숨겼다. 심장소리 시계 초침보다 크게 들릴까 걱정되어 이불 속으로 숨겨본다. 항시 뛰고 있는 심장이라지만, 새벽의 뱃고동만치 큰 두근거림은 처음이라.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떨리는 입술, 두 손, 두 눈동자, 애써 진정시켜본다.

 

한참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쉬이 진정되지 않아, 다른 것을 찾아 움직였다. 냉장고를 열어 쏟아지는 한기 맞으며 구석에 누운 캔 두어개 꺼내와 앉는 것. 은우는 그 중 하나를 먼저 열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 울리며 열린 캔 위로 흰 거품이 소복히 쌓인다. 입에 가져다대고, 천천히 넘기고. 몇모금 넘기고, 시원한 캔의 표면을 두 볼에 옮겨가며 열을 식히기도 한다.

 

창피해서 그랬는지, 부끄러운지, 떨리는 것인지, 차마 구분짓기 어려운 문제였다.

 

세수라도 했는지 물방울 맺힌 머리칼 넘기며 나오던 빈은 협탁 위의 카메라를 발견한다. 그 옆으로 시선 조금 돌리니 보이는 울퉁불퉁 솟은 이불도. 입술 꼭, 깨물고는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느리게 카메라 들고, 볼록 튀어나온 이불을 사진에 담아본다. 조용한 내부에 울리는 셔텨음. 이어 종이 밀려 나오는 소리. 빈은 그것의 끝자리 붙잡고 허공에 대고 팔랑인다. 흰 이불에, 원목 침대헤드만 찍힌 단조로운 사진. 빈은 선명하지 않은 사진 바라보며 남모르게 웃는다.

 

무릎 굽히고 침대 옆 쪼그려 앉아 이불 끝자락 붙잡아본다. 손에 들려있던 사진과 카메라 협탁에 내려두고, 조심스럽게 이불 끝자락 끌어당긴다. 잇새 비집고 나오는 웃음이 멎을 줄 모른다. 살살 당겨지던 이불 어느순간 툭, 걸려 멈추면 빈은 이불을 그대로 들춰낸다. 그 순간 당겨지는 손목. 빈은 이불 속 숨어있던 은우와 마주하고, 은우의 심장소리와 마주했다. 다시 한 번 마주한 두 눈에, 빈은 그저 웃어보였다. 떨리는 숨소리 애써 감추려, 입 꼭 다물어본다.

 

“이것도 장난 아니라고 할거예요?”

“네.”

“그럼 뭔데요?”

“몰라요.”

 

은우의 말에 빈은 웃고 만다. 바람 섞여 흩어지는 웃음소리. 불빛 들어오지 않는 이불 속에 숨어, 감춰지지 않는 떨림 나눠가진다. 

 

시간은 꽤 빠른 속도로 달린다. 별 일 없는 하루 보내고 눈 감았다 뜨면, 어느새 해는 뜨고 금세 달이 뜬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함께 눈 쌓인 숲 속을 구경해보고, 필름 부족할 때까지 사진도 찍었다. 가로등 없는 골목 사이에 달빛 피해 숨어 서로의 숨결 나누기도 하고, 긴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 모든 연락을 하지 않고 살만큼, 하루는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잠 많은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이 되어서야 입에 무언가를 밀어넣었다. 따뜻한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프와 빵. 테이블 옆 바로 보이는 창. 익숙하게 빵 한 입 베어물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여전히 흰 눈 가득 쌓여 빛나고 있다. 은우는 문득 에떼르넬에 처음 도착했던 날을 떠올렸다. 희게 빛나며 발 내딛는 곳마다 눈 밟히는 소리 들려오던 날.

 

“은우씨는 돌아가면 뭐하고 싶어요?”

“잠시 쉴까봐요.”

“누구랑요?”

“왜요?”

“저 은우씨랑 같은 곳에서 왔잖아요.”

“네?”

“아니, 뭐. 돌아가면 모르는 사람 되는건 아니니까요.”

 

숙소로 돌아간 은우는, 그제서야 바로 다음날이 여행의 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post two,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의 부재를 느낀다는 것은 지독하게 끔직한 일입니다. 나는 그 인물과 하루 온종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눈을 뜨면 옆에 누워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뒤척이며 잠과의 긴 사투를 벌이기도 했고요. 나는 그 인물의 뒤척임에 다가가 끌어안았고, 그는 곧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했었죠.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멀쩡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거지를 끝내면 주방은 온통 물이 가득했고, 우리는 물에 젖은 생쥐꼴로 그 물들을 닦아냈습니다.

 

함께 일궈낸 하루는 꽤 길었습니다. 오후 두시쯤이 되어서야 소파에 나란히 앉아 볼 것 없는 티비 채널을 돌리기도 했고, 선반에서 꺼내온 과자를 펼치기도 했으며, 괜히 허리를 끌어안아 눕기도 했습니다. 좁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는, 무료하지만 행복한 일상이었죠. 그 인물도 그 순간들은 행복했을거예요. 저녁이 되면 함께 나가 외식을 하거나, 간단하게 먹을 것들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저녁도 먹고, 나는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행복한 이상을 이야기하고 싶어 시작한 글, 나는 그 이상을 직접 살아내고 있으니 떠오를 수 없었죠.

 

그 인물은 내 집에 살았습니다.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더욱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부터, 밥을 먹고, 정리를 하며, 티비를 켜 채널을 돌리는 순간도, 저녁을 먹는 순간도,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순간도, 잠에 들기 직전 보이는 옆자리도, 모두 그 인물의 부재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재를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고 끔찍해서, 차라리 기억을 잃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진들과 함께 지워지는 기억을 마주할 때면, 더욱 끔직해서 숨을 쉴 수도 없습니다. 이질감이 들 정도로 비어버린 한달, 그리고 일년, 이년, 삼년, 그 시간들 사이 구멍이 크게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알아챘고, 온 방안을 뒤져 잃어버린 사진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사진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진과,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인물의 부재. 어쩌면, 처음부터 모른 채 살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참, 모순적인 생각이죠.

 

우리는 종종 싸우곤 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매일 같이 행복했는데, 어느 순간 그랬습니다. 항상 웃고 지내던 그 인물 떠올리면, 온갖 색채 뒤집어 쓴 듯 수려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평생을 무채색으로 살아오던 나에게, 그 인물은 천천히 본인의 색채 전해주곤 했었습니다. 신간 발행 건으로 계약사에서 연락이 오면 한없이 일그러지던 나에게, 그는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외식, 놀이, 등등. 나는 웃어보이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도 사인회 요구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던 날이었죠. 그는 나에게 손 내밀며 환한 불빛이 흩어지는 아름다운, 그런 놀이공원에 가자 웃어보였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다양한 곳에 줄을 서고, 빠른 속도의 놀이기구를 겨우 참아내고 타기도 했습니다. 두어번 타고 나서야 그는 아주 느리고,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를 쏙쏙 골랐습니다. 배려였죠.

 

그럼에도 나는 그날 예민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이렇게 괴롭게 하는걸 보면, 아주 미안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줄 기다리며 그는 나에게 웃어주었습니다. 핫바를 함께 사들고 벤치에 앉아 물기도 했고, 목이 마르면 음료수를 빨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의 먹는 모습에 볼을 한 번 찌르기도 했습니다. 놀이공원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며, 나는 지끈거리던 머리를 이기지 않았습니다. 이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싸웠습니다. 잔뜩 상처 받은 눈으로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일주일간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매일 연락을 했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혼자 아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도 같네요. 일주일만에 돌아온 답장. 나는 그것을 받고 한참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집 앞까지 달려, 마주한 얼굴을 보고, 끌어안았습니다. 온갖 색채가 그제서야 다시금 채워지는 듯 빛났습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고, 그 다음은 쉽다고 하죠. 함께하는 시간 속, 우리는 싸움의 시간이 늘어만 갔습니다. 이제와보니, 그게 꽤 슬프네요. 

 


***

 


너 말 그렇게 할래?

 

일순간 일그러지는 빈의 얼굴. 

 

차은우, 문빈이라는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 다른 일상을 살던 타인이었다. 인연이라는 굴레 속에 서로를 잠시 묶어보았을 뿐. 은우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고, 빈은 집보다는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오랜 시간 자라오며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생활. 작업을 위해 집에 머무는 은우와 타인과의 접촉을 즐기는 빈. 은우는 빈에게 조금 더 일찍 들어와달라고, 연락 자주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본다. 빈 또한 함께 야외활동을 즐기자며 제안한다. 그러나, 대화로 만들어 두었던 이해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늦은 시간. 새벽 두시쯤.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이어 신발 벗는 소리가 집 안을 울린다. 곧 방에 들어와 겉옷을 정리하고, 씻는지 물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켜놓고 있던 은우는 시계 확인하고서야 한숨 길게 뱉어낸다. 초침은 일정한 속도로 지나가고, 빈은 어느새 은우의 앞에. 그렇게 마주한 은우의 표정이 좋을리 없었다.

 

“일찍 좀 다녀.”

“알겠어어. 표정 풀어, 응?”

“술 마셨어?”

“그냥 조금?”

 

술냄새는 나나, 그리 취해보이지는 않았다. 인상 찌푸린 은우는 노트북을 덮는다.

 

“조금씩 일찍 들어와보겠다며.”

“미안, 친구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어.”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아?”

“많지.”

“아예 밤 새서 얘기 다 하고 오지 그랬어.”

“…뭐야, 너 왜 그래?”

 

비아냥거리는 말투, 순식간에 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왜 그러냐니.”

“평소랑 다르잖아, 너.”

“빈아, 네가 약속 안지킨거야.”

“너는 어떤데.”

“뭐?”

“작품활동 해야된다는 건 알겠는데, 너 평소에 나한테 신경도 안쓰는건 알아?”

“지금 그 얘기를 하자는게 아니잖아.”

“그럼 뭘 말하고 싶은데. 요즘에 너랑 같이 있어도 외로운건.”

“문빈.”

“말 해.”

“…됐다, 그만하자. 내일 얘기해.”

“야, 차은우.”

“너도 피곤할텐데, 자.”

 

노트북 들고 지나쳐 나간 은우. 빈은 그 뒷모습에 대고 입술 달싹인다. 몇번 부르기를 시도하다 포기하고야 마는 입술. 잠시 그곳에 못 박힌 듯 서서 허공만 응시한다. 빈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벌써 셀 수 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두 손가락에 다 담지도 못할 횟수. 마찰은 잦아들 생각을 않았고, 그것이 벽이라도 된 듯 계속해서 서로를 가로막았다. 오늘도 침대가 아닌 소파에 누워 늦은 잠을 청할 은우가 떠올랐고, 이불 덮어도 온 몸 감싸는 시린 외로움에 웅크려 잘 빈을 떠올렸다. 눈 뜨면 바로 앞에 누운 서로가 없다는걸 안다.

 

한참을 비어버린 의자 앞에 서있다가,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무릎 굽혀 고개 묻고 앉아 눈을 감는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감은 눈꺼풀 비집고 눈물이 질질 샌다. 불은 다 꺼져, 스탠드 하나 외롭게 빛나고 있는 방에서, 빈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다리 저려 엉거주춤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침대에 향할 때까지. 다리 저리다면 다가와 장난치던 은우는 없다. 그 사실에 괜히 서러워 저릿한 다리 끌고 침대에 누웠다.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기분이라는게 이런거였다면, 애당초 시작을 않았어야 했다. 점점 또렷해지는 종착역. 싸움의 말들은 종착역 알리는 안내방송과도 같았고, 횟수가 줄어드는 대화는 기차의 사람들과도 같았다. 온 몸 시리게 끓어오르는 외로움에 사무쳐 이불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이제 함께 있으면 외로운 사람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속 웅크려 잠 못 드는 긴 새벽을 보낸다. 언젠가 함께 웃으며 보내던 새벽에, 이제 함께는 없고 개인을 배운다.

 

우리에서 너와 나. 소설에서 배우는 새로운 삶의 방법.

 

소파에 앉아 은우는 노트북의 바탕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앉았다. 당분간 신간 계획은 없었고, 바쁘지도 않았다. 어느날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놀러 나가자던 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불 꺼진 거실, 밝은 빛 들어오는 노트북, 은우는 그 위에 머리를 숙였다. 한숨이 쉴 새 없이 비집고 나와 괴롭힌다.

 

해가 뜨고, 은우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뻐근한 몸을 풀었다. 잠시 드라이브를 갈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고, 정리도 말끔하게 끝냈다.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빈을 기다리며 먼저 씻고, 옷도 갈아입고, 오랜만에 머리도 만진다. 그렇게 준비를 모두 끝내면, 어느새 11시 즈음 지나가고 있다. 방에 들어가 웅크려 누워있을 빈을 찾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이불 속 파묻힌 빈의 등허리를 토닥여본다.

 

“일어나.”

 

이불 조금 걷어내 조용히 속삭여보는 말. 새삼 오랜만에 건네는 말임을 깨달았다. 열이 많아 젖은 머리카락을 몇번 쓸어넘기니 천천히 응석부리며 눈을 뜨는 빈이 있다. 머리 위 오른 은우의 손목 붙잡은 빈은 천천히 일어난다. 은우의 팔 붙잡고 일어나 앉으면, 그대로 끌어당겨 품에 안기는 행동.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일찍 일어났네.”

 

빈은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잠이 덜 깨 웅얼거리는 음성.

 

“응. 같이 드라이브 다녀오자.”

“응?”

“도시락도 다 준비해뒀어.”

“오늘?”

“응. 왜?”

“나 오늘 집에 다녀온다고 했던거 말 안했나?”

“집?”

“말 했을걸. 문자도 보냈어. 너 답장도 했구.”

 

아…, 그랬나. 은우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거실에 놓여있을 도시락과 아침. 김 모락모락 풍기던 그릇들 어느새 식어가고, 애써 미안하다 이야기하는 은우와 빈. 침대에서 천천히 몸 일으켜 방 밖으로 나선다. 다툼 뒤 아침을 이렇게 보내는 것도 수십번.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같은 상황에 빈은 물 쏟아내는 수도꼭지 바라보며 긴 숨을 뱉어냈다. 더 이상 길게 싸울 수 없는 것도, 싸울 필요조차 없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감정마저도 소모적으로 느껴져서.

 

찬물에 세수하고, 물 떨어지는 머리칼 털어내며 나오니 식탁에 앉은 은우가 보인다. 밥은 다시 담았는지 김이 나고 있었다. 마주앉는 자리에 먼저 앉아 턱 괴고 있던 은우, 빈의 모습에 고개 돌린다. 한쪽에 놓아둔 빨래통에 수건 대충 던져넣고, 천천히 다가간다. 건조한 발과 장판 깔아둔 바닥이 마찰하며 괜히 까슬한 감촉을 전했다.

 

“먼저 먹지.”

“아냐. 금방 나올텐데.”

 

의자 끌어다 앉으면 그제서야 젓가락 든다.

 

“미안.”

“응?”

“그냥. 말했던거 기억 못하고 혼자 들떴었나봐.”

“…아냐. 한 번 더 말해줄걸 그랬지.”

 

말 끝에 밥 위로 작게 자른 햄이 하나 오른다. 익숙하지만 큰 감흥은 없는 젓가락. 익숙함에서 파생되는 행동. 빈은 숟가락 들고 흰 쌀밥을 가른다. 한 번 입에 넣고나면, 다시 올라오는 김치. 입에 넣으면 다시 한 번 올라오는 계란말이. 타이밍 맞춰 수시로 올라오는 반찬들. 젓가락 움직여 반찬 올려주려던 은우의 손이 문득 멈췄다. 허공에서 마주친 시선. 숟가락 멈춘 빈은 가만히 은우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습관이 된 익숙함, 애정이 들어찼던 개별적인 행동이 아닌, 익숙함. 자연스러움. 다시 한 번 올라오는 햄에 빈은 고개를 떨군다. 마주친 두 눈동자가, 조금은 속이 비어있는 듯 싶었다.

 

은우는 다정하다. 본인을 무채색에 비유했던 것처럼 다정하다. 여행을 가거나, 밥을 먹거나, 자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어도 한결같이 다정하다. 또, 스트레스를 받아도, 싸워도, 심지어는 싸운 뒤 냉전일 때도, 다정하다. 한결같이. 몸에 그득히 들어찬 다정함은 둘 사이를 겨우내 메꿔가는 듯 했다. 떨어지려는 종이 다시 풀칠하는 그런, 그런 다정함. 타고나길 다정하게 타고난 사람.

 

지난 여름,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 향해 가려던 계획 무너진 날이 있었다. 급히 약속이 잡혔다는 빈과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우. 도어락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은우는 다시 정리하기 시작한다. 함께 먹으려던 과일, 도시락. 사진 찍으려던 카메라.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혹여 눈부실까 챙긴 선글라스. 하얀 피부가 탈까봐, 햇살에 따가울까 챙긴 선크림. 가방에 챙긴 걱정들과 빈을 향한 다정을 다시 꺼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적히지도 않는 글 적겠다며 빈이 귀가하기까지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다. 저녁 여덟시 조금 넘기고서야 돌아온 빈은 그런 은우를 찾았다. 빈이 사과하려 말을 꺼내기도 전, 은우는 발갛게 달아오른 빈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린다. 선크림 안바르고 갔어? 그 물음에 빈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정지. 내일 또 따갑다 그러겠네. 이어지는 말에 은우의 손목을 붙잡았다. 미안해. 은우의 다정함 속에 숨은 까슬한 거스러미. 그것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그럼에도 무채색은 빈에게 물들지 않았다. 젓가락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연신 울리며, 오가는 대화 없이 남은 식사를 끝냈다. 대화 없이 일어나 그릇 치우고 설거지 시작하면, 남은 사람은 반찬 뚜껑 덮어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빈은 설거지하는 은우의 뒤에 서, 잠시 망설이다 방으로 향했다. 건조하니 바닥과 계속해서 마찰하는 발이 거슬려서. 이상하게 그 등 뒤에 서면 어색함이 온 몸을 휘감는 듯 해서.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모르는 무채색과 눈 앞에 통통 튀는 원색. 당연히 그것들은 자연스레 섞일 줄 알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양말 신던 빈은 문득,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의 일상을 떠올렸다.

 

한 사람은 집에 있는 시간이 익숙했고, 한 사람은 바깥에 있는 시간이 익숙했다. 본래 가지고 태어난 다정함과 그 다정함 따라가며 채우려던 사람. 부족한 표현 없이 전해주던 사람과 부족한 표현은 알아주기를 바라던 사람.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양말 신은 두 발 멍하니 내려보던 빈은 무릎 사이 고개를 묻었다. 항상 따뜻하던 집이 어느새 살이 부르틀만큼 건조해졌다.

 

집에 다녀오겠다던 빈은 캐리어를 챙겼다. 뭐하냐던 은우의 물음에도 대닶 하나 없이 꿋꿋하게 짐을 담았다. 생각보다 많은 짐이 있어 몇개는 빼야했고, 버리기도 했다. 부산스레 움직이는 빈의 뒤를 쫓던 은우는 이내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한다. 여기저기서 꺼내지는 빈의 흔적. 그것들은 모두 캐리어에 혹은 쓰레기통에.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한참 뒤에야 캐리어 닫는 빈을 붙잡았다. 손목 붙잡은 은우를 올려다보며 빈은 그저 눈만 깜빡인다.

 

“집에 오래 다녀오는거야?”

 

은우의 물음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은우야.”

“응.”

“우리 그만할까.”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하자, 그런 간단한 말. 아침 밥 먹었냐 묻는 어투로, 점심 고민하고 무슨 일 있냐던 어투로, 잘 자라던 말처럼, 그만할까. 안녕도 아니었고, 잘 자라는 다정한 말도 아니었고, 잘 지내라는 행운 비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그만. 이쯤에서 우리의 한계. 건조함에 살 부르트고 따갑기까지 한, 우리의 한계. 은우는 자리에 못박힌 듯 서 두 눈만 깜빡인다.

 

“이제 그만하자.”

“….”

“너 없이도 불행할 것 같지가 않아.”

 

분명히, 너 없으면 불행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캐리어 쥔 빈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또렷하게 시선 마주쳐오는 두 검은 눈동자도, 떨리는 것을, 알았다. 그 눈가가 조금, 붉어진 것도…, 모두 알았다.

 


***

 


post three,

 

그 인물이 남겨두고 간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젠 사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제 더 이상 회상하고, 다가갈 수도 없는 기억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끔찍하게 불행한 일이죠.

 

나는 여행 도중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지에 데려다 준 역에 다시 가보는 것이죠. 에떼르넬에 갔던 내가 에떼르넬의 기차역에 갔던 것처럼. 나의 이번 여행은 아마, 그 인물과의 기억 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그 기억에 데려다 준 그 인물을 만나야 합니다. 기억에 데려다 준 기차역은, 그 인물이니까요. 

 

한 번 말했던 것처럼, 좋아했던 누군가의 부재를 느낀다는 것은 지독하게 끔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차라리 그 부재라도 느끼고 싶을 정도로, 기억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부재를 안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재의 존재 자체를 잊게 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요. 나는 집을 쥐잡듯 뒤졌습니다. 캐리어도 털어내고, 가방도, 서랍도, 침대 밑까지. 어느 곳이든 좋으니 그 인물이 남기고 간 부재의 흔적을 찾고 싶었습니다. 보였냐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겠네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부재가 이리도 절망적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별을 한 뒤 나는 한동안 글에만 빠져 살았습니다. 인연이라는 틀 속에 서로를 묶고, 바라보던 시간동안 쓰지 못했던 글을 쓰기 시작했죠. 손 끝은 수시로 움직이고, 머릿속에는 주인공들이 겪어나갈 현실과 일상에 대해 그려졌습니다. 한달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짧은 단편 소설 하나가 완성이 되었죠. 글을 업으로 삼은 뒤 가장 빠르게 완성해낸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출판사와의 계약 직전, 그 계약을 물렀기 때문입니다.

 

공개되지 않은 글에는 주인공의 외로움이 적혔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적어보지 못했던 등장인물의 외로움. 나는 이제 그것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공개하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 담긴 모든 외로움이, 척척하게 늘어져 땅에 끌리는 외로움이, 모두 한 인물을 향했으니 말이죠. 사랑의 흔적을 그렇게 남기고, 오랜 추억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함께라는 시간을 추억으로 회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글이 완성된 이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계약도 파기하고, 집에, 침대에, 소파에, 함께 했던 공간에 누워 긴 잠을 청했습니다. 잠에서 깨면, 다시 한 번 잠들고, 깨고, 잠들기를 반복했습니다. 내 일상에서 그 인물이 빠진 공간은 생각보다, 예상보다 아주 큰 공터였습니다. 그것도 타인의 발이 닿지 않는 그런. 나는 그것을 채울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떠나가려는 기억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이별 후, 내 생활에 남은 것은 글, 잠, 술.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달을 글에만 빠져 살았던 일상과, 그 이후 꿈에서라도 그 인물 찾으려 잠들어 살던 일상. 나는 잠에서 깨어 차가운 공기가 메운 옆자리 어루만지며 일어났습니다. 방에서 나와도 인기척 따위 있을리가 없습니다. 공허하게 비어버린 거실 바라보다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오랜시간 마셔본 적 없던 술을 바구니에 쓸어담아 계산도 했죠. 양손 가득 무겁게 집에 돌아와 나는 하나씩 병을 열었습니다.

 

몇번씩 토악질을 하고, 머리는 깨질 듯 어지러웠고, 오한이 오는 듯 온 몸이 으슬으슬 떨렸습니다. 아마 그가 있었다면 타박했을 꼴이지요. 나는 그 타박이라도 듣고 싶어 어렵사리 핸드폰 화면을 열었습니다. 저장 후 한 번도 바꾸거나 지운적 없던 문 빈, 두 글자. 나는 열한자리 번호로 저장된 그에게 기어코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어 끊기 직전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그런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이야. 나는 그 말에 목이 메여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대답을 했냐, 궁금하시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해보고 통화를 종료했습니다. 차마 오랜만이라 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질 않았거든요. 그동안 지독하게 눌러붙은 무채색이 옮겨갈까 걱정했던 탓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아마, 그리웠기 때문일겁니다.

 


***

 


늦은 오후, 지겹도록 울리는 벨소리에 두 눈 찌푸리며 고개 든다. 핸드폰 화면에 뜬 세글자의 이름. 은우는 익숙하게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 한다.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 과한 음주 탓에 깨질 듯한 머리가, 괜히 더 아파오는 듯 했다.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 비비며 긴 숨을 뱉어낸다. 잇새로 단내가 풍겼다.

 

작가님, 신간은 언제쯤 계획있으실까요?


계획 없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은우는 제멋대로인 발 이끌어 화장실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소주병들 지나쳐 도착한 화장실. 은우는 익숙하게 변기 붙잡고 주저앉는다. 속이 메스꺼운게, 음주 탓인지, 네 탓인지. 노란 위액까지 보고나서야 메스꺼운 속이 가라앉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면대에 서 찬물을 받아놓고 그 물에 얼굴을 폭, 밀어넣었다. 숨이 버거울 때면, 한 번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물에 얼굴을 빠뜨린다. 그럼에도 며칠 내 술 들이부었던 몸이 멀쩡해질 수는 없었다. 온통 망가진 일상.

 

아주 오랜만에 익숙한 번호로 연락이 왔다. 술기운 빌려 전화했던 것이 발단. 빈에게서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잘 살고 있냐는 물음. 은우는 아직도 그 문자에 답을 하지 못했다. 잘 지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짓된 말이었으며, 빈 없이 지내는 일상은 무리가 있어 돌려놓고 싶었다. 못 지낸다 하기에는 걱정이었다. 매일같이 술에, 늦잠에, 글은 쓰지도 않는 이런 일상을 알리면, 한심하다 생각할까봐.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할까봐.

 

비척이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이면, 몇번을 쓰고 지운 답장이 떠올라 괴롭힌다. 이불 속 파고들어 하나 떠있는 말풍선 떠올리면, 사무치게 외로웠다. 죽을 것처럼 외롭다가도 충분한 실연의 아픔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은우는 협탁 위에 올렸던 핸드폰 손에 쥐어 익숙하게 잠금을 풀었다. 지난 밤 술기운에 몇번씩이나 틀린 비밀번호는 입력할 필요도 없이 얼굴 가져다대니 열렸다. 이런 일상임을 알기는 할까.

 

오랜만이라는 덤덤한 말투와, 잘 살고 있냐는 문자. 그 두가지로 그간 빈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덤덤함을 본다. 먼저 이별을 고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덤덤한 말. 오랜만인 것도 사실이고, 잘 살고 있냐는 것은 예의상의 물음이다. 그럼에도 은우는 밝게 빛나는 화면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빈에게서 온 문자만큼 덤덤할 자신이 없었다. 구질구질하게 늘어선 외로움이 문자 타고 흘러 빈에게 가 닿을 것만 같았다.

 

연애 중 우리의 싸움은 꽤 소모적인 일이었다. 감정은 감정대로, 체력은 체력대로. 처음 싸운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두 번, 그리고 세 번. 언쟁의 횟수가 늘고, 그만큼 소모하는 감정의 폭도 대폭 늘어났다. 사소한 일로 싸운 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화해했다. 그 간단한 과정이 어쩜 그리 어려운지, 매일 밤 같은 이불 속 누워 잠을 청하면서도 외로움에 온 몸이 시렸다. 싸움에서 회피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것은 빈도 마찬가지.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후회하게 된다. 

 

 말을 심하게 한 것을, 사소한 문제에도 지지 않으려던 것을, 한 집에 같이 살며 생활 공유하는 것을, 연애 시작한 것을, 눈 밭에 누워있던 빈에게 다가간 것을, 에떼르넬에 향했던 것을, 싸움으로 인해 갈라진 틈 사이 그것들에 대한 후회는 이따금씩 밀려왔다.

 

기어코 회피하게 되었다. 이전처럼 언성이 높아질 때 즈음, 다음에, 그만, 됐다. 그 말 뒤로 몇번씩 시선의 끝에 닿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까슬하게 늘러붙은 상처 긁어내던 얼굴. 두 손 주먹 쥐고 떨던 모습. 차은우, 석자 부르며 높아지던 언성 억누르던 목소리. 기어코 눈가 붉어지던 문빈. 그래서, 문자에 덤덤하게 답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은우에게 문자 한통이 도착한다.

 

오늘 잠깐 만날래?

 

발신자 확인한 은우는, 손가락 겨우 움직여 답장했다. 그마저도 몇번씩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적어낸 응, 그 한글자. 빈이 어떤 생각인지는 모른다. 다만, 누군가의 부재를 느끼고 그 부재의 망각을 겪는 은우에게 나쁜 소식이 아닌 것은 알았다.

 

에떼르넬에서의 숙소와 달리, 두 사람의 집은 꽤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그렇게 이동하면 닿을 거리. 각자 출발해 다른 날짜에 닿았던 에떼르넬, 돌아오는 날은 함께 기차타고 돌아온 집. 은우의 집에 간단한 캐리어 풀던 빈과, 빈에게 생활공간 내어주던 은우. 본래 홀로였던 공간, 누구 하나 잠시 발 들였다 사라진 공간, 그 부재의 크기에 짓눌려 외로움 홀로 견뎌내던 은우. 거리만큼의 무게가 짓눌러오던 집. 은우는 빈이 파묻히던 이불속에 들어가 시린 추위를 견뎌내며 울었다. 한참을 걸어도 닿을 수 없을까봐.

 

만나자는 물음에 대한 답. 은우는 말풍선 하나 늘어난 화면 가만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본다. 무겁게 몸 덮은 이불 걷어내고, 시린 한기 올라오는 바닥에 발 딛고, 천천히 걸어나가 눈 앞에 보이는 집의 상태를 둘러본다. 빈과 함께 정리하던 식탁과 주방. 언젠가 빈이 서있었을 곳에 서, 두 눈 깜빡이며 제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언젠가 빈이 마주했을 등과, 어느 외로움. 가만히 주변 둘러보던 은우는 어지럽게 쌓인 쓰레기 발견한다. 천천히 다가가 하나씩, 왼손에 비닐봉지, 오른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치우기 시작하며 척척하게 늘어지는 마음을 끌어당겼다.

 

소모적인 싸움 이어가던 일상. 일상 틈 가르고 들어온 다툼. 평화 깨고 들어온 갈등. 텅 빈 집안 둘러보다, 긴 한숨을 뱉어낸다. 어쩌면, 후회하고 있던 것이 빈과의 이별일지도 모르겠다.

 

빈은 다정함 품은 은우의 모든 행동을 좋아했고, 크게는 존경했다.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있는 느낌의 사람. 빈은 그 모습을 좋아했다. 제게 쏟아지는 모든 다정 끌어안고, 조금 떼어주려하면 배로 돌아오는 다정함. 사소한 다툼 뒤에도 밥 위로 반찬 놓아주던 손, 끌어안아 뒷목 쓸어주던 큰 손. 어느 순간부터 자주 보이던 너른 등마저도, 다정함 품은 큰 사람인 것만 같아서. 술 마시고 그리움에, 혹은 외로움에 전화했을 그 순간까지도. 그 다정함 속에 제가 있다는게.

 

중간지점에서 만나자 한 약속. 두 사람은 버스 타고 오랜 시간 달렸다. 창가에 머리 기대어 앉아 빠르게 지나는 풍경 바라보며 두 눈 느리게 깜빡. 두툼하게 챙겨입은 옷. 그럼에도 시린 손 주머니에 넣고 몸 웅크려 앉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재회.

 

“오랜만이야.”

 

카페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빈.

 

“응.”

 

테이블 위 놓인 두 개의 머그컵. 은우는 천천히 걸어가 반대편에 앉는다.

 

“잘 지냈지?”

“나야 뭐. 그냥 그랬지.”

“그냥, 연락했길래.”

 

고개 끄덕이며 눈 앞에 놓인 머그잔 매만져본다. 온기 없는 표면. 건조한 손등.

 

빈을 보면 떠오를거라 생각한 에떼르넬의 어느 기억들. 눈 깜빡, 깜빡. 빈은 입술 꾹 다물고, 입술 말아올려 웃어보이고, 긴 숨을 뱉어내기도 한다.

 

“은우야.”

“응.”

“우리 다시 가볼까?”

 

어디인지는, 알지.

 

은우는 그마저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

 


last post,

 

사라진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어딘가 사라졌을 것 같네요. 그냥, 그냥, 기억이 지워지는 것처럼. 그래서 에떼르넬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에는 혼자 가서 함께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함께 가서 혼자 돌아왔습니다. 다녀오며 건조하게 부르트는 입술과 손 끝 수없이도 뜯었습니다. 사람 사이를 채운 건조함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내가 만났던 그 인물은 사랑과 외로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알려준 사랑은 소설의 첫문장과도 같았고, 그와 함께 겪었던 첫사랑은 더더욱, 그랬습니다. 작가는 첫문장에서 모든 것을 예견하곤 합니다. 그 첫문장. 그 첫문장과도 같던 내 첫사랑은, 알아채지 못하고 막을 내립니다. 소설의 끝에 가서 서서히 첫문장을 눈치채고야 마는 복선. 나는 마지막장을 넘기고서야 알았습니다. 첫문장은 나에게 첫사랑과도 같았고, 첫사랑은 첫문장과도 같았다는걸. 그는 나에게 첫문장이고, 어쩌면 마지막 온점이 되기도 했으리라.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겨울의 앞에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문 열고, 발 내딛으면 곧장 겨울이라. 코 끝 찡하게 시린 바람 닿고, 두 손 끝 하얗게 부르트고, 이불 속 깊게 들어가는 날씨. 그런 겨울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나는 가을 끝에 서 망설이며 겨울을 바라봅니다. 시린 겨울에서 마주한 그 인물. 발 내딛으면 혹시나 그가 있을까. 서서히 차게 변하는 날씨와 계절의 무채색 품은 도시, 그 속 위치한 작은 존재. 겨울은 나같은 작은 존재의 망설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몸을 덮은 이불은 어느새 도톰해지고, 외투 또한 도톰해지고. 큰 이변없이 찾아온 겨울은 모두를 감싸안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발 내딛을 필요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겨울은 직접 찾아오니까요. 받지 못한 사랑 요구하듯 자연스럽게, 문 열고 들어와 인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떠난 에떼르넬의 여행. 나는 그곳에서 그와 또 다른 한달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기 전날, 그에게 물었습니다. 기억이 잊혀지고, 그 당시의 사진들이 사라졌다고. 나는 그것을 잃었다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채울 생각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어쩌면 고백이기도 했죠. 잃은 기억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첫문장을 시작해볼까, 그런 이야기. 그런 고백. 한참을 울상짓던 그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두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척척해서, 나는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난 너의 첫사랑이고, 너는 나의…,

 

그는 읽을 수 없는 표정 짓다, 고개를 떨궜습니다. 벽에 기대어 옷 끝자락 매만지고, 입술 꾹 물기도 하고. 손톱 끝과 옷자락 번갈아 구기던 그의 손.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차마 다가갈 용기는 없었고, 더 이상 멀어질 이유도 없었습니다. 반대편 벽에 기대어 그 모습 바라보았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의 입에서 나올 어느 말을 기다리며.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같은 기차, 다른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돌아왔습니다.

 

등 돌린 자리에 앉아, 하얗게 눈 쌓인 거리 바라보며 그렇게.

 


***

 


“괜찮아?”

 

거실 어딘가 세워둔 캐리어. 빈은 천천히 은우 앞으로 다가와 묻는다.

 

“응.”

“난 이제 네가 아는 사람이야. 네가 아는게 다인 사람. 너만큼 다정하지도 않고,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무엇보다도 함께 있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건 나도. 괜찮겠어?”

 

검은 두 눈동자에 담긴 제 모습 바라보던 은우는 입꼬리 끌어올려 웃어보인다.

 

“응. 얼마든지.”

“….”

“네가 오면, 여기 서있을게. 외로우면 기다릴게. 불행하면, 행복해볼게.”

“….”

“그렇게 할게. 괜찮아?”

 

가만히 허공에서 떠돌던 시선.

 

“응, 괜찮아.”

 

기어코 첫장으로 돌아온 여행. 외로움 그득히 끌어안은 여행. 은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본다. 첫사랑은 소설의 첫문장과도 같다. 소설의 첫문장은 첫사랑과도 같아서 호기심에 발 들이고, 그 뒤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끔한다. 첫문장을 시작한 첫사랑에게, 다시금 첫문장을 적어달라 이야기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마지막장. 은우는 애써 작가의 예견과도 같은 첫문장 무시하고, 빈에게 초점을 맞춘다. 괜찮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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