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일월
주제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키다리 아저씨)

 

 

 

a.

빛의 산란.

 

빛은 대기를 통과해 입자를 만나서 색을 입는다. 그래서 사람 눈에 보이는, 하늘은 파랑 노을은 빨강 구름은 하양. 

그러면 우리는? 우린 무슨 색이지.

 

 

b.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별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 불면증의 해결방안이랍시고 사왔던 거였나. 이거면 너도 금방 잠들 수 있을 거라 호기롭게 말하긴 했는데. 사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 그냥 기분 좋아지라고 말한 거지. 그래도 가만히 누워서 희미하게 빛나는 야광별을 바라보면 어둠 가득한 방 안이 꼭 우주 같았다. 중력이 없는 공간을 부유하는 우리 둘. 

 

 그럴 때면 우리 사랑이 명왕성보다 훨씬 더 먼 곳에 버려져 있다는 착각을 했는데. 진짜 권태롭다 그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사촌누나 결혼식?」

어. 누나는 보러 가고 싶은데 가면 어른들이 막 이것저것 물어보시니까. 그거 생각하면 조금 숨 막히는 기분?

「에구.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어쩔 수 없지 뭐. 우리 이제 그런 거에 익숙할 나이 됐잖아.

「그건 그래.」

 

 

 문빈은 결혼식장에 가는 길에서 여름 공기를 느꼈다. 하염없이 겨울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봄도 지나고 벌써 여름이네. 하긴 벚꽃 떨어진 것도 벌써 한 달이 넘었으니까. 새하얀 와이셔츠 위에 걸친 네이비색 수트 자켓이 햇빛을 몽땅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초행길이라 한참을 헤매고 걷다가 땀 흘리기 직전에 도착한 식장은 사람으로 가득차 번잡했다. 윗옷에 새하얀 코사지를 단 이모와 이모부는 홀 앞에서 손님을 맞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 옆에는 매형 될 사람이 그의 부모와 함께 서있었다. 그들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니 너는 누나한테나 먼저 가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문빈은 신부 대기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다 누나.” 

“그러게. 빈아 너 그동안 잘 지냈어?”

“아마도?”

“그게 뭐야. 잘 지내야지.”

“그러게. 누나는?”

“나야 뭐 좋지.”

“그럼 다행이고.”

“빈아. 예전부터 누나가 항상 말했잖아. 네 행복부터 챙기라고. 청첩장 줄 때만 해도 너 괜찮아진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본건가? 여튼 꼭. 알겠지?”

“그래. 누나도.”

 

 

 오랜만에 본 누나는 웃는 얼굴이 예뻤다. 정말로 행복에 가득 찬 사람에게서 나오는 웃음. 누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야지. 환한 미소는 주변까지 밝게 만든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식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버진로드를 밟는 두 사람. 주변인의 축하 속에서 마침내 완성되는 가족의 형태. 그들의 완전무결한 사랑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속이 콱 막혔다. 왜 내 행복에는 필연적인 슬픔이 동반되지.

 

사실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울면 안 되잖아. 좋은 날이니까. 웃어야지. 그래야 살아가지.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거면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말았어야지.

 

 

 식장에서 나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차은우. 액정 너머에 박힌 세 글자에서 밀려드는 묘한 감정. 짧게 반복되던 통화 연결음이 끊기자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보세요.」

은우야. 잘 있었어?

「갑자기?」

그냥.

「무슨 일 있었구나.」

별일 없었어. 너 지금 집이지?

「응. 오늘 본가에서 자고 온다며. 그냥 오게?」

어. 할 말도 있고.

「나쁜 소식이야?」

글쎄.

「지금 말해줄 수 있어?」

은우야.

「…….」

우리 잠깐만 헤어질까?

 

 

 

*

 문빈은 잠시 생각했다. 맞은편엔 차은우가 앉아 있었다. 생각할 말을 고르고 또 고민하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래서 차은우는 계속 기다렸다. 마침내 문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은우야 있잖아, 그동안 나 혼자 허상을 바라보고 달리는 기분이었어. 분명 출발은 같이 했던 것 같은데 문득 정신 차려보면 너는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으니까. 버려진 느낌이 들 때마다 네가 밉더라. 시작은 사랑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우리? 근데 나는 아직도 너 사랑해.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우리 관계야 뭐 남들 보기에는 떳떳할 거 하나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한테 부끄러운 사람이 되기 싫었거든. 그래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어. 그런데 너는 나보다 배는 더 잘난 사람이라서 혼자 또 멀리 가고 결국 남아 있는 건 나 혼자더라.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니까 나는 허무하게 지치는 거야. 이제는 그냥 포기하게 돼. 

 

 처음에 나는 네가 손 뻗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 속도에 맞추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어. 그냥 딱 한번만 고개 돌려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봐주기만 했어도 나는 끝까지 버텼을 텐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많은걸 바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같이 들더라. 머리로만 드는 생각이 아니라 저기 어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울컥 밀려드는 죄책감 같은 거 있잖아. 그러고 나니까 딱 하나가 더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야. 

 

어쩌면 우리한테 시간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되게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지냈잖아. 벌써 몇 년이지. 일,이,삼…. 한 손은 가뿐히 넘어가. 그러니까 잠시만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헤어지자는 건 절대 아니야. 앞으로 서로 없이 지내는 시간이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확신은 안 서는데, 더 나아질 우리를 위해서 부탁하는 거야. 혹시 우리가 헤어지자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평생 덜 후회 할 수 있도록.

 

 어렵게 말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될까. 이미 유통기한에 소비기한까지 다 지난 사랑인데 그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처박아둔 감정일 수도 있잖아. 나는 그걸 확실히 알고 싶은 거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아직 너 사랑해. 그건 확실해. 그래서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래도 너 목소리 들으면 마음 약해질게 뻔하니까 연락은 안할래. 

너는 모르지? 네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한지. 

그 다정함에 우는 밤이 되기 싫어서 그래.

 

 

 

*

 그래서 둘은 잠깐의 이별을 택했다. 문빈의 말대로 더 나아질 서로를 위해서. 차은우는 그 문장에 의문을 가졌으나 별다른 대꾸 없이 수용했다. 본인도 권태를 느낀게 맞았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촌누나의 결혼식에 다녀오기 이주일쯤 전 문빈은 회사를 그만뒀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꼰대력으로 똘똘 뭉친 상사. 그야말로 최악의 회사였다. 쌓인 스트레스는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정신력은 실시간으로 무너졌고 스스로를 우울로 갉아먹었다. 비슷한 연차의 차은우도 비슷한 회사생활을 하겠지. 그래서 쉽게 티낼 수가 없었다. 같은 침대에 누워 홀로 뒤척이는 새벽이 이어졌다. 

 

 은우야 나 퇴사했어. 그래? …잘됐네 너 힘들어 했잖아. 퇴사 이후에는 같이 출근해서 엇비슷하게 퇴근하던 생활 패턴이 갈렸다. 문빈 혼자 집에 남아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차은우를 맞이하고. 그렇게 꼬박 이 주를 보냈다. 

 

 문빈이 사촌누나의 결혼식에 다녀오고 나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차은우는 알지 못했다.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권태. 싫증. 뭐 그런 종류겠지.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차은우는 서울에 남고, 문빈은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각자의 생활을 보냈다. 같이 지낸지 꼬박 오 년 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잡념이 늘었다. 차은우는 이따금씩 과거를 회상했다. 아주 옛날에는 서로가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걔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지. 자려고 침대에 누운 차은우는 천장을 바라봤다. 불현듯 야광별에 시선이 닿자 쏟아지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거 하나하나에 전부 다 이름 붙였는데, 뭐였더라. 

 

 문빈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던 무기력과 피로가 겹친 듯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 합쳐진 결과는 불면이었다. 그때 차은우는 옆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어쩔 수 없이 말을 걸었던가. 흐릿해서 겨우 존재감 드러내는 야광별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저기 가운데에 있는 건 너 하고 그 옆에 있는 건 나 하자. 식은 사랑을 숨기기 위한 목소리였다.

 

 

 그 다음 날 차은우의 머릿속에는 더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흐릿한 스물 몇 살의 날들. 

 

 열 평도 채 되지 않는 원룸 자취방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방구석에 붙어 있었는지. 거기에는 탈탈거리며 겨우 돌아가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심지어 그 고물 선풍기는 차은우가 평생 살아온 나이보다 더 오래된 거였다. 그거 하나 켜놓고 침대 위에 늘어져서 꾸역꾸역 살 맞댄 채로 붙어있던 시간도 있었는데. 섹스하고 맨몸으로 끌어안고 있으면 조금 후에 차은우가 선풍기를 켰다. 그러고선 침대로 돌아가 다시 문빈을 끌어안고 풀썩 누웠다. 더워서 킨 거 아니야? 강풍이라 괜찮아. 응….

 

 그 당시 아웃사이더 랩에 꽂혀있던 문빈은 힙합을 듣고 싶었지만 발라드 좋아하던 차은우를 위해 하루 종일 다비치 노래를 틀었다. 그게 그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전부 같은 거였다. 그만큼 좋아했나봐. 내키지 않는 거 참아도 괜찮다고 느끼는게 곧 사랑이었으니까.  

 

 그 때 밖에 비가 왔었던가. 후두둑 후두둑. 얇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줄기에 노랫소리가 묻혔다.

 

 

안녕이라고 내게 말하지 마… 

…이별이 뭔지 나는 몰라요

 

 차은우는 오랜만에 발라드를 들었다.

 

 

 

*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었다. 이별을 택한지도 일 년이 지났다. 둘은 정말로, 단 한 번의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저 잘 지내기를 바라며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 사이에 차은우는 원래 있던 회사에서 한 단계 승진을 했으나, 곧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단지 좋은 이유였다. 옮긴 회사는 연봉이 조금 더 높았고, 복지가 조금 더 좋았고, 집에서 조금 더 가까웠고…. 자잘한 것을 합치면 꽤 많았다. 

 

 

 회사 책상을 정리하던 차은우는 서랍 구석에서 반으로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너 가방 열어보고 깜짝 놀랐지ㅋㅋ??? 이거 먹고 화이팅해라ㅎㅎ 난 오늘 늦게 들어가. 회식이래. 벌써 짜증난다... 글씨의 주인이야 뻔했다. 자기 나름대로 정갈하게 써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차은우는 구겨진 쪽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문빈을 생각했다. 오랜만이었다.

 

 

 

 이번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잠시 스쳐가는 소나기도, 굵은 빗줄기도 전부 다. 해보다 먹구름을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문빈은 마을에서 제일 큰 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 누워 허공을 쳐다봤다. 여름날 특유의 습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어…. 저기 산꼭대기에 비 내린다. 조금 있으면 비구름 여기까지 오겠네. 

 

 시골길에서 맞이하는 여름의 끝자락이 좋았다. 도시 생활만큼 바쁜 날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처럼 가끔씩 찾아오는 여유에 만족을 느꼈다. 며칠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가 갑자기 시간이 비면 온 몸에 들어차는 공허함은 조금 버거웠지만, 잊으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벌써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맞았다. 몸이 젖는 게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아서,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뛰면 비 더 많이 맞는댔어. 예전에 티비에서 실험까지 했으니까 맞겠지 뭐. 

 

  왼쪽에 논밭을 낀 콘크리트 바닥은 곳곳이 움푹 들어가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빗물을 찰박이며 땅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온통 비에 젖어 시야가 흐렸다. 손등으로 눈가를 쓸어내리고, 다시 걷고, 또다시 눈앞이 흐려지고. 종지에는 눈물이 쏟아졌다. 눈가가 뜨거웠다. 문빈은 길가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손으로 얼굴을 쓸고 또 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 울었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아차리는 게 웃겼다. 그래서 더 울었다. 아마 만나기로 했던 날이 오늘이었나. 얼마 전에 연락이 왔었다. 너 사는 곳에 가 봐도 되냐고. 

 

 

 우산 하나를 나눠 썼다. 잠시 내리다 말 줄 알았던 비는 아직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길을 걷는 내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일 년의 시간을 깰 처음을 고르는 게 어려워서.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은우야. 너는 요즘 행복해?”

 

 언젠가 사촌누나로부터 받았던 물음. 그때 문빈은 행복하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헤어질 용기도 없어서 이만큼이나 끌고 왔으니까.

 

“글쎄…. 잘 모르겠어. 너는?”

“그냥 그래.”

“…….”

“그래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

 

한 차례의 부재를 겪고 나서야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다. 포기하고 싶어서 선택했던 무력. 

 

 재고 따지다가 진 다 빼는 사랑 말고, FM으로 하는 게 맞을 때도 있으니까. 마음 가는대로 그냥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거 있잖아. 

 단순하게, 그냥 그런 거 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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