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짝사랑 연대기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익명
주제
사랑이 뭔데 (또! 오해영)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술집 입구에서 굳게 다짐했다. 미국 가서 눌러앉았는지 뒤졌는지 모를 차은우를 한국에서 찾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차은우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존나 재미없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꼬박꼬박 출석할 이유도 없었다. 정작 동창회에 차은우는 늘 오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주는 술이나 대충 받아 마시면서 술집 입구를 힐끔거리는 짓도 벌써 팔 년째다. 오늘을 끝으로 나는 더는 구질구질하게 차은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얼굴들 사이에 왜 하필 그 애가 앉아 있는 걸까.

 

  

차은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이 년 남짓의 짝사랑 연대기가 주마등처럼 주르륵 지나갔다. 없던 첫사랑도 조작할 얼굴인데 하물며 진짜 첫사랑이면 어느 정도겠는가. 졸업식 이후로 팔 년이 지나며 서서히 옅어졌던 마음이 그 애를 처음 봤을 때처럼 되살아났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창이 거기 서서 뭐 하냐며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나는 동창회가 해산할 때까지 거기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너 한국에 아예 들어온 거야?”

  

테이블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 동창들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차은우가 없었던 팔 년간의 동창회에서 여자 동창들은 차은우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떠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열폭해서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가 뭐가 좋냐고 떽떽대던 남자 동창들은 덤이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나조차도 속으로는 차은우의 귀환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야말로 차은우의, 차은우에 의한, 차은우를 위한 동창회였다.

  

차은우는 그만큼이나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고, 고로 그저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낸 나와는 같은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까이 가서 말을 붙일 이유는 더더욱 없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남자애들 테이블에 앉아 차은우를 힐끔거리기나 하면서 술잔을 비웠다. 분명 나도 ‘뒤에서 차은우를 안줏거리로 삼으며 찌질하게 열폭하는’ 무리로 분류됐을 것이다. 존나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생 때 도수 높은 뿔테안경 쓰고 다닌 내 잘못이지.

  

두 시간 후, 여전히 차은우는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팔 년 동안 차은우를 기다려 놓고도 지금까지 말을 걸지 못했다. 그냥 이러고 말 거면 그동안 왜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나 싶었다. 잘 피우지 않던 담배가 존나게 말렸다. 나는 재킷 주머니를 더듬어 담뱃갑을 찾고는 조용히 술집 밖으로 나왔다. 담배 피우고 대충 눈치 봐서 집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라이터를 찾던 참이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라이터가 불쑥 내밀어졌다.

  

“담배 안 피울 것 같았는데.”

  

차은우였다.

 

 

 

 

 

고마워, 하는 짧은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한숨 돌리려고 나온 건데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뭐라도 말해서 공백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아예 한국 들어온 거야?”

“응.”

“...일자리는, 알아봤고?”

“그럭저럭.”

  

연봉 묻는 예비 시어머니도 아니고 왜 이런 것만 물어보게 되는 걸까. 내가 이렇게까지 대화를 못 하는 사람이었나. 나름대로 대학을 나오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자부했는데 차은우 앞에선 그대로였다. 더 질문하면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깬 건 차은우 쪽이었다.

  

“나 한국 왜 왔는지는 안 물어봐?”

“...왜 왔는데?”

“한국말이 너무 쓰고 싶기도 했고, 이 동네도 그리웠고. 그리고..”

“그리고?”

“비밀.”

  

그렇게 말하고는 지 혼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어이가 없었는데, 그렇게 웃으니까 난 또 맥없이 설렜다. 팔 년이면 감정이 다 죽고도 남는 시간인데도.

  

“전화번호는? 그대로야?”

  

연락도 거의 안 했는데 왜 내 번호를 아직도 가지고 있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락할게. 나중에 밥도 꼭 먹자.”

  

차은우는 ‘꼭’에 힘을 주어 말하고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쟤 진짜 사람 헷갈리게 하는 데 뭐 있다.

 

  

 

 

「나의 짝사랑 연대기」

  

 

  

머리가 존나 깨질 것 같았다. 이게 다 내 테이블에 앉았던 새끼들 때문이다. 맨정신으로 마주치면 생깔 것들이 꼭 취하기만 하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기어이 떼어내고 멀쩡히 걸어서 집에 갔을 테지만 그때 나는 차은우와의 대화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했던지라 걔들이 끄는 대로 끌려갔고 주는 대로 마셨다. 어차피 예의상 하는 말이었을 텐데 내 번호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게, 밥도 ‘꼭’ 먹자고 한 게 사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말해야겠다. 내가 지금 토할 것 같은 건 쓸데없는 부분까지 섬세하고 친절한 차은우 때문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부수는 상상을 백 번쯤 한 뒤에야 알람을 껐다. 잠금화면에 차은우가 보낸 카톡 미리보기가 띄워져 있었다. 연락하겠다는 거 진심이었나. 그보다 왜 물음표 두 개를 보낸 걸까.

「빈아 잘 들어갔어? 보면 답장해줘!」

「나쁜챠은ㄴ누지ㅈ짜너그럼안ㄴ댜」

「니ㅣ가내첫ㅅ키스뺏어갔잔ㅎ아」

「??」

 

여기서 떨어지면 즉사 가능한가? 요즘 한강물 온도 괜찮나? 구조대원 분들 힘드시니까 그냥 접싯물에 코 박고 뒤져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나의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이 그 손가락 덕분에 다시 떠올랐다. 좆됐다. 앞으로 못해도 한 달은 밤새 이불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이불킥 할 짓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 카톡의 근원지를 알아보려면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누구나 잠이 잘 안 오는 밤에 갑자기 생각나 이불을 차대는 흑역사 하나쯤은 있지 않나. 나에게 그런 흑역사는 그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수학여행의 첫째 날 밤을 꼽을 것이다.

  

열여덟 살에 갔던 수학여행에서, 어른의 세계를 궁금해했던 애들이 기어이 소주를 물처럼 포장해 들고 왔더랬다. 그 애들 중엔 내 룸메이트들도 있었고, 나는 친구들의 유혹에 넘어가 그 쓴 걸 가오 세우겠다고 끊임없이 마셔댔다. 내 주량이 얼만지 알 리가 없었으므로, 나는 한 병 반을 다이렉트로 꽂아 넣고 만취 상태가 됐다. 당시 반장이었던 차은우가 방들을 둘러보며 인원 체크를 하려 우리 방의 현관문을 두드린 건 그때였다. 룸메이트 한 명이 문을 열어주는 순간, 나는 그 애에게 곧바로 돌진해서 입을 맞췄다. 열여덟 살의 뿔테안경을 쓴 문빈이 그럴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고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난 대참사였다.

 

  

 

그 대참사가 머릿속에서 오백 번쯤 재현되고 있어도 이 나라의 건실한 일꾼은 어떻게든 출근을 한다. 술과 조금 전의 카톡  탓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기어이 교무실에 들어섰다. 옆자리 김 선생이 나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

  

“문쌤. 어제 과음했어요? 상태가 영 아니네.”

“네, 뭐... 어제 동창회였거든요. 그래도 오늘 1교시 공강이라.”

  

그나마 다행이죠, 뭐... 도대체 뭐가 다행인가 싶어 이내 말끝을 흐렸다. 방금 그 일이 또다시 재생됐다. 오늘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긴 글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출석부와 숙취해소제를 챙겼다.

 

  

 

“남자는 축구하든 농구하든 알아서 하고, 여자는 피구하라 해도 어차피 안 하고 농땡이 피울 거지? 뭐 숨어서 숙제하던지.”

“쌤. 너무 성의 없는데요.”

“다음주의 좋은 수업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하자.”

“쌤.”

“아 그래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다, 됐냐?”

  

그게 아니라 어떤 분이 쌤 찾으시는데요. 그렇게 말한 학생의 손끝을 따라가니 웬 키 크고 잘생긴...

 

  

차은우였다. 또.

  

 

 

“나 여기서 일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런 거 물어볼 친구 정도는 있어.”

  

그러면서 핸드폰을 얄밉게 흔든다. 차은우는 어째 벙쪄있는 내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 근데.. 지금 수업 들어가야 하거든...”

“애들 자유시간 주고 농땡이 피우려던 거 아니었어?”

“아아니 그게... 내가 오늘 컨디션이 좀.. 그래서..”

 

 나 지금 차은우한테 조련당하고 있는 거 맞지. 현실감이 없다. 팔 년 동안 기다리던 해묵은 첫사랑을 어제 봤고, 오늘은 그 짝남이 다짜고짜 일터로 찾아왔다. 내가 생각해도 개연성이 너무 없었다. 지식인에 올리면 주작 올리지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라는 답변이 달릴 것 같았다.

  

“....근데 왜 왔어?”

“더 답장이 없길래.”

“아아아니그건내가그런걸보내려고했던게아니라내가술을너무많이먹어서미쳤나봐진짜미안”

“얼굴 봤으니까 됐어, 괜찮아.”

 

 나 갈게. 톡 꼭 보구. 차은우는 해맑게 손을 흔들며 교문 밖에 주차된 자기 차를 타고 사라졌다. 얼굴, 봤으니까, 됐어. 그 한마디가 조각조각 나뉘어 내 머리를 존나 세게 치고 가는 기분이었다. 쟤 갑자기 왜 저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겠지만, 차은우는 그게 잘 안됐다. 차은우는 그날 그 ‘대참사’ 이후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남자 안 좋아해. 게이.. 솔직히 별로야. 빈이? 걔도 실수한 거겠지. 나를 여자애로 착각한 거 아니야?」

  

 

정신 차리자, 문빈. 저 새끼 호모포비아야. 저런 대사 암만 날려도 넘어가면 안 돼. 니가 저 말에 얼마나 오래 우울해했는지 기억 안 나? 그날 이후로 차은우 존나 싸늘했던 거 기억 안 나냐고. 그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또 설레. 나는 두 볼을 몇 번 치고는 숙취해소제를 쭉 들이켰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기자. 스무 살 때, 차은우에게 다짜고짜 전화하고 싶을 때마다 봤던 핸드폰의 메모를 되새겼다.

 

 **

  

“너 좋아해. 십 년 전부터 쭉 그랬어. 아무리 좋은 사람 만나도 네가 안 잊혀져.”

“통했다, 나도 그랬는데.”

  

차은우가 씩 웃는다. 저 웃음은 십 년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싼다. 너 너무 부드러워. 꽃 같애, 자꾸 꺾고 싶어. 마음이 간질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아도 되나. 너의 입술이 다가온다. 나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춘다.

  

“나 가지고 맨날 이런 상상했어? 웃기네.”

  

그 순간 꿈에서 깼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씨발, 씨발, 진짜 미쳤나봐. 사람 다 녹아내리게 만들 것 같은 눈빛이 선명했다. 나를 비웃는듯한, 차은우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 말투도. 이건 진짜 좀 아닌 것 같았다. 당장 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어설프게 차은우의 ‘호의’를 받다가는 오늘 꾼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몰라.

 카톡 차단부터 해야겠다 싶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금화면에 떠 있는 카톡 미리보기가 눈에 띄었다. 차은우였다. 안읽씹하려고 했으나 답장을 안 하면 학교로 또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차은우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고민 끝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카톡을 확인했다.

  

「너 삼겹살 아직도 좋아해?」

「날짜는 언제로 할래? 나는 아무 때나 다 좋아.」

  

진짜 밥을 같이 먹겠다는 소리였다. 나랑. 성 지향성을 게이로 확립한 사람이랑. 제멋대로 자기가 예약한 레스토랑에 끌고 가는 것도 아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원래는 질색할 음식을 굳이 나를 위해 맞춰주겠다는 소리였다. 진짜 얘 왜 이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심장이 정신 나간 것 같이 뛰었다. 나는 또 마음이 약해졌다.

  

「진짜로 밥 먹겠단 소리였어?」

  

새벽이었는데도 보내기 무섭게 답장이 왔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나 밥 가지고 빈말 안 해. 나 밥에 진심인 사람이야.」

  

무슨 저런 말을 마침표 붙여가면서 진지하게 해.

  

「동창회 왔던 애들이랑 다 밥 한 번씩 먹으려면 돈 많이 들겠다.」

  

왜 굳이 나와 이런 약속을 잡냐는 걸 대충 돌려 보낸 거였다. 보내고 나니 너무 비아냥거렸나 싶어 후회됐다. 차은우 앞에서는 자꾸 말실수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은우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한참을 망설이다 끊기기 직전에 받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

“어?”

“나 밥 아무한테나 사주는 거 아닌데.”

“그럼 밥을 왜 나한테는 사줘?”

“사주고 싶으니까.”

“그니까 왜.”

“그러니까, 그게...”

“나 솔직히 부담스럽거든. 우리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팔 년 동안 연락 한번 없었잖아.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안 했으면 좋겠어. 학교에도 안 찾아왔으면 좋겠고.”

  

그 뒤에 이어진 대답이 진짜 가관이었다. 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너무 화가 나서 무작정 끊었다. 허 참나! 설레라고 일부러 놀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전화벨이 다시 울리는 게 너무 빡쳐서 배터리를 분리해 침대에 내던졌다. 차은우 나쁜 새끼. 사람을 가지고 놀아? 그 와중에 다시 울리던 전화를 받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는 내가 제일 싫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동성애를 수용할 줄도 모르는 애를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걔의 놀이에 허우적대고 있는 게.  더 우울해지기 전에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핸드폰에 배터리를 다시 끼웠다. 켜자마자 차은우의 카톡이 쏟아졌다. 끝내 차은우를 차단하지도 못하고 잠금화면에 뜬 카톡 미리보기를 멍하니 보다 힘없이 웃었다. 나 되게 웃겼겠지. 네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흔들리는 거 잘 보였을 텐데 모른 척 친절하기 되게 힘들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은우에게선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비로소 미루고 미뤄왔던 긴긴 짝사랑의 끝을 맺을 타이밍이었다. 정말이지 그때만큼은 내가 이 학교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다. 늘 10분 컷으로 대충 만들었던 학습지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체육 수업을 자유시간으로 때우지 않았다. 내가 줬던 자유시간을 떠드는 데 알차게 썼던 몇몇 학생들은 내 새로운 학습지를 들이대며 묻기도 했다. 선생님 혹시 심경에 큰 변화라도. 그때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도, 그냥 좀 열심히 살아보려고. 그렇게 말한 다음 날 학생들 사이에선 내가 각박한 사회생활을 못 견디고 미쳤다는 소문이 났다.

 

  하지만 그 소문도 한 달쯤 되니 연기처럼 흩어졌고, 나는 천천히 게을렀던 예전의 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니까 차은우가 생각나는 빈도도 눈에 띄게 적어졌다. 한 달이면 다 정리될 걸 왜 그렇게 질질 끌었을까. 차라리 차은우가 그렇게 정떨어지게 말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끝끝내 차은우를 차단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는 이따금 면접을 준비하는 것처럼 핑계를 고민했다. 그냥 그 정도의 미련만 가지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아예 생각나지 않는 날이 올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

 

 평소와 똑같은 회식이었는데 어쩐지 가기가 싫었다. 아마도 내일 멀쩡히 출근해야 하는데 억지로 인원을 모집하는 부장의 고집스러운 성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년 부장이 웃으면서 문 선생님도 올 거죠? 라고 묻는데 그 면상에다 대고 안 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술집에 끌려갔고 낮은 짬밥 탓에 주는 대로 다 마셔야 했다. 적당히 노래 부르고 분위기 띄우면서 술잔을 피해갈 수도 있었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부장이 건넨 술잔을 받았다. 저 새끼 대가리에 언젠간 꼭 소주를 부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마시다보니 몸을 가누기 꽤 힘든 상태가 됐다. 내가 벽에 몸을 기대니 한계인 걸 알았는지 나는 적당히 빼놓고 술자리를 이어갔다. 누구라도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뇌에 힘을 줬을 텐데,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으니까 뇌가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차은우한테 전화를 걸었다는 거다.

  

"여보세요? 빈이?"

"어어. 그으래. 나 일학년 삼반 담임 문빈인데."

"취했어? 지금 어디야?"

"너 그거 알아서 뭐 하게. 어? 또 나한테 수작질하려고 그러지."

"지금 거기로 갈게. 어디야?"

"진짜 남친 코스프레 오지구여 지리구여. 박수 짝짝이다 시발럼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시끄러!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말이 많어."

"나 한마디 했어...."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인지 어느새 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나와 차은우의 통화 내용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부장의 눈치를 보다 내 핸드폰을 뺏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저 문빈 씨 동료예요. 문빈 씨가 지금 좀.. 많이 드셔가지구..

  

"제가 데리고 갈게요. 어딥니까?"

"아아아김쌤말하지마여저새끼지금여기오면안된단말이에여!!"

"여기 A 주점이요^^"

  

사실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이 엄청난 존잘남이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는 것, 그리고 띄엄띄엄한 대화만 아득하게 맴돌았다.

  

"그 동료랑 단둘이 마신 줄 알고 화날 뻔했어."

"니가 뭐라고 그런 걸 신경을 써."

"내가 정말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말은 바로 해. 내가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지."

"왜 그렇게 생각해?"

"......."

"난 사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 건지도 모르겠어."

 

 너랑 연락하지 못했던 한 달이 난 정말 지옥 같았어. 그러니까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그것만 알려줘. 그렇게 말하는 차은우가 꿈에 나왔다.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사실 그 대화의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돌아옴과 동시에 나는 여기가 차은우의 집임을 직감했다. 평생 느낄 쪽팔림을 최근 한 달에 모두 끌어다 쓴 것 같았다. 그냥 이 방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도망갈까 고민했으나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분명 즉사할 것이므로 포기했다. 고민 끝에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문을 열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차은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이대로 몰래 튈 계획을 세우던 순간 냄비를 들고 오는 차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난 해장 콩나물국으로 해서 끓였는데 넌 어떨지 모르겠네. 먹고 가."

  

지난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지옥 같았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불현듯 생각났다.

 

 "괜찮아. 데리고 와서 재워준 것만으로도 미안해 죽겠는데."

"먹고 가."

  

단호한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차은우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콩나물국을 크게 한술 떠서 대충 욱여넣었다. 콩나물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차은우는 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무슨 말?"

"나랑 밥 딱 한 번만 먹어줘."

 

 여기서 이러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밥 먹으면서 얘기할게. 차은우한테 밥을 못 먹고 뒤진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다. 나는 할 말도 없고 너랑 밥 먹기도 싫다고, 이제 진짜 더 안 만나고 싶다고 말해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말에 화가 안 풀렸는데, 차은우가 정말 싫은데, 그런데도 나는 또 자존심을 버리게 된다. 차은우 앞에서 많은 사람이 그러듯이. 너는 언제나 그랬듯이 승자였다.

 

 **

  

"문쌤. 어제 문쌤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분 누구예요?"

"...그냥 지인이요."

"통화내용이 심상치 않던데요? 남친 코스프레 어쩌구.."

"그냥 취해서 헛소리한 거 아니에요? 걔가 워낙 친절해서 원래 그런 농담 많이 해요."

"에이, 그래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김쌤. 하던 일 하시죠. 차가운 말투로 응수하자 김 선생은 눈을 굴리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어제 술자리에서 내 얘기만 하다가 김 선생이 총대 메고 물어본 것일 터였다. 대학 가서는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차은우 앞에선 다들 왜 이리 일관적인지.  한숨을 쉬며 학습지를 복사하려던 찰나에 알람이 울렸다.

  

「오늘 학교 언제 끝나? 학교로 데리러 갈게.」

 「6시 반.」

 「딱 저녁 시간대네. 잘 됐다.」

 

 마지막 카톡은 가볍게 읽씹했다. 오늘 아침에 그렇게 무겁게 말할 땐 언제고 카톡에서부터 들뜬 게 티가 났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10분 컷으로 대충 만든 학습지를 3반 반장에게 건넸다. 학습지를 받은 반장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모른 척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사람이 하던 대로 안 하면 병이 나더라구.

 

  

1분에 한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차은우고 뭐고 다 파토내고 싶다가도 지금 당장 차은우한테 달려가서 붙잡고 할 말이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기도 했다. 할 말이라는 게 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탓이었다. 나를 가지고 논 것에 대한 사과일까. 전혀 사과를 받고 싶은 사안이 아니었다. 그거라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사과를 받는다는 건 내가 차은우의 장난감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 말이 아니라면 뭘까. 자꾸만 내가 없던 시간이 지옥 같았다는 차은우의 말이 맴돌았다. 이제까지의 행보와 완벽하게 어긋나는 말이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 말이 진짠지 꿈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제까지의 차은우와 당연히 달랐겠지. 그건 꿈이었으니까. 그냥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일 뿐이니까. 어제 아무리 피곤했어도 기를 쓰고 분위기를 살려 눈치껏 술잔을 피했어야 했다. 조용히 끝낼 수 있었던 걸 왜 굳이 끌어내서. 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고로 누구한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애꿎은 김 선생만 째려보다 말았다. 저 사람이 무슨 죄겠어. 그때 끊어주지 않았으면 나는 오늘 부장한테 한 소리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복도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내 뺨을 때렸는데 한 학생이 식겁하며 지나갔다. 이후에 나에 대해 또 무슨 소문이 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다. 나는 부장이 요청한 서류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부장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저 퇴근할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서류를 훑으며 핀잔을 주려던 부장도 입을 다물었다. 오늘만큼은 퀄리티가 그 어떤 엘리트보다 완벽했다. 교무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자꾸 꼬였다. 설레는 건지 심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지내 놓고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다시 이럴 수 있는 걸까. 잡생각을 하느라 교문 앞에도 계단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발을 헛디뎌 보기 좋게 넘어지려던 순간이었다.

  

"괜찮아?"

  

또, 또, 또 차은우였다. 어쩜 이렇게 순정만화 같은 타이밍에만 골라 나타나는지 몰라.

 지가 잡아줘 놓고는 지가 더 놀랐다. 헉... 미안. 딱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먼저 잡았던 손을 놓았다. 무슨 건드리면 바스러지는 낙엽을 대하듯이 굴었다. 발목을 접질리진 않았나 싶어 대충 발목을 돌려보고 있는데 자기가 더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 멀쩡해. 그렇게 대답하는 걸 듣고 나서야 옅게 미소를 지었다. 누구 앞에서 진심으로 불안해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제 갈까."

 

 차은우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은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생각해보니까 곧 있으면 다른 선생님들도 나올 거고, 우리를 발견하면 분명 차은우를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을 게 뻔했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 했는데 시간을 너무 끌었다. 차은우의 귀가 새빨개진 줄도 모르고 나는 도망치듯 차은우의 차 앞으로 갔다. 

 

 "근데 진짜로 삼겹살 먹으러 가? 너 그거 싫어하지 않아?"

"내가 뭐 중요하겠어. 너한테 맞춰야지."

  

비꼬는 말투가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꾹 눌러 하려던 말을 삼켰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렇게 물으면 금방이라도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뭐 그런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차피 비참해질 거라면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고 싶었다. 내 눈치를 보던 차은우는 이내 차를 출발시켰다. 가는 내내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장한 듯 운전대를 꽉 쥔 손이 나를 더 오락가락하게 했다.

  

**

  

차은우는 생각보다 고기를 능숙하게 구웠다. 내가 집게나 가위를 집어 들지 못하게 다 자기 쪽으로 치워 놓고 반찬들은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고기를 잘라 내 앞접시 앞에 직접 놔 줄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은우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앞접시에 고기로 산을 쌓던 차은우는 왜 안 먹어? 하고 물었다.

  

"할 말부터 해. 나 솔직히 뭐 먹을 생각 없거든."

"고기 식는데..."

"나한텐 그게 더 중요해."

 

 차은우는 한숨을 쉬고, 목을 만지고, 귀를 만지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동안 나도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했다. 준비가 잘 된 것 같진 않았지만. 한참을 망설이던 차은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라고 서두를 던지겠지. 그럼 나는 뭐가 미안한데? 하고 화난 목소리로..

  

"좋아해."

"뭐가 좋은데?"

  

아 씨발, 말이 그냥 자동으로 나갔다. 근데 왜 좋아한다고 하지? 맥락이 안 맞는데. 이런 상황에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닌데.

  

"그때, 너 키스했던 날. 그날부터. 너를."

"......."

"키스 한 번으로도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나 싶었어.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됐어. 그냥 한순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떠들고 다녔어. 근데 널 보면 막 아플 만큼 설레서. 그냥 묻어두려고 일부러 연락 안 했는데도 자꾸, 생각이 나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자만했던 거 맞아. 나 혼자 너무 오래 끌었으니까 더 빙빙 돌리기 싫었고, 너도 내가 아직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다른 사람들은 다 내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나 되게 멍청하지. 이기적이고."

  

맨정신으로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마 너도 온전히 소화해서 묻어두지 못했을 아주 날것의 단어들이었다. 비로소 아득했던 어젯밤의 대화가 선명해졌다. 그때 그 말이 꿈이 아니었구나. 차은우는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 주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고깃집 사이에서 나하고 너만 멈춰 있었다. 너랑 나만, 십 년 전 언젠가에.

  

"나 진짜 나쁘다. 다 끝난 애 붙잡고 밥이나 먹자고 해놓고 밥도 못 먹게 하네."

"......."

"그래도, 평생 말 안 하면.. 언젠간 체할 것 같아서. 미안해."

"아직 안 끝났어!"

  

나도 너 차단 못 했단 말이야. 진짜 내가 미련 다 버린 거였음 어쩌려고 이런 말을 해. 그렇게 말하는데, 사실은 정말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어. 아니면 몸이 흐물흐물해져서 핑크빛의 젤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나 봐. 오랫동안 돌고 돌아도, 결국은 또다시 너에게.

 술은 분명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 머리가 띵하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팔 년하고도 한 달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갑작스러운 소나기마냥 예측불가다. 둘 다 서로에게 놀라서 동그란 눈을 하고 서로를 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차은우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내어 웃는다. 나도 웃고 있는 것 같다. 너의 귀가 새빨갛다. 내 귀도 그렇겠지. 고개를 푹 숙이고 애써 다 식은 고기를 집으려고 했는데, 네가 내 손을 이끌고 무작정 고깃집을 나온다. 나를 돌아보더니 또 웃는다.

  

“왜 웃어?”

“아무래도 고백 장소를 잘못 정한 것 같아서.”

  

봄과 여름 사이의 따뜻한 바람이 머리를 헤집고 지나간다. 크고 따뜻한 손이 목덜미를 감싸온다. 너의 입술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내 입술에 닿고 만다.

  

 

차은우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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