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러 가자

2020 겨울호
작성자
차뮤
작성일
2021-01-16 22:28
조회
62



정신이 몽롱하다. 안 맞는 약을 먹으면 이렇다. 7년간 병원이란 병원은 몽땅 전전한 탓에 은우는 안 먹어본 약이 없다.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은 가슴팍을 만지니 버석한 질감이 걸렸다. 그제야 실감이 좀 난다. 은우는 이제 벼랑까지 몰린 것이다. 입원 전 써낸 약 이름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 환자 개개인의 처방 따위는 사치인 곳.

 

수리정신병원.

 

파랗고 하얀 스트라이프 환자복에 새겨진 자수를 만지던 은우가 비척비척 일어섰다. 창문을 열자 환자복을 닮은 창살이 빼곡히 차 있다. 춥다. 그럼에도 머릿속을 꽉 채운 구름은 날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여기 오게 됐더라? 간단한 질문도 은우는 떠올리기 어렵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공모전에 나가 턱턱 상을 타오던 것도 벌써 사년 전이다. 펜촉을 닮은 벌레가 갉아먹은 뇌는 자꾸 자극을 원했고 은우는 자연스레 팔목을 긁었다. 그게 허벅지가 되고 배가 되고 목이 되고. 칼날이 남을 향한 순간 결국 이 곳에 왔다. 아무도 찾지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는 병원. 은우의 종착지였다.

 

 

“차은우!”

 

 

13층 휴게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꽂혔다. 오지 마. 온기가 옆에 닿기도 전 은우가 차갑게 말했다. 반갑게 은우를 부른 빈은 굴하지 않고 빙긋 웃는다.

 

 

“너 진짜 아파 보여. 그렇게 좀 웃지 마.”

“그냥 정신병자 같다고 말해도 되는데.”

 

 

타박을 들어도 뭐가 좋은지 눈까지 접어 웃는다. 은우가 슬리퍼를 찍찍 끌었다.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온 빈은 여전히 상의 단추를 모조리 풀어헤치곤 흰 티 받쳐 입은 채다.

 

 

“너 그러다 또 잡혀간다.”

 

 

믹스커피를 손가락에 끼워 넣은 은우가 빈의 가슴을 쿡 찔렀다. 군대도 아닌 게 복장 벌점까지 있다. 환자복은 이름 보이게, 단추 다 채우고, 더러워지면 바로 교체. 물론 빈은 불시 점검 나오는 족족 걸려 독방 신세까지 졌다.

 

 

“답답한데 어떡해.”

“여기서도 잘만 사는데 왜 답답해.”

“옷 작아진 것 같다고.”

“운동 그만해 그러면.”

“운동 때문 아니라고!”

 

 

믹스의 단 맛이 혀를 뜨끈하게 데운다. 따뜻한 카페라떼, 아님 아메리카노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커피머신은 여기 오자마자 반나절 만에 고장 날 게 뻔하다. 가끔 간호 선생님에게 커피를 얻어먹는 은우를 보며 빈은 차별이라고 빽 소리를 질렀다. 나도 잘생겼는데 왜 커피 안 줘요! 커피도 금지 당한 애가 말이 많다. 그날도 물론 벌점이었다.

 

병원의 유일한 휴게공간인 13층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시장통처럼 바글바글 모인 미친 인간들 보기도 힘들고 티비에서는 트로트 프로그램만 흘러나왔다. 다 마신 종이컵을 던져 넣은 은우가 발을 떼자 어느새 사람들 틈에 섞여 트로트 부르던 빈이 다시 쪼르르 달려온다.

 

 

“산책 가자.”

“안 가.”

“가야 돼.”

“내가 왜?”

“저번에 같이 가준다고 했잖아.”

 

 

은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발을 옮긴다.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빈은 지치지도 않는지 은우가 자신의 병실로 들어갈 때까지 옆에 붙어 자신이 얼마나 산책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떠들어댔다. 개새끼도 아니고. 은우가 빈의 코 앞에서 쾅 문을 닫았다. 그리고 훔쳐 온 커피 숟가락으로 문을 잠근다. 야, 야! 빈이 문을 쿵쿵 두드렸다. 안 봐도 입이 네모가 돼서 울 것 같은 얼굴이 자동 재생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우는 다시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

 

 

재수도 없다. 문 잠근 걸 걸려서 은우는 무려 세시간 동안이나 초음파 치료를 받았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돌아오자, 빈이 길고양이처럼 은우 병실 앞에서 웅크리고 있다.

 

 

“꺼져.”

“내가 말한 거 아냐.”

 

 

동시에 말이 겹쳤다. 은우가 손잡이를 잡자마자 빈이 바로 앞을 막아섰다.

 

 

“달 보러 갈래?”

“개소리 하지 마.”

 

 

하룻밤 만에 수척해진 은우를 보며 빈이 다시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은우만큼 큰 덩치가 쪼그라진 꼴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순식간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멀쩡한 빈이기에 은우는 막연히 친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딱 입원 일주일 만에 아니란 거 알아챘다. 문빈은 차은우보다 더 미쳤다.

 

-그 놈의 달은 왜 맨날 보러 가재. 창문으로 실컷 봐.

-내가 문빈이잖아.

 

날카롭게 생겨서 낯 간지러운 소리 잘도 한다 싶었다. 그날 이후 빈은 은우한테 미안하거나 머쓱한 일이 생기면 달타령을 해댔다. 산책 가자. 달 보러 가자. 걷고 싶어. 은우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손잡이고 뭐고 없어진 탓에 주르르 문이 열리지만, 빈은 그냥 그 앞에 서서 은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빈은 사실 쓸모가 많다. 여기서만 오 년 버텼다 했다. 가끔은 뼈가 부러지게 맞기도 하는 곳에서 버틴 것도 용하지만 그 사이에 치료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니까 빈을 보면 은우는 여기가 병원보다는 혐오시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은우가 약 세 봉지를 털었다. 그럼 여기 있는 너는 뭔데? 뇌에 숨어있던 벌레가 불쑥 고개를 든다. 그러게. 나 그래도 내가 아직 덜 미쳤다고 생각하나 봐. 벌레가 낄낄 웃는다. 미친 새끼네. 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까 꺼져.

 

 

-

 

 

-네. 나가고 싶어요.

 

피력과 반대로 은우는 '고위험군 전용 호출기'만 들고 돌아왔다. 뭐냐고 물어보니 자살 확률이 높은 환자에게 채워두는 거라고 했다. 은우가 쾅쾅 걸어 침대에 호출기를 내던졌다. 씨발. 갑자기 화가 치솟는다. 여기 갇힌 것도 짜증 나고 가둔 가족도 싫고 구석에 쭈그린 빈도 꼴 보기 싫었다.

 

 

“너 그러다가 잡혀가.”

 

 

빈이 슬쩍 은우의 소매를 잡아 왔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헐떡대던 은우가 침대를 짚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가 깜빡깜빡. 몇 번이고 들이키니 매듭이 탁 풀렸다. 일상의 대부분이 이렇다. 미친 듯이 화가 나다가도 금방 몽롱해지고 멍하다.

 

 

“잡혀가든 말든.”

“너 없으면 내가 심심하잖아.”

 

 

반대다. 빈이 없어지면 은우는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입 열 일이 없다. 은우도 사람인지라 심심할 테지만 그렇다고 13층에 올라가 빈처럼 트로트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됐으니까 가.”

 

 

뒷덜미를 밀어대는 은우의 손을 잡곤 빈이 반짝 눈을 빛냈다.

 

 

“이번 달 면회 명단 떴대. 내가 누나한테 물어봤어. 너 있냐구.”

“…….”

“안 궁금해?”

 

 

그 좋아하는 점심시간 방송도 무시한 채 빈이 은우를 올려다봤다. 식은땀이 났어도 잘생겼다. 말은 재수 없게 해도 목소리가 나긋해서 좋다. 친해지고 싶어. 사실 뽀뽀도 좀 하고 싶어. 그래서 빈은 고급정보를 꺼내 들었다. 간호사 누나가 몰래 보여준 리스트에 차은우 이름만 눈에 꼭꼭 담아왔다.

 

 

“알려줄 테니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은우가 빈의 이마를 꾹 밀어냈다.

 

 

“야. 일어나.” 

 

 

물론 빈은 미친 주제에 꽤 똑똑했기 때문에, 은우는 꼬박 일주일간이나 밥을 같이 먹고서야 면회일을 알 수 있었다.

 

 

-

 

 

“글 쓰다가 미친 새끼.”

 

 

악의가 가득한 목소리는 익숙하다. 변한 게 있다면 은우는 이제 병신같이 참지 않는다. 은우가 밥을 뜨던 숟가락을 쾅 내려놨다. 빈이 깜짝 놀라 두리번댔다.

 

 

“저 아저씨 맨날 저래. 그냥 헛소리 하는 거야.”

 

 

오층 아저씨는 항상 시한폭탄 취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매번 다른 환자들 증상이나 병명을 읊고 다녔다. 은우가 오기 한참 전 빈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둘 다 나란히 한쪽 팔 부러진 적도 있다. 벌써 까먹었는지. 빈이 테이블 너머를 노려봤다.

 

 

“밥맛 떨어져.”

“내 돈까스 먹어.”

“됐어.”

 

 

은우가 국그릇에 채 먹지 않은 반찬들을 모았다. 빈이 빠르게 돈까스를 욱여넣었다. 야. 천천히 먹어. 갈 생각도 없는데 빈은 꼭 떨어지기 싫어하는 애새끼 같다. 드문드문 사람이 빠진 식당에 오층 아저씨의 음성이 웅웅 울려 퍼졌다.

 

 

“글 쓰다가 미친 새끼. 부모 없는 새끼.”

 

 

은우의 턱에 힘이 들어간다. 은우를 괴롭히던 환청처럼, 그냥 미쳤기 때문에 하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성질머리에 불이 붙는다. 차라리 몽롱한 약 기운이 퍼지는 게 나을 테다. 안 맞는 약 때문에 예민해진 신경이 하나하나 가시처럼 곧추선다.

 

 

“또라이들.”

“…….”

“애비한테 처맞다가 대준….”

“지랄하고 자빠졌네.”

 

 

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빈이 벌떡 일어나 은우의 팔을 잡아챘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소스가 덕지덕지 묻은 젓가락이 쨍그랑 소릴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은우가 오층 아저씨의 눈깔을 찌른 것이다.

 

 

“차은우! 너 미쳤어?”

 

 

빈이 은우를 밀치고 바닥을 뒹구는 아저씨를 일으켜 세웠다.

 

 

“으아아…….”

 

 

다행히 피만 날 뿐 멀쩡해 보였다. 굳어버린 안면에서 침이 주룩 흘렀다. 안 보이는 거야? 눈 뜨고 기절한 건가? 그동안 비틀대던 은우가 바닥에 앉아 숨만 색색 몰아쉬었다. 금세 기어 나온 벌레들이 충동, 멍함, 몽롱함, 분노, 짜증 그런 단어들을 외쳐댄다. 내가 찌른 건가? 아님 여전히 상상 속 인걸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푸르르 저었다. 그냥 다 귀찮다. 다 하기 싫고 힘이 든다.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흰색 종이를 떠올린다. 작지 않은 소란에 경호원부터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아닥쳤다. 그러나 은우가 아닌 빈의 뒷덜미부터 잡아챈 건 불운이었다.

 

 

-

 

 

“나랑 달 보러 가자.”

“야.”

“넌 안 봐도 돼. 나만 볼게.”

 

 

오랜만에 마주한 빈은 혀가 늘어져 있다. 만일 동물 귀가 달려있다면 아마 힘없이 축 처져있겠지. 은우는 간만에 맑은 정신으로 빈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바라봤다. 삼일 간 네 시간 씩 초음파 맞은 빈의 눈동자는 생기가 죄 빠져있다. 텅 빈 인형 같은 눈을 하고 지치지도 않는지 또 달 타령이다.

 

 

“달에 페티쉬 있냐?”

“말도 못 되게 해.”

“난 원래 이래.”

“못 됐어. 차은우.”

 

 

난 너 벌도 대신 받아줬는데.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문 잠갔다고 고자질한 대가 치고 좀 컸지만 어쨌든 한 대 씩 주고받은 거라고 친다.

 

 

“어딘데?”

 

 

그래서 은우도 한 번 져주기로 한다. 작아진 목소리가 불쌍해서. 그리고 초음파로 금가고 조각난 영혼이 얼마나 기분 더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진짜지? 취소하기 없기다.”

 

 

누가 미친 놈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웃는 낯으로 변한 빈이 덥석 은우의 손을 잡았다.

 

기껏해야 13층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빈은 그 큰 덩치를 구겨 넣어 개구멍을 세 개나 지났다. 요령도 좋다. 은우가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환자복은 이미 흙으로 더럽혀진 지 오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빈이 내민 손을 잡고 마지막 통로를 벗어난 은우는 자기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뱉어냈다.

 

 

“예쁘지?”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는 빈의 눈이 반짝거렸다. 쏟아져 내릴 것처럼 많은 별보다 더. 둘은 좁은 옥상 화단 틈을 비집고 앉았다. 산의 능선을 따라 수많은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비록 밑은 낭떠러지고 엉덩이는 흙 때문에 젖어가고 있지만. 은우는 그제야 생각한다. 노트랑 펜을 가져올 걸. 아무리 눈에 새겨도 휘발되는 기억은 아쉬운 법이니까. 그러고 순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란다. 여기에 노트랑 펜 따위 있을 리가 없는데. 그 전에 자신은 다시 글을 쓸 수가 없는데.

 

은우가 옆을 돌아봤다. 빈은 저 아래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다. 날카로운 눈과 동그랗게 떨어지는 코.

 

 

“문빈.”

“왜. 차은우.”

 

 

맞닿은 체온에 빈은 조금 놀란 얼굴이다. 평소엔 큰 손이 좋다고 불쑥불쑥 만지면서. 차가운 바람이 땀방울을 흩었다.

 

 

“……시원하다. 예쁘고.”

 

 

아무래도 다음 편지에는 노트와 펜을 부탁해야겠다고, 은우는 다짐했다. 써야겠다. 풍경은 아무래도 좋았다.

 

 

-

 

 

오층 아저씨가 붕대를 푼 시점과 비슷하게, 은우와 빈은 한 몸처럼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은우가 자기 병실 앞에 와있는 걸 본 빈이 울기까지 해서 은우는 요새 통 이상한 기분이었다. 울지 마. 더 돈 것 같이 보이잖아. 물론 이런 말 밖에 못 했다.

 

그 날은 빈이 없었다. 또 벌점 받아 독방 간 건가 싶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면회 갔다고 알려줬다. 문 닫고 나온 은우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몇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면회도 상담도 받은 은우와 달리 빈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가끔 외출을 갔다 오면 부럽다고 은우의 옷깃에 코를 박고 바깥냄새 맡기도 했다. 면회가 있었음 있다고 현수막 써 붙일 앤데 은우에게 일언반구 하나 안 한 게 이상하긴 했다. 순식간에 할 일이 없어진 은우는 13층으로 가 믹스를 홀짝였다. 약 기운에 티비 속 트로트 가수들이 빙글빙글 돈다.

 

 

“눈 찌른 거 형이죠?”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다. 인상을 찌푸린 은우가 벌레 털듯 손을 치워냈다. 그러나 돌아본 얼굴은 열 다섯이나 될까 싶은 어린애다.

 

 

“치료실에 빈이 형이 대신 들어갔잖아요.”

“그게 뭐.”

“그냥 그렇다고요.”

 

 

소년이 은우의 옆에 폴짝 뛰어 앉았다. 빈과 아주 친한 것처럼 구는 말투였다. 처음 보는데. 이런 또라이는 여기에 아주 많았다. 소년을 정의내린 은우가 종이로 대체된 커피 스틱을 휘휘 젓는다.

 

 

“근데, 그냥 안 찌르는 게 좋을 뻔했어요. 빈이 형 아빠 왔거든요.”

“…….”

“정확히 말하면 아빠는 아닌데, 병원 아빠.”

 

 

은우가 종이컵을 구겨 넣었다.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뇌를 삐죽 찌른다.

 

 

“수리 병원에 소아병동이 있거든요. 열여섯 살 때 빈이 형이 거기서 죽었어요. 그니까 없는 사람이라고요.”

“무슨 소리…….”

“왠지 알아요? 병원 아빠가 빈이 형을 골라서.”

“…….”

“자기 좆 빨아줄 사람으로.”

 

 

은우가 빤히 소년의 눈을 쳐다봤다. 거짓말이라기에는 너무나 맑고 깨끗한 눈이다. 화단에서 봤던 별처럼. 빈처럼.

 

치료실에 가둬놓고 매일 강간하고 때리고.

 

그제야 은우는 빈의 얼룩덜룩한 몸을 기억해냈다. 오래되어 보이는 흉터기에 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빈이 은우의 몸에 가득 그어진 칼자국과 비슷하다며 눈을 접어 웃었다. 제 얼굴에 난 흉터가 네 표정 같지 않냐며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기도 했다. 난 뭐라고 했었지?

 

질려서 여기로 보내놓고 또 왔대. 징그러워 죽겠어요. 나는 그 사람이 빈이 형 어떻게 하는지 다 아는데……

 

은우가 벌떡 일어서 걸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새낀 망상증 환자일 거야. 미친 놈 얘기를 다 들어줬네. 차라리 환청을 듣고 말지. 저 새끼 눈깔도, 아니 목을 찔러서 다신 말을 못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탁. 탁. 탁. 탁. 탁. 은우는 저도 모르게 뛰고 있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데 이상하게 피는 줄줄 빠져나가는 것 같다. 온 몸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멀쩡해서 죽어버리고 싶고 멀쩡하지 않아서 목을 긋고 찌르고 싶고 아니, 이미 죽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휘청대며 문을 열어붙인 은우가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성가시게 굴던 벌레들은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다. 변성기가 덜 가신 목소리만 귓가에 웽웽 울렸다.

 

근데 빈이 형이 제일 오래 살아있는 거에요. 저도 이제 죽을 예정이거든요.

 

 

-

 

 

빈은 지쳐 보였다.

 

 

“은우야. 달 보러 가자.”

 

 

꼬박 사 일 만에 돌아와 한다는 말이 그거다. 은우는 말없이 엉망이 된 환자복을 바로 잡아 입혔다.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준다. 할 말은 많은데 도통 나오지 않는다.

 

 

“괜찮냐?”

“뭐가?”

“너.”

 

 

빈은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그래도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는 걸 은우는 안다. 제각각으로 미친 인간들은 하나씩 좆같은 인생사 가지고 있으니까. 그 뒤로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차라리 환각이었다면 좋겠다. 은우가 떨리는 왼쪽 턱을 감싸 쥐었다. 오늘 아침 홧김에 남은 약을 몽땅 변기통에 넣어버린 탓이다. 일 초 만에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번에 빈은 개구멍을 뚫지도 않았고 흙투성이가 되지도 않았다. 은우가 목 끝까지 채워준 환자복을 얌전히 입고 열쇠를 꺼내 옥상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때처럼 나란히 난간에 앉은 채 빈이 입을 열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낯 간지러운 소리 잘도 한다 싶다. 은우는 하늘에 대고 검지와 엄지를 모아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냈다. 달. 은우의 손가락 안에 잡힌 달은 동그라미보다 조금 모자라다.

 

 

“달이나 봐. 보고 싶다며.”

“은우야. 너 안 미쳤어.”

“…….”

“이렇게 다정하고 착한데 미쳤을 리가 없어. 의사가 돌팔이야.”

 

 

나도 알아. 그렇게 말하려다 은우는 순간 굳었다. 빈의 시선은 여전히 저 아래를 향해 있다. 달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내일 세탁소 차가 와. 왼쪽에서 세 번째 박스가 있거든. 거기에 숨어있으면 나갈 수 있어.”

“야.”

“넌 안 미쳤어. 진심이야. 난 네가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어.”

“문빈!”

“고마워 은우야.”

 

 

왜 몰랐을까. 은우가 팔을 뻗기도 전 빈이 몸을 내던졌다. 까마득히 먼 아래. 마치 빈을 향해 속삭이듯 바람에 잎이 떨리는 소리. 머릿속 줄이 끊어졌다.

 

 

탁. 탁. 탁. 탁.

 

 

은우가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내렸다. 절반쯤은 온통 굴러 떨어진 탓에 갈비뼈가 부딪히고 발목이 접질렸다. 빈아. 빈아. 수풀 속을 헤매 엎드린 빈의 손을 잡아챘다. 잔디 위 새까만 어둠, 그래서 은우는 빈의 몸을 감싼 것이 비인지 피인지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다. 은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늘어진 빈의 몸을 감싸 안았다.

 

문득 은우는 제 허리춤에 달린 호출기를 떠올렸다. 곧바로 버튼을 누른다. 제발, 제발. 누군가 와줬으면. 믿지 않는 신께 기도하던 순간 빈의 옷 주머니에서도 똑같은 호출기가 튀어나온다. 고위험군 전용. 순간 심장이 떨어진다. 빈아. 빈아, 난 몰랐어. 너처럼 예쁜 달 보고 싶어 하는 줄만 알았어. 은우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빈아. 죽지 마. 응? 버튼을 아무리 눌러봐도 잔디 위엔 끔찍한 침묵과 둘 뿐이다. 대체 언제부터 넌 이랬을까. 어느새 달이 물러가고 희미한 빛이 몰려왔다. 고요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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