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스런 키스

2020 겨울호
작성자
제니
작성일
2021-01-16 22:28
조회
56



“형은, 고백했다가 차인 놈이랑 같이 살 수 있어?”

“아니. 그렇게 절대 못살지, 나는.”

 

무심하게 내뱉어진 답변에 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이 당당히 어디 나갈 수 있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다. 안되는 일인데, 분명히 안 되는데. 잔뜩 심각해진 얼굴의 빈이 손톱을 물었다. 거의 다 고쳤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다시 버릇이 돌아오나보다. 

 

“왜, 차은우가 같이 살쟤?”

“형!”

“그럼 뭔데.”

“같이 살자고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뭐냐고.”

“같이 살게 될 거 같아.”

“뭐?!”

 

휴대폰만 보던 명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명준이 다시 큰소리를 치니 빈이 결국 명준을 힘으로 눌러 다시 앉히고는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애들한테 다 들리겠다. 그래서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목소리를 낮춘 명준이 다시 물어도 빈은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하나 막막해져 그저 아무 말도 못할 뿐이었다. 잔인한 세상은, 나에게 왜 이럴까.

 

 

 

 

 

 

장난스런 키스

w. jenny

 

 

 

 

 

 

 

빈이 처음으로 은우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은 1학년 체육시간 때였다. 덩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어딜 가도 운동이란 운동은 다 씹어 먹을 거처럼 생겨서 구기종목에는 젬병인 빈은 구기종목 시합을 하는 날이면 늘 벤치행이었다. 우성반과 열성반의 싸움. 신체적으로는 별로 티나지 않지만 누가 봐도 우성반이 이기는 거 아냐. 반 애들도 그렇게 투덜대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웅성대는 소리. 차은우 농구한대! 누군가의 큰소리와 함께 햇살을 등에 짊어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만의 세상에 슬로우모션이라도 걸려있는 것처럼 천천히. 차은우를 본 빈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존나 내 스타일. 앞머리를 뒤로 휙 넘기면서 자리를 잡더니 필드 위를 날아다녔다. 아니, 과장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빈의 기억은 그날 은우가 덩크슛을 날리며 흘리던 땀방울의 개수까지 기억한다. 빈은 첫눈에 반해버린거다, 은우한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은우 생각만 났다. 밥 먹을 때도, 수업시간에도, 집에서도, 그냥 어디에서나 생각나고 심지어 꿈에도 나왔다. 수려한 얼굴에 다부진 허벅지, 그리고 손에 그 선명한 핏줄까지. 농구공을 튀기며 필드를 휘젓던 은우의 모든 순간들이 빈을 괴롭혔다. 거의 나 책임져! 이렇게 따져야 될 정도로 빈은 깊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댔다. 근데 그렇게 좋아하고 보고 싶은데도 반은 또 왜이리 먼 것인지. 우성반에서부터 일반반 3개를 거쳐 열성반에 이르기까지 무려 3층이라는 층수를 거쳐야만 했으며 우성반은 체육시간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가끔 몸 푸는 것처럼 한두 번씩 나와 다른 반들과의 대결을 다 부수고 들어가면 재수없다 그러면서도 다들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는 없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혹시라도 운동장에 우성반이 보이기라도 하면 자연스레 은우를 찾고 잘생긴 얼굴에 감탄하기를 여러 번, 그러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무 말이나 끄적이던 교과서를 보다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 않나. 빈은 생각나면 바로 해야하는 성미라 마음을 먹었다. 차은우를 부르기로.

 

“너 열성반 아닌가.”

 

그런데 빈이 좋아한다고 하자마자 들려온 대답은 딱 이거 한마디였다. 무어라 대답해야하지. 맞아? 근데? 등등 많은 단어들이 떠올랐는데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입만 벙긋거리던 빈이 숨을 크게 들이키고 대답하려는 순간, 은우는 빈을 스쳐지나갔다. 그제야 빈은 생각했다. 나 완전 대차게 까인 거구나. 은우의 목소리가 머리에 딱 박혀서 지워지질 않았다. 스쳐지나간 상황을 떠올리면서 든 생각은 그러니까, 너는 열성반이고 나는 우성반인데, 니가 감히 나에게 고백을 해? 내가 그걸 받아줄 거 같아? 이런 뜻으로 말한 거지. 그치? 자리로 돌아간 빈이 종일 씩씩대다 끝나고 명준에게 달려가 이 사실에 대한 대책을 물으려했더니 이미 학교에는 온갖 소문이 다 퍼지고 난 뒤였다. 뭐가 그렇게 빠른 건지 이미 명준이 알고 있더라. 2학년 열성반 문빈이 차은우한테 고백했다가 까였대!! 이걸 반마다 소리치고 다니는 인간이라도 있는건지 명준이 너 오늘 차은우한테 고백했냐? 이렇게 물어올 때 빈은 정말 기절이라도 할뻔했다. 그렇게 차은우 짝사랑남으로 찍힌 빈이 이름보다 차은우 짝사랑남으로 불리는데 익숙해졌을 즈음,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아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친구 부부랑 같이 여행 다녀올 거야. 이제 너도 혼자서 잘 지낼 정도 된 거 같고 너무 좋은 기회가 생겼지 뭐니.”

“그럼 언제 오는데요?”

“6개월은 있다가 올 거지, 아마.”

“네? 반년이요?”

“아, 친구네 부부 아들도 너랑 같은 학교 다닌다더라. 너랑 나이도 동갑일텐데. 본적 없니?”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냐고요. 갑작스런 부모님의 장기 여행소식도 당황스러운데 그 아들과 같이 지내라니. 모든 상황이 얼렁뚱땅이었다. 솔직히 지금 학교에서 민망한 일도 벌어진 김에 나도 데리고 가달라고 그렇게 빌고 싶었는데 너무 즐거워하며 기대에 찬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부모님들끼리 여행 떠나기 하루 전, 빈이 짐을 싸들고 그 아들네 집으로 갔는데, 그런데.

 

“열성…?”

 

차은우 니가 여기서 왜 나와.

 

“아무튼, 뭐……. 대충 설명하자면 지금 그런 상황이다 이거지.”

“그럼 너 지금 차은우네 집으로 가야된다 이거야?”

“나도 그냥 내 집으로 가고 싶은데, 여행 가시기 전에 집을 이미 팔아버리셨더라고. 집 팔고 가는 여행일 줄은 몰랐지 나도.”

“이건 답이 없다.”

“형, 진짜 부탁인데 그냥 나 반년동안 형네 집에서 살면 안 돼?”

“되겠냐.”

 

으아악! 빈이 머리를 마구 헝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장 집에 가면 차은우 얼굴부터 봐야한다고. 그것도 저를 열성이라고 부르는 재수 없는 우성알파에다가 자기 고백을 시덥지 않게 까버린 그 인간을. 빈이 앓는 소리를 내도 명준은 그저 어깨를 토닥여줄 뿐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잘 꼬셔봐.”

“무슨 소리야 그게.”

“다름 아닌 동거인데 너한테 절호의 찬스 아냐?”

“나 이제 걔 안 좋아,”

“거짓말 하지마라. 내가 널 모르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빈은 그렇게 허무하게 차이고 나서도 은우를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차은우는 너무 잘생긴데다가 우성이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으니까. 진짜 성격이 개차반에 미친놈이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으니까. 진짜 그래볼까. 중얼대듯 말하니 명준이 다시 빈의 어깨를 두드리며 눈을 맞췄다.

 

“키스 갈겨.”

“미쳤어?”

“한집에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살면 그렇게 눈 맞는 거지. 호르몬 분비 팍! 되면 그냥 둘 다 뻑가고 사고치고 그러는 거 아냐, 드라마 보면 다 그렇더만.”

 

명준의 말이 맞든 틀리든, 어쨌든 집에 가야한다. 빈이 가방을 고쳐 매고 결심이라도 한 듯이 걸음을 옮겼다. 지금 집에 가서 일찍 잠들어버리자. 어차피 우성반은 늦게까지 수업을 하니 은우는 빈보다 집에 늦게 들어올터였다. 씻고, 방에 들어가서 아예 안 나오면 되지 않을까.

 

 

 

 

 

 

***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이거지. 어제 집에 돌아간 빈은 정말로 씻고 나오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고 은우의 얼굴은 구경도 못한 채 아침에 알람을 들으며 일어났다. 아침에도 차은우는 먼저 등교한 것인지 보이질 않아서 맘 편하게 나오긴 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한 게 몸이 좀,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상했다. 알파랑 같은 공간에 있어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학교에서도 한 번도 이상했던 적이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한 빈이 설마 하고 양호실에 들러 억제제까지 먹었다. 그래도 이상해, 뭔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인데 막 싫고 그런 건 아니고 누가 몸을 부드럽게 간질이는 느낌이랄까. 대충 설명하자면 그런 기분이었다. 몸살 오려고 그러는 건가. 오늘이 다행히 금요일이니 주말동안 푹 쉬면 괜찮겠지. 근데 반 정보통이 빅뉴스라고 가져온 소식은 빈을 충격에 빠트렸다.

 

“천하의 차은우가 오늘 조퇴를 했다는데?”

 

차은우가 왜. 내가 아니라 차은우가 조퇴를 왜? 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아니겠지. 차은우는 우성에다가 철저한 놈인데 어디가 그렇게 쉽게 아플 리가 없잖아. 생각은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빈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아파요. 히트 오려나봐요. 원래도 허스키한 목소리 더더욱 긁어서 말하니 선생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조퇴하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서둘러 반으로 돌아간 빈이 가방을 챙기고는 뛰쳐나왔다. 왜 이리도 걱정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은우는 부모님도 한국에 없고, 같이 사는 사람이라곤 나뿐이니까. 좋아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걱정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빈은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안 그럼 저가 너무 비참해질까봐서.

 

비밀번호를 입력한 빈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러트는 아닌가. 아무런 향도 느껴지질 않는 것이 정말 몸살이라도 나서 그런 건가 싶었다. 조금은 거친 숨소리가 한쪽 방에서 들려왔다. 차은우의 방.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문조차 두드려보지 못한 그 방.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심장부근에 손바닥을 얹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셋과 동시에 문을 여니 뜨거움이 폭팔하듯이 빈을 덮쳤다. 이게, 뭐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뜨거움 같은 것이었다. 

 

“너.”

 

책상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은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은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빈을 너, 라고 불렀다. 빈이 아랫입술에 침을 바르며 은우에게로 다가가려 발을 떼니 뒤에서 울컥, 물이 흘렀다. 나 억제제 먹었는데 분명히. 

 

“오메가였구나.”

“자, 잠깐.”

 

다가오는 은우에 오히려 빈이 뒷걸음을 쳤다. 분명히 빈은 오늘 억제제를 먹었고, 문을 열었을 때 열기가 느껴지긴 했으나 아무런 향도 느껴지질 않았는데. 빈을 발견한 은우의 눈동자가 점점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건, 명백히 러트라는 표시였다. 어느새 빈이 뒷걸음친 만큼 다가온 은우가 빈의 눈앞에 있었다. 커다란 손이 빈의 턱을 붙잡았다. 

 

“복숭아.”

“너 러트 맞지. 근데 왜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은우의 분위기, 방안의 열기. 그 이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이게 열성이라는 증거일까. 빈의 향은 상대적으로 약한데 은우가 너무 잘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폭발적으로 내뿜는 우성의 향조차 맡지 못하다니. 달아오르는 몸과는 다르게 점점 서글픔이 울컥 치고 올라왔다. 니가 이래서 열성을 무시한 거구나. 그래서 내가 무시당한거구나……. 그 생각과 동시에 은우의 입술이 닿았다. 아주 뜨거운 키스였다. 집어 삼킬 듯이 빈을 뒤로 밀어붙이는 은우에 이리저리 벽에 부딪친 빈이 아파할 새도 없이 소파에 다리가 걸려 뒤로 넘어갔다. 은우의 혀가 빈의 입안 이곳저곳을 탐하니 받아들이기 벅차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했다.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흐르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니가 책임져야해. 오메가인줄 알았으면 러트 시기를 챙겼을텐데.” 

“내가 왜, 책임을.”

“나 이렇게 된 거, 너 때문이야.”

 

빈의 귓가에 대고 말하는 은우의 목소리가 깊었다. 너무 깊어서 빈의 몸이 찌르르 울리는 것 같았다. 빈의 가슴팍을 주무르던 은우의 손이 이제는 셔츠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너야말로 아무 티도 안 나서…….”

“무향이니까.”

“……뭐?”

“난 향이 없으니까.”

 

이상해? 눈을 맞춰오는 은우의 눈동자가 완전히 황금색으로 변해있었다. 욕구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 찬 눈. 빈이 손을 뻗어 은우의 얼굴을 감쌌다. 잔뜩 풀린 눈가를 엄지로 쓸어내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그럼 너도 나 책임져야해. 무향인거 나한테 말 안했잖아.” 

“책임질게.”

 

은우가 빈의 벌어진 셔츠 사이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완전히 몸에서 힘이 풀린 핀은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꼭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고 노력해도 잘 되질 않아서 애꿎은 은우의 어깨를 힘주어 긁어대며 떠나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했다.

 

“네 번째 키스.”

 

네 번째 키스. 네 번째……. 네 번째였던가 이번 키스가.

 

 

 

 

 

fin...? 



전체 0

전체 12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계간은콩 2020 가을호 line up list
계간은콩 | 2020.10.24 | 추천 0 | 조회 430
계간은콩 2020.10.24 0 430
1
계간은콩 2020 겨울호 후기
계간은콩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6
계간은콩 2021.01.16 0 96
2
Maleficent
각설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00
각설 2021.01.16 0 100
3
더 랍스터(The Lobster)
극락행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74
극락행 2021.01.16 0 174
4
첫사랑의 유통기한
나비담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04
나비담 2021.01.16 0 104
5
파도
노예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3
노예 2021.01.16 0 93
6
Once upon a dream
뉴문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5
뉴문 2021.01.16 0 95
7
곰돌이를 부탁해
달문어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3
달문어 2021.01.16 0 93
8
이동민 찾기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9
2021.01.16 0 99
9
그들이 금주를 결심한 이유
따란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6
따란 2021.01.16 0 96
10
청년경찰
땨빈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1
땨빈 2021.01.16 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