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록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익명
주제
Safe & Sound (헝거게임)

회상록

 

 

 

* 잔인한 묘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

 

 

 

 

 

 이 이야기의 시작은 바야흐로 고등학교에서 일 년을 더 먹고 제일 예민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어엿 이 주도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자면 때는 3학년 반배정이 막 나왔을 시기. 여기저기 자신의 친구들을 찾느라 복도가 시장터라도 된 마냥 시끄러웠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과거로 올라가 보자. 왜냐고? 그냥. 쓰는 사람 마음. 반 년 전 태양이 기승을 부려 학생들이 죄다 녹초가 되어가던 6월 중순.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 한창 카운트되고 있는 시기에 이 학교에 발을 들였다. 모두가 예민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관심이 쏠렸다. 전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또 얼굴만 보고 놀란 건지. 금방 식을 줄 알았던 관심은 계속되었고 내게 친해지려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눈에 다 보였다. 얘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이 점을 이용했다. 전학생이란 임시 타이틀을 이용하여 다가오는 친구들을 살갑게 맞이해주는 동시에 이를 방패로 삼아 계속해서 선을 긋고 벽을 쳤다. 알아차릴 듯 말 듯한 희미한 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멀쩡한 친구 하나 만들지 않았다. 아, 딱 한 명 만들었다. 최경민이라고. 관심을 줘도 너무 많이 주길래 그냥 타이틀만 친구인 아이로 남아줬다. 그 앤 나랑 친구인 게 좋았나보다. 야 나 차은우랑 친구야 짜샤. 차은우? 그 전학생? 아마 내 스스로 나에 대해 한 이야기보다 최경민이 한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다. 거기다 촉박한 기말고사까지 모든 게 나에게 전부 시기상조였다. -여긴 좀 오글거리긴 한데- 명석한 두뇌와 노력으로 나는 단숨에 전교권에 등극했고 또 한 번 학교를 흔들었다. 학교 내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술렁였다. 씨발 쟤 진짜 쩔어. 갑자기 전학 와서 다 휩쓸고 있다니까?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는 학교의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옛날 얘기는 여기까지. 다시 갓 3학년이 된 그때로 돌아와 보자. 최경민과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바로 옆반이었다. 거슬리던 게 드디어 없어졌다. 얘 욕 이렇게 해도 되냐고? 하하. 걱정 마. 얘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아무튼 걔가 딱 한 마디 했다. 은우야 나 없다고 울고 그러지 마라! 툭 던진 말을 뒤로 하고 최경민은 제 친한 친구들에게 끌려갔다. 누가 들어도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냥 넘겼다. 착각 단단히 하네. 원래 너도 친구 아니었어 인마.

 

 근데, 내 반배정은 망해도 심하게 망했다. 조용히 공부하다 학교를 떠나려고 했는데 웬걸. 요상한 가오만 가득한 놈들이 한 반에 들어앉아 있었다. 씨발 저 개새끼들 왜 같은 반이지? 속에선 화려한 육두문자가 참으로 다이나믹하게 끓어올랐지만 꾹 참았다. 3분단 뒷자리는 일진놈들에게 점령당했고 2분단엔 웬일로 아이들이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떠나 만석이었다. 남은 건 3분단 앞자리와… 1분단 맨 마지막 줄. 혼자 앉아서 자고 있는 애 옆. 아 나 공부해야 되는데. 어떻게 자리가 이렇게 남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저 씨발놈들 앞에 앉을 바에야 그냥 뒷자리에 앉고 말지. 엎드려 곤히 잠든 남자애 옆자리. 나는 그 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첫날부터 자다니 뭐 하는 앨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애가 고개를 들었다. 놀란 마음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존나 티 나잖아.

 

 아 씨발… 내가 깨웠나. 괜한 마음에 사과하려 다시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당황스러웠다. 두 가지 의미로. 내가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건가? 그리고… 얘 나랑 작년에 같은 반이었잖아?

 

…너 문빈?

 

 그 순간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게 존나 바보같은 소리를 했다. 너 문빈? 지금 생각해도 존나 어이없다. 별 친분도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나에게 너 차은우? 하는 것과 같잖아. 그런데도 그 얘는… 대답을 했다. 단순하게 했다. <응.> 물론 내가 그 애 입장이었어도 이렇게 했을 거다. 정말 간단명료한 대답이었고 내 질문은 정말 쓸모없는 질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대답이었다.

 

 어쨌든, 그때 딱 드는 생각. 아 나 얘랑 같은 반이었구나. 지금도 같은 반이구나. 신기하네, 최경민도 나랑 떨어졌는데 얘랑 붙었네. 이게 다였다.

 

 새로운 담임은 내게 임시반장을 주는 대신 임시주번을 맡겼다. 기한은 반장선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 임시반장은 나 말고 범생이에게 돌아갔다. 이름 순번대로 설정하여 맨 앞과 맨 뒷번호거나, 맨 뒷번호 두 명이 주번을 맡는 거면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담임은 출석부를 보더니 다짜고짜 아무 이름이나 불렀다. 그때 랜덤으로 불린 게 내 이름 석 자와 문빈 이름 두 자.

 

 차라리 여기까지는 우연이라고 둘러대도 믿을 법했다. 하지만 새로 자리를 정하는 제비뽑기에서도 문빈과 나는 나란히 같은 자리에 당첨되어 정식으로 짝지가 되었다. 정말이지 기이했다. 2학년 땐 서로 모르고 지냈는데 3학년 오자마자 운명공동체인 마냥 모든 일에 같이 불러다니기 일쑤였다.

 

 뭐,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이 정도면 신이 기어코 우리를 붙여놓는다, 뭐 그런 생각이 든 건.

 

 

 

 

*

 

 

 

 

 

 앞서 이야기했던 시점보다 이 주가 지났다. 나는 의도치 않게 반장 선거에 출마하여 간부 자리를 노리던 모범생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손가락 걸고 장담하는데, 반장 같은 거 정말 할 생각 없었다. 네 성적 관리하기도 벅찬데 3학년까지 기어코 그런 걸 해야 할까? 오른쪽에 속삭이는 악마가 이렇게 말했다면 왼쪽에 떠다니는 천사는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문빈이 물어봤잖아, 너는 반장 안 하냐고. 올해가 마지막 찬스인데. 놓칠 거야? 마지막인데 하면 어때! 생기부도 챙기고 그 애한테 주목도 받고. 일석이조네!

 

 …정말 이게 무슨 상관이지. 얘랑 나랑 무슨 인연이 있다고? 매번 커지는 의구심에도 결국엔 반장 선거에 나가고야 만 것이다. 원인을 모르는 엄청난 불가항력이었다. 얼떨결에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짧은 소감을 대충 둘러대고 자리로 돌아갔다. 예의상 치는 박수에 기분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리고 다시 이 주 후.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의 발단이다. 잠깐 사족을 달자면 난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감상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 영화 자체에 흥미가 없다. 영화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종종 현실이 영화를 뛰어넘을 때가 더 많은데 굳이 왜 영화를 봐야 하는가. 여기까지가 영화에 대한 나 차은우의 견해이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봤다. 그것도 좀비 영화. 월드워즈. 이 사건의 발단은 최경민. 간만에 영화 쿨타임 찼다는 어줍잖은 말을 하면서 계속 나를 조르기 일쑤였고 결국 나는 백기를 들며 최경민의 집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나는 별 감흥 없이 봤는데 정작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당사자는 나보다 반응이 더했다. 영화 시작한 지 오 분도 안 됐는데 못 보겠다며 뒤로 숨는 새끼였다. 아 씨벌 오토바이 미친!!!!! 야, 야. 네가 쫄보냐.

 

 아무리 영화를 싫어해도 기왕 간만에 보는 영화라 그런지 제대로 보다 가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콜라를 들이키며 영화에 집중했다. HERE COMES THE NUMBER TWELVE TRAIN. 아직 영화의 극 초반이었지만 장난감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원, 투, 쓰리. 숫자를 세더니 단 12초 사이에 멀쩡한 사람이 좀비가 되고 기차가 출발합니다! 라는 아이의 장난감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려 퍼졌다. 최경민은 내 팔을 붙잡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떻게 사람이 12초만에 좀비가 돼. 내가 맞받아쳤다. 나도 몰라 미친놈아 영화야. 실제로 저럴 것 같냐?

 

 이 얘기를 지금 왜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왜 계속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게 맞아. 좀비. 제아무리 현실이 영화를 뛰어넘어도, 내가 사는 세상에 좀비가 들이닥칠 줄 몰랐지.

 

 다시 원점으로 가자. 모든 게 시작된 그날은 담임을 도와 쉬는 시간 내내 교무실에 있었다. 반장이라는 건 정말이지 까다로웠고 보상으로 돌아오는 건 살짝의 MSG가 첨가된 생기부 외에는… 실질적인 건 하나도 없다. 고삼에겐 더더욱. 무엇하러 문빈 말 한 마디에 혹해서 이 짓을 했을까. 나 정시로 가도 성적 충분히 되는데. 세상의 불평불만을 다 내가 안고 있는 마냥 짜증을 내며 교실에 들어왔는데 내 눈에 보인 건 텅 빈 교실뿐이었다. 딱히 다른 이유는 없고, 지금이 체육 수업이었다. 아 또 체육이 나 들들 볶겠네. 한숨을 쉬며 체육복을 찾고 있는데, 어라.

 

 얘 왜 자고 있냐? 3학년 첫날과 똑같은 자세로 문빈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얘는 왜 맨날 학교에서 잔담. 자고 있는 애를 깨울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업 시간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족한 잠보다 무단 그이는 일이 더 타격이 컸다. 물론 내 기준.

 

 나가자. 지금 체육이야. 나랑 같이 나가면 안 혼날 거야. 비몽사몽하는 문빈에게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고 대충 체육복을 던져주었다. 아무래도 문빈이 교실에 남아있던 탓인지 주번이 문단속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졸지에 내가 창문을 잠그고 불을 껐다. 마지막 창문을 닫는 딱 그 찰나.

 

 얘들아? 보고 있니? 그래. 여기서부터 재밌을 거야. 운동장에는 경비 아저씨, 체육 수업을 하러 나간 우리 반 아이들, 그리고 체육 선생님만 있어야 정상인데. 어디서 출몰했는지 알 수 없는 외부인이 다짜고짜 달려와서 체육 선생님을 붙잡았다. 그 뒤로 경비 아저씨가 달려와 외부인을 떼어내자마자 그 사람은 숨을 고르는 듯 싶더니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경비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아, 전화의 수신자가 112였던 119였던, 둘 중 우리 학교에 온 차량은 없었다. 

 

 지금 이 광경은 문빈이 체육복을 입기 전 먼지를 털고 있던 찰나, 그리고 내가 마지막 창문을 닫는 찰나.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사람은 다시 일어나 사람을 공격했다. 정확히는 물어뜯었다. 공격성이 없던 경비 아저씨의 목덜미에서 피가 솟구쳤다. 문빈도 나도 이 모습을 보자마자 얼이 빠졌다. 고요한 정적 속 교실의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있었다. 탁, 탁, 탁. 삼 초가 흘렀다.

 

 …우리 나가야 해? 문빈이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않은 채 정적 속에서 창밖 풍경을 주시했다.

 

 탁.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인데, 이거.

 

 탁. 최경민이 엄청 졸라서 봤던 그 좀비 영화.

 

 탁. 경비 아저씨가 변하고 있다.

 

 탁. 아비규환이 된 친구들과 그들을 말리는 체육 선생님.

 

 탁…. 온몸의 관절을 꺾으며 기괴하게 일어난.

 

 …탁,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못하는 시체.

 

 탁. 걸어다니는 시체.

 

 나는 그 순간 잠시 브래드 피트가 되었다. 여기는 한국. 장난감의 목소리는 곧 교실 시계의 초침의 소리. 좀비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 12초.

 

 … 근데 한국은 아니었다. 10초였다.

 

 결국 저것들은 좀비다. 우리는 살아나가기 위해 달려야만 했다. 빌어먹을 10초. 영화에서도 12초를 줬는데 현실은 빌어먹을 10초. 운동장에 아우성이 퍼졌다. 섣불리 떨어지지 않던 내 발은 문빈이 나를 잡아끈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 교실 뒷편에 널브러진 야구부의 야구배트를 집어들고 냅다 교실을 빠져나갔다. 문빈의 손에서 체육복이 맥없이 떨어졌다.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야 해. 매점? 양호실? 체육관? 혼란스러운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되고 두 발은 곧장 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짜 좀비야.

 

 운동장에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모든 교실이 술렁였다. 방향을 잃은 채 무작정 달리던 우리는 그제야 체육관으로 도착 지점을 바꾸어 죽기 살기로 달렸다. 운동장에서 시작한 좀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상황파악이 늦은 아이들은 좀비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체육관엔 이미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최경민도 있었다. 서둘러 체육관 문을 걸어잠그자마자 다리가 풀렸다. 최경민이 내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자신은 방송반이고, 체육관에 설치된 마이크와 각종 방송기계를 점검하러 와 있던 것이었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나는 군말없이 창밖을 가리켰다. 창문에 가까이 있던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다마자 외마디비명을 질렀다. 지금 최경민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한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정신차려, 씨발, 이거… 좀비야.

 

 

 

 

 

*

 

 

 

 

 

 체육관에 들어간 이후로는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최경민을 비롯한 방송부 담당 선생님. 그리고 방송반 아이들.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인원을 합치면 대략 여덟에서 아홉 정도. 체육 선생님은 내가 본 것에 대해 물었고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창밖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들은 내 말을 들으며 공포에 떨었다. 문 너머의 존재가 체육관 문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최악의 상황을 알기에 우리는 그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지금 너희가 이걸 볼 때는 나를 욕하겠지만, 그땐 더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뛴 탓에 손에 들린 건 야구배트뿐이었다. 옷이야 그렇다 쳐도 당장 먹을 게 문제였다. 처음 하루는 굶으며 버텼지만 이렇게 매일 굶다간 좀비한테 물려 죽기 전에 아사할 지경이었다. 매점으로 다녀오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홉 명 남짓한 인원이 의견을 나눈 결과는, 그냥 가위바위보였다. 진 사람 순서대로 다녀오는 순서가 되는 거였다. 너무 어이없고 웃긴 건, 평소에 안 터져주던 내 운이 여기서 다 터졌다는 것이다. 나는 가위바위보로 체육관을 올킬했고 그 다음은 한 번 진 문빈이었다. 눈치 챘으려나? 그래, 또 우리 둘이 붙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없다. 담소 나눌 시간 따위는 사치인데다 우리 차례에는 좀비에게 쫓기다가 겨우 살아남았기 때문에 더더욱 없다.

 

 체육관은 불행했고 운이 없었다. 처음 다녀온 아이들은 매점으로 가는 길목에 들끓던 좀비들의 밥이 되었고, 우리는 강제로 하루를 더 굶어야만 했다. 또, 2인 1조로 다녀오다가 한 명의 희생으로 나머지 한 명이 식량을 가져오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이 자그마치 넷. 여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설명하지 않은 일주일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말했듯이 네 명이 죽었다. 체육관 너머에는 더 많은 학생이 죽고 좀비가 되었다.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좀비들이 복도를 다니며 먹이를 찾는 체육관 밖과 피 하나 튀지 않은 체육관 안은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한계가 찾아왔다. 이곳에만 계속 있다가는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한 친구의 주장에서부터 비롯된 탈출 계획이 우리 앞에 드리워졌다. 매점이 있는데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할까? 어차피 몇 번 가져와봤으니 좀비가 있어도 괜찮을 텐데.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 모두가 탈출에 찬성표를 던졌다. 문빈도 찬성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다수결의 원칙은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획은 이러했다. 다섯 명이 2인과 3인으로 조를 나눈다. 2인 조는 3층 체육관에서 1층 매점으로 내려가 식량을 챙긴다. 3인 조는 매점으로 가는 길과는 다른 길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면 주차장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복도가 나오는데, 그 복도를 건너 주차장으로 가 차량을 가져온다. 후에 2인조와 합류하여 차를 타고 탈출하는 것이 최종 목표. 못 알아듣겠냐 혹시?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학교 구조가 좀 이상해.

 

 이번에는 신이 잠을 자는지 문빈과 같은 조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최경민과 2인조로 매점을 터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나머지 셋은 차량 조. 계획을 세운 다음날 아침 바로 실행하기로 했다. 그들에겐 하루빨리 나가는 게 더 나은 선택지였을 테니까. 해가 뜨면 우리의 계획은 바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너희 그런 말 들어본 적 있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거라는 말. 내가 이 말을 많이 쓰곤 했다. 상황에 따라 제법 요긴하게 쓰이는 말이었고, 더군다나 최경민이라는 이상한 친구를 둔 내가 정말 자주 쓰는 말버릇이었다. 근데 그런 말도 있잖아, 말이 씨가 된다. 정말, 난 여기서 옛 조상들의 지혜를 깨달을 줄 몰랐지.

 

 그야말로 예상 밖 상황이었다. 날이 밝고, 나와 최경민은 매점으로, 세 명은 차량을 가지고 오던 그때. 바깥에 차량의 모습이 보이고, 우리가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때. 계획대로 실행하고 있던 그때. 내 말버릇이 향하는 주체인 그 이상한 친구가 선두로 매점을 빠져나오다 좀비에게 다리를 물렸다. 서둘러 내가 머리를 내려쳤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서로의 눈이 동시에 마주치자마자 최경민은 고통을 호소했다. 그 상황에서 생각나는 건… 빌어먹을 10초뿐. 뭐해 씨발 빨리 안 가고! 최경민이 다리의 출혈을 막으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나고 있었다. 매점을 빠져나가 달릴 때도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하지만 빌어먹을 10초는 존나 짧은 시간이었고, 최경민이 온몸의 관절을 꺾고 달려오는 걸 볼 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씨발, 튀어야 한다.

 

 방향을 틀어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앞문을 지나쳐 뒷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문을 막을 수 있었다. 두꺼운 유리문 사이로 운명이 갈라졌다. 방금까지 일행으로 함께 달려왔던 최경민은 입에서 피와 침을 질질 흘리며 유리문에 머리를 박아댔다. 바깥쪽에 잠금장치가 없어 문을 막는 게 당장의 낭패였다. 거기다 머리를 박아대는 소리에 학교에 있던 좀비들이 죄다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너는 왜 하필 중요한 순간에.

 

 힘이 점점 빠져가던 그때 선생님이 차를 몰고 다시 이곳에 나타났다. 차은우 얼른 타. 뒷좌석에 앉은 문빈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차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유리문 너머 좀비의 수도 불어났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침을 꿀꺽 삼겼다.

 

 …야, 고마웠다.

 

 혼잣말이었다. 최소한 나와 친구가 되어준 나의 마지막 호의였고, 상대방은 들을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대화였다. 나는 문고리를 놓고 냅다 뛰었다. 처음 문빈와 뛰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젖먹던 힘을 다해서, 라는 옛말의 뜻을 알 때까지.

 

 정말 간발의 차였다. 문빈이 미리 차 문을 열어놓은 덕분에 가까스로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턱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제대로 앉을 기력도 없이 그대로 차 뒷좌석에 널브러졌다. 그 덕에 얼떨결에 문빈의 무릎에 눕는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문빈은 불편한 기색 없이 자세를 바꾸거나 바꿔달라는 부탁도 내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건 내 다리였지만. 그때 나는 왜 그냥 그대로 있었을까. 그때의 난 그저 날 내려다보는 문빈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후회돼? 문빈이 내게 물었다. 뭐가? 내가 대답했다. 문빈은 대답을 멈췄고 나는 가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자 문빈이 내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아주었다. 놀랐지만 놀란 기색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문빈이 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다 보니 의지할 존재가 문빈뿐이어서.

 

 네 친구 두고 온 거. 문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문빈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게.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핑계로 내 대답 역시 간결했다. 어색한 공기를 떨쳐내려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았다.

 

 문득 그 애가 한 말이 생각나길,

 

 「야, 모범생 친구로 두는 게 쉬운 줄 아냐? 아무튼 친구해줘서 고맙다.」

 

 …그래, 근데 말야 이 자식아. 그 모범생 차은우는 순식간에 자신의 한 치 앞날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버렸어.

 

 

 

 

 

*

 




 체육관 안에서 추리했던 좀비들의 특징. 첫째, 빛에 약하다. 둘째, 시력이 퇴화되었다. 셋째, 청각이 장난 아니게 발달했다. 넷째, 감염자는 먹지 않는다. 첫 번째 가설을 제외하고 죄다 들어맞았다. 밤에 좀비들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 가설 입증이 불가능했다. 나머지는 학교를 탈출하면서 입증된 사실이었다. 해당 네 가지 특징을 명심한 채 살아남을 것. 차 안에 탑승한 생존자 네 명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 어떤 것도 생존을 능가할 수 없었다.

 차도를 달리며 거리를 마주할 땐 더더욱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도로의 온 사방 천지로 시체와 장기들이 널브려져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죄다 먹어치운 좀비들은 저마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바빴다. 지나가는 차량을 쫓아오는 좀비들도 몇 있었으나 차량의 속도에는 한참 못 미쳤다.

 어디로 갈래. 근처에 대형 마트는 많아. 체육 선생이 나지막하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장 식량 걱정은 문제없었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차량에서 잠을 자는 건 공간도 부족할뿐더러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이 리턴이 아닌데 하이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었다. 학교 체육관은 식량이 부족하고 거처가 안전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인 셈. 월드워즈에선 주인공이 대단한 사람이라 바로 존나 안전한 대피소로 가던데. 그것도 헬기 타고.

 안타깝게도 현실은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는 근처 백화점으로 향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좀비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당장 그리고 장기적으로도 안전한 곳은 그곳뿐이었다. 유독 나만 체력 소모가 너무 심했던 탓일까. 우리가 백화점으로 향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까지도 나는 여전히 문빈의 어깨에 머리를 베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 할 내가 굳이 가운데까지 와서 문빈한테 기댄 까닭도, 그런 나를 문빈은 군말없이 받아주었던 까닭도.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여전히 차 안이었지만 목적지가 어디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근방에서 꽤 크고 제일 가까운 백화점. 대형 마트는 숙식 중 숙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골랐다나 뭐라나. 하기야 대형 마트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는 것보다 백 배 나을 테니. 생존을 위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지상으로 갈래, 지하로 갈래? 언제 날이 어두워질지 모르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심하게 어두웠던 이유로 아무 곳에나 차를 대고 1층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다시 2인 1조로 갈라진 우리는 먼저 1층에 선두로 나서 백화점에 들어갔다. 이제 문빈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이 많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완전 반대였다. 바닥이 핏빛으로 물든 채 아수라장이 된 백화점에서 인기척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데도 발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너무 넓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봐야 하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직감에는 빨간불이 켜졌고 한 발 한 발씩 발을 디딜수록 쎄한 느낌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증폭하더라.

 그래, 사람의 촉이라는 게 단순 일률적 사실보다 더 무서울 때가 있지. 1층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은 내 계산 밖의 일이었으니. 계산 착오를 느끼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차은우, 피해!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내 실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처럼 걸어 올라가려 무심코 난간에 손을 뻗는 순간 에스컬레이터 위쪽에는 좀비가 이미 기어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안심하다는 착각에 빠져 경계심이 둔해졌던 탓일까. 혹은 그냥 폼 좀 잡아보겠다고 앞장섰던 것이 큰 문제였던 걸까. 무엇이 이유든 큰 의미는 없었다. 문빈의 다급한 외침을 들었을 때는 이미 내 왼쪽 손등이 그놈에게 뜯겼기 때문에.

 아, 씨발 존나 아파. 물리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그러고 1초. 오른손에 든 야구배트로 다시 그놈 머리를 내려치는 데는 3초. 4초가 지나고 돌아본 곳에 서 있는 문빈의 표정. …너, 지금 우는 거야? 일 초가 한 시간 같은 순간. 7초가 지나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거기서 뭐해 미쳤어? 도망쳐!

 아까 때려죽인 그놈을 선두로 2층에서 온갖 떼거지로 밀고 내려왔다. 씨발 그럼 애초에 다 2층에 모여있던 거였나. 물린 왼손이 아프고 저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손을 물어뜯은 이놈은 전생에 아주 건치였는지 내 손등이 뼈가 보일 정도로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핏줄이 보기 거북할 정도로 너덜거렸고 피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은 정말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려 눈에 보이는 좀비란 좀비는 다 때려죽인 것 같았다. 왼팔에 들어가지 않는 힘을 오른팔에다 죄다 쏟아부었다.

 이 씨발놈들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내 잘난 맛에 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올라왔을 거 같냐고. 허무하게 좀비가 되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터져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나 자신이 우는 게, 그게 또 분하고 화가 났다. 눈에 보이는 거 없이 사정없이 배트를 휘둘러 머리를 박살냈다. 보이는 놈들은 씨발 그냥 나한테 다 뒈졌어.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더 이상 내려오는 좀비는 없었다. 혼자만의 긴 싸움이 끝나고 난 그제야 피와 땀으로 물든 내 교복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멀쩡한 오른손도 주인 모를 피가 덕지덕지 묻었다. 반면 왼손은 피가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몸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붉게 물든 배트를 내려놓자 다리에 힘이 풀렸고 눈물샘도 다시 개방한 듯 와르르 터져버리기 일쑤였다. 더러운 오른손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닦았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길.

 괜찮아?

 문빈이었다. 분명 아까 가라고 했는데. 그래도 너 하나는 살리려고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도망가라고 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네가 왜 여기 있어.

 달뜬 숨을 거칠게 내쉬며 문빈에게 되물었다. 내가 가라고 했잖아. 분명히. 분명히 10초 지나기 전에… 어라.

 10초? 10초는 물론 지금 십 분도 더 지났지 않나. 근데 나 왜 문빈이랑 멀쩡하게 대화하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구급상자를 들고 내 왼손에 붕대를 감았다. 이건 어디서 났느냐 물으니 학교 보건실에서 가져온 건데 자신이 차 안에서 챙겨왔다는 대답을 주었다. 그럼 넌 차에 다녀온 거냐. 나 하나 때문에. 문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이미 감염된 나는 골든타임이 지나 저 좀비떼들과 -지금은 내가 다 죽인- 한패여야 했다. 눈이 회까닥 돌아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문빈을 물어뜯어야 하는데. 두통만 심해지고 그런 생각은 누가 차단시킨 마냥 일절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감염의 후유증으로 천천히 고통을 받아내고 있었고, 내 앞의 문빈은 묵묵히 내 손에 붕대를 다 감아주었다.

 얼굴 좀 닦아. 문빈은 제 손에 들린 물티슈를 내게 건넸다. 내가 그걸 받으려는 찰나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신이 직접 두 장 뽑아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난 그때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닦는 문빈의 눈가도 빨간 것을 보았다. 물론 나처럼 감염된 게 아닌, 펑펑 운 것 마냥 붉게 변한 눈가.

 너 울었냐. 나지막하게 던진 내 질문에 문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얼굴의 피를 다 닦아낸 문빈이 새로 물티슈를 꺼내 내 목과 어깨에 가져다댔다. 얘가 왜 울었지.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이 감염된 사실도 까맣게 잊고 문빈이 울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우리가 무슨 각별한 사이라고 네가 우냐.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정말 가볍게. 그 가벼운 말에 몸을 닦던 문빈의 손이 잠시 멈췄다. 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만 같은 표정에 당황스러웠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급하게 사과하자 문빈이 나를 보더니 비장한 듯 입을 열었다.

 난 각별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을 줄 알았어.

 분위기를 풀기 위해 건넨 말이 되려 내 말문을 막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각별한 사이? 우리가 무슨 각별한 사이인데. 한 번도 생각한 적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질문이지만 왠지 답이 짐작이 가는 질문이었다. 머리만 생각을 거부했을 뿐이지 심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너, 날 좋아하구나. 아무도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하였다. 내 머리는 생각을 거부하고 엎친 데 덮친 격 점점 고장나고 있어 신뢰도가 떨어졌다. 고로 나는 내 감정을 믿는다. 스릴러 장르에 순정만화 로맨스 끼얹고 싶지 않았는데. 애석하게도 내 마음은 그걸 원했다. 지금 내 처지는 사랑을 논할 처지가 아닌데.

 아.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 것도 감염 증상의 하나인가.

 

 나도.

 …….

 나 그냥 너 좋아하는 거 같아.

 

 

 …머리가 계속 울렸다. 이건 좀비화 때문이 아니라 다 문빈 때문이었다.





 *





 10초면 끝나는 감염 과정 중 하나는 온몸에 핏줄이 돋아난다는 것. 특히 얼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물린 사람이 핏줄이 돋아나면 그 즉시 바로 달아나야 했다. 안 그러면 내 정신은 저세상행이고 육신만 좀비로 남기 때문에.

 확실히 나는 달랐다. 아무 증상도 없어 보인다는 문빈의 말에 급히 화장실로 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핏줄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이 거울 속에 비쳤다. 내가 항체가 있는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인간백신 뭐 그런 건가. 하지만 감염자가 아니라고 하기엔 왼쪽 팔이 점점 흉하게 변하는 중이었다. 붕대로 감은 손을 시작으로 손목은 이미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곧 왼팔 전체, 다른 팔다리, 내 모든 신체 부위가 이렇게 변하겠지. 나 차은우는 항체도 백신도 아니었다. 그저 감염 속도가 느린 운 좋은 사람일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변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문빈이 말하기를, 백화점을 수색하던 다른 조는 내가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그 자리를 떴다고 했다. 생존 본능 아래 당연한 행동이었음에도 어딘가 씁쓸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백화점 안 좀비들은 나를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홀로 먹잇감이 되어 돌아다니는 문빈만이 그들의 표적이었다. 백화점 내부에 숨어있다 하나 둘 공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 야구배트는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이젠 머리를 날려버리는 일에 아무런 감정도 죄책감도 없었다.

 하루는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문빈이 끼니를 챙기는 걸 그저 쳐다볼 때가 있었다. 좀비가 되니 일반 음식에 대한 식욕이 뚝 떨어졌다. 한편 문빈은 요 며칠 계속된 습격에 정신을 못 차리더니 전기가 완전히 끊기지 않았는데도 기어코 생라면을 먹겠다는 강한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나는 안다, 저 상태는 최고로 예민하다는 것을. 이런 데까지 날 안 서도 돼. 두통으로 인해 쉴새없이 머리가 울렸다.

 기어코 우리는 함께 남았다. 당장 어디로 살아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암담한 미래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남았다. 물론 난 죽어가고 있지만 문빈은 살아남고 있다. 그날 극적인 감정에 휩쓸려 무턱대고 입 밖으로 고백해버린 그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사랑을 나눌 순 없어 포옹하는 것에 그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내가 문빈을 에스코트하면서 거리를 걷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랑을 시작하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딱 나와 문빈의 상황에 어울렸다. 아주 쇼를 해요 진짜. 아무래도 내가 점점 맛이 가고 있다는 건 맞는 거 같았다.

 

 가고 싶은 곳 있어? 데이트할 때나 나올 법한 말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까무러칠 말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문빈이 빤히 나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 백화점에 하늘공원 있잖아. 가볼래?

 하늘공원. 무턱대고 던진 질문에 대한 문빈의 대답이었다. 나는 문빈이 백화점 밖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규모가 큰 백화점은 스케일이 남달랐다. 좀비 소동 탓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퍽 오래되어 보였다. 아무도 없는 백화점 안에는 사람의 온기는 하나, 지금 우리 둘의 존재만 남아있다. 하늘은 말도 안 되게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좀비들의 흔적도 닿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피로 물든 배트와 완벽하게 대조되는 그림이었다.

 우리는 모든 걸 내려놓고 무작정 공원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멀쩡한 오른쪽 팔로 문빈의 팔베개를 만들어주었다. 문빈이 기댈 수 있는, 차은우에게 단 하나 남은 온전한 제 신체의 한 부분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붉고 아름다운 석양. 피로 떡칠하여 더럽기만 한 자신의 야구배트와 상반된 아름다움이었다. 해가 뜨든 지든 공부나 하러 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생존을 위해 지식을 버리고 점점 더 본성을 드러내야만 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지금의 우리였다.

 나는 문빈을 내 멀쩡한 오른쪽 팔로 끌어안고 망가진 왼손으로 등을 쓸어내렸다. 도드라지고 튀어나온 핏줄과 충혈된 손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너를 그냥 안아주고 싶었다. 이유는 없다. 너와 함께 학교를 탈출하고, 너를 지키다 대신 감염되었던 것처럼, 그냥. 처음 너를 만났을 때처럼 그냥.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그때처럼, 이유 없이 그저 그냥.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멋대로 뛰는 심장도 그저 감염 증상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감염자만 아니었어도 네게 뽀뽀 백 번 정도 해줬을 텐데.

 

 과거의 나는 사람에게 무한 번 선을 긋고 인간관계를 칼같이 정리하곤 했다. 내가 정해놓은 ‘선' 너머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의 나는 선의 존재가 무의미해질 만큼 네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 내가 너를 지켜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네가 날 보호해주고 있었다. 내면만 변했으면 차라리 좋았을걸. 욱신거리는 왼팔이 나를 참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수한 우연이 겹쳐서 같이 짝지를 하고, 주번을 맡고, 도망갔다. 차은우는 문빈의 말만 듣고 홀린 듯 반장선거에 나갔고, 어깨에 기대 위로를 받았으며, 이젠 사람이 아닌 좀비로 죽어가는데도 여전히 너와 함께다. 그래, 거절하려면 반장선거부터 뿌리를 뽑았어야 했는데. 네 말을 곱씹는다는 것 자체가 오래전부터 너를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너는 생각보다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었구나.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될 때까지 우리는 쭉 함께였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빈아, 하늘을 봐. 엄청 예쁜 석양이야. 너를 닮아 예쁜 석양. 약속이나 한 듯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높디높은 하늘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이렇게 또 오늘 하루가 가는구나.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어디서 끝을 겪게 될까. 제일 중요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질문의 답. 영원히 모르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알고 있기를 바랐다. 현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네게 느끼는 감정은 뭘까. 언젠가 혼자 남겨질 운명에 대한 동정인 걸까. 여전히 내 머릿속 본능은 이성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내 이성이 언제 썩은 동아줄로 변해 너를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너와 나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영화도 시나리오 이렇게 쓰면 퇴짜 맞아. 그래도 나는, 아직은 내 감정이 본능을 짓누르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 지금 이 상황을 하나의 영화라고 생각하자.
 우린 이 영화의 주연배우이니 모든 걸 연기를 하는 중이고.
 영화마다 있잖아? 주인공 꼭 살아온다는 주인공 버프.
 그거? 너도 멋지게 받아서 꼭 살자.
 너라도 꼭.





 *





 오늘 날짜로는 이 기록이 마지막이 되겠지. 조금 편하게 써 볼게. 안녕 얘들아. 내 이야기 어땠어? 다 읽었다면 한 마디씩 소감 부탁할게. 출처는 내 머릿속. 당연히 내 얘기니까.

 기록의 첫 시작은 내가 좀비에게 물리고 난 이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내 얼굴 닦아주려 내게 왔던 그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아서. 울고 왔는데도 금방 차오르는 눈물이 아른거리던 그 눈동자가 너무 슬퍼서.

 그거 아니? 좀비는 잠을 자지 않아. 나 역시 감염된 이후로 한 번도 잠에 든 적이 없어. 매일 밤마다 생각과 생각이 고리를 물고 끊임없이 생겨났지. 문득 그런 상상을 했어. 내가 하루아침에 변해서 문빈을 물어뜯는 상상. 눈깔이 맛탱이가 간 채로,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고도 그저 먹잇감이구나 하고 물어뜯는 상상을 했어. 하루는 억지로 잠을 청하다 악몽을 심하게 꿨어. 내가 사람 하나를 아주 갈기갈기 찢으며 망가뜨리고 있더라. 변하는 게 무서워서, 변해서 바로 해코지를 할까봐 그대로 빈이를 두고 도망치려고 했어. 그러다 잠귀 밝은 문빈한테 걸렸어. 나는 화낼 줄 알았는데 화내다가 날 붙잡고 펑펑 울더라. 네가 떠나면 나는 여기에 혼자 남는다면서. 그때 알았지. 나는 얘를 평생 떠날 수 없겠구나.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감염 속도가 느려도 하루하루 좀비가 되어가는 기분이 실감이 나. 매일 내 왼팔은 썩어들어가고 왼손은 이제 붕대를 뚫고 역겨운 냄새가 조금씩 올라오는 지경에 이르렀어. 아직도 문빈을 떠나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걔가 웃는 거 보면 절대 못 떠나겠더라고. 참, 나도 한심하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악몽을 꾸는 느낌. 매일 밤을 꼬박 새우며 그 앨 위해 버티고 있어. 기록을 시작한 건 이때부터야. 한밤중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 글을 쓰며 밤을 보내고 있어. 내면의 짐이 좀 덜어지는 기분이더라.

 알다시피 우린 사소한 만남을 가볍게 여겼지. 수많은 우연을 모두 우연이라 치부하여 각자의 내면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담아듣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벌받나봐. 내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했던 벌인가봐. 너무 가혹한가? 문빈 대신 죽어가는 거면 괜찮지, 뭐.

 지금이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사랑 같은 거 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변명이라고? 아하하. 그럼 그렇게 생각해, 뭐.

 언젠가는 내가 좀비가 되겠지. 그 전에 이곳을 탈출할지, 아니면 쭉 여기서 살다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지. 우리의 앞날은 우리도 몰라. 그래도 이 기록은 계속될 거야. 나와 빈이의 앞날이 판가름나는 그날까지 계속될 거야. 혹여나 우리가 떨어진대도 나 혼자서라도 적을 거야.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혹시 기억나니? 처음 짝지가 됐을 때 기어코 신이 우리를 붙여놓으려고 한다던, 내가 했던 말. 이제는 그 반대네. 우리가 서로에게 붙어있겠다는데 신이 기어코 우리를 떨어뜨려놓으려 하네. 아직도 신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어. 정말 변덕이 심하시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랑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 당장 저 들끓는 좀비들만 해도 죄다 사랑의 방해꾼이잖아. 그렇지 않니?

 그래도 우리는 도망치고 살아남고 사랑할 거야.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終

 

 

전체 0

전체 67
제목 작가 주제
공지사항
계간은콩 2020 여름호 line up list
계간은콩 |  
계간은콩  
1
화성 소년 X 소년
달문어 | 화성
달문어 화성
2
너를 만난 여름
달함 | 타이베이
달함 타이베이
3
독일영화
| 부산
부산
4
수위 회자정리 거자필반 상
따란 | 인천
따란 인천
5
수위 회자정리 거자필반 하
따란 | 인천
따란 인천
6
스토커
땨빈 | 파리
땨빈 파리
7
수위 그남자 그남자의 사정
망간 | 청주
망간 청주
8
여름
백향과 | 대련
백향과 대련
9
트로이메라이
베디 | 시카고
베디 시카고
10
Hidden: 숨겨진, 비밀의 ; 신비한
분무기 | 산토리니
분무기 산토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