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아프기 전에 멈춰

2020 겨울호
작성자
연화
작성일
2021-01-16 22:36
조회
35


더 아프기 전에 멈춰_연화

 

 

 

1.

Nov, 18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황중사님! 이병장님! 살려주세요.....”

 

저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러서는 지나가는 개미도 듣기 힘들겠다. 

 

빈은 고립되었다. 

처음엔 소대에서 단체로 비무장지대 수색을 나섰을 뿐이었다. 거의 매일 있는 잡무인 만큼 무의식적으로도 충분히 해내는 일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 유달리 급히 나오느라 미처 해결하지 못한 볼일 탓에 도무지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간이 화장실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열악한 근무환경인지라 어쩔 수 없이 구석에서 빠르게 일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합류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폭풍전야란 이런 걸까, 분명 심신이 편안해져야 하는데 발걸음 한 번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발밑에 느껴지는 이물감에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몸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입은 점점 말라갔다. 야속하게도 사람들의 인기척은 점점 멀어져가고, 목은 잠길 대로 잠겨서 도와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 시발... 노상방뇨 한 번 했다가 골로 가게 생겼네.’

‘그러게 진작에 화장실 하나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아..’

‘...아직 섹스도 못해봤는데 이대로 죽는다고...?’

어엿 세 시간쯤 지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이젠 괜히 서럽기까지 하다.

 

‘해 떨어지면 졸다가 진짜로 죽을 것 같은데..’

점점 체념해가고 있을 때쯤 풀숲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런데 웬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 빈에게 다가왔다. 

 

“야.. 여기로 오지마... 너라도 오래 살아야지..”

 

힘겹게 자세를 쭈그려서 강아지를 돌려보내려던 순간 고개를 드니 사람이 보였다. 

다만 적군이었을 뿐. 빈은 더욱 놀라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허겁지겁 일어나 소총을 쥐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에 결국 총까지 떨어뜨렸다. 

 

“가까이 오지마...”

“나 지뢰 밟았어.. 가까이 오면 발 뗄 거야... 그럼 우리 다 같이 죽는 거야..!!”

 

은우와 산하는 덩달아 당황하며 재빨리 몇 발짝 물러섰지만, 침묵이 조금 흐른 후 은우는 조금 더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한 발만 더 다가오면 진짜로 발 뗀다...”

 

무슨 협박을 저렇게 벌벌 떨면서 해. 은우는 어이가 없어 산하를 쳐다보자, 자신 못지않게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산하를 보고 둘은 이내 발걸음을 완전히 돌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개새끼들아, 그냥 가면 어떡해!!”

 

기어들어가던 목소리로 협박을 하던 빈은 울분을 토하듯 소리를 질렀다.

 

“...니가 가랬잖아?”

“가까이 오지 말랬지. 언제 가라고 그랬어.. 이 씹새끼들아......”

 

빈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응..? 산하는 이 상황이 이해 안 된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 볼 뿐이었다.

 

“살려주세요.....”

“야.... 울지 마라...”

 

은우는 조심스럽게 빈에게 다가가 지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목함지뢰네..”

“야 목함지뢰가 뭔 줄 아냐? 발뒤꿈치만 똑 떨어지는 건데 발목부터 시커멓게 썩기 시작해서 결국엔 다리를 다 잘라내야 한대.” 

“야.. 일하시는데 넌 좀 닥쳐라...”

 

은우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작업에 몰두했다. 마침내 뇌관 연결부위를 절단하자 뇌관 핀이 분리되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은우는 일어섰다.

 

“천천히 움직여봐.”

“우린 좀 피해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빈은 산하를 째려보고 곧바로 은우를 아련하게 쳐다봤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천천히 떼도 돼.”

 

빈은 뒤꿈치부터 서서히 발을 들었다. 완전히 발을 뗐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제야 빈은 한 숨을 크게 내쉬며 쓰러졌다. 

기절 한 건가..? 은우는 빈을 안은 채로 한동안 기다렸다. 얼마 후 빈은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고맙습니다.”

 

은우는 빈에게 뇌관 핀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빈이 더 이상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재빨리 걸음을 돌려 돌아갔다. 그 옆에서 산하는 개 한 마리를 품에 안고는 영문도 모른 채 쫄래쫄래 따라갔다. 

 

“형님 왜 이렇게 빨리 걸으십니까?”

“저거 발목지뢰 아니야.”

“그럼..?”

 

“폭풍 지뢰.. 밟으면 일점 오미터 튀어 올라서 사방으로 파편을 뿌려. 그럼 직경 삼십 미터 이내는 다 죽어.”

“근데 왜....?”

“야 만약에 네가 지뢰를 밟았어. 근데 내가 저렇게 얘기했어. 넌 어쩔래?”

 

“.....”

“겁먹고 난리치다가 우리 다 죽었겠지?”

 

 

뭔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를 이렇게 다 들리게 해..

빈은 둘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돌아가는 길, 눈을 떴을 때 그 얼굴과 목소리가 흐릿했던 기억 속에서 점점 선명해졌다. 짧다면 짧은 군생활이지만 적군한테 도움 받는 건 또 신선한 경험이네.. 빈은 손에 쥐어진 뇌관 핀을 군번줄에 같이 메달아 간직했다. 

 

 

2.

Nov, 23

 

“이야 문상병님, 여친 사귀셨습니까? 역시 잘생긴 사람은 빡빡이고 군대고 다 상관 없나봅니다.”

“어? 어엉”

 

쓰던 쪽지를 후다닥 숨기면서 얼떨결에 빈은 동의해버렸다. 여자친구도 아니고, 연애편지도 아닌데...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감사하다고 제대로 인사도 못한 게 영 신경 쓰였다. 감사하다는 말만 하기는 뭣하니깐 괜히 빈은 주절주절 사담을 덧붙이며 써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저 발목지뢰 걔에요. 

우선 그 날은 정말 감사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 제 이름은 문빈이에요.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조금 늦게 입대한 편이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고 재수에 삼수까지 했는데, 공부는 제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지금은 조그맣게 다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소소하지만 같이 보낸 과자는 초코파이라고 남한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에요. 먹어보고 맛있으면 언제든지 보내드릴게요.

아무튼 이렇게라도 작게나마 보답할 수 있어서 좋네요. 앞으로 형이라 불러도 되죠?

형, 다시 한 번 정말로 감사해요. 

 

새벽 보초 업무 중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민혁 몰래 빈은 쪽지를 돌멩이에 묶어 북초소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아무래도 사고 좀 친 것 같은데, 뭐 형이라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겠지.

 

다음날 비슷한 시각, 빈은 괜히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척 진영 너머 초소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솔직히 별 생각이 들었다. 설마 못 받았나?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게 인상 깊게 던졌는데.. 고작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뭐 그리 애가 타는지..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사이 앞마당에 무언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빈은 깨어났다. 

빈은 평상시에 잠귀가 워낙 어두워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을 여럿 괴롭히곤 했다. 게다가 자고 있을 때 깨우면 한없이 짜증을 부려서 정말 진상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디가고 뭐가 그리 좋은 지 실실 웃으면서 2층에서 1층까지 단숨에 내려가 꾸러미를 주워 확인했다. 

 

 

덕분에 우리 초소 유리창 하나가 통째로 깨졌지만 그래도 네 편지 받고 꽤나 설렜어.   

문 빈이 본명인거야? 이름 예쁘네, 얼굴만큼. 

나는 중사고 이름은 차은우, 18살 때부터 국군이었어. 이 일 한지도 어엿 10년이 다 돼간다.

우린 다 계급장으로 불러서 나이같은 건 서로 모르고 사는데, 그래도 형 소리 들으니 기분 좋다.

우리 공화국은 그쪽만큼 손재주는 없는 듯해서 딱히 줄 건 없네.. 

그래도 빈아, 이렇게 자주 교류하면 좋겠다. 다음에 또 보자.

 

이게 뭐라고, 빈은 괜히 가슴이 떨렸다. 

 

물론 은우도 마찬가지였다. 빈이 기절했을 때, 품에 안은 채로 한동안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군인치곤 상당히 흰 피부와,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참 예뻤다. 그런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땐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단정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둘은 그렇게 주고받는 쪽지가 늘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빈은 밤새 한 숨도 안자면서 까지 고민했다. 

 

“형님 요즘 낮잠이 늘었습니다?”

“내가? 아..아냐, 나 원래 잠 많잖아 허허.”

“원래도 많은데 더 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민혁은 총격 훈련 중에도 조는 빈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평소엔 그렇게 까칠하더니 확실히 연애하더니 하루 종일 웃는 모습이 보기는 좋네. 

 

 

3.

Dec, 22

 

빈이 오늘 받은 쪽지의 끝은 평소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런데 초코파이 그거.. 박스 단위로 보내줄 수는 없는 거냐?

던지기 곤란하면.. 직접 주는 것도 난 좋을 것 같은데.

 

‘뭐야, 이거 지금 나 북침하라는 소리인가?’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1년 넘게 근무하면서 새벽엔 다들 곯아떨어지느라 아무 일도 없긴 했지. 그래 따지고 보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건데 넓은 집이라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지. 

 

빈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향했지만 다리 정 가운데 군사분계선에 서서는 잠시 멈칫했다. 솔직히 안 쫄린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지뢰를 밟았을 때와는 달리 조금은 짜릿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직진하여 북초소의 문을 두들겼다. 산하를 통해 문이 열리고 은우는 그대로 얼음장이 됐다. 산하는 당황하며 얼음이 된 것도 잠시, 재빨리 권총을 꺼내 총구를 빈에게 향했다.

 

“ㅁ..뭐..뭡니까?”

“어... 윤전사 일단 총 내리고.. 문 닫고 들어와...”

“중사님!”

 

“아니 너도 참.. 진짜 넘어오는 사람이 어딨어.”

 

생각보다 은우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 것 같아 빈은 입술이 한껏 삐죽 튀어나왔다,

 

“예, 초코파이나 많이 드세요. 한 박스 들고 왔으니 전 갈게요.”

“헐! 이거 저번에 차중사님 혼자 다쳐먹, 아니 다 먹어서 진짜 먹고 싶었는데.. 형 사랑해요...”

 

은우는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였고 빈은 문을 열어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이새끼, 저번에 그렇게 놀려먹을 때는 언제고.. 

 

“차중사님 이렇게 귀한 손님 그대로 보내실 거예요? 어서 한 잔 해요.”

“어.. 어 그래, 날도 추운데 몸 족 녹이고 가..”

 

 

조촐하지만 마른안주와 한 잔, 두 잔 들이키다 보니 적군이라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매일 쪽지로 소통하던 때와는 달리 확실히 직접 얼굴을 보고 마주하니 더 많고 깊은 얘기들이 오갔다.   

 

은우는 북한 내에서 제법 중산층이었다. 뭐 그래봤자 운명은 군인인지라, 공동경비구역에 오기 전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주로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자로 만나 자신을 잘 따라와 준 산하와 지금까지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됐다고 한다. 어릴 땐 키도 작고 왜소했던 산하가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너무 업어 키운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자신보다 키가 커진 산하를 보고 은우는 괜한 걱정을 했다고 한탄을 한다. 

그럴 만도 한게 꽃제비 출신들은 주로 총알받이가 되어 어릴 때 죽기 마련인데 산하는 온갖 궂은 훈련들에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그래봤자 여전히 겁도 많고 은우에겐 여리고 어린 아이지만 은우는 그런 산하가 제법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올해 고작 스무 살인 애가 나한테 초면에 야라고 부르면서 까불었던 거야? 빈은 속이 조금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래도 짠한 서사에 산하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다. 애증이란 게 이런 걸까. 

 

해가 뜨기 전엔 돌아가야지 싶으면서도 빈은 돌아가는 길이 마냥 아쉬웠다. 은우는 바래다주겠다고 같이 나왔다. 고작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래다준다는 표현이 어색하긴 했지만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곁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빈아,”

“자주 보자.”

“네, 어서 들어가요.”

 

자주 보자는 말 못 지킬 걸 알았는데, 빈은 조금은 이기적이고 싶었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적이여야 할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단지 사랑해서, 그게 이유다. 그 순간에는 사랑이 언젠간 자신을 힘들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 

Jan, 26

 

“문병장님.”

“형 가면 저는 이 삭막한 곳에서 어떻게 버팁니까?”

 

민혁은 빈이 병장이 된 이후로 매일 투정을 부렸다. 평소였으면 자주 면회 오겠다고 달래줬겠지만 생각해보니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박일병, 내가 친구 소개해줄까?”

.

.

.

“형님 저는 안가면 안됩니까? 저 진짜 무섭습니다.”

“형 믿고 한 번 와봐. 가보면 나만큼 좋은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니깐? 아 한명은 빼자.”

 

둘은 군사분계선에서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긴 실랑이 끝에 드디어 문 앞까지 함께 향했다. 빈은 익숙한 듯 문을 덜컥 열어 들어갔지만 민혁은 밖에서 여전히 벌벌 떨면서 망설였다.

 

 

“민혁이형? 아이고 형님 통일의 선두주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서 오십쇼.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빈이 뭐하냐고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산하가 먼저 나가 민혁에게 팔짱을 끼며 민혁을 안으로 데려왔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빈이형이 맨날 형얘기 해줘요. 실제로 뵈니까 훨씬 미남이시네요.”

 

민혁은 자신에 대한 적군의 꽤나 호의적인 태도에 경계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 얘는 윤산하 너보다 한 살 어린데 정신연령은 한 열 살 차이나고, 여기는 은우형 내 생명의 은인.”

 

“형님 그럼 연애편지가 아니라 맨날 인민군이랑 쪽지 주고받던 것이었습니까?”

“헐 그럼 새벽에 깼을 때 형 없던 것도 화장실 간 게 아니라 맨날 여기에....??”

“아이고 나 진짜 미치겠네..”

 

은우는 민혁의 스스럼없는 고백에 괜히 살짝 부끄러워하는 빈이 귀여웠다. 

 

“에이 형, 저희 나쁜 사람 아니에요.”

“일단 앉아서 한 잔 해요.”

 

“술은 잘 못하는데..”

 

하지만 막상 앉아서 분위기를 타니 제법 재밌었다. 

 

 

“빈아, 진급 축하한다. 내 덕에 살아서 병장 계급장도 달아보는 거 아냐?”

“뭐래 그때 내가 독한 맘먹고 발만 뗐어봐요. 생명의 은인은 나라니깐.”

“와, 그때 울면서 살려달라고 할 땐 언제고....읍”

 

빈은 황급히 은우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 민혁이도 있는데 그런 얘기 꼭 해야겠어요?”

“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진짜 살고 싶었나 보네요..”

 

민혁은 애써 웃음을 참았지만 결국 빵터져서 빈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그래도 우리 형 남쪽에서 유명한 속사수에요.”

“빈이형 같은 겁쟁이 국군하고는 붙을 생각도 없는데요?”

 

산하의 도발의 빈은 발끈하여 순간적으로 허릿춤의 권총을 빼 산하의 이마에 들이밀었다. 깜짝 놀라는 산하를 보며 빈은 웃으며 권총을 내렸다.

 

“알았어. 되게 빠르네. 근데 너...”

 

은우는 무기함에서 AK 소총을 들고 와 총구를 빈의 머리에 갖다 댔다. 

 

“...사람 쏴봤어?”

“아뇨.”

“난 많이 해봤어.”

 

정색을 하며 안전장치 레버를 돌리는 은우를 보고 빈은 많이 당황하여 웃음기가 사라졌다.

 

“에이 중사님 그만해요. 모처럼 새 손님도 왔는데. 우리 중사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지 알아요? 어? 군사 교관 경력만 십년이라구요!”

 

그제야 은우는 표정이 풀어지며 산하의 뒷통수를 한 대 때렸다.

 

“아 왜 때려요?!”

 

“까불어서.”

“실전에서 총 뽑는 속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전투기술? 그런 건 없어. 얼마나 침착한가, 얼마나 빨리 판단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느냐, 그게 다야.”

“그때 내가 준 뇌관 핀 있지? 그거 잊어버리지 마.”

 

 

빈과 민혁이 돌아가고 은우는 사색에 잠겼다. 그 사색을 깬 건 역시 산하였다.

 

“사람 죽여본 적도 없는 사람이 왜 그렇게 거짓말하고 애꿎은 사람 협박해요?”

“어쩌면.. 조만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적군도 구해주는 주제에 무슨...”

 

글쎄, 우리가 지금처럼 평생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끝은 정해져있는데. 

은우는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웠다.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한 모금 깊게 마시고는 나머지는 산하에게 건넸다.

 

“야 한 번 펴보고 싶다며,”

“진짜??”

 

설렘반 걱정반으로 빨아들였지만 산하는 이내 헛기침만 켁켁거렸다.

 

“별로지?”

“그니깐 하지마.”

 

은우는 산하를 항상 엄하게 키웠다. 산하뿐만이 아니라 교관으로 있는 동안은 아이들 모두에게 엄하게 대했다. 오직 정신력만으로 독하게 살아남으라는 수신을 누군가는 이해해주길 바랬을 지도 모른다.

 

 

5. 

Feb, 25

 

그 일이 있고난 후 딱히 어색해졌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은우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했다. 

 

“중사니임 오늘 저 뭐 잘못했습니까?”

 

미안하지만 오늘은 너희들 좀 희생해야겠다. 취해 쓰러진 동생들은 내버려두고 은우는 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항상 이 늦은 시간에 일곱 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만 만나는 게 억울하고 아쉬워서, 기회가 왔을 때 붙잡고 싶었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오늘은 그냥 느낌이 안 들킬 것 같아.”

“참내 그런 게 어딨어.”

 

“하늘 봐봐. 사실 이거 보여주고 싶었어.”

 

붉은 달이 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개기월식, 딱 이 시간에만 볼 수 있으니깐.

강가 근처 잔디에 앉아 둘은 안에서 하지 못한 얘기를 마저 했다.

 

“언제 제대 한다고 했지?”

“열두시 지났으니깐 79일 남았네요.”

“그래? 좋겠네.”

“지금 저 놀리시는 거예요?”

 

“넌 내가 그렇게 좋냐?”

“...네”

 

날짜를 지나치게 정확히 세는 빈을 보며 은우는 조금 퉁명하게 대했지만 이내 빈의 대답에 볼을 물론 귀까지 빨개지며 한껏 올라간 입꼬리는 숨길 수 없었다. 

 

조금은 어색한 듯 부끄러운 분위기에 빈은 은우에게 다가가 입술을 포갰다.

 

“....야 너 앞으로 술 마시지 마라..”

“취하면 어 막, 이렇게 아무한테나 입술박치기 해도 되는 거냐.”

 

빈은 당황해서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은우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리고 손목으로 입술을 한 번 스윽 닦고는 다시 은우에게 한 뼘 사이 거리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안취했어. 그리고 형이 아무나야?”

 

확실히 맨정신이었다. 은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지만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에 잠시 이성을 내려놓고 은우는 그대로 빈의 뒷목을 잡고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

 

둘은 그렇게 붉어진 달을 머리 위에 두고 처음으로 뜨거운 숨결을 나눴다. 

 

 

“빈아,” 

“더 늦기 전에 이 말 해주고 싶었어.”

“사랑해.”

 

 

6. 

Mar, 20

 

새벽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막사 건물 옥상에 설치된 서치라이트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병사들은 놀랄 틈도 없이 잠에서 깨 소총을 든 채 쏟아져 나왔다. 트럭 앞에 쌓여 있는 커다란 무기 상자에서 선임하사가 사병들에게 탄약과 수류탄 등을 나눠줬다. 

 

“지금 북방한계선 전 지역에서 인민군의 대대적인 전진배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데프콘-쓰리 상황이다.”

“적 발견 즉시, 무조건 사살한다. 이상.”

(*데프콘-쓰리 : 전투준비태세 3단계 준전시상태, 적의 개입이 우려되는 상황에 발령된다.) 

 

대원들은 외눈 야시경을 착용하고 수색을 진행했다. 선두의 황 중사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대원들은 일제히 그대로 멈췄다.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사격자세를 취했다. 

민혁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연발 사격을 해댔다. 그런 민혁을 빈이 다가와 중지시켰다.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바스락 소리의 주인은 멧돼지였다. 

 

 

다음날 아침, 접시에 수북이 쌓인 돼지고기 수육을 빈은 그저 맛있게 집어먹었다.

 

“나는 정말로 전쟁 나는 줄 알았다.”

“문병장님, 저희 이제 그만 넘어가죠.”

 

식사를 하면서도 민혁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 곧 제대잖아. 작별인사는 해야지. 게다가 내일이 산하 생일 아니냐.”

 

빈은 남은 수육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 일어났다. 그것도 얼추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형이야 제대 얼마 안남았다지만.. 저는요...  

.

.

.

“형 어제 진짜 무슨 일 나려고 했던 거야?”

“나도 몰라. 미국 놈들이 폭격을 하면 정말 무슨 일 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핵무기, 미사일 그런 거 안 만들면 되잖아요.”

“야, 그걸 내가 만드냐!”

“아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전쟁 얘기 그만 해요. 무섭단 말이에요..”

 

 

산하 덕분에 기껏 가라앉은 분위기를 빈이 다시 한 번 깼다. 

 

“형 근데 만약 정말 전쟁나면 어떡해? 우리끼리도.. 서로 쏴야해?”

“난 안 쏜다고 장담 못해.”

“형은 그럴지 모르지만 난 안 쏠 거야.”

 

“..건배나 하자.”

 

이상하게 저 한 잔이 유독 많이 썼다. 살면서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은우는 문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기 시작했다.

 

“담배 끊어.”

“나 담배 냄새 안좋아해.”

 

자신을 따라 나온 빈의 목소리를 듣고는 은우는 이내 곧 담배를 밟아 불을 죽였다.

 

 

“형, 나 넘어가면 어떨 것 같아?”

 

은우는 갑작스런 빈의 물음에 적잖게 당황했다.

 

“...진심이야?”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왜, 월북하면 영웅 대접 받고 좋잖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말의 의미를 은우도 알고 있었다. 빈이 제대하는 게 누구보다 끔찍이 싫었다. 하지만 부디 안전하게 제대했으면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은우였다.

 

 

“그럼 형이 내려와라. 초코파이 말고도 형이 좋아할 만한 과자 엄청 많아.”

“우리 공화국도 언젠간 남한보다 맛있는 과자 만들거다”

“예예, 말을 말아야지.”

 

싱겁긴, 아니면 나만 또 진심이었나. 은우는 한껏 심각했던 표정을 그제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고집이 센 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처럼, 한 번만 더 자존심을 굽혔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같은 국군이라면 나는 항상 너를 지킬 자신은 있는데, 다만 네가 더 행복할 지는 확신이 없어서 그랬어. 

근데 네 성격상 우리 공화국은 안 맞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올 수 있는 날도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네..”

“형, 끝까지 이기적이기만 해서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은우는 안에서 엄하게 말하던 때와는 달리 빈을 그저 따스하게 안아줬다. 

사실 마지막 말을 못했다. 형이 그럼에도 날 기억해줬으면, 날 잊지 말아줬으면 해서.  

 

7.

Mar, 21

 

“차중사님 빠른년생이 뭔지 아셔요?”

“그게 뭐야.”

“민혁이형이 알려준 건데요, 남한에서 1월생은 주로 학교를 1년 일찍 입학한대요. 근데 빈이형도 그렇대요. 즉 남한에서는 중사님이랑 빈이형이랑 동갑이다 이거죠!”

“야 그래도 동갑은 아니지, 그건 그냥 친구지.”

“그게 그거 아니에요? 하여튼 참 깐깐해.”

 

“어쭈, 이게 호칭만 중사님 중사님 하고 하는 짓은 완전 딴 판이야.”

“에이~ 형, 그래도 저 귀엽지 않습니까?”

“안귀여워, 임마.”

 

은우는 그냥 웃음이 났다. 내가 남한에서 살았으면 빈이랑 동갑친구다 이 말인가? 

이곳에 살면서 산하를 제외하고는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 동생 취급하는 사람도 없었다. 친구가 친구인 줄도 모르고 살았고 그게 그저 당연한 듯 은우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형일 필요가 있는가? 친구였어도, 아니 동생이었어도 널 지켰을테야. 

 

 

이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빈과 민혁이 산하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초코파이에 초 두 개를 꽂아 모양새는 영 형편없었지만 산하는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있다가 이내 갑자기 울컥하여 엉엉 울었다.

 

“저 살면서.. 이런 거.. 처음 받아봅니다...”

“빨리 촛불이나 불어. 손 뜨겁다.”

 

맨날 주는 초코파이인데도 뭐가 그리 좋다고.. 생일인데 오늘은 맛동산이라도 갖다 줄걸 그랬나. 

촛불을 끄고 진정이 된 산하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권유했다.

 

다만 사진을 찍고서는 은우와 산하는 서로 사진 한 장을 갖겠다고 투닥거렸다.

 

“이건 내가 가진다.”

“아니 제가 찍자고 했는데 제가 가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훈련 하다가 그 사진 잃어버리면 넌 목숨 끝이야.”

“중사님은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내가 네보다 짬밥이 얼만데, 그리고 우리 계속 같이 있으면 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그제야 산하는 할 말이 없는 듯 꼬리를 내렸다. 칫, 그래도 내 생일날인데..

 

민혁은 한껏 삐진 산하를 보고 따로 준비해둔 선물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문고리를 잡았을 뿐인데 동시에 손이 저절로 움직여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는 또 다른 인민군이 보였다. 

겁에 질린 민혁은 그대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민혁의 행동에 빈은 상황을 파악하고 총을 뽑아들었다. 

 

최상위는 실내로 한 발 내딛으며 이내 나머지 세 병사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다.

 

“이 새끼, 보초 세워 노니까 적군하고 노닥거려? 어서 이 새끼들 체포해!”

“조장님 진정하십쇼. 얘들 지금 월북하겠다고 상의하러 온 거에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빈과 최상위는 서로를 향해 총을 향하고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최상위는 산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다. 이 새끼들은 적이야. 쏴버려.”

 

산하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은우를 쳐다봤다.

 

“내가 책임진다. 하지마.”

“너 이 새끼 완전히 미쳤구나? 지금이라도 내 말 들으면 이제까지 반역행위는 없던 걸로 해준다.”

“자, 어서!”

 

“..중사님, 죄송합니다.”

 

산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벌벌 떨며 총을 꺼내 빈의 다리를 향해 겨눴다. 그제야 최상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은우는 체념했다.

 

 

8.

Mar, 21

 

“빈아 이렇게 된 이상 총 내려놔라.”

“싫어.”

“내가 잘 말해둘테니깐 자진 월북한 걸로 하고 우리 공화국에서 살자.”

“조장님 어떠십니까.”

 

“먼저 총 내려놓으면 얘기해본다.”

 

“좆까!! 저새끼 말 못 믿는 거, 형이 더 잘 알잖아. 우리 둘 다 죽여 놓고 잠입한 놈들 사살했다고 구라칠 게 뻔해!!!”

“내가 책임지고 너희 살려줄게, 그래도 형 못 믿겠어?”

“빈이형 저희 중사동지가 지뢰 줄 끊어준 거 기억 안나요? 어서 총 내려놔요.. 저 지금 무서워 죽겠어요....”

 

“시발,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나보고 겁쟁이라 그랬지? 어디 한 번 봐봐, 내가 저새끼 죽이는 지, 못 죽이는 지!”

 

“야 문빈, 이딴 식으로 나갔다간 우리 전부 다 죽는 거야.”

 

은우의 말에 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총 내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자, 동시에 내리는 거다.”

 

은우는 두 총의 가운데 서서 양팔을 벌려 최상위와 빈의 총구를 천천히 아래로 누르기 시작했다. 

결국 두 권총이 홀스터로 들어가고 산하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총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때 최상위에 뒷주머니에 있던 무전이 울렸다. 

 

(탕)

 

총성 한 발이 울리며 총알은 그대로 최상위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총을 쏜 건 다름 아닌 민혁이었다. 민혁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무작위로 쏘기 시작해 다음 총알은 산하의 목덜미를 관통하여 즉사시켰다. 그 다음으로 총구를 은우를 향해 돌렸는데, 더 이상 총알이 나오지 않았다. 방아쇠가 고장 났던 것이다. 그제서야 민혁은 정신을 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물을 흘렸다.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듯 울리기 시작했다.

 

“ㅅ..사..살....려줘...”

 

빈은 놀랄 틈조차 없이 가만히 있던 순간 총알이 손목을 스치며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상위는 그 정신에도 기어코 총을 꺼내 눈앞에 보이는 빈을 향해 총을 겨누고는 은우를 바라보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은우는 고개를 돌리고는 망설임 없이 최상위를 즉사시켰다.

 

“너희 내 말 잘 들어라.”

“너는 납치됐다가 탈출한 거고, 너는 여기에 없던 거다.”

 

은우는 침착하게 민혁의 총을 가져가 피를 닦아 방아쇠를 수동으로 당긴 후 돌려줬다. 

 

 

“빈아,”

 

(탕)

 

빈은 눈물을 흘리며 최대한 은우의 어깨에 빗나가게끔 쐈다. 인민군들은 어느덧 코앞까지 좁혀왔다. 부축을 해주던 민혁도 이제는 빈을 뿌리치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은우는 한 쪽 손으로 어깨를 지혈하면서도 그동안 노닥거린 흔적들은 혼자서 은닉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찍은 사진까지 최대한 갈기갈기 찢어 강물에 흘러 보냈다. 그리고는 돌아와 다리 위를 기어가는 빈을 향해 허공에다 공격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북한군이 먼저 헤드라이트를 켠 채 트럭을 타고 도착했고 그 건너편에 남한군들 역시 도착하여 은우와 빈을 각각 데려갔다. 그리고 양쪽 병사들은 한참을 서로를 향해 쏘아댔다. 사방으로 갈라지는 화염 속에서 조명탄의 빛줄기가 대낮같이 주위를 밝혔다.

 

 

9.

Mar, 30

 

중립국 감독위원회 법무관에서 온 장소령은 민혁을 먼저 데려와 심문하기 시작했다.

 

“박민혁 일병, 초소에서 문빈 병장과 같이 근무했고, 용변 본다고 나간 문병장을 기다리다가

총성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민혁을 심문할 때와는 달리 은우와 빈을 심문하는 자리는 제법 거창했다. 옆으로 긴 탁자와 마주 놓인 의자 둘, 그리고 대형 TV 모니터와 2대의 캠코더가 보였다. 탁자 위의 남북 초소와 이어져 있는 다리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모형이 있었고, 장소령은 은우와 빈을 동시에 불렀다. 

 

멀끔히 다려 입은 정복 차림의 은우가 먼저 도착해 가벼운 목례를 하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목발을 집은 채 빈이 등장했다. 빈은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져 ‘형’이라고 발음하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은우는 그런 빈을 보고 단호하게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었다.

 

“자술서에요. 읽어보고, 고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줘요.”

 

그대로에요, 은우는 쓱 한 번 훑어보고 바로 돌려줬다. 빈도 잠시 읽는 척을 하다 은우를 따라서 장소령에게 돌려줬다. 

 

“현장에서 윤전사는 여섯 발의 총알, 최상위와 문병장은 각각 두 발의 총알, 그리고 차중사는 한 발의 총알을 맞았습니다.”

“문병장은 각각 최상위와 윤전사에게 한 발씩 맞았다 했고, 나머지는 그럼 모두 문병장이 쏘았겠죠?”

“네 그렇습니다.”

 

“최상위의 시신 부검 결과 하나는 오른쪽 가슴으로 들어가서 오번 갈비뼈를 부순 다음 폐를 관통했어요. 하지만 이건 치명상이 아니고, 두 번째가 진짜인데 각도로 봐서는 정면에서 정확히 뇌를 향해 쏜 거죠.”

“그런데 윤전사의 시신 부검 결과는 첫발의 후두부 관통으로 즉사했습니다. 즉 나머지는 시체에 대고 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앞의 것이 차분하게 계획된 범행 방식이라면, 뒤의 것은 충동적으로 쏘아댔다는 뜻이죠.”

 

빈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다 때려쳐!!”

 

화를 내는 목소리와는 달리 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

장소령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듯 입을 벌리는 순간 은우가 먼저 일어나 큰소리를 치며 탁자를 세게 옆으로 뒤엎었다.

 

“이 간나새끼!!!”

 

뒤에 섰던 경무 둘이 덤벼들어 은우를 붙드는 동안, 빈의 뒤의 헌병들은 권총을 뽑아들었다. 북측 출입구 앞을 지키던 경무들도 덩달아 총을 빼 양쪽의 때 아닌 총격전에 빈은 그대로 귀를 막고 쓰러진 채로 몸부림쳤다. 반면 은우는 양팔을 붙들린 채 묵묵히 할 말을 이어갔다.

 

“내레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알아?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반동 놈의 새끼! 민족의 배신자, 괴뢰 놈아!!”

 

은우는 출입구로 끌려가다 경무들의 팔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미친 듯이 절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 만세!!”

 

만세를 마친 은우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경무들과 선임도 이내 황급히 쫒아나갔다, 

 

은우는 숙소로 돌아와 입고 있던 군복을 벗어던졌다. 만세를 올릴 때마다 어깨를 꿰맨 살점이 다시 뜯겨 피가 새는 게 느껴졌다. 옷을 벗어던지자 왼팔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받은 국가훈장도 보였다. 다 좆같았다. 이렇게까지 추악해지고 싶진 않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형은 근데 북한 말 잘 안쓰네."

 

너는 모르지, 네 앞이라 그래.

조금이라도 이질감 들고 싶지 않으니깐.

 

 

10.

May, 13

 

빈 역시 남한에서 영웅이 되어 포상휴가와 더불어 미복귀 전역을 하게 됐다. 

장소령은 빈이 전역하는 날 차중사를 찾아왔다.

 

“문병장 오늘 용산으로 후송돼요. 뭐 전할 말 없어요?”

“괴뢰군에게 뭐 할 말이 있다고..”

 

“문병장과 박일병의 총이 바뀐 건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남병사들은 어차피 고유 일렬번호만 다르고 공식 화기인 베레타 M-9만을 모두 사용하니깐요.”

“그러나 북한군은, 특히 최상위와 차중사와 윤전사의 계급의 총은 명확히 구별이 되죠.”

 

“그래서요?”

 

“총 열한 발의 총상이 있었는데도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는 열 개 뿐이었어요.”

“최상위를 즉사시킨 바로 그 두 번째 총알의 탄환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죠.”

“그건 당신의 화구에서 나온 탄환이었죠?”

 

“..다 알고 계셨으면서 왜 진실을 밝히지 않으셨나요.”

 

 

“차중사가 두 번씩이나 목숨 걸고 살려줬잖아요.”

“..문병장도 압니까?”

“모를 거예요.”

 

“그럼 계속 모르게 해주세요.”

 

그렇게 둘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한 발짝 다가가면 손에 닿을듯한 거리에서 가장 먼 곳으로 점차 멀어져갔다.

 

 

나의 오랜 제자를 잃었다 해서, 민혁이를 원망하진 않는다. 내가 남초소를 넘어갈 용기가 없어서 그랬지,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나도 망설임없이 총을 겨눴을 것이다. 

다만, 죽은 산하에게도, 살아있는 민혁이와 빈에게도 남은 건 모두 상처뿐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럼에도 네가 여전히 보고싶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내 목숨을 받쳐서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얻고싶어.

 

 

11.

Jan, 29

 

민혁이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해보니 얘도 제대할 때 다 됐구나. 민혁이는 내가 병장이 될 때부터 늘 울상이었다. 뭐 나정도면 좋은 선임이긴 하지. 면회 한 번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네가 더 잘 이해해주겠지. 

 

"민간인 다 되셨습니다."

 

"그러냐? 니도 더 멋있어졌네."

"....형은 잘 지내더냐?"

 

"안그래도 은우형땜 온 겁니다."

 

빈은 본능적으로 내뱉고 아차 했지만 예상과 다른 민혁의 반응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99%는 안좋은 소식일까 봐 두려웠고, 1%는 혹여나 하는 마음이었다.

 

"형 가고 나서는 뭐 넘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양쪽 모두 경비병들이 늘어 은우형이랑 소통은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 전역 얼마 안남을 때쯤 형한테서 새벽에 쪽지 하나를 받았어요. 형한테 그대로 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뵌 건데, 저 보자마자 형 얘기부터 하는 거 보니 잘 찾아 온 것 같네요."

 

 

하여튼 요즘 젊은 놈들 밤에 잠도 안 자. 민혁아, 네가 이 쪽지를 받아야만 하는데 좀처럼 쉽지가 않다. 

네가 병장이 되는 날도 오고, 참 세월 빠르구나. 늦었지만 축하한다. 

너까지 떠나면 이제 이 텁텁한 공화국에서 홀로 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는 이제 아프리카 나이로비로 갈 거다. 너랑 빈이 덕분에 행복했다. 

그리고 전역하면 빈이한테 이 말 꼭 전해줘라. 나 정말 담배 끊었다고. 

 

 

민혁이 가고 나서 빈은 한참동안 울었다. 은우를 그리워하며 썼던 편지가 꽤나 많았다. 받는 이, 받는 주소를 차마 쓰지 못하고 비워둔 채로 점차 쌓여만 갔다. 

민혁이한테 보내서 전해 달라 하기엔, 그만큼 깡이 있는 애도 아닐뿐더러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니, 참으로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써 지워보려 노력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았고 당연히 지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그 잔상이 더욱 선명해져서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너무 미웠다. 

사랑을 노력으로 이겨낸다면 얼마나 쉬울까. 고백 한 번 못해보고, 구질구질 매달려보지도 못하고, 그저 마음을 억누르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서, 그 현실이 또 아팠다.

그 의미 없는 편지들을 후련하게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지난날들이었다. 

 

 

12.

Feb, 23

 

빈은 공항으로 향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해서는 무작정 비무장지대를 찾아 헤맸는데 민간인은 출입금지라고 보초 서 있는 군인들과 한참 실랑이를 하자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민간인 아니에요. 제가 불렀어요.”

 

그러자 그들은 한 발짝 멀어졌고, 은우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실제로 은우를 보면 빈은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할까봐 두려웠는데 눈앞에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는 게 그저 허상 같았다.

  

"뭘 그렇게 돌려 말해놨대. 그냥 보고싶다 한 마디면 알아듣기 편할 텐데."

 

"그 말은 만나서 직접 해주고 싶었어."

"많이 보고 싶었다."

 

그제야 빈은 현실임을 자각하고 은우의 품에서 한없이 울었다. 은우도 서럽게 우는 빈을 보니 감정이 복받쳐 덩달아 눈물이 났다. 

 

 

네가 와서 꼭 한 번만 다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많이 아프다.

다음 생엔, 너도, 나도 조금만 덜 아픈 사랑을 하자. 

잊지 않을게. 내가 너에게 다가갔을 때처럼, 다음 생에도 내가 또 다가갈게.

그러니 너는 우리가 처음 만날 때처럼 그저 날 찾아줘.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널 찾아갈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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