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러브

2020 겨울호
작성자
알맥
작성일
2021-01-16 22:40
조회
35



1.


“나 화장실 좀.”


 일어나면서 살짝 비틀거린 빈이 앉아있는 은우의 어깨를 쥐고 바로 섰다. 섰다. 그래, 벌떡 섰다. 은우가 술이 올라 벌겋게 달아오른 빈의 손을 겹쳐 잡았다. 괜찮아? 퍽 다정하게 물으며 빈을 올려다 본 은우가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니, 좀 힘드네..”

“그래 보이네. 등 좀 두드려 줘?”


  웅.. 빈이 고개를 꾸닥, 흔들며 은우의 어깨를 꼭 주물렀다. 그 바람에 은우도 빈을 따라 섰다. 자리에서 일어나 섰고, 그리고... 섰다. 아무튼 둘 다 서서 나란히 화장실로 바삐 향했다. 개강총회로 시끌벅적한 실내포차는 그런 둘의 모습 따위 신경도 안 썼다.


“아, 아 잠깐만, 아.”

“빈아 뭐야. 여기 왜이래.”

“지는.”


 일인용 화장실에 장정 둘이서 문 꼭 잠그고 다급하게 입술을 겹쳤다. 딱 붙어선 몸 사이로 종이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부비적거리는 아랫도리가 둘 다 두툼하다. 허겁지겁 입술을 먹어대던 둘의 손이 어깨에서, 등에서, 가슴에서 더 더 아래로 내려갔다. 은우가 빈의 엉덩이 양쪽을 덥석 움켜잡자 놀란 빈이, 아! 소리를 냈다.


“빈아, 밖에 들리면 어쩌려구.”

“밖에 소리가 더 커서 괜찮...”


 그때였다. 꺄악! 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우의 손이 빈의 엉덩이에서 떨어졌다. 그대로 멈춰선 둘은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당탕 와장창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난리였다. 신나서 지르는 고함이 아니라 이건..


“비명인데?”


 은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 잠갔던 화장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왜? 뭔데?"


 은우가 대답 없이 조용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문을 닫았다. 돌아서서 빈을 쳐다보는 은우의 얼굴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왜? 뭐냐니까? 은우는 무작정 빈의 뒤에 자리한 창문을 열고 목을 쭉 빼서 주변을 살폈다.


“빈아, 빨리!”


다급한 은우의 재촉에 빈은 다짜고짜 창문에 몸을 쑤셔 넣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일단 은우가 하라니까 시키는 대로 했다. 1층이기도 했고. 그리고 은우가 하라는 거 중에 틀린 거 하나도 없었으니까.

먼저 나온 빈이 은우에게 손을 뻗었을 때였다. 쿠쾅과쾅!!! 허름한 화장실 문이 부서질 듯 강하게 흔들렸다. 은우와 빈이 놀란 눈으로 문을 쳐다보자 곧, 콰직! 소리를 내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사... 살려.. 사..!”


과대였다. 기이하게 몸을 뒤틀며 등장한 과대가 철푸덕 바닥으로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쓰러진 과대 뒤로 실내포차의 아수라장이 눈에 들어왔다. 집단 살인 현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은우와 빈은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뜯어진 문 너머로 꾸어억 소리를 내며 몸을 뒤트는 동기들과 새내기들이 한 무더기였다. 그 순간, 경련을 멈춘 과대가 으득 으득 관절이 어긋나는 소리를 냈다.


“으.. 은우야..!”


 은우의 발치 쯤에 엎어져 있던 과대가 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벌떡 들었다. 빨리! 빈이 있는 힘 껏 은우의 팔을 창 밖으로 잡아 당기자 은우도 허겁지겁 창틀을 짚고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끄어억!! 비틀대며 몸을 일으킨 과대가 순식간에 은우에게 달려와 은우의 한쪽 발을 덥석 잡았다.


“억!”


 발을 잡고 늘어지는 과대 때문에 은우는 오른발만 달랑 창틀에 걸쳐진 채 창 밖으로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퍽, 소리 나게 바닥에 곤두박질 쳤지만 그보다 더 소름 끼치게 변한 과대의 기이한 모습에 은우는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놔!! 놔!!! 차!! 발로 차!!! 벗어벗어버섯!!!”


 마찬가지로 질겁한 빈이 은우의 오른발을 붙잡고 당기고 털털 털고 과대 손을 퍽퍽 치다가 은우가 신고 있던 스니커즈를 벗기고서야 저도 같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드디어 오른발에 자유를 얻은 은우가 풀썩 뒤로 자빠지는 빈을 보고 절뚝거리며 달려와 일으켜 세웠다. 아까 빈이 퍽퍽 소리 나게 때린 게 사실 과대 손이 아니라 은우 발목인 거 같긴 했다. 아무튼 괜찮니 뭐니 물어볼 새도 없이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 때가 몇 시쯤이었더라. 아마 한 아홉시쯤 됐었던 것 같다. 문제의 장소에서 빠져 나오자 여느 때와 같이 시끌벅적 하고 평범한 대학로가 보였다. 은우와 빈은 그제서야 숨을 돌리고 주변의 낌새를 살폈다.


“뭐지?”

“....”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우리 꿈 꾼 건가? 아님 과에서 단체로 우리 몰카한 거야? 뭐야? 은우와 빈이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보는 순간,


“아아악!!!!!”


 좀 전에 들었던 소리들이 지척에서 다시 들려왔다. 에이씨. 야 일단 튀어!!!! 은우와 빈은 전력으로 뛰었다.






2.


 [거리를 배회하는 것들 중에 이미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생전을 기억하지 못하며 이성이 없고 지능이 저하되어 오로지 식욕만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다. 그들의 식욕은 살육으로 해소되나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므로 끊임없이 살육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어떠한 감정적 자극으로 감각이 돌아오고 이성이 복구되는 경우가 있다. 이 중 드물게 세포 재생이 이루어지는 사례도 있는데, 오랜 시간을 걸쳐 완벽한 산 자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자들도 있다. 가장 처음 발표된 사례는 미국 테네시주의 23세 남성...]


“난 좀비 돼도 너 보면 바로 정신 차릴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좀비 같은 소리 하지마.”


 은우와 손장난을 치던 빈이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다. 며칠 전, 마트에서 마지막 남은 통조림을 양보하던 아저씨가 주절주절 해줬던 얘기였다. 무슨 소설을 써도 참 장황하게 쓰네.. 같은 생각을 하며 멍하게 설명충 아저씨의 일장연설을 들었었다. 그 후로 은우는 종종 그 얘기를 꺼냈다. 내가 좀비가 되면 어쩌구, 니가 좀비가 된다면 저쩌구… 그때마다 빈은 인상을 한껏 쓰며 은우를 나무랐다.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제법 진지하게 다그치는 빈 때문에 은우는 언제나처럼 배시시 웃으며 알았어, 대답했다.


“근데 빈아.”

“왜.”

“좀비 돼도 나 사랑해 줄 거지?”

“아, 하지말라고오~”


 빈의 팔꿈치로 명치를 맞고 나서야 은우는 장난을 멈췄다. 어윽, 근데 빈아, 진짜 아푸다. 그래도 어헝헝 웃는 실없는 차은우 때문에 빈도 뾰로통한 표정을 풀고 은우의 가슴께를 살살 어루만졌다. 자기, 1절만 해애. 다음엔 못 웃을 거야. 말투는 애교스러운데 뜻은 살벌한 그런 말을 하면서.


 사위가 조용했다. 금요일 저녁의 대학로인데도 창 너머 거리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그렇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건 대학로 어귀에 위치한 은우의 자취방에서 지낸 지 딱 그 정도 됐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 아포칼립스 어쩌구 짬뽕된 세상이긴 해도 은우와 빈은 작게 나마 가진 안정에 기대어 나름대로 괜찮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취방 옆에 있는 마트 재고가 똑 떨어지고 근방의 편의점마저 재고가 바닥을 치기 전까진.


“다 챙겼어?”

“응.”

“가자.”


 먹고 죽은 좀비, 아니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은우와 빈은 다른 안정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일단 먹고 보자. 스물하나 청년 둘이 굶은 지 하루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3.


 기세 좋게 자취방에서 나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둘은 고비를 맞이했다. 편의점 창고에 꽤 많은 식량들이 있어 막 좋아하던 참이었다. 물건들을 잔뜩 쓸어 담고 문을 열자마자 구석에서 머리를 박고 있던 좀비가 튀어나왔다. 빈을 향해 달려오는 좀비를 막아낸 은우가 비명을 지른 건 순식간이었다. 빈이 가방에 있던 망치로 좀비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지만 이미 은우의 팔에선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은우의 팔을 붙잡은 빈이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렸다. 은우의 표정보다 빈의 표정이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가.”

“가방, 가방에 붕대 있어..”

“빈아, 가.”

“일단.. 지혈, 지혈부터..”

“문빈.”

“가라는 소리 한번만 더 하면 나한테 먼저 죽는 수가 있어.”

“빈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감은 빈이 뾰족한 말로 은우의 입을 막았다. 빈아, 제발... 은우의 부름을 빈은 끝까지 못 들은 체 했다. 어떡하지. 어디라도 갈세라 은우의 손을 꼭 잡은 빈이 잠시 고민하더니 지체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집.”


 문이랑 창문이랑 다 꼭 잠그고 거기서 있어. 다른 사람 피해 주지 말고 그냥 우리 거기서 있자. 빈이 은우의 손을 이끌며 걸었다.


다친 은우를 이끌고 기어코 자취방으로 돌아 온 빈이 꼼꼼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혹시라도 도망 갈 생각하면 나도 그냥 콱 뛰어내릴 테니까 허튼 짓 하지마.”


 2층이라 어차피 안 죽어…. 은우가 끙끙대는 와중에도 딴지를 걸었다. 빈이 은우를 슬쩍 흘겨보다가 넥타이를 가져와 저와 은우의 손목을 꽁꽁 묶었다. 은우가 장난스레 말을 이어가던 것도 잠시였다. 곧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벽에 기대어 끙끙대던 은우가 마치 녹음된 테이프처럼 ‘제발.. 제발 빈아.. 제발..’ 이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빈은 은우의 중얼거림을 모른 척 했다. 이게 우리의 끝일 리가 없어. 빈이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며 은우의 땀을 제 손으로 훔쳐냈다.


“은우야.”

“으.. 윽..”

“우리 바다 보러 가자. 보니까 못 갈 것도 없겠던데. 우리가 너무 쫄보였어. 어떻게 여기서 육개월이나 버텼는지 몰라.”

“비... 빈아...”

“차 한 대만 구하면 인천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지.”

“으으...”

“내일 당장 차 구하러 가자.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가.... “

“…”

“가아... 문빈.. 제발...”


 빈은 대답 없이 은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끙끙 소리를 내며 몸을 떨던 은우가 잠잠해졌다. 빈은 은우의 잠이 어쩌면 마지막 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곱게 감긴 예쁜 눈에 짧게 입을 맞춘 빈이 은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할래. 빈도 은우를 따라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빈은 혼자였다. 어느 정도 직감은 하고 있었다. 빈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마 은우도 빈이 저를 찾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니가 좀비 돼도 나 보면 정신 차릴 거라며. 나보고 계속 사랑해 달라며. 있어야 해주지 나쁜 새끼야. 빈은 코를 훌쩍이며 목덜미를 몇 번 찹찹, 소리 나게 내리쳤다. 은우를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4.


“은우야...?”


유리문 너머의 좁은 상가 안에서 무언가가 느릿느릿 공간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스름한 새벽이라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빈은 단박에 은우임을 알아보았다. 자취방에서 마지막으로 본 은우의 차림새와 다르긴 했지만 작년에 같이 맞췄던 커플티에 빈이 골라줬던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게 틀림없이 은우였다. 빈이 은우를 찾지 못하도록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겠지만 몰라 볼 수가 없었다.

 빈의 목소리를 들은 은우가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유리문 하나를 두고 좁혀지는 거리에 빈은 순간적으로 주춤했지만 다시 문 앞에 멈춰 선 채 은우를 불렀다.

 

“은우야..”


 그 소리에 은우가 갑자기 유리문에 몸을 쿵쿵 들이받기 시작했다. 쿵쿵!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흔들렸지만 안에서 잠긴 탓에 열리지는 않았다.


“하지마! 은우야 다쳐! 하지마아…”


 빈을 알아볼 리가 없는 은우가 계속해서 쿵쿵 몸을 들이받다가 머리를 찧다가 했다. 아무리 사람이 아니게 됐다 한들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쳐, 하지마 은우야. 은우야아… 빈은 그저 유리문에 손을 댄 채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빈의 애처로운 부름에 머리를 쿵쿵 찧던 은우가 서서히 행동을 멈추고 빈을 쳐다 보았다. 손이라도 닿을까 연신 유리문을 쓸어 내리며 은우를 부르는 빈을, 은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 보았다. 빈의 등 뒤로 트기 시작한 동이 은우가 있는 상가 안까지 빛을 비추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빈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방울방울 빛을 냈다. 은우의 흐릿한 눈동자에도 반짝이는 눈물이 비춰졌다. 은우가 촉촉히 젖은 빈의 눈을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누….”

“은우야… 흡… 차은우…”

“눈…”


 빈의 손바닥 위로 은우의 손바닥이 나란히 올라왔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둘의 손이 거울처럼 맞닿았다. 은우는 분명 빈을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눈물을 훔친 빈이 뭔가 다른 낌새에 은우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은우야, 나 보고 있지? 그런 거지? 울컥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전부 참을 순 없어서 빈은 흐느끼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나야, 빈이. 흑.. 문비인…”

“눈…물…”

“어…?”


 은우가 손을 들어 유리문을 쓸어 내렸다. 마치 빈의 눈물을 닦아 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때 빈의 뒤로 어기적 어기적 다가오는 무언가가 저멀리 보였다. 은우가 낌새를 알아 차리고 다시 문에 몸을 쿵쿵 들이받기 시작했다.


“왜! 왜그래! 다쳐..!”

“뒤… 뒤…”


 당황한 빈이 은우의 손짓에 뒤를 돌아보자 느릿하게 움직이는 좀비 더미가 보였다. 씨발 뭐야 저게. 아마 빈과 은우의 소란에 근처에 있던 좀비들이 떼로 몰려온 듯했다.


“도망… 도…”

“아씨, 위에!! 위에 잠금 장치!! 저거 돌려서 열어!! 빨리!!!”

 

 다급해진 빈이 팔을 뻗어 잠금 장치가 있는 곳을 마구 두드렸다. 어… 어어…. 굼 뜬 은우가 버벅 대자 빈이 ‘빨리!! 아씨 차은우 미친! 야!’ 를 반복하며 재촉했다. 이대로면 십초 안에 은우와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차은우한테 물리고 싶었는데.. 생각한 빈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끼익, 유리문이 열리고 빈의 몸이 휘청대며 뒤로 넘어갔다.


“예쁘…니… 따라 와…”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표정을 한 은우가 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살아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호칭에 빈이 당황한 얼굴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무슨 좀비가.. 왜이래..? 근데.. 좀 귀엽다..? 아 이런 말 하지마까? 빈은 벅찬 마음을 숨기고서 은우가 이끄는 대로 바삐 움직였다.

빈의 손을 잡고 상가 뒤편으로 다급하게 도망친 은우가 낡은 캐비닛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차.. 지하에..”


 언제 봐 두었는지 빈의 손에 차 키를 쥐어준 은우가 지하에 주차되어 있는 구형 아반떼 앞까지 빈을 데리고 갔다. 기름도 거의 가득 차 있어서 당분간 걱정은 없겠다 싶었다. 빈이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달리다 해가 질 때쯤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웠다.


“그래서. 너.. 괜찮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몰골이긴 했지만 빈은 언젠가 마트에서 만난 아저씨의 얘기가 진짜 있는 얘기구나, 생각했다. 희뿌연 색의 눈동자이긴 해도 은우는 정확히 빈을 보고 있었다. 어눌하긴 해도 빈에게 말을 걸고 대답을 했다. 빈을 해치지 않고 구해줬다.


“나.. 알아 보겠어?”

“예쁘… 니…”


 은우는 모든 기억을 잃은 듯 했다. 그래도, 빈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것을 보아 죽어서도 취향 하나는 대쪽 같은 듯했다. 재탄생 아닌 재탄생 이후 어찌 보면 초면인데, 초면부터 예쁘니 어쩌구 하는 게.. 이거 좀비식 플러팅인가? 귀엽네… 은우 몰래 웃은 빈이 은우는 모르는, 이젠 빈만 기억하는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 갔다. 고등학교 짝꿍 시절부터 같은 과 CC까지.


“그래서 내가 너 찾으러 간 거야..”


 잠자코 빈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은우가 살짝 울먹거리는 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통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눈 앞의 남자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자꾸 저를 보며 울먹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애처로워 보일 뿐이었다. 이제 나 혼자 두지마, 그렇게 말하며 은우의 싸늘한 손을 잡는 빈에 은우가 어.. 어…. 뚝딱 대며 대답했다. 은우의 얼빠진 모습에 빈이 씨익 웃었다. 인간이든 좀비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좀비는 좀비, 차은우는 차은우. 뭐가 됐든 간에 다시 만났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5.


 빈과 은우가 다시 함께한 지 석달 쯤, 그리고 세종으로 향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갈 즈음, 빈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며칠 전부터 미열이 오르더니 이제 온몸 구석구석이 전부 쑤시고 아팠다. 그래도 가던 길은 가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운전대를 잡더니 결국에는 열이 펄펄 끓어 옴짝달싹을 못하게 되었다. 세종으로 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살려고. 여기저기 들은 바로는 세종에 가장 많은 생존자들이 모여 있어 나름대로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벌써 그런 식으로 몇 군데를 들렀지만 죄다 허탕이었기에 둘은 반신반의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다시 험난한 길에 올랐다. 그런 와중에 빈이 탈이 난 것이었다.

 결국 평택에 차를 멈춘 둘은 해열제와 감기약이 남아있는 약국을 찾아 나섰다. 빈과 같은 사람을 만나도 위험했고, 은우와 같은 좀비를 마주쳐도 위험했다. 은우는 뒷좌석에 빈을 눕혀놓고 담요로 잘 가린 뒤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얼른 뛰어갔다. 약국은 텅텅 비어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감기약 하나 나오지 않았다. 지체 않고 차로 돌아온 은우가 쌕쌕 숨을 몰아 쉬는 빈을 확인한 뒤 서둘러 다른 약국을 찾아 헤맸다.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약국이 보여 들어가자 이미 좀비로 변한 약사와 직원이 약국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약국은 챙길만한 약이 꽤 있었다. 좀비들의 눈치를 슬쩍 본 은우가 조제실 안 쪽의 창고로 들어가 일부러 집기들을 바닥과 벽으로 내던졌다. 소리를 듣고 가까이 다가온 좀비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은우는 재빨리 창고문을 닫고 갖고 온 가방에 약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해열제와 감기약, 그리고 다른 잡다한 약까지 잔뜩 담은 은우가 약국을 나와 차 손잡이를 막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너 뭐야.”


은우의 목에 날카로운 칼이 겨누어졌다. 은우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천천히 들었다. 언제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모를 남자가 금방이라도 은우를 찌를듯 경계하고 있었다.


“차 안에.. 감기.. 아픈 사람 있어..”


은우가 입을 떼자 남자의 표정이 더 오묘하게 바뀌었다. 이내 칼을 거둔 남자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급히 뒷좌석 문을 연 은우가 빈의 입에 해열제와 감기약을 물려주었다. 빈아.. 삼켜. 빈아. 빈아.. 은우가 안절부절 하는 사이 뒤에서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린 건 아니고?”

“아니야. 밥, 못 먹고.. 추웠어..”


은우가 그제서야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남자였다. 남자가 차 안의 빈을 슬쩍 쳐다 보고선 쯧, 혀 차는 소리를 했다. 주변을 두리번대던 남자가 잠시 기다리란 말을 하고 건너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삼십분 안에 해가 질 것 같았다. 해가 지면 더 추워질 거고 좀비들이 몰려 나올 것이다. 은우는 남자를 기다릴 틈이 없었다. 빈이 안전한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운전석에 앉은 은우가 시동을 걸었다.


“야!”


좀 전의 남자가 불쑥 튀어나와 차를 가로 막고 섰다. 은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내밀었다.


“가야 돼.”


아랑곳 않고 운전석 옆으로 걸어온 남자의 뒤로 또 다른 사람이 보였다.


“내가 너 도와주려..”

“차은우...?”


또 다른 낯선 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6.


 빈은 낯선 방 안에서 눈을 떴다. 간만에 가뿐한 몸이었다. 처음 보는 천장이긴 했지만 워낙에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온 탓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단지 옆에 은우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빈이 오래 누워있던 탓에 살짝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잠시 앉아 있었다.


“일어났어?”


 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빈이 말을 걸다 말고 아! 감탄사를 뱉어냈다.


“윤솔이 형? 형 맞죠?”

“응, 오랜만이다. 빈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빈이 한달음에 달려가 윤솔을 안았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나서는 아는 사람을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떻게..”

“시내에 나갔는데 너랑 은우가 있더라. 은우가 너 많이 아프다고 해서 데려왔지. 이제 몸은 괜찮아?”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 본 윤솔이 빈은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너 하루 꼬박 잤어. 뭐 좀 먹을래? 식탁 위로 금방 따뜻한 죽이 올라 왔다. 눈을 휘둥그레 뜬 빈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그런 빈의 모습을 보고 윤솔이 풋 웃었다.


“은우는 애들하고 잠시 나갔어. 아마 정원에서 놀고 있을 거야.”


 은우의 얘기에 깜짝 놀란 빈이, 은우가요..? 묻자 윤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초지종은 은우한테 대충 들었어. 좀 놀랍긴 한데.. 아무튼 둘이 고생 많았겠더라. 너희만 괜찮으면 여기서 지내도 돼.”


 윤솔이 지내는 곳은 스무명 남짓한 생존자 캠프라고 했다. 평택 외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한 이곳은 마치 작은 요새 같았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앞 뒤로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듯한 담이 성인 키는 족히 넘어갈 만큼 높았다. 3층으로 이루어진 전원 주택에는 태양광 판넬이 크게 설치되어 있었다. 주택과 정원의 규모를 보아 주인이 꽤나 돈이 있던 양반이었겠구나 싶었다. 현재는 집주인의 가족 중 아들 한명과 그의 친구들 몇, 그리고 그들이 구해온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캠프가 되었다고 했다. 윤솔은 집주인의 아들을 ‘대장’이라고 불렀다. 다들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아침부터 대장이랑 몇 명은 외출 중인데 아마 내일 쯤 돌아올 거야.”


 그러면서, 대장 좋은 사람이야 덧붙여 얘기하는 윤솔이었다. 빈은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었다. 윤솔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금자리였다. 어쩌면 굳이 세종까지 모험을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었다.


“고마워요, 형. 도와주셔서.”

“내가 뭘.”


 빈이 멀건 죽을 모두 비웠을 때, 위에서부터 우당탕 내려오는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 둘이었다.


“어? 너희 정원에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 아까 좀비 형이랑 옥상 가서 놀았어.”


 좀비 형이라는 단어에 빈이 마시던 물을 풉, 하고 뱉을 뻔 했다. 컥컥 거리며 목을 가다듬자 꼬마들이 빈을 보고, 어? 좀비 형 애인 일어났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했다. 좀비 형 애인… 빈은 편견 없는 꼬마들에게 적잖이 당황하는 중이었다. 어.. 응.. 안녕..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빈이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좀비 형 아직 옥상에 있어요!”

“좀비 형이 아니라 은우 형이라고 하랬지, 너희.”


 빈보다 더 당황한 듯한 윤솔이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아이들은 헤헤 웃기만 할 뿐이었다. 다녀올래? 빈이 비운 죽 그릇을 치우며 윤솔이 물었다. 고마워요, 형. 빈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은우가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잡동사니가 군데군데 널브러진 옥상을 은우가 느릿느릿 치우고 있었다. 무거운 옥상문을 열고 들어선 빈을 본 은우가 깜짝 놀라 부리나케 달려왔다. 괜찮아..? 물은 은우가 엉거주춤하게 빈을 안았다. 응.. 작게 대답한 빈도 은우의 허리춤에 두 팔을 감고 어깨에 얼굴을 폭, 묻었다. 서늘한 은우의 체온이 빈의 따뜻한 이마에 느껴졌다.


“다행이야.”

“응.. 이제 안 아플게.”

“아파도 돼.. 아니.. 아프지 마. 아 근데 아파도..”


 또 다시 뚝딱대는 은우를 보고 빈이 작게 웃었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둘은 멀리 노을 지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빈의 까만 머리칼이 붉은 노을에 비춰 검붉게 반짝였다. 은우가 빈의 동그란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빈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해.”

“….”

“여긴 너무 평화로워.”


 정원 한 켠에 자리한 텃밭에서 무언가 잔뜩 뜯어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빈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밖이 어떤 혼돈 속인지 무감각해질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게 퍽 안심이 되기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불안을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은우야.”

“응.”

“우리 그냥 여기 있을까?”

“난.. 너만 있으면.. 돼.”


 은우의 엉뚱한 대답에 빈이 실소를 터뜨리다 말고 볼에 쪽, 입을 맞추었다. 어으.. 아… 당황한 은우가 목석같이 서서 빈을 바라보았다. 볼에 닿았다 떨어진 입술이 무척 따뜻했다. 따뜻한 빈의 입술이 지는 해보다도 더 붉게 물든 것 같았다. 달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하면서도 은우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차은우. 무슨 생각 해?”

“어… 입술…”

“응?”

“키스.. 하고 싶어.”


 그럼, 해. 빈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차가운 입술이 따뜻한 입술에 천천히 닿았다. 잠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입술만 겹치고 있었다. 조금 덜 차갑게, 조금 덜 뜨겁게. 빈의 얼굴이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츄웁, 은우와 빈의 입술이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소리를 내다 이내 떨어졌다. 가만히 눈을 맞추다 다시 촉, 소리와 함께 서로를 깊게 끌어 안았다. 빈은 지금의 고요함을 지키고 싶었다. 잠시 뿐일지라도 언제 다시 소란스러워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나날들이기 때문이었다.

은우를 다시 만난 뒤로 소란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떠나고, 또 떠나도 흔적만 남아있을 뿐 실체가 없었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는 살만한 곳이 못 되었다. 그래서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았다. 그렇게 우연찮게 흘러 들어온 곳이지만, 조금 쉬었다 가도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너만 있으면 돼.”


 빈이 은우를 안은 팔에 힘을 실었다. 빈틈 없이 맞닿은 가슴에서 빈의 심장박동이 쿵쿵 울려 은우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은우가 눈을 깜빡였다. 깜빡일 때 마다 산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빛이 은우의 눈동자에 담겼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빛인데도 눈이 부시고 가슴이 벅찼다. 빈을 볼 때도 그랬다. 감동할 만큼 니가 나를 사랑하는 거지. 빈은 그게 감동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은우는 더 사랑하고 싶었다. 은우가 빈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상상을 했다. 은우의 눈동자가 조금씩 짙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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