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

2020 겨울호
작성자
망간
작성일
2021-01-16 22:52
조회
57

 

 

 

 

 

 

 

 

 

은우야, 나는.

네가 죽도록 힘들고, 죽도록 아팠으면 좋겠어.

 

 

 

 

 

 

 

 

액정을 내려다봄과 동시에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대로 집어다 내동댕이라도 치고 싶은 욕구를 애써 억눌러가며 화면을 노려보다가, 눈치라도 주듯 제 쪽을 힐끔대는 눈동자들의 압박에 못이겨 전화를 받아들었다.

 

 

 

“…더 이상은 이제 힘들어요. 지난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별 소득 없이 통화가 끝났다. 제법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통화기록을 보니 기껏해야 5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지독한 통증이 이는 관자놀이를 펜 끝 누름단추로 꾹꾹 눌러대다 계좌 잔고를 확인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쌓여버린 아버지의 부채를 갚기에는 충분치 못한 돈이었다. 끓어오르는 울화가 얼굴로 번져갈 때 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지만 혹시…차은우 작가님, 맞으세요?”

 

 

대학 신입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학생이었다. 제법 커다란 가방을 한 쪽에 매고는 조심스레 물어온다. 굳어버린 입가를 억지로 끌어올려 웃는 낯을 만들어낸다. 2년 전에 드라마화 되었던 작품을 보고 팬이 되었다던 그녀는, 싸인과 의례적인 인사를 마치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사라졌다. 차기작도 기대 중이라는 말과 함께.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지자 고개를 돌려 텅 빈 노트북 화면을 마주했다. 통화내용을 듣지는 않았을까? 혹여나 인터넷에 퍼뜨리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담배 한 개비가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그렇게 답답하면 피워.”

 

 

갑작스레 귓가에 훗 들어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무색하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각자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가늘고 높은, 미성숙한 소년의 목소리. 또다. 집요하게 나를 따라붙는 환청, 또는 환각. 아무리 약을 먹어도 사라질 기미 없이 근처를 서성이는 것.

 

 

 

 

 

 

*

 

 

 

 

 

 

 

“은우씨 요즘 이상하다.”

 

 

그 말에야 문득 제정신이 돌아왔다. 멍한 얼굴로 말을 더듬는 내 모습을 보며 미연이 살풋 웃었다. 글이 잘 안 풀려? 부드럽게 건네는 걱정 어린 말투에 숨이 턱 막혔다. 작업공간에는 발을 들여놓는 일이 좀처럼 없기 때문에, 몇 달 째 비워져있는 하얗고 깨끗한 화면은 미연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습관처럼 내뱉었을 말에 덜컥 급소를 찔려 헛기침이 나왔다. 허나 더욱 불편한 것은 이제부터였다. 아버지의 빚 얘기를 해야 했다. 선뜻 나서 손을 빌려줄 미연임을 알고 있음에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대는 나를 주시하던 미연이 팔을 뻗어 손등을 감싸쥔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해줘. 그러려고 우리가 부부가 된 거잖아. 아버님 일이야?”

 

 

 

미연은 눈치가 빠르고 똑똑했다.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미팅 때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사이였다. 소설 속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놓기라도 한 듯 능숙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녀 앞에서는 무언가를 숨길 새도 없이 간파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 챘었다. 바꿔 말하자면, 아무리 찾아보아도 숨을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그것이 편안하고, 때로는 숨이 막혔다. 

 

나는 차마 미연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위아래로 미약하게 까딱거렸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고 머리가 비상했지만 이 초라한 남자 앞에서는 가끔씩 아둔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법 큰 액수를 선뜻 약속해왔다.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함이 마땅한데, 나는 또 수치심에 얼굴이 벌개져 미연이 내민 손을 못본 체 하고 만다.

 

 

 

“혹시 병원 바꾸고 싶으면 말하고. 계속 잠도 잘 못 자는 것 같더라.”

“…아니, 아니야. 많이 나아졌어.”

“그래?”

 

 

 

미연이 테이블 위로 상체를 숙이며 웃는 얼굴로 가까이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뒤로 언뜻 사람의 인영이 스쳐지나갔다. 곧바로 기둥 뒤로 사라진 그림자 탓에 실루엣 정도밖에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나를 감시하기라도 하듯이.

 

 

 

 

 

 

식사를 마치고 밖을 나서니 예고도 없던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거리가, 어느새 소복이 쌓인 눈과 수많은 흙발자국으로 뒤덮여있었다. 이런 날은 질색이었다. 대번 예민해진 나를 알아챈 미연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며 팔을 끌었다.

 

 

 

“내일 동창 결혼식에 간다고 했지?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해. 은우씨.”

“일 때문인 걸, 뭐. 신경 쓰지 마.”

“방송일이 이렇다니까, 휴일이고 뭐고. 그래도 결혼하고 처음으로 자기 고등학교 때 친구들 만날 기회였는데, 아쉽네.”

“만나봤자 시끄럽고 귀찮게 굴기만 했을 거야. 피곤하기만 할 테니 가지 않는 편이 나아.”

“……내일 운전 조심하고. 많이 미끄럽겠다.”

 

 

 

미연을 그 뒤 내내 말이 없었다. 매서운 눈발 탓에 창밖은 온통 희기만 했다. 와이퍼가 왕복운동을 하는 순간, 시야에 갑자기 차 한 대가 끼어들었다. 저속운전 중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놀란 미연이 숨을 고르고 조수석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미연의 시선을 느꼈으나, 참을 새도 없이 속이 울렁거렸다. 시고 불쾌한 냄새가 훅 올라오며, 그대로 그녀의 차 안에 방금 전 욱여넣은 코스요리를 토해버렸다. 한번 거칠어진 숨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던 탓에 결국 미연이 갓길에 차를 댔다. 나는 한참 후에야 간신히 ‘이제부터는 걸어서 돌아가겠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미연이 떠난 뒤에도 한참을 추위 속에 웅크려있었다. 나는 추위를 지독하게 많이 타는 몸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 모습을 그가 봤다면 놀라 제 겉옷을 덮어주었을 것이다. 그는 몸에 열이 많아 힘들다며 한겨울에도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 내 손이 곱아들 때면 감싸고 입김을 불어넣어 주고는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누구였지.

 

누구였었지, 이 깊은 겨울에 온기를 전해주던 사람은.

 

 

 

 

 

 

 

 

 

 

 

 

 

 

 

 

 

 

 

 

붙임성이 좋은 성진의 성격처럼 결혼식장은 쾌활한 분위기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어딘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들도 더러 다가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적당히 화답하며 민석의 무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야, 우리 작가님 아니야!”

“은우야, 어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 결혼식 때도 안 부르고. 나는 나중에 기사 보고 기절초풍했다.”

“초대 좀 해주지, 우리도 형수님 실물 궁금한데. 어째, 오늘은 같이 안 오셨냐?”

“미연씨는 오늘 촬영이 있어서 일찍 지방 내려갔어.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이랑 친척 몇 분만 간소하게 모셨고.”

 

 

여기저기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쉽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주병을 기울이는 민석에게 운전을 해야 한다며 거절의사를 표하고 대신 물 잔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동창끼리 모이는 자리여서인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대화의 화제는 성진이었다가, 직장이었다가 가정이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기도 했다. 

 

 

“너는 어쩜 오랜만에 보는데도 하나도 안 변했다. 지난번에 TV 나오는 거 보고 단번에 알아봤잖아.”

“아, 그거!! 나도 봤다. 연락하려고 했더니 너 그새 번호 바뀌었더라, 섭섭하게.”

“장난전화가 계속 걸려와서… 미안하다.”

“우리 마누라한테 이거 내 동창이라고 말하는데 도저히 믿어줘야지 말이야. 친구는 저렇게 잘생겼는데 당신은 대체 뭐가 문제냐고 등짝만 얻어맞았다, 하하.”

“하긴, 형수님이 배우라 그렇지 은우 이놈도 어릴 때부터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난 지금도 연예인보다 얘가 더 잘생긴 거 같아. 얼굴이 이러니 인터뷰도 잘 들어오고, 그렇지?”

 

 

 

 

“…그냥, 인터뷰는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더러운 수작질일 뿐이야.”

 

 

 

금새 이 분위기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얼결에 이 대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나머지 먼저 자리를 뜨기가 애매해져 고역을 치르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성휘가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학교에 연예인 한다던 남자애 하나 있지 않았나? 몇 반이었지, 기억이 안 나네.”

 

 

이때다 싶어 재킷을 집어 들고 의자를 뒤로 빼니 민석이 왼팔을 덥석 잡아왔다. 둔중해 보이는 몸과 다르게 행동이 날쌨다. “설마 벌써 가려는 거 아니지?” 그 말에 테이블의 시선이 전부 내 쪽으로 쏠렸다. 

 

 

“……아냐, 담배 한 대만 피고 오려고.”

 

 

민석이 샐쭉 웃으며 본인도 재킷을 챙겨 일어섰다. 자기도 한 대 태워야겠다며 기어코 따라나서는 통에 몰래 빠져나가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민석만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흡연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시작했던 탓이다. 결국 네 명이라는 대인원이 함께 밖을 나서야했다. 문을 연 민석이 찬바람에 대번 인상을 구기면서도 기어코 담뱃불을 붙였다. 

 

 

 

“눈 한번 살벌하게도 온다.”

“우리집 쪽은 어제는 맑았는데, 애들 아빠가 거기도 지금 눈 쌓였다고 사진 보내왔더라.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눈 오는 게 마냥 좋았는데. 이제는 운전대 잡을 생각에 한숨부터 난다니까. 나도 나이를 먹었나봐.”

“미정이 너 직장이 대전이라고 했나? 돌아갈 때 진짜 조심해야 돼. 얼마 전에 회사 신입이 출근하면서 앞차를 박았다고 반쯤 울면서 전화를 하더라니까. 사람이 안 다쳤길 망정이지.”

 

 

 

나는 담배고 뭐고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저 따뜻한 실내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민석은 속도 모르고 라이터를 들이대며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다. 

 

 

“너 학생 때도 담배 피는 거 되게 의외였는데, 이제 서른인데도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은우는 워낙 모범생이었잖아, 학생회장도 하고. 나도 쟤 담배 피운다고 했을 때 엄청 놀랐는데. 대체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고 3 정도였나. 누가 피우라고 줬어.”

“누가?”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그냥, 예술가는 원래 다 담배를 피운다면서 구해다줬는데. 누구였지.”

 

 

 

문득 옛날 일들을 떠올리다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얼기설기 억지로 이어붙인 조각보처럼. 그 생각만 하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울렸다.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는 찰나, 대화에 끼지 않고 먼 곳만 응시하던 주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툭 내뱉었다.

 

 

 

“아, 맞다. 왜, 그 갑자기 폭설 왔던 날. 우리 학교 학생 하나 죽었었잖아. 차가 미끄러져서.”

“그랬었나?”

“기억 안 나? 아까 성휘가 말했던 연예인 준비하던 애.”

“아, 맞다, 맞아. 걔! 졸업하기 조금 전에. 딱 이맘때쯤이었던 거 같은데.”

“그러게, 학교 와서는 잠만 자느라 친구도 거의 없고. 이름이 좀 특이했었는데. 문, 문… 뭐더라? 기억나?”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어, 그래도 은우 너랑은 좀 붙어 다니지 않았나?”

“맞아, 딱 수능 전후부터 갑자기 좀 친하게 지냈었던 거 같은데.”

 

 

 

 

 

“……내가?”

 

 

 

 

 

 

 

 

 

그날 꿈에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왔다. 귓불에는 피어싱 자국이 남아있고, 익숙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꿈인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으나 구태여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년이 입은 교복을 나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짙은 남색 마이를 보니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입었던 교복인 듯 했다. 

 

 

 

[-……M.]

 

 

 

꿈속의 나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알파벳 한 글자를 내뱉었다. 이윽고, 앞에 선 남자의 머리가 천천히 내 쪽을 향해 움직였다.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 추운 날씨에 침대가 온통 식은땀에 젖어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속을 게워내어야만 했다. 미연이 곁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묽은 물밖에 나오지 않을 때까지 구토를 하고, 대강 몸을 씻고 밖을 나섰다. 목적지는 본가였으나, 아버지를 만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가 무섭게 집을 나왔다. 대학을 핑계로 자취를 하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좁은 고시원에 웅크려 글을 썼다. 돈이 급했기에 잘 팔릴 법한 삼류 연애소설을 쥐어짜냈다. 내가 ‘쓰레기’라고 명명한 그 글로 입에 풀칠을 시작했다. 두 번째 글은,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 평단의 평가는 처참했을지언정 그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넉넉하게 선인세를 챙길 수도 있었고, 수익비율도 보다 좋아졌다. 비록 번 돈의 대부분의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로 사라졌을지라도.

 

 

 

…한 때는 제임스 조이스를 동경했지. 한 문장을 위해 며칠이고 제 정수를 뿜어내는 열정과 집착을 예술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정작 나는 무엇이 되었는가. 예술혼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저 팔리기 위한 쓰레기만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잘난 체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내가 파는 것은 글이 아닌 혼이고 벌어들이는 것은 지폐가 아닌 오물에 불과하다.

 

 

언제였지.

나는 언제부터 내 글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었는가.

 

 

 

 

언제였던가.

삶에 무엇인가가 결핍되기 시작한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글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에 대해서, 그림처럼 펼쳐지는 묘사에 대해서, 누군가의 열정과 기쁨과 절망과 세계에 대해서 말하기가 점점 꺼려졌다. 내가 그려왔던 나의 모습과도 점점 멀어져갔다. 그렇게 나를 소진시키다보니, 이제는 단 한 글자도 쥐어짜낼 수 없는 비렁뱅이가 되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이 잠겨있지 않은 덕에 내부로는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교실은 각자 문이 잠겨있었기에 창문 너머로 변해버린 교실 풍경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선거철이 아닌 이상에야 학교에 들어올 일이 없다보니, 3년간 하루 12시간 이상을 붙어있던 곳이라 할지라도 낯설게 느껴져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마치 어제 본 풍경처럼 익숙했다. 마치 늘 이 곳을 그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책걸상은 내가 학생 때 쓰던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순간, 마치 누군가가 책상 위로 팔을 올리고 잠들어있는 것만 같은 인영이 보였다. 흐릿하게만 보이던 인영이 점차 또렷해졌다. 분명 이른 아침일 터인데, 교실 창 너머 보이는 바깥은 어느새 어둑하다. 책상에 엎드린 어린 소년에게 누군가 다가선다. 짙은 남색 교복 마이와 선명하게 수놓인 이름표, 차은우. 저것은 과거의 나다.

 

 

나는 잠든 소년의 앞 책상 의자를 끌어다가 소년을 바라보며 앉는다. 살살 그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손가락 새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위로 입술을 내린다. 이윽고 잠든 소년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마주보고 웃는다. 소년의 눈동자는 아주 까맣고 반짝거려서, 예쁜 구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양 뺨을 감싸쥐고 둥근 코 끝에 입을 맞춘다. 그날 있었던 싱거운 일들을 얘기하고, 손을 잡고 둘 뿐인 교실을 빠져나온다. 

 

 

 

 

사랑하는 나의 M, 나의 빈.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었을까? 생각만으로 가슴이 저릿해지는 그 이름을.

 

 

 

 

 

 

 

 

 

-우리 학교 학생 하나 죽었었잖아. 

 

 

 

 

 

 

 

나는 괴롭다. 숨을 쉬는 것도, 걸음을 걷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겐 모든 것이 괴롭다.

 

 

 

 

사업실패에서 기인한 아버지의 노름벽이나 이미 한참 전에 짧아졌는데도 여전히 입고 다닐 수밖에 없던 교복바지, 곰팡이가 슬어버린 한쪽 벽 같은 것들. 지독하게 수치스러워했던 것들. 그런 것들은 그와 함께 할 때면 그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는 노을의 아름다움도, 꽃의 향기도 그 빛을 잃었다. 주위의 모든 것은 귀하건 귀하지 않건, 아름답건 추하건 모두 같아졌다. 첫사랑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내 숨은 오로지 그의 것이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습작노트를 그에게서 건네받았던 날이 내게는 생일보다 더 귀한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아이. 나중에야 반 아이들이 이따금 말하곤 하던, 옆 반의 연예인 지망생이 그 애였다는 걸 알았다. 그 애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졸라대었고, 나는 그날 중간부터 막혀 도저히 뒷이야기를 쓸 수 없던 소설을 끝마칠 수 있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그 다음은?’하고 물으면 이상하게도 그 전까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던 이야기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수능을 막 마친 뒤였고, 그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면접관 뺨만 후려치지 않으면 합격일 거라는 담임의 말을 듣고 조금 늘어져있는 상태였다. 3년간 가장 한가하면서도, 가장 바쁘고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그 애가 교무실에서 담배를 훔쳐왔다. ‘원래 예술가들은 다 담배를 핀대.’ 아무리 곧 성인이 될 것이라지만, 썩 좋은 권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담뱃불을 붙일 때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던 우리는 첫 일탈을 멋지게 실패했고, 담배 대신 입술을 맞대었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그가 둥글게 눈을 휘며 웃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두 달, 그가 죽었다. 오롯이 아름다운 나의 달.

 

 

 

누구조차 예견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폭설과, 제어권을 잃고 빙판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던 승용차 한 대. 몸이 잽싸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였지만,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차를 피해 달리기에 겨울의 밤은 어둡고 질척거렸다. 

 

 

 

나는 고작 두 골목 뒤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렸다. 차가운 손바닥을 커피잔에 가져다 대어 녹이며, 그를 향한 벅찬 사랑의 말을 골라내고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된다면 같이 사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으려 했다. 이제 그만 나가주었으면 한다는 점원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받지 않는 전화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걸어대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오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노을의 아름다움도, 꽃의 향기도 무엇하나 알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그만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내가 그를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를 두고 삶을 택한 내가.

 

 

 

나는 그를 만들어냈다. 기억에서는 지우는 대신, 그의 그림자를 만들어 나를 감시하도록 했다. 혹시라도 내가 행복해지지 않도록. 끝도 없이 불행하고 괴롭고 슬프도록. 그가 단 한번도 내뱉은 적 없는 말에 그의 목소리를 덧입혀가며.

 

 

 

 

 

 

 

애끓는 사랑은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를 잃고 나는 다시 아버지가 두려워졌고, 내 옷이 낡고 헤지는 것이 두려워졌고, 벽지에 곰팡이가 스며드는 것이 두려워졌다. 형편없는 겁쟁이가 되어버렸고, 소신 없는 글쟁이가 되었으며, 겨우 얻은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젊은 날의 열의조차 돈 몇 푼에 팔아버렸다. 모든 웃음은 꾸며낸 것이며 모든 눈물조차 거짓이었다. 

 

 

 

 

 

 

 

 

그 애를 잃고, 나는 한 자의 글도 쓰지 못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은 그저 소설이 아닌 문장의 나열일 뿐이었다. 

 

 

 

 

 

 

 

 

 

 

 

 

 

꿈인 줄도 몰랐던 꿈에서 눈을 뜨니 미연이 다녀간 듯 집안이 정돈되어 있었다. 식탁에는 이혼신청서와 함께 미연의 필체로 쓰인 쪽지가 놓여있었다. 미연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사랑해 속이 곪았다. 나는 미연의 뜻을 존중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세수를 한 뒤 작업실에 들어갔다. 타자소리와 함께 빈 화면 위로 글자가 아로새겨지기 시작했다.

 

 

 

 

 

 

 

Dear M.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야 당신에게 편지를 띄우는 제가 원망스럽지는 않은가요.

 

저는, 이따금 당신이 이렇게 물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고는 합니다. 

 

 

잘 지냈어?

정말 잘 지냈어?

어떻게 잘 지낼 수가 있어, 내가 없는데.

 

 

당신이 말한 적 없는 말들이 당신의 목소리로 몇 년이고 귓가를 맴돌아, 나는 마음 놓고 웃은 적도 울음을 터뜨린 적도 없습니다.

당신이 없이도 내게 삶이 허락된다는 것을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없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아름다운 당신.

당신을 아주 아주 오래오래 사랑할 줄 알았는데.

 

 

이제 나는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합니다.

사실은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발을 잘라서라도 곁에 매어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지난 십수 년간 후회로 가득한 생 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지워내어도, 그것이 변하지 않는 하나의 명제임을 압니다.

 

 

언젠가 당신을 M이라 부르겠다고 했었지요.

 

 

왜 이름을 부르지 않느냐는 퉁명스러운 질문에, 그저 당신이 내게 너무나도 특별해 남과 같은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M. 

누군가에는 26자의 알파벳 중 하나에 그치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의 이름과 같습니다.

 

모딜리아니, 모차르트, 그리고 당신, 문빈.

 

 

 

사랑하는 나의 M.

이제는 이기적인 나를 떠나 평화로운 안식을 취하기를.

 

 

 

 

 

이 글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전체 0

전체 12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계간은콩 2020 가을호 line up list
계간은콩 | 2020.10.24 | 추천 0 | 조회 431
계간은콩 2020.10.24 0 431
1
계간은콩 2020 겨울호 후기
계간은콩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7
계간은콩 2021.01.16 0 97
2
Maleficent
각설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01
각설 2021.01.16 0 101
3
더 랍스터(The Lobster)
극락행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75
극락행 2021.01.16 0 175
4
첫사랑의 유통기한
나비담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05
나비담 2021.01.16 0 105
5
파도
노예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3
노예 2021.01.16 0 93
6
Once upon a dream
뉴문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6
뉴문 2021.01.16 0 96
7
곰돌이를 부탁해
달문어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3
달문어 2021.01.16 0 93
8
이동민 찾기
| 2021.01.16 | 추천 0 | 조회 101
2021.01.16 0 101
9
그들이 금주를 결심한 이유
따란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7
따란 2021.01.16 0 97
10
청년경찰
땨빈 | 2021.01.16 | 추천 0 | 조회 92
땨빈 2021.01.16 0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