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dream

2020 겨울호
작성자
뉴문
작성일
2021-01-16 23:00
조회
96



***이 글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각색한 글임을 밝힙니다.






  며칠 간 주구장창 비만 추적추적 오는 날씨에 빈은 왜 하필 자신이 여행 올 때만 이러는지 하늘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간신히 물을 피해 도망쳐 온 곳에서 또 물을 마주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안 돌아다닐 자신이 아니었기에 야무지게 우산을 챙겨 다녔다. 여기 사람들은 비가 아무렇지도 않나...? 신사의 나라는 물쯤이야 온몸으로 맞아줘야 하는거야? 공원의 풀도 촉촉히 젖어들어갈 정도로 오는데 현지인들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머리를 감싸지도,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는다. 문빈은 마치 자신만 빗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저기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저와 같은 여행객인지, 쨍한 파란색의 우산을 쓴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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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upon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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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아 코치님 완전 화나셨더라.


너 대회 2주 전까지 안오면 명단에서 빼버리신대.


상황 괜찮아지면 연락 줘. 오전 10:34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다가 곧바로 카톡 어플을 삭제했다. 푹신한 침대에서 잘 자고 일어나자마자 본 게 이거라니. 유심 바꿔서 해외 번호라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깔려있는 메신저 어플을 안 지운 게 실수였다. 지인들이 걱정하는 것도 다 이해가 되는 빈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시작한 수영이 이제는 지긋지긋해지고 있었다. 더 해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평생 이것만 해온 빈에게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닌 게 문제였다.




  날씨는 모처럼 보기 힘든 맑은 날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저녁까지 잠만 잤다. 그런 빈을 일어나게 한 건 배고픔이었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나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야경에 마음을 뺏겼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크기의 달이 물결에 비쳐 제 눈에 들어왔다. 헐 대박. 저 정도면 태양 정도의 밝기 아닌가. 햇빛은 아니지만 닷새 만에 마주한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아졌다. 템즈강을 따라 걷다보니 런던 아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바로 아차했다. 원래는 보조배터리랑 셀카봉을 챙겨 가지고 다녔는데, 오늘은 애초에 배가 고파서 나왔다는 걸 잊어버린 것이었다. 셀카로 어떻게 안 되려나.




  "저기, 사진 찍어드릴까요?"


  "아......네.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와.... 사람이야? 사람이 저렇게 잘생길 수 있나. 혹시 내가 모르는 배우인가? 이름 물어보면 실례일까. 그보다 내가 한국사람인 건 어떻게 알았지. 빈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이쁜 척하는 표정은 좀 그렇고 그냥 인증샷 정도로만 남기려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한 발자국만 옆으로 더 가시면 원 안에 예쁘게 잘 나올 거 같아요."


  "이렇게요?"


  "네. 그리고 웃는 게 예쁘시네요."











  "아까 저희가 서 있던 그 거리의 이름이 에뚜왈, 별이라는 뜻이거든요."


  "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로 뻗은 길이 마치 별모양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




  빈이 내일 아침 비행기라고 했더니 인사하기 전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꺼낸 말이었다. 이름은 차은우. 나이는 본인이랑 동갑.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잘생겼다. 문빈이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건 이것 뿐이었지만, 어제 사진 찍어준 대가로 밥 같이 먹자는 말에 흔쾌히 응했다가 오늘까지도 이렇게 함께 돌아다니고 있다. 혼자 다녀도 상관 없었지만 함께 다닌 덕분에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된 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워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근데 제가 왜 이렇게 뜸들이냐면요,"


  "...네."


  "그 곳에서 뻗어나가는 열두갈래 길보다, 당신이 더 빛나더라고요. 이 얘기가 해주고 싶었어요. 대답 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못하면 제가 후회할 거 같아서, 그래서 한 거예요."




  은우의 말을 듣고 빈은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곳으로 도망쳐 올 때도 마음따라 온 만큼 한번 끝까지 마음이 바라는 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럼요, 혹시 대답 듣고 싶으시면, 저 대회 나가는 거 보러 오실래요?"











  그 뒤로 자그마치 3년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만나서 지지고 볶고 세상에 둘도 없는 커플인 양 불 같이 연애했다.




  "뭐가 문제인지 얘기 좀 해줘 빈아... 내가 들어줄게."




  말하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차은우는 그런 사람이니까.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문빈의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람이 바로 차은우였다. 그런 애한테 자신의 상황을 숨긴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었다. 언제가 됐든 어차피 알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빈은 이번 경우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제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는데 떳떳하게 은우 옆에 바로 설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바란 미래는 어깨 부상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너 때문이야."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 그의 전 애인에 대해 아직도 예민한 척 굴었다.




  "아까 뭔데. 걔를 왜 또 만나는데. 내가 성에 안 차? 뭔가가 부족해?"




  얘기하다보면 얘도 나한테 정 떼겠지. 계속 안심시켜주면서 했던 얘기를 또 꺼내서 반복하는 나 같은 애는 질리다면서, 싫어할 거야. 싫어하면...안되는데.




  그래도 빈은 본인이 사랑받았던 이유가 사라져서 멀어지게 되는 건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은우는 빈의 수영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해주었고, 수영하면서 행복해하는 빈의 모습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 문빈은 그걸 모르지 않았고 가끔씩 불안감이 깊이 자리하면, 본인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불 속에서 몸을 말아 곰곰이 생각해내야 했다. 그 불안감이 찾아오는 기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생각해내는 습관은 자기혐오로 번져갔다.




  처음 한 두 번은 이겨낼만 했다. 이런 저런 말도 안되는 투정도 받아주는 은우였고, 빈이 삐져있으면 맛있는 걸로 배채워주고 하루종일 붙어먹으면서 몸으로도 기분을 풀어주었다. 이곳 저곳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나면 다시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둘이 타지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상기하며 늘 그때처럼 사랑하자고 약속하곤 했다. 넘치는 사랑 속에 살았기에 불안해 할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불안의 불씨는 언제 어디서든 피어날 수 있었다. 그게 하필 문빈이 어깨부상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수영을 더 하면 안 된다는 청천벽력을 들은 날이었고, 은우가 회사 동료이자 전 애인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은 날이었다. 타이밍도 불행의 편이었는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은우의 회사 앞으로 찾아간 빈은 둘이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미안해. 하지만 정말 회사 일이었어. 안 그래도 오늘 앞으로는 부서 통해서 전달하라고 얘기했어."


  "....필요없어. 안 들을거야. 그만해."


  "빈아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거야? 혹시 기분 안 좋은 일 더 있었으면 들어줄게. 응?"


  "아니, 그냥 우리 여기까지 하자. 그게 맞는 거 같아 은우야."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던져 놓고, 집에 와서 목이 쉬도록 울었다. 헤어지자고 한 건 본인인데도 마음이 그게 아니라서 아려왔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은 만큼 은우도 행복하길 바랬다. 그건 본인이 아니어도 가능할 것 같았고 빈은 더 이상 그걸 충족시켜 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빈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있는 꿈. 처음 보지만 어딘가 익숙한 집의 풍경. 자신의 손을 붙잡고 빗과 머리끈을 쥐어주며 머리를 묶어달라고 하는 예쁜 여자 아이. 그리고 아빠가 먼저라며 넥타이를 매달라고 하는....은우. 행복한 꿈이네.




  "근데... 나 둘다 할 줄 모르는데..."


  "엥? 아빠 머리 높게 묶는 거 잘하잖아 그거 해달라는 건데?"


  "은빈아 오늘 빈 아빠 피곤한가보다 우리가 하고 갈까? 빈아 들어가서 더 자."




  빈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은우 손에 이끌려 또 새롭지만 느낌이 익숙한 방에 왔다. 아마도, 우리의 방인듯 했다.




  은우는 빈을 침대에 눕혀주며 이마에 뽀뽀를 한 뒤 은빈이를 잘 데려다주고 다녀오겠다는 말을 했다. 저 멀리 현관에서는 '아빠 내일은 머리 꼭 묶어줘야 돼!'하는 소리가 들렸다. 빈은 왠지 그게 꼭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추정되는 곳이 조용해지자 빈은 이 꿈에서 깨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슨 관계일까. 이 꿈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은우랑 결혼하면 이런 집에서 살고, 예쁜 딸 낳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이 꿈은 더더욱 현실인 것만 같았다. 다만 진짜 현실에서는 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빈은 수영선수로서 성공하고 싶었고 훗날 딸이 자랑할만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책장에 놓인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딸 은빈이랑 찍은 가족 사진. 빈은 그 모든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찡한 데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현실에서 얼마 전에 산 일기장이 눈에 들어와 홀린듯 펼쳐보았다.












202x년 4월 5일


"나는 오늘 너와 헤어졌고, 울다가 잠들어 다시 너를 만났다."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있었다.


내가 쓴 것이 분명하고 나를 위해 다시 기록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생생하게 와 닿았고


이게 실제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문도 모른채 사랑받고 있을 나에게, 아직은 어리둥절 할 나에게,


그 행복은 나의 것이 맞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현실에선 바보같이 겁을 먹고 도망치던 중이었지만


나는 결국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속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꿈은 멀리 있지 않고,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많지 않기에


생각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옮기고,


도망치기보다는 현실과 부딪쳐 볼 것.











  빈은 일기장을 천천히 넘겨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먼저 겁먹고 물러서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곧 깨어날 꿈이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의 자신이기도 하기에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시간을 방치해두지 않기로 했다. 일단 지금 여기서만큼은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은빈이의 아빠였고, 은우의 옆자리니까.











  "은우야, 그때 헤어질 뻔 했을 때 말이야, 내가 밉지 않았어?"


  "널 어떻게 미워해. 그때 네 상황을 몰라줬던 내 탓이지."


  ".....넌 어떻게 매번 나를 구해주지. 영국에서도, 그리고 재회할 때도, 난 이렇게 깊은 우울에 빠져있는데."


  "말했잖아. 별들 속에서도 너만 보였다니까. 그때도, 지금도."




  "압빠. 그럼 여기 인어왕자님은 물거품이 된 거야?"


  "음, 은빈이는 어떻게 됐으면 좋겠어?"


  "인어왕자님도, 이웃나라 왕자님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음 어떻게 됐는지는 은빈이 열 밤 더 자고나면 알려줄게. 오늘은 이만 푹 주무세요 공주님~"


  "으음 아빠 어디 안 갈거지?"




  빈은 울컥했다. 이렇게 잠깐 봤는데도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점이. 그래도 은우와 은빈이를 만난 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은 분명했다.




  "그럼. 아빠는 언제든 은빈이 곁에 있을게."












  "은빈아! 차은빈!!!"


  "아, 아빠 잠깐만!!!! 나 지금 나가!"


  "쟤는, 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지, 지 아빠 딸 아니랄까봐 잠 많은 것까지 똑 닮았네."


  "에휴 놔둬, 오늘은 생일이잖아."


  "짠! 아빠 나 오늘 달 귀걸이 했다 괜찮지, 이쁘지, 잘 어울리지?"


  "그래요 우리 딸, 이쁘네, 진우 삼촌한테도 인사해."


  "삼촌 하이. 오늘이 마지막인가?"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냐 은빈아.... 삼촌이 편지만 갖다주는 우체부냐...."


  "핳 아니.. 당연히 편지 말한거지~ 우리 하나뿐인 삼촌인데 내가 그럴리가요~"


  "됐네요, 얼른 편지나 읽어봐. 네 말대로 오늘이 마지막 편지니까."












우리 은빈이, 20번째 생일 축하해!


아빠가 은빈이 1년 동안 또 은빈이 너무 보고 싶었어ㅠㅠ


이제는 은우아빠랑 편식 가지고 안 싸우지?


원래 옛날에 은우아빠가 아빠가 남긴 거 먹어주고 그랬는데,


은빈이는 더 씩씩하고 건강하게 커야되니까 다 먹으라고 하는 거야.


아무튼 오늘은 아빠가 특별히 은빈이랑 한 약속 지키러 왔어.


열 밤이 너무 길어져서 미안해.


인어왕자 책 기억나지? 이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잖아,


인어왕자님는 이웃나라 왕자님을 너무 사랑해서 아프게 할 수 없었대.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이웃나라 왕자님이 인어왕자님을 알아봐주었다는 거야.


겁이 많았던 인어왕자님을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주었대.


인어왕자님이 원래 살던 곳이 바다라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더라.


비밀이지만 둘 사이에 은빈이처럼 예쁜 딸도 생겼다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은빈아, 비록 편지는 마지막이지만


아빠는 계속 함께할테니까 너만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살길 바라.


사랑해.


203x년 5월 6일


빈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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