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2020 겨울호
작성자
노예
작성일
2021-01-16 23:01
조회
93



 

“사제님, 자꾸 꿈 속에 이상한게 나와요. 갈색 사자가 피칠갑을 한 상태로 저한테 걸어와요.”

 

 

파도

 

 

12일 새벽, 이탈리아 교황청의 장미십자회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박현규 가브리엘, 한국에서 12형상 중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한국에서요?”

“네. 자세한 장소는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일단 부마자와 만나봐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는 깊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박현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연락처를 찾으려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부디 신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싱겁긴.’

 

박현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곧바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무감한 눈이 몇 번 깜박였다. 곧 잠깐의 수신음이 울리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주교님, 저 박현규 신부입니다.”

“그래 박신부, 무슨일인가?”

“방금 장미십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12형상 중 하나가 발견됐답니다.”

“….”

“주교님?”

“아, 알겠네. 일단…, 회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지.”

 

-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장상과 주교, 흔히 ‘윗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모두 가죽소파에 앉아있었지만 박현규에게 주어진 자리는 딱딱한 원목의자였다. 하지만 박현규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12형상과, 그 부마자와의 접촉을 허락받고 혹시모를 구마의식을 위한 보조사제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그거 뭐 몇 번 기도하고 그러면 되는걸 뭘 구마까지.”

“일단 부마자하고 만나봐. 구마는 만나본 다음에 생각하고.”

 

가죽 소파에 앉아계신 ‘윗분’들은 박현규를 앞에 두고 대놓고 언짢은 표시를 냈다. 박현규의 무감하던 눈매에 날이 서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부제와 동행하겠는다는겁니다. 저 혼자는 무리가 있을수도 있으니, 부제가 필요합니다.”

“뭐…, 박신부가 따로 부제를 구하면 내가 그것까진 뭐라하진 않겠네만…. 우리는 부제 못 구해주네.”

 

윗분들은 먼저 부마자와의 접촉을 최우선으로 하라며, 자기네들은 부제를 구해줄수 없다고했다. 아무리 장미십자회에서 일단 부마자와의 접촉만을 부탁했다고는 하지만,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현장에 부제도 없이 혼자 가라는 것은 언제 파도가 칠지 모르는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들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썩을 놈들.’

 

박현규는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혼자서 부마자와 만나게 생겼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는 하나, 부제는 구해야만 했다. 혼자서 12형상 중 하나와 접촉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파도에 휩쓸려 꼼짝도 못하고 익사해버린 시체가 되기는 싫었다.

 

‘내가 따로 부제를 구하는건 괜찮다고 했으니….’

 

 생각을 마친 박현규는 바로 신학교 학장에게 연락했다. 어쩔수 없지만, 학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부제를 구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

 

“그래, 이름이…?”

“서울 가톨릭 대학교 7학년 재학 중인 차은우 아가토입니다.”

“그래, 아가토. 여기 올 때 학장한테 설명은 다 들었지?”

“네. 부마자와 접촉해야 한다고….”

“잘 들었네. 따라와.”

 

차은우는 흰 머리가 드문드문 난 중년의 남자를 쳐다봤다. 박현규 가브리엘. 학장에게 들은 대로라면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고집불통이다. 통칭 교회의 이단아. 신부로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윗분들 눈치는 더럽게 안봐서, 윗분들의 눈 밖에 난 사람. 그런 사람이 이번에 왜 부제를 신학교에서 구했는가 하면 안봐도 뻔할 일이였다.

 

‘부제를 안구해다줬겠지.’

 

12형상 정도면 수도회 간부들도 다 알고있는 심각한 안건이었을텐데, 부마자와 접촉하기로 한 신부에게 부제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말은 그 신부가 윗분들에게 찍혀도 엄청 찍혔다는 소리였다.

 

둘은 길목에 주차된 낡은 차에 탔다. 차에 타자 좌석 시트에 밴 텁텁한 냄새가 불쾌하게 올라왔다. 차은우는 내색하지 않고 창문을 내렸지만, 박현규가 귀신같이 눈치채고 차 안에 탈취제를 뿌려댔다. 눈치는 빠른 사람이었다. 그냥 자기 고집이 더 쎈 사람이었지만.

 

“우리는 이제 서울 성모병원으로 갈 거야. 다 내가 할테니까, 너는 그냥 옆에서 가만히 보고있으면서 대화 내용 적어놓기만 하면 돼.”

“네. 근데 녹음은 안 되나요?”

“그것들은 영악해서 녹음이나 동영상 찍으면 잘 안 나와. 독일어, 라틴어, 중국어 할 수 있지? 혹시라도 외국어로 말하면 그것도 적어놔.”

“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차은우가 어색한 공기를 없애려 몇 번 말을 걸었으나 박현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했다. 차은우도 곧 박현규를 따라 입을 닫았다. 평소 시끄럽다는 평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닌데, 박현규와 있으면 차은우가 말이 많은 편이 됐다.

 

‘빨리 끝내고 가고싶다….’

 

차은우는 어서 이 답답한 공기를 끝내고 싶어 속으로 끙끙 앓았다. 창문이 반 정도 내려가 생긴 틈으로 창 밖을 응시했다. 그런 차은우의 바람을 이뤄주기라도 하듯, 곧 유리창 밖으로 ‘가톨릭대학교 서울 성모병원’이라는 큰 글씨가 보였다.

 

차은우가 이곳에 온 목적은 부마자와의 접촉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부마자와 만나야했다. 차은우는 자세를 바로잡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긴장에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표정이 굳었다.

 

퍽!

 

“아!”

 

팽팽하던 긴장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박현규가 차은우의 뒷통수를 가볍게 쳤다. 그 바람에 차은우는 표정을 풀 수 있었다. 박현규는 눈치는 빠른 사람이니, 차은우가 긴장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겁먹지마. 그냥 사람 하나 만나는 거다. 정신차려.”

 

박현규가 차에서 내리자 차은우도 박현규를 따라 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긴장하지말자. 그렇게 되뇌면서 두 사제는 병동으로 향했다. 박현규의 빠른 걸음걸이에 맞춰 걸음의 보폭을 넓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가져온 짐들을 들고서 빠른 발걸음을 따라 걷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참, 신부님. 그러고보니 부마자 이름이 어떻게되나요?”

“문빈.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데, 그놈이 몸에 들어가버렸다.”

“아…. 저보다 어린데 어쩌다….”

 

차은우는 병실로 향하는 내내 긴장을 풀기 위해 박현규에게 별 의미 없는 말들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박현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둘은 병실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차은우는 시선을 돌려 병실 문 옆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했다. 

 

‘문빈….’

 

외자 이름은 차은우의 주변에도 몇 명 있어 그리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빈’이라는 이름은 특이, 아니 특별해 보였다. 처음 만나보는 부마자여서 그런것일까. 차은우는 아마도 지금 이 누런 때가 낀 병실 문과, 문빈이라는 이름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현규는 병실 문을 열기 전 차은우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대화만 할 거야. 애 겁먹지 않게 조심해.”

“네.”

 

박현규는 긴장도 안 되는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병실 문을 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두껍기만 해 보였던 문이 박현규의 손짓 한 번에 열렸다. 

 

‘아, 너무 긴장했는데.’

 

차은우는 자신이 너무 긴장했다고 생각하며 병실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했다. 박현규도 그런 차은우를 배려해 조금 기다려줬다.

 

병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환자복을 입은 등이었다. 하얀색에 하늘색 무늬가 조잡하게 배열된 환자복이 조금 야휜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쟤가 문빈이구나.’

 

커튼이 반쯤 열린 개인병실에서 문빈은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아무 미동도 없이 창 밖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같지가 않았다. 그 기묘한 느낌에 차은우는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질적인 시선이 자신의 내장을 꿰뚫어 보는 기분이었다.

 

“니가 문빈이지?”

 

박현규가 말을 걸자 문빈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입원한 후로는 관리를 안한 건지, 눈을 찌를락 말락 할 정도로 내려온 머리카락이 답답해 보였다. 문빈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현규는 침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너랑 대화만 하고 갈 거야. 넌 내 말에 대답만 잘 해주면 돼. 알겠지?”

“…네.”

 

박현규의 말에 조금 뜸을 들이던 문빈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금 갈라진듯한 목소리가 은근히 갈증을 일게했다. 목이 간지러워 왔다.

 

“그래, 오늘 기분은 어때?”

“그냥, 딱히요.”

“날씨 좋은데 하늘 보고있었던 거야?”

“네.”

 

박현규가 문빈의 긴장을 풀어주러 간단한 질문들을 던지자 차은우는 챙겨온 짐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들었다. 짐 가방의 열린 지퍼 속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차은우의 눈에 보인 것은 부마자의 손과 발을 묶기 위한 용도의 케이블타이였다.

 

장미십자회에서는 박현규에게 부마자와의 접촉만을 부탁했다. 아직 그리 심한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지켜봐만 달라며, 본격적인 구마의식을 진행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고 했다. 그러니 성급할 필요는 없었다. 차은우는 혹시 몰라 챙겨온 케이블타이를 가방 속으로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박현규의 질문에 문빈은 얼굴을 굳히며 자신의 팔목을 들어 보였다. 환자복 소매가 걷히고 헐렁한 팔찌를 찬 손목이 보였다. 실과 작은 비즈들로 조잡하게 엮인 붉은색 팔찌는 문빈의 뽀얀 피부에 꽤 어울렸다.

 

“원래 이 팔찌가 손목에 딱 맞았거든요. 근데요, 지금은…. 보시다시피.”

 

문빈은 미묘한 눈으로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옛 추억을 회상하는 듯 잠시 눈동자에 빛이 반짝였으나 이내 다시 잦아들었다.

 

박현규는 아무말 없이 문빈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문빈이 아닌 그의 속에 있는 것을 쳐다보는것같았다. 무언가를 알아보려는 듯한 집요한 시선이었다. 파도를 무시하고 그 너머에 있는 수평선을 보려는 것, 그것은 가장 삿된 것을 감히 인간의 눈으로 꿰뚫어보려는 대담한 행위였다.

 

“그렇구나. 식욕이 없었던거니?”

 

문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버린 문빈은 침대에 몸을 기대고 다시 창 밖을 바라봤다. 조금 열어놓은 창 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문빈의 뒷목에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온 세상에 생기가 도는데, 이 병실만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다. 생기도, 죽음도, 아무것도.

 

-


식욕 감퇴 또는 식욕 부진. 부마의 징후는 악마의 종류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는 하나 식욕 감퇴와 식욕 부진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부마의 징후 중 하나였다.

 

‘얼른 자야하는데….’

 

어두운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얼룩덜룩해진 시간. 차은우는 새벽 2시가 넘었음에도 아까의 기묘한 만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있었다. 대화 내용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노트는 책상 위에 펼쳐진지 몇 시간이나 지나도 닫힐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차은우를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좀처럼 평소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고 몽롱해 졌다가, 기묘한 느낌을 상기시키기를 반복했다. 무엇이 지금 차은우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차은우는 자리에 앉고서 한 시간이 지난 이후로 줄곧 그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좀처럼 해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차은우가 마땅히 해야 할 일 대신 머릿속은 내내 몽롱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목소리, 그래 그 목소리가 계속 생각났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지러운 마음에 뭐라도 써보려 무작정 노트의 페이지를 넘겼다. 쓸 내용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평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노동이 필요할 때엔 주기도문을 읊거나 쓰거나 했다. 지금도 그렇게 손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으나, 그것이 망상으로서 벗어나기 위한 헛된 발악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각을 통제할 수 없으면 위험했다. 차은우는 외면의 단단함은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어쩌면 이 굳건한 신앙이 자신의 내면 뿐만 아니라 외면까지 지켜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종교활동을 하며 든 생각이었다. 어쩌면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수순이였으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은우는 스스로 생각해냈다. 이것은 차은우의 신앙의 기반이자 주체가 되는 신념이었다. 그것을 부정하고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인정해내야했다. 지금 자신의 내면을 무르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가 결국엔 자신을 무너뜨릴것이라는 것을. 속에서 점점 곪아가다 밖까지 다 곪아버릴것이라는 것을. 단단한 탑에는 결코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됐다.

 

차은우는 날이 밝을때까지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들더라도 얼마 안있어 깨어났다. 꾸준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던 차은우에게는 조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밤에 잠을 못 잤으니 결국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낮에 졸아버리고 말았다. 지금이 여름방학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차은우는 꽤나 낭패를 봤을 것이었다. 졸고 일어나보니 핸드폰에는 박현규 신부의 연락이 와있었다. 급한 일인가 싶어 문자를 확인해 보니, 그냥 이따 밥이나 먹자는 내용이었다. 

 

-

 

박현규 신부의 부름을 받고 오후에 만나기로 한 삼겹살집에 왔다. 빨간 앞치마를 착용한 돼지 캐릭터가 엄지를 올려 ‘최고’ 표시를 하고 있고, 옆으로는 ‘정육식당’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있는 간판이 보였다. 박현규는 이 삼겹살집이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집이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부른것인지는 예상이 갔다. 차은우는 어제 부마자의 앞에서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에 대해 충고나 조언을 주기위해 부른 것이리라 생각하며 차은우는 유리로 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아직 낮이기 때문인지 비교적 한적했다. 그중 벽에 설치된 티비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박현규가 앉아있었다. 박현규가 문이 열리며 딸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차은우를 봤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그래.”

 

박현규가 차은우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자 차은우는 테이블에 놓인 세 자리 중, 박현규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오래된 플라스틱 의자는 다리 길이가 맞지 않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박현규가 차은우의 앞에 소주잔을 내밀었다. 테이블 위에는 소주 두 병이 올라와 있었다.

 

“술은 할줄 아나?”

“아, 네. 조금 합니다.”

“잔 받어.”

 

차은우는 아무말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었다. 양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평소보다 찼다.

 

“어제 잠을 잘 못잤나?”

“…다크서클 많이 내려왔나요?”

 

박현규는 차은우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어제 그가 긴장한 것을 봤을때부터 잠을 잘 못잘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얼굴이 하룻밤 새에 수척해진 것인지는 알수 없었다.

 

“너무 신경쓰지마.”

 

무감한 표정의 신부는 무감한 격려를 건넸다. 평소라면 기쁘게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격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차은우의 머릿속은 아직도 몽롱했다.

 

-

 

서울 성모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늘 차은우의 컨디션은 정말 최악이라고 말할수 있을만큼 좋지 않았다. 밤에는 뭐에 사로잡힌 듯 잠을 자지 못했고, 낮에는 줄곧 몽롱한 기분으로 졸고 깨고를 반복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이렇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삿된 영혼일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 정말 악령이 있다는 것을 느끼니, 그냥 발걸음을 돌려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차은우는 자신의 내면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굳혔다. 아직 어린 보조 사제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것이었음에도, 차은우는 그것을 감내하려 애썼다.

 

저번의 방문과 다름없이 차은우는 박현규의 뒷모습을 시야에 담으며 걸어갔다. 하얀 복도가 왠지모르게 음산했으나 그저 기분이 저조한 탓이라고 치부했다. 박현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인기척과 소리만으로 차은우가 잘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차은우는 이제 그에게 시답잖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저번의 만남으로 무언가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었다.

 

긴 걸음 끝에 두 글자가 세겨진 이름표가 보였다. 두 사제가 문빈의 개인병실 앞에 도착하자 박현규는 차은우에게 작게 당부했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차은우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지금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면 졸음에 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나갔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차은우는 기시감을 느꼈다. 무엇이 다른 것이지? 그러고 보니 병실에 들어온 후로 매일같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뿌연 안개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차은우는 심란한 마음에 저절로 숙여졌던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차은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문빈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있었지? 어깨부터 타고 올라오는 섬뜩한 기분에 숨이 저절로 턱턱 막혔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채로 문빈을 쳐다보고있으니, 문빈은 잠시 그런 차은우를 응시하다 이내 눈을 곱게 접어 웃어보였다. 살벌한 시선이 떨어져가는 느낌에 그제야 차은우의 숨통이 트였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으려는 숨을 억누르고 호흡을 골랐다. 숨을 쉴때마다 심장이 따가웠다. 숨을 급하게 쉬면 보통 폐가 따갑지 않나? 차은우는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질수 있는 적절한 의문을 품었으나,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에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신부님. 이분도 신부님이세요?”

 

갈라진듯한 목소리가 매마른 땅에 내리는 비를 연상케했다. 드문드문한 음정 사이에 비를 내리듯 소리를 채워주길 바랬다. 문빈은 박현규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차은우를 쳐다봤다. 차은우는 박현규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문빈의 목소리가 훑고 지나간 공간에 남는게 두려웠다.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인가. 차은우는 이것이 그저 무력하게 거스를 수 없는 해류에 휩쓸리는 것임을 알았다. 정신을 잃고, 짠 물에 숨이 막히고. 그가 느낀 것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두려움이었다.

 

“신부는 아니고. 보조사제.”

“그렇구나…. 몇 살이에요?”

“글쎄다, 우리 차 부제가 지금 몇 살이지? 아마 얘랑 나이 비슷할텐데.”

 

아까의 의미심장한 눈웃음과는 다르게 지금의 문빈은 기대에 찬 눈동자와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동물을 보는듯해서, 차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스물일곱입니다.”

“아, 맞다. 지금 7학년이랬지?”

“그럼 저보다 형이네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차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얘 원래 이렇게 친화력 좋은 성격인가? 저번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 편한대로 불러도 돼.”

“알았어요. 은우형.”

“…내가 이름 말했었나?”

 

차은우는 분명 문빈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문빈은 차은우의 이름을 알고있었다. 그렇다는건 혹시….

 

“아뇨. 형이 가져온 노트에 ‘차은우’라고 써있잖아요.”

“아.”

 

괜한 의심을 했다는 생각에 차은우의 얼굴이 홧홧해졌다. 차은우는 시선을 피하며 슬며시 자신의 손으로 노트의 표지를 가렸다. 정확하게 ‘차은우’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 가려졌다.

 

-

 

차은우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동안에 문빈에 대해 생각했다. 이질적인 시선. 그것은 문빈의 시선이 아닌 사악한 영혼의 시선일 터였다. 그럼 그 목소리도 문빈의 목소리일까? 문빈이 입을 열 때마다 갈증이 목을 조여올 때에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을 느꼈었다. 막상 마시면 시원하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른, 그런 중독성이 있는 목소리가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문빈에 대해 생각하다 벌써 새벽이 다 지났다. 특히 그 목소리와 눈웃음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예쁘게 접히는 눈매는 누가 보더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낄만한 것이었다. 어제의 상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묘한 시선이 차은우를 훑던 느낌은 희미해지고, 문빈의 입가에 생기던 귀여운 보조개와 애교살만 떠올랐다. 그렇게 문빈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 내다, 문득 환자복을 입은 삐쩍 마른 등이 생각났다. 밥을 좀 잘 먹어야 할텐데. 그 생각에 차은우는 바로 컴퓨터를 키고 여러 음식들의 레시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입맛이 조금 생긴다면 직접 요리라도 해 먹일 생각이었다. 부마자인 문빈은 챙겨줄 사람도 별로 없는 듯 하니, 보조사제인 자신이라도 챙겨주기로 했다. 부마자의 몸이 안좋아지면 곤란해지는 것은 사제들이었고, 왠지모르게… 그냥 챙겨주고싶었다.

 

-

 

“오늘도 입맛이 없어?”

 

차은우가 또 문빈의 병실에 찾아왔다. 몇 번째의 방문인지 세기 귀찮아질 즈음이었다. 문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어두컴컴한 병실 불을 켜니 문빈의 마른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더 말라가는듯한 문빈의 몸에 차은우가 걱정스래 물었다.

 

“네…. 원래는 밥 진짜 잘먹었거든요.”

“진짜?”

“진짜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밥 사준다는 말이에요. 그 정도로 먹는 거 좋아했었는데 이상하게 요즘엔 식욕이 없어요.”

“그래? 그럼 뭐 땡기는 거라도 있을거아니야. 땡기는것도 없어?”

“없어요….”

 

문빈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당황한 차은우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치킨은 어때?”

 

치킨이라는 말에 반응하듯 문빈이 고개를 들며 눈을 빛냈다.

 

“…치킨이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기대를 하는 문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차은우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웃고서는 핸드폰을 들었다.

 

-

 

“맛있어?”

“마이어요.”

 

차은우가 시켜준 치킨이 도착하자 문빈은 편하게 앉으라며 침대 시트를 팡팡 쳤다. 차은우는 침상 위에 작은 식탁을 올려주고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문빈은 차은우에게 닭다리를 권했지만 차은우는 ‘너 먹이려고 시킨거니까 너 먹어.’라며 거절했다. 그래서인지 문빈은 새 조각을 베어물 때마다 차은우의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아마도 혼자 먹는 것이 미안한 듯 했다.

 

문빈은 입에 양 것 치킨을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발음이 새 가면서도 씹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먹으며 대답하는 것이 꼭 어린 애를 보는것같았다. 차은우는 그런 문빈을 지켜보며 천천히 먹으라고 같이 배달온 콜라를 따라줬다.

 

“계속 병원 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기름진거 먹으니까 맛있네요.”

“많이 먹어. 이제 입맛이 좀 돌아?”

“아니 사실 아까 형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막 울렁거리고 속 엄청 안좋았는데 이제 괜찮아졌어요. 신기하죠. 형 여기 올때마다 속이 편안해요. 완전 인간 까스활명수에요.”

“다행이네….”

 

졸지에 인간 까스활명수가 된 차은우는 의문을 품었다. 차은우는 문빈의 병실에 방문할때마다 머릿속에 낀 안개가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문빈도 차은우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

 

-

 

문빈은 심란했다. 헛구역질과 울렁거림를 달고 산지 얼마나 지났던가. 이미 위액을 게워내는 느낌은 익숙해졌고, 입 안에 음식물이 들어오는 감촉은 어색해진지 오래였다. 그 잘생긴 사제가 병실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문빈은 당장이고 내장까지 토해낼수 있을것같았다. 혹시라도 며칠만에 먹은 죽을 다 토해버릴까봐, 입 안의 여린 살을 씹어가며 하염없이 손목을 쳐다 봤다. 문빈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붉은색 팔찌가 있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붉은색 팔찌는 현실과 문빈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괴로워할땐 팔찌를 내려보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상기시키곤 했다. 문빈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문빈이 있어야 할 곳은 대학 캠퍼스였다. 그와 같은 대학에 붙은 친구가 뒤에서 문빈을 부르면, 문빈은 뒤를 돌아 친구에게 인사하며 강의실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줄곧 꿈을 꾸는 듯한 이질감을 때어낼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말라버린 손목과, 알콜 소독약 냄새가 연하게 올라오는 병실은 항상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것도 기분나쁜 악몽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 대는 것 같았다. 식욕이 없어질때마다 두려워져왔다. 문빈이 알고있던 문빈은 밥먹자는 소리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으니까.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팔찌를 내려다 보는 일이 적어졌다. 차은우. 그 남자 때문이었다.

 

차은우가 병실에 들어올때면 문빈을 괴롭히던 울렁거림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기분에 더 이상 문빈은 매일이 괴롭지 않았다.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생활이 바뀌었다. 차은우가 병실에 자주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문빈은 어느새 매일 차은우를 기다리게 됐다. 창 밖의 풍경을 보던 문빈은 더 이상 창 밖이 아닌 차가운 병실 문을 바라보게 됐다. 그렇게 하염없이 얼른 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리며 병실 문을 쳐다보다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 저도 모르게 긴장이 돼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겼다. 죽어가던 것 같던 예전과는 달랐다. 차은우는 현실과 문빈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가 되었다.

 

-

 

“형, 형은 진짜 한국인이 맞긴 한가봐요.”

 

문빈은 자신의 침상 위에 빼곡하게 들어선 음식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많이 먹어야지 빨리 낫지. 내가 일부러 우리 엄마한테 레시피 배워서 해온거야.”

“이걸 다 형이 했어요?”

 

문빈이 놀라며 자신의 옆에 놓인 도시락 통을 들자 차은우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도시락통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레시피를 직접 배워 왔다는 말이 농담은 아닌지 차은우가 싸온 도시락은 척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우와, 이건 샐러드에요?”

“너무 고기만 먹으면 질리잖아.”

“와, 이게 다 몇 개야…. 아무튼 고마워요. 형 덕분에 요즘 살이 좀 붙은 것 같아요.”

 

문빈의 고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차은우는 매일같이 문빈의 병실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어제는 돈까스, 그제는 닭꼬치, 사흘 전에는 제육볶음… 덕분에 문빈은 요새 구역질 할 걱정 없이 밥을 잘 먹고 있었다. 물론 차은우가 돌아가면 다시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차은우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나눈 뒤, 문빈의 손에 쥐어줬다. 문빈 또한 익숙한 듯 젓가락을 받아들고서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차은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끝냈다는 듯이 턱을 괘고 문빈을 쳐다봤다. 그 빤한 시선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문빈은 잠깐 생각하더니 차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은 왜 밥 안먹어요? 이미  먹고 왔어요?”

 

차은우는 문빈의 물음에 고개를 젓더니 아직 열지 않은 도시락 통을 열어 청포도 하나를 집어먹었다.

 

“나는 너 먹는것만 봐도 배불러. 그러니까 얼른 니가 다 먹어.””
“형, 그거 너무 옛날 멘트에요. 그리고, 그래도 밥은 먹어야죠.”

 

문빈의 대꾸에 차은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기나 잘 먹어야 할 상황에 남이나 걱정하고 앉았다. 그래도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가 이렇게 걱정해주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차은우의 마음 한구석이 뜨끈뜨끈해져 왔다.

 

“그래도 괜찮아. 너 많이 먹어.”

 

아무리 기다려도 차은우가 젓가락을 들지 않자 문빈은 이내 포기하고서는 마저 도시락을 먹었다. 불만스럽다는 듯 찡그려진 미간이 꽤나 예민해 보였다. 차은우의 눈에 문빈의 뽀얀 피부가 담겼다.

 

둘은 자신들을 옥죄여오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차은우가 문빈에게 밥을 먹이고, 같이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고, 잡담을 하고. 가끔은 자신의 이야기도 했다. 누가 본다면 지루하다고 할수도 있을 시간들이었으나, 둘에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재미있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지루한 복도를 걷고있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을 때 누군가 복도의 창문을 깨고 들어온 것처럼, 둘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만나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서로를 찾게됐다.

 

-

 

“그는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무너진 돌담, 덜렁거리는 지붕널, 철근이 드러난 벽….”

 

문빈이 침대 맡에 기대 자고있었다. 차은우는 읽어주던 책을 덮고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색색 소리를 내며 잠에 든 문빈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생기가 돌아 보였다.

 

‘잠들었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이마를 스치자 문빈은 간지럽다는 듯 잠결에 인상을 찡그렸다. 미간에 주름이 지자, 차은우는 무심코 손바닥을 들어 문빈의 이마를 가려주었다. 그제야 문빈의 얼굴에 인상이 풀리고 미소가 퍼졌다. 그 모습이 왠지모르게 귀여워서 차은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평소에도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고있자니 더욱 예쁘장한 얼굴이였다.

 

‘입술 귀엽다….’

 

부리처럼 톡 튀어나온 입술이 앙증맞았다. 차은우는 갑자기 저 부리를 손가락으로 콕 눌러보고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립밤도 열심히 바르던데, 분명히 문빈의 입술은 말랑말랑할 터였다.

 

‘자고있으니까 몰래 해볼까…?’

 

몇 번의 고민 끝에 차은우는 문빈이 자고있는 틈을 타 몰래 입술을 만져보기로 했다. 평소라면 잠자는 사람에게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왜인지 저 보들보들해 보이는 부리를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으, 음? 형?”

 

차은우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려던 찰나 문빈이 눈을 떴다. 문빈이 일어나자마자 보인 차은우의 얼굴에 흠칫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차은우였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것도 못한다던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음을 차은우는 방금 몸소 경험했다.

 

“형? 손가락 들고 뭐하는거에요?”

 

차은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할까. 그냥 자고있나 확인하려고 그랬다? 하지만 단순히 자는걸 확인한다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입술이 예뻐서 보고있었다? 이건 문빈이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생각할 것이다. 머릿속이 꼬였다. 차은우는 어쩔수없이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 …여워서.”

“네? 잘 안들려요. 다시 말해주세요.”

 

차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어떻게 말해봐도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차은우가 파렴치한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차이였다. 혹 문빈이 별다른 생각을 갖지 않더라도, 자는 사람을 만지려고 한 것은 차은우가 만든 신념의 틀에서 매우 벗어난 행동이었다.

 

“귀여워서. 입술. 만져보고싶었어.”

 

문빈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차은우는 쪽팔림에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을 뜨면 이상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문빈이 자신을 보고있을까봐 걱정됐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하하하학!”

 

문빈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에 놀란 차은우가 슬며시 눈을 뜨자 웃겨 죽겠다는 얼굴을 한 문빈이 배를 부여잡고 웃고있는 것이 보였다.

 

“왜, 왜. 왜웃어.”

 

당황한 차은우는 말을 더듬으며 문빈을 진정시키려 했다. 문빈은 너무 웃어서 난 눈물을 닦으며 차은우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만져봐도 돼요.”

 

갑작스러운 문빈의 행동에 당황해 굳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차은우가 아니었다. 차은우는 부리처럼 앙증맞게 톡 튀어나온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봤다. 차은우가 예상한것보다 더 말랑한 촉감이었다. 한번 눌러본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차은우는 두세 번 정도 더 꾹꾹 입술을 눌러보다 이내 손가락으로 입술을 지분거렸다. 얇은 아랫입술을 입매를 따라 쓸어내리더니, 다시 윗입술을 쓰다듬듯이 어루만졌다. 문빈은 막상 만지니 어색한지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게 귀여워 차은우는 문빈과 시선을 맞춰보려 했으나, 차은우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문빈의 귀였다. 문빈의 귀가 그의 입술만큼이나 붉어져있었다.

 

그 순간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낀 차은우가 황급히 손을 때어냈다. 차은우가 손을 때어내자 문빈이 뭐라고 말을 했지만, 이미 차은우의 온 몸에 심장박동 소리가 쿵쿵거리며 울리고 있어서 그 말을 듣지는 못했다. 온 몸이 시뻘겋게 익어서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고막에서까지 울리는 심장소리가 차은우를 재촉했다. 얼굴이 뜨거워진 것을 문빈에게 들키기 전에 가야했다.

 

“그, 빈아. 나 이제 가볼게. 내일봐!”

 

차은우는 평소보다 다급한 어조로 말을 내뱉고서는 빠르게 병실을 나갔다. 병실 문을 닫고서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한참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어디선가 무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는건가?”

 

박현규 신부였다. 박현규 신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라고 할수있었다. 박현규는 차은우가 문빈의 병실에 올 때 가끔 동행했지만, 문빈이 아직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박현규는 방문 대신 개인 일정을 수행했다. 가끔 오게되더라도 병실 밖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을 뿐, 병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차은우는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귀까지 뻘게진 얼굴을 감싸고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퍽 이상해보였다. 차은우는 급히 일어나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박현규에게 인사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근데 여긴 어쩐일로….”

 

박현규는 차은우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없이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차은우는 박현규의 뒤를 따르며 걸어갔다. 박현규는 병원을 나올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차은우는 병실에서 그렇게 쌩하니 나가버렸어도 꾸준히 문빈을 찾아왔다. 차은우와 문빈은 변함없이 밥을 먹고, 잡담을 나누고, 티비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차은우가 문빈의 입술을 만지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요 근래에 어찌나 입술을 쪼물딱 거리며 만져대는지, 문빈의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있을때가 많았다. 결국 문빈에게는 가끔씩만 바르던 립밥을 수시로 바르는 습관이 생겼다.

 

“형은 왜 이렇게 내 입술을 좋아해요?”

 

립밥을 바르던 문빈이 퉁명스럽게 묻자 차은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귀엽잖아.”

“허….”

 

차은우의 의연한 답변에 어딘가 간질간질해진 문빈은 어색함을 쫒아보려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서는 해양생물과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바다거북이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이 나래이션과 함께 흘러나왔다.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적절하게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문빈을 코스타리카의 해변으로 이끌었다. 문빈은 어느새 바다거북이 꿈틀거리는 모래사장 너머 바다를 보고있었다.

 

“아, 바다 보니까 오랜만에 바다 가고싶다.”

 

문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바로 옆에 있던 차은우는 들을수 있었다.

 

“바다 가고싶어?”

차은우의 질문에 문빈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봤다. 어딘가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붉은색 팔찌를 만지작 거렸다.

 

“친구가 바다를 좋아했었거든요. 그냥 괜히 생각나서….”

 

문빈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이러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

 

“같이 갈래?”

“어딜요?”

 

문빈이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차은우를 바라봤다. 눈썹이 애처롭게 올라가있었다.

 

“바다.”

 

차은우가 문빈을 향해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빈은 그것을 보고 미간을 조금 찡그리더니 웅얼거리듯 말했다.

 

“어짜피 저 여기 못나가잖아요.”

“아니야.”

 

차은우는 문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문빈의 눈에는 수많은 우울이 담겨있었지만, 확신에 찬 차은우의 눈을 볼때면 그 우울조차 빛을 피하듯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숨었다. 어둠이 빛에 사라지듯, 가로등이 어슴푸레한 길을 밝히듯. 차은우는 문빈에게 이토록 빛나는 사람이었다.

 

“너 다 나으면, 같이 바다 보러가자.”

 

차은우는 그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확신에 찬 눈으로 문빈을 바라보고있었다.

 

-

 

차은우는 매일 문빈의 병실을 방문했다. 문빈은 차은우의 생각보다 말도 많고 재미있는 구석이 많았다. 어쩌다 잠깐 자신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꺼낼때면 해맑게 웃는 것이 영락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차은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운 나쁘게 악령에 걸려버렸다는 이유로 개인 병실에서 혼자 지낸다. 문빈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차은우는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했다. 한시라도 빨리 구마의식을 해서라도 문빈을 편안하게 해주고싶었다. 그저 섣부르게 동정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지랖 넓다는 소리는 들어본적 없는데. 차은우는 언젠간 문빈에게 그런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차은우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실을 나오자마자 다시 머리에 안개가 낀 듯 어지러웠다. 요즘 부쩍 더 불면증이 심해진 것 같았다. 매일매일을 관절인형처럼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일정을 수행했다.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매번이 고통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편안하게 있을수 있는 곳이 바로 문빈의 병실이었다. 병실에 들어설때면 항상 피곤함이 가시고 숨쉬기가 편해진다. 겨우 내쉴 수 있는 숨통이 조그맣게 트여있는 것 같았다. 처음 방문했을때엔 두꺼워 보였던 병실의 문도 이제는 작은 숨통으로 보였다.

 

차은우는 병실의 문을 뒤로하며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을 잘 못잔다고 해도 결국 차은우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오래된 책장과, 아직 공장냄새가 덜어지지 않은 새 책상, 작년에 새로 도배한 하얀색 벽지들. 차은우는 자신의 안락했었던 공간을 떠올리며 길거리를 걸었다. 평상복이 아닌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가톨릭대 성모병원과 가까워서 그런지 길거리의 사람들은 사제복을 신기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딩동.

 

그때 메시지 수신 알람이 울렸다. 박현규 신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미안하지만, 앞으로 부마자와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문자를 확인한 차은우는 덜컥 겁이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것일까? 박현규처럼 윗분들 눈치는 더럽게 안 보고 고집도 센 사람이 갑자기 일정을 중단할 정도면 꽤 큰일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차은우는 바로 박현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길어질때마다 초조한 마음이 앞섰다.

 

“여보세요.”

“신부님. 무슨일인가요?”

“아….”

 

박현규는 차은우의 다급한 말투를 듣고서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머뭇거렸다. 차은우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오늘 사고를 당했다. 결국엔 그 놈이 나한테까지 영향을 끼친 모양이야.”

 

어깨에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박현규가 말하는 ‘그 놈’은 문빈의 몸에 들어가있다던 12형상중 하나일 것이다.

 

“몸 많이 안좋으세요?”

“그래. 앞으로는 부마자하고는 못 만날것같네. 너도 그동안 고생했다.”

“네?”

 

박현규의 고생했다는 말에 차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물음에 박현규가 한숨을 쉬었다.

 

“너 혼자 가는건 너무 위험해.”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요?”

“….”

 

박현규는 말이 없었다. 아마 그도 알고있을 것이다. 이대로 끝낸다면, 지금까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을. 박현규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일단 오늘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얘기해보자.”

 

차은우가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전화가 끊어지고서도 차은우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차은우도 지금 자신이 왜 이렇게 문빈의 일에 목숨을 거는지 몰랐다. 사실 차은우는 부제를 그만둬도 됐었다. 박현규는 부제를 다시 구할수 있을 만큼의 인맥은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가 새로운 부제를 구하게 하고 차은우는 그만둘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차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문빈이 자신이 아닌 새로운 부제에게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친근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차은우는 자신이 끝까지 장미십자회에서 말하는 ‘때’를 기다려 구마의식을 거행하고,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면 문빈도 이제는 더 이상 부마자가 아닌 평범한 대학생으로 있을테니, 자주 만나 밖에서 놀거나 얘기를 나눌수 있을것이었다. 같이 병실 밖으로 나와서, 보고싶다고 했던 바다를 같이 보러 갈 생각이었다. 문빈은 비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해산물 대신 다른 것을 먹을 생각이었다. 이미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까지 알아놨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차은우의 일상 속에 문빈이 스며든 것은.

 

문빈은 어느날부터 차은우 속에 들어와 점점 자리를 넓혀갔다.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뭘 하면 할수록 자신의 삶을 헤집어놓는 문빈의 존재를 거스를수조차 없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것이었으며 아마도 예정된 흐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차은우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하나 자리잡았다.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과연 집에 가서도 문빈의 생각을 하지 않을수 있을까? 차은우는 문빈을 생각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문빈의 곁을 떠나면 제대로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은우가 있어야 할 곳은 문빈의 곁이 아닌가? 순간 묵직한 망치로 머리를 맞은것처럼 차은우의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구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네가 있는 곳이었어.

 

차은우는 곧바로 박현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대로 끝낼수는 없었다. 이것은 차은우의 마지막 고집이자 욕심이었다. 몇 번의 수신음을 거친 후 박현규가 전화를 받았다. 박현규는 전화할 줄 알고있었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에요.”

 

차은우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이 문빈의 곁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 만약 후회하게 되더라도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네!”

 

차은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걸어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 성모병원이라는 글자가 보일때까지, 차은우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걸어왔던 가로수 길을 다시 지나고, 갈색 보도블럭 위를 박차고서 마침내 큰 건물의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차은우는 문빈의 개인병실이 있는 층을 향해 달렸다. 늦은 시간 병원에서 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때가 아니었다. 차은우 안에 존재하는 규칙보다도, 문빈의 옆에 서는 것이 더 중요했다.

 

“빈아!”

 

차은우가 거칠게 문을 열어재꼈다. 베개를 베고 있던 문빈이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문빈을 보자 차은우의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그의 심장은 문빈을 보자마자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형 아까 집에 간거 아니었어요? 뭐 놓고갔어요? 왜 다시 온거에요?”

 

문빈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한없이 풀어진 웃음을 지으며 차은우는 그제서야 숨을 골랐다.

 

“그냥. 너 보고싶어서.”

“네? 그게 무슨,”

“빈아. 나랑 사귈래?”

 

차은우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문빈은 굳어버렸다. 당황한 듯 눈동자만 굴리며 입을 떡 하니 벌리고있으니 차은우가 손수 턱을 손으로 받혀 문빈의 벌어진 입을 닫아주었다. 문빈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을 느끼며 차은우를 올려다봤다.

 

“진, 진짜요?”

“그럼 당연히 진짜지. 난 너 가지고 장난 안쳐.”

 

문빈이 사고회로가 정지한 듯 멍하니 굳어있자, 차은우는 문빈이 정신을 차릴수 있을 때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기다렸다. 아마도 자신이 거절당할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 갑작스럽긴 한데…. 좋아요.”

 

문빈이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대답했다. 손에 느껴지는 열기가 뜨거웠다. 차은우의 ‘거절당하리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는, 문빈의 빨개진 귀와 얼굴에서 자신감을 얻고 나온듯했다. 

 

“그래. 좋아해.”

 

손이 귀를 가리고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문빈은 차은우의 말을 들었을것이었다. 더 부끄러워졌는지 귀가 새빨개지다 못해 익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손에 얼굴을 묻고 꾸물거리던 문빈은 이내 괜찮아졌는지 고개를 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니까 받아주지.”

 

차은우는 문빈의 비죽 튀어나온 입술을 보고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순식간에 차은우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문빈은 그걸 보고 ‘얼굴을 잘써도 적당히 잘써야지….’라며 중얼거렸다.

 

-

 

“형 그럼 형은 어디서 자게요?”

“난 그냥 바닥에서 자도 괜찮아.”

 

문제가 생겼다. 문빈의 병실은 개인병실이었고, 당연히 침대는 문빈이 쓰는 것 하나였다. 차은우는 바닥에서 자도 괜찮다며 문빈을 달랬지만, 문빈은 찬 바닥에서 자려는 차은우가 걱정되는지 계속 차은우를 힐끗거렸다.

 

“형 그러면…, 여기서 같이 잘래요?”

 

문빈이 자신이 덮고있던 이불을 열고 침대 시트를 팡팡 쳤다. 확실히 문빈이 쓰는 침대는 넓은 편이어서, 조금 좁게 자면 둘 정도는 같이 잘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연인이 된 사인데, 심지어 차은우보다 어린 사람과 같은 침대에 몸을 뉘이는 것은, 설령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양심에 찔려 용납할수 없었다.

 

“찬데서 자면 입 돌아가요.”

 

차은우는 정말로 거절하려고 했으나, 진심어린 걱정이 담긴 문빈의 눈빛에 차은우는 그 호의를 거절하기 힘들었다. 차은우는 문빈이 몸을 구석으로 옮겨 만들어 준 자리에 누웠다. 베개도 하필이면 하나뿐이라 그냥 베개는 문빈이 베게 하고, 차은우는 한쪽 팔을 베고 문빈 쪽을 보며 누웠다. 문빈도 차은우를 보며 옆으로 누웠는데, 아직 눈이 말똥말똥한게 빨리 잘 생각은 없어보였다.

 

“오늘은 입술 안만져봐요?”

 

차은우는 하루도 빠짐 없이 문빈의 입술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었다. 어제도 만졌고 오늘도 만졌는데. 차은우는 문빈이 기억을 못하는 건가 싶어 오늘도 만졌음을 알려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문빈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말랑말랑한 입술이 왠지 오늘은 더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 같았다. 입술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보거나 쓸어보고, 손톱을 살짝 세워 눌러보기도 하고 살살 꼬집어보기도 했다. 차은우는 문빈의 입술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문빈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문빈이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떼자 차은우가 문빈의 눈을 바라봤고, 둘은 꽤 긴 시간 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먼저 눈을 감은 것은 차은우였다. 차은우가 급작스레 눈을 감고 문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댔다. 숨결이 맞대지면서 콧등이 간지러워왔다. 파르르 떨리는 차은우의 속눈썹에 이윽고 문빈도 눈을 감았다. 숨과 숨 사이엔 로맨스 영화에서나 봤던 투박한 낭만이 담겨있었다. 달빛이 낭만을 타고 흐르는 밤이었다.

 

-

 

꼭두새벽부터 헛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웩웩 거리는 소리에 차은우는 놀라 잠에서 깼다.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문빈이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피가 보였다. 문빈은 병실의 바닥을 나뒹굴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빈아! 빈아!”

 

차은우는 문빈에게 달려갔다. 작은 탁상에 놓인 휴지를 들고 문빈의 입을 닦아주려했다. 피를 닦는 차은우의 손이 벌벌 떨렸다.

 

‘얼른, 얼른 호출해야하는데…!’

 

차은우가 의사 호출 벨을 누르려고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문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입가에 덕지덕지 핏자국을 묻히고 차은우의 옷자락을 잡은 문빈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형, 은우형, 아니 사제님. 그동안 말 못해서 미안해요. 너무 무서워요. 자꾸 이상한 꿈을 꿔요.”

 

차은우는 직감적으로 때가 됐음을 느꼈다. 미루고 미뤄왔던, 해방을 위한 순간이 오고있었다. 문빈은 두려움에 사무쳐 덜덜 떨며 말을 이었다.

 

“사제님, 자꾸 꿈 속에 이상한게 나와요. 갈색 사자가 피칠갑을 한 상태로 저한테 걸어와요.”

 

차은우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갈색 사자, 피칠갑. 아무리 정체를 추리해 보려 해도 그 사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자가 문빈의 몸에 들어선 악령임에는 틀림 없었다. 차은우는 문빈을 달래며 박현규에게 전화했다.

 

“때가 됐다. 그쪽으로 가마. 조금만 기다려.”

 

박현규는 이미 문빈의 상태를 알고있었던 것인지 전화를 받자마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문빈의 병실로 오겠다고 했다. 차은우는 문빈의 어깨를 감쌌다. 문빈의 어깨가 떨리는 것인지, 차은우의 손이 떨리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다. 차은우는 그저, 자신이 믿어왔던 신앙이 삿된 것으로부터 문빈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

 

박현규 신부가 기도문을 외었다. 그러자 침대에 케이블타이로 사지가 구속된 문빈의 몸이 기이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현규 신부가 기도문을 외울때마다 케이블 타이를 힘으로 풀기 위해 철컹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문빈의 입에서는 들어본적 없는 굵은 목소리와 얇은 여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침대의 바로 옆에 선 박현규는 평소처럼 무감한 눈이 아닌, 의지를 행하려는 눈을 하고있었다.

 

차은우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바흐의 노래를 재생했다. 바흐의 칸타타 제 140번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를 오디오에 재생시키자 문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문빈의 벌어진 입에서는 핏물이 계속 고이고 있었지만, 두 개의 이질적인 목소리는 계속해서 욕을 해댔다. 전등이 혼자서 꺼지고 뭉개진 발음으로 욕이 섞인 라틴어가 들려왔다.

 

 

박현규 신부는 보라색 영대를 문빈의 눈 위에 덮어놓고서 외쳤다.

 

“거짓말의 아버지이자 태초의 살인자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묻는다. 어디서 온 것이냐.”

 

문빈의 입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섞인 절규가 흘러나왔다.

 

차은우는 자신의 앞에 펴놓은 작은 책상에 노트를 꺼내 들려오는 라틴어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빠르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차은우는 하나도 놓지지 않고 빠르게 적어나갔다. 노트 한 면을 다 채울때쯤엔 중국어가 들려왔고, 또 한 면을 채웠을 땐 독일어가 들려왔다. 마침내 또 한 면을 채우고서 한국어가 들려왔을땐, 문빈의 몸이 추욱 늘어지며 온갖 벌레들이 문빈의 침대로 모여들고 있었다.

 

박현규 신부가 손짓으로 허공에 십자가를 그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온 것이냐.”

 

문빈이 기괴하게 웃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스래 웃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말하라!”

 

문빈이 허리를 꺾으며 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묻는다. 왜 여기에 온 것이냐!”

 

박현규 신부가 다시 허공에 십자가를 그리며 문빈의 몸 속에 들어온 악령을 몰아붙혔다. 문빈이 괴성을 질러댔다.

 

박현규 신부는 문빈의 몸에 성수를 뿌렸다. 그러자 문빈은 방금 토해낸 피의 양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피를 거세게 토해냈다. 차은우는 그것을 보고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문빈의 몸에 있는 것은 절대로 피하지 못할 거대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은우는 계속해서 기도문을 외웠다. 믿음은 보답받을 것이고, 자신의 신앙은 한번도 믿음을 져버린 적이 없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네가 감히 거슬렀으면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차은우는 알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배워 온 대로 행할 뿐이었다. 자신의 경험에 믿음을 걸고, 믿음에 신앙을 걸었다. 노력 끝에 결실이 있기를 바랬다. 부디 문빈이 다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같이 바다를 보러가기를 절실하게 바랬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묻는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문빈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고요한 병실에 바흐의 연주곡만이 울려퍼졌다.

 

“마르베스.”

 

문빈이 들릴 듯 말 듯 하게 속삭였다. 마르베스. 솔로몬의 72악마 중 5번째 악마의 이름이었다. 박현규 신부는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한다. 마르베스, 거기서 나오라.”

 

그러자 문빈은 발작이 온 것처럼 몸을 뻣뻣하게 펴고 부들거리더니, 다시 잠에 든 것처럼 축 늘어져 눈을 감았다. 숨 소리가 색색대며 들리는 것을 보니 다행히도 괜찮은 것 같았다. 차은우는 안도했지만, 의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긴장을 놓지 않았다. 차은우의 눈에 검게 변한 돼지가 보였다. 아까 박현규 신부가 대려올때까지만 해도 하얀색 돼지였는데, 악령 마르베스가 돼지의 몸에 들어가 검게 변한것이었다.

 

“넌 여기 있어라. 내가 끝내고 올테니까, 쟤 깨어날때까지 같이 있어줘라.”

 

박현규 신부가 보라색 영대로 돼지를 감쌌다. 박현규 신부는 차은우가 문빈을 아낀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무심해 보이는 배려에 차은우는 고개를 숙여 박현규 신부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박현규 신부는 차은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병실을 다급하게 나갔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1시간 안에 깊이가 15m이상인 강에 악령이 빙의된 돼지를 빠트려야했다. 빠트리지 못한다면 악령은 가장 가까운 구마사제에게 빙의하게 된다. 박현규로써는 큰 위험을 감수하고 간 것이었다. 박현규 신부가 한강까지 잘 가기만 한다면, 12형상의 일은 오늘로써 끝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다리인 반포대교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차은우는 문빈의 옆에 걸터앉아 잠든 문빈의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이렇게 편하게 잠든 얼굴을 보기 위해서 얼마나 달려왔던가. 차은우는 그동안 문빈의 병실에 방문하면서, 박현규 신부가 부탁한 구마의식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러 다녔다. 힘들다면 힘들다고 할수있을 일정이었지만, 차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정을 수행한 것은 모두 문빈의 편안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차은우가 문빈의 속눈썹을 간질이듯 만졌다. 나갔던 전등이 다시 돌아오고, 아무것도 없었던 병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끝. 수고했다.]

 

박현규에게 구마 의식의 끝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정말 끝이었다.

 

-

 

바다의 짭짤한 향기가 입안을 맴돌았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건드려왔다. 넓은 모래사장 위에 두 사람이 걷고있었다. 두 사람은 바닷물을 먹어 판판해진 모래를 밟아 보기도 하고, 어디선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 이름을 써보기도 했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낙서가 사라져 있었지만, 둘은 그런것에 아쉬워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넘실거리는 파도 너머 지평선이 보였다. 문빈이 보고싶어했던 광경이었다.

 

“형 저번에 제 친구중에 바다 좋아하던 애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차은우는 문빈을 응시하며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차은우도 사실 궁금했다. 그 친구가 대체 누구길래, 너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그 친구를 말할때면 그런 표정을 짓는지. 손목을 쓸면서, 바다를 보면서 간간히 보여준 문빈의 표정은 외딴 섬에 떨어져 있는것처럼 너무 외로워보였다.

 

“걔가 저 어릴 때 많이 도와줬었거든요. 걔 없었으면 전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정말 엄청나게 의지하고, 좋아하던 친구였어요.”

 

문빈이 또 다시 손목을 들여다 봤다. 이제는 헐렁하지 않은 팔찌가 문빈의 손목에 자리잡고있었다.

 

“그 친구가, 이 팔찌 우정팔찌라면서 사줬었어요. 앞으로 평생 우리우정 변치 말자면서….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 친구가 저보다 먼저 가버렸어요. 나보고는 죽지말라고 그러더니.”

 

손목을 들어 차은우에게 팔찌를 보여줬다. 조잡하게 실과 비즈를 엮어, 야시장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이 팔찌만 보면 그 친구 생각이 나요.”

 

문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색에 둘러싸인 구름이 마치 바다 위에 뜬 섬 같았다. 너도 같은 풍경을 보고있다면 좋았을 텐데. 문빈은 돌아올수 없는 옛 친구를 생각했다. 이제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면 빛바랜 사진을 보는것처럼 뿌옇게 떠올랐다. 정확히 차은우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 친구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잊고싶은데, 잊지 못해서 눈물 흘리던 밤들이 괴로웠었다. 문빈은 그 친구의 심성을 잘 알기에, 자신이 그 친구로 인해 괴로워하면 그 친구도 괴로워 할것이라 확신할수 있었다. 그래서 더 괴롭고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를 생각할 때 괴로움이 아닌 좋았던 추억으로 떠올릴수 있었다.

 

“근데 이제는 그만 보내줘야 할것같아요. 너무 오래 붙잡고있었어요.”

 

문빈은 어딘가 쓴 웃음을 지으며 차은우를 바라봤다. 이별의 고통은 새로운 인연으로 잊는거라잖아요. 저도 이제 잊어볼려고요. 그 말을 하는 문빈이 너무 쓸쓸하고 행복해보여서, 차은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괜찮을꺼라고 위로해주고 싶은데, 문빈은 이미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빛나고 단단한 사람이 차은우의 인생에 들어온 것은 엄청난 행운일 것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며 차은우는 말없이 문빈의 손을 꽉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꼭 맞잡은 손이 따듯했다. 파도 소리가 심장 소리에 맞추어 들려왔다. 잔잔한 물결 위에 내려앉은 노을빛이 눈부실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노을빛을 받은 문빈은 다른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났다. 차은우는 아마도, 이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이 풍경속에 문빈이 있어서라고 확신했다. 심장박동 소리가 고막을 뚫고 나올 듯 커졌다. 차은우는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라도 너에게 설레는 나는 구제불능이구나.

 

“사랑해, 진짜 많이 사랑해.”

 

차은우의 갑작스러운 사랑고백에도, 문빈은 웃으며 받아주었다.

 

“나도 사랑해요.”

 

문빈에게 차은우는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았다. 그냥 얕은 물에 들어간 것 뿐이었는데 어느순간 자신을 깊은 바닷속으로 끌어들인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숨막히게 했다. 하지만 그 바닷속으로 가라앉아가는 느낌이 싫지는 않아서,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빈은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가면서도 웃을수 있었다. 강들이 흐르고 흘러 만들어 놓은 넓은 바다처럼, 감정이 하나 둘씩 모여 하나의 큰 감정을 만들어냈다. 하류에서 흘러들어왔는지 상류에서 흘러들어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수 없을 여러 감정의 집합이었다. 문빈은 차은우를, 저 드넓은 바다만큼이나 사랑했다.

 

둘은 곧 입을 맞추고는 큭큭대며 웃었다. 새들이 콕콕 모이를 쪼듯이 장난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이내 둘은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 입을 맞췄다. 차은우가 문빈의 입술을 살짝 깨물면, 문빈은 혀로 치열을 고르게 훑었다. 숨과 숨을 주고받듣이, 진득하고 긴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만약 바다에 가라앉으며 익사해도, 둘에게는 이미 자신의 숨을 나눠 줄 사람이 있었다. 길고도 긴 호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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