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Trouble Couple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오비
주제
Double Trouble Couple (힘쎈여자 도봉순)



“춥다.”

 

 한창 분위기가 오른 방에서 나오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고2 수학여행의 마지막 날 밤 다른 방 애들이 우리방에 모여 술을 마셨다. 약간 취기가 올라올 때쯤 여기에 더 이상 있다간 오늘 인간이 아니라 개가 될 것만 같아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빠져나온 김에 호텔 뒤에 있는 바다나 한번 볼 겸 건물 한 바퀴를 돌던 중 건물 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그 사람을 보고 돌아서 가려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물이 너무 의외의 인물이라 나도 모르게 발이 그쪽으로 향하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 옆 실외기에 앉았다.

 

“네가 담배를 피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네.”

“…”

“넌 섬유 유연제 향만 날 것 같이 생겼는데.”

“.. 술 마셨어?”

“어.. 조금? 냄새 많이 나?”

“조금”

“아하..”

“...”

“..”

 

아악!  나 왜 지금 여기 있니? 아니 그보다 나 쟤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정적은 또 뭐야. 나 때문에 불편해하잖아, 헉 어떡하지. 무슨,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다 피웠으면.. 좀 걸을래? 바로 앞에 바단데 밤바다 예쁘잖아.”

아무 말이나 내뱉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아무 말이나 뱉을 줄이야. 죽자..

“.. 그래.”

 

그래.. 그래? 차은우가 오케이를 했다고? 순간 멍해진 나를 두고 차은우가 먼저 바다 쪽으로 향하여 정신을 차리고 차은우를 따라갔다. 

아무 말 없이 바다를 걸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차은우 눈치를 살피려 차은우 쪽을 봤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달 아래 서 있는 차은우가 보였다. 만약 인어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을 정도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미모였다. 지금 예쁘다고 하는 그 어떠한 물건을 가져와도 차은우보다 예쁜 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은우를 보고 있으니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잘생겼다.”

“어?”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잘생겼다는 소리가 나왔다.

차은우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넋을 놓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와 허둥지둥하는 내 손목을 잡고 차은우가 빠르게 근처 바위 뒤로 가서 숨었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는지 주위를 몇 번 둘러보더니 가버렸다. 그 사람이 간 걸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차은우와 동시에 내쉬었다.  

 

“아 다행이다. 들키는 줄. 방금 목소리 학주였지? 죽을뻔했네.”

“그러니깐, 무서웠다.”

“아무래도 이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

“그러게.”

 

봄이긴 해도 바다라 그런지 조금 쌀쌀했다. 조금 추운 것 같기도 하고 외투 입고 나올걸. 생각하고 있을 때 어깨 위로 외투가 걸쳐졌다. 

 

“입어.”

“너도 춥잖아.”

“넌 취했잖아, 그냥 입어.”

“고마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면 다시 어색한 사이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잘 자.”

“너도.”

 

차은우와 헤어지고 숙소에 들어오니 조금 아쉬웠다. 번호라도 물어볼걸, 번호 물어봐 봤자 연락도 못할 텐데. 내 인생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진 남자들은 절대 엮일 일 없는걸.

 

 

 

“자. 다들 수고했고. 주말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 해산.”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며 보이는 벚꽃들에 봄이 왔구나 싶었다. 집에 다 왔을 때쯤 담배 냄새가 났다. 뭔가 어디서 맡아본 적 있는 담배 냄새였다. 어디서 맡아 보았지? 생각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을 보려 시선을 돌렸다. 아, 생각해보니 차은우가 피우던 담배 냄새랑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보이는 인물에 내가 피곤해서 헛것이 보인다 생각했다.

 

“차은우?????”

“.. 어? 문빈?”

“네.. 네가 왜 여기있어?”

“너야말로 여기엔 무슨 일이야?” 

“여기 우리 집..”

 

우리 집을 가리키며 말하자 차은우는 옆집을 가리키며 자기네 집이라 하였다. 머릿속에서 며칠 전 새로 이사 온 옆집이 생각이 났다. 옆집에 사는 내 또래의 애가 잘생겼다고 동생이랑 엄마가 엄청 좋아했던 것도.

 

“너.. 혹시 저쪽 방 써?”

 

손으로 가리키고 말하자 차은우가 그렇다고 했다. 

방으로 올라가자마자 침대로 쓰러졌다. 하필 차은우가 방 창문에서 보이는 방이라니. 365일 커튼이라도 치고 살아야 하나? 아니,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몰라. 그러다가 이상한 꼴이라도 보이면 어쩌려고. 그렇다고 저 엄청난 얼굴을 포기할 순 없어. 어중간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진짜 말로 표현 못 하게 잘생기고 키도 크고 비율 좋은 애를 몰래몰래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포기해. 무심코 돌린 고개에 보인 침대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오늘 당장 커튼을 불태워야겠다 생각했다. 잘생긴 게 최고야 짜릿해.

 

 

 

“진짜 잘생겼다. 미쳤다.”

 

엄마가 시킨 심부름을 하러 마트에 가는 길,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차은우가 보였다. 담배를 피우는 차은우의 모습이 화보였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고 섹시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멋있다고 하는 말을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알 것 같았다.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차은우는 피고 있던 담배를 끄곤 긴 다리로 내게 성큼 다가왔다. 다가오는 차은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은데 바라볼 수 없었다. 너무 잘생겼어.

 

“어디 가?”

“마트.”

“같이 가자.”

“그래.”

 

 

차은우와 나란히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향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차은우는 무서운 걸 못 보고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한다. 귀여워.

 

“다 왔네.”

“그렇네.”

“잘 가”

“응, 너도”

 

대충 심부름 한걸 정리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차은우의 모습에 홀린듯이 침대에 앉아 차은우의 얼굴을 보았다. 

쟤는 어떻게 공부하는 모습마저 잘생겼냐. 공부하다가 잘 안 풀려 찡그리면 그게 그렇게 잘생겼다. 차은우는 지금까지 봤던 동물, 사람들 중에서 제일 잘생겼다. 1학년 때부터 잘생겼다고 말이 많았는데 왜 나는 이제야 차은우를 본 거냐고 1년 동안 저 잘생긴 얼굴을 나만 못 본 거야? 아까워 죽겠네. 

차은우를 보고 있으면 방금 막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이다. 잘생긴데 청순하고 키도 크고 비율 좋고 진짜 이 정도면 국보로 남겨야 하는 거 아니냐. 

 

“문빈! 문빈!!”

“.. 어, 어? 불렀어? 왜?”

“뭘 그렇게 빤히 봐?”

“어? 아냐아냐, 왜 불렀어?”

“혹시 괜찮으면 월요일에 나랑 같이 등교할래?”

 

 

 

알람도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절대로 못 일어나는 시간인데 눈이 떠진게 신기했다. 1층으로 내려가 씻고 교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하였다. 아침에 교복을 입고 거울을 보다니 몇 년 만인가 아니 처음인가? 스스로도 웃겨 헛 웃음이 나왔다. 차은우 때문에 죽어도 못 일으켰던 몸을 일으키다니.

문을 열고 나가니 차은우가 서 있었다. 얘는 어떻게 아침이 봐도 완벽할까. 아침에 보니 더 잘생겼다.

 

“언제 나왔어?”

“나도 방금 나왔어, 가자.”

 

 

 

 차은우와는 등하교는 꼭 같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교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각자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주말엔 같이 놀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가기도 하면서 지냈다. 차은우와 친해진 건 좋은데 요즘 차은우의 얼굴을 보지 않았는데도 차은우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함께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얼굴을 좋아해서 두근거리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낯선 느낌인데 괜히 두근거리면 기분이 좋았다.

 

 

“빈아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어?”

“어 우리 집에서 잔 적은 없었잖아”

“그야 옆집이고..”

“자고 가..”

 

차은우가 그 잘생긴 얼굴로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온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바라보는데 이 세상 그 누군가가 거절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 얼굴에 홀린 듯이 긍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차은우 너무 잘생기고 귀여워. 잘생긴 게 최고야. 

 

“그럼 씻고 와 빈아.”

“응.”

 

씻고 나와 차은우가 놔둔 옷을 입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차은우 방문을 여니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차은우가 보였다. 

 

“은우야 가서 너 씻어”

“어.”

 

차은우가 가자마자 차은우 방을 구경을 하였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과 상장, 트로피들이 보였고 그 옆에 앨범이 보였다. 앨범을 하나 꺼내 열어보자 차은우 어렸을 때 모습들이 보였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얘는 어릴 때부터 잘생기고 귀엽구나. 앨범들을 넘기고 있을 때 보인 건 코팅되어 있는 꽃반지가 있었다. 누가 준 거지.. 설마 첫사랑?, 뭔가 귀여우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뒤로 넘기면 첫사랑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넘기려는 순간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앨범을 책장에 넣고 침대 위로 올라와 아무것도 안 한척 핸드폰만 보았다.

 

“어어 왔어?”

 

방금 씻고나와 나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머리와 살짝 발그레해진 얼굴을 보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어디 아파?, 얼굴이 빨간데?”

 

차은우가 그런 나에게 다가와 그 큰 손을 내 이마 위로 올리는데 심장이 터질뻔했다. 손이 내 이마 위에 계속 있다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차은우를 밀쳐냈다.

 

“얼굴이 더 빨개진 것 같다?”

“아, 아냐 나.. 괜찮아!”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

“혹시 내 얼굴 때문에?”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굳어버렸다. 사실이긴 한데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입에선 아.. 아..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도망갈까? 아니면 뛰어내릴까? 

 

“풋, 장난이야.”

“하..하핳..하하, 자, 잠이나 자자! 이불 깔아줘”

“응? 침대에서 자 내방 침대 넓어.”

“같이 자자고?”

“어, 자자 누워”

 

차은우가 팔을 잡아당겨 나를 침대로 눕혔다. 어떻게 자라는 거야 잘생긴 얼굴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게 자라는 건데.

 

“불 끈다.”

 

조용한 공간에서 들리는 건 차은우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내 심장소리뿐이었다.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는 걸까. 차은우 얼굴이 바로 앞에 있어 부끄러워서 그런 거면 뒤돌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뒤돌아 누워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빈아 자?”

“..”

“너 얼굴로 너무 티 나는데, 내가 언제까지 모르는척 해줘야 하는거야.”

“..”

“잘 자.”

 

 

따뜻하다. 포근하다 안겨있는 것 같아. 안겨있는 것 같다고? 눈을 뜨니 차은우에게 안겨있는 자신이 있었다. 왜 내가 차은우한테 안겨 있는 거지. 가까이에서 보이는 차은우 얼굴은 정말 순정만화 그 자체였다. 좋다.. 좋다는 뭔 좋다야!! 어떻게 일어나지, 차은우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있어서 일어 날 방법이 없었다. 어떡하지.. 조심스럽게 일어나야 하나.. 팔을 올리려 팔을 잡는 순간 차은우가 확 끌어 안았다.

 

“어디 가려고?”

“아.. 아니 일어나야지.”

“좀만 더 자자.”

“일어났으면 일어나라고 차은우!”

 

이날을 기점으로 차은우의 스킨십에 의식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애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음 갑자기 와서 백허그를 한다거나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거나 등의 스킨십을 원래 자주 했었는데 그걸 의식하게 되니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긴장되고 설렜다. 자꾸 왜 떨리는지 긴장하는 건지 주체할 수없이 심장이 뛰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 영화가 말이야..”

“잠깐만 빈아”

 

차은우가 얼굴 가까이로 손을 뻗었다. 이번엔 뭐지.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눈을 감아 버렸다. 차은우는 그저 머리에 있는 벚꽃잎을 떼어주는 것뿐이었는데도 이러다가 터지는 거 아닌 걸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얼굴이 좋은 건데. 차은우 얼굴이 좋은 건데. 얼굴만 좋아하는 걸까..?

 

 

 

“빨리 와, 영화 시작하겠다.”

“미안 미안 줄이 길어서”

 

주말에 차은우와 영화를 보러 왔다. 영화가 시작되고 생각보다 나랑 맞지 않는 내용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차은우 쪽을 보았다. 꽤나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는 차은우가 보였다. 집중하는 차은우의 얼굴은 말이 필요하지 않게 잘생겼다. 근데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잘생긴 얼굴이 좋아서 뛰는 거랑은 다른 거였다.

 

“심장이 뛰어요 다른 의미로요. 당신을 좋아하는 걸까?”

 

들려오는 영화 대사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내가 차은우를? 얼굴이 좋다는게 아니라 차은우 그 자체를 좋아한다고? 아닐걸.. 아닐 거야.

혼란한 마음을 콜라로 달래보려 콜라를 잡으려는 순간 차은우와 손이 닿았다. 놀라 차은우를 보니 차은우도 나를 보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 이렇게 손을 잡고 있을 때 설레고 가슴이 뛴다면 맞아요. 사랑.”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영화의 대사에 넋이 나갔다. 정신을 차리려야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 번에 느껴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빈아? 문빈!”

“.. 어? 어, 어..”

“일단 나가자 빈아.”

 

차은우가 정신이 나간 내 손을 잡고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찬바람을 좀 쐬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미안.. 잠시 딴 상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하하.. 우리 밥 먹을까?”

“그래”

 

무슨 생각을 하냐는 차은우의 말에 침착하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을 돌렸다. 밥을 먹으러 가자고는 했지만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좋아하는게 맞는 확신이 아직 없어서 괜히 나 때문에 어색해질까 봐 표정관리도하고 말이 끊어지면 어색해 질 것 같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어. 빈아 여기 묻었다.” 

“?!?!?!???”

 

차은우가 내 턱 밑에 있는 소스를 손으로 닦아주었다.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지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칠칠맞게 묻히고 먹네 아직 어린애네.”

“뭐래.. 아니거든.”

 

차은우의 말 하나에 행동하나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을 숨기려 해도 점점 드러나는 내 표정에 자꾸만 걱정이 된다.

 

 

 

침대에 자려 누우니 오늘 있었던 일부터 감정들 행동들 하나하나다 생각나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 내내 생각했다. 이러다 잠을 못 자겠다 싶어 찬바람으로 머리를 식힐 겸 창문을 열었다.

 

“시원하다.”

 

창문을 열고 창문에 기대니 봄 바람이 불어와 생각이 가득한 머리가 시원해졌다. 지금까지 뛰던 심장, 우울하고 짜증 났던 기분들, 차은우에게 느끼던 감정들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고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절대 못 일어나던 몸을 일으키고 낯도 심하게 가리면서 먼저 다가갔고 함께 있고 싶었고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했던 내 행동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나는 차은우를 좋아한다. 이 감정을 이해하니 복잡했던 머리가 좀 맑아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머리가 맑아지는 건 좋지만, 나 이제 차은우 옆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지.

 

 

“미안, 빈아 이번 주는 같이 등 하교 못 할 것 같다.”

“왜?”

“체육대회 준비로 바쁘네.”

“학생회는 많이 바쁘구나, 알았어.”

 

어젯밤 차은우랑 이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다행인 건가. 

 

 

혼자인 등굣길은 어색했다. 1년 넘게 혼자 다녔던 길인데 며칠 같이 다닌 애가 없다고 길이 다르게 느껴졌다. 새롭고 이상하고 어색한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차은우랑 걸었을 땐 길이 짧다고 느꼈는데 이 길은 왜 이렇게 길다고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혼자 등하교를 하면서 나 정말 차은우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느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을 때 학교에 엄청난 소문이 하나 나왔다.

 

“대박 차은우 고백받았데.”

 

반 여자애들이 떠드는 소리에 입에 있던 우유를 뿜을 뻔했다. 여자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3반에 엄청 예쁜 여자애가 있는데 차은우한테 고백을 했고 차은우는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귀려나.. 사귀겠지, 저번에 들었던 차은우의 이상형하고 그 3반의 여자애하고 너무 비슷했다. 

우울하고 슬프고 화나가나고 서운한 감정들이 하나로 섞여 정말 말로 표현을 못 할 만큼 기분이 더러웠다. 일주일 내내 보고 싶어 했던 차은우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볼 자신이 없다. 얼굴을 보면 내가 차은우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워졌다.

 

“문빈 너 뭐 나가더라?”

“계주”

“계주 하나 나가냐?”

“어, 나 구기종목은 꽝인 거 알잖아.”

“맞아.. 너 축구랑 농구하는 거 보면 영 아니더라.”

“시끄러, 다음 뭐지? 농구인가? 빨리 꺼져.”

“이 형님 응원 안 해주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널 응원하겠니?, 난 여기서 잘거야.”

“그래 문빈이 그렇지 뭐. 형님 간다.”

“어 가라, 나 하루 종일 여기 있을 거다.”

“밥은?”

“먹을 때 깨우러 와”

“알았다.”

 

친구마저 떠난 교실은 조용했다. 교실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시원해 자기 좋았다. 어제부터 우울한마음이 가지 않은 채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원래 같았음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니며 날아다녔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창밖에 보이는 차은우와 그런 차은우와 함께 있는 소문의 3반 여자애가 보여 기분이 나빠져 창문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짜증나. 차은우도 좋아하는 걸까? 우울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났다.

 

“문빈 일어나.”

“어어..”

“밥 먹으러 가자.”

“가자.”

“계주 1등반은 상금 7만원이래”

“7만원 밖에 안 줘?”

“다른건 다 1등이 5만원인데 계주만 7만원이거든? 우리 빈이 많이 먹고 꼭 1등 해라”

“으응..”

 

점심시간이 끝나고 동아리 애들의 무대가 끝나면 대망의 체육대회의 꽃인 계주가 시작이 되었다. 반 애들이 꼭 1등 하라고 힘내라고 한마디씩 해줄 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차은우는 바쁜지 없었다. 그 여자애랑 같이 있겠지? 기분이 한없이 우울해졌다. 걔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든 말든..

 

 

 

“2학년 각 반 계주 대표들 모여주세요.”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고 결승전을 준비하였다. 스타트는 좋았고 2번째 3번째 주자도 무난하게 잘 뛰어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1등은 따놓은 것이었다. 실수 없이 바통을 받고 반 바퀴를 남겨 놓은 상태였다. 달리다가 보인 차은우와 차은우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차은우의 옆의 여자애에 순간 집중력을 잃고 코너링 하다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손으로 땅을 짚고 버틴 덕에 빠르게 자세를 잡고 뛰어 1등으로 들어왔다. 1등으로 들어왔는데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진 듯 답답하고 아팠다. 

그렇게 체육대회가 마무리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혼자 남았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생각이 정리가 되었는데. 기분이 한없이 우울해졌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들어온 건 차은우였다. 차은우는 긴 다리로 내게 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이끌고 양호실로 향하였다. 양호실 환자용 소파에 나를 앉혀두곤 파스와 붕대 등 이것저것 가져왔다.

 

“아까 계주때지?”

“어..?”

 

차은우가 내 팔을 가리키는 곳을 보자 부어오른 손목이 있었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다는게 신기할 만큼 퉁퉁 부어있었다. 차은우는 파스를 뿌리고 붕대를 둘러주었다. 아무 말 없이 상처를 치료해 주는 차은우가 다정하고 멋있어 괜히 짜증이 났다.

창문을 열어놔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 석양에 비치는 차은우의 머리카락과 얼굴. 지금까지 본 차은우 중에 가장 잘생겼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빈아 집에 같이 갈래?”

“그래.”

 

차은우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을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말이나 할 기분이 아니었다. 점점 집이랑 가까워져갔고 집에 도착해 들어가려는 차은우를 보며 오늘이 지나면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려는 차은우의 손을 잡고 물었다. 

 

“차은우”

“.. 응?”

“너.. 고백.. 받았다며..”

“아.. 응. 받았지.”

“고백받을 거야?”

“..”

“고백,, 받을 거냐고.”

“넌 어쨌으면 좋겠어?”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네가 원하는 데로 하는 거지.”

“그래. 내가 원하는 데로.”

“…”

“빈아, 사귀지 말라고 해줘.”

“..”

“사귀지 말라고, 만나지 말라고 해줘.”

“.. 차은우, 사귀지 마. 만나지 마.”

“응, 그렇게 할게.”

“..”

“..”

“..”

“빈아 내가 너를 친구 그 이상으로 많이 좋아해. 너는 어때?”

“나도.. 네가 좋은데. 나는 널 얼굴을 좋아해서 네가 좋아졌어. 지금은 얼굴뿐만 아니라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이런.. 나도 좋아?”

 

차은우가 내 말을 듣고 실망했을까? 그럴듯한 이유 없이 얼굴을 좋아하다 좋아하게 된 나는 별로일까? 나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봐 실망했을까 봐 겁이 났다. 이대로 차은우가 나 싫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이제 차은우가 진심으로 좋아졌는데. 눈에선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차은우가 내 떨리는 손을 잡아당겨 나를 안아주었다.

 

“네가 내 얼굴을 보고 좋아한 거라면 이 얼굴도 나쁘지 않네. 그런 너라도 좋아해. 빈아, 사귀자.” 

“.. 응, 좋아”

 

차은우는 그 자리에서 내가 눈물이 멈출 때까지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안아주고 달래 주었다. 좀 진정이 되자 쪽팔렸다. 이 나이 먹고 차은우 앞에 펑펑 울다니 쪽팔려, 부끄러워.

 

“들어가서 좀 쉬어 빈아.”

“으.. 응”

 

방에 들어가 문을 꼭꼭 잠그곤 소리를 최대한 참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내가 차은우랑 사귄다니 이게 무슨 말이요!! 내가 좋데 내가 좋데!!!! 나를 좋아한대 그것도 차은우가! 세상 사람들 그 잘생긴 차은우는 이제 제 남친입니다!! 남친? 남친이라고? 차은우가 내 남친이래 어떡하지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설마 꿈은 아니겠지? 볼을 꼬집었는데 아파 아프다고!! 꿈이 아니야. 한동안 이렇게 난리 치고 좀 진정이 되고 잠을 자려 누웠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차은우가 보고싶었고 차은우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고민 끝에 창문을 열었다.

 

“차은우?, 너 왜 안 자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네.”

 

우리는 창문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차은우는 사실 예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언제부터라고는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정말로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학여행 때 내가 다가온 것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또한 내가 얼빠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또한 자신은 그 여자애 이름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자기의 관심은 오직 나라고 했다.  

 

차은우는 일어나 책장에 있는 앨범을 꺼내 앨범 안에 있는 코딩된 꽃반지를 꺼냈다.

 

“문빈은 죽어도 모르겠지. 네가 내 첫사랑이라는걸.”

 

“짜으누!, 너 이거 바다! 그리구 나중에 나랑 겨론해!”

“으응! 비나 좋아!”

 

.

.

.

 

“차은우!! 빨리 와!”

“기다려 빈아!”

 

차은우와 놀이공원으로 데이트를 왔다. 마침 날씨도 맑고 바람도 선선하니 좋았다. 어떤 놀이기구를 먼저 탈까 고민하던 때에 보이는 동물 머리띠에 차은우 몰래 하나 사서 머리에 씌워주었다.

 

“응? 뭐야?”

“동물 머리띠 원래 놀이공원 오면 필수야.” 

“너도 하나 써. 너는 이거 쓰면 잘 어울리겠다.”

“난 이런 거 안 어울리는데.”

“아냐 엄청 잘 어울려 귀여워.”

“뭐래.. 어! 나 저거!”

 

차은우의 손을 이끌고 자로 앞에 보이는 바이킹을 타러 갔다. 가장 뒷좌석에 운 좋게 탔다. 점점 갈수록 높아지는 높이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안전바를 마지막 생명줄인 마냥 잡고 있는 차은우가 너무 귀여워 보였다.

 

“다음은 저거!”

“이번엔 이거!”

“으누야 이거 이거!”

 

 

롤러코스터부터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려 차은우를 질질 끌고 다녔더니 지쳐 보이는 차은우가 보였다. 좀 과했나..? 놀이기구도 못 타는 애를 너무 끌고 다녔나? 

 

“은우야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좀 쉴까?”

“좋아”

 

놀이기구 타러 가자 할 때의 좋아보다 가장 기뻐 보이는 좋아였다. 좀 과했구나 미안하네.

차은우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다. 

 

“나 그거 먹어볼래.”

“자, 나도 네거 먹을래.”

“아-.”

 

차은우에게 내 아이스크림을 내밀다 돌려서 내가 한 입 먹었다. 장난이야 장난하면서 다시 아이스크림을 내미니 째려보았다. 이번에 장난 안 칠게 하며 내밀었다. 그러자 차은우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내 입에 짧게 입을 맞추곤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었다.

 

“맛있네.”

“.. !”

“자아 놀이기구 타러 갑시다.”

 

차은우가 내 손을 잡고는 천연덕스럽게 걸어 갔다. 그런 차은우를 째려보고는 차은우를 따라 걸어갔다. 차은우를 따라 걸어가던 도중 빗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한 방울을 시작으로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비라니. 차은우와 나는 급하게 한 큰 나무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차은우는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고 그 모습이 너무 잘생겼다. 

 

“왜 나 잘생겼어?”

“어, 잘생겼어.”

“이젠 부끄러워하지도 않네.”

“그럼.”

“우리 빈이 많이컸네, 예전엔 물어보면 굳어서는 아무 말도 못 했으면서.”

“언제 적 이야기야.”

“그때가 귀여웠는데.”

“그때가 좋다는 거야? 지금보다? 지금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데?”

 

차은우에게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차은우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 예쁜 눈을 예쁘게 접으며 웃어 보였다. 

 

“설마. 그때나 지금이나 좋지만 지금이 더 좋지”

 

입을 맞추었다. 아까 내가 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길게.

 

 처음엔 차은우의 얼굴만 좋아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렇게 빠져든걸까. 이상하게 내 마음이 녹아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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