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엔 너의 이름으로 가득해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에이치
주제
소행운 (나의 소녀시대)



“진짜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뭐가요.”

“차은우랑 같은 반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고개를 저은 민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중증을 어쩌면 좋아. 빈은 학교 입학식에서 처음으로 차은우라는 존재를 보았고 그 이후부터 저 혼자 처절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외치는 말이 진짜 눈에 차은우밖에 없다는 뜻 같아 자리에서 일어난 민혁이 반으로 돌아가겠다며 떠났다. 꼭, 같은 반. 무조건 같은 반. 자리에 앉은 채로 기도했다. 마지막 기회. 2년이나 끝과 끝 반이라 뒤통수 보는 것도 힘들었던 저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는 줄 수 있잖아.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조심히 눈을 감았다. 제발 이번만큼은 차은우랑 같은 반이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빈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안녕.”

 

웃으며 서있던 차은우의 그 모습을, 빈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엔 너의 이름으로 가득해

에이치

 

 

 

 

 

 

빈의 꿈은 현실이 됐고 그래서 이제 앞으로 행복만 할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은우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하루는 한참을 울었고, 하루는 멍하니 뒷자리에서 은우의 뒤통수만 바라봤다.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으니 포기하더라도 해보기는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들어서였다. 새 학기에 들어선 고3들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바빴고 빈은 다른 애들과 다르게 느긋했다. 같은 반이라도 되면 그래도 말이라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럴만한 일이 없었다. 반복되는 수업과 시끄러운 쉬는 시간, 그 사이에서 은우를 보고만 있어도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다가갈 시간은 안 났다. 친구라도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학교가 끝이 났다.

 

은우는 여자 친구에게도 좋은 애인이었다. 어쩌다 여자친구의 sns를 보면 은우에 대한 칭찬들로 가득했으니까. 빈은 이제 은우와 사랑을 이루겠다는 꿈은 접은 지 오래였고, 그냥 은우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자신과 타협을 봤다. 빈에게 은우는 2년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사람이었다. 어떤 부분에게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진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얼렁뚱땅 지나가던 하루 중에 가장 진중하고 진지하고 정확하게 지나가던 사람. 그게 은우였다.

 

빈은 무언가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주 짧은 말이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우선 적었다. 물론 최근 2년간은 은우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이 가득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끔 새벽에 노트를 열어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좋아한다는 말, 너를 알게 된 이후 나의 삶이 바뀌었다는 말 등등 온갖 좋은 말은 다 써놓은 것 같다. 사랑에 빠진 빈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마구 들뜨고 설렜다. 같은 반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슬픈 말이 가득해진 것 같지만.

 

“빈아.”

“아, 잠시만요.”

“뭘 그렇게 열심히 쓰나 했더니.”

“선생님, 제발요.”

“우선 압수다. 오늘 끝나고 찾으러 와.”

 

선생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빈이 고개를 숙였다. 웅성거리던 아이들도 다시 시선을 칠판으로 향했다. 하필 왜 지금 쓰고 싶은 말이 떠올라서……. 무심코 저도 모르게 노트를 꺼내 평소 그래왔던 대로 글을 썼는데 하필 그때가 깐깐하기로 학교 내에 유명한 사회시간일 줄이야. 그닥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이정도로 정신을 빼놓고 살지는 않았는데. 허망하게 다시 은우의 뒷모습을 보던 빈이 억지로 교과서로 시선을 옮겼다.

 

 

 

 

수업이 끝나기만 목 빠져라 기다리던 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선생님께 가는 것보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기다리겠다는 민혁에게도 먼저 가라는 말을 전하고는 또 기다렸다. 그리고 뛰어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선생님께 들려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은우한테 전해주라고 했는데 못 받았어?”

 

다시 빈이 교무실을 뛰쳐나갔다. 은우가 반장이긴 하지만, 그래서 선생님의 잔일들을 도와 왔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일은, 그 노트만은. 숨이 헐떡일 정도로 뛰어와 급하게 교실 문을 열어재꼈다. 익숙한 뒷모습. 단정하게 정리된 차분한 머리칼. 그 손에는 펼쳐진 공책이 있었다. 숨을 턱 막혔다. 잠시 버벅이다 다시 정신 차리고 빠르게 다가간 빈이 은우가 들고 있는 저의 노트를 낚아챘다.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 사실 저가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겠어 꽉 쥔 노트를 뒤로 숨기는 일밖에는 하지 못했다.

 

“다 봤어?”

“빈아 내가 보려고 본 게 아니라, 그게.”

“왜 봤어?”

“…….”

“왜 봤냐고.”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 은우와 마주 보고 대화하는 일.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필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노트를. 노트 안에 은우의 이름이 있던가, 정신이 없으니 생각도 나질 않았다. 빼앗긴 노트 안에 들어있던 자신의 감정들을 모두 들킨 기분이 드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다 본거야? 그걸 왜 보는데.”

“선생님이 너한테 전해주기 전에 읽어보라고 하셨어. 혹시 이상한 말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화도 났고 속은 복잡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더이상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 불안감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들어 고개를 푹 숙인채로 서있던 빈이 돌아서 자리로 갔다. 가방에 노트를 구겨넣는데 꼭 저의 마음이 구겨지는 거 같았다. 은우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그대로 가방을 매고 교실을 뛰쳐나갔다. 

 

 

 

 -

 

 

 

은우는 그날 이후부터 죄책감에 의해서인지 빈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빈은 그런 은우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노트는 무서워 다시 열어보지 못했다. 그곳에 은우의 이름이 적혀있다면 은우는 저가 한참을 좋아했다는 것을 이미 알테니까. 불안한 마음에 예전처럼 은우를 오래 보고 있지도 못했다. 그저 두려운 것들 투성이였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건 왜.”

“니가 노트에 적었던 거, 거의 좋아한다는 내용이 많아서.”

 

그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는 건가.

 

“내가 도와줄까.”

“뭐?”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사람이랑 잘 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미안한 일도 있고.”

 

어색하게 웃으며 뒷목을 긁적이는 은우의 모습은 하루 종일 은우만 보고 있던 빈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넌 연애중이라고 그렇게 태평하게 말하는 거지.”

“헤어졌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까지도 인스타에…….”

“오늘 헤어졌어. 내가 부담스럽대.”

“응?”

“난 비록 헤어졌지만 너는 나 같은 실수 안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잘되면 좋겠어, 빈아.”

 

좋은 일인가. 갑자기 너무 많은 일들이 몰려들었다. 저가 은우를 좋아하는 걸 들킨줄 알고 미칠 것 같았는데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이와중에 저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차은우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잘 되게 도와준다고 하질 않나 사귀던 여자친구랑은 오늘 헤어졌다고 그러고. 감사해야하는 건가? 누구한테? 차은우랑 같은 반 되게 해준 신한테?

 

“어때? 역시 좀 그런가. 내가 주제넘었지.”

“아니. 아냐. 좋아. 도와줘.”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고, 가끔 만나 은우가 했던 연애의 방식을 알려주는 것. 함께 등하교 하는 것. 저를 도와주는 동안은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을 것. 이것이 빈이 은우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이유들은 간단했다. 도와주는 기간 동안에는 은우가 저에게만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완전히 그렇게 말하기는 좀 민망해 내가 없을 때 니가 나의 시에 대해, 또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떠벌리고 다닐 것이 의심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기회라고 생각해 말했던 여러 가지 제안들을 다 뱉어내고 나서 너무 억지인가 싶어 조금 걱정했는데, 은우는 별말 없이 알았다는 말부터 전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꿈처럼 은우가 저의 집 앞에 있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은우를 보다가 자리에 멈춰선 빈이 살짝 심호흡을 했다. 진짜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너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저가 해왔던 2년간의 외사랑이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게 될 것 같아서. 앞으로 이런식으로 계속 같이 있다보면 은우도 저에게 더 많은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고 빈이 원했던 대로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말에 이렇게 친구를 만나러 나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은우는 빈을 돕기위한 하루라고 생각하겠지만, 빈에게 오늘 하루는 은우를 독점할 수 있는 아주 최고의 날.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손! 손부터 잡아야지."


빈의 말에 조금은 커다란 은우의 손이 자연스럽게 빈의 손을 감쌌다.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킨 빈이 완전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앞을 보았다. 그냥 던진 말들에도 은우는 마치 저가 정말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해주려고 했다. 빈의 정신은 이미 반쯤 나가있었다.


"로맨스 영화 좋아해?"

"막 즐겨보는 편은 아니야.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보려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해서...."

"빈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참 좋겠다."

 

줄곧 잡고 있던 손이 깍지로 변했다. 무슨 뜻일까. 스쳐지나듯 말한 은우의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영화관 내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무엇인가 빠르게 빈의 왼쪽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스크린에 영화 시작 로고가 뜨는데 빈은 하나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정말 은우가 저의 볼에 뽀뽀라도 한거야? 잘못하다 닿은건가? 어떻게 생각하려고 해도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마주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은우와 빈 너나할 것 없이 그랬다. 정말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설렘이 끝도 없이 더해지니 벅차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은우는 착실하게 빈의 옆에 붙어있었다. 정말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것이 저의 연애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 아니라 연애 계약서라도 쓴 것처럼 굴어서 가끔은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착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번의 주말을 함께 거치고 학교에서 몰래 손을 잡기도 했다. 빈은 행복에 절여지는 기분이 들때마다 은우에게 어색하게 말했다. 나중에 그 애랑 꼭 해볼게. 빈이 그렇게 말하면 은우는 대답이 없었다.



-




차은우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차은우라는 사람이 정말 옆에 있다보니까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허전했다. 이제는 제대로 공부를 해야할 시기인데 빈의 머리에는 은우에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으니 공부는커녕 매 순간마다 교과서와 문제집 끝자락에 은우의 이름을 끄적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교실에서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환하게 휘어지며 웃는 은우를 보고 있으면 빈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려 쓰러질 것 같았다. 


그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날이갈수록 은우에대한 감정은 깊어지기만 하는데 은우는 저가 좋아하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만 있을거라고 생각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은우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두려워졌다.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화가나거나 저를 다신 보지 않겠다고 말하면? 이상하게도 빈이 은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그 끝은 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빈은 다시 은우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일 그 애에게 고백할거라고. 이젠 저와 그런 일들 더이상 하지 않아도 좋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겁쟁이인 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은우의 뒤에서 은우를 훔쳐보는 것만이 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얼마간 은우와 함께했던 꿈같은 데이트들은 정말 꿈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에 묻어두면 된다고, 그렇게. 


그런데 빈의 말을 들은 은우의 표정은 꼭 화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다시금 불안감으로 차올라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은우가 어떤 말을 뱉어도 최악의 상황으로 갈것만 같아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빈이 니가 좋아하는 사람, 나잖아."


그리고 들려온 은우의 말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저의 노트를 들켰을때처럼 모든 것이 드러난 기분. 그래, 그 노트 때문이야.


"어떻게 안거야?"

"그냥, 느낌이 그랬어."

“설마 너 내 노트에 니 이름 있었는데 지금까지 모른 척한 거야?”

"......."

"그럼 나 가지고 논거야?"


배신감이 들었다. 그게 은우에 대한 감정인지 저에대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노트에 내 이름 같은 거 없었어.”

“근데 어떻게 알았어.”

“……그러게.”


어떠한 말도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상대에게 들켰음에도 전혀 기쁘지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은우의 마음은 빈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겠으니까. 저와 그동안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은우는 저의 마음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역시, 저를 좋아하지 않는거겠지.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빈이 은우의 말에 멍해졌다. 바닥에 발끝을 툭툭 치며 할 대답을 골랐다. 은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걸 계속 바랬더니 이뤄진거라고 믿고 싶어.”

“왜 그런 생각을 한건데. 너 나 좋아해?”

“응. 좋아해, 빈아.”

“니가 왜 날 좋아해. 말도 안 돼.”

“너의 따뜻함에 반했나봐. 너의 시에 있는 그 글들이 너무 좋았어. 그리고 너랑 같이 있다보니까, 넌 그 따뜻한 시 같은 사람이었어.”

 

은우의 마지막 말까지 들으니 결국 눈물이 터졌다. 은우를 좋아하던 그 2년간의 시간들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는 기분이 들어서. 무엇보다 저가 그토록 이루고 싶던 짝사랑의 끝이 최악이 아니라 행복할 것만 같아서. 빈의 눈물을 본 은우는 천천히 다가갔다. 꼭 놀라지 않아도 된다고, 늦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빈을 끌어안은 은우가 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제 그 노트에 진짜로 내 이름 적어주면 안될까?”

 

 

 

*** 

 


 

처음엔 호기심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은우는 궁금했다. 그 시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선생님께 노트를 받아들고 교실로 돌아오면서, 은우는 찬찬히 노트를 넘겨보았다. 갖가지 낙서들이 가득했고 조금 더 넘겨보니 본격적으로 문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끔 심하게 휘갈긴 글씨가 있어 제대로 못 알아본 말도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는 글들이 보이는 순간부터 은우는 머리가 멍해졌다.

 

 

나의 마음엔 너의 이름으로 가득해.

너만 생각하면, 너만 바라보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내가 너로 인해 행복하니까 넌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존재니까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떤 사람 옆이라도.

널 알게 된 건 정말 행운이야.

 

 

어떻게 보면 흔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구나. 빼곡히 적힌 글들은 주로 시 형태였는데, 좋아한다는 말이 많았다. 온통 사랑한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로 가득 적힌 노트를 한 장씩 넘기면서 은우는 처음으로 설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빈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겠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은우는 저도 모르게 든 생각을 지워냈다.

 

노트 끄트머리에라도 ‘차은우’라는 그 이름이 적혀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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