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중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모해
주제
홍연 (역적 : 백정을 훔친 도적)
 

 

봄이 오면 보연당에는 꽃비가 내렸다. 보연당에 대군이 기거하기 전까지 동민은 그곳을 거닐기를 즐겼다. 

  

“홀로 거니는 것도 충분하다 여겼는데…”

“…….”

“친우와 오니 더욱 좋구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뒤를 쫓는 빈의 귀가 붉었다. 내리는 꽃비와 꼭 같은 색깔로 물든 것이 흡족했다. 대군이 태어난 이후로 궁에 온전한 제 것은 없었다. 동민이 아는 모든 이들은 그가 가진 것들이 제 주인을 찾아가기 전 잠시 머무는 것뿐인 듯 굴었다. 모르는 이들은 그가 모든 것을 가졌다 말하겠으나, 기실은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동궁전, 세자의 자리, 그의 곁에 머무는 궁인들까지… 온통 대군에게 빼앗길 것들뿐이었다. 

  

“빈아.”

 

 이 아이만 빼고.

 

 부름에 조심스럽게 시선을 맞추는 모습이 예뻤다. 진심으로 웃어본 지가 까마득한데, 이 아이를 만나면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샜다. 빤히 바라보자 눈을 굴리는 모습이 겁을 집어먹은 토끼 같았다.

 

 “나를 홀로 둘 셈이냐.”

“예…?”

“이리 가까이 오거라.”

  

다가올 생각도 않고 시선을 피하기에 손을 잡아끌어 곁에 두었다. 손을 빼내려 바르작대면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곧 빈이 가만히 손을 내어주자, 흡족한 듯 웃은 동민은 그 손을 맞잡은 채 보연당을 거닐었다. 

 

 “전하께서 네게 대군의 호위를 명하셨다지.”

“…예, 저하.”

“잘된 일이구나.”

  

바람이 불어 꽃비가 쏟아졌다. 피어도 한 철일 것을, 이리 애써 피어날 이유는 무엇인가. 떨어지는 꽃잎 속에 져물어 갈 또 한 생명을 떠올렸다. 

  

양현대군, 나의 아우,

 림아, 너의 무덤은 보연당이 좋겠구나.

  

생각을 마친 동민이 빈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월하노인을 아느냐.”

“인연을 맺어주는 신이 아닙니까.”

“서로 인연인 이들은 손에 월하노인의 붉은 실이 매여있다고 하더군.”

  

동민이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빈이 아쉽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동민은 천천히 손을 미끄러트려 빈의 손가락을 하나씩 훑었다. 큰 손이 새끼손가락에 닿았다가 손등을 타고 올라와 소매 속에 감추어진 손목을 잡자, 빈은 눈에 띄게 굳었다. 동민이 손목 안쪽의 연한 살을 엄지로 살살 매만지며 물었다.

 

 “너와 나의 연은 어떨지…”

“…….”

“생각해 본 적 있나.”

  

빈이 마른 침을 삼켰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득해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빈은 한참 망설이다 힘겹게 음성을 틔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자신과 친우가 되고 싶다 했을 때부터, 친우가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궁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세자를 가까이하지 말라 일렀던 말도 까맣게 잊을 만큼 그에게 현혹되었다. 잔인한 성정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는 제게 봄날과 같이 다정했으며, 고요히 미소짓는 낯은 내리는 꽃비처럼 아름다웠으니까. 

  

제겐 그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많으나,

  

“…그래? 아쉽구나.”

  

사랑하지 않을 힘은 없다.

  

“나는 늘…”

  

그러니 어찌,

 

 “생각하는데 말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민이 손을 깍지 껴 잡자, 붉어진 얼굴이 참 알기 쉬웠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주변에선 늘 무표정하여 속을 알 수 없다 한다던데, 어찌 제 앞에선 이리 쉽게 속을 들키는가. 그런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이를 속일 순 있으나, 저를 속이진 못할 테니. 그가 처음부터 저를 위해 만들어진 제 것인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신 따위는 믿지 않는데, 정녕 월하노인이 장난질이라도 친 것인가. 

  

붉은 뺨에 내려앉은 꽃잎을 거두었다. 손에서 날아가는 꽃잎을 보며 동민은 나지막히 물었다.

  

“너는 대군의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

“나의 사람이 될 것이냐.”

  

듣지 않아도 대답을 안다 하면 오만일까. 알면서도 물은 것이긴 하지만,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어떤 마음은 입 밖으로 낼 때 확실해지기도 하는 법이니.

  

“저는… 처음부터 저하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가진 온전한 제 것.

  

만족스러운 대답에 동민은 조용히 웃으며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 손에 들어온 이상 놓아줄 생각도, 빼앗길 생각도 없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

   

자그마치 십 년이었다. 동민이 림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 것은.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에는 그를 꼭 죽여 없애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더군다나 림은 보위엔 관심이 없는 듯 굴었으니, 이대로만 굴어준다면 살려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때로는, 존재만으로 죄가 되는 이가 있는 법이다. 림이 태어나자마자, 모두가 저를 비난하는 눈초리로 바라본 것처럼. 반쪽짜리 혈통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처럼. 자신은 그저, 살아가고자 했던 것뿐인데. 

 서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죄였다. 그러니 어찌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멍청한 대비 덕에 역모의 증좌는 차고 넘쳤다. 림에게는 불행이었고, 동민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언제든 그들을 칠 수 있었으나, 기다렸다. 맹수가 사냥할 때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리듯. 빈에게 대군의 움직임에 대해 보고받으며, 대군을 지지하던 세력이 점차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을 관망하며. 일이 이리 순조로우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동민은 잔잔히 미소를 띤 얼굴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우의 기일은 언제가 좋으려나. 보연당의 봄을 아꼈으니, 꽃이 만개할 때 너의 장례를 손수 치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러려면 서둘러야겠지.

  

“이제 때가 되었다.”

  

날이 밝는 대로 대비전과 보연당의 유폐를 명할 참이다. 대비전과 보연당의 출입을 엄금하라는 내용의 교서를 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아라.”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는 동민의 모습에 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십 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면서 문득 그가 낯설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너에겐 뭐든 답해줄 테니.”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듯 굴 때나,

  

“…대군을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대군의 이야기가 나오면 무섭도록 눈빛이 가라앉을 때.

 

  

자신을 바라보며 짓던 온화한 미소는 간 데 없었다. 툭, 툭. 손가락이 일정하게 내려앉았다. 사납게 치켜뜬 눈이 그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 

  

“걱정이라도 하는 건가.”

  

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 외로운 등이 떠오른다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를 것이 뻔했으니. …사실은 어떤 대답을 내놓는다 해도 그럴 테지만.

문제라면, 침묵이 때로는 더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동민의 눈이 빈을 꿰뚫을 듯이 빛났다. 

  

“죽이겠다면,”

“…….”

“나를 원망할 텐가.”

 

 동민은 집요하게 빈을 바라보았으나, 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다.

  

“…저는 전하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참을 내뱉었으나, 내뱉는 단어마다 죄책감이 서렸다. 그를 원망할 수 없다. 연모하는 이를 어찌 원망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하오나…”

“…….”

“아무것도 막지 못한 저를 원망할 것입니다.”

  

그를 향한 원망까지 모조리 제가 짊어지게 되겠지.

  

 

동민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늘 선을 지키던 빈이 처음으로 선을 넘은 게 대군을 위해서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 그의 방식이라면, 거짓말로 빈의 눈을 가리기라도 할 텐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심기가 뒤틀렸다. 연민인지, 연모인지 모를 그 마음을 철저히 밟아놓고 싶었다. 그의 모든 마음이 제게 쏟아지길 원했다.

  

“죽이지 않겠다.”

“…….”

“네 눈앞에서는.”

  

그게 설령 원망이라 해도.

 

  

잠시 기대를 품었던 빈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이제 대군에게 호위 따윈 필요 없을 테지.”

“…전하.”

“문 빈.”

 

 경고하듯 뱉는 목소리의 온도가 낮았다. 

  

“그대는 지금부터,” 

“…….”

“짐의 곁을 한 시도 떠나지 말라.”

  

부딪히는 시선이 빈을 집어삼킬 듯했다. 검게 빛나는 두 눈에 빈은 차라리 잠겨 죽고 싶었다. 내일을 맞이할 자신이 없다.

  

 

-

  

 

잔인한 아침이 밝았다. 자신과 어머니가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림은 배신감에 몸부림쳤다. 지난 세월을 동민이 바라는 대로 살았다. 자신을 죽이고, 감췄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욕심이나 희망 따위는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던 것처럼. 그렇게 그저 살아가기만 한다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형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안다면 내게 이럴 수 있을까. 그저 살아가기만 바랐던 나를 어디까지 밟을 셈인가.

  

“형님을 만날 것이다.”

  

성급한 발걸음을 금군들이 막아섰다. 비키거라. 낮게 으르렁대듯 하는 말에 금군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가실 수 없습니다.

  

림이 그들을 밀친 뒤 보연당 밖으로 나가려 하자, 금군들이 그의 양팔을 잡아 제압했다. 림은 금군들에게 끌려가며 외쳤다.

 

 “형님, 어찌 이러십니까…!”

 “어찌 제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형님…!! 형님!!!!”

 

 울부짖는 목소리가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듣는 이 없는 외침은 애처롭게 흩어져 보연당의 담을 넘지 못했다. 시절도 모르고 만개한, 무정한 봄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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