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상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모해
주제
홍연 (역적 : 백정을 훔친 도적)


홍연紅緣
 

w. 모해

 

 

 

*배경은 가상의 조선입니다.

 

  

 

고운 시절이었다, 당신을 처음 만났던 때는.

  

“이름이 무엇이냐.”

“문가의 빈이라 하옵니다.”

“문 빈….”

  

당신은 이름을 새기듯 작게 되뇌었다.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 나오는 당신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좋은 이름이구나.”

  

생각을 마친 당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미소에 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당신 앞에 서면 늘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감히 눈에 담을 수 없어서였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감히 마음에 담을 수 없어서였다.

 고운 것은 시절이었을까, 당신이었을까.

  

-

   

세자였던 윤성군(圇聖君)이 즉위한 지 7년, 나라는 가히 태평성대였다. 적자인 양현대군(襄炫大君)의 존재를 들어 그의 즉위를 반대했던 대신들조차 이제는 대군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윤성군이 성군의 자질이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실은 그의 동생인 양현대군이

  

“대군마마!!!!!”

  

통제 불능 개망나니였기 때문에.

 

 양현대군이 머무르는 보연당(保嬿堂)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가 외출을 삼가라는 어명을 매일 같이 어기고, 저자로 나가 일탈을 일삼는 탓이었다. 시정잡배와 어울리질 않나, 마작을 하다 입고 있던 옷을 죄 빼앗기고 거지꼴로 돌아오질 않나, 만취한 채로 호위무사에게 업혀 돌아오질 않나…. 그가 일삼는 일탈을 죄 나열하자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으니, 그를 십 년째 모시는 허 내관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갔다.

  

“허 내관~ 안 잤네?”

 

 오늘도 술에 절여지다시피 해서 호위무사의 등에 업혀 왔다. 허 내관은 버선발로 대군에게 달려가 도끼눈을 뜨고 말했다.

  

“대군마마께서 또! 사라지셨는데, 제가 잠이 오겠습니까?”

  

대군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실실 웃으며 무사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십 년째다, 십 년째….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허 내관이 이마를 짚는데, 무사가 나직히 말했다.

  

“우선 들어가는 게 나을 듯합니다.”

 

 허 내관이 안으로 들어 이부자리를 봐주자, 무사는 그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뒤척이는 그를 보며 허 내관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언제 철이 드실는지, 원….”

“…….”

“무관 나리도 마마 좀 말려주시오. 매일 붙어 다니면서 어찌 한 번을 말리지도 않고 마마께서 하자는 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허 내관의 볼멘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게 허락된 임무는 대군마마를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다운 대답에 허 내관은 고개를 저었다. 예, 예. 어련하시겠소. 둘을 남겨두고 나가며 허 내관은 한껏 목청을 높여 말했다.

 

 “그럼 오늘 밤도 잘~ 아주 잘~ 지키시오.”

  

닫힌 문 너머로 허 내관의 성난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무사는 누워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얼굴이 희게 빛났다. 약관을 넘기고부터는 제법 사내의 태가 났으나, 이렇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때는 꼭 십 년 전처럼 앳되어 보이기만 했다.

  

잠든 얼굴을 한참 바라보는데, 그가 소리 없이 눈을 떴다. 술기운이 가신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취하지를 않은 건지. 그는 꽤 또렷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대군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빈아.”

 

 그의 음성으로 듣는 제 이름은 늘 낯설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인가. 그가 불러주는 제 이름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예.”

 

 그래서 항상 한 박자 늦게 대답하게 되었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대군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무감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네가 보기에도 내가 답답한가.”

“…….”

“한심한가.”

  

그의 뜻을 모르지 않는다.

어느 여름밤, 제게 스치듯 말한 것을 기억한다.

  

“보연당의 뜻이 뭔지 생각해본 적 있나.”

“아름다움을 간직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찰나에 흩어질 바람처럼 그는 웃었다.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편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 편안한 삶에 만족하라는 일종의 경고지.”

  

쓰디쓴 것을 머금은 듯이 웃었다.

  

“그래서 나는… 형님의 뜻을 따를 생각이야.”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는 무언의 어명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 뜻을 감히 헤아린다 할 수 없었다. 무감한 목소리가 사무치게 아팠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대답을 들려주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

“한순간도, 그리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느리게 깜박이던 눈이 빈에게로 향했다. 두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오롯이 고요 속에 있었다. 찰나가 영원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적막을 깬 것은 대군이었다.

  

“…너만 그리 생각하면 되었다.”

  

이내 돌아눕는 너른 등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것은 그가 세상천지에 홀로인 탓인가, 아니면….

  

“이만 물러가 쉬어라.”

“…예.”

  

 

빈은 문 앞을 지키다 한 시진이 지난 후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군졸들의 눈을 피해 약속장소에 도달하자, 한 내관이 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빈은 익숙하게 그를 따라갔고,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대전이었다.

  

“앉거라.”

  

빈이 짧게 예를 갖추고는 대답했다.

  

“…예, 전하.”

 

 화려한 용상에 앉은 이를 보며, 빈은 외로워 보이던 누군가의 등을 떠올렸다. 

 

 “이제 때가 되었다.”

 

 툭, 툭. 일정하게 내려앉는 손가락을 보며, 그가 외로운 것이 정녕 누구의 탓인지 생각했다.

 

 그가 세상천지에 홀로인 탓인가, 아니면

내가 그의 적을 사랑하여 그를 홀로 두는 탓인가. 

 

어느 쪽이든 내 탓임은 변하지 않았다.

  


-

  


윤성군이 가진 성군의 자질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세자는 영민함, 뛰어난 학식과 무예 등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 그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예민하고도 잔인한 성정이었다. 세자 앞에서 발걸음 소리, 숨소리 한 번 잘못 내었다가 목이 날아간 궁인이 한 둘이 아니었다. 후궁이었던 어미가 원인 모를 병을 앓다 죽은 데다 선왕은 그에게 품 한번 내어주지 않고 늘 꾸짖기만 했으니 그리 독하게 큰 것이라는 이야기가 궁내에 자자했다. 

  

그런 세자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양현대군이 태어나고 몇 해가 지난 후였다. 선왕은 유독 양현대군을 예뻐했다. 어미와 아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양현대군은 당연한 수순인 듯 밝고 온화한 성품으로 자랐다. 궁인들은 틈만 나면 그와 윤성군을 비교했다. 제 형과는 딴 판이라 말하는 입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궁에는 벽에도 눈과 귀가 있는 법. 그 소문을 윤성군이 모를 리 없었다. 

 그 날도 그는 자신과 양현대군을 비교하며 입방아를 찧어대는 나인들을 그저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왜

  

“비례물시(非禮勿視)하며, 비례물청(非禮勿聽)하며, 비례물언(非禮勿言)하며, 비례물동(非禮勿動)이니라.”

“…예?”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

“새겨들으실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소년이 그를 감싸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동그란 소년의 뒤통수를 윤성군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나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세자 저하…!”

  

그제야 뒤돌아본 소년이 그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그리 당돌하더니. 피식 웃은 세자가 그를 향해 말을 뱉었다.

  

“너.”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자꾸 웃음이 샜다.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가리키는 모습에 대답했다.

  

“그래, 너.”

“예, 저하.”

“따라오거라.”

  

충동이었다, 소년을 동궁전으로 들인 것은. 

  

 

동궁전이 신기한지 예를 갖추는 것도 잊은 채 시선을 돌리기 바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문가의 빈이라 하옵니다.”

  

문가라면 대대로 무관 집안이 아닌가. 대군의 친우로 제 또래를 궁에 들이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문가일 줄은 몰랐다. 적자라는 명분도 모자라 이제 그 손에 검을 쥐어주려 하시는 건가. 기분은 바닥으로 추락했으나, 나쁘지 않았다. 그 패를 제가 먼저 읽었으니. 

 툭, 툭. 손가락을 까딱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앉아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문 빈….”

  

아바마마가 선택한, 장차 동생의 검이 될 아이.

  

“좋은 이름이구나.”

 

 당신 뜻대로 되진 않을 것입니다, 아바마마.

  

“내 이름은 이동민이다.”

“어찌 감히 저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너와 친우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빈아.”

 

 그것이 양현대군이 되었든, 이 아이가 되었든.

  

 

그때부터였다, 윤성군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보였던 잔인한 면모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궁인들에게 너그러워졌으며, 큰 실수에도 미소를 보이며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궁내에는 윤성군이 온화함을 연기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으나, 몇 해가 지나자 사라졌다. 온화하고 곧은 성품이었던 양현대군이 일탈을 일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윤성군과 양현대군에 대한 평판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항간에는 둘의 혼이 바뀌었다는 둥 윤성군이 대군을 물들인 거라는 둥 많은 소문이 떠돌았으나 진위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중궁전에서 나를 시해하기 위해 쓴 사특한 부적이다.”

“형님…!”

“내 생모를 없애기 위해 독초를 썼다는 증좌도 있다.”

“…….”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제발 어마마마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던가.”

“형님, 어찌…!”

“림아.”

“…….”

“나는 그 이유를 네가 만들어줄 수 있을 듯한데….”

“…….”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둘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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