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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망간
주제
삼촌천당 (보보경심)

 

 

 

삼척도호부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다. 한양을 떠난 지 달포만의 일이었다. 잔잔하던 바다가 부지불식간에 흉포한 발톱을 드러내었고, 사공의 작은 낚거루는 그것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배가 뒤집히고 곧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었다. 시야가 점차 흐려지던 와중에, 사람의 손이 몸을 낚아채는 것을 느꼈다. 일순 함께 배에 오른 사공일 것이라 짐작하였으나, 정신을 놓기 직전 마지막으로 시선 끝에 걸린 것은 인간의 다리가 아니었다. 푸른 비늘이 촘촘히 덮인, 커다란 어류의 꼬리였다. 

 

깊숙이 삼켜버린 물을 내뱉으며 다시 눈을 떴을 때, 한 소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학(志學)을 막 넘겼을까 싶은 앳된 얼굴은 걱정과 당혹으로 물들어있었으며, 머리칼은 목련과 같이 하얗고 눈동자는 흑단과 같이 검게 빛났다. 기이한 생김새였으나 이양인은 아니었다. 등이 배겨 몸을 일으키니, 내가 있는 곳이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작은 바위 위임을 그때야 알았다. 은은하게 내린 달빛이 바다와 그 소년을 마치 한 몸인 양 보이게 했다. 나는 은인에게 마땅한 감사의 말을 전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침묵을 지켰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귀 뒤에 솟은 어기(魚鰭, 지느러미)와, 벌거벗은 몸 아래 길게 늘어진 꼬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팔도유람을 시작한지 여러 해인지라, 온갖 진귀하고 신묘한 것들은 질릴 만큼 보았다 여겼으나 그런 것은 처음이었다. 산해경(山海經)과 같은 고서에서나 볼 수 있던 허구의 존재가 아니던가. 일찍이 양자강에서 보았던 강돈 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묘묘한 달빛이 나를 홀린 것인가. 혹은 내가 이미 죽어 천상의 것을 조우한 것인가. 

 

인간을 닮은 바다의 짐승은, 달빛이 모두 스러지기 전 두 팔을 뻗어 다시금 나를 심해로 이끌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힘에, 저항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더는 모았던 숨을 참을 수 없어 입을 벌리려하자, 그 교인(鮫人)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숨을 나누어주듯 입술이 마주 닿으니, 그때부터는 마치 그곳이 뭍인 양 자유로이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다만 헤엄을 치는 것에는 재주가 없어 이리저리 그 짐승의 손에 이끌려 다닐 뿐이었다. 깊은 바다 속에서도 시야가 선명했다. 산 자라면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있었을 텐데도, 훗날 이때를 떠올리니 기억에 남는 것은 오직 그 교인의 모습뿐이었다. 옥빛을 내는 꼬리는 비단과 같이 부드럽게 흐르고, 상투도 틀지 않고 그저 길게 늘어졌을 뿐인 머리카락은 물살을 따라 헤쳐졌다.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상체는 군데군데 흉터처럼 비늘이 솟아있었다. 

 

해가 떠오를 때 쯤 뭍에 닿았다. 인적이 드문 동굴 근처에서 교인이 나를 배웅했다. 그제야 입을 떼어 첫마디를 건넸다.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교인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옅게 웃고는 뒤돌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긴 꿈을 꾼 것만 같았으나, 손 안에 그의 비늘 한 점이 떨어져있었다. 햇빛에 비추니 그 빛깔이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 

 

물속에서는 한없이 가벼웠던 몸이 뭍에 나오니 되레 추를 단 듯 무거웠다. 젖은 옷가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도 없이 겨우겨우 발걸음을 떼다보니 한양에서 데려온 몸종이 나를 발견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고뿔이라도 들면 어쩌느냐며 온종일 유난이었다. 

 

그 날 이후,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그 교인과 헤어진 곳을 찾았다.

 

 

 

 

 

 

 

 

*

 

 

 

 

 

 

 

 

“이 부분이 매화선생의 유람일지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파트일 겁니다.”

“그런가요?”

“네. 아시다시피, 이 얘기를 관광산업에 차용하기도 하니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어 같은 신비한 이야기에 끌리는 법이죠. 뭐, 뜬금없이 환상 속 동물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이 유람일지 전체가 사실은 다 새빨간 거짓이네 어쩌네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요.”

 

“은우 씨는요?”

“저요?”

“저는 은우 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요.”

 

 

은우는 며칠째 빈의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손님이자 아직 덜 여문 어린 작가였다. 빈을 제 또래로 생각했는지 제법 편하게 대했다. 덕분에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간혹 있었다. 은우는 그때마다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오늘의 이야기는 그가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의 원안이 된 고서적이었다. 

 

 

“글쎄요, 확실히 인어라는 소재는 섣불리 믿기가 힘들죠.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날 도원대군, 매화선생이 특별한 누군가를 처음 만난 것은 틀림없을 겁니다. 저는 이게 어떤 은유가 아닐까 해요.”

“은유라는 건, 어떤?”

 

 

“당연히, 숨겨둔 정인이겠죠.”

 

 

은우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도원대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은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빈의 게스트하우스에 난 창과 멀지 않은 거리에 녹슨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보기 드물게 남성의 모습을 한 인어상이었다. 

 

 

“아, 도원대군의 필명이 매화인 건 이미 알고 계시죠? 몇 년 전에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저 동상이 세워졌으니까요. 조선의 왕자를 구한 의로운 인어전설이라느니, 하면서.”

“네, 덕분에 한동안은 장사가 꽤 잘 됐었어요.”

 

“도원대군은 굉장히 재밌는 인물이죠. 아버지는 역모로 죽임을 당하고, 그 주범의 손에 방치되듯 길러져 약관이 넘어서야 제 아비가 누구인지 알았다고 해요. 역모만 아니었다면 왕이 되었을 인물이나, 엉뚱하게도 덕분에 한양을 뒤흔든 염정소설가가 되었죠.”

 

 

 

빈의 게스트 하우스는 몇 번인가 내부공사를 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낡은 집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에는 관광지와 애매하게 거리를 둔 외진 곳이었고, 당연하게도 빈의 집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약 4년여 전, 소실되었던 19세기 무렵 사초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세간이 잠시나마 떠들썩해졌던 일이 있었다. 역모로 아비가 폐군되어 왕위를 세습 받지 못한 비련의 왕자, 도원대군 이림에 관한 내용이었다. 도원대군은 출궁해 사가에서 살며 이곳저곳을 유람하며 살다 서른이 되기 전 원인모를 병으로 생을 달리한, 교과서에 딱 한 줄로 지나가는 인물이었다. 출궁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는 바가 거의 없었으나, 그가 입궁해 형님과 나눈 대화 등은 사관의 손에 의해 남김없이 쓰였다. 

 

발견된 사초는 그 대화록 중의 하나로, 이제 더는 염정소설은 쓰지 않느냐는 애정 어린 농담이었다. 우애 깊은 형제로 자라온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한 ‘매화선생’은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여염집 아낙들이 매화의 서책을 읽고 집을 나가니, 도성이 온통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들의 원성으로 뒤덮였다’는 말이 돌았던 알아주는 염정소설의 대가였다. 비록 지금은 그가 염정소설 대신 집필한 유람일지가 당시의 생활상 등을 연구할 때에나 쓰이는 정도지만 말이다. 그마저도, 은우가 말한 바대로 문제의 ‘인어’ 때문에 전체 유람기의 진실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그 ‘매화선생’이 사실은 조선의 왕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갑작스레 빈이 살고 있는 곳을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시에서 한껏 들떴더랬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굴이 이 근교가 아닐까 하는 추측 때문이었다. 동상을 세우고,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를 설치하고, SNS 홍보를 하기도 하고. 처음엔 관광객이 제법 왔다. 그러나 채 일 년도 가지 않아 사람들은 흥미를 잃었고, 발길은 뜸해졌다. 그 와중에 은우가 찾아온 것이다. 인어가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말이다.

 

 

 

“매화선생은 그 인어가 이양인은 아니라고 말했으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아니었죠. 조선은 기록의 나라니 알비노라도 있었다면 어디에든 기록이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이 인어의 흰 머리카락은 염정소설가 매화가 깔아놓은 일종의 장치인 셈이겠죠. 인물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싶을 때 남과 구별되는 외양적인 특징을 넣는 것은 아주 흔한 기법이니까요. 후에 인어가 뭍으로 나오면서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었다는 묘사는, 글쎄요. 그만큼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걸 표현한 게 아닐까요. 유람기를 쓰며 문체가 사뭇 변하긴 했으나, 이런 것에서 옛 버릇이 나와 버린 거겠죠.”

 

 

 

은우는, 가장 크게 창이 난 2층 방을 택했다. 처음 이틀간은 그곳에 처박혀 숨은 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있다가 빈의 게스트하우스에 자기 외의 손님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종종 밖에 나와 글을 썼다. 간혹 그는, 인어상 옆에 우두커니 세워진 벤치에 가만히 앉아 몇 시간이고 군데군데 색이 바랜 동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빈은 1층의 공동부엌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가끔은 눈이 마주쳤고, 그럴 때면 은우는 머쓱하다는 듯이 웃고는 길을 건너 빈의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은우에게 빈은 식사를 권했고, 오늘도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애정을 감추지 못한 거예요. 그걸 제게 들킨 겁니다.”

“글을 쓰시는 분이라 그런가,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빈이 그렇게 말하자, 바로 전까지 확신에 찬 표정을 짓던 은우는 이내 푸스스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하죠. 저는 예전부터 이 인어 얘기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처음 읽었을 때부터, 굉장히 노골적인 사랑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바다에 빠진 왕자와 그를 구해 사랑에 빠진 인어,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요? 동서양이 가지고 있는 인어에 대한 환상이 그 시절에도 비슷했다는 것도 재미있죠. 두 이야기를 놓고 보다보면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결국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물거품이 되었지만, 이림의 인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요. 평생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지만 결국 이림은 죽어서조차 그의 곁에 가지 못했으니, 대군의 인어도 물거품처럼 사라졌을까요?”

“은우 씨, 틀렸어요.”

“네?”

“이림은 그 인어를 그리워하지 않았잖아요. 유람일지는 저도 다 읽어봤지만, 매화가 한양에 돌아간 이후부터는 그 얘길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아뇨, 매화는 그에게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빈이 의자를 뒤로 빼 몸을 일으켰다. 대화를 하느라 식사 속도가 더뎌져, 음식이 거의 반 정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평소 먹성이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은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빈을 올려다보았다.

 

 

 

“더 안 드세요?”

“오늘 속이 별로 안 좋네요.”

 

 

 

이 작고 외진 곳이 관광지로 탈바꿈하려 발악하던 때, 빈은 어딜 가든 도원대군과 인어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근처 상인들이 이제야 먹고 살 길이 열렸다며 내내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관광객이랄 게 거의 없는 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아둔하고 젊은 청년에게도 잘 됐다며 꼭 한 마디씩 말을 건넸다. 빈은 그때마다 예의껏 웃어보였지만 그뿐이었다. 하필이면 그 유람일지 속 인어상이 길 하나를 두고 자신의 게스트하우스 앞에 지어졌을 때도, 도로변을 따라 매화나무를 심었을 때도, 늘 비어있던 게스트하우스가 손님으로 꽉 찼을 때도, 빈은 기쁘지 않았다. 

 

 

 

 

“…은우 씨는 왜 하필 여길 왔어요?”

“말했듯이, 그 인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해서요. 그래서 여기로 숙소를 정한 건데, 결제할 때 이게 웬 우연인가 싶었지 뭐예요.”

 

 

창밖의 인어상을 보던 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잔반을 치우던 빈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같잖아요. 사장님하고, 그 인어.”

 

 

 

 

 

 

*

 

 

 

 

 

 

 

 

뒤를 따라붙는 몸종들을 가까스로 따돌려 전날의 그 굴에 당도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 잠시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그날의 일이 한낱 공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그 짐승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에 내린 달빛이 그의 은색 머리카락과 어울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의향을 묻는 것도 잊은 채,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었다. 짐승은 저항 없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귀공을 무어라 부르면 되겠는가?

이름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가느다랗게 뽑히는 목소리가 생소했다. 이 금수는 얼핏 보기엔 생김새도 목소리도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살아온 동안 마주친 것들 중 가장 귀하고 낯선 존재였다.

 

 

그대는 나의 은인이니, 이름을 지어주고 싶소.

 

 

긴 밤을 고심으로 지냈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았으나, 단 한 글자를 생각하는 것에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쏟은 적이 있었던가 했다. 

 

 

빛날 빈(彬)자를 쓰는 것은 어떻겠소.

 

 

 

 

 

 

 

*

 

 

 

 

 

 

“바다에 가 보려고요.”

“이 시간에요?”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밖은 해가 진 지 오래였고, 겨울이 지났다 할지라도 밤바다는 아직 제법 싸늘할 것이었다. 추위를 잘 타는 것 같아보였는데, 밤바다에 나가는 사람치고 은우의 옷이 너무 얇았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지낸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막상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가본 적이 없어요. 길 따라 내려가면 바로 바다인데도.”

 

 

 

은우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대다가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다시 다물었다가. 한참을 그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빈 씨도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저는 안 가요.”

 

 

조금도 주저도 없이 매섭게 튀어나온 말에 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빈을 바라보았다. 빈은 아차 싶었는지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제가 수영을 못 해서. 아니, 바다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조금 의외네요.”

“특히 밤바다는 더.”

 

“빈 씨.”

“미안해요. 좀 웃기죠? 이런 곳에 살면서.”

“부담주려고 한 건 아니에요. 당연히 변명할 필요도 없고요.”

 

 

 

은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빈은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빈에게 목숨을 빚진 지 어느덧 엿새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우애를 쌓아갔다. 고서에서 본 바와 다르게 빈은 온종일 옷감을 짜지도 않고, 그 눈물이 구슬이 되어 흩어지지도 않았다. 화려한 용궁성에 살지도 않았다. 

 

빈은, 간혹 육지로 올라가 더는 바다로 돌아오지 않게 된 벗들에 대해 말했다. 또는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온 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던 나의 호기심 어린 청에 빈은 머뭇대면서도 뭍으로 올라왔고, 나는 그의 걸음마다 비늘이 흩어지는 것과, 머리칼이 끝부터 검게 물들어가는 진귀한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지느러미마저 그 자취를 감추자, 곧 여느 댁 도령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빈은 바다에 잠겨있을 때는 추위를 모르는 이 같았으나, 사람의 모습으로 분하자 곧 자신을 휘감는 한기를 느꼈는지 몸을 감쌌다. 두루마기를 한 겹 벗어 맨몸을 감싸주니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날에는 빈에게 입힐 옷가지를 챙겨갔다.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을 했지만 빈은 또다시 억지를 들어주었다. 밤 산책을 마치고 나서야 빈의 발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눈치 채었다. 지난번 입궐했을 때 하사받은 가장 좋은 신을 가져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억지로 빈의 다리를 살폈다. 

 

 

비늘이 떨어진 자리에 상처 자국이 남은 것을 처음 알았다. 

걸음마다 상처가 벌어져, 빈이 생살이 찢기는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그 이후부터는 빈에게 뭍으로 올라와달라는 청은 하지 않았다.

 

 

 

 

 

*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 곳에 살고 있지만, 정작 빈은 그곳에 다가가지도 않은 지 오래였다. 누군가 이유를 물을 때면 항상 적당히 얼버무렸다.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빈은 그저,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다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은우의 얇은 가디건 한 장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 집안에서도 때로 담요를 걸치고 다니곤 하던 사람이 무슨 바람이 들어 그런 차림을 한 채 밤바다를 찾는가 싶었다.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낮에 은우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담요를 보니 자꾸만 안절부절 하게 되었다. 

 

 

 

 

관자놀이를 짚은 채 은우의 담요와 어둠이 내린 창밖을 번갈아보던 빈이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리는 차 한 대 없는 좁은 도로를 건너 계단을 내려가니 물 냄새가 집 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몰려들었다. 빈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했다. 더군다나 빈의 손에 들린 담요의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짓을 했다며 낮게 내뱉고 돌아가려던 찰나, 빈의 귀에 이질적인 물소리가 들렸다. 물살을 헤치는 소리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니, 한 인영이 바다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반쯤 물에 잠긴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늦봄 밤바다에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지는 빤한 것이었다. 빈이 들고 있던 담요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머리로 생각을 하기 전에 빈의 발이 먼저 땅을 딛었고, 모래가 들어차던 슬리퍼마저 벗겨졌다. 빈은 물을 먹은 외투가 불편해 그대로 벗어던져버렸다.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마음이 급했다.

 

 

뒤에서 자신을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는지, 은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빈은 은우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소리를 질러댔다.

 

 

 

 

“미쳤어요, 지금?!!”

 

 

 

빈이 은우의 팔을 덥석 부여잡고 몸을 돌려 이끌었다. 은우는 내내 멍한 표정이었다.

 

 

“글 쓰겠다더니, 다 거짓말이었어요? 이러려고 여기 온 거면 당장 돌아가요!”

 

 

 

 

“빈 씨, 머리가……”

 

 

 

빈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은우는, 보이지 않아도 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는 것을 알 것만 같았다. 빈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끝부터 천천히 희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 귀 뒤를 찢고 펼쳐지는, 지느러미 같은 무언가.

 

 

 

 

“……빨리 돌아가요.”

 

 

 

 

 

 

*

 

 

 

 

 

 

바다의 존재가 어찌 뭍에서도 편히 숨 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가. 

 

 

 

빈의 고통을 안 지 닷새째가 되었다. 바다로 돌아간 빈의 몸에는 다시 비늘이 돋아났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느꼈을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심해를 헤엄치고 싶다는 청은 거절당했다. 계속 그러다간 인간으로 살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며 또 걱정 어린 눈을 한다. 거듭된 부탁에도 빈은 단호했다. 빈이 유일하게 거절하는 부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빈을 떠올리면 갑갑증이 일었다. 몸종은 매일 밤마다 어디로 도망을 치는 것이냐며 나를 다그친다. 따라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아도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뒤를 밟는 것을 간신히 뿌리쳤다. 덕분에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도착하니, 낯선 이형의 존재는 또다시 뭍에 올라와있었다. 벗의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보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었다. 

 

 

더는 빈을 찾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을 전하고 돌아서니, 발자국 소리가 한동안 나를 따라왔다. 걷는 것이 서투른 듯 발을 끌어댔다.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낯선 벗과의 연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

 

 

 

 

 

 

“할 말 있으면 해도 돼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빈이었다. 다시 검게 물들어버린 머리카락을 향하는 은우의 시선을 모른 척 하는 것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은우는 빈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빈은 은우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예상과는 다른 말이 먼저 귀에 꽂혔다.

 

 

 

 

“아까는 차인 줄 알았어요.”

 

 

 

 

“…네?”

 

“아까, 빈 씨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을 해서.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를 싫어한다고 하질 않나.”

“그건,”

“저는 제법 티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싫었던 건가 싶어서 의기소침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래서 죽겠다고 들어간 거예요? 나한테 차인 줄 알고?”

“아뇨, 저 수영 잘 하는데…”

 

 

은우의 말에 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바다가 수영장이랑 같아요? 거기다가 이 야밤에?? 그럼 거기서 헤엄이라도 치려고 했다는 소리예요, 지금? 은우 씨가 애예요?”

“그게 아니라, 아, 저. 좀 바보 같긴 한데.”

 

 

은우가 빈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림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요. 음, 그래도 제가 진짜 바다에 빠질 수는 없으니 살짝 기분만 내보려고.”

“맞네, 바보.”

 

 

 

가차 없이 쏟아지는 비난에 은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이제 좀 알겠어요?” 라며 빈이 한숨 섞인 질문을 건넸다. 사실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러나 은우는 조심스레 답을 했다.

 

 

 

“사실 바다에 들어갈 때는, 영 모르겠더라구요.”

“그러시겠죠.”

“그러다가 빈 씨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는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걸 다 알 것만 같았어요.”

 

 

 

 

 

“매화가 인어를 보면서 느꼈던 기분이요.”

“빈 씨를 보면, 이상하게도 그 마음을 다 알 것 같아요.”

 

 

 

 

 

 

 

 

 

 

 

빈의 후회는, 그에게 이름을 받은 것이다.

그 이름에 발이 묶여, 더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게 되리란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은우 씨는 왜, 매화가 그 인어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것도 은우 씨의 감인가요?”

“그것도 맞지만, 역사적으로도 기록이 남아있는 사실이에요. 도원대군이 병세가 깊어졌을 때, 그 형이 도원대군의 사가에 찾아가거든요. 왕의 행차이니 당연히 사관도 따라갈 수밖에 없죠. 당시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도원대군이 죽기 전 형님의 손을 잡고 간곡하게 청했다고 하죠.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버려달라고요.”

 

 

 

 

 

 

 

빈은 이상한 것에서 기억력이 좋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종종 잊어버리는데, 정작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항상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 빈의 문제였다. 이림의 유람일지는 생략된 부분이 많았으나 빈은 그 사이에 했던 대화들을 전부 기억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끌어다 백사장에 글자를 쓰며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날들을, 전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이림이 떠난 이후, 빈은 항상 그곳에서 그를 기다렸다. 행여나 그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부러 뭍에 나와 오랜 기다림을 견뎠다. 언제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그가 제게 주었던 옷가지와 신을 신은 채 하염없이. 비늘이 떨어져나간 곳은 딱지가 앉았고, 이내 상처도 아물었다. 그제야 빈은 제 한심함을 탓했다. 

 

 

 

이림은 오지 않는다.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임을 한탄하던 그는, 빈의 비늘이 모두 떨어지고 그것이 남긴 상처가 아물고 빈의 그리움이 원망으로 변할 때까지 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도원대군의 마지막 부탁은 이루어질 수 없었죠. 그 당시 조선에서, 어떻게 왕이 아들이 바다에 수장될 수 있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불효고 불경이었을 텐데요. 그 얘기를 듣고 확신했습니다. 매화가 이곳에서 만난 것이 인어이건, 혹은 평범한 소년이건 간에. 이건 사랑 얘기라고.”

 

 

 

 

전설과는 다르게, 빈의 눈물은 진주가 되어주지 않았다. 옷감을 짜는 재주도 없었다. 영생을 살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느리게 늙어갈 뿐이었다. 뭍에 남아 좋을 것은 무엇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빈은 꾸역꾸역 뭍에서의 삶을 이어갔다.

 

 

 

 

 

“분명 다시 돌아오고 싶어 했을 거예요. 그 원은 죽어서도 이루지 못했으니,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때라도 이루고자 했겠죠.”

 

 

 

 

 

은우를 보았을 때, 빈은 그대로 숨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낯익은 얼굴로, 끊임없이 사랑얘기를 쓰겠다는 말을 해댔다. 염정소설은 이미 질리도록 썼으니 이제는 다른 글을 쓰고 싶다던 누군가가 떠올라 대화를 나눌수록 거북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걸어오면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빈은 예전부터 그의 부탁에 약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대로 가라앉게 두었을 테니까. 천 개의 날로 온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비명소리 한 번 없이 이겨내고 그의 곁에 서지 않았을 테니까.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랑이었으니까요.”

 

 

 

 

 

 

 

 

 

당신이 내게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 억겁의 시간을 넘어, 생조차도 뛰어넘어. 다시,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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