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우는 차은우를 사랑해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주제
Drive it like you stole it (싱스트리트)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은우를 안다 했다. 조금 아는 사람들은 차은우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했다. 잘 아는 사람들은 차은우가 제일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 차은우를 안다 자만했고,

 

"빈아“

 

 오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선 넘지 마.“

 

 응, 그런 거다.

 

차은우는 차은우를 사랑해  w. 담

 

 개또라이다. 가끔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뭐 하나 대충하는 게 없었다. 이쯤 되면 숨 쉬는 것도 의식하며 한 숨 한 숨 들이마시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걱정될 때가 있었다. 독기 바짝 올라서 뭐든 간에 될 때까지 하고 봤다. 섹스도 그런 식으로 했다. 쌍방으로 눈 맞기 전에 배부터 맞은 사이다. 꼬여도 한참 꼬였다. 웃긴 건 혈중알코올농도 영 퍼센트의 제정신이었다는 거다. 제정신이었는데도 했다. 좋았다. 그래서 계속한다. 별거 많아 보이는 이 관계는 별로 얼마 되지도 않은 문장 몇 개만으로 설명이 됐다. 물론 그 이외의 부가적인 것들은 배제한 표현이다. 여기에 이전의 애매한 감정들이나 시선들까지 꼬리표로 줄줄이 붙어버린다면 무거워서 아마 가라앉을 거고, 난 그러면 또 무서워져서 이 관계를 당장 끊어내고 도망쳐버리고 싶어질 테니 과거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물론 이런 말 한다는 것부터가 과거를 존나게 신경 쓴다는 뜻이긴 했다. 씨바알, 어떡하냐. 그래 봤자 쌍방의 애매한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 낸 감정이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면 돼서 다행이었다. 옆에 웃통 까고 누워 있는 등짝을 잠에서 깨곤 한 대 갈겨줬다. 생각보다 더 소리가 찰졌다. 손바닥에 닿는 맨살 감촉이 괜히 어제 허벅지끼리 맞닿았던 감촉을 생각나게 해서 소름이 돋았다.

 

"빈이 왜 또 심통이야."

"네 집 가서 자."

"몇 신데?"

"열한 시."

"일찍 일어났네…. 악몽이라도 꿨어?"

"별걸 다 걱정하네."

"그러니까 왜 그렇게 심통이냐고."

 

 내 쪽으로 돌아눕더니 고갤 당겨 윗입술을 물고 떨어진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별 연인 같은 짓은 다 했다. 그래서 더 빡쳤다. 이 새끼는 무슨 한낱 섹파 관계에도 아주 열심이라 온갖 분위기는 다 잡았다. 진짜 깔끔하게 섹스만 하고 가는 거면 나도 저 언젠가부터 주렁주렁 달려있던 꼬리표 같은 애매함을 대충 끊어내고 가볍게 굴어보겠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자꾸 묻어놓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가, 가. 집에 가. 춥다 춥다 하면서 웃통은 맨날 까고 자. 그런 소리를 하며 배도 한 번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이젠 하도 맞아서 굳은살이 생긴 건지 뭔지 예전 같은 악 소리 하나 없이 흐허, 바보 같은 웃음소리나 내면서 웃고 만다. 걱정해주는 거야? 짜증 나. 나는 빈이 너 이럴 때가 제일 좋더라. 뭘. 뭔가 척하는데 다 보일 때. 헛소리를 빙자한 팩트 폭행엔 묵묵부답이 최고다. 괜히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중고딩 때부터 차은우와 붙어 다닌 결과-다행히 그땐 이렇게까지 붙어먹진 않았다.-도출해낸 결론이었다.

 

 차은우를 보고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기본적으로 말싸움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쪽이 한 마디 더 던지고 한 대 더 때리는 거라는 거. 그래서 본인이 잘난 걸 모르는 척하면서 잘 알았던 차은우는 말싸움에 능했다. 상대는 꼭 또래만은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도 있었고, 학부모도 있었고, 뭐 기타 등등 많았다. 지금이야 젖살이 다 빠져서 예전보단 숨겨져 있던 예민함이 좀 드러나게 된 편이라지만 중고딩 때의 차은우는 젖살 버프에 또랑또랑한 눈을 덤으로 아주 순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으니, 생긴 거에 비해 쌈닭이라는 표현이 맞았던 거다. 오는 시비엔 가는 시비로 대응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같이 급식을 먹고 있을 때 너 성격 좀 죽이라는 조언도 해줬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표정으로 바라보길래 그냥 한숨 한 번 내쉬고 말았다. 차은우를 생각해서 해준 조언이 아니라 이제 맞시비 털릴 상대방이 불쌍해서 해준 조언이었다. 차은우는 원래 그렇게 뭐 하나 대충하는 게 없었다. 조질 거면 제대로 조진다는 소리다. 단편적인 정보를 상대에게 꽂을 비수로 갈고 다듬는 재주도 있었다. 절대로 적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 1순위.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누구누구는 그런 차은우에게 영웅 서사를 덧씌우거나 대범하다는 말을 붙였는데 실은 그런 거 아니었다. 지는 싸움 아니니까 건 거다. 상대가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준비해 놓았고, 그걸 기막히게 물면 또 타이밍 맞게 잘 당겼다. 도시어부 유심히 보는 것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그런 차은우에게 제일 발작 버튼 눌리게 하는 마법의 문장은 '은우야 내가 충고하는데'로 시작하는 것들이었다. 차은우에겐 차은우만의 경계 같은 게 있었다. 이건 몇 년간 몰랐던 사실인데 작년쯤에야 깨달았던 거다. 배신감이 컸다. 빈아, 선 넘지 말자. 그 문장을 다른 누구도 아닌 차은우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한동안 끙끙 앓았다. 아마 스트레스성 몸살감기였을 거다. 그래도 나니까 이 정도는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데 상대는 그 정도가 아니었을 때의 쪽팔림. 나는 그리 쿨하지 못한 편이라 충격 이후 빠르게 회복할 힘이 없었다. 차은우는 차은우만 사랑해. 거기에 낄 틈은 없었고 주변에 얹혀서 거기에서 떨어져 나오는 부산물 같은 애정을 주워 먹을 수는 있었다. 그 정도로 만족하려면 여태 쌓아온 애매한 감정들을 버려야만 했다. 처음엔 그 애매한 감정들에 차은우를 묶어 같이 날려 보내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나는 지나치게 과거에 매달리는 편이라 차은우 때문에 앓았고 기뻤고 화났고 하는 n 년을 당사자 없이 추억하다간 혼자 우울해지고 울어버릴 걸 알아서 어쩌지 끙끙 앓던 도중에 차은우가 온 거다. 문빈 많이 아파? 차은우는 뭐 하나 대충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속이 더 상했다. 차은우는 차은우만 사랑하면서 꼭 그 틈새에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맺고 있는 관계에도 최선을 다했다. 짝사랑하는 처지에선 희망 고문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선 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잘한 정들을 떼어내는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거기에 훼방을 둔 거다. 그것마저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서 빡이 쳤다. 그래서 차은우랑 잤다. 그것도 처음에는 잠시 당황하더니 또 순순히 좆 내어주는 게 또 짜증이 나서 입술을 꽉 물고 있었는데 그걸 열고 섞어오는 숨은 또 달더라. 그래도 한 번 하고 나니 차라리 후련했다. 몇 년간의 친구라는 이름표 대신 한 번 붙어먹은 사이라는 가벼운 이름표로 갈아 끼울 수 있게 될 무렵엔 몸살감기도 나았다. 붙어먹으면서 옮은 건지 차은우는 한동안 몸살감기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찾아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난번에 아프다고 사 온 차은우 표 최선들이 또 사람 신경 쓰이게 해서 죽 하나 사서 방문하게 했다. 그게 두 번째. 그렇게 몸살감기를 몇 번이나 옮기고 옮겨 받고 하면서 둘 다 드디어 몸살감기를 떨어트릴 때까지 하게 된 거다. 어제는 내가 아파서 차은우가 찾아왔다. 이제 서로를 쉽게 부를 핑계는 이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난 이 몸살감기에 꽤 집착했는데, 차은우는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최대한 내 장단을 맞춰주는 것 같기는 하다. 괜한 부담을 억지로 지워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쌤통이다 싶었다. 그렇게 잘한다는 차은우 표 최선 좀 보여보라고, 그래서 나 좀 보라고. 버린 줄 알았던 애매한 감정들에 묶여있는 게 맞았다. 그래도 버렸다고 중얼거려야만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걸 믿고 싶었다.

 

 이제는 한 달이 넘어가는 이 주고받기식 몸살감기 섹파 관계에도-간지도 없으면서 이름만 존나 길다-한 달쯤 되다 보니 묘한 규칙이 생겼다. 정신없이 붙어먹고 어제 사 온 죽을 나눠 먹는다. 소고기 야채죽이다. 우리 둘 다 요리는 엄청 못 해서 죽도 제대로 끓일 줄 몰랐다. 애초에 죽 끓일 만큼 자취하면서 아파본 적도 없었는데 이번에 생긴 거다. 아마 이 관계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제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생각나서 아프다고 하고 마스크 끼고 쌕쌕 숨소리 내쉬면서 열 나는 척했다. 이마를 짚으려는 손길을 제지하고 입술부터 부딪혔다. 차은우는 이 관계에 나를 따라 맞춰주고 있다지마는 이제 본인에게 몸살감기 증세가 나타나지도 않는데 그걸 핑계로 이어 나갔던 섹파 관계가 이어질 리 만무했다. 존나 우울하네. 왜? 아니 그냥. 대답을 어물쩍 넘기고 죽을 후후 불어 넘긴다.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 그런 기분이다. 이제 이런 관계는 쫑이야. 시원섭섭했다. 그래서 씩씩하게 죽도 잘 긁어먹었다. 잘 먹는다고 차은우는 제 몫을 더 덜어 줬다. 진짜 마지막이다. 이걸로 마지막. 차은우 최선에 기생하는 것도 부산물 주워 먹는 관계도 끝이다. 우울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마음고생 심하게 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차은우를 현관에서 배웅하고 보낼 무렵엔 애매하지만 미소 그런 것도 한 번 띄워봤다. 함박웃음 그런 건 솔직히 못 짓겠고, 이 정도면 딱 좋았다. 그런데 자꾸 우물쭈물하면서 우리 집에 뭐 놔두고 간 사람처럼 현관에서 늦장을 피운다.

 

 

"문빈"

"어."

"나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촉이 좋은 건가. 그래도 모른 척하고 물어봤다. 휴대폰 챙겼어? 어, 어.

 

"그거면 된 거 아냐?"

".....아닌데, 뭐 빠트린 거 같은데."

"모르겠네."

"......문빈."

"응."

"연락하면 받아, 씹지 말고."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읽씹이었다. 나가는 뒷모습이 닫히는 문 사이로 흩어지고 나서는 메신저 앱을 꾹 눌렸다. 충동적으로 삭제 버튼을 누른다.

 시작한 적도 없었지만 끝난 연인들의 그런 걸 따라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 관계에 뭐라도 남은 것 같은 착각이 오래 이어질 것 같았다.

 

-

 

 난 아마 먼 조상이 파충류일 거라 생각한다. 특히 도마뱀 그런 거. 꼬리 잘리면 그거 놔두고 토끼는 조상을 빼다 박아 어디 비수 꽂히면 도망가고 숨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 얘길 듣고 제일 먼저 궁금해했던 건 그거였다. 근데 꼬리 말고 다른 곳이 잘리면 어떡해요? 그것도 다시 자라요? 쌤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크고 나니 그건 그냥 모른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뿐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파충류마다 재생 범위는 다르다. 꼬리만 다시 재생되는 것도 있고 다리뼈에 근육까지 재생되기도 하고 케바케다. 그마저도 도마뱀 꼬리는 한 번 자르고 나면 다시는 못 자른단다. 절체절명의 순간 딱 한 번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재생은 되는데 꼬리뼈는 같이 자라지 못하는 게 이유라고 했다. 물론 못 알아먹었지만, 세상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게 많았다. 차은우 같았으면 또 거기에 꽂혀서 한참을 찾아봤을 거다. 머리를 흔들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차은우 생각이냐.

 어쨌거나 결국은 잘라 먹고 튀었다. 차은우 이름표 잘도 붙여진 꼬리였다. 최후의 수단을 택한 거다. 차이기 전에 먼저 차기, 뭐 그런 심보였다. 다시 자라려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차은우만한 임팩트의 무언가가 인생에 찾아오기까지의 그런 기간. 도마뱀이 꼬리를 웬만해선 쉽게 자르지 않으려는 이유가 꼬리가 다시 자라나기까지 온 영양분이 꼬리에 몰려서 몸도 성장하지 못하고 동작도 굼떠지기 때문이라는데 그걸 보고서는 확신했다. 내 조상은 도마뱀이 맞다. 그러니까 연락하면 받으라는 차은우 연락도 죄다 씹으면서 그 와중에 또 번호 차단은 못 하고 자꾸 차은우 신경을 쓰고 있는 거다. 그래서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은우 생각 비우려고 잠수 타고 통장 들고 제주도로 튄 건데 오히려 바닷바람 맞으면서 올레길 걷고 있으니까 마음의 안정은커녕 감성 촉촉해져서 오히려 더 차은우 생각을 했다. 지지리도 궁상이다... 그것도 그냥 멍하니 걸으면 되는데 차단은 또 박지 못한 차은우 전화번호로 전화가 간간이 와서 자꾸 생각나게 했다. 꼭 나 좀 찾아달라고 안달 난 사람 같았다. 나 사이코패슨가. 문자도 차단해놨으면서 스팸 메시지 들어가서 꼭 확인했다.

 

'전화 받아'

'아직도 자?'

'문빈'

'내가 연락 씹지 말랬지'

'무슨 일인데'

'야'

'너 진짜 이럴 거야'

'있는데 안 열어주는 거야 아니면 진짜 튄 거야'

'얘기 좀 하자'

'전화는 왜 안 받는데'

'야’

 

 어엉…. 짜릿하네. 빚 독촉 문자가 오면 이런 기분일까. 그런데 그 정도까진 또 긴장감이 없었다. 그냥 나 좀 내버려 둬라 하는데 또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감정에 문자함을 들락날락하다 이게 다 무슨 짓이냐 싶어서 전원을 껐다. 바람맞으니까 시원하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라 그걸 헤쳐나가기가 귀찮아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까 또 아래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서 올라가라고 난리다. 어쩌라고... 중간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게 꼭 지금 내가 차은우에게 느끼는 감정과 닮았단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싫어서 얼마 오지도 않은 길을 다시금 막 돌아갔다. 성수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수기도 아니었다. 그런 애매한 봄의 중간에 제주도로 도망 왔다. 혼자 영화 한 편 찍는 와중이다. 차은우는 자꾸 생각이 나긴 했는데 그냥 모르는 척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또 괜찮아질 거다. 어쨌거나 꼬리는 날 거니까. 난 파충류도 아니고 몸이 아주 복잡한 포유류였지만 그런 희망을 품었다. 고기국수 들이키는 와중이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없어 한가하다. 이걸로 오늘 아침은 해결하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에 한 달 정도 머무르기로 했다. 차은우가 돌아간 날 열심히 찾아서 당장 계약한 곳이었다. 시내로부터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 교통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숙박비가 좀 쌌다. 따로 밥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데 부엌은 빌려주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봤자 요리 젬병이라 할 줄 아는 거 없는데 이왕 온 김에 배워볼까 싶었다. 주인 부부가 한 달씩 장기로 투숙하는 사람은 처음 받아본다며 잘 지내자고 손을 뻗어왔다. 아들처럼 잘 대해 주신다. 근처 나가도 바다에 꽃에 그런 것밖에 없어서 좋다. 자취방과는 다른 힐링이 있었다. 아... 좋다. 눌러살까. 그러기엔 제주도 물가가 너무 비싸서 참기로 한다. 배송비도 추가로 내야 한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고기국수는 맛있는데. 마지막 한 젓가락에 괜히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차은우가 좋아할 맛. 이딴 걸 그만 생각할 때까지 제주도 눌러 있는 거다. 휴학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엉, 고기국수 존맛... 일부러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주변에 있는 사물 묘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보니까 젓가락 짝도 안 맞았네. 평소에 욕을 많이 썼더니 어휘력이 떨어져서 그 이후로는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차은우 보고 싶다. 이런 건 또 잘 떠올린다. 지지리 궁상이다. 괜히 울컥해서 그릇을 들고 국물을 넘겼다. 들어가, 들어가 차은우 들어가. 튀어나오지 마. 잘라낸 꼬리 주제에 아직 신경이 살아서 펄떡거린다. 꺼놓은 휴대폰 속 차은우의 전화번호도 딱 그랬다. 여차하면 전화하고 너 왜 그렇게 나 서운하게 그러냐며 지난 서운함을 이제 와서 토로해낼까 봐 잠적 기간에는 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의지력 약하고 술 좋아하니까 지키지 못할 약속이란 건 자신도 잘 알았다. 오늘만 해도 차은우가 나 찾는 거 보고 싶으면서도 보기 싫어서 휴대폰을 껐다 켰다 열 몇 번째 하는 중이었다. 난리다, 씨발...... 아무래도 난 속이 존나 좁은 사람이다 다시금 깨닫는다. 에라이 썅, 그러니까 말을 꼭 뭐 그렇게 사람 섭섭하게 하냐. 선 넘지 마…. 선 넘지 마? 개빡친다. 차은우 졸라 싫다. 그 와중에 열 받아서 자자고 한 나 자신도 웃기고 그걸 또 순순히 받아준 차은우도 웃긴다. 몸살감기 핑계로 자꾸 배 맞는 것도 빡쳤고 그 와중에 차은우 너 좋아한다고 말 한마디 못한 나도 짜증 났다. 그리고 만약 좋아한다고 했으면 차은우는 받아줬을까, 그런 거 올레길 걸으면서 상상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차은우는 차은우만 사랑한다니까. 안다고. 아는데 그런 짓을 해? 아 씨발, 맞어맞어. 네 말이 옳다 네가 다 맞다.. 속으로도 엄청나게 싸웠다. 심란하다. 머리 비운다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그런 곳을 선택한 건데 이렇게 자꾸 생각날 줄 알았으면 알바나 세 탕씩 뛰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차은우 생각할 여유도 못 주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서울 돌아가면 그렇게 해야지. 물론 계획만 이렇다. 어쨌거나 난 차은우가 날 좀 사랑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애정 결핍 관종 새끼처럼 굴었던 거다. 지금도 그래서 존나 짜릿하다. 이렇게 날 찾는 차은우라니. 씨발, 존나 짜릿해. 짜릿하다 못해 죽을 거 같다. 여태껏 내가 한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 심리 그런 느낌이다. 속 좁은 사람이면 어쩌랴 난 이렇게라도 살아야겠습니다. 쿨한 척하다가 화병만 얻었다. 그냥 쪼잔한 거 스스로 인정하면 좋았다. 그래서 또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휴대폰을 켰다. 원래 꼬리 자르면 성장이 더디다. 그러니까 차은우에게서 잠수 탄 나도 철 좀 없이 이런 관종짓하고 있어도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새로 온 메시지 알림을 눌렀다.

 

'문빈'

'나 몸살감기야.'

 

 그날 바로 짐을 쌌다. 이 미련한 인간아! 속에서의 외침은 무시했다. 돌아가는 항공편을 예약하는 손놀림이 두근거림에 달달 떨린다. 차은우는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사실 부른다고 곧이곧대로 가는 내가 제일 알다가도 모를 놈이긴 했다.

 

-

 

 애초에 캐리어도 아니고 백팩에 갈아입을 옷가지랑 기본적인 것들만 챙겨서 갔던지라 오는 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부터 타고 차은우 자취방 주소를 불렀다. 너무 오랜만에 탄 탓에 기본요금 오른 걸 보고 식겁하긴 했다. 그 와중에 또 미련한 놈아, 하며 훈수 자아가 깨어나서 속에서 요란하게도 호통치는데 그냥 몇 번쯤 대꾸해주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미련한 새끼야, 미련한 놈아, 미련한 문빈, 미련한 놈. 그 새끼가 또 부른다고 가냐, 그게 어디라고 가, 그게 어디라고 가는데, 차은우는 차은우만 사랑한다니까, 너는 낄 자리 없다고. 닥쳐라 훈수 자아야. 난 그날 몸살감기 기운 하나 없었는데 이렇게 몸살감기라는 문자로 불러낸다? 뭐, 떡 치잔 소리 아냐? 아씨발! 그게 어딘데! 아주 목을 맸다. 쿨한 척하면서 애매한 감정 끊어내고 가벼운 관계로 남고 싶니, 뭐니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로 사랑하는 건 본인 하나뿐인 이 나르시스트를 끝내 못 끊어냈다. 잘린 꼬리 치고 지나치게 신경이 꿈틀거린다 싶었더니 덜 잘린 거다. 그러니까 신경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어쩌면 말만 잘랐다 잘랐다 했지, 진짜로 자른 건 하나 없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렇다. 사람이 계획이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실제로 안 지키게 된다. 차은우가 차은우 자기만 사랑하는데 그게 뭐, 어쩌라고. 난 거기 기생해서 차은우의 최선이라도 빨아먹으며 행복 회로 진하게 돌릴 거다. 조증 왔다. 사실 몸살감기라는 문자 왔을 때부터 쭉 이랬다. 난리다. 책임져라! 근데 또 이런 말 하면 진짜로 책임지겠다 말할 놈이라…. 아닌가 선 그으려나. 또 울적해진다. 그러다 또 화가 났다. 차은우 네가 뭔데 네가 얼마나 잘났는데 너 혼자만 사랑해서 나한테까지 선 넘지 말라고 그렇게, 막, 서운하게...... 기분 완전 롤러코스터다. 또 울적해졌다. 피가 식었다. 얼굴 보면 무슨 얘기해야 하나 싶어서 도중에 그냥 자취방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차은우 자취방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택시 요금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나왔다. 다른 맥락으로 피가 식었다. 가서 뭐 할 건데? 뭐할 거냐고. 뭐 할 수 있냐고. 닥쳐라 인간아. 무사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벤다고…. 근데 썩은 무를 왜 베는데…. 차은우는 졸라 완벽한데... 그렇다고 차은우가 무냐? 그건 또 아니다. 차은우 허벅지는 무 허벅지긴 했다. 졸라 딴딴했다. 별생각을 다 한다.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뒤늦은 고백이라도 하러 가는 사람처럼 군다. 일부러 너무 들뜨기 싫어서 선 넘지 말라던 그 말도 자꾸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빡친다. '홧김에' 게이지 찰 만큼 찼으니 이제 이걸로 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따질 거다. 근데 너무 속 좁아 보이는 거 아냐? 아 좆까좆까. 아냐 근데 너무, 좀.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갑자기 또 울고 싶어진다. 짜증 나네... 갑자기 진동 울리는 소리에 생각에 잠겨있던 거에서 벗어나서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봤다. 차은우다. 문자가 아니라 전화다. 그걸 또 받는다.

 

"여, 여보세요."

-어디야.

"......택시."

-어디냐고, 그래서.

"미, 미......"

 

 미안해는 안된다. 미안해는 안돼. 찌질해지지 마, 문빈. 넌 잘못한 게 없잖아. 연락 씹지 말랬는데 씹은 건, 사람이 뭐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며칠 정도 잠수도 탈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미친놈아."

-뭐?

 

 그대로 끊었다. 공항 도둑이야? 공항 도둑이냐? 유튜브를 너무 봤어. 최유프를 너무 봤어. 머리를 쥐어뜯었다. 곧바로 진동 울리길래 그냥 전원을 꺼버렸다. 얼굴 만나서 무슨 얘기 하는데. 차은우는 또 집요하게 왜 내가 미친놈인데 물어볼 거고 그러면 나는 미안해란 말하기 억울해서 다른 말 생각하다가 갑자기 공항 도둑이 생각나서 미친놈아 헛소리한 거라고. 그러면 또 미안해란 말 왜 억울했냐고 그럴 거고 난 그럼 또 말 꼬여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계속되는 차은우의 압박 수사에 견디지 못한 채 내 좁은 속을 다 드러내고 말 거다. 네가 썅, 그, 갑자기 그날 피시방에서 뭐 물어보니까 선 넘지 말라고 해서 나는 억울해서, 나는 너 몇 년을 봐 왔는데 서운하고 짜증 나서 그랬다고. 그래서 혼자 몸살감기도 걸리고 홧김에 섹스도 하자고 하고 그랬다고, 몸살 기운 없는 날에도 그냥 그랬다고. 머릿속으로 예상 답변을 구구절절 생각해보는데 아무래도 찌질하다. 여기서 예상 질문 또 몇 개 간추려본다. 홧김에 무슨 섹스를 하자고 그래, 너는. 이건 받아칠 게 있다. 그럼 너는 그거 헛소린 거 알면서 왜 또 받아주고 섹스해줬는데. 오케이. 몸살 기운 없는 날에도 그랬단 건 뭔데? 이거는 좀 생각을 해보자. 일단 전화 상 목소리를 생각해본 결과 차은우가 진짜 몸살감기 걸려서 아픈 목소리처럼 들리진 않았다. 그럼 구라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물론 진짜로 몸살감기 걸렸을 가능성도 배제는 못 한다. 추위 그렇게 타면서 우리 집에 왔을 때 웃통 까고 잤으니까. 그래도 아픈 목소리보다는 빡친 목소리에 가까웠다. 그럼 이건 그때 가서 상황을 좀 보고 너도 몸살 기운 없으면서 왜 불렀냐고 따지면 된다. 상대는 차은우다. 말빨의 황제, 말로는 17 대 1로 싸우고도 이길 놈이었다. 어디 한 군데 찔려서 술술 털어놓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시뮬레이션이 중요했다. 근데 진짜 몸살 기운 없으면서 왜 불렀는데? 진짜 섹스하자고? 분명 차은우가 하면서 좋다 좋다 하긴 했었다. 미친, 진짜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새 몸살감기라는 말은 섹스하자고 할 때나 주고받았던 문자다. 물론 차은우에게서 온 첫 몸살감기 문자는 진짜로 아팠던 거였고-근데 어쩌다 보니 분위기를 타서 해버렸다-그다음에는 내가 또 감기가 옮아서 아팠던 지라 몸살감기라고 했고-이때도 어쩌다 보니 분위기를 타서 해버렸다-그다음에는 그걸 또 옮아간 차은우가 몸살감기라고 했고-이때마저 어쩌다 보니 분위기를 타서 해버렸다-마지막으로는 감기 기운도 없는데 그냥 하고 싶어서 그렇게 보냈다. 그다음 날에 현타 맞고 도마뱀 코스프레하면서 제주도로 떴다. 그 이후로 삼사일 정도를 잠적하고, 열 받은 차은우는 문자를 자꾸 하고, 전화도 자꾸 하고, 근데 나 자주 이유 없이 잠수 타는 거 본인도 알 텐데 굳이 이번에 이렇게 찾은 이유가 뭔데. 다시금 문자를 곱씹었다. 진짜로 섹스하자고? 그 이상도 이하도 의미가 없는 거야? 얘는 왜 열받았는데. 왜 열 받은 거냐. 전화 씹기는 했는데 그냥 끊은 게 아니라 자동 메시지 보냈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안내 음성 몇 번 받으면 바쁜 일 있나 보다 싶어서 전화 안 걸지 않나? 왜 그렇게 다급히 찾아서는, 왜 갑자기 오늘은 또 몸살감기라는 그런 의미심장한 문자를 보내고, 막.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놈이다. 차은우는 아마 차은우 본인만 사랑해서 본인만 본인을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난 몰랐다. 생각하니까 또 빡친다. 선 넘지 마 그런 소리는 왜 하는데. 가지 말까 생각하는데 이미 차은우 집 앞이다. 택시에서 내려선 백팩 한 번 야무지게 쥐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후,

 

"문빈."

"하악,"

"......뭐해."

"......심호흡."

 

 빌라 1층에서 담배 피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크아 내기빵 내가 이겨서 금연하라고 했는데 홀라당 까먹은 건지 어떤지 잘도 피우고 있다. 생각하니까 빡친다. 야, 금연한다며. 그러니까 또 덜 태운 걸 얌전히 비벼끄긴 했다. 그 와중에 생각해온 예상 질문과 예상 답변을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차은우를 마주했다. 문빈. 그렇게 부르는 소리에 긴장해서 침 한 번 삼켰다.

 

"왜 전화 안 받아."

"나 원래 잠수 잘 타잖아."

"그래도 전화는 받았잖아."

"......미안."

 

 걱정 담긴 목소리에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차은우, 너...... 볼수록 반한다. 꼬리 자르느니 마느니 그런 거 다 취소다. 그냥 얌전히 숨기고 애매한 관계 이어가고, 그러면 될 거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굳이 차은우한테 사랑을 받아야만 할까. 그냥 나 혼자 좋아하고 혼자 뿌듯해하면 된다. 그 정도면 됐다. 그 정도로 하자. 이제야 감정이 정리됐다. 확실히 직접 문제에 부딪혀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미친놈아는 또 뭐야."

"미안하다는말을하려고했는데갑자기내가왜억울하게너한테사과를해야하는지모르겠고그런,"

"왜 억울한데."

 

 큰일이다. 진짜 억울하다. 이 새끼가 내가 왜 억울하고 서운한지 모르는데 자기 혼자 화난 거 뿜어내면서 이렇게 노려보니까 진짜 억울했다. 그래서 '홧김에' 게이지가 잘도 올라갔다. 안돼 이놈아, 안돼.

 

"야나는네가갑자기선넘지말라고그래서이새끼는나랑몇년을봤는데아직까지도마음을안여나싶고원래부터사람잘안들이는인간이라는건알았지만은나한테까지그렇게벽치고나쁜놈이그래서내가너..."

"빈아, 빈아 타임."

 

 여기서 한 번 끊고 가자. 큰일 났다. 아가리 파이터 차은우의 필승 요법이었다. 어떻게든 이렇게 말할 타이밍을 잡고 꼬투리 잡고 비수를 찌를 거다. 난 완전 순둥이라 이런 거 잘해보지 않아서 면역력이 없었다. 차은우 입 터는 것만 보고 자라왔지, 이렇게 내가 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말이다. 눈을 꽉 감았다.

 

"내가 너한테 선 넘지 말라고 했어? 언제."

"피시방......"

"언제야 그게."

"한 달 전…. 나랑 크아한 날."

"맥락을 설명해 봐."

 

 쪽팔린다. 대충 더듬거리면서 정황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네가 갑자기 심심한데 크아하자고 하길래 내가 크아를 깔고 있었고 근데 내 노트북이 용량이 다 차서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럼 피시방 가자고 해서…. 네가 우리 동네로 왔고…. 그래서 열심히 크아를 하다가 내가 너 그때 너 좋다던 그 선배랑은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까 갑자기 나한테 선 넘지 말라고. 말하고 나니까 또 욱한다. 빡친다. 이 개새끼 이거 어떻게, 말을 그딴 식으로. 고개 들고 보니까 정작 본인은 그런 말 한 줄도 모르는 상태다. 내가? 이러고만 있다. 이렇다고, 진짜. 돌 던진 놈은 모른다고. 맞은 놈만 아파서 잉잉 울고 그러는 거다. 울컥해서 나 갈래, 하고 돌아서려니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너한테 왜 그런 말을 해."

"뭐야..."

"그리고 문빈 너 이미 선 많이 넘었어."

 

 너 나랑 섹스도 했잖아. 그게 뭐. 그게 뭐? 넌 그게 아무것도 아냐? 큰일 났다. 갑자기 내가 혼나는 분위기다. 억울한데 할 말 없었다. 그럴 땐 일단 뻔뻔하게 나가기다. 차은우도 말싸움할 때 제일 답답한 게 무작정 우기고 보는 애들이랬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오늘 써먹는다. 그게 뭐, 왜, 어? 어쩌다 보니 한 거고, 어? 어쩌다 보니 해? 술도 한 방울 안 마시고 제정신에 어쩌다 보니 섹스를 해? 그걸 몇 년 지기 친구랑 해? 차은우 말 빨라진다. 흥분했단 소리다. 뭐지 나 이제 말로 후드려 맞는 것만 남았나. 그래도 일단 지기 전까지는 우기고 본다. 야, 그래, 할 수도 있지. 그냥 몸이 허해서 하자고 했다, 됐냐? 말하고 나니까 나 완전 나쁜 놈이다. 근데 또 여기서 지는 건 싫어서 일단 뱉고 봤다. 아니 야, 뭐, 너 나 게이인 거 몰랐냐? 알았잖아, 알았고 연애 상담도 해줬잖아, 그래서 갑자기 하고 싶어서 불렀다, 어? 됐어? 됐냐고. 뱉고 나는데 어디서 컹컹, 하니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너무 크게 말했나 보다. 이제 와서 좀 쪽팔렸다. 앞에서 말이 없길래 총알 장전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슬쩍 보니까 막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너, 어떻게, 그런, 말을...

 

"너, 너 진짜, 빈아, 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충격받은 목소리다. 그러더니 갑자기 운다. 차은우 원래 어릴 때부터 울보긴 했는데 나랑 이렇게 말싸움하다가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요상한 시추에이션이라 머리가 아팠다. 야 네가 왜 울어. 내가 울고 싶어 내가. 왜 나랑 자자고 했어, 그럼. 아니, 아니, 나는…. 네가 나보고 선 넘지 말라고 해서 서운하고 빡쳐서, 근데 무슨 섹스를 하자고 해. 눈 부릅뜨고 닭똥 같은 눈물 방울방울 흘리면서 말한다. 당황해서 결국 이실직고했다. 아니 나는 너 좋아하는데 네가 그렇게 막 서운하게 말을 해서. 여기까지 말하는데 나도 욱했다. 갑자기 여태껏 마음고생 했던 것들이 후다닥 스쳐 지나가니 울컥한다. 나도 눈 부릅뜨고 울었다. 눈 감으면 지는 것 같아서 감기가 싫었다. 그런데 울먹임은 숨기질 못했다. 너야말로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왜 나 좋아하지도 않고 선 넘지 말라고 그러면서 또 자자고 하니까 어떻게 또 자주고, 왜 그래 진짜 왜 그렇게 나한테 막 선심을 써, 왜 그래 진짜로..... 결국 주저앉았다.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 한껏 커진 몸 구겨가면서 쪼그려 앉고 울었다. 눈싸움은 졌다. 내가 먼저 감아버리고 속상해서 엉엉 울었다.

 

"내가 너한테 무슨 선심을 써."

"설마 선심도 안 썼냐? 그냥 겉치레야? 그랬던 건데 내가 주제 파악 못 하고 오지게 친한 척한 거야?"

"무슨 그런 말을 해, 빈아."

 

 똑같이 쭈그려선 눈을 맞춰온다. 이러면 또 반했다. 차은우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잘생겨 보일 수 있는지 아는 놈 같았다. 원래도 잘났는데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그 센스가 발휘돼서 진짜 사람 딱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필터링 그만두고 그냥 노빠꾸로 말했다. 너 진짜 짜증 난다. 나한테 왜 그러냐 진짜로... 그러면서 또 웃는다. 너 지금 이게 웃음이 나올 얘기냐고 따지려고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따끔하게 양 뺨을 때려오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떴다. 역광으로 달빛 필터 쨍하게 잘도 받는다. 아주 드라마다. 장난 없다. 속으로 솔직히 박수쳤다. 내가 그래도 눈이 높긴 하구나, 이런 놈을 다 짝사랑하고. 그런 생각도 했다. 짝사랑의 질이 현격히 높아지는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이런 놈 좋아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 믿지도 않으면서 할렐루야 아멘 외쳤다. 빈아,

 

"나 좋아했어?"

 

 코 맹맹하다. 울어서 그렇다. 그런 멋 다 죽은 목소리인데도 마냥 멋있고 다정해 보이는 게 짜증 났다. 한동안은 짝사랑 더 하겠구나 싶었다. 짜증 나네, 진짜로. 휴학해서 다행이다. 학기 중에 차은우랑 이렇게 꼬였으면 학점 다 말아 먹었을 거다. 얼굴은 왜 갑자기 붙잡고 지랄이냐고 울어서 코 맹맹해진 소리로 따졌는데 갑자기 입술을 부빈다. 진짜 모를 놈이다. 어려운 놈이다.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겠다. 그래도 말랑한 입술 감촉이 기분 좋아서 그냥 또 맞대고는 있었다.

 

"갑자기 왜 이래. 동정하냐?"

"문빈 너는 좀, 고민이 있으면 재깍재깍 말을 좀 해."

"너한테 왜 그런 소리를 해. 선 넘게."

"또 이런다."

 

 엄지로 쓱쓱 눈물 닦아주는 게 또 좋았다. 차은우는 차은우를 사랑해. 문빈은 차은우를 사랑해. 사랑 많이도 받아서 좋겠다, 이 새끼야. 그럼 좀 나눠주지. 속으로 또 꿍얼댔다. 뭘 그렇게 오글거리게 자꾸 보고 있냐고 타박했는데 나한테 요새 까칠한 이유가 그거였냐며 웃는다. 사람 상처 그렇게 후벼파고 웃으면 좋냐고 또 따지니까 한 마디도 안 진다고 또 웃었다.

 

"나 좋아해?"

"어."

"그래서 서운했어?"

"어."

"나도 너 좋아."

 

 너 완전 좋아. 문빈 최고, 짱. 얼굴 붙잡고 마구 찌부하고 흔들고 하면서 저런 소리를 한다. 어이가 없어서 뭐 하는 거냐는 말도 안 나왔다. 귀여워, 으응.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문빈 너무 좋아. 최고야. 무슨 개소리 하냐고 한 소리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개가 컹컹, 하고 짖었다. 동네 개도 아는 차은우 표 개소리다. 혼자 못 알아먹고 뭐 하는 짓거리냐고 마냥 보고 있는데 우리 빈이 못 알아먹는 것도 아주 귀여워 이런 소리나 한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는다. 뭐 하는데, 지금.

 

"나 너 좋다니깐."

"왜 이러는데, 적응 안 되게."

"빈이 좋아."

"미쳤냐?"

"좋아, 진짜로."

 

 너무 좋아. 너 진짜 웃겨. 웃겨서도 좋고 귀여워서도 좋아. 혼자 끙끙 앓고 삽질한 것도 귀여워. 어떻게 이러지? 어, 빈아? 응? 개소리를 한참 해대더니 갑자기 개 취급을 한다. 우쭈쭈하면서 턱을 막 간질이는데 지금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야, 하고 따지려던 참에 또 윗입술을 물렸다. 아야. 그러니까 또 웃는다. 미쳤나 이게. 연인 같은 짓을 하고 지랄은. 너 이거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희망 고문하고 갖고 놀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따지려는데 또 연달아서 마구 뽀뽀해댄다. 친구의 짝사랑 마지막 추억을 이렇게 아름답게 해주려고 용을 쓰는구나, 네가. 참 열심히 사는 성실한 아이란 생각을 했다. 넌 감동이었어. 그런 노래도 속으로 불렀다. 진짜 어려운 놈이다. 알 수 없다.

 

"사귈래?"

 

......진짜 어려운 놈이다.

 컹,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입술은 닿아 있었다. 말랑해서 기분이 좋았다.

 

-

 

 주말이라 그런가 피시방이 붐볐다. 죄다 배그니 뭐니 하는 와중에 구석 자리 두 개 차지하고는 열심히 물풍선 쏘아대던 와중에 빈이 물었다. 그, 차은우. 왜.

 

"너, 너 그…. 너 좋아한다는 선배 있잖아."

"빈아, 선 넘지 마."

"어…. 어?"

"빈아, 옆에 막아, 옆에. 초록색."

"아, 어......"

 

 개또라이다. 가끔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뭐 하나 대충 하는 게 없었다. 이쯤 되면 숨 쉬는 것도 의식하며 한 숨 한 숨 들이마시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걱정될 때가 있었다. 독기 바짝 올라서 뭐든 간에 될 때까지 하고 봤다. 크아도 마찬가지였다. 빈이 거한 마상을 입는 동안 은우는 열심히 스페이스 바를 눌러가며 물풍선을 일렬로 세우고 있었다. 아니, 빈아 이거 라인대로 달려서 체크 포인트에 불 들어오게 해야 한다니까. 어, 어어..

 독기 바짝 올라서 뭐든 간에 될 때까지 하고 보는 습성은 가끔 다른 소리를 못 듣게 했다. 은우가 딱 그랬다. 빈은 그걸 몰랐다.

 

"개새끼......"

"왜, 왜, 어디야, 물풍선 갇혔어?"

"......아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은우를 안다 했다. 조금 아는 사람들은 차은우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했다. 잘 아는 사람들은 차은우가 제일 어렵다고 했다.

 문빈은 몇 년을 봤는데도 차은우를 몰랐다. 그래서 멋대로 알았다. 그래서 또 멋대로 앓았다. 차은우는 차은우를 사랑해. 차은우는 차은우만 사랑해.

 빈은 이를 부득 갈았다. 머리가 띵했다.

 

 몸살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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