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남자

2020 봄호
2020 봄호
작가
다로
주제
여우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히 가세요. 학생들의 인사에 답하곤 차에 올라타자 적당한 피로감이 몰려와 운전대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다음 일정들을 정리하는데 창밖으로 어수선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앗, 비 온다, 왜 갑자기, 우산 있어? 의아함에 고개를 들면, 분명히 쨍한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빗방울.


  이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미술관 남자

w.다로





  지루하다, 지루해. 하얀 캔버스는 늘 같은 크기 같은 질감의 같은 모습이었고,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듯 눈만 깜박여도 어렵지 않게 떠오르던 구상들이 더 이상 흥미롭지가 않았다. 입을 삐죽이며 붓으로 애꿎은 물감만 헤집던 은우는 외투를 걸치고 무작정 집 앞 미술관으로 향했다.


    "어.. 아직 오픈 전인가?"


  조용한 광경에 그제서야 시계를 확인하니 아침 9시 58분. 캔버스 앞에서 삽질한 게 족히 한 시간은 넘었을 텐데, 공강인 날 억울하게 일찍도 깼구나.

  첫 번째 전시관 앞엔 오픈 마무리를 하는 듯 부산스럽게 조명과 도록들을 확인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려보이는 얼굴, 이따금씩 다리를 달달달 떨고 입으로는 무언가 중얼거리는 게 딱 보니 초짜구나 싶다. 별 감흥 없이 타박타박 걸어가 입구에 들어서니 그 남자가 심호흡까지 하며 다가온다.






*


  시립미술관 2년 차 병아리 큐레이터 빈은 처음으로 자신이 기획한 전시의 오픈을 앞두고 달달달 떨리는 다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문빈 씨! 어디 아파? 많이 떨려요?"

    "네? 아아, 괜찮습니다."


  메인 전시는 아니지만 출입구 옆에 위치한 전시공간을 처음으로 마음껏 꾸밀 기회를 얻었다. 미술관에 들른 관람객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고, 다른 전시로도 관심을 끄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한 달을 내리 야근했던 터였다.

  피곤함에 멍한 동시에 새파랗도록 똑똑한 정신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하며 도슨트 멘트를 되뇌어보던 빈은, 드디어 들어온 첫 관람객을 발견하곤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첫 관람객이시네요. 혹시 오픈 기다리셨나요?"

    "아뇨, 방금 막 왔어요. 오랜만에 왔는데 새로운 게 많이 생겼네요."

    "이 전시는 오늘 첫 오픈이에요. 도록 하나 드릴까요?"




  은우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미술관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며 공부하던 미대생이었다. 부모님의 강요로 입학한 경영학과에서는 그 좋던 성적이 매번 바닥을 쳤고, 시위하는 거냐며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리신 후에는 알바를 하며 입시를 다시 준비해 기어이 원하던 미대에 들어가고야 말았던, 그만큼 가고자 하는 길이 확고했던 은우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림을 보는 것이 즐겁지 않고, 캔버스 앞에 서는 시간이 짧아지고, 과제를 하다가도 집중이 되질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게 슬럼프라는 건가, 한 번도 미술이 아닌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드는 이 두려운 무력감을 무작정 회피하고 있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기쁘게 드나들던 미술관 문이 무겁게 느껴지던 날부터 은우는 발길을 끊었다.



  전시 일정부터 직원들 얼굴, 도슨트 시간표까지 줄줄 꿰고 있었던 은우는 처음 보는 이 큐레이터에게서 자신이 잃은 무언가를 보았다. 그림을 처음 볼 때는 그림에 대한 정보를 일절 접하지 않고 보는 걸 좋아하는 은우였지만, 그가 나에게 건네주고 설명해주도록 내버려 둔 건 그가 조금 부러워서였을 뿐이다. 

  내가 일 년이 넘게 찾고 있던 것, 저 사람 눈에는 가득하구나.



  다시 작년처럼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에 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림이 아닌 그 남자를 보기 위해서. 두 번째 날엔 눈이 조금 커지며 표정으로 아는 체를 하고, 세 번째 날은 가벼운 목례를 하며 미소를 지었고, 네 번째 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고, 다섯 번째 날은 손을 들어 작게 흔들어주었다.

  항상 똑같은 인사를 받는 다른 관람객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인사들을 받는 은우는 속으로 어쩐지 간질한 감도 들었지만 그것을 감추며 보일 듯 말 듯 작은 미소만 건네곤 했다. 명찰에 쓰인 모양도 네모반듯한 문빈이라는 이름의 그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전시가 오픈하고 야근은 끝났지만 비축해둔 체력이 바닥난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퇴근 후 강변을 달리며 음악을 듣는다. 잡생각을 날려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은 그 남자로 가득 찬다. 처음엔 내 전시의 첫 손님이라는 것에 의미를 뒀다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마주칠수록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건 천 번째 건 상관없이 어쨌든 기억날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걸.


  미를 사랑해서 아름다움을 알리는 직업을 가진 저에게, 그만큼 눈길이 가는 대상은 처음이었다. 작품과 사람을 모두 포함해서. 사연 있어 보이는 분위기가 있긴 해도, 말간 얼굴과 출몰 시간을 보면 대학생이나 백수 같은데.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하고선 어쩐지 슬픈 눈으로 시선을 내리깔 때면 역사 속 서사가 그의 뒤로 배경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뭐야, 애인이라도 오기로 했어요? 아~ 은우 오고 있구나. 통 안 보이더니 요즘 다시 열심이네."


  오늘은 몇 시에 오려나 입구 쪽으로 고개를 쭈욱 빼보다 익숙한 인영이 비쳐 황급히 정자세를 취하자 지나가던 선배가 한 마디 거든다.


    "은우요?"

    "아, 빈 씨 들어오기 전이겠구나. 작년에 우리 미술관 사람들 다 아는 유명인이었어요. 워낙 자주 오기도 하고, 엄청 잘생겼잖아. 저번에 3관에서 조각 전시할 때 은우가 서있는데 벽에 비친 그림자가 조각보다 더 조각 같더라니까.. 우리끼리 은우는 미대에 소묘 조각상 전형으로 들어간 거 아닐까 하는 소리까지 했어."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 선배는 황급히 자리를 뜨고, 빈이 다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남자가 서있다.


    "점심시간이죠?"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주제의 주인공이 눈앞에서 인사도 아닌 대뜸 질문을 해 오니 당황스러움에 귀끝부터 감물이 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네."


  대답 순서가 이게 맞나? 고민하는데 그다음 말은 더 당황스럽다.


    "약속 없으면 나랑 먹을래요?"








    "아이, 갑자기 왜 비가 오지.."

    "예보는 없었는데. 보니까 먹구름도 없고.. 소나기인가 봐요."

    "네. 금방 그칠 것 같은데 좀 기다릴까요?"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단둘은 처음이라 어색할 것 같아 가는 길엔 괜히 큼큼댔는데, 대학을 두 번 다녀 아직 학생이지만 나랑 동갑이라는 것과, 입시 다시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경험, 발길 끊었던 미술관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 은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대화의 물꼬가 트이니 점심시간은 부족하기만 했다.


    "저야 시간이 많지만.. 점심시간 괜찮아요?"

    "아, 그르네.. 어느 쪽으로 가요?"

    "저두 이쪽."

    "그럼 우리 뛰어요."


  끄덕.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셋까지 세고 앞으로 튀어나가자 은우도 타이밍을 똑같이 쟀는지 동시에 달려 나왔다. 다 크다 못해 너무 건장한 남자 둘이서 비를 처음 본 아이들처럼 신이 나선 개구지게 달음질을 했다. 분명 뛰기 시작할 땐 비를 덜 맞겠다는 생각이었으나, 퍼져나가는 웃음소리와 함께 흩어져버린 것 같았다. 



  웃느라 벌어진 입안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이 달다. 미술관이 좀 더 멀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


  붓을 들었다. 인물화를 그리는 건 아주 오랜만인데도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눈에 담겼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느리게 스쳐지나간다. 휘어진 눈은 따뜻하고, 웃는 입은 시원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붓끝으로 그를 어루만졌다. 

  겨울에 첫 번째로 내리는 눈은 첫눈이라며 뉴스에도 나오는데. 함께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며, 발그레 물들인 손톱이 남아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기도 하는데. 비는 사계절 내내 내리니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기념하지도 않나 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너와 함께 맞은 첫비가 온 날로 기억하고 싶다. 


  빛과 비와 빈이 동시에 쏟아지는 캔버스는 서서히 아름답게 가득 차올랐다. 칠해진 유화물감의 표면이 마르도록 긴 시간동안 그림 속 그를 바라보았다.




  완성된 그림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는 물론 다른 누구에게도 이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림엔 나의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시선, 호기심, 온기, 경외, 그리고 사랑.. 같은.


  그것을 깨달은 후에 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아직 너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본 적도, 가슴 깊숙한 곳의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작은 습관과 말버릇, 기쁘고 슬픈 너의 표정들, 네가 살아왔고 살아갈 시간들을 모른다. 그것들을 알게 되면 될수록 얼마나 더 너를 사랑하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얼굴 가득 눈부시게 고결한 미소를 띈 너에게, 알게 되는 것조차 죄가 될 수도 있는 나의 마음을 내비칠 용기 같은 건 없어야 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던 부모님조차도 대학을 핑계 삼아 외면해버린 게 내 성향이었다. 꽁꽁 덮고 눌러서 곯아터지더라도 숨겨 조금이라도 더 훔쳐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너를 더 사랑하게 될 내일의 내가, 욕심이 생겨 널 갖고 싶어진다면. 혹여라도 착하고 똑똑한 네 심성이 내 큰 마음을 눈치 채고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해버린다면. 그 황홀한 다정함에 취해 이기적인 내가 너에게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면.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은 숨겨지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그 경멸의 시선과 꺼림칙하다는 수근거림. 내 모든 행동이 제한되고 오해 받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좀먹게 되는 긴 긴 새벽을 알고 있었다. 외롭게 맞이하는 새벽빛은, 빛나는 것들이 어여뻐하는 너는 평생 알아선 안 될 눈부심이었으니까.








*


  그 후로 어땠더라.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날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그리움에 멀리서 지켜본 날도, 그러다 들켜서 반가워하면서도 섭섭해 하는 너를 머쓱하게 만든 적도 있었지, 아마. 


  지금 생각해보니, 너를 포기한 내 마음은 우습게도 거만함과 얄팍한 정의감으로 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지만, 비겁한 외면이라고 비웃어도 나는 멋들어지게 반박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용기는 너를 더 사랑하는 것을 참는 데에 모두 끌어다 써버렸으니까.



  나, 나중에서야 알았어. 그날처럼 해가 나있을 때 잠깐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부른다는 걸. 세상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에게 이름이 있더라. 너도 지금은 더 많은 이름들을 알고 있겠지? 내가 더 많은 이름들을 알고 난 후에 너를 만났다면, 우리는 조금 달랐을까?


  여우비라는 게 그렇잖아. 보슬비처럼 싱그럽게 꽃잎을 두드리지도, 장대비처럼 세상을 다 적시지도 못하고 짧게 흩날리다 끝나버리지. 비꽃이 방울져 맺힌 옷자락을 툭툭 털어버리면 금세 잊혀질 지도 몰라.

그치만 왜 나는 그 작은 비를 떠올리면 애틋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걸까? ‬

꼭 그게 너인 것처럼.



첫사랑도 그렇지.‬후회 없이 저지르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못한 그저 그런 못난 풋사랑.‬


그럼에도 그 바래지 않는 초록은, 

너를 담은 내 그림 안에서 너를 닮아 영원할 거야. 






  첫비 l 차은우

  캔버스에 유채, 53cm x 77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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