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도

2020 여름호
작가
키읔
주제
발리




    다음에도



"우리 여행 가자. 나 발리 가고 싶어"

" 갑자기?"

"응"

"또 왜ㅋㅋ 이번에는 뭐에 꽂혔는데?"

"아니 그냥... 별거 아니야"


갑자기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발리를 외쳐댔다. 저번에는 해리포터에 꽂혀서 영국영국 노래를 부르다가 좀 잠잠해지는 듯싶더니 이젠 발리를 가자고 그래서 은우는 그냥 반 쯤 체념하고 숙소나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빈아"

"응?"

"그래, 가자"

"진짜?? 진짜로????"

"응"


오랜만에 한 번 여행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가고 싶다는 데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그냥 허락해줬다. 사실 영국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발리를 가자고 조른다. 영국보다는 확실히 발리가 나은 것 같으니 마음 바뀌기 전에 그냥 가자고 허락해줬다. 하지만 영국은 해리포터 때문이라고 쳐도 발리는 왜 갑자기 꽂힌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너 원래 영국 가고 싶다며. 갑자기 발리는 왜?"

"그냥"

"그냥이 어딨어. 빨리 말해"

"싫어"

"말해 아니면 발리 안 가"

"간다고 해놓고 말 바꾸는 게 어딨어. 발리 안 가면 너 스킨쉽 금지"

"너무해"


결국 오늘도 차은우가 졌다. 정확히 말하면 져줬다. 그걸 문빈도 아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가서 말해줄게"


둘 다 회사에 휴가 쓰고 비행기표 잡고 호텔 잡고 며칠간 여행 준비로 더 바쁘게 살았다. 은우는 이틀 전부터 신나서 짐 싸고 있는 빈을 보며 웃으며 옆에서 웃으며 짐 싸는 걸 도왔다. 오랜만에 여행이라 그런지 짐 싸는데 조금 어색했다.


"진짜 출발이야. 너무 설렌다"

"그러게. 여행 진짜 오랜만이야"


빈 뿐만 아니라 은우도 들떠서 비행기 안에서 피곤한 지도 모르고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사과주스 한 잔 씩 마시고 둘 다 잠들었다. 지금 안 자면 아마 가자마자 잠 들 텐데 실컷 여행 와서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일부러 눈을 붙였다. 도착해서도 못 깨어나는 빈 때문에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쾌하게 비행기에서 내려 둘 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로 가야 돼?"

"이쪽"

"진짜 이쪽 맞아?"

"야 나 못 믿냐"

"아니 당연히 믿지~"

.

.

.

"야 너 앞으로 나 믿지 마라"

"혹시 몰라서 내가 숙소 위치 알아놓았는데....."

"하, 나 안 믿었구나. 나빴어 진짜"


은우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후 빈의 손을 잡고 숙소 방향으로 이끌었다. 빈은 의외로 그냥 얌전히 끌려갔다. 나중에 해준 말이지만 숙소 예약은 자기한테 믿고 맡긴다고 해놓고 길도 헤매지 않고 바로 숙소를 찾아가는 은우에 조금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하다고 징징거렸다. 차은우는 또 그걸 귀엽다고 생각했다.


오는 길에 호텔이 되게 많았는데 다 수영장도 딸리고 좋은 호텔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고, 방에 올라가서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가서 보이는 풍경이 진짜 멋졌다. 탁 트인 바다하고 수영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괜히 휴양지로 발리가 좋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발리에 꽂힌 이유가 있었네 라며 계속 옆에서 짐 풀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창밖 만 보는 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짐 풀자"

"맞다. 짐 풀어야지"

"안 피곤해?"

"응. 빨리 짐 풀고 수영장 가자 오면서 봤는데 너무 좋아 보이더라"

"맞아. 진짜 좋아 보였어. 빨리 가자"


둘 다 들떠서 얼른 짐 풀고 수영장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수영장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 서로 장난도 치고 그러다가 가만히 앉아서 수영장을 바라보며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상 이야기도 하고 연애 초반 이야기도 나오고 그냥 아무 말이나 하기도 했다.


"이래서 다들 여행 가자고 하는구나"

"내 말 진작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랬으면 다른 나라 갔겠지"

"그건 그렇네. 근데 여기는 와보니까 진짜 좋다"

"다음에 또 올까?

"또 오자"


한참 이야기하다 또 오자는 약속까지 하고 또 놀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온 둘은 누가 먼저 씻을 지를 정하다가 쿨하게 같이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수영장에서 놀았으면서 또 욕조에 들어가서 물장난 치고 씻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서 씻고 나왔다. 대충 머리 말리면서 가운 입고 침대에 둘 다 누웠다.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평소의 일에 치인 피곤함이 아닌 행복한 피곤함에 웃음이 나왔다.


"피곤하다"

"그러게. 너무 열심히 놀았어"

"근데 진짜 재밌었어"

"맞아. 내일 또 놀아야지"

"졸려..."

"잘 자"


잘 자라며 이마에 키스해주는 은우에 빈은 또 설렜다. 연애 시작했을 때 이마에 키스해주는 게 유난히 두근거렸던 그 기억도 다시 나는 것 같고 그래서 일부러 가만히 누워있는 은우한테 안아달라고 징징거렸다. 웃으면서 왜 그러냐고 묻는데 그냥 무작정 안아달라고 했다. 그래도 차은우는 다 받아줬다. 항상. 딱 문빈한테만.


사실 빈이 처음 은우를 봤을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의 별로. 바로 반했다. 그래서 말도 못 걸었다. 아니 은우가 말을 걸어오는데도 대답도 못 했다. 근데 그게 은우 눈에는 자기를 싫어하는 걸로 보였다고 한다. 둘은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그날도 빈은 자주 가는 회사 앞 카페에 갔는데, 엄청 잘생긴 사람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옆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자기도 나름 잘생긴 외모라고 생각했지만 옆자리의 그 사람은 정말 자기가 본 인간, 동물 다 포함해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저게 사람인가 싶어서 옆에서 보면서 언제 말 걸지 말 걸 수는 있을까 타이밍 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관심 있다고.


그래도 그걸 어찌어찌 잘 풀어서 친구부터 하기로 했는데 그 날 이후로 빈은 자기 친구가 너무 잘생겼다며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다녔다. 근데 맞장구쳐주면 기분 좋은 지 웃으면서 반하지는 말라고 했고, 시원찮은 대답이 나오면 그 날 하루 그 사람이랑 말을 안 했다.


그 덕에 빈의 주변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남인 차은우의 얼굴을 궁금해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은우가 빈과의 약속이 있어 빈을 데리러 왔을 때, 빈의 회사는 뒤집혔다. 세상에 저런 일반인이 있냐고. 회사원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배우나 아이돌 아니냐고. 그리고 그 날 이후 여직원들이 빈에게 은우를 소개해 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빈은 이런저런 변명을 돌려가며 다 거절했다. 이미 처음 본 순간 친구 이상의 감정이었으니까. 빈이 거절하자 여직원들은 아쉽다는 말투로 다음에 오면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그랬다. 그 이후로 빈은 은우에게 자기를 데리러 왔을 때는 그냥 차 안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고백은 은우가 했다. 빈은 은우가 같이 밥 먹자고 해서 나왔는데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어서 놀랐다. 그것도 정장 차림에.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라 그나마 나았지만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차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외모에 장미 꽃다발 들고 있는데 안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다가가서 손 흔드니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귀자는 흔한 멘트와 장미를 건네주는데 그 흔한 멘트가 세상 달콤하게 들리는 마법... 같은 얼굴. 바로 승낙했다. 사실 은우도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빈이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신을 좋아해도 고백을 받아줄지 아닐지가 걱정이었지만 누가 그런 말을 했었다. 하면 50%지만 안 하면 0%라고.


그 말을 후에 들은 문빈은 은우에게 한 번 더 반했다. 차은우는 자기가 한 말도 아니고 들은 말이라고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은우가 너무 멋졌다. 심지어 자기가 한 말도 아니라고 하는 겸손한 모습까지 좋았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자 다들 콩깍지가 씌였다고 그랬다. 그러면 문빈은 항상 말했다. 너네는 차은우의 진짜 모습을 몰라.


차은우도 만만치 않았다. 문빈도 성인 남성, 그것도 181cm의 근육도 꽤 많은 성인남성이었다. 그런 건장한 성인 남성을 귀여운 소동물로 모에화를 시작하였다. 고양이? 눈 보면 조금은 인정. 강아지? 웃을 때 눈 내려가니까 뭐... 근데 고슴도치? 대체 어느 부분이...? 아기 고라니?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차은우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너네는 문빈의 진짜 매력을 몰라.


남자끼리 사귄다니까 당연히 경멸하는, 더럽다는 듯 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너 게이였냐 부 터 시작해서 더럽다 누가 밑이냐 너 그런 취향이었냐 어쩌고 이외에 입에 담기도 싫은 말들. 주변에서 더 유난이었다. 그런 말 들으면 갚아주라고. 하지만 막상 본인들은 오히려 별로인 사람 걸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좋다는데 싫으면 뭐 어쩔 건데 의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다가 오히려 더 잘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과도한 주접만 아니면 먼저 둘의 연애사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누가 한 명 데리러 가면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고 얼굴 한 번 이라도 보려고 따라 나왔다. 둘의 얼굴을 본 지인들은 8할 이상이 둘이 같이 유튜브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커플 유튜브 하라고, 일상도 기록할 겸 좋지 않겠냐고. 여러 번 그런 말을 들으니 진지하게 고민 되었지만 역시 아닌 것 같아 안 하기로 했다. 그냥 둘의 일상은 둘이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직 은우도 잠들지 않았는지 몸을 돌려 빈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 하냐고 물어왔다. 항상 그랬듯이. 다정하게. 빈은 은우의 다정함이 좋았다. 모두에게 다정하지만 자신에게만 그 다정함의 선과 한계가 없는 것은 더 좋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그냥 우리 만났을 때"

"나 그때 네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 내 질문에 대답이 없길래"

"당황해서 그런 거야. 나 너 처음 봤을 때 부 터 좋아했다니까?"

"알았어ㅋㅋ 근데 너 발리 갑자기 오고 싶었던 이유가 뭐야?"

"말 안 할래"

"와서 알려준다며"

"알았어. 알려줄게"


말로는 알려준다면서 말 안 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 빈에 은우는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이유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망설일 일인지. 잠시 후 빈의 대답을 들은 은우는 빈을 한 번 더 끌어안았다. 빈이 놔달라고 하는데도 계속 끌어안고 다음에도 꼭 자기랑 같이 오자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얼굴을 마주 보고 말했다. 막상 말한 본인은 너 말고 올 사람이 누가 있냐고 하면서 부끄러워서 놔달라고 난리였다. 간신히 은우의 품을 벗어난 빈은 괜히 말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여행 오기 전에 빈은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리가 신혼여행 오기에 좋다는 글을 봤다. 물론 그 전부터 발리가 휴양지로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딱히 관심이 없어서 흘려들었었다. 검색창에 발리를 치자마자 바로 아래에 발리 신혼여행이 뜨는 것을 보고 들어가서 더 찾아봤다. 사진으로 본 바다도 예뻤고, 예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발리가 휴양지로는 좋다는 소리도 들었고, 은우랑 신혼여행처럼 발리에 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은우한테 발리 가자고 떠보듯이 말했는데 은우가 수락해준 것이다. 그래서 말하려니 부끄럽지만 안 말하기에는 이미 말해주기로 했고 은우에게 거짓말은 하기 싫어서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


"너랑 신혼여행처럼 와보고 싶었어. 이번에 와서 좋았으면 뭐... 신혼여행으로 여기 오려고 했지. 근데 이제 너 말고는 아무하고도 여기 안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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