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YOURLIFEREADYTODIE.

2020 여름호
작가
주제
뉴욕


LIVEYOURLIFEREADYTODIE.

차은우 문빈


6구역의 기적. 그게 차은우의 별명이자 이름. 6구역 내에서 단 한 번도, 누구도 열어본 적 없던 2구역 연구소 소속 교육기관의 문. 코피 터지면 틀어막고 허벅지 찔러가며 악으로 공부한 차은우. 앞선 두 개의 서술은 그렇게 만난다. 악으로 눈 뜨고 살며 공부한 차은우는, 2구역 연구소 소속 교육기관 문을 열고 당당히 수석 입학. 그래서 붙은 별명. 6구역의 기적.

입학 직전, 연구소 및 교육기관 내부 회의에서는 차은우의 입학에 대한 찬반을 두고 오랜 시간 토론했다. 아무리 낮아봐야 4구역에서 학생을 뽑아왔는데, 갑작스럽게 6구역의 인간이 입학해도 되는 것이냐. 그게 문제였다. 계급처럼 꼬리표 달려 붙어 다니던 6구역 출신. 그럼에도 악으로 버틴 차은우의 눈. 회의에서는 그 눈을 알아본다. 그렇게 얻게 된 6구역의 기적이자 하위층 구역의 희망.

바이러스 연구소 산하 교육기관. 차은우가 문 열고 들어간 곳. 수석 입학 후, 수석 졸업까지 이뤄내고야 만다. 독종. 그렇게 붙은 새로운 별명. 연구복 받고, 처음 연구소 발 들이던 날 수군거리던 입들. 쟤가 그 독종. 6구역에서 올라와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까지 따낸 놈. 쟤가 걔. 뒤에서 들려오던 말들에 차은우는 그냥 웃고 말았다. 구역 나누던 멍청함에 인간이 가진 지능을 생각하지 않는 짓들. 그것을 이겨버렸을 뿐이다.

“이번에 어디로 가?”

실린더 바라보던 눈동자는 질문자 찾지 않고 두어번 깜빡.

“8구역.”

“뭐?”

높아진 톤.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펜 내려놓고 뒤돈다. 밤새 책 읽더니 어느새 더 두꺼워진 안경에, 대충 넘긴 숱 많은 노란 머리. 그 밑으로 단추 잘못 채워둔 체크셔츠까지. 몇 년을 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음에 놀라곤 한다. 로건, 제발. 왜 그렇게 놀라? 입 떡 벌어진 얼굴. 유난히 제 일에 신경을 못 써 안달 난 동기이자 동료. 로건은 유난히, 차은우의 일에 더욱 유난스럽게 굴었다. 본인의 사람 챙기는 일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랬다. 6구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떨어져 지내던 수석입학생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 걸었던 인물.

“너 또 그냥 간다고 한 거야?”

“그럼 내가 뭐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8구역은 너무 심하잖아.”

“뭐가.”

“애초에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가?”

“9구역도 아닌데 뭐.”

“야, 너…,”

“셔츠 단추나 제대로 채워, 로건.”

고개 숙여 이마 짚는 로건의 가슴께 주머니로 사용하던 볼펜 넣는다. 어차피 가기 싫다고 해도 가야 한다는 거 알잖아. 어깨 두어번 토닥이고, 작성한 결과지 들고 자리를 피한다. 로건이 어떤 것을 걱정하는지 차은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도, 첫 파견도, 모두 6구역 이하의 지역에 자리 잡았다. 일종의 차별이고, 텃세고, 어떻게 보면 죽음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 일. 지속적인 차별과 죽음의 위협에 더욱 열을 내는 것은 로건이었다. 당사자야 일찍이 이런 상황들 인지하고 있었고, 예상도 했을 테니.

인간들은 아주 멍청하게도 구역을 나눠 생활했다. 이는 차은우의 꼬리에 6구역 출신이 붙어 다니는 이유가 되었고. 구역 나눈 생활은 차은우의 생 이전부터 이루어지던 것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반항하지 않았다. 하나 날뛴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의 반항은 가능했다. 누구도 두드리지 않던 문들을 두드리며 다니고, 부당한 대우라 생각된다면 문을 부수기도 했다. 그게 악으로 살아온 차은우의 방식이었다. 세상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제 앞에 놓인 인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 독종. 그래서 그렇게 불렸다. 6구역의 기적 혹은, 독종.

1구역은 온갖 사치와 향락이 가득한 곳이었다. 졸부들 모여 살고, 뉴욕 전체의 재산 80퍼센트를 그들이 가진다 하더라도 틀린 말 하나 없을 정도. 그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이 향하는 곳은 8구역과 9구역. 사치가 난잡하게 이루어지는 구역인지라 포장 뜯지도 못한 음식물들 줄줄 떨어지곤 했다. 인간 살 수 없는 곳이라 불리는 그곳에도 몇몇 인간들은 무리 지어 생활했고, 그들은 그 쓰레기더미 속 음식 찾아 손 뻗었다. 로건이 걱정하는 이유 중 아마 가장 큰 것. 무리 지어 생활하는 이들 눈에 들었다가는 인육되어 발견될 수 있다는 것.

차은우가 나고 자란 6구역은 딱, 인간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주어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버려지는 문제집들 주워다 공부했고, 몰래 4구역에서 넘겨받은 책들 걸레짝 될 때까지 들여다보며 독기 품었다. 거지 같은 구역 벗어나 인간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본인의 생으로 인지시켜 줄 생각으로. 처음에는 성공이라는 맹목적인 목표 하나만을 가졌고, 다음으로는 인간들의 멍청함 선포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그렇기에 구역이라는 꼬리표는 차은우에게 좌절의 원인 되어 다가올 수 없었다. 언젠가 좌절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도 아닌 본인 노력의 한계일 것이라 확신한다.

며칠 뒤 간단하게 챙긴 짐 들고 연구소를 나섰다. 끝까지 안경알 너머 걱정어린 눈을 하는 로건 지나쳐 준비된 차에 올라탄다. 8구역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소식이 사실인지 알아보면 되는 일. 그게 사실이라면 바이러스 샘플 가지고 돌아오면 되고, 사실이 아니라면 허탕 치고 돌아오는 일. 새로운 바이러스 발견 시 가지는 공은 당사자. 그렇기에 사실 차은우에게 내려지는 파견은 거짓일 확률이 꽤 높았다. 개고생 한 번 해보라지, 그런 의미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체, 긴 시간이 될 것이었다. 조용히 두 눈 감는다.

일주일 뒤 연락해주시면 오겠습니다. 짧은 인사 남기고 떠난 기사. 해가 진 도로에 멍하니 서 두 눈동자 굴리며 생각했다. 아무리 인간이 살 수 없는 구역이라지만, 너무 황량했다. 듣던 것보다 을씨년스럽고. 제대로 된 행색을 하지는 않았으나, 집도 있다. 집 옆에는 악취 잔뜩 득실거리는 쓰레기더미. 밑으로 오물 흐르고, 온갖 벌레와 쥐들이 보였다. 이러니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하지. 인상 찌푸리며 연구소에서 준비했다던 숙소 향해 걸었다. 걷는 내내, 사람 하나 보이지 않음에 의문을 가져야 했다. 인기척은 있으나, 구태여 나타나 존재감 내비치지 않는 죽은 도시.

숙소 앞 도착해 문 두드리니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낸다.

“2구역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왔습니다.”

명찰 보여주며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천천히 열리는 문.

“빨리 좀 들어오세요.”

날카로운 어투와 숨소리 가득 섞인 작은 목소리. 눈가 살짝 구겨진다. 

숙소라기보다 잠시 집 빌려 잠만 자는 느낌의 실내였다. 구석에 거미줄 잔뜩 늘어지고, 한쪽에는 쥐가 바닥을 기었다. 그 가운데 누워 잠을 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마 짚으며 한참을 둘러보니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발견한다. 이 좁은 집에. 그제야 내부를 살펴보게 된다. 폐지 잔뜩 붙은 창문. 그 위 못 박아둔 판자. 고의로 깬 듯한 전등.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밖에 사람도 없고…,”

“미친놈들이 날뛰니까!”

구석에 모여 웅크렸던 사람들 중 한 명.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친다. 미친놈들? 고개 돌려 바라보니 두려움에 젖은 눈빛. 바닥에 붙이고 선 다리는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두 눈 깜빡이며 그들 하나하나 천천히 훑었다. 현재 상태, 행색.

“어디 있습니까?”

“밤에는 안 나와.”

“맞아, 낮에만 나와 활동해요.”

최대한 밤에 움직이세요. 우리도 살고 싶으니까.

새벽에 활동을 시작하자니 온몸이 뻐근해 죽을 지경이었다. 밤낮이 갑작스럽게 바뀌니 머리는 깨질 듯 울리고 두 손은 쥐 난 듯 저릿하다. 아무리 남들 잠든 새벽 이용해 공부했다지만, 움직인다는 것은 꽤 익숙하지 않아 피곤한 일이었다.

사람들 반응만 보더라도 이번 파견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기라기에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었고, 구태여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 손전등 하나 없이 새벽에 거리 돌아보자니 눈에 보이는 것이 현저히 적었다. 분명 무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런 행동이 나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바이러스에 관한 소문은 사실일 것이었다. 거짓이라 치부하기에, 사람들의 동공은 너무나도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라는 말이 바이러스에 관련되어 있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 숨소리 하나 보일 것 같지 않아 한숨 폭 내쉬고 만다. 분명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의구심이 방울져 맺혔다. 같은 것을 지칭할 것 같은데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가지고 온 지도 길목마다 체크하면, 구역이 꽤 넓은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생겨난 바이러스. 적막 가득한 골목 벗어나며 긴 한숨을 뱉어낸다.

지나온 골목 그대로 돌아가다 보면, 어느새 뒤로 따라붙은 발걸음 하나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로 천천히. 그러나 앞선 사람 속도 맞추는 발걸음. 자리에 멈춰서면, 똑같이 멈춰서는 두 발. 뒤돌아 그 발의 주인을 찾아낸다. 빛 하나 없어 어두운 탓에 생김새는 알아볼 수도 없었고, 인간의 형체라는 것만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만 따라오시죠. 왜 자꾸,”

“뒤질까 봐요.”

“예?”

“소리 죽여요. 진짜 그쪽 뒤질 것 같으니까.”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례함.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서 듣는 불쾌한 결말.

“무슨 말입니까.”

“언제 돌아가요?”

말이 안통하는 인간. 고개 내젓고 발걸음 돌린다. 몇걸음 걷자 들려오는 음성. 

“나 좀 데려가요.”

숙소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한 일. 기사에게 연락해 다시 데리러 오라는 말 전하는 일.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으나 다 채우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또, 다 채워봐야 좋을 일 없을 것도 같았고. 연락은 날이 밝고서야 돌아왔다. 이틀 뒤 출발하겠습니다.

이틀 간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새벽에 돌아다녀도 건질 수 있는 것들은 없었고, 무언가 뚜렷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정말 날이 밝았을 때 나가야만 이곳의 상황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은 해가 저물어가던 시간 즈음, 숙소 문을 열기도 했다. 바깥으로 발 내딛는 것을 실패한 원인은 명료했다. 행동 하나하나 날카롭게 주시하던 눈들은 손이 되어 달려들었으니. 열었던 문은 순식간에 닫힌다. 들려오는 호통. 욕. 결국 외출 포기.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도 정보를 흘려주는 것도 아닌 사람들. 그렇게 소득 없는 이틀을 보낸다.

기사는 꽤 오랜 시간 기다리게 만들었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가지고 왔던 짧은 서류 몇 번을 읽어도 알림 울리는 연락은 없다. 굳게 닫힌 문 앞 가만히 앉아 멍하니 시간을 허비하기까지 했다. 평생 허투루 써본 적 없던 시간을 그렇게 날린다. 긴 한숨이 터질 때 즘이면 이미 해는 저물고, 두 눈 감기기까지 했다. 늦으면 연락이라도 할 것이지. 이미 흐트러진 머리 대충 쓸어넘긴다.

집 돌아가는 일까지 허탕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제야 화면 밝아지며 알림 하나. 도착했습니다. 뒤에서 인사하는 목소리들에 고개 한 번 까딱. 문 열고 나서니 이미 해가 다 진 어두운 시간. 한숨 내뱉으며 준비된 차에 올라탄다.

“늦으셨네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럼 뭐가…,”

“소식 모르십니까?”

눈 깜빡이며 바라보자 이내 됐다는 듯 바퀴가 굴렀다.

“여기서 살아남으신 게 신기하네요.”

“꼭 죽는 걸 바랐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낮에 나온 적 없으시죠.”

“예…, 뭐.”

“아무것도 모르시겠네요.”

그 순간 차체가 급하게 멈춘다. 속도 이기지 못하고 한참을 더 굴러 멈췄을 때, 앞 유리 너머 사람 하나 보였다. 비켜설 생각 않는 형체에 핸들 돌아가고, 뒤로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라이트 안 켜셨네요.”

“키면 다 죽어요.”

뒤로 빠지는 차량을 눈치챘는지 사람은 급히 달렸다. 그렇게 멈춰선 곳은 차은우 올라탄 조수석 문. 창문 두드리기에 천천히 내린다. 불쾌함에 잔뜩 구겨진 인상. 불쾌감 가득 들어찬 표정. 남자는 그에 대고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잡힌 옷자락.

“뭡니까?”

“나 데려가라니까요.”

이름은 문빈. 나고 자라길 8구역에서. 제공한 정보는 그게 끝. 문빈은 뒷좌석에 몸 구겨넣고 잠들었다. 데려가도 될까요. 옆에서 묻는 말에 대답 하나 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쓸어내렸다. 뭔가 알고 있겠죠. 자문자답. 기사는 그렇게 먼 길 달려 8구역 벗어나는 길목 통과한다.

구역 나눠 생활한 것은 꽤 오랜 역사를 가졌다. 물론 인간의 추악함 드러나긴 했으나, 그 추악함마저도 기록한 것이 역사이니. 1구역부터 9구역까지. 상위에 속한 구역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 억울하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차은우는 그 억울함을 악으로 풀어내던 인물이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으면, 한 번은 변해야 하는 규칙이지 않나. 누군가는 이례적인 행동 하나 낳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차은우는 자신을 이례적 범주에 넣기로 결정했다. 윗 구역들 고통의 대리인 되려던 방향을 틀었고, 그 방향은 2구역으로 향했다.

1구역에는 그렇다 할 교육기관이 있지 않았다. 대대로 물려지는 재산과 사치의 관습을 가진 채 생활하느라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마, 멍청함으로 견주자면 6구역보다 하위일 것이 분명했다. 그곳은 교육의 필요조차 없을 만큼 동떨어진 세상이니. 그렇기에 1구역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 후 차은우는 2구역의 교육기관에 눈을 돌렸다. 그곳에서 명시하길 9구역 인물까지도 자격이 된다면 입학 가능하단다. 가장 첫 목표는 그곳이었다. 2구역 위치한 교육기관들 중 가장 수준 높다 여겨지는 바이러스 연구소 산하 교육기관. 

2구역 비롯해 3구역까지, 웬만한 교육은 그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살고, 연구소 밀집한 구역. 그 밑으로 늘어선 구역들이 구역 이동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 2구역 3구역 교육기관의 문을 여는 것. 그러나 차별은 존재하고, 그간 6구역 밑에서는 한 명도 올라간 적 없다 들었다. 차은우는, 그 선례를 깨기로 했으며, 가장 처음 깬 인물이 된 것이다. 하나의 이슈였다. 4구역 및 5구역에는 일반적인 학교가 존재하나, 6구역 이하로는 그 어떤 교육과정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큰 이슈. 차은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뼈는 2구역에 묻겠다 생각했다.

성공에 관한 근성이 아니었다. 역사에 대한 반항이었고, 인간들의 멍청함 알리려던 근성이었다.

8구역부터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구역으로 여겨졌다. 1구역에서 나오는 모든 사치와 향락의 흔적이 그곳에 묻혔고, 2구역 3구역에 나오는 폐기물이 그곳으로 향했다. 간간이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그리 오래 살아남지는 못했다. 건강 문제 탓이 꽤 큰 편이었고, 애당초 병원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문빈. 2구역에 도착할 때가 되어서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뒤 한 번 돌아보고 한숨 한 번.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저건 어떻게 할까요.”

“깨면…, 제 연구실에 데려다주세요.”

개인 연구실은 6층 가장 구석에 위치했다. 이마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내어줬지만. 사람 발길 잘 닿지 않는 곳인지라 조용함에 만족하며 이용하는 중이었다. 모든 텃세와 차별들이 이미 예상하던 것들이었다. 기죽지 않고 꾸준히 연구소에 발 붙이고 있을 수 있던 이유. 죽어라 버텨 2구역에 발 들인 차은우의 입장에서, 그마저도 가소롭게 보였을 뿐이었다. 아무리 구역따라 사람 나눠봐야, 본인은 이미 그 구역 무시하고 넘어온 사람이라.

연구실 올라가는 내내 연구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제 연구실 앞 서성이던 로건을 보며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고. 멀리서부터 보이는 큰 덩치. 체크셔츠.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 복도 위 발 내딛는 소리. 로건의 고개가 돌아왔다. 멀리서부터 표정 변화가 뻔히 보인다.

“무슨 일이야?”

“너 살았구나, 다행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죽은 줄 알았어.”

“무슨 말이냐니까?”

“못 들었어? 9구역에서 시작된거래. 우리 연구소에서 버린 쥐 샘플이 그곳으로 갔잖아.”

“뭐가, 바이러스가?”

“그래! 다 은우, 너 죽으라고 보낸 게 뻔하다니까.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들어가서 얘기하자. 아직 이해가 안 돼.”

로건은 온 몸 다 써가며 설명했다. 연구소에서는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비밀로 여겨지는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지하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이 그 축에 속했고, 직급 꽤 높은 인간들이 벌이는 하나의 위험물로 여기는 편. 실험용 쥐 사용은 얼마 전부터 지양하자며 말이 나오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하에서 실험용 쥐 통해 바이러스 연구를 했고, 샘플이 되고, 이내 버려진 쥐가 9구역으로 향했다. 죽은 줄 알았던 쥐들이 움직여 사람을 공격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차은우가 조사하러 갔던 바이러스.

“너 파견 보낸 놈들은 알고 있었을 거야.”

“아니라곤 못 하겠네.”

“억울하지도 않아?”

“그런가. 익숙해 이미.”

“그런데 그게 너무 빨리 퍼지는 게 문제야.”

“8구역에도 이미 퍼졌던 거야?”

“그렇대. 너 돌아오는 동안 아마 7구역까지 올라왔을 수도 있어.”

턱 괸 채 앉아 눈으로 마주한 장면들 하나로 맞추기 시작했다. 낮에만 나와 활동하고, 밤에는 없고, 미친놈들. 그런데 그게 바이러스. 처음 8구역 도착하길 날 어두울 때. 그나마 살 수는 있게 해준 건가. 2구역에서 버린 쓰레기 중 하나가 문제. 그것은 9구역부터 시작되고, 빠른 속도로 게이트 통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서 넘지 못했던 구역 나눈 벽, 그렇게 감염자로 넘기 시작했다. 검지 들어 눈가 몇 번 긁적였다.

낮게 가라앉은 공기. 짙은 정적. 로건의 한숨 한 번. 그렇게 한참을 있던 중, 연구실 문 두어번 두드리는 소리. 고개 드는 차은우와 자리에서 일어나는 로건. 문 열면 기사 옆에 선 문빈. 차은우는 가만히 바라보다 손짓했다. 명백히 들어오라는 손짓. 천천히 걸어들어온 문빈은 자연스럽게 의자 끌어다 앉는다.

로건은 급히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누구야? 여유로운 듯 보이는 문빈. 시선 조금 내리면 잘게 떨리는 두 손 있다. 로건 뒤로하고 천천히 다가가 문빈 어깨 위 손 올리면, 퍼뜩 돌아오는 고개.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긴장하고 있던 것이다. 두 사람 가만히 훑던 로건은 고개를 저어냈다.

“혹시 8구역에서 데려온 사람이야?”

“응.”

“은우, 너 미쳤어?”

“멀쩡해요.”

일순간 날카롭게 뱉은 말. 문빈은 그렇게 날 선 눈 가지고 로건을 바라본다.

“그걸 어떻게 믿고…,”

“당신들 아무것도 모르지.”

그거 어떻게 옮는지, 옮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는지 사는지 살 수는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 아는 것도 없잖아. 내가 필요하잖아. 급하게 쏟아지는 문빈의 말. 긴장 풀리지 않았는지 목소리에도 떨림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 음성 끝나고, 조금 있으니 차은우 입에서 금세 웃음이 터졌다. 부정조차 할 수 없게 비웃음 묻어나는 웃음. 문빈은 제 어깨 위 올려져 있던 손 내친다.

“필요 없으면.”

“거짓말.”

“필요 없으면 어떡하려고, 돌아갈 생각입니까?”

“웃기지 마. 필요 없었으면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차은우 입에서 웃음이 멎었다. 웃던 표정 금세 사라지고, 고요한 눈동자.

“그럼, 필요한 만큼 해줄 건가?”

“….”

“뭘 필요로 하는 줄 알고.”

문빈은 제 손가락 가져다 머리에 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려와 눈꺼풀 한 번 스치고, 콧대 쓸고 내려와 입술 한 번 건드린다. 여기에 들은 거. 확신에 찬 음성. 나 죽으면 안 나오잖아. 차은우는 결국 헛웃음을 뱉었다. 사실이기도 했고, 사실 바탕으로 뱉어낸 말이 너무나도 당당해서. 저 없으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한 눈빛이 가소로워서.

결과 보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사람 하나 데려왔다 이야기 할 수도 없었고. 얻은 정보가 없었으니. 상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으나, 뉴스로 마주한 소식에 금세 웃음을 잃었다. 빠르게 올라오는 바이러스가 소식지, 신문, 뉴스 온갖 매체를 뒤덮었다. 강세를 탄 소식은, 그렇게 두려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일부 여론은 그저 미디어의 공포감 조성을 주장했으나, 그마저도 며칠 뒤 묻히고 말았다.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온 바이러스는 어느새 5구역 문을 개방했으니.

순식간이었다. 8구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칭하던 것이 현재 보도되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었으며, 빠른 속도로 구역들의 문이 개방되었다. 순식간에 경계가 사라지고, 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구역은 금세 모든 출입구를 폐쇄한다. 연구소 내 백신 연구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기에, 3구역 연구소의 일이 되었다. 샘플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던, 완전히 실패한 연구. 3구역은 실패를 정리하기 위해 무작정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고 만다. 순식간이었다. 차은우가 2구역에 돌아오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까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2구역 돌아온 다음 날, 차은우는 연구실에 앉아 문빈에게서 하나씩 이야기를 건네받았다. 소리에 좀 예민하고, 빛이 없으면 안보여요. 근데, 어두울 때도 가까이 있으면 알아보긴 하고요. 물어요, 사람. 그냥 갑자기 달려들어서…, 물면 끝이에요. 그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움직여요. 좀 이상하게. 눈동자는 하얗게 변해서 초점도 없어 보이고, 핏줄은 다 터지고 그래서 피부가 다 파래요. 썩는 냄새도 좀 나고. 열심히만 도망 다니면 안잡히는 건 분명한데,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왜 데려와 달라고 했습니까.”

“살고 싶으니까요.”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은데요.”

“거기보단 낫네요. 밥도 제대로 먹고.”

문빈은 꽤 태연한 척 굴었다. 긴장한 것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할 정도로. 

얼마 뒤 로건은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 연구 경과 기록된 파일이야. 너도 필요할 것 같아 보내둬. 로건은 발이 넓었다. 아는 사람 많았고, 어디를 가나 서글서글하니 잘 어울리는 성격. 보내온 파일도 그런 특유의 성격 통해 얻어낸 것이 분명했다. 분명 누군가는 쓰레기를 처리해야 했으며, 그게 누가 될 것인지는 연구 통해 밝혀질 일. 차은우는 파일 열어 하나씩 읽어내렸다.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느새 3구역까지 퍼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타났으니.

대부분 문빈의 증언과 맞았다. 바이러스 감염 경로는 혈관. 뇌까지 타고 올라갈 시 온전한 감염상태가 된다. 빛이 있을 때만 나와 활동하며, 빛이 없으면 시력이 급속도로 하락하는 것. 빛과 소리에 주로 반응. 감염되면 시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살아 움직이며 이들은 약 석 달을 활동할 수 있다. 두 달은 활발히 활동이 이루어지며, 이후 서서히 모든 감각이 상실되기 시작한다. 완전히 시체가 되어 썩기 직전까지 감각이 죽어가며, 이때 소리에도 반응하기 어렵고 빛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폭주상태가 되는 것. 폭주상태가 되면 신체능력이 갑작스럽게 상승한다. 약 이틀 간 이루어지고, 이후 모든 세포가 죽어 온전한 시체가 된다. 폭주상태일 때 감염자는 빛이 없더라도 볼 수 있다. 바이러스가 퍼진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르던 내용까지, 그대로 작성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옆에 앉아 함께 활자 읽어내리던 문빈은 고개를 저어낸다.

“여기 잘못이네요.”

“…그렇겠죠.”

“화나요, 억울하고.”

프로젝트 이름은 인간 수명에 관련된 것이었다. 개요에 적힌 것으로는 수명 연장과 수명에 따른 노화 방지에 관한 무언가. 클라이언트가 1구역 50대 남성이라는 점이 눈에 걸렸다. 결국 사치 부리며 사는 놈들도 다 똑같은 것이었다. 늙고, 죽고. 괜한 욕심. 1구역은 그 밑 구역들을 깔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본인들은 인간이며, 2구역 이하로는 저들을 받들어야 하는 시종으로 보는 것. 그게 그 구역의 특성. 결국 프로젝트 또한 누군가 갈망한 삶에 관한 것이며, 연구자의 구역 상승에 대한 욕심인 것이다.

바이러스는 서서히 위쪽으로 몰고 들어왔다. 지리상으로 따지면 가운데 위치한 1구역을 향해 몰리는 것이겠으나, 이미 1구역은 모든 출입구를 폐쇄한 상태. 최종적으로 닿을 수 있는 곳은 2구역. 문빈은 책상 앞 앉아 공상에 빠진 차은우의 팔을 잡아 끌었다.

“뭐 하는 겁니까?”

“저것들 오면 나가 돌아다니지도 못해요.”

“방법이 있겠어요?”

“뭐라도 해야죠. 살 만큼 살았다 이거야 뭐야.”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간 문빈은 문득 멈춰서 뒤를 돈다. 허공에서 마주한 네 개의 시선. 차은우는 고개 한 번 까딱인다.

“왜요.”

“뭐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뭐가요.”

“뭔가를 사둬야 하는데, 난 여기 처음 왔잖아요.”

결국 앞장 선 차은우. 그 뒤 따라가며 문빈은 건물 내부를 열심히 훑었다. 언젠간 생존지가 될 수도 있는 건물. 미리 익혀둬야 할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직전, 문 옆 붙은 층별 안내를 읽었다. 8층에 위치한 긴급 무기고. 연구소에 이런 것도 있나. 문빈은 제 팔 잡는 차은우에게 순순히 끌려갔다.

“무기고도 있네요.”

“함부로 못 들어갑니다.”

“몰래 들어가면요?”

“허튼짓 하지 마세요.”

“진짜 죽을 생각인가 보네.”

툴툴대듯, 그렇게 툭 뱉은 말. 차은우의 고개가 돌아온다.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조금 날 선 어투.

“화내라고 한 말은 아닌데요.”

“그렇게 들립니다.”

“살려면 뭐라도 해야죠.”

이대로 죽으면 좀 아까울 것 같은데.

차량 타고 나가니 마트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몰린 상태였다. 거 봐요. 내가 뭐랬어. 문빈은 그 사이 헤치고 들어가 바구니에 통조림 잔뜩 쓸어 담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다시 나타난다. 바구니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 물. 차은우 팔 붙잡아 빠른 속도로 카운터 앞에 선다. 바구니에서 쏟아지는 품목들에 차은우의 고개가 돌아가면, 문빈은 한 번 눈짓한다. 돈은 있고요? 물으면, 마트 밖으로 나가는 문빈.

결제 끝마치고 나와 트렁크에 박스를 실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걸 잘도 들고 다녔다. 어느새 조수석에 올라탄 문빈. 평온한 뒷모습에 기가 찼다. 이렇게까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유난스럽게 느껴져서. 그 눈에 비친 문빈은 더더욱 그렇게 보였고. 가만히 앉은 동그란 뒤통수. 차은우는 긴 숨 내쉬며 트렁크를 닫는다.

연구소로 돌아가는 길, 문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건물 하나하나 두 눈에 담아내는 것처럼. 구태여 말 얹고 싶은 상황은 아니었다. 입 연다 하더라도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온통 높은 건물들 뿐인 창밖.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 연구소 돌아가는 길이 새삼 이리도 길었나 생각했다.

전화 오는데요. 물건 정리하던 문빈이 건넨 말. 비닐봉투 가득 담긴 통조림 꺼내던 손이 멈춘다. 테이블 위 올려둔 핸드폰 들고 발신자 확인하니 로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연구소 내 개인번호 통해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 왜, 로건? 귀와 어깨 사이 대충 핸드폰 끼워두고 다시 두 손 바삐 움직인다. 테이블 사이에 두고 그 모습 바라보던 문빈은 천천히 고개 돌린다.

은우, 얼른 나와!

전화 너머 소리치던 목소리는 어느새 연구실 문밖으로 다가왔고, 문빈은 블라인드를 당겼다. 이것 좀 내려봐요! 뒤돌아 창밖 바라보니 어느새 바빠진 사람들의 걸음. 빠르게 움직이는 차량. 멀리 보이는 수많은 인파. 급히 블라인드 내리면, 움직임 버티지 못하고 추락하는 핸드폰. 문, 문 열어줘요. 그 말에 문 연 문빈과, 땀에 젖은 채 들어오는 로건. 가자, 나가야 돼.

문빈 팔 잡아 끌어당기니 우뚝 버티고 선다. 인상 찌푸리며 돌아보면, 고개 저어낸다. 연구실 내 늘어놓은 통조림 담는 로건과,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않는 문빈. 순식간에 속이 턱 막히는 듯했다.

“뭐합니까?”

“어디로 가게요. 갈 곳도 없잖아요. 1구역 다 폐쇄됐으면 여기가 끝일 텐데.”

“1구역 폐쇄된 건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그게 문제예요?”

어느새 소란스러워진 바깥 상황이 소음 되어 들려온다. 난잡하게 울리는 경적, 짧게 끊기는 비명. 블라인드 걷어 바깥 확인하려던 차은우의 손은 문빈이 막아선다. 고개 돌려 노려본 문빈의 표정이 꽤, 단단해서, 차은우는 천천히 손의 힘을 풀었다.

진행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바이러스의 감염이 시작된 곳은 9구역, 그곳에서부터 8구역으로 밀고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3구역까지, 그리고 2구역까지. 이동하는 인파의 수가 증가하는 만큼, 감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누구 하나 감염되는 순간부터 이미 세포 하나 분열하듯 삽시간에 감염자를 늘렸다. 그렇게 밀고 들어온 감염자는 2구역을 빠르게 좀먹는다. 시스템이 하나씩 무너지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서 동떨어져 지내는 거죠.”

“예?”

“6층, 시설도 구리고 그쪽 혼자 사용하고 있는 거 아니냐구요.”

차량 부딪히는 소리에 이어 무언가 폭발하는 굉음.

“8층부터 가요.”

“가서 뭐하게요?”

로건은 문빈의 팔 붙잡는다. 그럼에도 고개 돌린 문빈의 시선이 향한 곳은 차은우.

“내가 나 필요할 거라고 했죠.”

로건 손 뿌리친 문빈. 그리고 붙잡은 차은우의 옷자락. 그대로 끌고 연구실 문 연다. 건물 내부는 상황과 너무 이질적이게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걸음 돌린 것은 차은우. 그에 대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8층 무기고의 문을 연다. 악쓰듯 살아왔으나, 정해진 규칙 내에서 생활하던 차은우에게는 처음인 규칙 범주 이탈. 망설이던 차은우와 곧장 움직이던 문빈. 생존방식의 간극은 그렇게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총기를 챙기고, 탄환을 가방에 쓸어 담아 챙겼다.

나고 자라기를 8구역에서 했던 문빈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꽤 다양했다. 살기에 악조건을 가진 구역이기에, 개개인의 삶이 중요한 구역이 8구역이었다. 이기적이고, 원한다면 힘 과시하기도 했고, 살인이나 폭행 그런 것은 눈 감았다 뜨면 쉽게 볼 수도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생활해야 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힘도 키워내야 했고. 1구역에서 버려지는 총기들 주워다 장난감처럼 만지던 것이 문빈이었고, 맞아 뒈지기 싫어 열심히 운동하던 것도 문빈이었다. 누구에게도 약자로 보이기 싫어, 긴장하거나 무서운 내색 하나 하지 않던 것까지도 모두. 

어려서부터 잃었던 부모는 항상 죽을 각오로 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찍이 죽음 맞이한 두 사람 생각해보면, 그들은 죽을 각오로 살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삶을 갈망했던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빈을 홀로 남겨두지는 않았을 테니. 어찌 되었건,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로 살아야 했다. 이제는 부모 얼굴보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목소리를 품고, 죽을 각오로 살아남기로.

죽을 각오로 임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없었다. 9구역에서 타고 올라온 감염자들의 머리를 날리는 일도, 깡통, 돌 던져가며 겨우 생존하던 일도, 사람 없어 한적한 거리 배회하는 일도, 죽을 각오에서 기반한 것들이었다. 2구역 돌아가려던 차량 앞 막아선 일조차도, 그 차에 치여 뒤질 각오에서 파생된 행동. 이제 와 생각건대, 8구역이 본인의 생존을 야기했다 단언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쓸 줄은 알고 가져왔습니까?”

“적어도 그쪽보다는.”

차은우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총이라곤 만져본 적도 없어 반박조차 못한다. 그럼에도 당당한 태도에 웃음은 나왔다.

“이제 어떡할까요.”

“모릅니다.”

“나가고 싶어요? 쟤네 좀 징그러운데.”

고개 한 번 저어낸다. 그제야 차은우가 느낀 건, 제가 문빈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것. 어느새 그 말들에 동요하고 있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 뉴스는 끊기고, 공식적인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시스템이 종료되고, 생존을 위해서 오랜 시간 지켜오던 구역 내 규칙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규칙이 가진 범주 내 톱니바퀴 굴리듯 일정하던 2구역의 생활방식은 현 사태 속 생존에 하등 쓸모가 없다. 죽도록 노력해 겨우 2구역에 자신을 포함시킨 차은우는 그렇게 허망함을 느낀다. 인간의 멍청함 알리겠다 다짐했으나, 본인도 결국 그 속에 숨어 지내던 것. 보도로 이루어지는 행동 방침은 없고, 들려오는 정보 또한 한정적. 생존을 위해 할 수 없는 일이 없어야만 했다.

행동 범주는 급격하게 수축한다. 연구실 내. 6층은 문빈이 예상했던 것처럼, 동떨어진 연구실이었다. 그들의 차별이 생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 발길 잘 닿지 않으니 무언가 올라올 일도 없었으나, 밑으로 내려갈 일 또한 없었다. 따라서, 차은우와 문빈이 눈 뜨고 잠을 자며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연구실 뿐. 일찍이 연구실에서 나가 살길을 찾겠다던 로건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최소 3개월. 연구 경과를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감염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 추가로 생존을 위해 버티면 되는 기간. 뒤늦게 감염된 사람까지 생각하면 수없이 길어지겠지만, 초반 감염자들이 모두 사망하는 기간은 3개월. 그 기간만 연구실에 숨어 지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생존에 필요한 식료품이 3개월을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문빈이 열심히 담았던 통조림은 한 달, 연구소에서 챙긴 음식도 한 달, 그렇게 되면 남은 한 달을 버틸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점점 바닥을 보이는 필수품들을 눈치챈 것은 문빈이었다.

“근데 나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저거 다 떨어지면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가만히 놔둬요?”

“나가자고 하겠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쪽은 내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날 죽이진 않겠죠.”

고개 내밀어 눈 깜빡이던 문빈은 이내 소파에 드러눕는다.

“재미없어.”

“나도 하나만 물어봅시다.”

“네, 하세요.”

“그날 왜 차 앞에 달려들었습니까.”

“말했잖아요, 나 데려가라고.”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 안 해봤습니까?”

“그 생각으로 그런 건데요.”

8구역에서의 생존은 생각보다 쉬운 편이었다. 사람도 적어 감염자도 적고, 애초에 불빛이 많은 곳도 아니니 잘만 피해 다니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쓰레기 버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지면, 음식도 생활용품도 필수품도 아무것도 구할 수 없게 된다. 며칠 뒤, 2구역에서 사람이 온다. 문빈은 그 뒤를 밟았다. 2구역으로 갈수록 인구가 많으니 생존은 어렵겠지만, 어차피 죽을 텐데 구경이나 하고 죽자. 쓰레기 뒤지던 생활을 한 번은 바꿔보자. 어차피 죽는다. 달리던 차 앞 뛰어들 수 있게 했던 생각.

문빈이 생존하며 알게 된 것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머리. 손에 잡히면 일단 머리부터 날렸다. 싸움이야 8구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필요했고, 피는 종종 보던 것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인외 존재라 생각하면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눈앞 감염자가 죽지 않으면 본인이 죽었고, 살기 위해서는 죽을 생각으로 달려드는 것들의 머리를 날려야 했다. 간단하지만 꽤 어려운 생존방식. 살고 싶으면 죽을 생각을 하면 되었다. 곧 죽을 듯이. 그렇게 생존하니 다른 곳은 때려봐야 필요도 없음을 알았다. 머리부터.

얼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집이라고 지어둔 허름한 공간. 그 속에서 매일같이 잠을 자고, 잠시 나가 먹을 것들을 구해오고, 그러다 싸움이 붙고. 그럼에도 제게 친절한 얼굴에는 웃어주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었다.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없긴 했지만. 아는 얼굴 없다는 것은 곧, 함께 생존할 사람이 없다는 뜻. 지극히 이기적인 생존 방식으로 제 몸만 잘 챙겨두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타적 생활방식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다.

옷에 핏자국도 그래서 생긴겁니까. 이야기 관심 없는 듯 듣던 차은우는 그렇게 물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 지웠던 핏자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빈은 그 물음에 대고 대충 고개 몇 번 끄덕여준다. 기억하고 있네요.

두 달 쯤, 연구실 내 생활 공유하며 지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하늘이 맑아요. 블라인드 올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안 올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알아요. 꿈속에서 봤습니다. 웃긴 사람이야. 여전히 덤덤한 어투와 툭 튀어나오는 어투. 그러다, 손에 상처는 왜 그런겁니까, 그렇게 물어오는 차은우에 입을 닫기도 했다. 

차은우는 아주 사소한 것을 잘 알았다. 아침에 쉬이 잠에서 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본인의 허기를 달랬다. 문빈이 눈을 뜨는 오후가 되어서야 통조림 하나를 열었다.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깊은 잠에 빠진 문빈을 깨우지 않았다.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인지, 아무튼 그랬다. 눈 밑 위치한 흉터에 대해서도 지나가듯 언급했고, 통조림 까다 생긴 상처는 두고두고 물었다. 상처는 아물었습니까. 흉터 남겠네요. 평생을 남에게 관심 주지 않고 지내던 문빈에게는 생각보다 과한 관심이었다. 그와 동시에, 애정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이제 정말 나가야 할 것 같네요.”

하루는 차은우가 먼저 외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 떨어졌어요?”

“그렇기도 하고, 석 달 되어가면 외출이 아주 위험할지도 몰라요.”

최대 이틀 간의 폭주. 문빈은 고개 끄덕인다.

“오늘 갈까요?”

“그러죠, 뭐.”

여전히 덤덤한 어투. 그 속 곤히 숨은 죽음에 관한 걱정. 문빈이 차은우에게서 느낀 것.

마트는 꽤 먼 거리에 위치했다. 연구소가 구역 경계선 가까이에 위치한 것부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조심스럽게 나가, 차에 시동을 건다. 그것부터 이미 꽤 큰 소음을 가져왔기에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핏 떨리는 손 운전대 붙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막 가득한 차량.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볼 때마다, 문빈은 총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눈치챘을지 모르겠는데…,”

그런 문빈의 귀에 나지막이 흐른 목소리 하나.

“나도 2구역 사람은 아닙니다.”

아주 덤덤히 뱉은 말. 불 꺼진 마트가 눈에 보일 때. 고개 돌리면 여전히 시선은 차량 밖을 주시하는 얼굴. 짙은 눈, 높게 솟은 코, 그 밑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입술, 턱. 천천히 훑어보던 문빈은 급히 멈춘 차량에 고개를 돌린다. 보면 안 될 것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괜히 심장이 빨리 뛴다.

“6구역에서 왔어요.”

“그쪽이요?”

“믿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냥 말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걸 왜…, 벙찐 문빈을 둔 채 차은우는 먼저 문 열고 내린다. 두 눈 깜빡이며 멈춘 채 기다리면, 어느새 다가와 조수석 문 열어주는 손. 문 열고 기다리는 두 발 바라보다 이내 그 옆으로 다가간다. 그 행동까지도 기다려 문 닫아주는 손. 표정도 볼 수 없는 어두운 시간. 행동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차은우의 옆 따라 걷는다.

숨소리도, 발소리도, 모두 죽인 채 몸 낮춰 걸었다. 코너 돌아 들어가면 이미 난장판이 된 가판대. 항상 가지런히 정리되었던 제품들은 바닥을 구른 채 누군가의 손을 기다린다. 연구실에서 챙겨온 가방 열고 그 속에 하나씩 주워 담으면, 저들끼리 부딪히는 작은 소음을 만들어낸다. 조용한 내부에서, 작은 소리는 아주 크게 울렸다. 잔잔한 물 위 작은 물방울 튀어 파장 일으키듯, 울리는 소음.

가방의 입 다시 닫을 때 즈음, 구석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낀다. 빠르게 고개 돌려 소리의 근원 찾는 문빈. 차은우는 그런 문빈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깨 타고 시선 내리면 어느새 손에 쥔 총 한 자루. 바닥에 내린 가방 주워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뒷걸음질.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울리는 캔의 목소리.

“뛸까요.”

차은우의 물음. 그 말을 이해라도 했다는 듯, 문빈은 순간 모습을 보인 형체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고민할 틈도 없지 방아쇠 당기면, 실내 울리는 소리. 어둠 속에서 얼굴을 향해 튄 따뜻한 액체. 차은우는 제 볼에 닿은 감각 느낀 직후 문빈의 손 붙잡아 내달린다. 가방에서는 절그럭거리며 부딪히는 소음이 일고, 뒤쪽으로는 소음에 반응한 감염자들의 괴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차 안으로 가방 대충 던져넣고, 문을 닫으며 악셀부터 밟았다. 빠른 속도를 내며 자리를 벗어나는 차량 한 대. 운전대 잡은 차은우의 얼굴에서 문빈이 느낀 것은 걱정이 아닌, 오묘한 미소 한 줌. 옆얼굴 가만히 바라보다 창문 열고 바깥으로 손 뻗는다. 아주 오랜만에 쐬는 바깥바람이었다. 고개 돌려 빠르게 지나는 풍경 한 번, 다시 돌려 차은우의 미소 띈 옆얼굴 한 번. 그리고 한 번 따라 웃어본다. 입꼬리 말아 올려, 얼굴에 닿는 바람결 느끼며.

1구역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없었다. 2구역 이하의 구역에서 상승을 꿈꿀 수 있는 방법으로는 2구역이 최대치. 그 이상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 다리 올리고 앉아 작은 웃음을 뱉어본다.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규칙에 갇혀 사느라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 방법이 없다면 방법을 만들면 된다. 그게 하나의 방법. 1구역 폐쇄됐다면서요. 문빈의 목소리 떠올리며 작게 웃는다. 폐쇄되었을 뿐이지, 문이야 열면 된다. 폐쇄가 마치 하나의 규칙이라도 된 듯, 금기처럼 여겼던 것이 웃긴다. 죽더라도 더 높은 곳 가보고 죽지 뭐.

한 번도 어겨본 적 없던 주행속도. 빠른 속도로 도로 위 달리며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해방감. 뒤에서 무언가 쫓아온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닌, 미묘한 해방감. 삶 속에 가시처럼 박혀 뾰족하게 찔러대던 규칙의 위반. 규칙에서의 이탈. 그에 따른 미묘한 해방감.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주 미묘하게 가슴께 간질이는 해방감에, 잠들지 못하는 밤.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 잠든 문빈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나 필요할 거라고 했죠. 귓가에 메아리처럼 남아 맴도는 목소리. 어떤 의미의 필요였을까. 블라인드 너머 은은하게 들어오는 달빛 바라보며 웃고, 해방감에 두 눈을 말똥히 뜬다.

맨날 일찍 일어나더니 왜 이래, 진짜. 몸 흔드는 감각에 눈 뜬다. 웬일로 늦잠을 다 잔대요? 톡 던진 어투. 눈 비비며 일어나니 이미 달빛 받아내던 블라인드 너머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몇 시예요?”

“그건 모르겠고, 우리 얘기나 좀 해요.”

결론은 1구역으로 이동하자는 것이었다. 제안은 차은우가, 수긍은 문빈이. 이대로 여기서 살면 못 먹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럼 1구역으로 가죠. 왜요? 여기로 온 것처럼 이동하면 둘 다 살 수 있지 않겠어요? 문빈은 고개 끄덕였다. 죽더라도 높은 곳에서, 죽을 생각으로 높은 곳으로, 죽을 각오로 삶으로. 그런 문빈의 앞에 차은우는, 생존할 생각의 삶을 놓아준다.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할 생각으로 사는 것. 새로운 선택지에 문빈은 홀린 듯 고개 끄덕인다.

챙길 짐이야 많지 않았다. 총 몇 자루, 먹을 수 있는 것들 몇 개. 어차피 그쪽 가면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더 챙기면 짐이에요. 문빈의 눈에 비친 차은우의 얼굴이 어딘가 후련한 듯 보여서, 더 챙기려던 짐들 내려놓았다.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방법 찾아보죠.

6구역에서 올라왔다는 말, 왜 했어요? 하염없이 긴 도로 달리는 차 안. 홀로 느끼는 어색한 공기 참아내고 겨우 물었다. 시선을 돌리지 못한 채, 길게 뻗은 도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뜻으로. 왜 말해야 할 것 같았는지. 물음표가 출발한 뒤 돌아오는 마침표가 없었다. 괜한 것을 물었나 싶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깔끔하게 깔린 아스팔트와 그 위 세워진 표지판. 차은우의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도 시선 돌릴 생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로건은 어떻게 됐을까요?”

문빈의 상태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듯 묻는 차은우. 순식간에 차은우 향해 꽂히는 시선.

“로건이요?”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유일하게 챙겨주던 사람이었어요.”

유일, 처음. 문빈은 상위 구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를 차은우에게서 듣는다.

“알고 있겠지만 연구실도 6층에 배정받은 이유입니다. 텃세. 그리고 8구역에 파견 나갔던 것도 같은 이유이고요. 그동안 4구역 이하로 입학생 받은 적 없던 교육기관에 6구역 출신인 내가 입학한 겁니다. 수석이라 차마 입학을 무를 수 없었던 거죠.”

“수석이요?”

“죽도록 공부했어요. 그거 말고는 방법도 없어 보여서.”

“방법이면,”

“구역 이동이요. 코피도 자주 나고, 손목은 아프고, 그랬는데 무작정 버텼어요. 남들이 만들어 둔 방법 따르겠다고. 내가 새로운 방법 찾을 생각은 안 해봤고요. 그렇게 들어갔더니, 6구역 출신이라는 게 남들 눈에는 아니꼬웠나 봅니다. 그런 남들 사이에서 로건이 처음으로 말 걸어줬습니다. 내가 당하는 일들에 목소리도 로건이 내줬어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아…, 내가 괜히 물어봤나봐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 문빈씨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에요.”

“내 방식이라뇨?”

“죽을 생각으로 달려들었다면서요. 왜 그 방법은 생각 안 해봤나 싶어요. 구역 이동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만들면 새로운 방법이 있었을 테고, 1구역 폐쇄되고도 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 죽을 생각으로 하면 못할 게 없죠.”

역시 구역 나눈 인간들이 제일 멍청했네요. 규칙도 멍청했고. 그런 규칙 따른 나도 멍청했겠네요.

더 이상 말 얹을 수 없던 문빈은 창문을 천천히 내렸다. 부드럽게 들어오는 바람에 두 눈 뜨고 웃어본다. 로건은 방법을 만들었을까요? 스치는 바람에 대고 입 열어 묻는다. 얼굴선 따라 흐르는 바람결 맞으며 느긋하게 두 눈 감는다. 한참 뒤 들리는 덤덤한 목소리.

“로건이라면, 그랬겠네요.”

문빈은 그 목소리에서 걱정이 아닌 기대를 읽어낸다.

예상했던 그대로 1구역으로 향하는 게이트는 굳게 닫혀 발 디딜 수도 없었다. 높은 벽을 세워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 앞에 멈춰선 차량 한 대. 다들 1구역 폐쇄 소식을 듣고 여기까지 올 생각도 안 했던 겁니다. 고개 돌려 바라본 차은우. 시선의 끝에 맺힌 차은우의 미소. 문빈은 문 열고 내린다. 그대로 뒷좌석 문 연다. 그 속에서 꺼낸 총. 굳게 닫힌 벽에 대고 무작정 방아쇠를 당기면, 길게 이어지는 총성. 그 모습 바라보던 차은우도, 총 꺼내 손에 쥔다.

“그냥 당기면 돼요?”

“네. 누르면 돼요.”

어두운 세상. 어두운 벽 앞, 계속해서 총성이 울린다. 벽이 뚫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뚫리면 좋겠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부족해진 탄환. 새로 탄창 채우고 다시 방아쇠 당긴다. 서서히 들리는 괴이한 울음. 두 귀에 명확히 들리는 소리에도 자리에 우뚝 선 채 끊임없이 총성을 울렸다. 

죽을 각오로 해보면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겠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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