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가, 의문.

2020 여름호
작가
우주대통합
주제
프라하



아담한 크기의 공간에 남자 둘이 앉아 있다. 그림 작업의 흔적들이 보여 작업실인 듯하지만, 정갈한 테이블과 소파가 손님을 상대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 같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기자는 입이 귀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는 커녕 얼굴도 안 보여주기로 유명한 작가에게 단 5분을 얻어낸 것이다.



"인터뷰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약속대로 절대 녹음이나 촬영은 안 할게요!"

"하하, 네, 꼭 부탁드려요. 다짜고짜 찾아오신 건 당황스러웠지만, 한국에서 체코까지 오시고 심지어 호텔에서 어제부터 무작정 기다리셨다니.. 5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요. 믿고 드리는 기회입니다."



그냥 성의를 봐서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연관성이 있는 사람인지 하루 동안 철저하게 조사해 보고, 이 기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적당한 선에서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지 따져 봤다. 그렇게 5분 정도는 마케팅으로 괜찮다는 판단.



"너무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진행할게요. 자, 차은우 작가님. 작가님은 한국 분이시죠?"

"네, 그렇죠."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전시회를 열지 않으세요?"

"처음부터 세네요. 그건 대답하기 좀 곤란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거라, 살짝 힌트라도 주실 수 없을까요?"

"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가 용기가 없어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호.. 뭔가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척 궁금하지만! 곤란하다 말씀하시니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얼굴을 안 보여주시는 것도 앞에 이유와 비슷한가요?"

"네, 비슷합니다."

"엄청 놀랐어요. 이렇게 잘생기셨을 줄 누가 알았겠나요. 제가 여자였으면 오늘 잠 못 잤습니다."



은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 했다. 눈치 없는 기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크게 티를 낼 생각은 없었으니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근데 아무리 여기 저랑 둘뿐이지만, 그런 말은 시대착오적이지 않나요?"

"아.. 그쵸, 네. 제가 실수했네요. 정말 작가님, 인성도 훌륭하십니다!"

"아닙니다."



은우는 기자 뒤쪽 벽에 위치한 시계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5분이 원래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작품에 대해서도 여쭤 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요. 언제나 작가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남자와 고양이는 어떤 의미인가요? 혹시 모델이 존재하는 건가요?"

"음, 그렇네요. 모델이 존재하긴 하죠. 그 남자는 사실 저고,"

"오, 작가님 본인이요?"

"네. 그리고 고양이는, 제가 좋아해서요. 영감을 받는 존재입니다. 저의 뮤즈예요."



그 얘기를 하는 은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신나 보인다고 할까. 고양이가 뮤즈라니. 대단한 애묘가 작가가 되겠다.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작품을 보면 남자가 없을 땐 있어도 고양이가 없는 건 못 본 것 같아요."

"네, 있긴 한데 정말 몇 작품 안 돼요. 한 3작품? 남자 혼자 있는 게 하나고, 둘 다 없는 게 두 개가 있을 거예요."

"남자 혼자 있는 그림도 있어요? 제가 작가님 진짜 팬인데 모르는 작품이 있다니 너무 자존심 상하는데요. 몇 번째 전시에서 보여주셨었나요?"

"하하하, 자존심 상하실 필요 없어요. 그 그림은 이번 프라하 전시에 처음 걸릴 예정이거든요."





ㅡㅡㅡ





대박!! 역시 체코까지 가는 건 잘한 결정이었어! 힘들게 무리해서 가는 보람이 있다. 차은우 작가님 그림인데 얼굴 없는 남자 혼자 있다는 건 다시 없을 희귀작이다. 심지어 인터뷰까지! 작가님의 첫 인터뷰와 함께 하는 전시를 보게 된 거다. 내가! 드디어! 작가님의 전시를!



"...손님? 손님! 문빈님!"

"네, 네?"

"여기, 여권이랑 탑승권 받으시고, 탑승하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좋다고 정신 팔려서는 비행기 바로 앞에서 시간을 끌었다. 내가 빨리 탄다고 비행기가 빨리 출발하는 건 아니지만,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꿈에 그리던 작가님의 전시. 겸사겸사 첫 해외 여행!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



을 줄 알았는데......

길을 잃었다-

.... 해외 여행에서 길 잃는 거 정말 흔한 일이었구나.. 나한테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큰일이다. 길거리에서 노숙하게 생겼다.



"하아..."



막막한 마음에 한숨을 깊게 내쉬며 무심결에 돌린 시선 끝에 야경이 보였다. 야경이 유명하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굳이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답다. 내 상황도 잊고, 푹 빠져서 한참 바라보게 됐다.



"예쁘다.."

"그러네요."

"악!"



옆에서 내 말에 맞장구치는 남자 때문에 무진장 놀랐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나를 한 번 보고 피식 웃더니 다시 야경을 바라봤다. 아니, 이 시간에 이 한적한 곳에, 왜 있어? 나는 길을 잃은 거지만. 아니, 거기다가 한국인? 나 아직도 한국에 있는 줄.. 심지어 너무....



"잘생.."



아. 입 밖으로 말해 버렸다.



"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잘생겼어요?"



들었으면서 왜 되물어? 것보다 자기 입으로 저렇게 말하다니. 뭐 그 정도로 잘생기긴 했지만.. 정말 모든 게 용납 되는 얼굴이다.



"아, 그, 저, 저기.."

"네, 말씀하세요."

"그쪽 잘생기신 건 맞고...."

"하하, 네, 그리고요?"



웃는 거 미쳤다.. 하지만 이성을 붙잡아야 된다. 길을 물어 봐야만 한다. 차은우 작가님 전시를 위해서!



"..제가 길을 잃어서 그런데, 혹시 체코에 사세요? 길 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진짜 중요한 전시회를 보러 왔거든요. 차은우 작가님 아시죠?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제가 진짜 팬인데, 무리해서 처음으로 전시회 보러 온 거라서요. 내일 저녁에 시작인데 그 전시회장만 알려 주셔도 괜찮아요. 아, 혹시 여행객이세요? 뭔가 잘 아실 것 같아서.. 제가 너무 찡찡댔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일단 여행객은 아니긴 하죠. 일하러 왔어요. 근데 저도 체코는 처음 온 거고,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도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



역시, 운이 너무 좋다 했다. 작가님 인터뷰 본 걸로 운이 다 했나 보다.



"혹시 숙소 정도는, 제가 묵고 있는 곳으로 가시겠어요?"

"네? 아 그게.."

"잠은 제대로 자야죠."



과도한 친절 아니야? 체코에도 장기매매 같은 거 있나..?



"오늘 처음 봤는데 뭘 믿고 저를 도와 주세요..?"

"아.."

"그리고 저는 뭘 믿고 따라가요?"

"음.. 사실 저는 그쪽 알아요. 우리 만난 적 있는데."



그럴 리가 없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진짜예요. 저 기억 안 나요?"

"네."



내가 이런 얼굴을 만나 놓고 까먹을 리가 없다.



"뭐,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 못 할 수도 있죠. 아님 제가 그리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걸 수도 있겠네요."

"어렸을 때 봤어요? 우리가? 더 의심스러운데.. 저 진짜 사기 쳐도 득 될 거 없어요. 가난한 사회초년생이라.."

"....풉..!"



진지한 얼굴로 있던 남자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큰 소리로 웃고 있다. 내가 너무 멍청해 보여서 사기 치는 거 포기하고 웃는 건가. 설마 진짜 아는 사이야? 내가 저 말도 안 되게 잘생긴 얼굴을 까먹었다고? 말도 안 돼. 그건 그렇고, 너무 많이 웃는 거 아냐?



"그만 웃어요...."

"아, 하하하!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후우, 그만 웃을게요, 표정 풀어요."



남자는 표정 풀라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가볍게 톡톡 쳤다. 그의 다정한 미소는 밤인데도 햇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 줬다. 어이없다. 꽤 기분이 나쁜 것 같았는데, 막 힐링 된다. 모든 게 치유 되는 얼굴이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만났었는지 증명할 수 있나요?"

"글쎄요.. 아주 놀랍게도 저는 얼굴을 보고 알아본 거라서요. 어렸을 때랑 똑같아서."

"네? 아 맞아. 그쪽 이름이 뭔데요? 기억 속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동민이요."

"모르겠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만났던 거지, 친했던 건 아니니까."

"네에?!"

"우리 술 한 잔 할까요? 제가 지금은 전시회장 위치 모르지만, 알아봐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네에?!! 그럼 저야 너무 감사하죠! 마시러 갑시다!"





ㅡㅡㅡ





동민과 빈은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빈은 동민이 꽤 잘 맞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진짜 만났었나, 어딘가 마음에 드는 감각이 있는데, 이 얼굴을 까먹다니 나 머리 많이 나쁜가...

빈은 시시한 고민들을 하며 나른하게 침대에 누웠다.





ㅡㅡㅡ





"몇 시.."

"오후 2시 다 됐어."

"어?"



빈은 아주 잠긴 목소리였다. 시간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찾으며 무심결에 뱉은 말이었다. 어째서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의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돌렸다. 빈의 옆에는 동민이 누워 있었다. 나체로. 팔베개까지 해주면서.



"잘 잤어?"

"어라..?"



반말. 말도 놨나 보다.



"표정이.. 혹시 기억 안 나?"



빈의 멍한 표정에 동민은 약간 당황했지만, 오히려 더 차분하게 행동했다.



"미, 미안.."

"말 놓기로 한 건 기억나나 보네?"

"그냥 그쪽이 말 놓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아아, 맞아. 편하게 해. 우리 엄청 친해졌는데."



과하게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빈이었다.



"내가 근데 저.. 게이는 아니거든.."

"알아, 말해 줬어. 상대가 나라면 좋다 그랬어, 니가."

"아하...."



동민은 지금 상황을 전혀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진짜 이렇게 되니 좀 웃기고 빈이 정말 알기 쉽고 귀여운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너 정말 귀엽다. 생각 이상으로 훨씬. 진짜 고양이 같네."

"어? 고,마워..?"

"하하하! 얼른 준비하고 나가자. 간단히 밥 먹고 전시회 가야지."



덕질의 힘은 대단하다고, 빈은 정신이 퍼뜩 들어서 몸을 일으켰다.

동민이 씻겨 준다고 욕실로 밀고 들어오는 걸 거의 걷어차듯이 막아내고, 의외로 깨끗한 몸에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올 수 있었다. 둘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빵 하나씩을 들고,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근데 너무 빨리 도착할 것 같은데."

"전시 시작 시간보다 이르긴 한데, 제시간에 가는 거 맞으니까 괜찮아."



이게 제시간이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냥 되게 어이없지만 시작 전부터 기대하며 기다리는 걸 엄청 좋아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빈은 전시회장 안까지 들어가서야 동민에게 물었다.



"우리..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응? ..내가 관계자라서?"

"뭐?!"

"좀 많이 깊은 관계자긴 하지."

"관계잔데 왜 어제 전시회장 위치 모른댔어."

"어제는 몰랐어. 오늘 아침에 전달 받았거든. 그게 편해서 계속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



이 얼레벌레 허술한 소리는 뭘까. 빈은 영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있잖아, 나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설명이나.. 그, 전시회 왔으니까, 무슨 안내라도 해 봐!"

"음.. 우리 고양이님한테 뭐가 필요할까? 내가... 차은우라는 거? 아님 내가 얼굴 없는 남자의 모델이다?"

"뭐, 뭐..? 뭐가? 누가 누구라고?"

"차은우 작가, 본명 이동민. 한 작품은 단 한 번만 전시회에서 공개하고, 이 디지털 시대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은 작품도 거의 없는.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만, 작품만으로 주목 받은 천재 화가. 또... 무슨 수식어가 있더라? 전세계를 돌아다니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전시를 열지 않아 한국을 혐오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한국에서 전시를 열 용기가 없다는 게 팩트."

"거짓말."

"내가 왜 거짓말을 해.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게 이미 증명한 거 아니야?"



빈은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덕질도 사랑도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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