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개화 하

2020 여름호
작가
오비
주제
한양


세자저하의 생일날이 되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검은색의 얇은 옷을 갈아입었다. 이림이 사준 장신구를 달고 앞에 놓인 끈으로 눈을 가리곤 은색의 두 자루의 칼을 챙겨 궁녀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향하였다. 음악이 들려오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처럼 움직였다. 이림은 어느 쪽에 있을까 오긴 왔을까. 많이 바쁜 것일까.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데 1번이 끝나고 눈에 끈을 풀어 입에 물고 앞을 보자 세자저하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이림이 앉아있었다. 잘 못 본 것인가 닮은 사람인가 생각해보았지만 그 외모가 어디 흔한 외모도 아니고.. 눈이 마주치자 입모양으로 ‘기둥’이라고 하였다. 기둥.. 기둥.. 기둥? 아.. 어제 만났던 그 기둥.

옷을 환복도 하지 못하고 뛰어갔다. 뛰어가자 보이는 세자저하의 도포. 

 

“많이 놀랐느냐?”

“.. 많이 안 놀랐겠습니까?”

 

말을 하고도 아차 싶어 입을 막았다. 지금까지는 과거에 급제한 나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세자저하이니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겠다. 잠깐, 세자.. 저하? 세자.. 이림? 순간적으로 뇌 속에 스치는 역사쌤의 말과 페이지. 세자저하 이림이 어째서 익숙하다 했더니만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이었어. 이림.. 이림은 대감들의 반역으로 죽을뻔한 위기에 몰리지만 누군가 구해줘 반역자를 죽이고 왕권을 바로잡아 안정적인 정치를 한 왕.

지금까지 본 인물 중 그를 구해줄 만한 인물 중간에서 이림을 도와주는 인물이 없었다. 그럼 내가 이림을 구하는 인물이고 신이 잃어버린 역사가 이림을 구하는 순간의 역사인 것인가. 머릿속에 갑자기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들어오니 어지러웠다. 이림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당장 밤에 궁을 떠나야 했고 다시 춤을 추러 가야 하는 상황 언제 다시 이림을 만날지 모른다.

 

“나.. 아니 세자마마 몸.. 항상 몸조심하십시오.”

“그래 알겠다.”

 

이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더 많은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궁을 떠나 이림을 만날 일은 없었다. 춤을 추고 아이들을 돌보아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림은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무리는 하지 않은 것일까. 걱정이다.

 

“현월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래”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팔을 잡아당겨 넘어질 뻔하였다.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이림이 서 있었다.

 

“세.. 세자..”

“쉿 몰래 나왔는데 들키면 곤란하다네.”

“..”

“어찌 저번보다 더 마른 것 같소만 밥은 잘 먹고 있는 것인가? 걱정되는구려”

“.. 세.. 음..”

“나리”

 

호칭을 정하지 못하여 곤란해하자 나리라며 호칭을 정해주었다.

 

“나리가 더 걱정입니다.. 매일 밤마다 나리께선 잘 지내시는지, 일은 잘 하고 계시는지 밥은 잘 먹고 계시는지 말입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에 보고 싶었다는 말이 의지와 상관없이 나왔다. 그게 내 전생의 진짜 현월의 자아가 아닌 내 의지긴 한데 그 정말 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게 입에서 나올 줄 몰랐고.. 나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니..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지고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이림도 놀랐는지 그 커다란 눈이 더 커졌다.

 

“.. 아.. 아니.. 그.. 그것이.. 그러니깐.. 그..”

 

이림이 팔을 당겨 자신의 품속에 들어오게 안아주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팔을 이림의 등에 살짝 얹어 그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다.”

“..”

“입을 맞추어도 되겠느냐?”

 

이림의 입을 맞추어도 되겠냐는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림은 그 커다란 손으로 내 볼을 조심스럽게 감싸더니 천천히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이림의 등을 잡고 있던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림과의 입맞춤은 언제나 기분이 좋고 달아 더 오랫동안 나 혼자서만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런 맛이 났다. 

입을 떼자 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이 떨어지며 눈을 뜨니 달빛에 비친 이림의 얼굴이 보였고 너무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가 심장이 정말로 터질 것 같아서 도망쳐버렸다.

기껏 도망쳐서 온 곳은 아까 갔어야 했던 손님들이 계시는 곳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가야금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춤을 추면서 들리는 이야기 소리에 집중을 하며 들었다. 

 

“세자를..”

“나흘 뒤..”

“황대감님께서..”

 

황대감.. 황대감 저번에 성추행하던 남자.. 좀 더 익숙한데 어디서.. 어디서 아주 많이 본 것 같은데.. 아 쌤이 말해줬던 이야기에 있었어 황대감이 있었지 황대감.. 여자고 남자고 자기보다 어린아이들만 첩으로 만들다 한 기생에게 미쳐서 매일을 기방에 들락거리면서 돌아오지 않는 시조를 쓰고 선물공세를 하다 강제로 첩으로 만들려다 실패했던 미친놈 그리고 세자를 없애고 그의 동생을 꼭두각시처럼 이용하기 위해서 이림을 없애려 했던 주요인물.

황대감에 대하여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이 기억이 났다. 어서 이림에게 알려야 했다. 급히 마무리하고 이림에게 알리려 내려갔지만 이림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이림이 떠난 그날부터 더듬더듬 수업 시간의 내용과 교과서 내용을 기억해 내었다. 공책에 기록을 하며 계산해본 결과 만약 교과서의 내용 그대로라면 아마 오늘 세자저하 시해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밤에 도망치는 이림을 안전한 곳까지 옮겨 왕으로 만드는 것까지 지켜보는 것이 나의 일일 것이다. 

6시가 되고 해가 저물어 갈 때쯤부터 손발이 떨려왔다. 설마 운 없이 바로.. 아닐것이야.. 차가워진 손발을 모아 몇 번이고 기도를 하였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기방 앞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이림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보이는 이림과 그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들 자연스레 이림에게 다가갔다.

 

“잘생긴 나리 오늘 들어온 술이 달아.”

 

이림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알아봤음에도 절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잔말 말고 따라와요.”

 

이림을 끌고 들어와 깊숙한 기방으로 들어갔다. 기방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옷을 갈아입게 시키곤 칼 한 자루와 돈과 음식을 싼 보따리를 내밀고 칼을 한 자루를 집어 들려는 순간 이림이 팔을 잡았다.

 

“절대 안 된다.”

“괜찮습니다. 저는 세자저하를 지키기 위해 온 사람이옵니다.”

“안된다. 절대로!”

“쉬이.. 괜찮습니다. 저 뒷문으로 먼저 출발하십시오 시간을 조금 벌어놓고 금방 가겠습니다. 약조하겠습니다.”

“.. 어찌 너를 두고 가란 말이냐”

“세자저하.. 뒷문을 따라 쭉 산을 올라가면 아주 넓은 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시 만나요.”

“현월아..”

“저하 꼭 가겠습니다.”

 

가지 않겠다는 이림을 뒤에서 겨우 밀어서야 보낼 수 있었다. 이림을 보내고 나서 앞문을 열자 수많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손에 있던 칼에서 검집을 빼내자 은빛의 날이 선 칼이 존재를 드러냈다.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무서웠다. 아무리 전생이라고 신이 보냈다고는 하지만 죽으면 어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 지금 이림을 구하기 위해선 해야만 했다.

 

“이걸 위해 지금까지 검도를 배운 걸까.”

 

칼을 들고 그 그림자들에게 향하였다. 몇몇이 지나쳐 바로 이림에게 가버리려 하였다. 그런 그들의 다리를 칼로 잘라버렸다. 그러자 시선이 다 이쪽으로 쏠렸고 모든 칼이 이쪽을 향하였다. 이림 쪽으로 가는 놈은 없다. 됐다, 시간은 벌 수 있다.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이리저리 튀는 피, 한 놈 한 놈 쓰러져 가면 내 몸에도 하나하나 상처가 생겼다. 

손은 덜덜 떨려왔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이곳저곳에 튄 피. 코 끝을 아리게 하는 피 냄새. 

이림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 피떡이된 지친 몸을 이끌고 이림과 약속했던 장소로 향하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 그는 내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 내게로 뛰어왔다.

 

“혀.. 현월아..”

“세자저하.. ”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더 이상 앉아있을 힘도 없다. 달 아래 하얗게 핀 꽃들이 내 주변에만 빨갛게 물들어갔다. 

이림은 의원이 있는 곳까지 가자고 울며 소리쳤다. 그런 이림의 볼에 손을 올려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림은 웃는 모습이 예쁜데, 우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세자저하.. 왕이 되십시오 저 악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자비로운 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십시오 가엾은 백성들을 돌보아주는 그런 왕이 되십시오. 제 마지막 부탁이옵니다.”

“현월아..”

“세자저하.. 아니.. 이림.. 제 이름은.. 문빈이라 하옵니다.”

“빈아..”

 

이림이 이름을 부르자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이림과 정말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엔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눈꺼풀이 무겁다. 

안녕 나의 세자.

눈을 뜨자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었다. 갑자기 한쪽에서 빛이 생기더니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이 과거를 잊어버린 신이라고 하였다. 

 

“과거를 바로잡아주어 고맙구나.”

“.. 이림은요? 이림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걱정 말아라 이제 내가 그를 볼 테니. 수고했다 너의 임무는 여기까지이다. 이제 너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

“.. 이림을 잘 부탁드려요.”

 

눈을 감았다 뜨자 교실 안이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3시 30분 그 길고 길었던 시간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처럼 꿈이었던 것 처럼 시간은 흘러가 있지 않았다. 

 

“자 그래서 세자저하는 반역자들은 다 없애고 왕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낸 책이 있는데 거기 밑줄”

 

다행이다 왕이 되었구나.

 

“세자가 쓴 책 내용중에 월화 개화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만 딱 소개하고 끝낸다.

달빛 아래 아름답게 핀 나의 꽃. 이 말은 세자가 한 사람을 보며 쓴 말인데 그 당시 유명했던 기생이라는 말이 있어. 그 기생이 달 아래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장면 같아서 이런 말을 지었다고 해.”

 

 현생을 살아간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름방학을 하고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다. 처음에 돌아왔을 땐 한복만 보아도 울었는데 이젠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여러 놀이기구를 타고 먹고 놀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친구들은 잃어버렸다. 친구들은 찾으려 움직이는데 이 길이 예전에 이림과 야시장의 풍경과 비슷했다. 그때의 분위기도 느낌도 너무나 비슷했다. 마음 한 쪽이 아려왔다. 정신 차리고 친구들을 찾아야지 하고 걸어가는데 이림과 너무 많이 닮은 사람이 있었다. 이림일 리가 없다. 이림이 어찌 이곳에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리가 움직였다. 

 

“이림!!!!”

 

그러자 이림과 닮은 사람은 뒤를 돌아보았다. 

 

“빈아!!!”

 

이림이 맞았다. 이림이 맞았다고 나의 세자가 맞았다.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안았다. 그를 안자 그의 향기가 나고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진짜 이림이 맞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왜 여깄는데..” 

 

그는 우는 나를 달래주며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자신도 신이 불러서 세자가 돼있었던 것이었고 원래는 여기 사람이었다고 내가 떠난 뒤 왕이 되었고 신이 나타나 너의 일은 다 끝이라며 수고했다며 원래 시대로 돌아가게 해주었다고 눈을 떠보니 현실에 와 있었다고 한다. 

 

“내 이름은 이림이 아니라 차은우야 빈아.”

“은우.. 차은우.”

“보고 싶었어 빈아. 너 그렇게 떠나고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어”

“나도.. 나도 너무 보고싶었어.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잘 지내야 할 텐데. 너무너무 보고 싶다 이 생각 하면서 지냈어.”

“..”

“그 시대에선 말할 수 없어지만 이젠 말할 수 있어 좋아해, 좋아해 은우야 전생에서도 지금에서도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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