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개화 중

2020 여름호
작가
오비
주제
한양



그날 밤 이후로 궁에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를 잊고 매일을 연습을 하며 지내며 2차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행수 어르신 몰래 빠져나와 궁을 구경하다 손목을 잡혔다. 손목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웬 남성이 한 명이 있었다.

 

.. ?”

“..”

월화 기방에 가장 유명한 기생. 절세미인으로 춤도 노래도 아주 완벽하다고 평민들한테도 유명한 기생. 맞지 않는가?”

 

.. 전생의 나는 그렇게 유명했다고?

 

“..”

나라네 황대감 매일 밤마다 자네를 찾아갔던 황대감. 선물은 잘 받았는가? 기방으로 보낸 선물들도 다 내 것이라네. 이 부드러운 손과 얇은 허리.. 여기는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미친놈도 많이 꼬였구먼. 손을 뿌리치고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려 하였으나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 전생의 의지가 남아있는 것인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전생의 몸이 겁을 먹은 것인가. 당장 손을 뿌리치고 갈 길을 가고 싶었다. 변태 같은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질 않나 기분 나쁜 손은 슬금슬금 올라와 몸을 만지려 하였고 이 미친놈은 억지로 입을 맞추려 하였다. 빌어먹을 몸뚱어리는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입술이 닿으면 신이고 뭐고 혀 깨물고 죽어 버릴 거야. 움직이지 않는 몸뚱어리를 저주하며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 신이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누군가 나를 당기듯 안아 입술이 닿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확인해 보니 저번에 그 잘생긴 남자가 있었다.

 

뭐 하는 것인가?”

..”

뭐 하는 것인가?, 황대감.”

“.. .. 그것이 아니오라..”

지금은 내가 이 기생과 일이 있어 바쁘니 나중에 보자네 황대감.”

“..”

 

남자는 내 손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한참을 걸어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해서야 남자는 팔을 놔주고 나를 바라보며 조곤조곤하지만 조금은 화가 난 말투였다.

 

내가 조금만 늦었음.. .., 위험할 뻔했소

“..”

이제 괜찮네 울지 마시오. 울면 그 예쁜 얼굴이 못생겨집니다.”

 

운다고? 내가? 조금 무섭고 더럽기도 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순간 또륵하고 눈물 한줄기가 눈에서 떨어졌다. 그걸 시작으로 수독 꼭지가 고장 난 것 마냥 콸콸 쏟아지면서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남자는 내가 눈물을 보이자 살짝 당황한 것 같더니 이내 나를 안아 달래주었다.

 

다 울었소?”

“..”

째려보는 것을 보아하니 다 운 것 같구려

“..”

궁은 위험한 곳이니 항상 조심히 다니시오

“..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안 알려주었네, 내 이름은 ..이림이라하오.”

 

이림?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닌가? 쌤이 이야기한 곳에서 나오는 인물이었나.

이림은 자기 이름을 말한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림은 오늘 밤에도 나올 수 있냐 물었고 된다고 답하였다.

밤이 되어 저번에 만났던 그 장소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일 밤마다 만나자는 약속을 하게 되어 매일 밤마다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간식도 가져와 나누어 먹고 궁을 돌아다니며 탐방도하며 지내며 친하게 지냈다.

 

현월아 궁 밖에서 야시장이 열린다 하는데 같이 보러 가지 않겠느냐?”

 

어째 오늘은 관복이 아닌 일반 옷인가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먼.

 

한동안 궁밖엔 나가보지 않았을 것 아니냐 나와 숨 좀 한번 돌리러 가자꾸나

“..”

궁 밖 장에선 재미있는 것도 아름다운 것도 많아 네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이림은 손을 내밀었고 한참을 망설이다 그의 손을 잡았다. 이림은 그 예쁜 얼굴을 활짝 웃어 보였다.

 

나리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나리 절대로 어린아이같이 신나서 혼자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이림과 함께 나온 장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고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나리! 이것 좀 보십시오!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나리!!, 나리!!”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지. 놓지 말거라 잃어버리겠구나.”

 

이림은 잡고 있던 손을 더욱 꽉 잡고는 발을 움직였다. 양손 가득 이림이 사준 물건과 음식을 들며 이동하다 보니 시장의 가운데까지 도착하였다. 거기선 연주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이림과 저 멀리서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와 부딪혔고 부딪힌 사람을 보니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현월님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많은 시선들이 모두 한쪽으로 쏠렸고 아주머니들이 다가와 저번엔 고맙다며 이것저것을 주며 이왕 온 거 한 번만 춤을 춰주면 안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거절을 하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아 곤란한 얼굴로 이림을 보았지만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한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결국 중앙으로 오게 되었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때에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고 어쩌지 고민할 틈도 없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였다.

 

달 아래서 춤을 추는 모습이 달빛에 핀 한 송이의 꽃보다도 아름답구나.”

 

연주가 끝나고 춤이 멈추자 사람들에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민망하여 적당히 하하 웃어주곤 나무 밑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림에게 씩씩대며 다가갔다.

 

어찌 도와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곤란하였느냐?”

, 무척 곤란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덕분에 손짓 하나로 100명의 사람을 홀린다는 기생 현월의 춤을 볼 수가 있어 좋았구나, 한 번만 보여달라 하여도 안 보여주어서 말이다.”

“.. 하하 저기 보십시오 등입니다!”

말 돌리기는..”

넘어가 주십시오, 근데 웬 등입니까?”

봄에 뿌려두었던 싹이 나고 여름 내내 잘 자라 가을에 수확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등에 담아 달님이 들어주실 수 있게 올리는 것이지. 요즘엔 자신의 소원을 달아 올리기도 한다는구나.”

 

하늘을 가득 채우는 등이 별처럼 반짝반짝하게 빛나면서 주위를 은은하게 밝혀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구경하다 이림과 눈이 마주쳤다. 은은한 불빛들 사이로 보이는 저 얼굴을 어쩜 이렇게 잘생겼을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얼굴이 새빨게지는게 느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위의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더니 빠르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심장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림을 더 이상 쳐다보면 정말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아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현월 얼굴이 빨갛소?”

.. 아닙니다.. .. 등에 얼굴이 비.. 비추어서 그.. , 그런 것입니다!!”

정말로 아프지 않은 것이냐?”

 

이림은 손을 뻗어 그 큰 손으로 볼을 살살 만지더니 고개를 들게 하여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하였다. 너무 부끄러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자 촉촉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물체에 놀라 눈을 뜨지도 못하고 손도 어찌할 줄 몰라 주먹을 꼭 쥐고 있자 이림이 손을 잡더니 깍지를 끼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림과의 입맞춤은 부드러우면서도 달았다. 그 어떤 사탕을 가져와도 이보다 달콤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입을 떼곤 이림 또한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기분 나빴을 텐데 미안하구나. 너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입을 맞추었구나.”

“..”

“.. 먼저 궁에 가 있을 터이니 천천히 더 즐기다 오거라.”

 

정신을 차리자 이림은 이미 저 멀리 걸어가 버린 상태였다. 이림을 따라잡으려 멈춰있던 다리를 움직였다. 기분이 나빴을 거라고? 아니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고 두근거려 미칠 뻔하였다. 손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고 입술이 떨어지질 않기를 바랬다. 입술이 떨어지자 아쉽다는 생각과 동시에 한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이림을 놓치고 싶지 않다.

 

전혀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았습니다. 입맞춤이 좋았고 나리께서 계속 제 손을 잡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니러깐, 제 말은, 입맞춤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 저를 두고 먼저 가지 마시고 제 곁에 있어달라는 말입니다.”

 

급한 마음에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내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은 한 것인지. 부끄러워 죽을지도 아니 죽는 게 더 괜찮을지도 모른다.

 

너는.. 자꾸만 내가 위험한 생각을 하게 하는구나.”

 

이림은 한 손으론 내 허리를 잡아당겨 품속에 안기게 하더니 한 손으론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이림의 심장소리인지 나의 심장소리인지 빠른 속도로 뛰는 게 들렸다.

 

같이 가자꾸나.”

.. 먼저 가십시오 뒤에서 따라가겠습니다.”

“.. ?”

.. 부끄러워서 나리 얼굴을 못 보겠습니다.”

 

그러자 이림은 알았다며 먼저 발을 옮겼고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갔다. 따라가며 보이는 그의 아까처럼 옷자락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 눈 딱 감고 잡아버렸다. 그러자 이림은 걸음을 멈추었다.

 

멈추지 마십시오.. 제가 잡고 싶어서 잡은 것이니..”

알겠네.”

 

이림은 고개를 숙여 웃더니 걸음을 옮겼다.

 

웃지 마십시오..”

알겠네

 

겨우 진정된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우리 둘만이 이 시장에 존재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밤에 만나면 시장 일이 기억나 살짝만 스쳐도 깜짝 놀라고 함께 있으면 두근거리고 자꾸만 이림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미치겠다.

 

세자저하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많이 바쁜지 이림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최종으로 선발이 되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는데. 세자저하의 생일로 많이 바쁜가 보네. 세자저하의 생일날이 끝나면 이제 만나지 못할 것인데.

 

 시간은 흘러 세자저하의 생일 전날이 되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내일 있을 축제를 위하여 미리 연습도 하고 적응도 해볼 겸 밖으로 나왔는데 너무 많이 내리는 비에 모든 연습이 취소가 되었다. 하나 둘 다시 실내로 돌아갔고 홀로 그 자리에 남았다.

기둥에 기대어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이 공간에 들리는 빗소리는 듣기 좋았다. 손을 뻗어 빗물을 맞았다.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물의 느낌이 좋았다.

여기서 무얼 하는 것일까. 벌써 이곳에 온 지 세 달이 흘러가고 있고 궁에 들어온지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신이 잃어버렸다는 역사에 대하여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계속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이 온몸을 감싸왔고 손이 떨려왔다. 무서웠다.

 

거기서 무얼 하는 것이냐

.. .. ?”

 

고개를 들자 이림이 보였고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일어나 이림의 앞으로 발을 향하였다. 그의 앞에서 우물쭈물하자 이림이 팔을 잡아당겨 안아주었다. 이림의 크고 다정한 손이 등을 토닥여주자 마음이 안정되어 한결 편안해졌다. 이림은 아무 말 없이 등만 토닥여주며 먼저 말을 꺼낼 수 있게 기다려 주었다.

 

“.. 나리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

 

이림을 만나자 마음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폭발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응어리는 결국 폭발하여 애꿎은 이림에게 짜증을 내어버렸다.

 

나리를 보지 못하고 나리께 이야기를 하지 못하니 제 안에 두려움과 불안함이 싹을 틔우고 점점 자라나 저를 삼키었습니다. 어찌 저를 보러 오시지 않은 거십니까. 제가 싫어지셨습니까?”

나의 부제가 너를 불안하게 하였구나 미안하다. 내가 너를 어찌 싫어하겠느냐 네가 이리 아름답고 어여쁜데. 너를 보지 못하면 너가 내 머리 가득을 지배하고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이리 빠르게 뛰고 기분이 좋은데 어찌 너를 싫어하겠느냐.”

 

이림의 말에 이림을 바라보자 이림은 그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말거라

“.. 안 웁니다.”

그래 안 우는구나.”

 

이림은 기분전환시켜준다며 데려갔다. 외각의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작은 한옥이 있었다. 마루에 앉아 이림의 어깨에 기대어 비를 바라보았다.

 

나리..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예민해있어서 그만 나리께 짜증을 내었습니다.”

괜찮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거라. 너무 힘들거든 내게 기대어도 좋다.”

 

이림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이림과 함께 비를 바라보며 마음을 추슬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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