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개화 상

2020 여름호
작가
오비
주제
한양



“그래서 세자저하는 반역자들을..”

 

수업 시간에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벌써 한 달째 이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았다 뜨면 어두운 밤에 환히 빛나는 달과 그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꽃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월화 개화

W. 오비

 

 이상한 소리가 들린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소리를 들은 것은 수업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지내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처음엔 소리만 들리더니 어느샌가부터 눈을 감았다 뜨면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한복을 입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추고 있을 땐 생각만 할 수 있으며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춤을 다 추면 다시 교실 풍경이 보였고 그 꿈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꿈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단순한 꿈이 아닌 것 같았다. 수업 시간마다 미세한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아무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내 귀에만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이상한 소리는 학교에서만 그것도 비슷한 시각에만 들려왔고 소리가 끊기면 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꿈에서 강제적으로 깨어났다.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미세한 연주 소리가 들렸고 눈을 깜빡이자 저번과 비슷한 장소에서 이번엔 양손에 칼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이 막바지가 되어 또 깨어나겠다 싶을 때쯤 강제로 몸을 잡고 있던 힘이 풀리는 느낌이 나면서 몸이 자유로워졌고 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손을 주먹을 쥐었다 펴 보곤 정말 몸이 움직인다는 걸 확인하였다. 언제 또 꿈에서 깨어날지 몰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꼭 사극에서만 보았던 궁궐의 안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느낌이 느껴졌고 뒤를 돌아봐 확인하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잠시나마 꿈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꿈에 대하여 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다음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꿈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오는 자료는 하나 없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12시 32분 그만 잘까 생각해 침대로 가 눈을 감으려는 순간 띠리링-. 뭐지 항상 들리던 시각이 아닌데도 소리가 들려왔고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낮에 보았던 그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소리가 끊어지면서 몸이 자유로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속 좋은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곳인 것 같은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곳이었다. 둘러보던 중 저번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들고 있던 부채로 뒤에 있을 사람을 향해 뻗으며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하니 굉장히 잘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나는..”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눈이 떠졌다. 저번과 다른 장소에 메모하려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 32분 소리가 들렸을 때 확인했던 시간과 똑같았다. 뭐지 그 꿈을 꾸고 있을 땐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일까? 

 

 확인을 해보기 위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시간을 적고 꿈속으로 가는 것을 시작했다. 몇 번 반복해본 결과 꿈을 꾸기 전 시간과 꿈을 꾼 후의 시간은 같은 시간이었다. 즉 꿈을 꾸고 있는 동안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소리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으며 조금씩 꿈속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뭐랄까 얼굴도 몸도 다 내가 맞는데 다른 자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꿈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각몽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각몽하고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자자 책 펴라. 93페이지 기생까지 했었지? 이어서 한다. 그래서 그 기생은..”

 

띠리링-. 들려오는 음악소리 눈을 감았다 뜨는데 항상 있던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였다. 방 같아 보이는데.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아이가 들어와 급하게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였다. 

 

“잠깐! 잠만! 너.. 는..”

 

그 아이를 멈춰 세우려 아이를 부르려는 순간 나는 저 아이를 처음 보는데도 나는 저 아이를 알고 있었고 저 아이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부르자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래.. 지금 어디를 가는 거지?”

“씻으러 가시는 것입니다.”

 

 탕에 들어가 생각을 정리하였다. 아까 저 아이를 부르려는 순간 머릿속에 가득 들어온 기억들. 처음 보고 들은 것 같은데 알고 있는 기분. 낯선 곳이고 옷 들이고 말투인데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기억들을 대충 정리해보면 여기는 한양 즉 조선시대이고 나는 한양에서 가장 선이 곱고 아름답다고 유명한 춤꾼이자 기생.

 

 탕에서 나오니 꿈에서 보았던 검은 의상과 부채 그리고 가면이 보였다. 아까의 그 아이가 내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곤 옷을 건네주었다. 어떻게 입어야 할까 바라보는데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 아이는 다시 나를 이끌곤 어떠한 방으로 들어가 단장시켜주었다. 

 

“..동아야”

“예, 현월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고 아이를 불렀다. 

 

“남자가 기생이라니.. 참으로 웃기지 않니..”

“다른 기생들이 또..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그저 현월님께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또 어디에 있다고..”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말들이 나왔다. 대체 이 기억들과 익숙함은 무엇일까. 

 

“아, 현월님 행수 어르신께서 시간이 비면 찾아오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손님들이 오신 것 같구나.”

 

방에서 나와 동아를 따라간 곳은 저번에 꿈에서 보았던 장소였다. 풍경 좋은 곳. 드라마에서 봤다고 생각했던 그곳, 많이 봤다고 느꼈던 이유가 양반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들에서 많이 나왔던 기방 정자였기 때문이었나 보다. 

정자로 올라가 중앙으로 향하니 거기에 있던 모든 시선들이 내게로 쏠렸다. 가야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춤을 추면서 보이는 사람들 중엔 그때의 잘생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춤이 끝나고 눈을 감았다 뜨니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꿈속에 그 기억들은 무엇일까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요즘, 이상한 꿈을 꾸지?”

“..? 네?”

“이상한 꿈을 꾸지 않냐고”

“할머니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할머니는 나의 말에 손바닥을 내게 내밀었다.

 

“왜.. 왜요?”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음.. 제가 드릴 건 없고.. 우유라도 괜찮으시다면..”

 

할머니는 우유에 있던 빨대를 꼽아 우유를 마시면서 뚫어져라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생이구먼 그치?”

“.. 네”

“그리고 학생이 알고 싶은 건 기억들이나 뭐 그런 것이지?”

“..”

“그건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라고요?”

“그래, 전생이야. 흐음, 신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구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신이 실수로 있어야 할 과거를 실수로 지워버린 것이야 그런데 전생의 너는 그것을 바로 할 힘이 없어 환생한 너를 불러 과거를 바로 맞추려고 하는 것이야.”

“네?, 전생의 저는 왜 힘이 없는 거죠?”

“나도 그건 몰라”

“하.. 그럼 그 기억들은 다 전생의 제 기억들이라는 것이죠?”

“그래, 그리고 너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지? 나중에 다 풀릴 것이야. 그때가 되면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야. 그러지 않으면 현생으로 돌아올 수가 없어.”

“그게 무슨?”

“그리고 그 시대에서 사용하는 너의 이름이 있지? 그것만 써 너의 이름을 절대 알려주지 마.”

“네?”

 

고개를 들어 할머니가 있는 곳을 바라보자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만나서 궁금했던 점들이 조금 풀리긴 했는데 뭔가 더 복잡해졌다. 신의 실수는 또 뭐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데. 

할머니를 만나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더니 조선에 있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고 그쪽 세계에 점점 몸이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전생의 기억들이 섞여 말도 행동도 모든 게 완벽하게 적응이 되었다. 

 

 띠리링-. 교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3시 30분. 눈을 감았다 뜨니 조선시대의 내 방이었다. 옷이 화려한 것을 보아 춤을 춰야 하거나 춘 것 같다. 옷을 구경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동아가 들어왔다. 동아는 내게 행수 어르신이 찾는다는 말을 하고는 급하게 나갔다. 행수 어르신이 부르신다니 무슨 일이지.

행수 어르신이 계신 안쪽 방까지 걸음을 옮겼다. 방문 앞으로 가니 여럿 기생들이 화를 내거나 울고 있었다. 

 

“행수 어르신 현월이옵니다.”

“들어오거라.”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행수 어르신의 얼굴을 보았다. 다정하면서도 냉철하고 무서운 사람. 행수 어르신을 전생의 기억에서나 내가 전생에 오며 몇 번씩 본 나의 느낀 점이다. 그리고 굉장히 연약하고 외로운 사람이다.

 

“이번에 궁에 연회가 열릴 것이다. 알고 있지?”

“예.”

“거기에 너를 보낼 생각이다.”

“예?.. 그것이 무슨.. 저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가 많지 않습니까. 굳이 남자인 저를..”

 

아까의 기생들이 울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였다. 자신이 아닌 내가 궁으로 떠나서. 저 굴러들어온 놈이 더 잘나니 배가 아프고 기분이 많이 나빴겠지 전생의 내가 자신을 남자가.. 남자인데..라며 자신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네가 남자건, 여자건 상관이 없다. 오늘 짐을 싸 내일 궁으로 출발하거라”

“.. 행수 어르신!”

“두 번 말 안겠다. 이만 나가보거라.”

“예..”

 

행수 어르신의 방에서 나오자 주위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 속이 울렁 해지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을 막고 있던 힘이 풀리면서 내 의지로 몸을 움직 일 수가 있게 되었다. 

한 기생이 화나 모습으로 씩씩 다가오며 이 더러운 것이 감히 네가 궁으로 들어가다니!라며 손찌검을 하려는 팔을 잡았다. 안타깝지만 나는 전생의 나처럼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라서. 

 

“네 실력이 안되어 뽑히지 않은 것을 남탓하지 마시지오.”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풀리고 손이 떨려왔다.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많은 모양이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손을 맞잡은 순간 팔목에 보이는 상처.  전생의 나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나 보다. 옷 사이로 슬쩍 보이는 팔목을 살살 만졌다.

 

 언제 잠이 든 것인지 벌써 아침이 되어있었고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아마 이제부턴 내가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았다.

짐을 챙겨 궁으로 향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에 도착하였고 주위엔 여럿 기생들이 보였다. 이렇게 많은 기생들이 춤을 춘다는 것인가 대충 하고 빠져나와도 될 듯한데. 딴생각을 하던 중 위에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연회에선 딱 한 명의 기생만 춤을 추게 될 것이야.”

 

 그 말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1차 시험을 보겠다며 사람을 나누어 방에 들어가게 하였고 들어간 방에선 가야금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하였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뉘며 합격을 한 사람들은 궁녀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선판 프로듀스 101 같은 느낌이었다.

 

 합격을 하고 방에 들어오게 된 이후론 행수 어르신이 궁에 입궁하여 최종 1인이 될 때까진 연습만 하였다. 연습이 끝나고 늦은 밤 몰래 방에서 나와 주변을 살짝 걸었다. 연습하느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현실로 꽤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지. 

땅을 보며 걷고 있다가 반대쪽에서 보이는 발에 발끝에서부터 고래를 올려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저번에 꿈에 나왔던 잘생긴 사람.

 


 

“흐음, 궁녀? 아니 자세히 보니 남자구나 허나, 옷을 보아하니 기생이로구나.”

“..”

“기생이 이 늦은 시간에 왜 여기에 있느냐.”

“..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라.. 나와 길동무가 되어준다면 조용히 넘어가겠네”

“.. 길동무..?”

 

 남자는 그 잘생긴 얼굴을 예쁘게 웃으며 싫은 것이냐? 물어왔고 깜짝 놀라 눈이 커진 상태로 대답 없이 고개만 좌우로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손을 잡고는 앞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걸었다. 저보다 조금 더 큰 키에 넓은 어깨, 시원하게 뻗은 목에 감탄하고 있을 때 그가 뒤를 돌보았다. 돌아보자 보이는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완벽 그 자체였다.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방 앞에 도착해있었다. 왜 여기인 것인지 살짝 당황한 나의 표정을 발견하였는지 이렇게 늦은 시각에 너를 혼자 보낼 만큼 냉철한 사람이 아니라며 등을 밀어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문안으로 미뤄 넣고는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구나. 이름이 무엇이느냐?”

“무ㄴ.. 현월이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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