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in

2020 여름호
작가
슈가빈
주제
마카오

 

   

 

 

세나도 광장을 오른편에 끼고 주욱 걷다보면 마카오의 빈민촌을 마주할 수 있다. 나는 열여섯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나이가 차 더는 보육원에 있을 수 없게 되자 나는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조금 더 바깥쪽으로 나왔다가 했다. 그것만 해도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동거인 리우는 내가 새벽같이 일을 나가는 것을 영 마뜩찮아 했다. 집안에 얌전히 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리우의 봉급으로는 비좁은 방 한 칸 짜리 집세를 대기에만도 벅차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제법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광 스팟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딜 가나 다들 삶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거였다. 리우는 거의 늘 야근을 했고, 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에는 배운 것이 없었다. 가진 거라고는 튼튼한 몸뚱어리뿐이라, 새벽에 일을 나가 대부분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 일이 없는 날에는 종일 죽은 듯이 잠만 자다가, 리우가 밤늦게 돌아와 어깨를 흔들어 깨우면 그를 마주 안아주었다. 그의 집에 객으로 머무르는 보답이었다.

 

 

   

 

오후부터는 번화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고, 운이 좋은 날에는 호텔 카지노 입구를 지켰다. 업무강도에 비해 페이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가장 선호하는 일이었지만, 동양인에다 심지어 한국계였기 때문에 갑작스레 대타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은 날 불러주지 않았다. 대타라도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내가 키가 크고 생김새가 멀끔한 축에 속한 덕이었다. 어렸을 때는 제법 곤혹스런 일도 있었으나, 제법 덩치가 큰 지금은 밥벌이에 심심찮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보통은 식당에서 서버 일을 하고, 운이 좋으면 밤늦은 시간에 카지노에서 대타를 뛰고. 운이 나쁜 경우는, 이런 때였다. 고독사한 노인의 비어버린 집을 청소해야 할 때.

  

  

노인의 집은 제법 널찍한 편이었다. 복층 건물에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까지 있었다. 경찰은 지하까지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했다. 궂은일은 덩치가 크고 짬이 적다는 이유로 내게 배당되었다. 지하실 청소 담당도 자연스레 내 몫이었다. 노인은 아주 오랜 시간 아래쪽에 내려가 보지 않은 듯 했다. 입구부터 처진 거미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집에 혼자 거주할 정도라면 돈도 섭섭지 않게 있었을 텐데, 왜 지하실을 청소할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던 걸까. 걸음마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 덕에 뒷목이 서늘했다. 지하는 생각보다 그 깊이가 깊고 어두웠다. 휴대폰 라이트로 발밑만을 겨우 비추며 조심조심 걸음을 뗐다. 그만 돌아갈까, 싶은 시점에 돌바닥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들어 지하를 휘 둘러보았다. 예상과는 달리 놓인 것 없이 휑했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짐이 없어 생각보다 수월하게 청소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에 놓인 짐이라고는 길쭉한 나무상자 하나뿐이었다.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큰 상자 위에 십자가 하나가 덩그러니 조각된 채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그 용도를 짐작하지 못하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이 털이 쭈뼛 서는 듯 했다. 대체 왜 부유한 독거노인의 집 지하에 관이 있단 말인가. 우선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위험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보얗게 쌓인 먼지를 대강 털어내고 걸쇠에 손을 올렸다. 무게가 제법 있어 휴대폰을 주위에 내려두고 양 손을 사용해 낑낑대며 겨우 뚜껑을 들어올렸다. 간신히 관 뚜껑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이 다 얼얼할 정도였다. 주위에 온통 어둠인 탓에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 내려놓았던 휴대폰을 얼른 들어 후면 라이트로 관 안쪽을 비추었다. 

 

 

 “…뭐야?”

 

  

관 안쪽은 보드라운 쿠션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관 뚜껑을 내려두었다. 집주인이 자기가 쓸 관을 미리 마련해두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가엾은 산토스 할아범. 안타깝게도 당신은 화장되었다던데요. 짧게 애도를 전하고 내 일을 시작했다.

 

  

  

 

 

 

주말엔 오랜만에 리우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딱히 간지러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반쯤은 의무감으로 하는 짧은 정사 후에는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고는 했다. 나는 어려운 얘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리우가 뉴스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얌전히 따랐다. 뉴스는 연일 시끄러운 연쇄살인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제는 관광객 한 명이 살해당했단 얘기를 들은 바 있었다. 벌써 나흘째 하루 한두 명 정도의 사람이 같은 수법으로 죽어나가는데, 도처에 널린 CCTV는 단 한 번도 살인범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도시의 치안을 위한다며 야간 순찰을 도는 경찰의 수를 늘리기도 했으나, 지난밤에 희생된 것이 바로 그 경찰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일을 나갈 시간이 되어, 최대한 조용하게 몸을 일으켰다. 잠귀가 밝은 리우가 가늘게 눈을 뜨고 말했다. “빈, 오늘은 일 안 가면 안 돼?” 배부른 소리 말고 잠이나 더 자라며 손바닥으로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요즘 같은 때는 너무 위험하잖아. 범인은 잡히지도 않았고.”

“내가 살인범이라면 나처럼 덩치 큰 남자는 안 고를 걸.”

 

“모르는 거지. 어제는 무장경찰이 당했어.”

“…괜한 걱정 하지 말고 다시 눈 감아.”

 

 

  

정체모를 엽기살인범이 무서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장의 가난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을까. 리우는 그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새벽공기는 평온했다. 이 작은 섬에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무사히 오전 업무를 마치고 서버 일을 하는 매캐니즈 식당에 들어섰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줄지어 서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후 일곱시가 되었을 때 쯤 휴대전화에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카지노 경호원 한 명이 나오지 못하게 되어 대타를 좀 뛰어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바로 승낙했다. 식당 마감 후에 리우에게 오늘도 늦을 거라는 문자를 보내고 호텔로 향하는 셔틀에 올라탔다. 셔틀 운영시간은 오후 10시면 종료되기 때문에 퇴근 시간에는 셔틀을 탈 수가 없었다. 중간까지는 피터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지만 그래도 족히 이십분은 걸어야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보던 뉴스가 생각나 괜히 마른 침을 삼켰다. 

  

 

피터가 신학교 근처에서 차를 멈추며 연신 물어댔다. 정말로 괜찮겠냐는 물음에 별 일이야 있겠냐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도 많이 피곤할 터였다. 괜히 길을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경찰을 마주쳐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 당했다. 그는 지갑 속 신분증을 대충 훑어보고는 슬쩍 안에 들어있던 50 파타카 한 장을 일언반구도 없이 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하며 나를 보냈다. 화는 났지만 빈정 상한 티를 낼 수는 없어 애써 웃어 보이며 뒤돌아 터덜터덜 걸었다. 다시 혼자가 된 지 3분도 되지 않았을 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고요한 새벽에 울리는 발소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자 눈동자가 도록도록 굴러갔다. 간신히 발걸음을 떼며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가, 다시 느리게 했다가를 반복했다. 자꾸만 엇박으로 발소리 하나가 더 따라붙었다. 심지어 그것이 일부러인 것인 양 느껴졌다.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짓궂은 장난이었다. 나는 우뚝 멈춰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 그림자가 어른대었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눈이 마주쳤다는 것과, 남자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나를 따라 멈춰 섰다가, 조심히 한 발짝씩 앞을 내딛었다. 나는 호기롭게 돌아본 것 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있었다.

 

 

  

남자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내 살짝만 손을 뻗어도 닿을 거리에 들어선 남자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숨이 멎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 전까지 공포로 가득 찼던 눈빛에 경외감이 어렸다. 창백한 피부색을 띤 그 남자는, 마치 명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수려한 용모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림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남자는 내 앞에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자, 잃어버린 거.” 난생 처음 보는 지갑이었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었고, 종용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 지갑을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잉크라도 떨어뜨린 듯 얼룩덜룩한 지갑 안쪽에 한 남자의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방금 전 마주쳤던 경찰의 것임을 눈치 채기까지 시간이 오래 필요하지는 않았다. “저, 이건 제 게 아니에요.” 다시 그에게 지갑을 건네주려 했다. 방금 전까지 지갑을 쥐고 있던 나의 왼손을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뭐가 이렇게 잔뜩 묻었지, 했던 것은 붉은 핏자국이었다. 그것이 닿은 손바닥도 역시 검붉은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지갑을 떨어뜨리니, 마주선 남자가 웃어보였다. 걱정하지 마, 네게는 진 빚이 있으니까.

 

  

 

 

 

 

 

 

네가 날 꺼내줬잖아.

 

 

 

 

 

  

 

 

남자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묘하게 낯이 익은 천장이 보였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어디였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깨끗한 침구와 보드라운 향기에 이대로 녹아내리고만 싶었다. 그러다 불현 듯, ‘지금 몇 시지?’하는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원래 이렇게 잠이 많은가?”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니 어제의 그 미남자였다. 악몽 같았던 지난밤이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 그에 반해 남자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조금 더 일찍 감사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대낮에 돌아다니는 건 영 내키지가 않아서. 늦어져서 미안하게 됐어.”

“…누구에요, 당신?”

“기억은 안 날 테지만, 그래도 내가 빚진 건 갚아야 하는 성격이거든. 자식을 만든 건 거의 400년만의 일이지만, 신세를 갚은 것뿐이니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는 말고.”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래지 않아 이곳이 어디였는지가 떠올랐다. 불과 며칠 전에 들렀던 곳이었다. 평생을 일해도 이런 넓은 집 다락방 하나도 가질 수 없겠지, 하며 한숨만을 내쉬었던 곳. 산토스라는 이름의 백인 남자가 살던 집이자, 죽음을 맞이한 곳이었다. 

 

  

방 안은 온통 커튼이 처져있어 시간을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어둔 휴대폰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얼른 그것을 꺼내들어 살펴보는데, 부재중 전화가 이상하리만치 많았다. 배터리도 거의 닳아 휴대폰이 꺼지기 거의 직전이었다. 대부분은 리우였고, 식당의 사장이나 피터의 전화도 제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휴대폰에 적힌 날짜가 내가 아는 것보다 사흘은 더 늦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꺼졌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남자의 얼굴이 다가오던 순간이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다가와 입을 겹쳤고, 뒤이어 날카로운 격통이 있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입술이 꿰뚫리는 고통이었다. 그 다음 기억은 바로 이 침대 위로 넘어가기 때문에, 중간에 잠에서 깨어나거나 한 바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우선은 출근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상황은 흡사 납치 같기도 했으나, 그러기에는 몸을 구속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 나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웠다. 마치 무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컨디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자는 내가 밖을 나서려는 것을 잠자코 보고 있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배가 고파지면 이쪽으로 돌아와. 집에는 가지마. 등 뒤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그 집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 경이었다. 해가 길어 아직 햇빛이 조금이나마 비춰지고 있었다. 평소에 비해 유독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다. 마카오의 눅눅한 공기가 함께 닿으니 기분이 영 껄끄러웠다. 더군다나 길거리에는 온통 냄새, 냄새, 냄새. 원래도 코가 예민한 편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번화가로 갈수록 냄새가 짙어졌다. 음식이나 오물냄새보다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살 냄새가. 방금 전까지 맑았던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다. 겨우겨우 일하던 식당 뒷문 앞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에 들어설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해도 되었는데도 그랬다. 한참을 주저하고 있으려니, 홀 스탭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나를 보고 어! 하고 짧게 소리를 질렀다. 얼른 들어오라는 그의 말과 함께 드디어 발이 떨어졌다. 식당 지배인이 다가와 대체 어딜 갔던 거냐고 물어왔다. 길거리에서 기절했던 일과, 깨어나 보니 며칠이 흘러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와 지척에서 대화를 하는 동안 그의 살 냄새 때문에 자꾸만 아득해졌다. 아니, 살 냄새보다는 조금 더 아래의…….

 

  

 

“별 일 없었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미안하게 됐어, 새로 일할 사람을 구했거든.”

 

  

 

나는 지배인의 말 한 마디로 해고가 결정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호의로 저녁식사를 내어주셨다. 꺼져버린 휴대폰 충전을 맡겨둔 채 식사를 하는데, 목에 음식이 넘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결국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음식을 모두 게워낼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속에서 받아주질 않는 것이겠거니 했다. 구토를 하며 입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닿은 송곳니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 날카로웠다. 느낌이 영 좋지 못했다.

 

  

 

휴대폰 배터리는 리우에게 전화를 걸 정도는 되었다. 신호음이 채 세 번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냉큼 전화를 받았다. 실종신고를 하려 했는데 경찰이 받아주지 않았다며 리우가 거의 악을 질러댔다. 통화하는 동안 대부분은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리우는 ‘바로 집에 돌아갈 테니 우선 안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어달라’고 했다. 통화를 끝내고 10여분을 더 걸어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방금 구토를 해서인지 자꾸만 뱃속이 허했다.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냉장고를 열어보았으나,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맡았던 살 냄새뿐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애써 생각을 털어내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우가 돌아온 것이다.

 

 리우는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집 근처 길목에서 며칠 전에 경찰 한 명이 또 살해당했다며, 나도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워 잠도 잘 수 없었노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다시 한 번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에게서 나는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리우, 너 피 냄새가…”

“피 냄새? 아, 오늘 회사에서 종이에 긁히는 바람에 조금,”

 

 리우가 제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을 붙잡고 입안에 넣어 굴렸다. 리우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른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리우, 나……”

 

  

 

 

 

배가 고파.

 

 

 

 

 

 

 

 

 

 

 

 

 

 

 

 

 

 

 

 

 

“집으로는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했잖아.”

 

 문을 열고 나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남자가 서있었다. 밖은 어느덧 해가 완전히 진 어두운 밤이었다. 리우와 함께 살던 좁은 방 역시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든 채였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라고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처음은 조금 도와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렀군.”

  

 

“…잠깐 들어와.”

“초대하는 건가?”

 

 

  

“……그래.”

 

 

 

  

미칠듯한 공복과 죽을듯한 외로움. 리우의 목줄기를 물어뜯은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를 알 수밖에 없었다. 삼류영화의 각본 같은 허망함에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넘치는 식욕을 도무지 누를 수가 없었다. 깨닫는 순간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은인에게의 보답이랍시고 나를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너무나도 미워졌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를 다시 본 순간, 아, 이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이가 이제는 저 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허탈해졌다. 이 고독감과 쓸쓸함, 그리고 고통. 또 한 편으로는 넘쳐나는 활력과 영원히 보장된 젊음. 물질적 풍요 같은 것. 이제는 모든 것을 저 이름 모를 미남자와 나누게 될 것이다. 목적지 없는 아주 멀고 먼 길을 함께 걷게 된 것이다. 언제 끝이 날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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