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메라이

2020 여름호
작가
베디
주제
시카고





트로이메라이




베디 作







- 아-멘.




 악보의 마지막 코드를 치고, 건반에서 손가락을 뗌과 동시에 은우의 감겨있던 눈꺼풀도 올라간다. 주민들이 교회를 나가는 동안 은우는 피아노 위의 악보들을 정리하고, 가운데 쯤의 검은 건반을 툭 툭 눌러보았다. 일정한 그 소리에 발자국이 맞춰 들려왔다. 요 몇 달동안은 실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유독 한 곳이 말썽이었다. 일정한 그 소리에 발자국이 맞춰 들려왔다 보나마나 빈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긴팔 소매로 손을 다 덮고는 팔랑거리는 손짓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어땠어?"

 "음.. 괜찮았어. 여기 네번째 파샵 건반이 좀 거슬리긴 했는데."

 "아이, 그럼 안 괜찮네."

 "아니야, 그래도 괜찮았어."

 "완벽한게 아니면 괜찮지 않아."


 열아홉 빈은 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아 피아노 조율을 배웠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오래되지 않았어도, 빈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남들보다 두배는 빠른 속도로 실력을 늘려갔다. 이 교회의 피아노도 빈의 아버지가 매주 손보고는 했는데, 작년 여름 뉴욕의 콘서트홀 전속 조율사가 되면서 빈에게 바톤을 넘겼다. 은우는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스무살이된 지금까지 쭉 교회에서 반주자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진짜 괜찮았다니까. 난 학교피아노보다 네가 조율해주는 피아노가 제일 치기 좋아."

"거짓말을 잘도 해, 너는."

"진짜라니까. 그보다, 너 왜 나 콩쿠르 결과 안 물어봐?"

"..물어봐도 돼?"

"당연하지, 잘 됐으니까."



 진짜? 고개를 치켜든 빈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화색이 돈 그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응, 하고 대답했다. 다음주에 본선 하러가.



"일요일에?"

"응. 그래서 다음주에도 너가 반주해야 돼."

"아아. 너 가면 완전 비교되는데."

"이번까지만 참아봐."



 은우가 빈의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장난하듯 말을 뱉었다. 빈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가 이번까지만이야. 이번에 잘 돼서 쭉쭉 나가야지."

"그런가."

"그럼! 언제까지 이 동네 반주자로 있을거야."

"나 잘 되면 너도 나 따라가야 되는 거 알지."

"나? 왜?"

"왜긴, 전속 조율사로 같이 투어도 다니고 그래야지."

"아이, 꿈도 크다! 일단 본선 준비나 잘 하세요."



 나와봐. 조율 다시 해보게. 이 파샵이 오늘따라 말썽이긴 했단 말이야. 빈이 은우를 억지로 밀어내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끝나면 말해! 은우가 피아노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콩쿠르 악보를 펼쳤다.



"연습하러 안 가?"

"너 끝나고 가도 돼."

"....자신감이 넘치네, 아주."



 교회 안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 빈이 문제의 파샵을 조율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 은우의 손가락이 두드려지는 소리, 조율에 쓰이는 도구들이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울렸다.



"은우야."

"응."

"....빨리 잘 돼서 나도 꼭 데려가."



..... 푸하하, 알겠다니까. 뜬금없이 귀에 들려온 그 목소리에 웃음이 터지고 만다. 하여튼 귀여워, 문빈.






-






 잘 다녀와! 담담하면서도 제 목소리가 더 긴장해서 외치던 빈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콩쿠르는 성공적이었다. 헛된 자신감이 아니었던 만큼 은우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명문 음대와 교수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만큼, 끝난 이후의 서포트가 보장된 셈이었다. 은우는 두 팔로 대상 트로피를 소중히 안았다. 빈이 좋아할 얼굴이 벌써부터 둥둥 떠다녔다.


 2박3일간의 고된 일정이었음에도 은우는 집이 아닌 교회로 먼저 향했다. 주일이라 빈이 교회에 있을 걸 알았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빈은 항상 늦게까지 피아노를 살피는 걸 알기에 망설임 없이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왠일로 피아노 앞에 빈이 없었다. 굳게 닫힌 피아노 앞까지 걸어간 은우가 그 위에 트로피와 상장을 올려두고 교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눈에 들어와,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를 돌면 구석에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 곳의 불이 켜져있는 듯 했다. 빈아-, 그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제발 그만 하세요...!"



 창고에서 빈이 튀어 나왔다. 다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게, 무언가에 의해 튕겨져 나와 밖으로 달려나온 것이었다. 동시에 외쳐진 목소리 또한 빈의 것이었다. 은우가 놀란 눈을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



 빈아,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외면한 빈은 그대로 교회 문을 향해 뛰어갔다. 곧이어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창고에서 누군가 천천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목사님이었다.



"..은우 왔니?"

"...네. 방금 빈이가,"

"어어. 아무일도 없었단다. 어서 들어가렴."



 은우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 서늘한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아서, 은우도 빈을 따라 쫓기듯 교회를 나섰다.





-





 다음 날 아침, 빈은 학교 대신 교회를 갔다. 어젯밤 살피지 못한 피아노가 눈에 밟혀서였다. 흐리멍텅한 눈에는 초점이 없었지만 두 발은 본능적으로 교회를 향해 갔다. 이른 아침이라 텅 빈 교회 안, 빈은 피아노 위에 무언가 놓여진 것이 보였다. 자신과 은우 말고는 피아노에 손 댈 사람이 없는데.



"아, 맞다.."



 어제 은우랑 마주쳤었지. 피아노 위에 놓여진 트로피에는 대상, 차은우 라고 쓰여져 있었다. 진짜로 됐구나, 성공했구나. 벅차오르는 감동이 서서히 밀려왔다.



"빈아."



트로피를 매만지던 빈의 손길이 멈추고, 고개를 돌려본 곳엔 은우가 서있었다.



"나랑 같이 가자."

"....응."






-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 안은 조용했다. 나란히 마주안은 은우와 빈은 같은 시선으로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입술을 물던 빈이 말을 건넸다.



"왜 안 물어봐?"

"뭐를?"

"...그때 봤잖아. 목사님이랑."



 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은우가 그의 손에 꼭 맞물리게 제 손을 걸어 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일이.. 있기전에 나온거라."

"잘했어."

"응."

"이제 나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응."



 빈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빈은 문득 은우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이고 있어."

"...응."






-




 은우의 연주는 뉴욕을 매료시켰다. 콩쿠르를 후원했던 교수들의 눈에 들어 또래들보다 빠른 속도로 연주회를 열게 되고, 그의 수려한 외모와 함께 나날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연습실에는 항상 빈이 함께 있었다. 항상 먼저 도착해 그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피아노로 정돈을 마치면, 은우가 연습실로 들어와 하루 종일 그 피아노를 연주했다.



 빈은 이따금 떠오르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었다. 자신에 왜 뉴욕에 있는 지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은우를 위해서. 은우가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자신은 은우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조율한 피아노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으니까. 다만 빈은 2급 조율사였기에 그랜드피아노는 작업할 수 없었다. 교회에 있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까지가 빈의 급수에서 다룰 수 있는 한계였다. 그래도 자신은 은우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만진 피아노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그제서야 요동치는 마음이 조금 잔잔해진다. 연습을 마친 은우가 악보를 정리했다. 바로 나오는가 했더니, 교수와 뭐라뭐라 말을 하고는 한껏 밝아진 얼굴로 꾸벅 인사를 했다.



"빈아."

"응, 좋은 일 있어?"

"교수님 투어 공연에 오프닝을 맡게 됐어."

"잘 됐다!"



 교수는 6개월간의 전국구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 오프닝에 은우의 연주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은우에게는 그의 연주와 실력을 알릴 수 없는 둘도 없는 기회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빈은 생각했다. 그럼 조율은 어떻게 하는 거지? 콘서트홀이라면 전속 기사가 있을 텐데... 빈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도 신이 나는지 흥얼거리며 식사를 들고 있는 은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그럼, 투어 때 피아노 조율은 전속 기사가 맡는 거야?"

"아, 응. 교수님이랑 같이 다니는 기사가 있다고 해서 그 분이 해주실 거야."

"아..."

"그 분은 1급 조율사니까, 빈이 너도 같이 다니면서 배우면 좋을 것 같고."



 자신을 언급하는 말에 빈이 다시금 생기를 찾았다.



"응, 너무 좋지. 완전 좋지."






-





"안녕하세요. 교수님과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해리에요."

"안녕하세요, 문 빈입니다."



 투어의 리허설을 진행하기 전부터 빈은 해리를 따라다녔다. 하루 빨리 기술을 더 배워야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고, 그래야 은우의 콘서트에서도 일할 수 있으니까. 처음 해리가 첫번째 콘서트홀의 그랜드를 다루었을 때, 은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 소리에 감탄했다. 어떻게 이렇게 맑을 수가 있어요? 소리가 너무 좋은데요. 해리가 겸손한 척 웃는 걸 보면서 빈은 애꿎은 손등을 꼬집어댔다. 맑으면 된게 아니었다. 은우는, 좀 더 거친 소리를 좋아하는데.



 "교수님이 이런 소리를 좋아하셔서요."



 어쩔 수 없었다. 이 공연은 교수의 공연이지 은우를 위한 자리가 아니란 걸 아니까. 빈은 입을 꾹 닫았다.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빈이 한 거라고는 리허설 전 1급 조율기사 해리의 옆에서 보조기사로 도구나 건네주는 일이었다. 정작 건반은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다. 또, 예상외로 은우는 해리가 조율한 피아노를 잘만 연주했다. 그와 교수의 취향은 정반대인데도, 내색을 한번 안했다. 은우를 볼 수 있는 시간도 급격히 줄었다. 제가 연습실의 피아노를 매만지는 동안 은우는 콘서트홀에서 해리가 조율한 피아노로 연습을 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가며 문득 빈은 생각했다. 이제 은우가 내 소리를 기억이나 할까, 하고.  빈씨, 빈씨!



 "아, 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다 됐으니까 대기실로 가자구요."

 "네."



 해리는 대기실에서 갑작스러운 장염증세를 보였다. 정신없는 사이 그는 빈에게 마지막 점검을 맡기고, 곧 그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겨우 정신을 차린 빈이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제 조율가방은 숙소에 있어서ㅡ투어 중에는 단 한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ㅡ 급한대로 해리의 가방을 펼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 달만이었다. 은우가 연주할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이. 빈은 진정되지 않는 감정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우선 그가 부탁한 점검을 시작해야 했다.



 가장 가운데, 가장 아래, 가장 위, 그리고 아래서부터 하나씩. 이미 잘 조율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순조롭게 한 음 한 음 진행되어 갔다. 딩-. 빈의 손가락이 가운데로부터 조금 올라간 검은 건반에서 멈췄다. 파샵.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음이었다.



 "...너 뭐해?"

 "아, 은우야.."

 "해리는 어디가고?"

 "해리가 갑자기 쓰러져서, 나한테 부탁하고 갔어. 금방 끝나..!"

 "너는... 그랜드 못 다루지 않아?"



 처음 보는 은우의 눈빛이라 낯설었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해리한테 많이 배웠어. 그리고 거의 다했고..! 빈은 그 눈빛이 저를 꿰뚫는 것만 같아 다시 건반으로 시선을 옮겼다. 은우의 시선이 제 뒤통수에 꽂히는 게 다 느껴졌다. 오늘은 시장과 시 관계자들이 방문하는 날이라고 며칠 전부터 이야기했었다. 교수에게도, 은우에게도, 중요한 날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 신중히 조율했다.



 결국은 그놈의 파샵이 문제였다. 딱 한 군데에서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맑은 소리 대신 턱턱이는 소리가 이빨빠진 자리처럼 중간중간 귀에 거슬렸다. 백스테이지에서 이를 지켜보던 빈은 본능적으로 손등을 꼬집었다. 이미 교수의 연주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그' 건반은 이미 중반부쯤 맛이 갔다. 아, 난 끝났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은우의 서늘한 시선이 저에게 향하는 것이 상상되었다.






-






 콘서트홀이 정리되고 숙소로 돌아와 은우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한 후, 빈은 곧장 제 짐을 정리했다. 사실 정리할 것도 없었다. 옷가지 몇개와, 조율가방이 다였다. 은우가 저를 향해 어떠한 결단을 내린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말로 듣는 건 또 달랐다. 내가 만드는 소리를 피아니스트가 원하지 않으니, 떠나는 게 맞았다.



 '빈아. 남은 기간동안은 시카고로 돌아가있어.'

 '.....응.'

 '어차피 앞으로 남은 공연장도 다 콘서트그랜드이고, 알다시피 쭉 해리가 관리할거야. 오늘같은 일을 대비해서 1급 기사를 보조로 더 두기로 했어.'

 '응.'

 '....투어 끝나고는, 다시 못 갈수도 있어. 교수님 따라서 계속 갈 생각이야.'

 '잘 됐다.'

 '어어, 그리고.. 목사님, 돌아가셨다더라.'

 '.........'



 그러니까, 돌아가도... 괜찮을거야. 마지막 말을 하는 은우는, 아주 오랜만에 빈에게 시선을 주었던 것 같다.





-





 시카고의 변두리, 빈과 은우가 자라온 동네에 도착했을 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목사를 추모하고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서 멍하니 앞으로 걸어가다 고개를 들었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던 피아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갔지. 내 피아노. 내 피아노 어디 간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다시 돌아왔는데, 너마저 없으면 난 어떻게 하라고. 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거운 조율가방이 바닥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었는 지 창고에서 누군가 나와 그를 반겼다. 목사의 아내였다.



 "빈이니?"

 "....."

 "아이구, 빈아..!"



 빈은 그녀가 왜 자신을 끌어안고 우는지 잘 몰랐다. 뭐가 됐든 목사와 관련된 것은 닿고싶지 않았다. 피아노 말고는.



 "피아노 어딨어요?"

 "그래..! 피아노. 니가 그렇게 아끼던 피아노 말이다.. 목사님이 가기전에 저기 마을 앞에 있는 술집에다 팔아버렸지 뭐니.."

 "......."



 나도 그이가 왜 갑자기 그랬는 지 모르겠는데, 그날 갑자기 술에 취해서는... 빈이 저를 잡고있던 팔을 뿌리치고 그대로 뒤돌아 달려나갔다.



'진짜...진짜였어.'



 그 날 창고에서 그랬다. 제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으면 피아노를 팔아버린다고. 그러니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가만히 그 손길을 참다가, 결국 참지못하고 뛰쳐나갔었다. 도망치면서도 설마 그가 피아노를 팔겠어,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의 자산이니까, 설마 그러겠어..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펍이었다. 낡아빠진 나무문을 힘주어 열자 녹슨 종이 울렸다. 사장님은 빈의 얼굴을 보곤, 인자하게 웃었다. 저, 여기, 제 피아노, 찾으러 왔는데요...



 "그래, 이 피아노 너거라며? 빨리 와서 상태 좀 봐줘라. 조율은 너밖에 못하잖니."



 무대 위에 자리한 피아노가 가만히 눈을 감고 그를 기다렸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그랜드야. 네가 있는데. 빈이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하얀 건반을 부드럽게 눌렀다. 딩-. 제 인사에 대답이라도 하듯 피아노가 소음을 냈다.  어찌나 거칠게 다루어졌는지 나무 조각조각들이 왜 이제 왔냐고, 빨리 바로잡아달라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빈은 피아노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미안해.








-








 교수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은우는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교수와 해리의 모습을 본의아니게 엿보고 있었다. 6개월간의 공연을 마무리한 후, 다음 투어 계약건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것이었다. 은우의 손에 쥐어진 계약서가 인상을 쓰듯 구겨졌다.



 '다음 투어 때도 은우를 데려갈 거에요?'

 '아니지. 네 동생을 데려가기로 했잖니.'

 '그렇죠? 난 또. 은우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같길래요.'

 '콩쿠르 지원은 여기까지야. 너도 알잖아, 원래부터 데려올 생각 없었던거.'

 '동생한테 준비해두라고 할게요. 내가 보기엔 꽤 재능있거든요, 교수님이 키우는 신예라고 하면 딱일거에요.'

 '해리가 괜찮은 헤드라인 하나 뽑아봐. 은우는 금방 정리할 거니까.'

 '실력은 있는데, 아쉽네요. 운이 없어서.'



 두 사람의 고개가 겹쳐짐을 마지막으로 은우는 뒤돌았다.  그의 손에 구겨진 계약서는 곧 복도 끝 휴지통에 찢어져 쳐박혔다. 감사의 인사따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아부따위, 애초에 필요없는 것이었다. 제가 너무 순진했다. 갑자기 비춰온 스포트라이트에, 덫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하고 신나서 따라왔다. 이 바닥이 어떤 지 잘 알면서, 마치 영웅 서사가 제 것이 된 듯 꿈에 취해있었다. 저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자신했다.



 말그대로 내던져졌다. 이틀 뒤 숙소로 돌아가니, 계약기간이 끝나 짐을 빼달라는 말을 들었고 교수에게서는 편지 한 통 남겨졌다. 한 통도 아니었다. 수고했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자는 한 줄 짜리 엽서 한 장. 한여름밤의 꿈처럼 그간의 여정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듯 했다.



 시카고로 향하는 기차 안. 은우는 창가에 기대앉아 창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빈과 함께 뉴욕으로 향할 때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은우의 연주를 가장 귀기울여 들었던 이는 빈 뿐이었다. 또 은우도 빈이 조율했던 소리를 가장 좋아했다. 빈이 없어서였을까. 빈이 조율한 피아노가 아니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걸까. 정답을 찾지 못한채 모든 질문은 빈을 중심으로 빙빙 돌기만 했다.




 마을의 시작 지점에는 오래 된 펍이 하나 있었다. 나중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여기서 한 잔 하자고 어릴 적 빈과 장난삼아 얘기했었다. 비록 한 살 차이는 나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친했던 지라, 그냥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은우는 차마 마을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지 않아 그 낡은 펍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



 무대 위 피아노 건반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딩-,딩-. 같은 음을 반복해서 누르며 올바른 소리를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그 손길이 너무나 그리웠던 사람이라서, 은우는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파샵. 그 음만 계속 눌렀다.



 "됐다. 잘 했어."



 피아노에게 말을 하듯 건반을 쓰다듬으며 건넸다. 읏차-. 몸을 일으키며 돌아보는 고개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왔어?"

 "..응."

 "...기다렸는데, 와줬네."



 소리 괜찮은 지 한번 봐줄래? 빈의 물음에 그제서야 은우가 걸음을 옮겼다. 단상을 올라 의자를 제자리에 두고 앉아 건반 위로 두 손을 올렸다.



 "듣고 싶은 거 있어?"

 "....트로이메라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은우가 연주를 시작하자, 펍 안에 맑고도 약간 거칠음이 섞인, 은우가 가장 좋아했던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은우는 오랜만에 다시금 처음 피아노를 사랑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피아노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네가 만들어준 이 소리를 사랑했나보다.



 "와줘서 고마워."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괜찮아."

 "......"

 "이 피아노 다시 찾고, 이제 내가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야지 싶어서 열심히 조율하고 또 조율했는데."

 "......."

 "결국 연주할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니게 되더라."

 "......"

 "근데 네가 와줘서, 여기 있어서, 이제 정말 완벽해졌어."




 소리 어땠어?

 완벽했어.

 ...그럼 됐다.









트로이메라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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