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2020 여름호
작가
백향과
주제
대련

 


 어스름밤, 잠에서 깨면 목 뒤 축축이 땀이 배어났다. 마른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엄마’하고 불렀지만 그 음성은 이내 벽과 벽을 부딪히며 사라졌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몇 밤이 지나야 이 고독함을 삼켜낼 수 있을까. 빈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켰다. 새벽 두 시, 지난밤 주연이 보내놓은 위챗 메시지만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적응은 잘했냐 ㅋㅋ 

 애들이 다 너 보고 싶대 21:33

 거기도 덥냐? 21:34

 빈은 아무런 반응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곤 눈 위로 팔을 가져다 댔다. 괴로웠다. 차마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중국행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 빈은 어디 갈 곳 하나 없는 떠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몸은 계속해서 새로운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내려놓을 곳이 하나 없었다. 

 그 해 대련은 이상할 정도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빈이 공항에 도착하던 그 순간에도 햇빛은 강하게 내리비치고 있었고, 캐리어를 몸쪽으로 끌어당기면 말라비틀어진 꽃잎들이 바퀴에 밟혀 바스러졌다. 

 이례적인 날씨는 빈이 처음 등교를 하던 날까지 계속됐다. 더위를 먹었는지, 육십 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빈은 자기소개를 하며 말실수를 해댔다. 삼 개월 동안 급속 과외로 배운 중국어 실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집에서 여자… 여자를 키워. 암컷 고양이가 생각나지 않았던 빈은 첫 만남부터 집에서 여자를 키우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고, 순탄치 않은 여정이 될 거라는 것을 깨달은 후엔 내리 엎드려 자기만 했다.

 누가 문빈이야? 

 저기 중간에 엎드려서 자는 애.

 점심시간, 선잠을 자고 있던 빈은 누군가 저를 찾는 소리가 귀에 닿자마자 벌떡 상체를 일으키고 교복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놓인 저가 그나마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이름밖에 없었으니까. 이내 큰 키의 남자애가 다가와 제 앞 걸상에 걸터앉았다.

 “안녕.”

 “…안녕. 넌… 누구야?”

 푸흑, 너 발음이 그게 뭐야. 한국어를 듣자마자 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애를 쳐다봤다. 그 애는 빈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교과서들을 스르륵 펼쳐보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나 한국인이야.”

 이름은 차은우. 보다시피 너랑 같은 학년. 문과반이고 너 바로 옆 반. 이상한 자기소개를 한 한국인이 전학 왔다길래 한 번 보러 와봤어. 빈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고 말을 해대는 은우를 보며 빈은 목덜미만 긁적일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히죽 하고 웃는 걸까. 빈에게 은우의 첫인상은 ‘이상함’이었다. 

 “솔직히 수업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

 “뭐 그렇긴 한데…”

 “그런데?”

 “아니… 그렇다고.”

  은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얼굴에 띄어보이며 ‘안녕’ 한 마디만 남긴 채로 빈에게서 멀어져 갔다. 도대체 뭔데…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엎드려 자려던 빈의 앞에 같은 반 학생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차은우가 뭐래?”

 “너네 뭐라고 말한 거야?”

 “…특별한 얘기 안 했는데?”

 은우가 도대체 어떤 존재길래 이렇게 다들 득달같이 몰려와 무슨 얘길 했냐며 묻는 건지 빈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엎드려 은우의 떠올린 빈은 스스로 그 해답을 얼추 가늠할 수 있었다. 진한 눈썹, 옅게 진 쌍꺼풀, 오똑한 코, 적당히 두꺼운 입술… 중국에서 보기 힘든 비주얼이긴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납득을 해버린 빈이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모든 학생이 짐을 챙겨 부산스럽게 자리를 떴다. 그 소란스러움에 잠에서 깬 빈이 주섬주섬 서랍 속 교과서를 챙기는데, 누군가 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빈은 고개를 들곤, 그게 은우임을 확인하곤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냐. 그 반응.”

 “그냥. 넌가 싶어서.”

 “자.”

 은우는 덤덤히 사회 교과서를 빈에게 건넸다. 이건 왜?

 “아니 너 보라고 그런 거지.”

 “…땡큐.”

 “어디 살아? 같은 방향이면 같이 택시 타고 갈래?”

 빈은 사실 조금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안된다고 하면 왜 안되냐고 물어올 게 뻔한 아이니까. 그렇게 은우와 빈은 같이 교문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빈은 말 없이 화단 울타리 앞에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은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빈에게는 의도 없는 친절함이 어색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심지어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까지 고민할 지경이었다.

 “너 어디 산다고?”

 “나 올림픽 광장 근처.”

 “어, 나도 거기 살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잡던 은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공통점 하나 찾았다고 금세 싱글벙글해지는 사람은 단연코 이 세상에 차은우 하나밖에 없을 거라고 빈은 생각했다. 이어 택시가 도착했고, 둘은 나란히 뒷좌석에 올라탔다.

 “내일 뭐 해?”

 “…그냥 집에 있으려고.”

 “캐치볼 할래?”

 “갑자기?”

 응. 은우는 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기색을 한 빈의 등 위로 땀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은우에 빈은 어쩔 수 없이 그래 하고 짧게 대답했다. 생긋 웃어 보이는 은우의 얼굴 위로 유월의 햇살이 비쳤다.

 그날 밤 빈은 꿈을 꿨다.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빈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엉엉 울고 있었다. 곧 저의 머리 위로 우산이 씌워졌는데, 그 장대비를 뚫고 와 우산을 씌워준 건 다름 아닌 은우였다. 울지 마. 은우가 나지막이 내뱉은 그 단어가 빈의 귓가를 웅웅 맴돌았다. 손을 잡아 오는 은우의 눈동자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은우야 하고 부르고 싶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허억. 잠에서 깬 빈이 팔을 뻗다 머리맡에 놓인 컵을 쳤다. 아래로 떨어진 컵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 좋지 않은 날이 이어질 것만 같은 마음에 울적해지는 빈이었다.

 빈은 자기 전 은우와 정한 약속 시각보다 십 분은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곳엔 캐쥬얼하게 차려입은 은우가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컥.. 미안. 너무 늦었지.”

 “안 오는 줄 알았어.”

 “진짜 미안해.”

 아냐. 가볍게 고개를 젓는 은우는 갈까? 하고 빈을 이끌었다. 은우는 탁 트인 공터에서 발걸음을 멈췄고, 빈은 자연스레 은우에게서 몇 미터 정도 멀어졌다. 둘은 한 시간 넘게 공을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도 은우는 빈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안 되고 싶어. 이와 같은 무미건조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빈은 은우가 던지는 공을 글러브로 잡고, 다시 공을 던질 때마다 마치 공이 저의 마음인 것마냥 느껴졌다. 마음이 울렁였다.

 “잠깐 쉴까?”

 땀이 목을 타고 흐를 무렵, 은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둘은 공원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사먹으며 그늘 진 벤치로 향했다. 벤치에 풀썩 걸터앉은 빈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고 은우는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으며 그런 빈의 등을 몇 번 두들겨 주었다.

 “힘들어?”

 “조금? 더워서 그런가.”

 아이, 괜찮아. 빈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은우를 바라봤다.

 “어때?”

 “뭐가?”

 “여기.”

 “…그럭저럭.”

 빈은 사실 은우가 말한 ‘여기’가 중국을 말하는 건지, 대련을 말하는 건지, 지금 이 공원을 말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나도 그래.”

 은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만히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은우를 바라보던 빈 또한 자연스레 시선을 거뒀다. 은우가 고개를 돌리면, 그 까맣고 투명한 눈동자와 마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는 왜 중국에 왔는데?”

 먼저 그 침묵을 깬 건 빈이었다. 한참 말이 없던 은우는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나 원래는 이동민이었다? 차은우가 아니라.”

 “….”

 “부모님이 재혼하셨어. 그리고 새아빠를 따라서 여기 왔어.”

 “미안. 괜한 걸 물어봤네.”

 “아냐. 그럼 넌?”

 빈은 은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얼버무렸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남자를 좋아했었다고, 그래서 스스로 도망쳐 왔다고. 

 근데 지금 너한테도 마음이 간다고. 

 그걸 어떻게 말해.

 빈은 집에 돌아온 후에 침대에 누워 온 하루를 돌이켜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공을 던지며 놀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말도 많고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던 은우가 왜 벤치에 앉아있을 때는 그렇게 조용했는지를. 빈은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빈은 잠에 들었다.

 날은 계속해서 더워져 갔다. 은우는 빈이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론 매일 같이 하교를 하고, 주말에는 매번 다른 메뉴로 함께 점심을 사 먹고 공원을 걸었다.

 7월에 접어들자 기말고사로 인해 반 분위기는 조용해졌다. 그 와중에도 빈은 계속해서 엎드려 자기만 했고, 어떠한 위기감도 느끼지 못 했다. 은우가 기말고사 날짜를 알려주자 그제야 ‘아’ 하고 탄식만 내뱉을 뿐이었다.

 “주말에… 같이 공부할래?”

 빈은 여느 때처럼 은우와 같이 택시를 기다리다 먼저 말을 꺼내놨다. 잠시 생각에 빠진 은우는 답이 없다가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같은 반 애랑 선약이 있어서. 미안.”

 은우가 빈의 부탁을 거절한 건 처음이었다. 빈이 은우가 주말에 다른 이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빈은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둘은 함께 택시에 탄 후에도 서로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둘은 조금씩 서먹해져 갔다. 빈이 일방적으로 은우를 멀리했다. 시꺼먼 심보가 드러나기라도 했는지, 은우가 찾아오면 빈은 그런 은우를 모른 채 했다. 여러 번 무시하고 나니 은우는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까지 빈을 찾아오지 않았다.

 빈은 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저 또한 자신이 왜 은우를 멀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은우에게 미운 감정이 들었다. 왜 그날은 점심시간에 날 찾아오지 않았는지, 왜 굳이 내가 널 찾아가게 만들었는지, 널 찾으러 간 곳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봐야 했는지, 그걸 모른 체하고 용기를 내 주말에 만나지 않겠냐고 물은 나를 왜 거절했는지. 빈은 쏟아내고 싶은 말들을 뒤로한 채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빈아.”

 “….”

 “시험 잘 쳤어?”

 “….”

 “집에 같이 갈래?”

 기말고사가 끝나자 학생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짐을 챙겨 모두 학교를 빠져나갔고, 시험 시간마저도 잠으로 채워버린 빈의 앞에 가방을 멘 은우가 나타났다. 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초가 길고 무성하게 피어난 울타리 벽 앞에서 둘은 언제나처럼 택시를 기다렸다.

 “주말에 같이 바다 보러 갈래?”

 “바다?”

 “응.”

 “그래.”

 빈은 웃지 않는 얼굴로 은우의 시선을 피했다. 여자친구 생겼어?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말은 이내 속으로 삼켜버리는 빈이었다. 에어컨이 되지 않는 택시의 창문 손잡이를 돌돌 돌려 창문을 열었고, 강한 여름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갔다.

 주말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눅눅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빈의 셔츠 소매가 팔랑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빈은 모래사장 위로 발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느낌이 생경했다. 빈아.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보니, 저 멀리서 팔을 휙휙 흔드는 은우가 보였다. 물가를 향해 한참을 걸었다. 은우는 바다를 향해 쪼그려 앉아 있었고, 빈 역시 슬그머니 은우 옆으로 다가가 함께 쪼그려 앉았다.

 “그래도 물 되게 맑지?”

 “응. 그러게.”

 “할 말이 있었거든.”

 뭔데? 말을 한 후 빈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바람이 불면 사랑은 머물다 떠나가고.

 할 말이 있다던 은우는 노래 한 소절을 부른 후, 빈을 향해 웃어 보였다.

 “옛날에 좋아하던 친구랑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거든.”

 “….”

 “그 친구가 그랬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노래를 불러주라고.”

 “….”

 “빈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비로소 시작된 대련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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