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이 떨어지던 밤 우리의 체온은

2020 가을호
작성자
Jenny
작성일
2020-10-24 22:35
조회
23

우리 키스나 할까?




아주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별 것 없는 세상에서 별이 떨어진다는데, 특별한 일 하나쯤은 만들어도 좋잖아. 차은우의 눈이 빛났다. 하나, 둘, 번쩍. 별이 스쳤고 손부터 나갔다.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더니 동그래진 눈이 웃겼다. 너 웃기게 생겼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세번째로 하늘이 반짝일때 입술을 부볐다. 왜지? 왜 단 느낌이 날까. 우리는 분명히 맥주를 두 캔씩이나 비웠는데도 술냄새는 커녕 뭐랄까, 후르츠칵테일 같은 맛이 났다. 존나게 달고, 너무 상큼하고. 방금전까지 속에서부터 올라오던 뜨거운 느낌이 찬 입술에 닿으니 무언가 속을 식혀주듯 차분해졌다. 차은우가 나의 뒤통수를 감싸당겼다. 나 문빈, 20세의 첫키스는 별똥별이 떨어지던 밤 불알친구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나쁘지 않은 첫경험이었다. 사실, 존나 좋았다. 










유성이 떨어지던 밤 우리의 체온은


w.Jenny










차은우는 엄친아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던 놈이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대충 알것 같으니 이하 생략하고, 아무튼 그런놈과 친구라고 20년을 넘게 같이 지낸 내 자신을 칭찬하며 이제 놓아주려고 했더니 끈질기게 대학까지 같이 오게됐다. 훨씬 좋은데 갈 수 있으면서도 왜 여기 왔냐고 물으니 웃으며 뒷목만 긁어대던 놈한테 해줄 말이 없어서 에휴, 한숨만 쉬었다. 




차은우는 꼭 내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내 옆에 붙어다녔다. 이게 아무래도 어린시절부터 엮어온 집안이다보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그 핑계로 두기엔 많이 유난스럽기는 했다. 조상때부터 얼음의 속성을 띠고 이어온 차은우네 가문은 어느정도 그 한기를 식혀줄 뜨거운 속성을 가진 집안과 함께 가기로 했고 그것이 우리 가문이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속성을 나누니 누군가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왔고 그게 우리때까지 이어지면서 나와 차은우는 태어나 처음 눈떴을때부터 만났다고 했다. 지겹도록 이어온 이 인연은 어느쪽이 연애를 시작하면 멀어지겠거니 했는데 늘상 둘이서만 붙어다니니 연애고 뭐고도 없었다. 




"넌 이러고 있는거 안 심심하냐."


"어떤게."


"넌 맨날 나밖에 없잖아."




나의 말에 차은우가 웃는다. 차은우가 처음으로 나에게 눈을 보여주던 날이 생각 났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눈이란 걸 본적이 없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우리 집만 오면 다 비껴갈정도로 기운이 너무 강해서였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던 나에게 집으로 놀러오던 차은우가 유일한 친구가 차은우였는데, 티비 속에 나오는 눈보라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가 저거 보여줄까? 나는 거짓말, 하며 믿지 않았지만 어느새 차은우의 손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가득했다. 양손 가득 눈을 안고서 나에게 건네는데, 내가 받으려니 손이 다 닿기도 전에 녹아 물이 되는 눈을 보니 입이 삐쭉 나왔다. 그때 내 얼굴을 보며 차은우가 처음으로 활짝 웃었었지.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면, 된거지. 나는 너한테 특별하잖아."




특별하다, 라. 사실 차은우나 나나 어딜가나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긴 했지. 생각해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특이한 사람 취급을 당한적은 있어도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한적은 없던거 같다. 괜히 눈을 굴려본다. 차은우를 내가 어떻게 생각했었지. 차은우는 나를 특별하다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 안해?"


"잘 모르겠는데."


"뭐를 모르겠단 거야."




차은우가 손끝으로 내 코를 살짝 힘주어 눌렀다. 아! 죽을래? 했더니 코 끝이 원래 동그래서 이렇게 해도 괜찮을거라나 뭐라나 그런다. 미간을 찌푸리고 코를 쓸어내리며 리모컨을 들던 순간이었다.




[내일 새벽 별똥별이 떨어집니다. 선명하게 보일 정도라고 하는데요. 모두들 별똥별을 보면서 빌 소원은 정하셨나요? 내일 보일 이 별똥별은...]


"별똥별이 떨어진대. 너무 예쁘겠다."


"같이 볼까?"


"너 말고 같이 볼 사람도 없거든."


"잘됐네."




차은우의 손끝에 서리가 생겼다. 또 저러네. 요즘 왜인지 차은우의 몸 어딘가 끝에 얼음 결정이 생겼다. 맨날 나랑 같이 다니면서도 왜 그러지 싶었는데, 또 내가 한번 만져주면 곧바로 돌아오니 차은우의 손을 잡았다. 띵동, 거짓말처럼 내일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들리고 그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새벽이 되었다.




"맥주 마실래."


"좋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려 잠시 차은우의 손을 놓았더니 갑자기 일어난 차은우가 다시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자주 그랬던 일이라 당황스럽진 않았지만 냉장고를 뒤지는 도중에도 손을 놓아주지 않는 건 좀 귀찮았다. 




"나 맥주 꺼내잖아."


"근데 이거봐, 나 손에 또 얼음 생겨."


"그건 니가 만드는 거잖아. 내가 그것도 모르는 줄 알아."




타박하듯 말하니 히잉, 한다. 잘생긴 얼굴로 답지않게 귀여운 척은 엄청한다. 사실 저러는 차은우한테 늘 넘어가는 내가 뭐라 할말은 아니었다. 맥주를 꺼내다 탁자에 앞에 두고는 마주앉았다.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아 왠지 옛날 이야기도 꺼내게 되고 그랬다. 그때 니가 눈 만드는 거 처음 보여줬을때 나 솔직히 너무 감동했었어. 진짜? 응. 난 평생 눈은 못볼줄 알았거든. 그리고 니가 엄청 활짝 웃었었잖아. 나는 니가 그렇게 웃는거 처음 봤었어. 여전히 손은 맞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또 보여줄까? 신이 난듯 차은우가 손을 펼치자 탁자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탁자 위로 새하얀 눈뭉치가 손바닥만큼 쌓였다. 




"내가 만지면 사라지니까 보기만 할래."


"나는 안사라지는데."




탁자위에 얹혀진 내 손에 차은우의 손이 얽혀왔다. 꽤나 진중한 얼굴로 쳐다본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기분이 뭔가 묘해졌다. 뜨거운 손에 차가운 것이 닿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차은우의 시선이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했다. 곧 별이 떨어질거 같았다. 금방이라도.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껐다. 뭐하냐 묻는 차은우의 말에 이러면 별이 떨어지는거 더 잘보일거 아냐. 그러면서 침대에 앉았다. 유리창 너머가 가장 잘보이는 곳이었다. 




"우리 키스나 할까?"




그때 차은우가 그랬다. 








**








뜬금없이 지구에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나와 차은우는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감긴 눈으로도 선명하게 차은우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이 어이없어 풋, 웃음이 났다. 그러자 나의 등을 감싼 차은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요즘 힘 조절을 잘 못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하루종일 니 옆에 붙어있으려니까, 몸이 자꾸 거부를 해. 니가 너무 뜨겁다고. 나는 차가운 사람인데, 니가 자꾸 나를 뜨겁게 하니까. 투정부리듯이 말하니 자연스럽게 입술이 떨어졌다. 조금 안고 있을까. 손을 뻗어 차은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빈아."


"왜."


"내가 귀찮아?"


"그랬으면 너 버려두고 진작에 도망갔지."




간지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더 차갑게 말했다.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차은우도 아는거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애정이 들어가 있다는 걸. 너 무슨 소원 빌었어? 생각해보니 나는 아무 소원도 빌지 않았다. 아 빌었어야했는데, 딴짓하느라 못 빌었네. 투덜댔더니 차은우가 크게 웃었다. 




"난 빌었어."


"뭔데? 아, 아니다. 말하지 마. 말했다가 안이뤄지면 어떡해."


"그래, 안말할게."




차가운 손이 이번에는 내 얼굴에 닿았다. 왠지 기분이 좋아 눈을 감고 그 손에 볼을 부볐다. 차은우한테는 겨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차은우가 없었으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 계절. 차은우도 나 때문에 여름을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다른게 너무 많아서 그것을 느끼며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르지.




"빈아, 그런데."


"또 왜."


"만약에 우리가 애기를 낳으면."




엥? 눈이 확 떠졌다. 우리가 애기를 어떻게 낳아! 그랬더니 차은우가 또 울상을 한다. 우리가 애기 낳으면 그 애기는 어떤 속성으로 태어날까.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진짜. 차은우를 밀어내고 다시 탁자 앞에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기분이 진짜 이상해서 막 너무 덥고, 더우니까 차가운게 필요했고, 속이 타고...




"내가 그렇게 빌었단 말이야. 우리 애기 가지게 해달라고."


"아이, 진짜 너는 무슨 그런 소원을!"




하여간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바보지. 차은우를 노려보며 고개를 휙 돌렸더니 옆으로 붙어 앉는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또, 또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아무리 소설을 좋아하고 동화를 좋아해도 이거는! 차은우가 필살기를 쓴다. 또 손이 새파래져있다. 그럼 나는 마음이 약해진다. 저러다 제 한기에 못이겨 쓰러질까봐. 




"해, 해보면 그게 될리가."


"내가 그래서 소원까지 빌었잖아."


"그거, 다 미신일, 텐데."




아마...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차은우의 손에 고드름 생기는거까지는 내가 봐줄수가 없어서 결국 또 끌어안아버렸다. 못됐어, 사람 마음 약해지게 하고. 나쁜 차은우, 못된 차은우. 그러면서 끌어안은태로 투덜댔더니 뭐가 그렇게 좋은지 또 막 웃어댄다. 차은우는 문빈이 어쩔줄 몰라하는 걸 보면서 재밌어 했다. 예전부터 그랬었다. 




"나는 니가 없으면 안되겠다 빈아. 나 이렇게 만드는거 너밖에 없는데."


"고백할거면 좀 예쁘게 해봐. 애처럼 굴지 말고."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막 차 트렁크에 풍선 달아서 짠 하고 열면 곰인형 나오고 집 현관에다가 하트로 양초 해놓고 그런거 좋아?"


"절대 아니거든!"


"그럼 어떤게 좋은데?"


"...눈."


"응?"


"난 눈이 좋아."


"그럼 잘됐다, 그게 내 전문이니까."




눈이 좋은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언제 말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눈이 좋은 이유는 아마도...




"겨울에 기대해. 눈오는 어느날 갑자기 확! 고백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럼 지금은 뭔데."


"지금은 친구."


"그럼 고백하기 전까지는 친구고? 방금 키스도 했르면서?"


"사랑의 순서는 요즘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던 사람이 구누였더라."


"그건 그냥 하는 말이었지!"


"정식으로 고백할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그게 뭐야. 차은우가 또 웃는다. 이번엔 웃으면서 내 이마에 뽀뽀를 했다. 간지럽거든! 차은우의 이마에 내 이마를 기댔다. 차가운 기운이 몸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거 같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붙어있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같았다. 너와 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할 필요 없는 생각인거 알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났다. 서로를 몰랐다면 우리는 사람들 틈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는 늘 차가운 사람으로, 나는 늘 뜨거운 사람으로 그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어가 있을 수 있었을까. 특이한 체질의 사람들인 우리가 서로가 없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맞닿은 채로 있었다. 그렇게, 그냥.




유성이 떨어지던 날, 우리의 온도는 36.7도. 늘 40도에 가까운 나와 34도에 가까운 차은우가 맞붙어있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정상 체온. 차은우의 가슴팍에 기댄채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차은우와 나의 아이는 정상 체온으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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