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아다에서 구하소서 하

2020 가을호
작성자
은또
작성일
2020-10-24 22:52
조회
18


05.

학교의 차은우는 똑같다. 나 말고는 딱히 어울리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쳇. 그래도 내가 오지게 떼써서 안경 버리고 렌즈로 갈아탔다. (다른 애들이 깜짝 놀라길래 대신 만족하면서 다니는 중이다.) 그래도 수업중에 나한테 눈길 한 번 안 주는 건 좀 심했다. 시위하는 의미로다가 오락실에서 뽑아준 어피치 인형 가지고 방해하면 뺏어다가 서랍에 가둬버린다. 사실 조금 삐졌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는 물어보는 거에 대답도 잘 해주고 장난도 받아줘서 (별 반응은 없고 웃기만 한다) 나름 순조롭게 친해지는 중이다. 친한 거랑은 좀 다르고 썸 정도 되나... 맨날 교실에서 자빠져 자던 내가 은우 옆에 찰싹 붙어있으니까 주변에서 갑자기 왜 쟤랑 노냐고 찌끄리는데 엉덩이 한 대씩 차주면 그만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들이 말이 많어.



- 공부가 좋아 내가 좋아?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 쳇 ㅠ3ㅠ

ㅋㅋㅋ

- 뽀뽀할래?♥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는 척) 하다가 쪽지 보내면 그것도 대답 잘 해 준다. 마지막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길래 그냥 씩 웃어줬다. 그랬더니 고개 끄덕이고 조금 이따가, 하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좀 부끄러운가? 이것도 나만 아는 모습이라 좀 뿌듯하다.



박민영
잘돼가요?ㅋㅋ



씨붕... 주기적으로 카톡 올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시작은 내기로 한 게 맞는데 얘를 알아갈수록 그게 잘 안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 기만하는 거 같아서 죄책감도 들고 지금 뭐 하는건가 싶어서 현타도 오고. 사실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후회다. 내가 왜 이딴 걸 한다고 해서는. 머리속이 복잡해져서 그냥 씹었다. 뭐해? 옆에서 내동 귀찮게 굴던 내가 갑자기 조용해지니 이상했는지 책을 톡톡 치는데 쫌 놀라서 고개 홱 들었다. 무슨 생각 하는데, 하고 묻는 듯한 눈 마주치니까 좀 슬퍼졌다. 미안해서 그런다. 근데 잠깐 보고 있으면 또 되게 기분 좋아진다. 첫 날 얼굴에 감긴 거랑은 좀 다르다. 뭐랄까, 사소한 거에 집중하게 된다. 찰나에 보여주는 미소라거나 손짓같은 것들. 가끔 가르쳐준 거 일부러 모르겠다고 하면 고민한다고 꿈틀대는 눈썹도 귀엽다 요즘엔. 좋아하는 건가? 문달이 진짜 웃기는 짜장이라니까. 짬바 좀 쌓였다고 무심한 얼굴에서도 이제 어느 정도의 감정은 읽힌다. 지금은 조금 걱정하는 것 같다. 부러 장난스레 하얀 볼을 붙잡고 물었다. 야 있잖아.



"나 너 좋은가?"

"...드라마 찍어?"



드라마 같은 거 보지도 않으면서 이건 어떻게 안대. 워낙 유명한 대사라 그런가 싶다가도 차은우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좀 의외였다. 그르게, 드라마 찍나 봐. 이걸 얘한테 물어서 어쩌자는 건데. 내가 말 해놓고도 조금 어이 없어서 자조했다. 조금만 더 생각했다간 수습이 안 될것 같아서 그냥 웃어넘겼다. 어엉, 분위기 좀 잡아봤다. 갑자기 만져서 미안! 조막만한 머리통 놓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손목이 턱 잡혔다. 아 왜에. 알려줘? 뭘.



"뽀뽀하고 싶으면 해."

"어?"



잡은 손에 깍지를 낀다. 생각지도 못하게 체온이 조금 낮았다. 아닌가, 내가 열이 많아서 차갑게 느껴지는 건가. 멍하니 얽은 손끝만 내려다봤다. 감아오는 손가락이 얼굴과 다르게 조금 투박했다. 원래 미인들이 손이 좀 안 예쁘다던데 진짠가... 시선은 점점 올라갔다. 붉은 손톱부터 긴 팔, 마른 어깨 그리고 깊은 눈. 거짓말따위는 모를 것 같은 까만 눈동자.



"나는 너 좋아."



낮은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아있던 은우는 몸을 일으켜 내게 가까이 붙었다. ...해도 돼?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 덕에 이번에는 뽀뽀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느리게 다가오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부드럽게 뒷목을 감싸는 손길에 몸이 굳었다. 첫키스도 아닌데 존나 긴장돼서 딱 울고 싶었다. 뭐야, 이거... 어떡해. 코앞까지 다가온 차은우의 눈이 먼저 감겼다. 긴 속눈썹에서 차르르,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들어 조금 어지러웠다.



입술이 완전히 겹쳐지자 속이 미친듯이 울렁거렸다. 꼭 감은 눈 앞이 핑핑 돌았다.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손이 덜덜 떨리길래 입고 있던 교복 치마만 쥐어뜯었더니 조심스레 손을 겹쳐온다. 그것만으로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입 안으로 밀려드는 혀를 받아내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은우에게 매달렸다. 매끈한 치열을 훑다가 내 혀를 감아오는 느낌이 생생해서 허리께가 간지러웠다. 으응, 잇새로 새는 소리에 슬핏 웃더니 아프지 않게 내 입술을 깨문다. 촉촉하고 말랑한 살덩어리가 몇 번 부딪히더니 고개를 틀어 다시 다가온다. 오고 가는 숨이 달았다.



빈틈 없이 닿았던 몸이 떨어졌을 때 창 밖은 이미 어두웠다. 어질어질한 머리 덕분에 아직까지도 공중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키스하는 내내 미친듯이 뛰었던 심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 한참을 숨만 몰아쉬었더니 은우가 조심스럽게 품에 나를 가두었다. 다정한 손길이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는 게 좋아서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문득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알겠어? 조금 전 내 멍청한 질문에 대한 재촉인 듯 했다. 나 너 좋은가?



"...맞네,"


"나 너 좋아하네."



내기같은 거 말고, 너랑 그냥 연애하고 싶은가보네.




06.

"문달이 요새 카톡 씹더라?"

"아, 공부했다고요."



기지배 공부 이지랄, 하고 깔깔 웃더니 볼을 꼬집는 손이 맵다. 트랙 존나게 돌고 나서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같이 뛴 저 언니는 멀쩡하다. 체력 무엇, 하니까 자기도 힘들다고 헥헥대는 척 한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물이나 나눠마시다가 옆구리 찔렸다. 야, 왜 대답 안 하냐고.



"뭐요."

"아다탈출넘버원 잘 되어가냐고."

"말 하는 거 봐, 완전 짜증나."



얘쨰럐걔. 인중 쭉 늘리는 거 보니까 얄미워서 한 대 때리고 싶다. 언니라 때리진 못하고 대신 들고 있던 물통 던졌는데 존나 깔끔하게 받아내서 또 짜증난다. 하여튼 순발력 디지게 좋아서 맨날 부럽다. 부러 딴청 피우는 나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쳐다보길래 그냥 틱 던졌다. 나 그만 할래요. 그랬더니 쌍커풀도 없는 주제에 큰 눈이 더 커졌다. 지금 GG치는거? 손바닥 쭉 펴서 내민다. 이십만원 내놓으라는 소리다. 에라이 시발... 카페로 보낸다고 폰 뒤적거리니까 깔깔 웃으면서 말린다. 됐어, 이 새끼야. 설마 동생 뜯어먹겠냐.



"근데 왜?"

"아, 몰라요..."

"뭐 있구만?"



귀신같은 여편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다가오길래 도망갈랬더니 폴짝 뛰어 매달린다. 뭔데? 뭔데? 빨리 불어라. 쥐콩만해서 그닥 무겁지도 않은데 듣고 싶은 얘기 들을 때 까지 이럴 게 뻔해서 졸라 귀찮다. 그냥 케찹고백 하고 빨리 떨궈버리는 게 내 신상에 더 이롭다. 그리고 뭐, 물어볼 것도 있고. 명주언니가 몇 안되게 어른같을 때가 있는데 상담해 줄 때다. 가끔 옆에서 듣고 있으면 뭐 이딴 걸 조언이라고 해주나 싶을 때도 있는데 그게 또 잘 먹힌다. 그래서 고민 생기면 종종 상담 신청한다. 사실 평소에 존나 언니 취급 안 해주는데, 이럴 때는 또 되게 의지가 되고 멋있더라고.



"언니 있잖아."

"엉."

"이제와서 차은우 좋아하면 양심 없어?"



눈을 반짝이며 벽에 기대 앉은 내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너 걔 좋아해? 생각에 잠겨서 대답 안 하니까 그냥 말없이 기다려준다. 주머니에서 말랑카우 한 움큼 꺼내더니 하나씩 까먹으면서 조용히 기다린다. 요 며칠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운 건 온통 차은우 뿐이다. 좋은데 미안하고. 어제까지는 내기 그까짓거 그만두기만 하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때려치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어쨌든 은우한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거랑, 꽤 오래 아무것도 모르는 애 기만한 건 맞으니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건 어떻게 털어낼 도리가 없었다. 나 얘 좋아해도 되는 걸까.



"좋아해요. 근데 좀... 그래. 양심에 찔려."

"왜?"

"미안하잖아요. 처음부터 순수하게 좋아한 거 아니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접근해서는 개수작이나 부리고. 근데 알고보니까 내 욕심 채우려고 기만한 거잖아. 내가 은우였으면 엄청 배신감 느낄 것 같아. 중얼중얼 요즘 드는 생각을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겠네. 에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더니 등짝을 퍽 내리친다. 은근 손이 매워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왜 때려요! 얘기 들어달랬지 누가 사람 치래?! 그랬더니 때린 부분 문질러주면서 웃는다.



"야 문달이, 너 왜 이렇게 착한 척이냐."

"나 진지하다고요. 분명 실망할거야..."



좋은 만큼 실망하는 얼굴 보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갑자기 반응이 없길래 옆에 봤더니 뭔 신내림 받는 무당마냥 가부좌틀고 앉아서 눈 감고 있다. 뭔가 입질이 오는 거다. 명주도사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내려주십사. 두 손 모으고 기다리니 이내 큼큼, 하고 입을 연다.



"문달이야. 이 언니가 보기엔 말이다. 시작부터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어."

"엉?"

"누가 연애를 어? 첫 눈에 반해서 나 지금부터 너를 사랑하겠습니다, 선서하고 들어가냐."



처음엔 별로였다가도 부대끼다 보면 좋아지고 그러다보면 입술 부비고 있고 그런거지. 나도 처음엔 박진희 엄청 싫었다? 맹해가지고 자기 거 하나도 못 챙기는게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거야. 근데 어느 순간 좋아지는 걸 어떡하라고. 결국 우리 얼마나 잘 사귀냐. 시작 그거 별로 안 중요하다니까. 그렇지 않냐? 뭔 개똥철학인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맞는 말 같아서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이 언니 은근 말 잘 한다니까. 신천지나 다단계가 아니라서 존나 다행이야. 입 트인 김명주는 청산유수였다. 니가 아무리 처음엔 꾸리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어도 말이야,



"결국 지금 좋아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내기 때려친 건 둘째 치고, 생각하는 거 존나 싫어하는 문달이가 이렇게 혼자 속 끓이면서 고민할 만큼 걔가 소중한 거잖아. 혹시나 상처라도 줄까봐 사서 겁먹을 만큼."

"..."

"그럼 그만큼 더 좋아해주면 돼. 처음에 나쁜 생각 했던 게 미안하면, 그만큼 더 잘 해줘. 상처받을까봐 걱정되면 그만큼 더 사랑해줘. 그러면 돼."



...진짜 그러면 되는 건가? 뭔가 감동이어서 코끝이 찡했다. 괜히 훌쩍였더니 머리 쓱쓱 쓰다듬으면서 그런다.



"그리고 말 안하면 되지. 세상엔 착한 비밀이라는 것도 있단다 아가야."

"...쳇."

"새끼가 은근 순진해가지고 말이야, 뭘 또 곧이곧대로 말 하려고 하냐. 너 빠가사리지?"



...이 언니는 잘 나가다가 꼭 초를 친다. 빠가사리 이지랄. 발끈하려다가 나름 어마어마한 조언을 들었으니 한 번 참았다. 언니 고마워요, 하면 또 닭살 돋는다고 벌떡 일어난다. 슬렁슬렁 트랙을 걷는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나 진짜 마음 놓고 좋아할게요? 그럼 지가 무슨 만화 주인공인 것마냥 손 흔들면서 멀어진다. 존나 언제적 덴티큐... 그래도 고맙다. 내내 속을 꽉 누르던 바윗덩어리를 저 조그만 언니가 치워버렸으니까. 언니가 콩알만해질 때까지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차은우 보고싶다.




07.

연애 진짜 좋다. 걸릴 게 없어진 은우랑 나는 때아닌 신혼생활 중이다. 사귀기 전에도 그랬지만 24시간 중에 잠 자는 시간 빼고, 훈련시간 빼고 계속 붙어있어도 된다. 사실 문득 너무 치대나 해서 혹시 나 귀찮냐고 물어봤다가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눈썹 꿈틀대길래 만족스럽게 도로 들러붙었다. 사귀는 사이라고 도장 꽝 찍었더니 이제 자고 가는 것도 허락해 준다. 어제 처음 같이 잤다. 솔직히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끌어안고 잠만 잤다. 사실 그것만으로 너무 좋아서 로또 당첨되는 꿈 꿨다. 히히. 아다탈출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은우도 솔직히 티 많이 난다. 초반의 무뚝뚝한 모습이 둘만 있을 땐 거의 사라지고 없다. 여전히 말이 많은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말 걸면 다 대답해주려고 노력한다. 웃음도 많아졌다. 웃는 거 보려고 괜히 더 오버하고 그럴 때도 있다. 가끔 그만해, 하면 민망해지긴 하지만. 삐진 척 하면 달래주려고 옆에서 낑낑대서 그거 보는 재미도 있고.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근데 좋은 걸 어떡해. 딱 그 생각으로 뻔뻔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나 배고파."

"뭐 먹을래?"



몸을 일으키려는 은우의 손을 잡아당겨 원위치시켰다. 시켜먹자. 나 떡볶이 먹고싶어. 그 말에 흠칫하는 맵찔이가 귀여워서 허리를 끌어안았다. 우리 으누를 위해 언니가 순한 맛 시켜쥬께용. 그러면 너 먹고 싶으면 매운 맛 시켜도 돼, 하는데 뚜껑 열자마자 딸꾹질 할 거 알아서 절대 금지다. 은우에 대해 알아가면서 가장 귀여웠던 건 대놓고 아기입맛이라는 거였다. 매운것만 보면 진저리를 치고 비위도 약해서 혐오식품 같은 건 절대 못 먹는다. 모르고 닭발 입에 넣어줬다가 눈물 참는 거 보고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근데 동시에 딸꾹질 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깔깔 웃었다가 쫓겨날 뻔 했다. 그 다음부턴 못 먹는거 꼭 말하기로 약속했는데 아직도 웬만하면 나한테 맞춰주려고 한다.



소파에 앉은 은우의 어깨에 기대서 물었다. 은우야 너 나 왜 좋냐. 그 말에 머리칼 쓰다듬던 손이 뚝 멈췄다. 그런 건 왜 물어봐, 하는게 말하기 민망한 눈치다. 그럼 나 부터 얘기해야지. 나는 너 예뻐서 좋은데. 그 말에 버릇처럼 피식 웃는다. 또 안 물어봐? 옆구리 찌르니까 그제야 묻는다. 또 왜 좋은데. 그러면 또 고민해야 된다. 쥐어 짜는 거 아니고 좋은게 너무 많아서 그런다. 연애 초라 그런지 별 게 다 좋으니까 순서 매기기 힘들어서. 음... 착하고, 다정하고. 똑똑하고. 손가락 꼽아가면서 세는데 그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춰오면서 그런다. 나도 너 예뻐서 좋아. 기분 존나 째져서 눈 감고 먼저 키스했다. 먼저 시작해도 주도권 뺏어가는 건 어차피 은우지만.



입술은 벨소리가 울려서야 떨어졌다. 건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에 반색을 하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또 자기가 나간다는 거 억지로 밀어넣어놓고 내려갔다 오는 대신 볼뽀뽀 한 번 더 졸랐다. 크크 개이득... 실실 쪼개다보니 손이 허전했다. 아, 핸드폰 놓고 왔네. 얼른 받고 들어가야겠다.



-

거실에 혼자 남은 은우가 낮게 웃었다. 처음에는 발랑 까진 애인줄로만 알았는데 알면 알 수록 귀여운 면이 있었다. 무뚝뚝한 저와 달리 감정이 얼굴에 족족 드러나는 솔직함도, 갑자기 나타나 애정을 요구하는 뻔뻔함도, 그러면서도 가끔 부끄러워하는 것도 다 귀여웠다. 처음에는 뭔지는 몰라도 꿍꿍이가 있어서 접근한 게 분명했는데 이제는 그냥 저만 보면 꼬리치는 강아지같다. 가끔 삐져서 눈 흘기는 거 보면 고양이 같기도 하고. 해사한 얼굴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미소짓던 은우가 요란한 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달이의 휴대폰이었다.



[윤미]


가끔 얘기하던 육상부 후배였다. 그냥 둘까 하다가 하도 요란하게 울리길래 그냥 통화 버튼을 끌었다. 간단히 주인의 부재를 전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여보세요, 그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목소리 덕에 입을 열 기회조차 잃었다.



- 언니! 김명주가 내기 끝났다는데 찐임?! 언제?! 왜 민영이랑 나 몰래 둘만 얘기해?!

"...?"

- 막상 하려니까 쫄려요? 솔직히 우리가 이겼죠?

"저기,"



으누야 떡볶이먹장!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고 커다란 봉투를 든 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밖이 제법 쌀쌀하다며 뛰어오다 은우의 손에 들린 제 휴대폰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뭐 해? 상황 파악 못한 은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고, 곧이어 윤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 설마 벌써 차은우 그 언니랑 잤어요?! 아, 나 돈 없는데!!!



제 이름이 나오자 멈칫한 은우가 굳은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윤미는 세상 신나게 떠들었다. 언니 쌉여포다. 진짜 한 달밖에 안 걸렸네? 비결이 뭐에요? 말릴 새도 없이 쏟아지는 수다에 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후다 축하합니다~ 후다 축하합니다~ 야무지게 아다탈출축하송까지 불러 제낄 때는 머리속까지 하얗게 질렸다. 점점 표정을 잃어가는 은우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챈 달이 급하게 종료버튼을 눌렀다. 시끄럽게 공간을 채우던 목소리가 사라지자 거실은 한동안 정적이었다. ...저기 은우야, 놀란 속을 애써 가다듬으며 할 말을 찾는 중에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재밌게 노네, 너."

"으, 은우야. 내가 설명,"



설명이 필요할까? 성큼 다가온 은우가 달의 어깨를 꾹 쥐었다. 어디 가서 힘으로 꿀려본 적이 없는 저도 깜짝 놀랄 만큼의 악력이었다. 아, 아퍼... 들고 있던 것도 놓치고 뒷걸음질 치던 걸 가로막은 건 벽이었다. 고압적인 시선이 저를 향하자 절로 위축되어 시선을 피했다. 씨발 윤미새끼 넌 기도실이고 뭐고 내일 뒤졌다. 하지만 내일이야 어쨌든 은우를 두고 저가 내기를 한 건 사실이니 해명을 해야했다. 은우는 내가 얘기하면 이해해 줄 거야. 그동안 보여준 다정함에 자만했다. 미안, 미안한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변명을 쏟아내는 달의 앞에서 무표정을 유지하던 은우가 한숨을 쉬었다. 문달이, 오랜만에 듣는 제 이름 세 글자에 몸이 굳었다.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그냥 한 번 해줬을 텐데."

"은우야, 그런 게 아니라!!!"

"섹스 좋아하거든, 나."



특히 아다 따는 건 더. 노골적인 말에 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해. 제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는데도 뾰족한 말에 속은 상했다. 피식 웃은 은우가 몸을 밀착해왔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평소와는 다른 서늘함에 은우를 밀어내려는 순간 입술이 세게 물렸다. 악! 따끔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지른 비명은 이내 입 안으로 먹혔다. 틈만 나면 애틋하게 닿아오던 입술이 아니었다. 거세게 비집고 들어오는 혀는 배려가 없어 숨이 막혔다. 잠깐, 잠깐만! 저를 밀어내는 손을 제압한 은우가 목으로 입술을 내렸다. 얇은 살갗을 핥으며 내려오는 혀의 느낌이 생경해 몸을 떨었다.



"내 말 좀, 들으라니까... 흣,"



뾰족한 송곳니가 긴장에 떨리는 목을 파고들었다. 잘근잘근 씹어대다 이내 힘주어 빨아들이자 야릇한 기분에 눈물이 고였다.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눈 앞이 아찔했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목덜미에 빨갛게 멍울이 지고, 까슬한 혀가 상처 주변을 유린했다. 그만, 하라고... 신음을 참던 달의 턱을 한 손으로 잡은 은우가 속삭였다.



"근데 너랑은 재미 없다."

"차은우..."

"가서 보여주고 나랑 떡쳤다고 해. 지는 거 싫어하잖아."



됐지? 이제 나가. 차가운 목소리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은우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불러보지만 돌아보지도 않는다. 미련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달이 입술을 짓씹었다. 씨발. 뜨겁게 끓던 속이 눈물로 터져나왔다. 참으려 주먹을 꽉 쥐어보지만 줄줄 새는 눈물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내 말 좀 들어주지. 그거 진짜 아닌데. 쫓아가 매달려볼까 싶다가도 옷자락을 잡는 제 손을 뿌리치던 게 생생해 멈칫했다. 저렇게 차가운 은우에는 면역이 없었다. 저를 향한 시선이 영영 저렇게 식어버릴까봐 두려웠다.



꽉 닫힌 방문을 노려보던 달이 현관을 나섰다. 짜증나, 내 마음도 모르면서. 차은우 개못됐어. 내가 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부쩍 날카로워진 바람이 볼을 에는 것도 무시한 채 엉엉 울며 달렸다.




08.

"너 눈깔이 왜 이래?"



존나 울어서 그런다 왜요. 주말 내내 처울었더니 퉁퉁 부어서 못 봐줄 꼴이 됐다. 오늘 아침에 교실에서 은우 마주쳤는데 눈도 안 쳐다보고 무시하길래 존나 딥한 상처받아가지고 부실에서 죽때리고 있는 중이다. 구석에 혼자 처박혀서 억지로 울음 참고 있으려니까 아침운동 끝낸 부원들이 하나둘씩 들어와서 내 눈치 슬금슬금 본다. 하품하면서 들어오던 명주언니가 수북이 쌓인 휴지 보고 깜짝 놀라 달려오더니 뒤집어 쓴 체육복 휙 들추고는 기함했다. 야, 누군가 했네!!! 친한 얼굴 보니까 또 서러워져서 눈물이 찔끔 났다. 언니이... 부어터진 얼굴 잡더니 양 볼에 눈물을 막 닦아준다.



"무슨 일 있어?"

"흐엉, 차은우, 은우가..."

"싸웠어?"



자초지종 설명해야 하는데 우어응엉하는 뭔 이상한 짐승소리밖에 안 나온다. 엑, 디러. 언니도 콧물은 못참겠는지 휴지 뽑아다 코를 틀어막았다. 흥, 하는 소리에 맞춰서 코를 팽 풀었더니 그제야 좀 사람같이 말 할 수 있었다. 은우네 집에서 떡볶이 먹는데요. 엉. 윤미새끼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말이 나오자마자 부실 문이 벌컥 열리고 기다란 놈 하나가 입장했다. 아 개추워 크레용!!! 호들갑을 떨며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찼더니 갓 태어난 기린마냥 풀썩 엎어진다. 아 뭐에요!!! 이번엔 등짝을 신나게 두드렸다. 너, 때문에, 내가!!!!



"아, 아프, 아픈데 언니 얼굴 왜 그래요?!"

"너 때문이잖아 이 새끼얔!!!!"



한참동안 동네 북처럼 윤미를 두드리다가 가운데 끼어든 명주언니 덕에 간신히 떨어졌다. 문달이, 애 그만 때리고 말을 좀 해 봐. 맞은 곳 싹싹 문지르면서 구석에 짱박히는 윤미를 노려보다가 이실직고했다.



"쟤가 다 말했어. 차은우한테 우리 내기한 거 다 불었다니까요."

"내가 미쳤어요 그딴 짓을 하게?!"

"어제 나한테 전화한 거 은우가 받았단 말이야. 걔가 다 들었단 말이야."



그제야 상황파악 한 윤미가 마취총 맞은 것마냥 굳었다. 은우가 알았는데, 용서를 안 해줘요. 내 얘기 안 들어줘요. 나 어떡해? 나 이제 차은우 없으면 안되는데... 다시 엎어져서 엉엉 울자 주춤주춤 옆에 와서 쭈그리고 앉는다. 어, 언니. 내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지도 미안해서 안절부절 하다가 끝내 훌쩍댄다. 나 더 때릴래요? 대가리 퍽퍽 때리면서 셀프 자학하는거 명주언니가 달래서 옆에 앉혀놨다. 그래놓고 자기도 초조한지 한참을 손톱 씹다가 결론을 내렸다.



"잘못했으면 가서 빌어야지."

"어떻게 빌어요, 나 봐주지도 않는데."

"바보야? 보게 만들어."

"무서워. 어제처럼 내 손 뿌리치면 어떡해요? 그러다 나 영영 싫어지면?"

"없으면 안된다면서 그게 문제야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할 것 아냐 이 찐따새끼야. 평소같았음 발끈했을 건데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딱 찐따 그거 맞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치, 맞지. 내 얘기 안 들어준다고 무서워서 혼자 찔찔 짜는게 찐따새끼 아니면 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 조절이 안 돼서 한참을 꺽꺽댔다. 간신히 숨 조절 됐을 때 소심하게 물었다. 매달리면, 흐엉, 진짜 봐 줄까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래도 빨리 사과하러 꺼져! 팔을 붙잡은 언니가 부실 밖으로 나를 떠밀었다. 달이언니 나도, 나도 같이 가...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윤미를 붙잡은 것도 명주언니였다. 니가 가긴 어딜 가 이 새끼야! 그 말에 다시 쭈굴대며 입만 쭉 내민다.



"문달이 너는 가서 대가리를 박든 바짓가랑이를 잡든 할 말 하고 와!"



그리고는 부실 문을 쾅 닫아버리는 거다. 쫓겨난 채로 복도에 멍청하게 서 있는데 텅 비었던 머리속에 차오르는 게 다 차은우다. 나를 바라보는 맑고 깊은 눈. 듣고 있으면 세상이 다 내 편일 것만 같은 다정한 목소리. 길을 걷다 조심스레 잡아오는 손. 잠시 잊었던 것들이 떠오르니까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나같이 이제 없으면 진짜 못 살 것 같은 것들이었다. 아직도 내쳐지는 건 무섭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은우가 몇 번을 밀쳐내도, 전해야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한다고. 너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

쾅, 소리가 나게 뒷문을 열어제꼈다. 도떼기 시장이었던 교실이 순간 조용해지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하나만 빼고. 문달이 너 얼굴 왜 그러냐? 걱정에 가득찬 목소리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은 차은우에게 직행했다. 은우야, 불러도 묵묵부답이다. 나 오기 전까지 내내 창밖만 보고 있었으면서 귀찮다는 듯 눈 감아버리는 모습이 속상해서 또 울컥,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나랑 얘기 좀 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게 무서워서 목소리가 떨렸다. 차은우, 제발...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니까 그제야 봐준다. ...나가서 얘기해. 오랜만에 마주한 눈이 버석해서 마음이 저렸다.



버려진 화분 아래서 익숙하게 옥상 열쇠를 찾는 모습이 낯설었다. 난간에 기대 담배를 꺼내 무는 것도 처음 보는 거였다. 나도 맨날 하는 짓인데 좀 쫄려서 가만히 있었더니 할 말 있으면 해, 하고 고개를 까딱 한다. 숨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손을 잡는데 빼내려고 하길래 힘을 꽉 줬다. 이거라도 안 잡으면 진짜 안들어주고 도망갈 것 같아서 두 손으로 매달리듯이 잡았다. 은우야 오해야.



"처음에는, 그래 처음에는 내기로 시작한 거 맞아. 일부러 접근한 것도 맞아. 맞는데..."

"..."

"너 좋아하는 거 깨닫자마자 바로 못하겠다고 했어. 네가 들은 날은 이미 그만둔지 한참 지났을 때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짓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주저앉고 싶은 거 꾹꾹 참아가면서, 입술 깨물어 가면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말없이 연기만 뱉던 은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일부러 속인 거 아니야.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말 안했어. 네가 나한테 실망할까봐 너무 무서웠어..."

"..."

"그래도 옆에 있고 싶었어. 더 많이 좋아하려고, 미안한 만큼 더 많이 사랑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알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말에 울음이 섞여 숨이 모자랐다. 아까처럼 꺽꺽대고 울면 진짜 진상같아 보일까봐 억지로 심호흡을 했다. 얼굴 보니까 진짜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혀 깨물어 가며 참았다. 턱턱 메이는 목을 억지로 달래가며 사과했다.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근데 내 마음은 거짓말 아니야.



"좋아해, 은우야."

"..."

"네 이름 세 글자가 너무너무 특별해. 나한테만 웃어주는 것도 진짜 좋아. 무섭게 화내도 너랑 있고 싶어..."



그것만 알아줘 제발... 결국 고개 푹 숙인채로 눈물 뚝뚝 떨어트렸다. 옅은 회색의 콘크리트 바닥이 까맣게 젖어들었다. 조금 떨어져있던 하얀 운동화가 성큼 다가왔다. 문달이. 은우가 내 이름 부르는데 그 날처럼 냉랭한 눈일까봐 무서운 바람에 그냥 잡고 있던 손에 힘만 줬다. 옅게 담배냄새가 밴 손이 축축하게 젖은 내 볼을 감쌌다. 조심스러운 손길에 고개를 들었는데,



"그만 울어."



다정한 목소리에 잔뜩 긴장했던 몸이 녹았다. 진짜 좋아해 은우야, 거짓말 아니야... 엉망 진창 발음으로 웅얼거리는 나를 안아주는 품이 따뜻하다. 뚝, 감기 걸리겠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그치냐고... 얼마나 됐다고 이게 그렇게 그리웠다. 나 용서해 주는거야? ...응. 그 말에 마지막 남은 걱정까지 싹 녹아내렸다. 마른 등을 꼭 끌어안으며 한참을 서럽게 울다가, 은우의 어깨를 다 적시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헉.



"나, 나 못생겼지. 주말 내내 너무 많이 울어서,"



급하게 얼굴 가리면서 떨어졌더니 도로 볼 잡아다가 제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잔뜩 부어서 뜨끈한 눈을 엄지로 살살 쓸더니 이마를 맞대온다.



"내가 그랬잖아."

"..."

"너 예뻐서 좋아한다고."



그리고는 가까워지는 입술에 그냥 눈을 감았다.

반쯤 태운 담배 대신 사랑 냄새가 났다.




09.

헉. 은우랑 내가 나타나자마자 윤미가 명주언니 뒤로 숨었다. 쟤 또 저러네? 맨날 머리 하나는 작은 사람 뒤로 숨는다. 아깐 같이 가자더니 이제 와서는 뭘 또 숨냐. 명주언니가 툭 건드니까 쭈삣대면서 나와서 은우한테 대가리부터 박는다. 죄송합니다... 평소에 그렇게 시끄러운 애가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앵대는게 웃겨서 킥킥 웃었다. 잠시 윤미를 응시하던 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너.



"산하 동생이지?"

"네에..."



윤산하는 윤미네 쌍둥이 오빤데 하도 사고치고 다녀서 작년에 미국으로 쫓겨났다고 했다. 엥 네가 윤산하를 어떻게 알아? 물어봐도 그냥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윤미새끼는 답지 않게 눈치 존나 보고 있다. 하긴 잘못한 게 있으니까.



"많이 닮았네."

"넵..."



쌍둥이 주제에 둘이 닮았다고 하면 기겁하면서 은우가 그러니까 찍소리도 못한다. 제법 웃겨. 달아, 가자. 손 내밀길래 그냥 그거 잡았다. 오늘 우리집 갈까? 진짜? 그 때 못 먹은 떡볶이 시켜줄게. 아냐 오늘은 다른거 먹을래. 그래, 그럼. 되찾은 대화가 너무 소중해서 활짝 웃었다. 부은 얼굴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것도 좋았다. 으누야, 나 너 진짜 좋아한당. 알겠어. 아니 구라 아니고 진짜 좋아해. 안다니까, 바보야. 너는? 너는 아직도 나 밉지? 음... 조금? 에휴...그럴 줄 알았당. 한숨을 푹 쉬었더니 낮게 웃는다. 근데 미운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해."



히히.




다만 아다에서 구하소서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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