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시간

2020 가을호
작성자
오비
작성일
2020-10-24 23:00
조회
20



“도련님 창문 열어드릴까요?

“네, 조금만 열어주세요.”

 

반쯤 열린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 은우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는 듯 멍하니 바깥 풍경을 응시하며 깨져 빛을 잃은 목걸이를 한 손에 꼭 쥐고 있었다.

 

 

3개월의 시간

W.오비

 

조용한 시골에서 더 들어가면 마을과 조금 동 떨진 곳의 존재하는 한 집. 그 집에 차가 도착하자 미리 나와있던 사람들이 은우를 반겼고 은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차에서 내렸다.

 

“어서오십시오. 도련님.”

“오랜만이에요. 민집사.”

“예,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피곤하시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민집사는 2층의 방문을 열어주었다.

 

“예전 방에서 가구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민집사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방문을 닫고 나가서야 은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거두곤 방을 쓱 둘러보았다. 예전과 같은 방과 창문, 바뀐 것이라곤 가구들과 창문에서 보이는 커다란 나무 정도.  

옷장엔 미리 보낸 보낸 옷들이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대충 한 벌을 꺼내어 갈아입곤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언제 잠이 든 것인지 눈을 떴을 땐 방이 어두운 것이 해가 진 것 같았다. 은우가 시계를 보기 위하여 안경을 끼고 고개를 들었을 때 창문에 앉아있는 자신 또래의 도포를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잠결에 헛것을 본 것인가 생각했지만 몇 번을 보아도 그 자리엔 남자가 존재하였다. 수상한 남자는 창문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은우에게 다가와 얼굴을 잡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며 얼굴을 보았다.

 

“바람들이 이 집에 잘생긴 청년이 왔다고 하도 떠들어대어 어찌 생겼는지 구경 차  들러 보았는데 들은 대로 굉장히 잘생겼구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남자를 불편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팔을 치워버리자 남자는 약간 놀라 눈이 동그랗게 커진 상태로 차은우를 바라보았다.

 

“인간, 내가 보이는가?”

“..”

“하하, 내가 보인다니.” 

“누구십니까? 어떻게 들어온 것이고요.”

“나는 신이라네. 이 숲의 수호신이지.”

 

은우는 자신을 신이라고 밝히는 남자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정상 같은데. 

 

“인간! 왜 나를 측은한 눈으로 보는 것이냐! 신의 말을 못 믿는다니. 흐음.”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을 하더니 생각하더니 창문 쪽의 작은 화분을 보고는 싱긋 웃고는 화분을 들고 침대 위의 은우에게 다가가갔다.

 

“잘 보거라.”

 

남자는 씩 웃더니 아직 싹도 트지 않은 화분 위쪽을 손으로 살짝 덮고 중얼 거리자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연둣빛의 반짝이는 것들이 남자 몸 주위를 감싸며 돌다 남자가 덮고 있는 화분 속으로 들어갔다. 다 들어가자 남자는 손을 떼어 화분 안을 보여주었고 그 안에는 좀 전까지만 해도 새싹조차 없던 빈 화분 안에 꽃이 피워져 있었다.

 

“어때 이제 믿겠느냐?”

“아.. 예.”

 

은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대답하자 남자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어찌 인간이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지?”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팔을 뻗어 은우의 심장에 손을 얹고 눈을 살짝 감았다. 몇 초간 은우의 심장 박동을 느끼더니 좀 전의 아이 같은 미소가 아닌 조금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 역시. 가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 중 나를 보는 자가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보았건만.”

“..”

“아! 밤이!, 인간 미안하네 오늘 손님이 온다는 것을 그만 까먹고 있었네. 그럼 이만 가보지.”

 

남자는 급하게 허둥지둥 움직이더니 창문으로 나가려 하였다.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잠깐 멈칫했다.

 

“인간, 이름이 무엇인가?”

“..차은우”

“은우.. 은우, 좋은 이름이네.. 나는 문빈이라네! 그럼 다음에 또 오겠네!”

 

빈은 이름을 물어보곤 다시 급하게 창문으로 나갔다. 은우는 잠시 빈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여기가 2층인 것을 깨닫고 떨어지진 않았는지 창문으로 다가가 보았지만 땅엔 떨어진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창문에 기대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은우는 다시 생각해 보아도 현실적이지 못한 일들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한 여름밤의 조금은 재미있던 꿈이 아니었을까. 은우는 생각했다.

 

 

9월

 

“도련님. 아침은 방에서 드시겠습니까? 아님 식탁에서 드시겠습니까?”
“식.. 아니 방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름밤의 꿈이라 생각했던 일은 그날 이후 은우의 방에 매일 찾아온 빈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은우는 자신이 집사가 후식으로 들고 온 아이스크림을 먹기만을 기다리는 빈의 모습을 보고 살짝 웃음이 나왔다. 9월이 오기 전 아직 조금은 더위가 가시지 않았을 때 집사가 간식으로 올려준 아이스크림을 처음 본 문빈은 아이스크림을 보곤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어찌 눈을 먹는 것이느냐! 인간들은 먹을게 그리 없는 것이냐? 눈은 동물들도 먹질 않는 것을.. 어찌 인간이.. 먹지 말거라!”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니 그 모습이 퍽 귀엽고 웃겨 은우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푸흐흐 웃었다.

 

“눈이 아니고 아이스크림이에요. 우유를 얼린 것이랄까.”

 

믿지 않는다는 경계하는 얼굴을 하던 문빈의 입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을 떠먹여주니 눈이 커지며 초롱초롱하게 빛이 나더니 꼬리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붕붕 돌릴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은우야, 은우야!”

“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것이냐?, 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는 빈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마치 처음 먹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귀여웠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같이 환하게 웃는 빈을 보기 위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매일 집사에게 부탁하였고 가끔은 빈이가 떠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다. 빈이 아이스크림을 떠 주는 아이스크림은 혼자 떠먹던 아이스크림과 다르게 더 부드럽고 달콤했다. 

 

 

은우가 이 집에 와서 하는 일은 많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던가 아니면 가끔 메일로 오는 일을 처리하거나 몸이 좋지 않은 날은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하였다. 외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은우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다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외롭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빈이 먼저 은우를 찾아왔기에.

 

“은우야!”

“왔어요?”

“그게 오늘은..”

 

가식적인 웃음들이 아닌 순수한 아이처럼 환하게 예쁘게 나에게 웃어주며 저 작은 입으로 재잘재잘 말하며 저 작고 동그란 손으로 손짓을 하며 말에 집중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느껴선 안될 감정 같았다. 하지만 감정이라는게 컨트롤이 되는 것인가. 은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10월

 

밤이 늦도록 오지 않는 빈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매일 문빈이 들어오는 창문에 기대어 하염없이 밖만 바라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검은 새가 날아 들어오더니 은우의 품에 안겼다. 안기자 새의 모습은 없어지고 평소와 다른 검은색 도포를 옷을 입고 있는 빈의 모습이 보였다. 

 

“문..”

 

은우는 빈을 부르려고 하였지만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빈에, 빈이 먼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은우야..”

 

빈은 은우의 품속에 더욱 깊게 안기며 은우의 허리를 더욱 끌어안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헤어지고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봐야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빈아”

“내 시간은 늙지도 죽지도 않고 그대로인데 내 곁의 생명들의 시간은 흘러가는게 너무 슬퍼.”

 

은우는 빈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며 말없이 빈을 위로해 주었다. 해줄 수 있는게 이런 것 밖에 없어서, 은우는 빈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토닥여 주었다.

 

 

문빈은 다음날 찾아와 어제는 미안하다며 좋은 곳을 보여준다고 손을 잡고는 날더니 창문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빈아 저는 날지 못해요.”

“인간들은 날지 못해?, 불편하게 사는구나. 흐음..”

 

빈은 잠시 생각하며 중얼중얼 거리더니 몇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아! 하며 자신 있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푸른빛들이 은우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반짝 빛을 내곤 사라졌다.

 

“자 이제 준비됐어. 걸을 수는 있지?”

 

빈이 은우의 손을 이끌고 창문으로 나갔다. 떨어질 것이란 생각에 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픈 느낌이 나야 하는데 느낌이 나지 않아 눈을 살짝 떠보니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은우의 손을 잡고 빈은 한걸음 한걸음 움직였다. 그제서야 은우도 정신을 차리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맞아, 잘하네.”

 

빈은 은우를 숲 아주 깊은 곳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은 아주 넓은 들판과 큰 나무 한 그루만이 존재하였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자 땅에 조심스럽게 발이 닿았고 마치 은우를 반기는 듯한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때 예쁘지?”

 

빈은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우는 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멀리서 봤을 때도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무는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다웠고 멀리서 본 것보다 더 크고 거대하였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다. 꼭 보여주고 싶었어. 나무도 너를 보고 싶어 했었고.”

“문빈님, 문빈님! 저희들과 놀아요. 어제 놀아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잠깐, 오늘은 손님이..”

 

새끼 동물들이 다가와 빈에게 매달렸고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빈에게 은우는 괜찮다며 놀고 오라고 말을 해주었다. 빈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빨리 오겠다며 잠시만 쉬고 있으라고 말을 한 뒤 멀리 날아갔다.

 

은우는 큰 나무로 다가가 손을 뻗어 나무 기둥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굉장히 아름답고 예쁘게 생긴 사람이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갑자기 나타나 은우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느낌은 포근하고 다정하고 예전에도 느껴본 느낌이었다. 

 

“문빈님께 들은 것처럼 굉장히 잘생겨졌구나.”

“.. 누구세요?”

“이 나무의 정령이다.”

“아..”

“반응이 참 재미있구나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다니.”

 

정령은 재미있다는 웃음을 지었다.

 

“문빈님이 아끼는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단다.”

“..”

“인간?”

“..”

“인간..?”

 

나무의 정령은 은우의 행동에 갸우뚱하다 은우의 팔목을 보고는 아이들과 놀고 있는 빈을 바라보았다.

 

“나는 말이지, 너희 인간들과 달리 몇 백년을 살면서 할 수 있는건 볼 수 있는건 다 해봐서 그런지 죽음 다가오는 것이 무섭지 않아 오히려 조금 덤덤해.”

“..”

“다만 이 넓은 들판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전까지 혼자 계실 문빈님이 걱정이 되는구나. 나보다 한참이나 많은 나이를 가지신 분이지만 여리고 정도 많고 그런 분이라 걱정이 되는구나.”

“..”

 

은우는 정령의 말에 공감이 된다는 뜻의 고개를 두 번 흔들었다. 저 멀리서 아이들과 놀아주다 넘어진 빈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너는 죽음이 다가오면 두렵고 후회스러울 것 같니?”

“..”

 

은우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 하기 전에 빈이 다가오는게 더 빨랐다. 빈은 시간이 늦었다며 데려다주겠다고 말하였다. 빈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다음에 또 놀러 오거라.”

 

정령과 새끼 동물들이 배웅을 해주었고 은우는 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빈은 아까 아이들에게 다시 가봐야 한다며 가버렸다. 

 

 

밤늦은 시간 잠이 오지 않았던 은우는 잠옷에 가디건을 살짝 걸치고 닫아 놓았던 창문을 열었다. 시원하면서도 이젠 차가워진 공기가 들어왔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낮의 정령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두렵고.. 후회스럽다..”

 

 

11월

 

“엄마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응 은우야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5살 은우는 창문에 예쁜 꽃들이 담긴 꽃병을 올려두었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있던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의 품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어렸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버렸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버렸던 어니던 상관없었다 어머니만 곁에 있었음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내 앞에 할머니라는 사람이 와선 내게 본가로 갈 것을 요구하였다. 요구라고 해야 할까.. 협박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난 너희를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해. 남이 내 집에 있는 것은 불쾌하지. 나를 따라간다면 고용인으로서 집을 잠시 내주었다고 생각하지.”

 

저 말을 거역하면 당장이라도 나와 어머니를 쫓아낸다는 소리라는 것을 알었다. 지금 어머니 몸 상태로 이 집에서 버려진다면 얼마 못가 떠나실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무 힘도 없었던 내겐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갈게요.”

 

자고 있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화병의 물을 마지막으로 갈곤 방에서 나와 차를 타고 서울의 본가로 향하였다. 서울로 향하는 내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것을 꾹 참았다.

 

원래 집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큰 집에서 더 커다란 방에 갇혀 지냈다. 자신을 가정교사라고 소개한 사람은 시간마다 들어와선 교육을 하였다. 못하면 맞았고 틀려도 맞았다. 손바닥 종아리 상관없이 피가 나고 피가 굳는 것을 반복하였다. 어느 정도 교육을 다 받고 이 집안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라는게 조금 완성이 되어가고 있을 때 그 노인한테 새 이름을 받았다. 

 

“구질구질했던 이름은 버려라.”

“..”

“너의 이름은 차은우다.”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 이름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결국은 이 집안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치욕스러웠다.

 

그 큰집에서 나와 다시 더 큰집으로 이동하였다. 그 집에는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놈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손주가 둘이나 있으면서 왜 나를 데리고 온 것인지 며칠 지내고 나서야 알았다. 이놈들은 생각보다 아주 더 멍청한 놈들이었다. 그 눈 높은 할망구가 이런 놈들이 성에 찰 리가 없지.

 

이 집에 와서도 처음엔 갇혀서 배웠다. 틀리면 맞았고 이번엔 마음에 안 들어도 맞으며 공석에서 웃는 법을 배웠다. 기분이 더러워도 웃는 법을 배웠다. 웃으며 좋은 말을 내뱉는 법도 배웠다. 착한 도련님인 척하는 법을 웃는 법을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나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생겼다. 나는 누구지 이동민인가 아님 차은우인가. 몇 번이고 속으로 새겼다. 나는 이동민이라고. 

 

 

“은우야 제발, 한 번만 살려주라 너라면 이 주식들 살릴 수 있잖아. 이 주식들 더 떨어지면 나 죽어..”

“내가 왜?”

 

삶을 그저 이익과 불이익 두 가지로 나누었다. 불이익이라면 가차 없이 잘라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곁에 쌓이는 돈, 지위, 물질적인 것들은 많아졌다. 하지만 내 손에 남은 건 없었다. 자꾸 무언가가 손 틈 사이로 흘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업을 성공시키고 인정을 받고 아버지 사업을 이을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돌아와 공부를 하고 잠을 자고 이런 생활에 이익이 생긴다면 이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회사의 구멍이 생기고 적자가 생기면서 주식이 떨어지고 위태로워졌다. 망해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데이터들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경우의 수를 계산해봐도 지금 나 혼자선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 회사에 손을 빌려서 구멍을 바로잡았다. 바로 잡았지만 내 옆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실패자가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 삶의 이유가 없어졌다. 엄청난 허무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좌절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감정들은 다 느꼈다.

 

지금껏 내가 나누어 놓았던 이익과 불이익 중 나는 불이익의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기준에 따라 필요 없는 쓰레기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바다는 예뻤다. 찰랑이는 파도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기분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걸까. 편안하다. 안정 된다는 기분을 언제 마지막으로 느껴 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은우는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차가운 물이 발을 적시고 다리를 적시고 온몸을 적실 때까지 은우는 걸었다.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을 만큼 들어왔을 때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행복했다. 

인간은 쉽게 죽지 않았다. 피가 흐르도록 팔을 그어봐도 목에 멍 자국이 나도록 목을 졸라 보아도 수면제를 한 줌씩 먹어보아도 술을 미치도록 마셔보아도 죽기 전까지 맞아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았다. 그때는 느껴보지 못하였던 확신이 들었다. 아, 이제 죽겠구나. 눈을 감았다. 

 

주마등이 필름처럼 흘러갔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동민이 보였다. 지금까지 손 안에서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은 내가 잃어버렸던 것은 이동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동민에게 손을 뻗자 아까까지는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 불안함과 무서움 그리고 후회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너무 오래 있었다.

정신을 잃은 은우의 목에 있던 푸른색 루비가 박혀있던 목걸이가 깨지면서 푸른빛의 빛들이 은우를 감싸 올렸고 은우를 안전한 물 밖으로 꺼냈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병원 천장과 코를 찔러오는 소독약 냄새. 간호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급하게 의사를 부르러 나갔고 팔을 들어 손을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느꼈다. 

 

“.. 3개월 남으셨습니다. 심장이 약하신데 무리를 너무 많이 하셨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과 불안함, 책임감이 몰려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집으로 돌아가 요양을 하라고 하시곤 손에 편지와 반지 케이스를 쥐여 주며 어머니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미안하구나. 부탁한다.”

 

처음 본 아버지의 복잡한 얼굴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자니 건들지 말라고 말했거늘!”

“와, 인간이다. 인간! 아 인간 처음 봐. ”

“나도!”

 

은우는 눈앞에 보이는 토끼와 다람쥐에 살짝 놀랐다. 그런 은우를 발견한 빈이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은우에게 다가왔다.

 

“일어났느냐?, 아잇! 알았어 놀아줄 테니 가자!”

 

동물들에게 이끌려 가며 당황해하는 빈이를 보고 푸흐 웃었다.

 

“오래된 꿈을 꾸었나 보구나.”

“네, 뭐.. 잊고 있었던 꿈을 꾸었습니다. 먼저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하여서.”

 

은우는 빈에게 먼저 간다고 말을 하고는 가버렸다. 

 

“문빈님, 저의 삶이 끝나거든 제 가지를 이용하여 저 아이에게 선물을 하나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은우가 마음에 들었구나.”

“문빈님보다는 옅은 감정이지만요.”

“뭐.. 뭐래..”

 

정령의 말에 빈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놀렸다.

 

“저 아이의 기억을 왜 지운 거예요?”

“.. 내가 지운 거 아니야. 내가 만났던 아이가 저 아이가 아닌 것뿐이야.”

“..?”

“내가 봄에 만났던 아이는 차은우가 아니라 이동민이었어.”

 

정령과 나무는 점점 사라져가는 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은우는 작은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편지와 반지를 들고 어머니가 계신 나무로 향하였다.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온 것은 은우도 처음이었다. 용기가 없기도 했고 면목이 없어 지금껏 한 번도 찾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은우는 나무 밑에 편지와 반지를 올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버지가 많이 사랑했나 봐. 이 반지 아버지 손의 반지랑 같은 디자인데. 난 엄마랑 사이 안 좋은 줄 알았어.근데 이젠 잘 모르겠네.”

“이젠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차은우도 이동민도 난데 어려워. 사람들 앞에선 차은우가 더 편해, 남들이 무시하지 못하니깐. 이동민은 감정도 조금 솔직하고  겁도 많아. 그래서 이동민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동민이고 싶게 만드는 신이 생겼어.”

“웃기지? 몇 번이고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차은우가 아닌 살고 싶다고 느끼는 이동민이라니.. 나도 알아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는 거.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걸”

“이제 와서 느껴 살 수 있었을 때 더 많은 걸 해볼 걸 하고 엄마한테도 더 많이 찾아오고”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집에서 날 기다리는 신이 있을 것 같거든.”

 

방에 올라가니 창문에 앉아 은우를 기다리는 문빈이 보였다. 은우는 터벅터벅 걸어가 문빈을 품에 안았다. 

 

“빈아. 당신이었죠. 물에 들어간 날 나를 구해준게. 그 땐 몰랐지만 당신과 지내는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신이었다는 것을.”

“나.. 괜한짓 한거 아니지?”

“그럼요. 고마워요. ”

 

은우는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 예쁜 미소에는 솔직한 얼굴도 편안한 얼굴도 있었다.

 

“나, 당신 덕분에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 당신과 함께라면 영생을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싫어.. 난 영생을 살고 싶지 않아. 너와 함께 죽어가고 싶어.”

 

은우는 빈이의 말에 슬퍼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빈아.. 내 이름 불러 줄래요?”

“..”

“내 이름 이동민이에요.”

“동민, 이동민. 좋은 이름이구나 은우라는 이름보다 더욱.”

“고마워요.”

 

빈은 은우의 허리를 더욱 끌어안았다. 결국 끝까지 참으려 했던 눈물이 터졌다. 은우는 천천히 빈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생명체에 조금은 기쁨을 느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일을 함께 하였을까. 우린 더 깊은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고 아쉬운 시간들이었다.

 

12월

 

동민의 방에 민집사가 들어와 동민의 책상 위에 책 한 권을 올려놓고는 방에서 나갔다. 집사가 올려둔 책을 빈이 집고는 책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었다. 빈은 마지막 문장에서 잠깐 손이 멈칫하였다. 책을 책상 위로 올려두곤 품에서 나무로 만든 책갈피 하나를 끼워두곤 동민의 방에서 나왔다.

 

‘당신과 함께 했던 봄 찾아오면 다시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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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넓은 들판에 커다랗고 큰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어린아이와 신.

 

“동민아 선물이야. 이 목걸이가 너를 지켜줄 것이란다.”

“예쁜 목걸이에요. 감사합니다. 저도 선물이 있어요. 눈을 감아주세요.”

 

빈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빈이님 문빈님. 이제 눈을 떠도 좋아요.”

“.. 꽃다발이구나?”

 

동민은 문빈에게 직접 만들었는지 조금은 엉성한 꽃다발을 문빈에게 건내었다.

 

“어미니께 좋아하는 사람에게 결혼할 사람에게 꽃다발을 주는 것 이라고 배웠습니다.”

“.. 그것을 어찌 내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문빈님을 신부로 맞이하러 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약간 수줍어 얼굴이 빨개진 동민에 빈도 조금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꽃다발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꽃다발로 얼굴을 가리체 푸흐흐 웃었다. 

 

 

문빈은 자신의 능력으로 시간을 멈추어 놓은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나한테 이런말을 했던 것은 기억이 날까. 아마 다시 본 그날 처음 보았다고 기억하겠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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