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Felix♡유리

2020 가을호
작성자
에이치
작성일
2020-10-24 23:01
조회
18



어차피 만날 사람도 아닌데 뭐. 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나게 타자를 두드렸다. 오늘은 어디가요? 저랑 사냥 같이 가용♡ 귀여운 말투로 구사하니 길드원들이 일제히 나랑 가자며 난리를 쳐댔다. 빈은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맘에 드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콕 집어 말했다. 펠릭스 오빠랑 갈래. 빈의 말에 신이 난 듯 앞장서는 ‘법사Felix’는 빈과 게임 속에서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사이였다. 사실 펠릭스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펠릭스가 다른 길드원들한테는 몰라도 빈에게 선물을 엄청 보내고, 빈을 엄청 좋아하고, 게임은 더럽게 못한다는 사실만 안다. 그런 빈이 요즘 하는 고민이 있다면.


[우리 언제쯤 만나?]


펠릭스가 요즘 저와 만나자고 자꾸 조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 결혼할 사이인데 얼굴은 봐야하지 않겠어? 이러는 게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았다. 빈은 계속 제가 성격이 소심해 길드 모임에도 나간 적이 없으며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펠릭스의 말을 거절했지만 빈도 지치고 있었다. 사실, 게임 더럽게 못하는 펠릭스 데리고 다니면서 이거저거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고 캐리해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유리야.]

[웅...]

[혹시 나 별로일까봐 그래? 나 그래도 못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런 게 문제였으면 차라리 나갔지……. ㅋ 몇 개를 보내고는 다음 말을 골랐다. 이걸 나간다고 해, 말아. 사실 펠릭스에게 꽤나 많이 뽑아 먹었고 이제 갈아탈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었다. 지금 저를 여자라고 굳게 믿고 있을 펠릭스에게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놈으로 갈아탈까. 계정은 새로 파면 되고, 게임도 못하는 펠릭스가 저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고 다니더라도 믿어줄만한 길드원들도 없을테니 저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 좋아. 대신 나 만나는 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법사Feilx♡유리

- 에이치





펠릭스는 도대체 어떻게 이 게임을 하면서 레벨이 200을 넘겼나 싶을 정도로 게임을 못했다. 스킬 컨트롤은 물론이거니와 직업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처음 길드에서 만났을 때도 빈은 이런 놈이 200까지 캐릭터를 키운 건 진짜 악바리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 아무튼 처음 길드원들이 모여 놀고 있을 때 길드장의 실친이라며 나타난 펠릭스는, 닉네임도 구린데다가 캐시템도 구렸다. 돈은 썼는데 완전히 헛 쓴 느낌. 길드장은 무슨 생각으로 지 실친을 저렇게 두고 있나,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펠릭스의 상태는 처참했다. 그리고 빈은 생각했다. 저런 놈이 굴려먹기는 짱이지. 도와준답시고 조금씩 뜯어내고 귀엽게 굴어주면, 백이면 백, 저한테 넘어올테니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귓말을 보내고는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안 오는 것을 보니 귓말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 친절하게 닉네임 클릭하고 말하라고까지 알려주니 답이 왔다.


[네. 안녕하세요.]


완전 FM적이다 싶을 정도의 말투. 빈은 웃었다. 이 게임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호구 하나 제대로 잡았구나. 저절로 입에 미소가 띄었다.


[스킬은 다 뽑았어욤?]

[스킬을 뽑아야해요?]

[3차 새로 나왔잖아요♡]

[3차는 어떻게 써요?]

[우웅...오빠 암것도 모르눈구낭! 그럼 유리가 알려줄까용??]


그게 시작이었다, 펠릭스가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유리를 쫓아다니게 된 것이.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있던 빈은 괜히 긴장이 돼서 손에 땀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았다. 놀라야할 것은 펠릭스인데 제가 왜 이리 떨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후후,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뒤를 돌았더니 꽃다발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곳으로 향하는데 빈은 설마, 했다. 그런데 그때 딱 휴대폰이 울리는 것이다. 


[유리가 꽃 좋아한다고 그래서 꽃 사왔어ㅎㅎ]


[어디야?]


[아직 도착 안했어?]


연속으로 오는 물음에 고개를 떨궜다. 정말, 저 사람이라고? 정말로? 전세가 역전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렇게 게임을 더럽게 못하고…! 아니, 이게 아니지. 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쳤다.


[빨간색 후드티 입고 있어요.]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펠릭스가 눈앞에 있었다.


“유리?”


왜 목소리도 잘생겼냐. 말도 안 되는 건데 이건. 펠릭스가 놀라 길드 탈퇴를 하긴 커녕 제가 게임을 탈퇴하게 생겼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따라다니고, 구애하고 이러는 거 이렇게 생긴 사람은 전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호구가, 이렇게 생긴 건 정말 반칙이잖아. 멍하니 펠릭스를 보고 있으려니 펠릭스가 빈의 두 손에 자기가 들고 온 꽃다발을 꼭, 쥐어주었다.


“생각한대로 진짜 귀엽게 생겼구나, 유리는.”

“미쳤나봐…….”


생각만 한다는 것이 저절로 입 밖에 튀어나왔다. 생긴 것도, 하는 말도 미친 사람 같았다. 사실 펠릭스가 저를 한 대 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유리’라는 닉네임으로 다니면서 오빠거리고 이거저거 선물 다 받아냈던 것은 명백한 넷카마 짓이 맞았으니까.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저런 말이라니. 욕을 돌려서 말하는 걸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빈의 볼을 두툼한 손가락이 톡, 두드렸다.


“왜 그렇게 서있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지.”


펠릭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입만 몇 번 벙긋거리다 얼떨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는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빈은 눈을 껌뻑거리다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정신 차리자. 아무렇지 않게 저를 대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이사람은 게임으로 만난 사람이고, 이제 다시는 게임에서든 어디서든 오늘 이후에 보지도 않을, 건데.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라면서. 점심부터 너무 헤비한거 같아도 오빠가 기왕 유리 만나는 거 좋아하는 거부터 사주고 싶었어.”

“오, 오빠요?”

“응, 유리가 항상 오빠 그렇게 불렀잖아.”

“진짜 미쳤어요?”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람들을 살폈다. 알바생이 반찬들을 내려놓으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아 바로 소리를 낮추고는 펠릭스에게 손짓했다. 하필 가게 한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하는 것만 같아 미치겠는데, 펠릭스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빈을 보면서 계속 웃고만 있었다. 


“저, 남자라고요.”

“응,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오빠니 뭐니 유리니 그런 말 안 해주면 안돼요?”

“근데 오빠는 유리 진짜 이름도 모르고…….”

“아아! 알겠어요, 알았다고! 문빈. 제 이름 문빈이니까 유리라고 부르지 좀 마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한 대 맞고 가려고 했건만 어쩌다 제 본명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 한탄할 수도 없고. 게임 속에서 오빠거리면서 펠릭스 옆에서 애교를 떨었던 것도 저였고, 펠릭스가 주는 선물 다 받아먹은 거도 저였다. 속으로 울면서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곧바로 입속으로 고기가 들어왔다. 드럽게 맛있네.


“어때? 맛있어?”

“……넴.”

“빈이는 텍스트로 보는 말투랑 말하는 말투가 똑같네.”


풋, 하고 수줍게 입을 가리며 웃는데 빈은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세상이 다 밝아지는 것 같다. 왜, 왜 그렇게 웃는 건데. 도대체 왜 그렇게, 생긴 건데. 아니, 그리고 빈 자신도 어이가 없는 것이다. 제가 아무리 게임 속에서 남캐들한테 오빵오빵 거리며 다녔어도 게이는 아니었는데, 왜, 이 남자를 보고 설레는 것만 같은 기이한 기분을 겪고 있냐는 거다. 입을 오물거리던 빈이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진짜, 데이트라도 하는 거 같잖아.


“저기.”

“응?”

“펠릭스는 이름, 뭔데요.”

“내 이름? 나는 차은우야, 차, 은, 우. 수레 차, 은 은, 뛰어날 우.”

“아, 네, 그거까지는 안 물어봤는데.”


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티슈를 뽑더니 빈의 입가를 닦아준다. 빈은 자연스럽게 다가온 펠릭스, 아니 은우의 나름 진중한 미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속눈썹이 참 길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빈의 입을 열심히 닦아준 은우가 티슈를 내려놓고는 다시 웃었다. 다 먹었어? 다정하게 묻는 말에 빈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디 갈까?”

“어딜, 또, 무슨.”

“밥 먹었으니까 게임 하러 갈까?”


피씨방 가자는 건가.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빈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 이제 집에 가야돼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니 은우가 울상을 지으며 아쉬운 티를 냈다. 


“애기라서 집에 일찍 가야하는 거야?” 


이건 또 뭔 개소리래. 결국은 빈이 은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발, 그딴 소리 좀. 그랬더니 이번엔 은우가 빈의 손을 잡아 내리곤 깍지를 꼈다. 이제야 만났는데…….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빈을 보면서 한참이나 반짝이는 것 같던 눈에 뭔가 눈물이라도 고인 것처럼 보였다. 이정도로 애틋한 사이였나? 우리가? 이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은우가 빈의 손을 고이 붙들고는 손등에 쪽쪽대는 것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 가요, 가면 되잖아, 게임하러.”


계산을 마친 은우가 빈을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고깃집 옆에 자리하고 있는 게임방이었다. 게임하러 가자길래 뭔, 피씨방이라도 가자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인형뽑기 앞에 자리를 잡고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한무데기 꺼내 촤르륵 내려놓고는 인형뽑기를 시작했다. 이 사람은 뭘까, 생각하기도 잠시 답답하기 짝이 없는 컨트롤에 결국 빈의 손이 은우의 손 위로 얹혀졌다. 에이, 그게 아니지! 여기, 여기로 살짝 가면 되잖아요. 그래 거기, 어, 어! 뽑았다! 뽑았어요! 방방 뛰며 신나게 은우를 끌어안고 좋아하다 급하게 은우를 밀쳐냈다. 이상한 사람 옆에 있으려니까 이상함이 옮나봐.


“빈아.”

“왜요, 또.”

“오빠가 인형뽑기는 잘 못해도.”

“아, 또 오빠라 그러네.”

“인형뽑기를 사줄 수는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데요…….”

“우리 계속 만나보지 않을래?”


엄청 진지하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게임에서 만나서 심지어 빈은 은우를 속여가면서 사람 갖고 논거나 마찬가지인 짓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여주고 말도 안 되는 고백 멘트나 하고 자빠졌고. 그 와중에, 너무 잘생겼고. 빈의 부리 같은 입술이 삐쭉 나온 것을 보고 있던 은우가 검지로 그것을 꾸욱, 눌렀다. 


“빈이는 유리보다 더 예쁘고 귀여워.” 


진짜 이상한데, 완전, 이상하고 너무 이상할 정도로 부담스럽게 다가오는데. 이 상황이 싫다기보다 설레기만 하는 자신이 더 이상했다.


“어때? 나 별로야?”

“나 진짜 모습 한번밖에 보지도 않았으면서,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데요.”

“빈이가 그랬잖아. 과감해지라고.”


그랬지, 그건 게임에서지만. 보스한테 제대로 된 스킬 한번 못쓰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는 펠릭스에게 유리가 그랬었다. 그 스펙으로는 무조건 잡을 수 있으니까 과감하게 스킬 써보라고. 오빠는 지금 저 보스 아무렇지도 않게 잡을 수 있으니까 나 믿고 한번 해보라고. 그날 펠릭스는 처음으로 혼자서 보스라는 것을 잡아보았다. 유리가 했던 말 덕분에.


“아이…….”


초롱초롱한 눈이 빈을 보며 빛났다. 필살기를 맞은 기분. 빈은 입을 오물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서였다. 이번에는 인형을 빈의 두 손에 쥐어준 은우가 빈의 숙인 고개 밑으로 얼굴을 쑤욱 집어넣었다. 


“빈아, 응?”

“알겠어요! 대신 오빠라 그러는 거 금지.”

“왜? 난 그거 좋은데. 그렇게 불러주면 안돼?”


옆에 따라붙는 은우의 얼굴을 애써 보지 않으려하며 게임방을 나왔다. 두 손에는 인형을 꽉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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