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

2020 여름호
작가
주제
부산



'고기나 먹지 뭔, 이 맛도 없는......'



빈은 꼬불꼬불한 당면 위에 잘도 누워 있는 광어 살점을 젓가락으로 찔렀다 말았다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 이 바닥이 어느 정도 인맥으로 돌아간다는 건 알았지마는 이런 자리에는 늘 익숙지 않았다. 진우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벌써 저 끝 테이블까지 가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아하니 오늘만 해도 명함을 몇 개는 받을 예정이 분명했다.

사람 좋게 생긴 페이스 탓인지 느리더라도 조곤거리며 얘기를 꺼내는 실력 덕분인지 진우는 인맥 만들기엔 아주 특출난 도사였다. 주량이 소주 두 잔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사이다로 잔을 부딪치며 상대가 먼저 명함을 꺼내게 만드는 사람이라니. 빈은 혀를 내두르며 제 앞의 소맥을 들이켰다.

빈은 안타깝게도 이런 쪽으로는 흥미도 없고 재능도 없었다. 말 그대로 완전 젬병.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유달리 낯가림이 심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이름을 소개하면 열에 아홉은 나오고는 하는 '아역배우 출신' 문빈씨 아니세요, 하는 문장이 저를 따라다니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아직 아역배우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아무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그래서 간혹 진우를 따라 이런 자리에 오더라도 입은 꾹 다물고 안주나 입에 쑤셔 넣고 있거나, 소주를 진하게 탄 소맥이나 넘기다 먼저 자리를 떴는데, 그마저도 오늘 안주는 빈이 먹지 못하는 회였던 탓에 위장을 알코올로만 도배하는 와중이었다.



"너 진짜 괜찮겠어? 이런 자리 싫어하잖아."



진우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빈은 이제 와서 쇠젓가락 끝만 쭉쭉 빨아대며 후회했다. 이것도 원래는 소갈비 집에서 먹기로 해서 따라 나온 거였는데, 부산에 왔으니 회라도 먹으러 가야 되지 않겠냐고 갑작스레 이 바닥에서 한 뿌리 하신다는 분이 제멋대로 횟집을 잡아버린 탓에 급히 장소를 옮긴 거였다. 야, 가봤자 독립 영화판 연출이랑 촬영 감독들밖에 없어. 형 가면 나 호텔에서 혼자 뭐 하고 있는데.. 너도 배우 친구 좀 사귀어. 나 친구 사귈 줄 몰라. 소개해줘? 난 형만 있으면 돼.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 심통이냐..

진우의 한숨을 못 들은 척하고 대충 모자나 눌러쓰고 편한 옷으로 나온 건데 이러다가는 술배만 채우다 가버릴 것 같아, 대충 주변 눈치를 보다 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형, 어디 가요. 민혁이 일어나는 빈에게 물었다. 대충 취했다고 얼버무리고는 합석한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짧게 인사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다가 눈앞이라 그런 건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기에서 짠내가 난다. 코를 킁킁거리며 그걸 맡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택시를 찾았다. 그래도 명색이 영화제인데 영화나 징하게 보다가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GV 일정이 영화제 끝 무렵이었음에도 굳이 진우를 따라 일찍 내려온 이유는 하나 찾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였던지라 아직 남아 있는 영화가 있을 거였다. 곧장 센텀으로 향한다면 운 좋게 표가 남은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을 거고, 그걸 보고서는 호텔로 돌아가 캔 맥주 홀짝이고 잠이 들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밖으로 뛰쳐나올 걸 싶었다. 영화의 전당으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말끝에 들뜸이 묻었다. 광안리 앞바다 수면은 광안대교의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몸을 택시 좌석에 깊게 누이는 와중 그 찰나의 반짝거림을 눈에 담은 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틀 차의 저녁이었다.




독일영화



빈은 휴대폰을 컸다 꼈다 하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남아 있는 영화가 있기는 했는데, 사십 분 뒤에야 시작하는 영화라 붕 뜬 시간을 어쩔 줄 모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여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더욱 깊숙이 눌러쓰면서. 스물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는 곳에서 모자를 끝까지 푹 눌러쓰는 것은.



아역배우 출신. 중학교 때까지 꾸준히 이 배우, 저 배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연기로 예중 예고 코스 밟고, 그래도 대학은 가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주변의 판단에 A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누구는 그걸 꽂아준 거라 시기했지만 당장 실기 시험을 준비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랐던 빈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 무용 특기를 선택한 탓에 잘 되지도 않는 옆돌기를 죽어라 돌아대며 헛구역질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했다. 핸드 스프링은 몸이 굳은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쉬이 돌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교수들은 빈의 이름만 보고도 대충 빈의 아역배우 시절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정도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빈은 그 교수들을 하나도 몰랐던데다, 긴장해서 침이나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으니 확실히 억울한 게 맞았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앞에서 평가받는 연기를 펼치는 건 확실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손에 땀이 축축했지만, 지정 대본부터 오랜 기간 준비해온 자유연기까지 아쉬움은 남지 않을 정도로는 했다. 손턴 와일더 작, 우리 읍내의 조지. 빈은 아직도 조금만 기억해내면 조지를 연기할 수 있었다. 빈은 휴대폰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장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나도 그랬어. 항상 너를 생각했단 말야. 중요한 사람으로..."



그 다음은 짧게 숨을 내쉬고 담담하게 내뱉듯이. 관중석 어디에, 누구랑 있었는지도 알아. 이 다음에는 목덜미를 긁어대며 시선을 내리고. 또 요 사흘 동안은 바래다주려고 했는데, 여기서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꼭 뭐가 막히더라고..."



2분간의 전략이 필요한 입시 연기는 그리 익숙지 않아 필사적으로 몸에 집어넣었던 기억이 있었다. 빈은 찬찬히 지정희곡으로 나온 독백도 떠올렸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여름과 연기, 그중에서 존의 독백. 해부학 강의라고 불리는 부분. 빈은 그것도 어느 정도 웅얼거릴 수 있었다. 수시 합격 발표날에 얼마 있지 않아 '아역배우 B씨 A 대 부정 입학' 하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던 탓에 몇 번이고 제 연기가 잘못되었던 건가 싶어 그 독백을 들여다봤던 기억이니까. '거의 광적으로 열심히'라는 지시문으로 시작하는 독백이었다. 사랑이니 뭐니 영원하고 순수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존이, 따지듯이 내뱉는 독백. 제 해부학 강의를 들어보십시오. 이 위에 있는 부분은 두뇌입니다. 소위 진실이라고 하는 걸 항상 갈구하죠. 어느 정도의 잘난 체를 곁들인 대사였다. 빈은 그래도 새삼 잊었다고 생각한 대사가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깨닫고는 저가 진짜로 부산에 왔음을 깨달았다.



인터넷은 늘 그렇듯 무분별하고 섣부른 공격을 했고, 빈의 저 옛날 필모를 가져와 조롱하기도 했다. 부러 고등학교 시절은 촬영으로 바쁘게 보내지 않고 학창 시절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에 오디션을 지원하지 않았던 건데, 그마저 꼬투리로 잡혀선 3년간 놀더니 돈 벌려고 다시 기어 나온다는 소리도 들었다. 아역배우 시절에는 다들 예쁘다, 예쁘다만 들었던 탓에 이런 갑작스러운 비난에는 익숙지 않아 상처가 컸다. 처음엔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으로 시작해서, 갈수록 울적해졌다가, 괜찮은 거 같다 착각했을 무렵에는 저도 모르게 두려웠다. 길만 나가면 저를 알아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소속사에서는 반박 기사와 나름의 증거를 준비했지만 대개 대중은 정당함보다는 부당함에 관심이 많은 법이었기에 이미 빈에게는 비리로 들어간 새끼라는 낙인을 찍고 떠나간 무렵이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곳에서 손가락질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빈은 그 손가락질이 자신을 떠나간 줄 몰랐다. 그 정도는 아직 세상을 모를 나이였다.


옛 기억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으니 자꾸 썩은 내가 올라와 속이 메슥거렸다. 회복한 만큼 회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누르면 진물이 흘렀나 보다. 가슴께를 손으로 꾹꾹 누르는 와중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상영 10분 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몸이 무거웠다.


-



'아.....'



빈은 짧게 탄식했다. 대개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하고 오는 편이라 현장에는 티켓이 남아돌았고, 특히 독립 영화나 실험 영화의 경우에는 마니아층만 보는 경향이 강해, 아마 소극장이라 하더라도 영화관이 텅텅 빌 예정이었을 텐데. 바로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자리 띄워 앉을까 하다가, 나중에 혹여나 그 자리 주인이 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난감한 상황이라 일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고 본다. 흘깃 보아하니 웬 연예인 비주얼이다. 오목조목 예쁘게도 생겼는데, 전체적으로는 시원시원한 상이었다. 어쩌면 무명 배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대개 이런 영화를 굳이 찾아 보러오는 사람 중엔 업계 사람이 많았다-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끄려는데, 진우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박진우 형

-미안하다ㅠㅠ너 가는 줄도 모르고ㅠㅠ호텔이야ㅠㅠㅠㅠ?'



영화 보러 왔어. 표 남은 거 있길래. 보고 말해줄게. 경미의 세계. 전송.

빈은 휴대폰을 완전히 끄고 한동안 모자에 짓눌러져 푹 가라앉았을 게 분명한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브이넥 니트를 괜히 정리도 해보고, 의자에 몸을 가라앉혔다가 바로 세웠다가 했다. J 열의 10번 자리에서였다. 은우는 바로 그 옆, J-11에 앉아 그런 빈을 봤다말다 하며 저가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중이었다. 저가 본 게 맞다면 아마 그 '문빈'일 게 틀림없었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몇 번이나 생각이 날 때마다 들여다봤던 영화였던지라 잘못 볼 리가 없었다. 빈은 옆의 남자가 자꾸 자신을 쳐다본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필사적이었다가, 신경 쓰기 싫어 다시금 모자를 푹 눌러썼다.

얼마 되지 않아,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이 둘 사이를 메웠다.


-


빈은 자꾸 영화에서 뭘 찾아내려는 버릇이 있었다. 연출이나 시나리오 쪽으로는 단 한 번의 경험도 없었지만, 그냥 그런 쪽으로 흥미가 있었다. 오늘 영화도 돌아가는 길에 찬찬히 곱씹으며 그 장면에서 왜 그걸 비췄는지 머리에 가득할 게 분명했다. 여운이 엄청나게 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실험적인 내용도 아니었다. 엔딩 크레딧이 내려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모르는 이름투성이들 사이에서 가끔 제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묘한 반가움을 느꼈다. 진우가 이 엔딩 크레딧을 봤더라면 아마 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죄다 아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깐 찾아보니 감독이 진우의 대학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형은 하나도 모를 거 같이 생겨서는 죄다 알았으니까... 빈은 미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영화로 시선을 돌려서 그런지 조지나 존의 독백이 더 떠오르지 않았다. 빈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여기서 호텔까지는 거리가 꽤 됐지만, 괜히 걷고 싶어져 지도도 켜지 않은 채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빈에게는 괜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걷는 버릇이 있었으므로.한참을 걷다 말고 그 장면에서 왜 저기를 비췄는지를 생각하는데, 뒤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목소리가 제 이름을 온전히 부르는 게 괜히 불안했다.



"네?"


"그, 문빈, 씨 맞으시죠."



옆에 앉았던 남자다. 빈은 여기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오고, 스물부터 꽤 오래된 슬럼프를 겪고 난 후로 저를 알아볼 사람은 많이 줄었다. 진우가 감독한 단편 영화 몇 편에 출연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게 다였다. 혹여 제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미간을 잠시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영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은우는 그런 빈을 보며 불쑥 팔을 내밀었다. 빈이 떨어트리고 간 모자였다. 빈은 그걸 보고서야 제 정수리를 당황해서는 만지작거렸다.



"밑에 떨어져 있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은우가 건네주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시금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그제야 깨달은 건 영화의 전당에서 빈이 족히 이십 분은 방향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이었다. 괜한 물음일까 싶었지만 모자를 건네주고도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은우를 보니 그것도 아닐 것 같아 먼저 입을 뗐다.



"저, 그... 따라오신 거에요?"



내뱉고 나서야 좀 너무한 말인가 싶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뒷말로 황급히 주워 들어보려는데, 놀라지도 않은 듯한 은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이는 말에 경악했다. 네. 미행했어요. 입은 웃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아 진심인 듯싶어 침을 삼켰다. 나를 왜?



"뻥이에요."

".....무슨 그런 뻥을 쳐요."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리고 뭔가 되게 고민하면서 가는 거 같아서, 일부러 말 안 걸었어요. 그러고는 저 잘했죠, 라는 듯 쳐다보는데 이게 또 뭔가 싶었다. 절 아세요, 하고 물어보기도 전에 은우가 먼저 선수를 쳤다. 어떻게 아냐고요.



"영화 봤어요. 과민성."

"......그걸요?"

"그거랑 미스터 박, 그것도요. 피터 팬도 좋았고. 아, 그래도 전 과민성을 제일 좋아해요."



어지간히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특히 독립영화 쪽으로. 피터 팬은 그래도 나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상을 받았으니까 알 수 있는데, 진우의 대학 졸업작품이었던 과민성은 어떻게 찾은 건지. 그걸 재연을 했었나? 졸업 작품 발표 기간에만 잠깐 보여주고 말았던 기억이었던 거 같은데. 빈은 혼란스러웠다.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저쪽에서는 다 안다는 듯한 관계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마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영화 좋았어요, 하고 짧게 악수를 하거나 얘기를 나눠주는 지인들은 있었어도 이렇게 성인 이후의 필모를 죄다 본 것만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그 이후로도 은우가 얘기하는 제 출연작을 멍하니 듣고 있다가, 은우의 한 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좋아해요."



팬이에요. 차도에 가까운 인도에서, 그 소리 하나만이 빈의 귓가를 울렸다. 귀가 벌겠다.



-



"아, 빈 씨."



저희 영화 취향 비슷한가 봐요, 그쵸.

빈은 어제 팬이에요 한 마디 남기고 떠난 은우를 다시금 옆자리에서 마주하며 묘한 소름을 느꼈다. 솜털이 쭈뼛 서는 기분. 반갑다는 듯 웃어오는 은우의 미소에는 이렇게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다는 묘한 확신이 느껴져 빈이 물었다. 알고 있었어요? 뭘요? 자의식 과잉 맞긴 한데. 빈은 모자를 푹 눌러쓰며 웅얼거렸다. 괜한 스타병이라도 걸린 것만 같았다. 은우는 그런 빈을 빤히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속에서 말을 고르고 있는 거였다. 그 고르는 틈새로 빈은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빤히 자신을 보는 은우의 시선 아래서 귀나 붉히는 와중이었다.



"어제 이 자리에서 빈 씨 만나서 반가웠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 사람 좋게 웃어 보이고는 제 몫의 탄산수를 흔들어 보인다. 그거 그렇게 흔들어도 되는 거예요? 아, 깜빡했네.

알게 모르게 허당이다. 재빠르게 탄산수를 제 옆에 가만히 놔두는 은우를 보며 빈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어젯밤 팬이라는 그 말을 곱씹느라 늦게 잠이 들었더니 제일 일찍 시작하는 영화를 한 편 놓쳤다. 다행히 현장에서 예매할 생각이었던지라 표가 날아간 건 아니었는데, 그다음에 시작하는 영화는 또 맨 앞자리 외에는 한 자리도 없어서 당황해하다가-나중에 알고 보니 무대인사가 있었단다-결국 그다음 영화를 예매한 거였는데 하필 여기서 또. 빈이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에 은우가 끼어들었다. 저기, 빈 씨.



"제 이름은 차은우예요. 나이는 스물다섯이고요."

"갑자기요?"

"그리고, 음, 스토커 아니에요."



여기는 주민등록증.

대뜸 지갑을 뒤적이기에 뭘 하나 싶었더니 주민등록증을 꺼내 빈의 눈앞에 들이민다. 걱정 마시라고요. 씩 웃어 보이고는 다시 지갑을 열어 주민등록증을 집어넣는다. 과민성은, 저 원래 남의 졸업작품 행사 가서 영화나 연극이나 보고 오는 거 좋아해서, 그때 처음 봤고, 다행히 DVD가 현장 판매 분량이 남아 있어서 샀었고요. 빈은 그제야 진우가 제게 패키징된 졸업 작품 도록과 DVD 세트를 선물했던 게 떠올랐다. 그거였구나. 혼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은우가 말을 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배우님-여기까지 내뱉고는 너무 좀 그런가, 하고 너털스레 웃었다-작품 찾아서 봤었어요. 아, 따로 뽑아놓은 티켓이 있는데 지갑을 바꿔와서 깜빡했네요. 매번 챙겨 다니면서 언젠가 만나면 사인해달라 얘기하려 했는데. 온갖 증거를 제시하더니 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않냐는 눈빛으로 돌아보는 은우를 보고 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공중에서 시선이 맞닿아 떠다녔다. 은우가 먼저 눈을 깜빡이곤 제가 졌어요, 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사람 은근히 몸에 아메리칸 액션이 배어있네.. 빈은 은우가 가져온 탄산수를 흘깃 쳐다보고는 혹시 어릴 적에 유학 다녀온 사람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불을 지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탄산수를 굳이 돈 주고 사서 마시는 사람치고 미국에서 살다 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당장 진우가 그랬다.



"뭘 져요."

"눈싸움이요. 빤히 보시길래."

"......혹시 유학 다녀온 적 있어요?"

"아뇨. 저 경기도 군포시 출생인데. 한국 벗어난 적 없어요. 대학교 때 친구들끼리 유럽 갔던 거 빼고."

"와, 대박 티엠아이..."

"말하는 건 좋아해요."



그러고는 탄산수 뚜껑을 돌렸다가 칙,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라오니 황급히 입을 갖다 댄다. 그게 빈의 눈에는 이상하게 완벽해서 오히려 어느 정도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현저히 다른 온도의 것이라 조금 웃겼다. 작게 웃으니 입구에서 입을 떼지 않은 채로 또 웃어준다. 영화 시작 전의, 그것도 영화의 전당에서의 이 십 분이 누군가와 함께 꽉 찬 기억이 있었던가. 빈은 가만히 생각하다 말고 문득 조지의 독백을 떠올렸다. 내가 아무한테도 아는 체를 안 했다고? 너한테도? 여기서 한숨처럼 짧게 내쉬고 결연한 듯이, 너 내가 뭘하든 열심히 지켜봤다며.



".....나도 계속 그랬어."



은우를 보다 말고 떠오르는 독백이 조지의 독백이라는 게 이상했다. 제게 무슨 말을 한 줄 아는 건지 돌아보는 시선에 빈이 입을 달싹거리다 문득 내뱉었다. 아뇨, 고마워서요. 진짜로.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미미하게 웃어 보이는 빈을, 은우는 영화 시작 직전의 암전 사이로 바라보다, 안내 사항이 다 지나간 후에야 빈에게서 시선을 떼고 스크린을 쳐다봤다. 눈부심이 잔상으로 깜빡였다. 이따 봐요. 괜히 그런 말을 속삭이니, 빈이 짧게 그래요, 하고 대꾸해왔다.


-


먼저 용기를 낸 건 은우였다. 배우님, 저희 이것도 인연인데 팬서비스 없나요? 한껏 여유로운 척 그런 말을 내뱉기는 했지만, 속이 바싹바싹 탔다. 확실히 아까 영화 시작 전의 짧은 대화로 은우가 어느 정도 편해진 빈이 웃으며 물었다. 뭘 원하시는데요. 뭐해드릴까요. 지금 소원권 주시는 거에요? 어쩔까요. 저 그럼 소원권 100개로 늘리는 소원. 공부 잘 했나 봐요. 못하진 않았죠. 그런 거 말고. 은우는 고민하느라 걸음까지 멈춰가며 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빈이 앞서 걸어가려니 잠깐만요, 하고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다 말고, 퍼뜩 고개를 들고는 웃으며 얘기했다.



"저랑 영화 같이 봐주세요."

"무슨 영화 보려고요."

"이것저것. 아, 조건 있어요."



영화제 끝날 때까지 매일요. 내뱉는 입이 긴장으로 까끌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은근히 보내오는 눈빛이 퍽 간절했다. 그걸 느끼지도 못한 채로 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두 번의 GV 외에는 이렇다 할 일정이 없었고, 영화가 아니라면 호텔에서 누워지내거나 혼자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갓 스물의 겨울처럼. 물론 그땐 호텔이 아니라 모텔이었지만. 그 무렵을 생각하니 또 어제오늘 잘 잊고 지낸 여름과 연기 중 존의 독백이 떠올랐다. 한창 입에 붙지 않던 부분이 떠오르는 걸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입에 아직도 텁텁히 남아있는 기억의 쓴 뒷맛을 지워내려 은우에게 손을 뻗어 물 좀 마셔도 될까요, 했다. 영 적응되지 않는 맹맹한 맛의 탄산이 혀를 톡톡 두들기고 목구멍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으,



"이런 걸 왜 마셔요."

"원플러스 원이길래요."

"원 플러스 원이면 다 사요?"

"그래서 우엉차도 좋아해요. 안 팔리는지 아직도 원 플러스 원이라."

"아저씨 입맛이네."

"저 스물다섯인데."

"그걸 저한테 어필해서 뭐해요."

"어필로 들렸어요?"

"됐어요."



뭐가 웃긴 지 실실 웃고 있는 은우에게 탄산수를 다시 건네주던 빈은 자꾸 은우의 얼굴 위로 조지의 독백이 스쳐 지나가는 게 신경 쓰여 머리를 휘저었다. 왜 그러냐는 은우에게는 날파리가 있었어요, 하고 짧게 대꾸했다. 오늘도 멍하니 목적지 없이 잠시 걸으려는 와중 은우의 존재를 깨닫고는 빈이 물었다.



"그럼 저도 부탁 하나 할래요."



기분이 좋은지 샐쭉 웃으며 그런 말을 하는 빈에게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그걸 보며 빈은 알게 모르게 아메리칸 출신 백인 쾌남의 모습이 겹쳐져 잠시 웃었다가 내뱉었다. 제가 밥 한 끼 사드려도 될까요? 활짝 웃는 은우가 말을 덧붙였다. 얘기도 좀 하고요? 네,



"팬미팅해요, 우리."



끝자락에 들뜸이 묻은 빈의 목소리를, 은우는 알았고 빈은 몰랐다. 그래도 은우를 바라보는 눈앞에 조지의 독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는 했다. 뜬금없이 제일 앞 대사가 떠올랐다.

실은, 꼭 농과대학을 가야 좋은 농부가 되는지 물어봤거든. 농부들 볼 때마다.

그게 지나치게 뜬금없어서 빈은 은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알지도 못하면서 싱숭생숭했다.


-


은우는 굳이 따지자면 말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생각 끝에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잦은 편이었다. 생각이 늘 그렇게 말을 앞섰다. 빈은 그걸 요 며칠 매일같이 붙어 다닌 끝에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이후의 프랜차이즈 양식점에서 있던 일대일 팬미팅에서는-은우는 자꾸 일대일을 강조했다-말이 많은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같이 다섯 번째인지 여섯 번째의 영화를 보고 나오는 와중에 빈이 이 얘기를 하니 은우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한참 팔자로 만들고는 따져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얘기하는데 당연히 말이 많아지죠. 그런 애매한 단어는 빈을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간간이 그런 구석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는 그냥 습관인가보다 싶었다. 은우에게는 나름의 필살기였던 셈인데, 이 며칠이 끝나면 꿈처럼 사라질까 싶어 전전긍긍하다 꽤 남발해버린 탓에 빈에게는 버릇으로 들렸던 거였다. 그걸 스스로 깨닫고는 숙소로 돌아와 천장을 바라보며 바보냐고 중얼거린 밤이 있기도 했다. 기대로 잠이 오질 않았고, 그다음 날 제일 아침에 있는 영화를 보기 위해선 또 일찍 자야만 하는 하루하루였다. 나란히 걷다 보면 손이 부딪히기도 했는데, 그럼 빈도 은우도 솜털이 쭈뼛 서는 듯한 정전기가 따끔하게 그 부위를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은우는 알고 빈은 몰랐다.



"내일 무대인사 있죠, 보러 가도 돼요?"

"보러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거예요?"

"피터 팬 저런 큰 화면으로 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CGV 아트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3월이었나."



그러니까 봐달라는 듯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해서 빈은 또 웃었다. J11에 앉을 거죠? 빈 씨가 저 보려면 어디가 잘 보여요? 그건 왜요? 무대인사 긴장되면 나 쳐다보라고. 아는 사람 있으면 편하잖아요.그 며칠 사이 '저'라는 호칭에서 '나'라는 호칭으로 자연스레 옮겨간 관계였다. 누가 보면 몇 년 알고 지낸 사이인 줄 알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둘은 서로에게 편해지는 중이었고 변해가는 중이었다. 빈은 진우에게 절반 이상 떠넘기며 해치우려 했던 무대인사에, 뭔가 멘트라도 준비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은우와 헤어지던 직후였다. 진우에게 그날 밤 형 나 뭐 준비해갈 거 없냐 물었더니 의외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기에 목덜미를 긁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름 초청, 비슷한 거 받은 건데. 물론 영화제가 아니라 형이 초청한 거긴 하지만. 그런 자존감 깎아 먹는 얘기에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한 소리를 들었다. 아니이... 말꼬리를 늘이다 물었다. 예상 질문 뭐 그런 거 없어? 몰라, 임기응변이지 뭐.



"형은 말을 잘해서 그래."

"고마워, 네 덕이다."

"좀 도움 되는 말을 해봐, 좀."

"무대인사 그냥 하는 거지 뭐. 그냥 하고 싶은 얘기해. 영화 찍으면서 좋았던 거라던가, 생각했던 거라던가."

"나 연기할 때 생각 안 하고 막 하는 거 알고 그래?"

"재능충이 말이 많아... 그럼 무대인사도 생각 안 하고 막 해봐."

"형은 진짜…. 됐다."

"빈아."



너 진짜 잘해서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 생각 되게 많이 해. 더듬거려도 좋으니까 그냥 말하고 싶은 거 말하고 내려와.

진우의 말에는 도망치듯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아 왜 이래, 알았어. 갈게, 갈게. 농도 짙게 다가온 뭔가가 빈을 울려댔다. 진우가 말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건 원래부터 알았지만, 오늘은 괜히 울컥했다. 그 사이로 문득 은우가 보고 싶었다. 딱히 할 말을 정하지 않고도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고 손끝이 저리기도 해서, 빈은 이불 속에 파고 들어가 심장이 뛰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 액정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은우의 번호를 찾았다가 말았다가 했다. 벅참이 웅웅거리며 퍼지더니 들뜸이 되어 은우의 번호 위로 눈길이 가는 걸 느끼며 문득 저가 연기한 피터 팬의 오제를 생각했다.


피터 팬 증후군의 오제. 몸도 나이도 어른에 다가섰고 그런 척을 하고 있지만 영원히 소년이길 바라는 오제. 좀 철이 든 소년, 딱 거기에서 머무르고 싶어 하던 정오제. 굳이 증후군까지를 제목에 넣지 않은 건, 진우도 빈도 오제가 병적인 캐릭터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책임감이 없고 자주 불안해하며, 쉽게 현실에서 도피해 제 속으로 숨어버리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운 오제. 그냥 그럴 수 있는 캐릭터. 그냥 그래도 마냥 나쁘지 않은. 피터 팬 증후군이 제목으로 거의 확정되었을 무렵, 진우를 찾아가 처음으로 연기 밖의 무언가를 얘기했던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를 떠올렸다. 촬영은 간간이 진행되었다. 억지로 비를 뿌리지 않았고, 억지로 눈을 뿌리지 않았다. 장맛비가 올 때를 맞춰 촬영하고, 눈이 올 때를 맞춰 촬영했다. 러닝타임 45분짜리의 독립영화에서는 확실히 리스크가 큰 게 맞았다. 그만큼 그 순간순간의 오제를 아꼈다. 피터 팬 팀 모두가 그랬고, 빈이 그랬다. 하지만 그만큼 빈이 뒷짐 지고 물러나 자리를 내어줬던 캐릭터이기도 했다. 빈은 오제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읊조렸다. 오제가 장맛비를 우산을 거두고 온몸으로 맞아대며 어디로도 갈 줄 모르면서 어디로도 갈 수 있는 듯, 부러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운동화를 찍어 내리며 웃어 보이는 걸 보고서는 잠깐 부럽기도 했다. 빈은 오제가 될 수 있었지만, 오제는 빈이 될 수 없었다. 그 차이였다. 그래서 빈은 특히나 오제가 행복하기를 빌었다. 저 자신이 아니었으므로, 더더욱.



"과민성이었나......"



빈은 이불을 걷어내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 아래, 아직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심장이 쿵쿵 울려댔다. 진우의 졸업 단편이자 성인 이후로는 문빈의 첫 복귀작이었다.



'아, 그래도 저는 과민성을 제일 좋아해요.'



첫날, 4차선의 차도가 바싹 붙어있던 인가에서도 웅웅 울리던 말들을 기억한다. 그걸 가만히 떠올리다 문득 심장이 더 크게 웅웅 거리는 걸 느낀다. 운이 좋게도 복귀작부터 주인공이었다. 과민성의 민성. 몇 년이 지났음에도 하루의 트라우마에 붙잡혀 뒷걸음질도 앞걸음 질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대학교 1학년에 묶여 있던 정민성. 민성을 떠올리고는 문득 제일 최근에 연기한 셈인 오제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캐릭터인지 빈 스스로인지 모르는 그런 걸 연기해왔던 무렵을 떠올린다. 미스터 박의 누나만 찾는 한량 기둥서방, 제리를 떠올린다. 그 사이로 능글맞게 눈썹을 꿈틀거리려 한참 거울을 보고 연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사이사이 쪼갠 박자 사이로 그때의 빈을 떠올린다. 민성을 떠올리고, 제리를 떠올리고, 다시 민성을 떠올리고..



'저는 과민성을 제일 좋아해요.'



은우를 떠올렸다. 존의 대사도, 조지의 대사도 한 줄 없이, 말간 은우의 얼굴을.

빈은 그날 한숨도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


빈은 무대 인사의 끝을 알리는 박수갈채를 들으며 빠르게 J-11 좌석을 눈으로 좇았다. 은우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든다. 진우는 무대 인사 직전, 오늘 점심은 제 영화를 보러 온 학교 동기들과 함께 할 생각이라며 빈에게 은근한 식사 초대를 건넸지만, 어젯밤부터 은우 탓에 싱숭생숭했던 빈은 아무래도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먼저 거절 의사를 전했다. 다 너 아는 사람들이야. 졸작 때 봤던 명준 형이랑, 촬영 도와줬던 소민이랑. 낯선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게 싫은 건가 싶어 덧붙였는데도 잠깐 우물쭈물하던 빈에게 문득 진우가 물었다.



"친구 생겼어?"

"......아니야, 그,"



팬이라는 한 글자만으로는 부족했다. 은우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벅참이 몰려왔다. 어젯밤부터 꾸준히 그랬다. 어쩌면 깨닫기 그 이전부터였을 수도 있었다. 피터 팬의 감독 박진우 씨와 오제 역의 문빈 씨를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경쾌한 한 마디가 울려 퍼지는 사이로 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 좋아하는 사람. 뭐? 있어, 그런 거. 못 들었어. 올라가기나 해. 진우를 뒤에서부터 계단으로 밀어 올리며 빈은 귀를 붉혔다.



"잘 봤어요?"

"확실히 큰 화면이 좋네요. 노트북 화면으로 그렇게 봐도 또 다르네."

"뭐가 좋아요."



저도 모르게 퉁명스레 내뱉은 말에는 은우가 당연하다는 듯 틈도 주지 않고 대꾸해왔다. 좋죠. 전 빈 씨 표정 보는 게 좋거든요. 특히나 피터 팬은 마냥 관조적이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클로즈업을 자꾸 해서, 오제가 혼자 뭔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랑 누군가가 저를 불러서 돌아볼 때, 그 사이에 표정이 바뀌어가는 걸 보는 게 좋거든요, 저는. 오제는 기본적으로 입을 가만히 다물고 혼자 생각에 빠질 때면 입꼬리가 내려간 상인데, 그러니까 이렇게, 좀, 뭐랄까, 세모? 그런 뾰족함이 보이거든요. 방해하지 마시오, 이런 느낌. 그러다 갑자기 재밌는 게 떠오르는 건지 괜한 짓을 하기 직전에 갑자기 인상이 동글동글해져요. 그런데 누가 부르면 네모나게 변해요. 또래치고 어른스러운 느낌으로. 그 순간순간이 노트북 화면으로는 잘 안 보이거든요. 미니 빔프로젝터로 벽에 쏘면 벽에 올록볼록 올라온 부분 탓에 집중이 좀 안 되고. 숨도 쉴 틈 없이 꾸준히 말끝마다 들뜸을 붙여오는 은우에게 한껏 쓸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쓸려 들어와서 쓸려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쓸려 들어와서는 속을 한가득 채웠다. 벅참이 턱 끝까지 옮은 무렵 은우가 숨을 돌리고 덧붙였다.



"그래서 좋아요. 빈씨가 잘 보여서…. 아, 그러니까 오제가."



빈은 그 벅참을 하나하나 담아둘 수 없이 무언가를 툭 내뱉어 버리고 말 것 같아 황급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곤 잠깐 지인들 좀 보고 오겠다며 진우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몇 줄 뒤의 좌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 한 박자 한 박자를 몇 번이나 쪼개며 심장이 뛰어댔다. 그 사이로 존의 독백이 뛰어들었다가 조지의 독백이 뛰어들었다가, 오제가 보고 싶었다가, 오제가 부러웠다가 했다.

결심했어, 안 갈래. 오늘 밤 아버지께 말할래. 이 아랫부분은 성, 사랑을 갈구합니다. 가끔 쓸쓸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한테도 아는 체를 안 했다고? 너한테도? 좋은 친구면 좋겠어. 나도 계속 그랬어.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아니면 제가 요구하는 만큼, 가능한 한 충분히 양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너 최고라서 최 씨구나? 저기, 농과대학 말야. 만약 너한테 좋은 사람이 생기면...

진우에게 채 다다르지 못한 채 마른세수를 벅벅 했다. 그러고는 저를 기다리는 듯 다시금 J 열 11번 자리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은우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성급히 걸음을 옮긴 채, J 열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으면서 은우를 불렀다. 걸음이 꼭 오제 같았다. 피터 팬에서 뻔히 있는 우산도 내팽겨진 채, 온몸을 젖어가면서도 괜히 물웅덩이에 발을 잠그고, 웅덩이 웅덩이마다 뛰어다니며 운동화를 적시며 웃던 오제. 은우씨. 돌아보는 시선이 마주친다.



"오늘 저녁 영화요."

"아, 일곱 시 반 영화요? 티켓 구하느라 애먹었던 거죠?"

"아뇨, 그렇긴 한데, 그게 아니라."



백 미터짜리 단거리 코스를 전력 질주해 온 사람처럼 숨이 벅차올랐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은우는 얼핏 눈앞의 빈에게서 오제를 찾았다. 빈은 숨을 고르고 내뱉는다. 글자 한 글자 한 글자 흘릴 것 없이, 분명한 발음으로, 웅얼거리고 떠나보내는 것 없는 온전한 대사.



"오를리, 보셨어요?"



-


오를리 보셨어요?


샤넬렉 감독 작. 독일 영화요. 독일 영화 좋아하세요? 저는 태어나서 본 독일 영화가 그게 처음이었어요. 베를린 학파라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때 영화 해설하시는 분이 되게 길게 설명해주셨는데. 연영과기는 한데, 있는 휴학 없는 휴학 다 끌어다 쓰면서 미뤘더니 배운 게 없거든요. 어차피 제가 평론을 전문적으로 할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다음 학기부터는 나가려고요. 내가 거기 실기를 얼마나 준비했는데, 아깝잖아요. 손 안 짚고 옆 돌기가 너무 안 돼서, 몇 번을 구르고 멍들고 그랬어요. 체대도 아닌데 웃기죠. 그렇더라고요, 연영과 입시가. 특기로 노래도 선택할 수 있는데, 그건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고, 입시 학원 선생님이 노릴 거면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맞다고 해서 어차피 근육을 움직이는 건 좋아했으니까, 아크로바틱을 시켰어요. 매트를 깔아도 철퍼덕, 소리 내면서 떨어지면 진짜 아파요. 나는 옆으로 돌아야 하는데 자꾸만 대각선으로 가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매트도 깔지 않은 옆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꼬리뼈를 매만지고...

저는 제가 몸이 되게 날렵한 줄 알았거든요. 쉽게 쉽게 잘만 하는 애들 보니까 그런 건 또 아니더라고요. 어쨌거나.



오를리 공항이라고, 되게 큰 공항이 있대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오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항이고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는데, 저는 몰랐어요. 거기서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에피소드 식으로 한 에피소드, 한 에피소드 풀어내는데, 그게 다른데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에 봐서 그런가 좋았어요.갑자기 레드 카펫이 밟고 싶어져서 부산까지 내려왔던 적이 있거든요. 부국제(*부산국제영화제를 줄여 말하는 말) 개막식 때, 온 배우들이 레드 카펫 밟고, 포토존에서 포즈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때는 겨울이라 레드 카펫이라고는 영화의 전당 뒤편에 관광객들 기념하라고 작게 만들어놓은 짧은 레드 카펫밖에 없었지만.



그냥 어릴 때는 무심코 생각했거든요. 나도 조금만 더 크면 저기 레드카펫을 밟고 있겠지, 하는 생각. 그냥, 잘해왔고, 잘했고, 잘한다는 소리 듣고 그러니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미끄러져서는 이러고 있기는 한데. 그래서 그냥, 그 레드카펫이 깔리는 곳을 한 번 밟아나 보고 싶더라고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잘했는지도 모르겠고, 다들 원래 그런 거라고 적당히 넘기라는데 그 적당히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유난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나가서 사람 만나고 그러면 괜한 소리 한 소리라도 더 들으니까 집에 가만히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진짜 문득, 갑자기 그 레드카펫이 밟고 싶어져서.급하게 제일 가까운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는데, 부산역에서 센텀까지는 또 한참이더라고요. 마침 거기 시네마테크에서 독일영화 특별전을 할 때였는데, 그때 그냥 영화관에서 살았어요. 당연히 주류 상업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보는 사람은 적었죠. 그래서 매번 같은 좌석을 고를 수 있었거든요. J 열 중간 자리, J10번. 양옆에 사람도 하나 없었어요. 저녁 되면 사람이 좀 많아지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제 주변에는 안 앉더라고요. 그게 진짜 마음이 편했거든요.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이 무서웠던 때여서.


그때 처음 본 영화가 오를리였는데, 그냥 별 얘기 없었어요. 별 내용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공백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 공백을 상상하는 게 진짜 좋았어요. 공항은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잖아요. 잠깐 왔다 가는 곳. 해설가분이 그러는데, 그런 곳을 비장소라고 한대요. 장소가 아닌 곳. 그러니까, 머무르고 꾸준히 뭘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에 잠깐 위치했다마는 곳. 고속버스터미널 그런 거요. 정확한 설명은 아니에요. 그때 들었던 해설이 죄다 기억나는 건 아니라, 대충 뉘앙스가 그렇다는 거예요.

공항이 그래서 재밌대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곳에서 와서, 잠깐 머물렀다 가니까,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요. 인연이 생겼다가 끊어졌다가, 잃어버렸다가 찾았다가..사람 많은 곳에서는 숨이 막혀서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영화를 고른 건데, 그 영화에는 사람이 진짜 많이 나오거든요. 웃기죠. 근데 갑자기 오를리 공항에서 폭발물 신고였나, 그런 게 들어와서 공항이 폐쇄가 돼요.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편이 취소되고, 돌아가는 택시에 웬 꼬맹이 여자애랑, 처음부터 마지막을 이어주듯 간간이 나왔다가 말았다가 하는 여자랑 같이 타서는 돌아가요. 떠나려고 했는데 떠나지 못한 거죠. 그런 식으로 목적지가 붕 떠버리고….

그러면서 텅 빈 오를리 공항을 구석구석 비춰주거든요. 분명 영화 속에서는 사람이 가득했던 곳곳을.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가 있던 곳곳을 보여줘요. 그게 갑자기 울컥해서 엄청 울었어요.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세상엔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나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아, 택시가 제일 마지막 장면이었던 거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입시 준비하면서 외웠던 자유 대사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지금은 잘 안 울어요. 그 영화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그때의 저랑 지금의 저는 같았다가 달랐다가 하니까요. 저랑 오제도 같았다가 달랐다가 하고, 성민이랑도 그렇고, 제리, 도 그렇고. 제리 연기할 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렇게 골 때리는 캐릭터를 각 잡고 연기한 건 처음이어서.샤넬렉 감독 영화를 그 이후로도 앉아서 내리 세 편인가 봤는데, 하나하나 좋았어요. 괜히 울고 싶기도 했고, 울고 싶었는데 못 울다가 그거 핑계로 운 걸 수도 있고. 샤넬렉 감독 꿈길도 보고 싶었는데, 그건 나중에 또 힘들면 보려고 남겨뒀어요.그 정도 보니까 확 울고 나서 그런 건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도 하나 없이, 그냥 잘 곳 없어서 들어간 모텔 베개가 기분 좋게 뽀송해서 그랬던 건지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무슨 영화든 오디션 보러 다니고, 그러다가 진우 형도 만나고, 좋은 영화도 찍고, 힘들기도 했다가, 좋기도 했다가.샤넬렉 감독 영화 다 좋았어요. 그냥, 사람 얘기를 사람이 하는 거 같아서. 진짜 좋았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사람에게서 떠나고 싶었는데 다시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빈은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다 남은 몇 모금을 금세 입에 털어놓고는 분명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래서 그냥…. 같이 보고 싶었어요."



둘 사이에 잠시 공백이 일었다. 해가 쨍하니 뜬 오후 두 시 무렵이었다. 호텔 커튼을 뚫겠다는 듯 쨍하게도 들어오는데도, 빈은 미간 찌푸림 하나 없이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빈이 머무는 호텔, 126호 방 안에서였다. 은우는 제 몫의 맥주캔을, 빈을 따라 비우곤 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얼굴 보고 싶어요."

"왜요."

"백허그가 좋으면 그렇게 하고요."

"위로하는 거예요?"

"그냥, 좋아서요."



그 영화를 나랑 같이 봐준다는 게 벅차서. 사람 때문에 힘들었는데 사람 얘기하고 싶고, 사람 보고 싶어서 다시 연기 시작했다는 그 영화, 나랑 봐주니까 고마워서.

빈은 고개를 돌려 은우를 바라보다, 그 말 하나하나 가슴 벅차게 흘려대는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입을 뗐다.



"......딴 건요?"

"그런 건 안 물어도 돼요."



-



은우씨, 나 자유연기 입시했던 거 보여줄까요. 일대일 팬미팅. 특급 서비스. 완전 소중하죠?

손턴 와일더 작, 우리 읍내의 조지. 거의 2분짜리에요. 지금은 좀 잊어버린 거 같아서, 정확히는 못 해주는데.. 은우씨, 우리읍내 봤어요? 다행이다. 그럼 틀려도 모르겠네요. 뭐래, 나 배우예요. 틀린 것도 티 낼까 봐. 있어 봐요, 그러니까 첫 문장이...



-



저, 실은, 꼭 농과대학을 가야 좋은 농부가 되는지 물어봤거든. 농부들 볼 때마다. 근데 시간 낭비란 사람도 있더라. 정부에서 나오는 책자만 봐도 다 알 수 있다고. 또 외삼촌도 자꾸 늙어가시고…. 당장 내일이라도 물려주시겠대. 내가 문제지. 그리고 네 말대로, 그렇게 오랫동안, 그러니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응. 그러니까…. 난 싫어. 가기 싫다고. 진짜.. 낯선 사람들이 오랜 친구만 하겠냐고. 아닐걸. 너처럼 좋은 친구가 있는데, 굳이 다른 데서 새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고.

결심했어, 안 갈래. 오늘 밤 아버지께 말씀드리려고.그리고, 그, 음, 고마워. 아까 그 얘기, 그러니까 내 결점 말이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한 가진 틀렸어. 내가 아무한테도 아는 체를 안 했다고? ...너한테도?

너 내가 뭘하든 열심히 지켜봤다며, 나도 그랬어. 계속, 쭉. 항상. 항상 널 생각했단 말이야, 중요한 사람으로. 관중석 어디에, 누구랑 있었는지도 알아.



"...... 너, 나랑 J 열에 있었잖아. 10번이랑, 11번."



앞으로 바짝 다가와선 무릎을 꿇고 올라서서 저를 내려다보는 빈을 올려다보며 은우가 짧게 웃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들떴다 싶었더니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배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주 좋은 영화를 알아냈거나. 예를 들어 샤넬벡의 오를리같은.은우가 팔을 들어 빈의 뺨을 쓰다듬고는 물었다.



"이거 애드립이죠?"

"맞춤 변형이에요."

"까먹은 건 아니고?"

"그게 뭐가 중요해. 빨리 다음 대사나 해줘요."

"나 다음 대사 모르는데."

"배우 남친 사귀면서 애드립 칠 줄도 몰라요?"

"음, 그럼."



은우가 잠시 고민하다, 빈의 뺨을 쓰다듬던 손을 허리 뒤로 감은 채, 빈을 바싹 당겨왔다. 중심을 잃어 제게로 넘어지는 빈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넘어지고는, 아 진짜, 하며 성을 내려는 빈을 다시 끌어와 입을 맞추고 대답했다.



"그거면 된 거지, 뭐."


-독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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