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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뭄미

 

 

“아 이거 쫌 치우지?”

바닥에 널려있는 꽃 뭉텅이들과 찢긴 잎 덩어리들을 신경질적으로 차면서 스튜디오로 들어온 은우는 테이블에 잔뜩 붙여져 있는 컨셉 포토들 중 하나를 떼어 내었다. 아릿할 정도로 세게 코를 찌르는 꽃 향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은우는 가물가물하게 떠오르는 꽃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려 애썼다. 베네치아.. 아 그건 이탈리아 잖아. 베네딕트..미친 그건 누가 들어도 아니고. 베르사유... 하아...베...베.. 아 맞다,

“베고니아라고 했었나”
“네! 베고니아요!”

은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상냥한 K 잡지사 말단 에디터는 분주하게 꽃 덩어리들을 정리하다가 말할 거리가 생겨서 신난다는 듯이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사시사철 열리는 꽃이래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구하긴 어려워서 저희 팀이 직접 다 관리해서 길렀어요. 고생 좀 했죠.. 잡지사에 비료냄새가 아주! 진짜 다시는 상상하기도 싫어요. 그래도 결과물이 좋으니..,”
“저, 죄송한데 이거 꽃말이 뭐였었죠?”

신나게 조잘거리던 대화가 끊겨 당황한 듯한 에디터는 눈알을 도륵, 도르륵 굴리다가 이내 다시 방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짝사랑이요.”

아. 궁금증이 풀린 은우는 꽃말을 다시 곱씹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짝사랑. 짝사랑이라고요.

“그것 참 거지같은 꽃말이네요.”

**



“나 어제 진짜 기분 더러운 꿈꿨자나.”

초코바를 우물우물 거리던 갈색 뒷통수가 꿈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팔락거린다. 분주한 촬영장, 그 사이에서 가장 한가롭고 졸려워 보이는 오늘의 주인공. 베고니아를 그대로 물들인 듯한 동그란 볼만 오물오물 열심히 움직이는 문빈의 민들레마냥 하찮게 날아다니는 잔머리들을 무척 여유롭게 바라보던 은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니가 아무리 기분 더러운 꿈을 꾸었다 한들, 베고니아 꽃말 들은 나보다 기분이 더럽겠니. 어느새 슬쩍 올라가버린 입꼬리를 황급히 내리고 카메라 세팅을 드르륵, 돌린 은우는 최대한 관심 없는 척 질문을 던졌다. 무슨 꿈.

“내가 어제 꿈에서 데이트를 했거든”

데이트. 우물거리는 발음사이에서 왜인지 뚜렷하게 들려오는 단어 하나에 은우는 삑삑 거리며 맞추던 세팅을 조용히 멈췄다. 이미 은우의 머리 속에는 문빈과 얼굴 모를 사람과의 데이트가 재생되는 중이었다. 손을 잡고 하하호호 뛰어노는 두 사람, 자기야 아~~ 하면서 밥을 먹여주는 두 사람, 가로등 아래에서 입술을 맞대는...맞대....맞.... 아 시발! 이거 되게 빡치네! 꿈이지만 문빈과 데이트를 한 인간을 당장 찾아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은우는 혹여나 찌푸려진 미간을 들킬까 하하 웃으면서 이마를 꾹 꾹 눌렀다.

“데이트를 하셨는데 왜. 아주 좋아 죽으셨겠구먼. 그게 왜 기분이 더러운 꿈이야”

최대한 이죽거리면서 말을 뱉는 은우를 째려본 문빈은 남은 초코바를 몽땅 입에다 털어 넣고 다시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애가 왜 매사에 시비냐? 말 들어주는게 그렇게 힘들어? 이씨 내가 이래서 너랑 작업하는게 싫은거거든? 야! 안 듣냐? 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폭풍 잔소리를 내뱉던 문빈은 여전히 무덤덤한 (그러니까 그런척하는) 은우를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런데 그 데이트 상대가 너였다고!! 그러니까 기분이 더럽지 이 새끼야!”

여전히 우물거리는 볼, 똑같이 힘 없이 날라다니는 잔머리들, 그대로 잔뜩 심통이 나서 힘껏 뜨고있는 졸려운 눈. 그러나 은우는 더 이상 그것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나였다고? 그러니까, 손을 잡고 하하호호 뛰노는, 자기야 아~~ 하면서 먹여주는, 가로등 아래에서 입술을 맞대..맞대는 사람이, 나였다고?


삑-
삐삑-
삑-


스프레이로 깔끔히 고정시킨 잔머리들과 뾰족하게 아이라인을 그려 사라진 느리고 졸린 눈. 잔뜩 깔려있는 꽃잎위에 누워 베고니아 한 다발을 가득 안은 문빈은 어느새 카메라 앞에서 제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그런 문빈과는 다르게 은우는 생전 없던 수전증을 마음껏 뽐내는 중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과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후들거리는 저 자신을 어떻게 진정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은우는 자꾸만 안절부절 발을 굴렀다.

그럴만도 하지. 무려 3년이었다. 은우가 저 말괄량이를 짝사랑한 시간은. 도대체 저에게 관심이 없는 저 생명체의 가장 가까운 지인이자 파트너로 지낸 것도 벌써 3년이었다. 그 3년동안 매일같이 바뀌는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에 대한 자랑과 짜증, 죽어도 듣기 싫었던 연애상담을 죄다 은우에게 뱉어낸 문빈이었는데.

“야 차은우!! 너 지금 핀 하나도 안 맞아!”

그렇지. 하나도 안 맞지. 그래, 지난 3년의 문빈과 은우는 그렇게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늘 곁에 달고 다니는 문빈을 보며 안달내는 것은 언제나 은우 쪽이었다. 상처받고 무너져 내리며 은우는 무수히도 문빈을 떠내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은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빈은 언제나 살랑살랑 눈웃음을 치며 딱 은우가 멀어지려고 노력한 만큼만 가까이 다가왔었다.

“차은우!! 정신 안 차릴래?”

나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정신 차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차곡차곡 저 사랑스러운 악마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은우였었다. 그런데 그 꿈이 뭐라고. 진짜 데이트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꿈에서 데이트를 했을 뿐인데. 데이트라는 단어 한방에 넉다운 되어버린 은우는 열심히 도망치던 짐승이 올가미에 갇혀 질질 끌려 갈 때의 기분을 몸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체 뭘까. 이렇게나 제 머릿속을 한없이 팔랑거리는 저 민들레는.

아니 그러니까, 저 베고니아는, 대체 뭘까.


삑-
삑삑-
삑-

“씨발 진짜 똑바로 안할래!!!”

결국 성질 나쁜 에디터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소리에 촬영은 중단되었다. 너가 와서 보라며 에디터에게 머리채를 잡혀 모니터링용 스크린 앞에 세워진 은우는 믿기지 않는 똥망퀄의 지옥에서 돌아온 듯한 모습의 사진들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은우의 동공에는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안달 난 피사체를 제대로 담지 못해 희뿌연 실루엣만 아른거리는 사진들만 한 가득이었다. 차라리 발로 찍을걸.. 그래서 손 보다 잘 찍는 발을 가진 포토그래퍼로 기네스북에 올라가볼걸.. 한껏 뻘 생각을 하며 멍을 때리던 은우는 에디터의 돌돌 만 잡지흉기로 한 대 얻어 맞은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해요 제가 지금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죄송합니다. 촬영장을 한바퀴 돌며 연신 고개를 숙인 은우는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뒤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14층에 있는 옥상 테라스까지 계단으로 걸어가면 이 망할 잡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허억...헉.. 허..헉”

곧 죽을 듯이 숨을 헐떡 거리며 겨우 옥상에 도착한 은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누렇게 떠서 뱅뱅 돌아가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문빈 생각은 싹 다 사라졌다. 암, 사랑보다는 생존이지. 모자라는 산소를 있는 힘껏 끌어모아서 살아남는게 일단 우선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은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난간에 기대어 아까 맞은 뒷통수를 문질거렸다.

“존나 아파...”

이건 살인미수로 감방에 들어가도 무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은우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책을 흉기로 사용하면 무죄다!’ 사실여부는 확인해 본적 없지만 성질 더러운 에디터라면 분명히 무죄로 사람들을 죽여 버리려고 잡지를 흉기로 사용하는게 분명하다며 자기합리화를 시전한 은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아가며 뻘 생각을 하던 은우는 이내 에휴, 하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뛰어올라왔냐..”

문빈 생각을 안 해보려고 개고생해서 올라온 건데도 자꾸 문빈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은우는 이제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이건 거의 중독이었다. 문빈 중독. 사랑해 마지않는 동글동글한 코, 사납게 찢어진 주제에 다정한 눈, 자꾸 바라보게 만드는 사방에 흩날리는 가을색 잔머리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만 같은.....어 씨발 왜 만져져!!!!

“..뭐하냐”

기겁을 하며 (환상인 줄 알았던) 진짜 문빈의 얼굴에서 손을 땐 은우는 소스라치게 놀란 심장을 달래느라 허리를 꺾고 후욱, 후욱 숨을 들이쉬었다. 너. 허억. 뭐야. 후욱. 왜 여..허억..기있어.

“니가 안하던 뻘 짓하니까. 미쳤나 싶어서 올라와봤지.”

아직도 벌렁거리는 심장에 오른손을 올려서 심박수를 체크하던 은우는 문빈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사랑스럽고 싸가지 없는 저의 짝사랑 상대는 말을 늘 이런식으로 (좆같게) 한다. 걱정된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저렇게 완벽하게 재수없게 할 수가 있는건지. 은우는 아주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 대낮부터 메이크업하고 찬물 샤워해가면서 잠깨고 왔는데 너 진짜 똑바로 안할래?”

그런 심정을 절대 알리 없는 빈은 또 입을 오물거리면서 말을 뱉어낸다. 귀엽고 따뜻한 것들만 잔뜩 뭉쳐서 만들어 낸 것 같이 생겼으면서 하는 말들은 완전 딴 판이다. 똑바로 못하는거 다 너 때문이거든. 내 포토그래퍼 커리어 중에서 이렇게 뻘 짓한 적 한 번도 없었거든... 괜히 억울해진 은우는 너 때문이잖아! 라는 말은 못하고 분노에 가득 찬 손길로 머리만 쓸어 올렸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미안해.”

그렇다고 똑바로 하라는 문빈의 말에 침묵하기에는 너무 답답해진 은우는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컨디션 탓을 했다. 독감에 걸려 온 몸에 열이 펄펄 끓는 날에도 완벽하게 촬영을 마쳤었던 저를 아는 빈이 속을 리가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말 했다. 은우는 네가 머릿속을 다 헤집어놔서 그래, 라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너는 대체... 왜 그러냐?”

또 어떤 말로 사람 마음을 후벼 파려는 건지. 한숨 섞인 비난조로 말을 뱉은 문빈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비난 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가.”

은우는 문빈이 그런 표정을 할 때마다 퍽 서운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왜 너는 이럴때만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느라 은우는 목이 메였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는 아니다. 말을 삼키느라 그런 것이다. 은우는 혀를 깨물어가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너 내 꿈에서는 안 이랬거든?”
“아 그놈의 또 꿈 타령 좀 그만해라.”

방금 (약 10.3초 정도 전에) 메였던 목은 또 잊은 것인지, 금세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는 심장에 은우는 없던 편두통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놈의 멍청한 심장을 어쩌면 좋아..

“너 내 꿈에서는 말 만 잘하더라.”
“뭔...개소리야.”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슬슬 의심스러워 지는 문빈의 밑도 끝도 없는 꿈에서는 말 만 잘하더라 발언에 머리로만 생각해야 하는 말이 입으로 튀어나와 버린 은우였다. 제 말에 심술이 난건지 입술이 댓발 튀어나온 문빈을 본 은우는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기 위해 제 발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찾고 있었다.

“나 지금도 말 잘하거든. 내가 안 그래보여도 어? 웅변대회 대상 출신이야.”

인생의 모든 데이터를 주마등 스치듯이 빠르게 훑어 겨우겨우 초등학교 때의 수상경력을 쥐어짜낸 은우는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문빈을 바라보았다. 진짜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친 문빈은 이내 걸음을 척척 옮겨 은우 옆에 나란히 섰다. 어떻게 수습은 했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은우를 보며 바람 빠지듯이 피슈슈, 웃은 문빈은 난간에 기대어 턱을 괴고 짓눌려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다시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대상 출신이면 뭐해. 말 못 하잖아 너.”
“아니 진짜 억울하네. 나 말 잘 하..”

“너 지금도 말 못했잖아. 나 좋아하는거”

문빈의 제멋대로 날라다니는 잔머리에 햇빛 비춰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는 햇살보다 따뜻해 보이는 미소가 살랑거렸다. 입꼬리부터 눈 아래 주름까지 마치 미소를 위해 태어난 것 마냥 잔뜩 사랑스럽게 구겨지는 그런 미소. 아마 지금은 은우가 가장 사랑하는 문빈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우는 그것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더 이상 못되었다. 정말이지, 은우가 여유로울 리가 없었다.



**


“야 차은우. 너 식물 같은거 키워본적 있냐?”
“갑자기 그건 왜?”
“아니 나도 하나 키워볼까 싶어서. 좀 삭막하잖아. 내 사무실”
“식물 비슷한거는 키워본 적 있지”
“어떤거? 선인장 이런거?”
“안 알려줄건데”

야 이 쪼잔한 새끼야! 애초에 대답을 하지를 말던가! 온 기를 모아서 빼액빼액 소리지르는 문빈을 뒤로한 은우는 여유롭게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들었다. 문빈의 옷을 탁탁 털어서 의자 위에 곱게 걸쳐둔 은우는 제 옷들은 대충 구석에 휘휘 몰아넣은 뒤에 후다닥 샤워실로 들어갔다.

“진짜 말 안해줘? 대박이다! 됐다! 흥칫뿡이다! 필요없다!”

문빈의 발악에 가까운 투정에 혼자 큭큭 숨죽여 웃던 은우는 문빈이 쌍욕을 읊조리는 것을 듣고서야 샤워실에서 얼굴만 쏙 내밀었다.
 
“너 베고니아 꽃말이 뭔지 알아?”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게 진짜”

“짝사랑”

내가 예전에 그런거 비슷한거 키웠었거든. 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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