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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과 밝음의 괴리감> W. 아모르(amor)

 

적막이 가득 채운 공간 속에서 나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덕분에 저 역시도 한없이 새카만 밤이 더 익숙해져 초라하다고 느끼면서. 너는 내게 구원이고 유일함이었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네게 젖어 있는데, 우리는 왜 함께할 수 없을까. 기다리고 있을게. 은우야, 한치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 지나간 우리의 행복을 붙잡고 나는 영영 기다릴게.

 

은우와 빈은 같은 과 동기로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빈은 은우를 우리 과 얼굴 마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상하게도 은우와 빈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개강 총회 뒷풀이, 과 회식, 등등. 언젠가부터 빈의 꿈에는 은우가 종종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빈의 꿈에 은우가 나온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그 날, 빈은 과 방에서 웃고 있는 은우의 잘난 얼굴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좆같게도, 내가 차은우를 좋아하는구나.

참는다고 참았는데, 문빈 본인을 제외하고 모든 과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내가 좆같이도 잘생긴 차은우를 열망한다는 것을. 이미 이렇게 된 거, 고백하고 차이면 군대나 가자는 생각이었다. 1학기 종강 총회 자리에서 술이 올라 붉게 변한 얼굴을 애써 찬 손으로 누르며 은우에게 마음을 전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널 생각했어.

 

그렇게 반 년정도 연애를 지속했던 거 같다. 다른 과 CC들처럼 같이 수업도 듣고 시험을 핑계로 도서관에서 밤도 새고, 술도 마시고 뭐 이렇게. 그러던 중 빈은 한 없이 미루던 타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은우는 입꼬리를 당겨 맑게 웃었다. 어떤 문구를 새길 건데? AMOR B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라는 뜻이야, 은우야. 우리의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내기를 또 바라면서.

 

은우는 여름에도 줄곧 긴 소매 옷만을 고집했다. 이유는 햇빛 알러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심한 축에 속했기 때문에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은우는 살을 다 덮어야만 했다. 빈은 그런 은우를 보며 늘 나지막히 속삭였다. 옷 말고 내 연정으로 네 살을 덮으면 좋을텐데. 아프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고. 덕분에 둘은 실내에서 만나는 것이 익숙하고, 편했다. 빈이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데이트는 어렵지 않았다. 빈의 집에서 단 둘이 노트북으로 영화를 한참 보고, 맥주를 한 캔씩 마시고, 서로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로의 아픈 상처를 더듬고, 욕정을 나누고. 그 때는 몰랐지, 네가 내 공간을 이렇게도 채울 줄은.

 

은우와 빈은 다른 연인들처럼 만났고 또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은우를 만나면서도 늘 빈이 느껴왔던 부분이었지만, 은우는 참 요동이 없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어른스러운 사람인 것 같았다. 빈은 연애의 끝에 수 없이 남은 은우의 기억으로 무너졌지만 은우는 일상을 태연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3일정도를 밥도 먹지 않고 수업도 나가지 않았다. 멀쩡한 은우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그 후에는 빈도 바쁘게 살아갔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처음에는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떠올렸고 그 다음에는 시린 기억들을 떠올렸다. 종국에는 혼자 남은 공간과 시간들을 씹었다. 마지막에 남은 기억이 너무도 서러워서, 서러워 죽을 것 같아서 빈은 그렇게도 독한 소주를 샀나.1)

 

빈은 은우를 최선으로 피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이제는 괜찮겠지, 싶어 오랜만에 과 회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은우를 만났다. 다들 오늘이 끝인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빈은 자꾸 공중에서 닿는 그의 시선에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쓰려 빈 속에 끊임 없이 독한 술을 부었다. 시끄러운 주변 속, 빈은 멀리도 있는 은우를 떠올리며 네모 한 칸에 갇혀 우울함을 씹었다. 차은우와 문빈은 과 회식을 빼고 정의가 될 수 없는 관계였다. 둘은 과 회식 때 서로의 마음을 알았고 이렇게 또 과 회식에서 만났기에. 그 때는 알 수 없었던 결말의 끝에 서서. 술에 취하면 은우는 늘 빈의 손을 잡아 끌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래서 빈은 오늘도 혼자 나가는 은우 뒤를 좇았다. 한 손에는 숙취 해소제를 들고. 이렇게라도 그를 챙기고 싶었기 때문에.

 

왜 나왔어, 추운데. 그리고 이런 거 이제 안 챙겨도 돼. ”

이렇게라도 너를 챙기는 나의 모습이 네 눈에 다시 담겼으면 싶어서. 그럼 혹시라도 네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해서. ”

아프지 말라고 했잖아, 빈아. ”

은우야, 있잖아. 나는 네 혀 끝에 영영 머무르는 질 나쁜 발음이 되고 싶었거든. 너보다 예쁘고 해로운 것도 없었잖아.2)

 

너는 내 삶을 채웠고 적셨고 물들였잖아. 그리고 이제서야 미안하다며 뺏어 간 내 일상을 돌려주었잖아. 나는 혼자서 그렇게 물 속에 혼자 빠져서 구해 줄 너만 애타게 찾았잖아.

 

먼저 들어 가, 너 애들이 찾아.”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는 은우를 빈은 그자리에서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지 못한 마지막 말을 속으로 씹을 수 밖에 없었다.

 

나 요즘 새벽마다 구질구질하게 울어, 은우야. 네가 없는 집이, 네가 없는 새벽이 너무 서러워서.

 

빈은 새학기가 시작되며 더 바쁘게 살았다. 수업을 꽉 채워서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늦은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퇴근 후 새벽, 빛이 들지 않는 집에 들어서면 빛 대신 또 은우 생각이 제 집을 채웠다. 수고했다는 은우의 말과 눈물이 번져서 빈은 또 다시 그렇게 혼자 손목을 붙들고 상처를 새겼다. 혼자 독한 술을 또 넘기고 속을 게워내도 그를 비울 수는 없었다. 나는 영영 너를 열망할 운명인가봐. 너는 또 내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어내리더라. 너라도 있어서 지옥에서 난 버텼는데, 이젠 정말 끝이더라.

 

빈은 제 몸에 새겨진 아리따운 상처를 쓰다듬었다. 은우는 같은 자리에 신기하게도 꽤 큰 흉터가 있었다. 햇빛 알러지 때문에 생긴 흉터라고 했다. 물집이 잡히고 이렇게 흉한 상처가 남았다고. 같은 자리에 같은 글귀를 새기면 우리 정말 하나라며, 은우는 무심히도 얘기했었다. 빈은 제 사랑도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겨낼 수 없었다. 이제 지우지도 못하는 게 하나 더 늘었다. 은우와, 이 타투. 그리고 타투 보면 또렷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도. 은우와의 이별 후 빈은 타투를 지울까 한참을 고민했다. 자꾸 그 생각이 나서. 곧 그 생각을 그만뒀다. 은우를 떠올릴 무언가를 하나쯤은 남겨야 좋을 것 같아서.

 

은우야,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더니 너 때문에 내 마음엔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너만의 꽃밭이 생겼어.3) 그런데 그 꽃밭에 있는 꽃들 다 시들 것 같아. 물을 줄 수 없어, 나는. 그 꽃밭에 물을 주는 건 온전히 너였으니까. 차라리 그냥 꽃을 다 꺾어서 가. 시들기 전에, 한참 예쁜 이 시기에 다 꺾어서 가 줘. 목숨은 끊을 수 있어도 담배는 못 끊겠더라. 아니 어쩌면 담배를 끊는 것이 목숨을 끊는 것과 동일할 수도 있겠네. 네 생각이 들면 혼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내 상처를 또 쥐어.

 

새학기가 시작하고 교양은 물론 전공 시간에도 빈은 은우를 볼 수 없었다. 그냥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만 하고 그리워하며 지냈다. 동기들 역시도 은우의 안부를 제게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중간 고사가 지나갔다. 나쁘지 않은, 딱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은우라면 잘했겠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직도 빈은 은우가 남긴 웅덩이 속에 짙게 빠져있었다.

 

저번 학기에 두고 온 강의 노트와 과잠을 찾으러 과방에 갔을 때 그 분위기를 시간이 지난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회장 형도, 부회장 누나도 모두 눈물을 달고 있었다. 이유를 물을 수도 없는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구석에 있던 제 짐을 들고 나가려고 할 때, 동기 하나가 제 팔목을 붙잡았다. 물음표가 잔뜩 붙은 눈으로 응시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잠깐 얘기 좀 할까. 동기와 함께 흡연 구역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은우 이번에 아파서 휴학한 건데, 좀 안 좋게 됐어. 너한테 알려 줘야할 거 같아서.

그리고 이건, 은우가 전해달래. “

 

빈은 알 수 없는 종이 한 장을 건내 받았다. 네 글씨로 적힌 내 이름을 보고 눈이 일렁였다는 것을 너는 알까. 동기와 빈은 모두 말 없이 연기를 마실 뿐이었다. 빈은 종이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홀린 듯 공간을 벗어났다.

 

***

문빈에게.

 

빈아, 나 은우. 우선 미안해. 너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거, 너에게 상처를 줬던 거 전부. 나 그래서 벌 받는 거 같아. 너를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고,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어. 영영 그렇게 나는 혼자 너를 기다릴 것만 같아. 내가 좋다고 얼굴 붉히며 말하던 너도, 마지막에 장난감 뺏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던 너도 다 그리워. 네 미래에 내가 없는 것은 상상한 적도 없다고 했잖아, 빈아. 근데 그렇게 살아야 해. 그렇게 살아 줘. 나를 죽도록 미워하고 잊어 줘. 나 많이 아팠어. 햇빛 알러지 있잖아, 그것도 사실 치료 받다가 생긴 거야. 약을 먹다 생긴 거야. 이제 어둠에 익숙해지지 마, ? 나 때문에 어둠에 익숙해졌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밝음에 익숙해져. 술도 그만 마시고, 담배도 끊어.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픔을 잊을 수 있다면 끊지 마. 다만 아프지 마, 빈아. 꿈에 한 번만 찾아갈게, 10초만 안고 있자.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할게. 감히 바랄게, 네가 행복하기를.

 

은우가.

 

어둑한 방 속 빈은 끝내 고개를 떨구고 종이를 구겨 던졌다. 아프다면서, 그랬다면서 나를 위해 너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술잔을 비웠니. 그랬니, 은우야. 빈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또 다른 그리움의 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빈은 더 깊은 은우의 샘에 젖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빈의 휴대폰이 빛을 만들어냈다. 카톡,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혀 경쾌하지 못한 메세지가 전해져 왔다.

 

차은우 부고. 강남병원 장례식장 303. 발인: 18. 3. 19 ’

 

빈은 휴대폰마저 집어던졌다. 이제 정말 잡을 수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수도 없다. 빈은 다시 한 번 또 상처를 새겼다. 은우야,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빈은 검은 옷을 입고, 편의점에서 검은 양말을 샀다. 애인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검은 양말을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를 버렸다고 나는 너를 저주했는데, 정작 나쁜 사람은 나였음을 생각하면서 흔들리는 버스에 빈은 몸을 실었다. 그날 빈은 입관식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았을까, 아니었을까. 보지 않았던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네 팔을 보고 나는 도망치듯 나와서 눈물을 쏟았으니까. 은우의 흉터가 있던 자리에 빈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AMOR B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 우리의 사랑은 이겨내지 못했음을 가슴이 저리게 알았다. 도망치듯 나와 빈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덜 슬플 거 같아서, 은우 생각에 목이 매이지 않을 거 같아서.

 

집에 와서 벗어 둔 옷에서 지독하게 나는 향 냄새가 빈을 더 미치게했다. 은우는 이제 정말네 곁에 없어, 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방 한 구석 구겨진 종이를 집어들어 책상 위에 놓았다. 한 글자씩 곱씹으며 빈은 다시 눈물을 쏟고 상처를 새겼다.

 

미안해, 은우야. 나는 너를 조금만 더 앓을게. 조금만 더 열망할게. 네 생각에 조금만 더 울게.

 

 

 

 

 

 

 

 

 

 

 

인용문구 출처

1)문문 - 결혼

2)'욕설' 문장집

3)서덕준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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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은콩 2018 봄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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