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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편지다. 문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물함을 여는 순간부터 보이는 하얀 편지는 어느 날부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사람이 보내는 확실한 저 편지는 늘 희미하게 커피향이 났다.

 

때때로 생각해. 네가 바다라면 나는 한 마리 고래가 되고 싶다고. 네가 태양이라면 나는 행성이 되어 네 주위를 돌고 싶다고. 너는 알까? 나는 그저 수많은 너의 친구들 중에 하나 겠지만 너는 나의 단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빈아,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대체로 문학적인 문장이 써있는 편지는 빈의 마음을 끌기 충분했고 편지의 주인에게 호기심이 생겼지만 편지의 주인은 끝끝내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서는 편지에서 나는 희미한 커피향뿐.. 빈이의 주변에 커피향이 나는 사람은 차은우가 유일하지만 빈은 은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빈이는 은우에게 자신은 그저 같은 교실의 친구일 뿐이고 또 은우는 같은 학년의 최고 미인으로 소문난 애와 사귀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솔직히 빈이는 은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끔 편지의 커피향을 맡고는 했다. 하지만 이내 은우가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인걸 떠올리며 울적해졌다. 어쩌다 좋아하게 되었을까.빈이에게 보내진 편지지만 빈이는 그 편지들이 은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편지를 받게 된지 반년 째, 편지는 2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주기는 일정하지 않았고 내용은 거의 좋아하는 마음만 표현할 뿐, 본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편지는 달랐다. 

 

빈아, 안녕? 어느덧 너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낸 지 반년 째야. 그동안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았니? 나는 이제 답장을 받으려 해. 나를 찾아줄래?

Ps. 어제도 달이 참 예쁘더라.

 

빈은 당황했다. 그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편지의 주인이 자신을 찾길 바라고 있다니하지만 빈이가 가지고 있는 단서는 커피향이 난다는 것과 자기 주변인이라는 것뿐이었다. 빈은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펜을 들어 그동안 보내지 않았던 답장을 썼다. 

안녕? 그동안 편지 잘 받았어. 나도 너를 찾고 싶지만, 내가 너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어. 너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니?

 

답장을 볼까? 긴가민가 하면서 빈이는 자신의 사물함에 답장을 넣어놓고 하교를 했다. 그 날밤, 빈이는 드물게도 잠을 설쳤다. 편지의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과 그 애가 답장을 봤을까 하는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본의 아니게 아침에 일찍 일어난 빈이는 학교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했다.

 

“빈아, 안녕? 오늘은 학교 일찍 왔네?”

 

교실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빈이는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은우였다.

 

“안녕, 은우야.”

 

빈이는 삑사리가 나지 않게 주의 하면서 대답을 했다. 은우는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빈이에게 말했다. 

 

“이 시간에 등교하는 건 나 뿐인 줄 알았는데.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잠을 좀 설쳐서

 “아, 그래서 눈이 좀 빨갰구나.”

 

은우의 눈이 충혈됐다는 말에 빈은 얼굴을 황급히 내리면서 대답을 했다.

 

“응..그런가 봐.”

“빈아, 조례시간까지 한숨 자고 있어. 나는 교무실 좀 다녀올게.”

“응, 그래”

 

은우가 교실에서 나가고 빈이는 자신의 사물함 앞으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답장은 안 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빈은 사물함을 열었다. 하지만 옅은 커피향이 나는 편지는 빈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와 같은 커피향, 빈이 보다 일찍 온 사람은 은우뿐정말 은우일까? 하면서 생각했던 빈이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어제 내가 하교 하고 넣었을 수도 있지. 은우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잖아. 그렇게 생각한 빈이는 편지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빈아, 답장을 줄 줄은 몰랐어. 생각보다 너무 기뻤어. 매일 쓰면서 사실 답장을 기대하고 쓴 건 아니였거든. 네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 이렇게 기뻐도 될까 싶어.

빈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2년전 겨울이야. 처음 만난 날, 그날은 네 생일이었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축하받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

벚꽃이 예쁘더라. 너도 보았기를 바래.

 

처음 만난 날이 2년전 내 생일이라고? 편지에 쓰여진 2년전 생일에 빈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친구의 친구까지 왔던 그날, 빈은 그 날 온 사람들이 누군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이게 무슨 힌트야하면서 빈이는 책상에 엎드렸다. 누구인지 생각하는 와중에도 잠을 설쳐서 그런지 빈은 눈이 가물가물해져 왔다. ‘툭’ 뭔가가 빈의 책상에 놓이는 소리에 빈은 순간 잠을 깨어 자신을 깨운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책상에 네스퀵이 놓여있었고 그 앞에선 은우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서있었다.

 

“아침 안 먹은거 같아서 너 이거 좋아하지 않아?”

“어응...고마워”

“응, 미안. 잠 깨워서”

“아니야, 아니야”

“그럼 더 자. 빈아”

 

은우는 자리로 돌아갔고 빈이는 은우가 준 네스퀵을 손에 가만히 쥐고 쳐다볼 뿐이었다. 은우는 빈이와 그다지 친하지 않음에도 잘해주었고 그것이 몸에 배인 친절임을 알고도 빈이는 늘 설레곤 했다. 오늘처럼.

하루 종일 편지만 생각하다가 어느새 하교할 시간이 되었고 빈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지에서 벚꽃이 이쁘다고 한 얘기가 생각나 발걸음을 옮겨 집 근처 벚꽃 명소로 유명한 공원을 향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볼륨을 높여 들으면서 벚꽃을 보면서 공원을 걸으니 빈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벚꽃을 보라고 한 편지 주인에게 감사하면서 빈이는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산책길을 따라 걷는 와중에 빈이는 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어폰을 빼 뒤를 돌아봤다. 은우였다.

 

“빈아, 벚꽃보러 왔어??”

“어...응. 누가 벚꽃이 이쁘다고 해서

“그래? 벚꽃 이쁘지??”

 

예쁘게 눈꼬리를 접고 은우는 웃었다. 그 모습에 빈이는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응이쁘네.”

 

빈은 은우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답을 했다. 왜 항상 은우 앞에서는 작아지는 건지 빈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빈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우는 빈이에게 말을 걸었다.

 

“집 이 근처야? 나는 이 근처거든 같은 방향이면 같이 가자.”

“아나는 이 근처 00아파트에 살아.”

“어!!우리 집 근처다. 나는 그 옆에 ㅁㅁ아파트야. 같이 가자”

 

은우가 집을 같이 가자는 말에 빈은 황급히 핸드폰에서 재생되던 노래를 멈췄다. 그 모습을 보던 은우가 빈이에게 말했다.

 

“무슨 노래 듣고 있었어?”

 

빈이는 핸드폰을 황급히 확인했다. 순간적으로 듣고 있던 노래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설렘 가득-어쿠스틱 콜라보’ 화면에 노래 제목과 가수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쿠스틱 콜라보의 설렘 가득 듣고 있었어.”

“그래? 봄이랑 되게 잘 어울리는 곡인 것 같다”

 

은우가 살풋이 웃었고 빈이는 가슴이 뛰었다. ‘이 길을 함께 걷고 싶은데 너에게 내 맘을 뭐라고 말할까’ 순간적으로 노래의 가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빈이는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없어 꾹 눌렀다.

 

“나는 요새 이 노래 들어.”

 

은우가 보여준 화면에는 ‘데이식스 -좋아합니다’가 띄워져 있었다. 좋아합니다. 그 글자가 자신을 향하는 말이 아닌 것도 알고 은우는 의미 없이 노래를 추천해준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빈이는 순간 설레는 자신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은우와 걷는 내내 빈이는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기억나는 건 벚꽃이 예뻤고 벚꽃 아래의 은우는 더욱 멋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에도 빈이의 사물함에는 편지가 있었다.

빈아, 안녕? 벚꽃은 잘 봤어? 예쁘지? 벚꽃 떨어지는 걸 보니까 노래 가사가 생각 나더라.

 

‘살며시 오늘 너의 따뜻한 손을 잡고서 이 길을 걷고 싶어’

 

너랑 손 잡으면서 이 길을 걸으면 어떨까 생각했어. 요새 내가 듣는 노래가 있는데 꼭 내 마음 같아서 추천해봐. ‘데이식스의 좋아합니다’라는 곡이야. 너가 이 곡을 들으면서 나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기시감. 데자뷰. 편지에 쓰여있는 가사는 빈이가 어제 듣고 있던 노래의 가사였다. 그리고 은우랑 같은 추천 곡.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진짜 은우가 편지를 쓴 걸까. 은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빈이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지연아!”

 

지연. 은우랑 사귄다는 애. 그 아이의 이름이 빈이의 귀에 들어오자 빈이는 뛰었던 가슴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은우는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뭘 기대한 걸까. 빈이는 책상으로 가 이어폰을 끼고 엎드렸다, 이어폰에서는 ‘데이식스의 좋아합니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쉬는 시간이었다. 은우를 주위를 둘러싸고 애들이 얘기하고 있었다. 빈이는 잠이 덜 깨인 얼굴로 은우 쪽을 쳐다봤다. 빈이가 깬 걸 본 빈이의 친구가 은우에게서 멀어져 빈이에게 왔다.

 

“빈아, 대박.”

“뭐가?”

“어제 엄마가 앨범 정리한다고 해서 유치원 졸업앨범 오랜만에 봤거든”

“그래서”

“은우, 우리랑 같은 유치원 나왔더라?”

“뭐?”

“우리랑 같은 유치원 나왔다고 하더라. 아니 은우 잠깐 외국 살다 왔다고 해서 몰랐는데 외국 나가기 전에 이 동네에서 살았고 우리 다닌 은콩유치원 나왔대.”

“어, 맞아. 빈아. 너도 거기 나왔다면서 몰랐어. 뭔가 신기하다.”

 

어느새 은우가 빈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빈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은우를 쳐다봤다.

 

“아..그랬구나. 신기하다.”

 

멍한 머리로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런 빈이의 모습을 은우는 그저 웃음을 띄고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야, 문빈. 너 반응이 왜 그러냐. 이 분위기 어떻게 수습 할거야. ㅋㅋㅋ”

“야, 분위기가 어떤데 나한테 이러냐”

“니네 방금 분위기 묘했거든요?”

“무..뭐?”

“어? 말은 또 왜 더듬어?”

“야, 내가 언제 더듬었어?”

“지금 삑사리났다, 너.”

“야, 너 진짜!”

“하하하, 너희 진짜 친하구나?”

“얘랑 나랑 유치원부터 알고 지냈는데 안 친하면 이상하지. 빈이한테 궁금한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야, 그걸 왜 너한테 물어보냐. 당사자 두고.”

“그래, 궁금한게 생기면 물어볼게. 빈아”

 

은우가 웃으면서 빈이를 보면서 하는 말에 빈이는 그만 또 말을 더듬어 버리고 말았다.

 

“으..응”

“문빈, 너 진짜 왜 이러냐 ㅋㅋㅋ 은우 좋아하냐? 물론 은우가 잘생기긴 했지만.”

“야, 너 이리와.”

“아, 안되겠다. 도망쳐야겠다. 은우야, 안녕.”

“야, 너 거기 안서?!!”

 

도망친 친구를 따라 빈이가 뛰어갔고 빈이 책상에 앞에 얼결에 혼자 서있게 된 은우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좋아해도 되는데.빈아.”

 

하교하려 사물함을 열어보던 빈은 놓여져 있는 종이에 놀랐다. 빈이는 아침에 편지가 있어서 오늘 또 받으리라고 생각 안 했었다. 하루에 두 번 편지가 온 적이 없어서 빈이는 궁금해하며 종이를 펼쳐 보았다.

 

빈아, 오늘 우연히 들었어. 알고보니 너랑 나랑 같은 은콩 유치원을 나왔더라.

너와 같은 유치원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인연이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래서 참지 못하고 또 이렇게 편지를 썼어. 그냥 이렇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

너무 너에게 부담이 되었을까? 네가 내 마음에 대해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해.

그저 네가 좋을 뿐이야. 밤에 달이 뜨는 것이 당연 하듯이 내 마음도 그럴 뿐이야.

넌 그저 내게 당연해.

 

편지를 본 빈이의 손은 떨려왔다. 오늘 유치원에 대해서 빈이와 얘기한 건 자신의 친구와 은우 뿐이었다. 물론 빈이가 깨기 전에도 얘기 했다고 했으니까 다른 친구도 알 수도 있었겠지만..왜 하필 은우와 같이 이야기한 주제인걸까. 빈이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정말 은우일까? 마음은 은우라고, 은우일거라고 하지만 머리로는 은우는 여자친구도 있는데 왜 날 좋아하겠어. 라며 빈이는 사물함 앞에서 편지를 보며 한참을 떠나가지 못했다.

 

 

 

 

 

*본 작품은 데이식스의 좋아합니다 와 어쿠스틱 콜라보의 설렘 가득의 가사를 차용하였습니다.

계간은콩 2019 봄호 line up list
<밤바다> - SIN / 바다향
<종이의 무게> - 빵구 / 종이향
<열 번째 겨울> - 딸기우유 / 겨울향
<Take Me Away> - 꼬꼬지 / 흙향
<spring> - 헏쟝 / 딸기향
<어서 내게> - 확대경 / 벚꽃향
<향수> - 풍선 / 시프레향
<짝사랑> - 퐁 / 국화향
<꾐> - 틈 / 매화향
<Chocolate Box> - 콘 / 와인향
<츄파춥스와 담배사이> - 코코콩 / 츄파춥스향
<멍청이> - 컬러 / 눈물향
<마지막 키스> - 초록 / 튤립향
<5242> - 차주 / 오이비누향
<무색무취> - 제니 / 무(無)향
<다시 이별> - 은죽빈살 / 기름냄새
<향수(鄕愁)> - 원 / 헌 책 냄새
<파란 늪> - 우주대통합 / 베이비파우더향
<동화 속 해피엔딩> - 우주대통합 / 금작화향
<What Is Love?!> - 온기 / 풍선껌향
<금단> - 얌 / 담배향
<마고> - 야옹멍 / 용연향
<상사몽(相思夢) : 개화(開花)> - 야옹멍 / 사향
<yellow and mellow> - 앙꼬 / 레몬향
<고양이로소이다> - 슈가빈 / 감귤향
<방과후> - 손질 / 초콜렛향
<찾아줘> - 소빈/ 커피향
<MOONWALK X ROLEPLAY> - 베디 / 박하향
<숨결을 그리다> - 뷰길리 / 숨결향
<복숭아> - 물뿌 / 복숭아향
<semen> - 몽 / 밤꽃향
<The name> - 망간 / 잉크향
<탈출> - 리콜라 / 염향향
<마니또> - 로빈 / 체향
<rush&cash> - 라멍 / 무향
<욕(欲)> - 달함 / 백단향
<봄이에게> - 다로 / 비냄새
<α> - 날주 / 세이지향
<서로에게는 달콤한 따가움> - 나비담 / 살구향
<소잃고 뇌약간 고친다> -결절 / 섬유유연제향
<피는 안 나도 땀은 나더라> - 김오이 / 땀내음
<fall in love> - 그믐 / 새벽향
계간은콩2019 봄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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