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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상당히 차은우 씨와 문빈 씨에 대한 해석이 떨어지는 글입니다.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차은우 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돌아가 주세요. ⚠)

“미친 새끼.”

얻어맞은 왼쪽 뺨이 얼얼했다. 비린 맛이 감돌지 않았다. 작정하고 때린 게 아닌 그런 맛이었다. 그냥 분함을 이기지 못해 한번 때려봤다. 그런 식인 거지. 이해한다.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는 꽤 심각하니까.

“차은우 너, 그딴 식으로 살지 마.”

“어떻게 톨앤 리치 영앤 핸썸하지 않을 수 있는데?”

누가 너의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대주라 했던가. 아마 예수님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포용력 넘치는 자세로 잘살고 있는걸. 그렇지 않고서야 양쪽 뺨을 선사하는 성 차은우의 삶을 이딴 식이라 감히 폄훼해선 안 되었다. 쓰라린 두 볼을 그러모아 쥐며 멀어져 가는 사람을 보았다. 안녕, 이름이 뭐였지. 어쨌든 잘 가요.

w.결절

차은우. 방년 23세의 한창 핫하고 쿨한 시기. 얼굴 잘났지, 재력 잘났지, 모자란 게 있다면 단지 도덕심과 예의뿐인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친 사람처럼 살 거면 확실하게 미쳐버리자는 인생 모토를 가졌다. 이러한 모토로 주변인들의 심장만 쪼그라든다. 특히나 방금 차은우의 뺨 때린 여자가 윤산하의 큰누나 친구라면 더더욱.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는 동생이라는 타이틀로 그의 오픈카 조수석에 앉아있는 윤산하는 슬슬 차은우가 혹시 정말 미친 짓 하다 정말로 회까닥 돌아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먹구름도 칙칙하게 끼고 있는데 차 뚜껑을 덮을 생각을 하지 않는 차은우로 윤산하의 뚜껑이 열리기 직전에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사람은 5초안에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매끈한 차를 자랑하듯이 천천히 인도를 미끄러지던 차를 몰고있는 차은우.

1초에 길가에 있는 제 운명의 상대를 보았고,

2초에 서로 차를 지나치는 제 운명의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틀었고,

3초에 결국은 밟아버린것이다.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차은우 마음속에는 사랑의 엑셀레이터를.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5초나 걸린 사랑의 감정을 차은우는 그것마저 잘났는지 단 3초만에 걸려버린것이다.

“형, 미쳤어? 아니 뒤에 차,차,차! ”

윤산하가 갑자기 다함께 차차차를 부르짖었다. 그에 대답하듯 차은우가 차차차를 흥얼거리며 마저 후진을 했다. 갑자기 후진하는 자동차는 다른 운전자들이 침 뱉고 지나쳐갈 너른 차선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 아워였다면 분명 환장적인 6중 추돌사고였을것이다. 하지만 차은우의 차는 서행을 하여 안전거리를 확실히 유지하고 있었고 은우의 차의 수리비가 곡소리 나도록 비싼것을 아는 운전자들은 얌전히 차선을 틀고 가던 길을 갔다. 왜 갑자기 후진하는건데? 윤산하가 이 형의 미친짓을 당기게 할 계기가 있었는지 다시 곱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 돌아간거 봐라. 저저, 회까닥 정신과 함께 고개도 돌아버린 차은우의 시선 끝에는 웬 남자가 있었다. 진짜 웬 남자. 180대쯤 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어깨를 푹 구부린 채로 펑펑 울고 가는 장면이다 확실히 차은우의 구미가 당길 만 했다. 가다 케이크라도 떨군 사람처럼 우는 모습에 차은우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어느새 후진으로 속도를 따라잡은 차은우가 창틀에 팔을 턱 하니 얹었다.

“왜 울고 있어요? 예쁜아.”

진짜 저런 멘트치는 사람들이 있구나. 윤산하는 미지의 심해 생물을 보듯이 차은우를 바라보았다. 차은우는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차장의 자동차 같은 번지르르한 낯짝을 들이밀었다. 그게 무슨 멋이라도 되는 양 콧대에 선글라스를 걸쳤다. 그런데도 저 남자가 안면을 갈기지 않은 건 얼굴 때문일까 아니면 우느라 개소리를 못 들어서 일까. 윤산하가 마땅히 합리적인 의심을 하였다.

“흑, 크읅컹, 누구세…. 킁요..”

그렇구나, 코 먹기 바빴구나. 먹을 땐 개도 안 건든다는데 차은우는 개보다 못한 인간인가? 윤산하는 고개 돌린 뒤통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은우가 옅게 웃는 얼굴로 클락션을 눌렀다. 물결처럼 울리는 소리에 윤산하도 놀라고 앞에 가던 차도 놀라고 울고 있던 남자도 한순간 눈물이 멈췄다.

“이제야 그쳤네요.”

타인이 들었다면 소나기가 그친 줄 알 법했다. 현실은 울음을 그치라고 클락션이나 울려대는 인간인데. 울고 있던 남자도 괴리감을 느꼈는지 울다 말고 눈을 흘겼다. 하지만 생글방글 웃고 있는 미남의 얼굴에 침은 못 뱉는 성격인지 그저 미간만 찌푸렸다. 차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내밀어 차의 문짝을 퉁퉁 튀겼다. 해석해보자면,

마, 타라!

이정도.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것이 있었다. 이미 차은우의 조수석에는 윤산하가 타고 있다는것. 윤산하가 어리벙덩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자 차 문짝이 조심스럽게 위로 상승했다. 마치 호랑이에 날개를 붙여준것같은 확실한 돈자랑. 윤산하가 문이 올라가는것을 보다가 불안한 예감에 차은우를 훽 쳐다보았다. 설마, 이 인간이 비 올것 같은 이 날씨에 걸어가라고 ... ...

“산하야, 안 내리고 뭐해.”

기가차서 윤산하가 콧방귀를 끼려니, 차은우가 한틍 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돼, 나 못 걸어. 윤산하는 안전벨트를 꼭 잡고 다리를 모았다. 윤산하가 찡징거리며 몸을 더 옹송그렸다. 차은우가 윤산하를 구둣발로 밀어버리기 직전 바깥에서 천사의 구원이 을려퍼졌다.

“탈 생각없는데요.”

차은우에게 헌팅당한 남자가 눈 대신 딸기 마카롱으로 갈아끼운채로 대답했다. 저거 어디서 본거 같은데 밈으로 돌아다니는 그 개구리 닮았네. 그 인형말고 누가 그린것같은 과도한 왕눈이 개구리 - 개구리 페페 - 윤산하는 차은우를 한번 보고 남자를 한번 보았다.

“왜요, 얘 때문에 그래요? 괜찮아요. 곧 내릴 건데.”

차은우가 윤산하에게 눈길도 안 준 채로 짐짝 가리키듯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차은우 개싹퉁바가지 새끼 나 때문에 안 타는 거겠냐. 네놈이 이쁜이 같은 되지도 않는 드립쳐서 그런 거 아냐. 윤산하가 차은우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을러댔다.

“까분다.”

“네, 형.”

손을 다시 조신하게 포갰다. 뒤통수에 눈이 달렸나. 백미러로 봤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는 윤산하였다. 가볍게 한번 비웃어주고 다시 길가의 남자로 고개를 돌렸다.

“안 타면 진짜 사고 날 텐데.”

아니 다를까, 불법 주차 차량에 뿔난 운전자들이 지나치면서 분풀이용 크락숀을 눌러대던 참이었다. 타려는 남자에 차은우가 인정 없는 눈으로 짐짝 윤모 씨를 바라보았다. 윤산하는 못 내리겠다고 곡소리를 하고 울며불며 사정했다. - 분출의 의미가 아니라 싹싹 빌었다. - 결국 윤산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았다. 차은우가 시동을 다시 걸었다.

차가 여유롭게 해변으로 진입했다. 차은우의 앞머리는 왁스로 넘겨 괜찮았지만, 옆에 탄 문빈의 앞머리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고 있는 깃발 같았다. 문빈은 입을 떼려다 가도 백미러에 비치는 앞머리에 말할 맛이 나지 않았다. 문빈이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물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당신 울린 그 사람 있는 곳”

“누군지 알고요.”

“쟤 큰누나 친구거든요. 이름은 모르겠지만 5시까지 호텔 루프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니까. ”

차은우가 뒷자리에 앉아있던 윤산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목시계를 힐끔 보고는 오른발에 더 힘을 주었다. 문빈은 그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아요? 이마에 써져있었다.

“당신이 그 여자한테 거절당하는걸 봤거든요. 아마 내 뺨때리고 집가는데 당신이 고백한거 같던데. ”

“제가 말한거까지 보셨어요?”

대답 않고 묵묵하게 운전만 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것처럼 차은우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 사람도 참 불쌍하네. 어쩌다가 저런 싹퉁바가지 차은우한테 걸려가지고 대답도 못 듣고. 속으로 혀를 끌끌차는데, 문득 차은우가 같이 영화보고 평을 나누는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인상적이던데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고백하는거.”

윤산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는 안그런줄 아나. 아니 그것보다 더 대단한건 저 사람이었다. 처음만난 사람한테 그냥 고백했다고? 부끄러운건 아는지 백미러 너머의 남자가 붉어졌다.

“뭐라고 했더라. 당신의 향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나 배꼽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사람이 화끈하게 고백도 해봐야죠.”

윤산하가 팔짱을 꼈다. 아주 끼리끼리 논다. 예쁜이와 결혼 전제 연애. 잘 만났네, 천생연분이여. 방금전에 차은우같은 놈에 걸렸다고 안쓰러워했던거 취소. 윤산하가 마음속으로 침을 퉤퉤 뱉으며 말을 버렸다. 그리고는 언제 울었다는듯 창밖을 무심히 보고있는 남자를 관찰했다.

“통성명이나 하죠. 차은우요.”

“문빈입니다.”

뭐야 나도 해야하나. 윤산하가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문빈도 자신의 이름을 팔았으면 댁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듯이 말할 타이밍을 노렸다. 엉거주춤 눈치를 보고 있는데 차은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쟤 이름 부를 일 없을 거니까 궁금해 하지 마세요.”

“아, 형.”

“그냥 짐짝이라고 부르세요. 짐. 덩. 어.리.”

“내가 왜 짐 덩어리야! ”

방금의 콩트에 베토벤 바이러스 주제곡을 틀어줘야 할 것 같았다. 윤산하가 바락바락 대들려 하자 차은우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정말 치사하게도 옆에 앉은 문빈은 밖으로 튕겨 나갈세라 팔로 막아줬다는 것이다. 안 막아줘도 저 정도면 잘 있겠구먼. 오히려 오만불손한 자세로 앞 좌석에 기대고 있던 윤산하만 머리를 앞 시트에 박았다. 윤산하가 분기탱천해 들어 일어서려 하자 차은우의 짧은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꼬우면 내리던가.”

윤산하는 정말 더러워서 이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아까 그냥 비 맞고 걸어갈걸. 왜 그때 애걸복걸해 사서 고생 중인가. 짜디짠 바닷바람이 윤산하의 뺨을 때렸다.

“어… 힘내세요.”

마지막 확인 사살까지. 윤산하는 차은우와의 손절을 다짐했다.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러그 위로 잔잔한 클래식이 흘렀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관대하게 실내를 비췄다. 사람들은 햇빛을 받으며 무심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가운데 동선은 짧되, 역동적으로 춤추는 손이 있었다. 차은우의 뺨을 때리고 기력보충을 꾀할 심산 같았다. 그 덕에 앞에 놓인 밀가루와 설탕 덩어리의 양이 줄었다.​

“ 저 사람 맞죠. ”

차은우가 턱 끝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켰다. 문빈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4인석 자리였기에 차은우가 자연스럽게 여자의 대각선의 자리를 꿰어찼다. 문빈이 엉거추춤 자신의 자리가 맞는지 의아해 하면서 차은우 옆에 앉았다. 산하는 어쩌다 남자 하나를 둔 한 남녀의 치정극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저 모른척을 해주어야 할까. 마음같아선 호텔 주방이라도 빌려서 팝콘을 튀기고 싶은 마음 이였다. 결정 끝에 빈자리인 여자의 옆에 앉았다. 만약 차은우가 이 사람에게 입을 놀리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적어도 큰 누나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피의 쉴드를 쳐줘야 했다. 윤산하는 최소한의 출혈을 각오하고 숨을 다쉬었다. 차은우가 입을 떼었다.

“나, 이 남자랑 사귀어.”

차은우가 자연스럽게 문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감싸안았다. 문빈이 호달달 떨리는 손을 얌전히 허벅지에 올리고 고개만 차은우에게 기댔다. 음, 누가봐도 주작같은데. 나 먼저 보내고 주차장에서 속닥대던게 이걸 위해서였나. 괜히 결백한 윤산하가 여자의 눈치를 보았다.

여자가 입꼬리를 얄쌍하게 올렸다. 마음이 있으면 5시까지 로비로 오랬더니, 길 가다 주워온 사람을 데리고 나와? 고고했던 자존심에 흡집이 조금 났다. 그럼에도 짜증나는건 얼굴만 보면 죄를 사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저 얼굴 때문에 자존심을 굽혔다. 자존심까지 굽힌 이상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게 그녀의 모토였기 때문이다.

“퍽이나 그렇겠다. 일당 얼마 받았어요? 얼굴 좀 봐요. 뭐야, 아까 나한테 고백했던 사람이네.“

여자가 포크로 뭉개진 케이크를 쑤셨다. 그러다가 불쌍한 어린 양의 얼굴이라도 봐야 후에 구제할 수 있을 것 같아 쳐다보았다. 문빈은 여자가 자신을 알아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길에서 만난 신원도 제대로 모르는 남자를 따라간 주제에 콩팥이 털릴 걱정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일반적으로는 애초에 차에 타지도 않았을 테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차은우의 얼굴이 큰 공로를 했다.

“지금 내 관심받으려고 그런 거면 그만둬요. ”

“아니, 그게 아닌데...”

“당신 같은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심지어 당신은 멘트도 구려요.”

할말을 두 다다다 쏘아대고 팔짱을 꼈다. 턱을 높게 치켜드는 모습이 더 이상 들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문빈이 맷돌 손잡이를 잃은 태도를 보였다. 마치 차은우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문빈이 착잡하게 기본 세팅된 포크를 들었다. 그러나 곧 포크를 내렸다. 접시는 서술형 답안지처럼 찍을 것조차 없었다.

빈이 말을 고르려는 듯 눈을 굴렸다. 차은우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메뉴판을 들었다. 그리고는 간결한 손짓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브런치, 디너, 주류가 휙휙 지나치더니 디저트에서 멈췄다. 부루마블 비행기 색깔 고르는 것처럼 신중하게 선택했다. 차은우의 긴 검지가 롤케이크로 움직이는듯하다가 접시를 힐끗 보더니 조각 케이크로 옮겼다. 그리고는 소리나게 메뉴판을 덮었다.

“자허토르테, 갸또 오 쇼콜라 한조각씩이요.”

“형, 나는 화이트 초코.”

“자허토르테랑 갸또 오 쇼콜라 한조각씩이요.”

윤산하가 드럽고 치사하다며 꿍얼거렸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냈다. 카드를 자랑스럽게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화이트 초코를 주문했다. 윤산하의 자랑스런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원분이 ‘죄송하지만... 카드가 정지되었다고...’ 라며 자신이 더 머쓱한 표정으로 내밀자 구겨졌다. 결국은 차은우가 동정어린 눈빛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윤산하, 오늘 재수가 없어도 괜찮아같은 책을 쥐어주고 싶었다.

하얀 접시가 포크와 함께 놓였다. 화이트 초코 케이크는 윤산하가 홀랑 챙겨갔다. 차은우가 나머지 두 접시를 문빈 앞으로 내밀었다. 왜 자신에게 주는지 의아한것 같았다.

“드시라고 산거에요. 먹고싶었죠?”

문빈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차은우가 바라만 봐도 뿌듯한지 웃음을 지었다. 포크를 드는 문빈의 손이 조금 흔들렸다. 감격적인 첫 포크의 순간. 달에 첫 발을 딛는 닐 암스트로의 심정이 이랬을까. 달달한 살구잼이 문빈의 입에서 살살 녹았다. 화가난 여자의 인내심도 땡볕의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았다.

“그래서 뭔데요, 사귀자면 거절이에요!”

여자가 씩씩거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누가 봐도 말만으로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진짜 사귀는 것처럼 염장질하고 있는데! 상당히 기만당한 것 같았다. 그 차은우가 드시라고 산 거에요? 그런 버터 튀김 같은 느끼한 말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남을 배려하는 차은우라니 정말 영상기록물로 남겼어야 했다.

“저는 고백한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데 향수 향이 좋아서 무슨 향수 쓰시나 물어보려고 한 건데...”

문빈이 우물쭈물 진심을 털어놨다. 차은우의 눈썹과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결국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자는 잠시 얼굴이 화닥닥 붉어지더니 곧 얼굴색이 돌아왔다. 다시 턱을 걷게 치켜들고 문빈에게 말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또 찝쩍대는 쓰레기 같은 놈인 줄 알고 실례를 했네요.”

무작정 추파를 던지는 일이 많았는지 오히려 안심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아직도 파안대소하는 차은우 발을 꾹 밟았다. 차은우가 너무 웃어서 흘린 눈물을 훔치며 눈썹 끝만 올렸다. 여자가 차은우와 문빈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일단, 나 향수는 안 써요. 대답해주기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여자가 말을 끊자 문빈이 고개를 기울였다. 차은우는 예상이 가는지 문빈과 좀 더 밀착해 앉았다. 차은우의 몸짓을 본 여자가 더욱 눈썹을 찌푸렸다.

“두 사람 진짜 사겨?”

여자 옆에 앉아있던 윤산하가 마시던 물을 뿜었다. 그 덕에 바로 앞에 앉아있던 차은우가 물세례를 맞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분위기가 떠올랐다.

차은우가 놓인 냅킨으로 얼굴부터 닦았다. 그 덕에 여자가 되갚듯이 차은우를 실컷 비웃어주었다. 윤산하가 손을 달달 떨어서 테이블도 달달 떨렸다. 윤산하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아니 형, 그게 의도한게 아니라 진짜 사귀는줄 알고 있었다는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문빈씨랑 사귀는게 왜 어이가 없어.”

화내는 포인트가 그거냐고! 윤산하가 방향을 잘못 짚은 사과를 주워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뱉은 물을 다시 삼킬 수 없는것처럼 말을 다시 삼킬순 없었다.

“그니까 안어울린다는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럽고 그래 옆에 문빈씨 봐봐 어리둥절해서 눈깜박이는거 보라고!”

“눈이 건조해서 그런건데요.”

아씨, 진짜 죽겠네. 윤산하가 머리를 쥐어뜯기전에 등에서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니었다, 그저 여자는 웃으며 옆 사람을 때리는 습관울 가진것이었다. 차은우가 이를 악 물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윤산하가 울상을 지었다.

“웃기네, 보상 내가 해줄테니까 얘 혼내지마.”

“애 버릇 나빠지게 그러지마.”

처음에 윤산하가 예상했던것과 반대로 자신이 쉴드 받고 있었다. 하지만 차은우가 윤산하를 훈육하듯이 그런 여자를 다그쳤다. 윤산하는 기분이 좀 나빴지만 차마 나댈수는 없었다. 지금 주제도 모르고 나댔다간 쓱싹당할것 같았다. 여자가 등을 팡팡 두드리며 차은우에게 짐짓 두둔하는체로 말했다.

“이렇게 웃기는 값도 쳐서 말이야. 산하가 맨날 너 따라다니는줄 알았더니, 니가 얘를 재밌어서 데리고 다닌거였구나.”

와 이건 좀 아니 많이 기분 나쁘다. 윤산하가 오히려 쉳차은우도 매한가지라는듯 기분 나쁜 눈으로 윤산하의 위 아래를 훑었다. 얘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지마. 일반적인 집착인거지. 차은우의 눈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윤산하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일단 수그렸다. 여자가 서로 혐오하는 둘을 보고 다시 웃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관람하고 있는 문빈에게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문빈이 조금 당황했다.

“문빈씨라고 했죠.”

“네?... 아, 네.”

“당신이 사귀게 되면 산하가 살 수 있을것 같은데. 혹시 산하가 당신 부모님의 원수인가요?”

“아,아뇨.”

여자가 그걸 듣더니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러고는 문빈에게 빨리 귀를 대보라고 손짓했다. 그에따라 문빈이 상체를 숙여 귓속말을 들었다. 차은우가 입을 꾹 다물고 위자 뒤로 푹 기대었다. 윤산하도 궁금했지만 괜히 또 나대다 일 벌릴라 얌전히 케이크나 주워먹었다.

“차은우가 성격도 더럽고 예의도 친절도 배려도 없는데, 당신한테는 있는척 하고 있거든요. ”

“한게 저거에요?”

문빈이 귀를 떼며 차은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생크림 케이크에 김치 얹어 먹는 현장을 목격한 것 같았다. 안 믿기죠, 근데 진짜 저거는 내숭 부리고 있는 거예요. 여자가 다시 귀를 대보라고 재촉했다.

“저 살면서 차은우가 누구 신경 써서 챙겨주는 거 진짜 처음 봐요. 데려온것만 해도 보세요. 제가 쟤 뺨을 때려서 절대 다시 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

여자가 차은우를 눈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배려를 많이 받긴했다. 막무가내긴해도 비를 안 맞게 태워준 셈이 되었고, 바라는 대로 데려다 주었으며, 앞으로 쏠릴때도 잡아준것도 차은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케이크도 사줬다.

“한번 생각해봐요. 대한민국에 저 얼굴 쟤 말고 없는거 알죠. 당신한테 내숭떨고 있을때 확 휘어잡아버려요. ”

여자가 손까지 움켜쥐어 보이며 독려해주었다. 여자가 멀어자는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문빈은 고백에 빠졌다. 괜히 테이블 위에 있던 케이크가 보였다. 그래, 저런 사람 흔치 않다. 문빈이 차은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은우씨, 사귈래요?”

문빈이 말을 툭 던졌다. 하지만 차은우에게는 속이 꽉 찬 데드볼인것 같았다. 차은우가 들고 있던 포크를 댕그렁 떨어뜨렸다. 차은우의 목이 기계적으로 문빈에게 향했다. 당황한 얼굴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그걸 왜, 빈씨가 말해요?”

“뭐야, 형 이 사람한테 관심있는거 아니었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했는데!”

산하가 묻자, 차은우가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정말로 억울해 보여서 먼저 고백한 문빈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여자는 이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 사태를 매듭지었다.

“자, 이제 그럼 산하는 혼 안 나도 되고, 둘은 사귀게 되는 거죠? ”

차은우가 문빈의 손을 슬쩍 잡으며 바라보았다. 벌써 문빈 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여자가 그런 차은우를 약간 눈꼴 시려 했다. 윤산하가 난입하지 않았다면, 차은우를 무시하고 다시 말을 이으려고 했다.

“그럼 빈이 형은 처음 만났을 때 울고 있던 거에요? ”

“아, 케이크 포장해가다 떨군 게 서러워서. ”

그래서 아까 케이크 시켰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구나. 윤산하는 차은우가 고백 받게 된 큰 이유가 케이크를 사줘서 그런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놀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런 케이크 비하인드를 산하가 알 턱이 없었다. 윤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크가 여러 사람 살렸다고 안도했다.

“아, 그리고 내가 따로 뿌리는 향수는 없어. 비결은 그냥 섬유유연제를 남들보다 더 많이 넣는 거야. ”

“정말 별거 없네요.”

“그렇지, 근데 그거 하나로 두 사람이 이어진 거 보면 기적의 섬유유연제 아닐까?”

윤산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여자가 손을 꼭 잡고 좋아죽는 둘을 보며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완벽한 엔딩이라 감히 자부할 수 있었다.

 

 

 

 

 

 

 

 

 

 

 

 

 

계간은콩 2019 봄호 line up list
<밤바다> - SIN / 바다향
<종이의 무게> - 빵구 / 종이향
<열 번째 겨울> - 딸기우유 / 겨울향
<Take Me Away> - 꼬꼬지 / 흙향
<spring> - 헏쟝 / 딸기향
<어서 내게> - 확대경 / 벚꽃향
<향수> - 풍선 / 시프레향
<짝사랑> - 퐁 / 국화향
<꾐> - 틈 / 매화향
<Chocolate Box> - 콘 / 와인향
<츄파춥스와 담배사이> - 코코콩 / 츄파춥스향
<멍청이> - 컬러 / 눈물향
<마지막 키스> - 초록 / 튤립향
<5242> - 차주 / 오이비누향
<무색무취> - 제니 / 무(無)향
<다시 이별> - 은죽빈살 / 기름냄새
<향수(鄕愁)> - 원 / 헌 책 냄새
<파란 늪> - 우주대통합 / 베이비파우더향
<동화 속 해피엔딩> - 우주대통합 / 금작화향
<What Is Love?!> - 온기 / 풍선껌향
<금단> - 얌 / 담배향
<마고> - 야옹멍 / 용연향
<상사몽(相思夢) : 개화(開花)> - 야옹멍 / 사향
<yellow and mellow> - 앙꼬 / 레몬향
<고양이로소이다> - 슈가빈 / 감귤향
<방과후> - 손질 / 초콜렛향
<찾아줘> - 소빈/ 커피향
<MOONWALK X ROLEPLAY> - 베디 / 박하향
<숨결을 그리다> - 뷰길리 / 숨결향
<복숭아> - 물뿌 / 복숭아향
<semen> - 몽 / 밤꽃향
<The name> - 망간 / 잉크향
<탈출> - 리콜라 / 염향향
<마니또> - 로빈 / 체향
<rush&cash> - 라멍 / 무향
<욕(欲)> - 달함 / 백단향
<봄이에게> - 다로 / 비냄새
<α> - 날주 / 세이지향
<서로에게는 달콤한 따가움> - 나비담 / 살구향
<소잃고 뇌약간 고친다> -결절 / 섬유유연제향
<피는 안 나도 땀은 나더라> - 김오이 / 땀내음
<fall in love> - 그믐 / 새벽향
계간은콩2019 봄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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